⊙ “轉向이라기보다 학자로서 ‘인식의 전환’”
⊙ “북한 주체사상가들에게 ‘인민이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수령과 당이 희생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주장”
⊙ “북한 종교인은 ‘정치적 종교인’”
申恩姬
⊙ 44세. 임마누엘신학대 신학부 졸업, 토론토대 세인트마이클대 철학박사.
⊙ 美오하이오노던대·심슨대 종교철학부 교수. 現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 저서: 《우리 다시 사랑할 수 없을까》, 논문: <기독교와 주체사상과의 대화>
<지젝의 기독교 비평 연구>등.
⊙ “북한 주체사상가들에게 ‘인민이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수령과 당이 희생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주장”
⊙ “북한 종교인은 ‘정치적 종교인’”
申恩姬
⊙ 44세. 임마누엘신학대 신학부 졸업, 토론토대 세인트마이클대 철학박사.
⊙ 美오하이오노던대·심슨대 종교철학부 교수. 現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 저서: 《우리 다시 사랑할 수 없을까》, 논문: <기독교와 주체사상과의 대화>
<지젝의 기독교 비평 연구>등.
‘신은희(申恩姬)’라는 이름을 언제 처음 접했는지는 기억에 없다. 아마 인터넷에서 북한 관련 기사들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봤을 것이다.
<북조국(북한)에서 수령과 당과 인민은 하나다. … 주체사상에서 수령, 당, 인민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주체사상에서 김일성 대신 하나님을 넣으면 꼭 들어맞는다고까지 할 수 있을 것이다.>
<주체사상을 종교적으로 내면화한 것을 주체영성…. 주체영성은 북조선의 인민대중들 속에 깊이 나타나고 있으며, 그 종교적 현상은 기독인의 절대적인 예수 신봉과 매우 흡사하다.>
<미국은 기독교의 문화기준으로 북을 ‘종교탄압국’으로 지정해 온갖 경제제재를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미국의 종교테러리즘은 어느 누구도 제재할 길이 없다. 북이 정말 ‘종교탄압국’이라면, 미국은 ‘종교테러국’이 아닐까?>
솔직히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뭐하는 사람인가 하고 보니 캐나다 국적의 해외동포로 ‘미국 심슨대 종교철학부 교수’라고 했다. 그의 이름 앞에는 ‘주체사상(主體思想)의 전도사(傳道師)’라는 말이 따라다녔다.
‘轉向’이라는 말에 거부감 강해
지난 8월 1일 《중앙일보》에 그 신은희 교수가 ‘전향(轉向)’했다는 기사가 났다. 이 기사를 보고 신 교수가 2008년 국내에 들어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교양학부)에서 교수로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기사에서 그는 “북한은 특권을 가진 상위 1% 중심의 사회”라면서 “북한에 대한 희망이 10년 만에 절망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의 인터뷰 기사는 논란이 됐다. 우선 보수우파 쪽에서도 그의 ‘전향’을 흔쾌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보수논객인 조영환 《올인코리아》 편집인은 “신은희 교수는 자신의 교만과 기만을 학생들에게 주입시켜 온 죄악을 저지른 것”이라면서 “중앙일보가 전한 신은희는 아직도 절반만 뉘우쳤지, 그는 여전히 악마의 주술(민중신학)에 취한 상태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그런가 하면 《중앙일보》 기사가 나가기 전후해서 신은희 교수와 접촉했던 이들은 “신 교수가 상당히 심적(心的)으로 힘들어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은희 교수의 현재 심경을 듣기 위해 인터뷰를 요청했다. 기자의 전화를 받은 신 교수는 우선 ‘주체사상의 전도사’와 ‘전향’이라는 말에 대해 심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나는 과거에 종교학자로서 주체사상을 종교적으로 해석한 것이지 ‘전도(傳道)’한 것은 아니다. 지금 ‘인식의 변화’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걸 좌파(左派)에서 우파(右派)로의 ‘전향’으로 해석하지는 말아 달라”는 취지였다. ‘종교학자 신은희 교수의 인식의 변화’에 대해 듣기 위한 것이라는 전제 아래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학자로서의 주장이었을 뿐”
방송 출연을 하기로 했다는 8월 8일. 서울 태평로에 있는 《월간조선》 사무실에서 신은희 교수를 만났다.
—방송은 잘하고 왔습니까.
“못했어요. 방송사에서 이미 ‘주체사상의 전도사 신은희가 전향한 이유는?’이라는 제목을 정해 놓고 있더군요. ‘미안하지만 그런 제목으로는 할 수 없다’고 했어요.”
—‘주체사상의 전도사’라는 표현이 어디서 나온 것입니까.
“《통일뉴스》에서 처음 저를 소개하면서 재미있게 표현한다고 ‘주체사상의 전도사?’라고 했어요. 나중에 다르게 생각하는 분들이 물음표를 떼고 사용했어요. 이번에 《중앙일보》 기사에서 완전히 저를 ‘주체사상의 전도사’로 불렸던 것처럼 써서 굉장히 난감하고 황당해요.”
—그럼 아니란 얘기인가요? 교수님의 글을 보고 그런 느낌을 받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솔직히 처음에 북한 입장에서 쓴 글이 상당히 있기는 해요. 학자로서 자기 학설을 얘기하고, 소개하고, 글로 쓸 수는 있는 것 아닌가요? 그걸 마치 선교사들이 들고 복음 전도하듯 전도했다고 하는 것은 다르죠.”
신 교수는 “《중앙일보》 기사가 나간 후 다양한 비난이 들어오는 등 여파가 심하다”고 말했다.
“‘주체사상의 전도사’라는 표현이 제일 기분 나빴어요. 주변 사람들이 너무 놀라면서 저를 그렇게 받아들이는 게 당황스러웠어요. 가까이 지내던 교수가 나를 피하고… 서운했어요.”
—전에 쓴 글을 보면 기독교 근본주의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더군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근본주의 성향이 강하죠.
“그런 것에 대해 저는 굉장히 비판적이에요. 전에 쓴 방북기(訪北記)에도 주체근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분명히 들어 있어요. 글에서 그 양(量)이 많지는 않아도 글마다 그런 비판이 들어 있는데, 친북적(親北的)인 내용만 화제가 되어 버리니….”
—원래 기독교 집안입니까.
“네. 한때 선교사로 나가려 했던 적도 있고, 목사 수련을 받은 적도 있어요. 지금은 특정 종교는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주체사상에는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까.
“제가 1990년대에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임마뉴엘신학대를 나왔는데, 사회복음(Social Gospel)을 강조하는 대학이었어요. 자유주의 신학(神學)이면서 사회개혁을 강조하는 리버럴한 성향이 강한 곳이었어요.
그런 지적 배경 아래서 민중신학, 토착신앙 같은데 관심을 갖게 되면서 북한에 대한 관심도 생겼어요. ‘북한 주민의 99%가 신봉하는 주체철학에 대해 종교적·신학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 거죠.”
—본인의 이념으로 주체사상을 받아들인 건 아니라는 얘긴가요.
“네. 북한에 대한 저의 관심은 이념적인 게 아니라 신학적·종교적인 것이었어요. 그런데 한국에 오면서 그게 이념적 논쟁으로 전환되니, 당혹스럽네요. 솔직히 기자님이 보낸 질문들을 보고서도 충격을 받았어요.”
—그 얘기를 들으니 10여 년 전 종교 관련 외국사이트에서 북한의 ‘주체교(主體敎)’를 인구 기준으로 세계 10위의 종교로 꼽은 것을 본 기억이 나네요.
“외국 종교 교과서에 문선명·김일성 등장”
“맞아요. 외국의 종교 교과서에 한국인이 두 사람 등장하는데, 하나는 문선명이고 다른 하나는 김일성이에요. 킴이즘(Kimism), 즉 주체사상에 대한 종교학 차원에서의 학술적 논의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어요. 김일성을 한반도의 신흥종교 창시자로 보는 것이죠.”
—주체사상이 종교라는 말인가요.
“주체사상을 고등종교(religion)로 보기는 어렵죠. 그러나 신학적으로 ‘정치화된 종교적 현상’ 내지 ‘정치화된 국가종교’로 해석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해요. 고등종교가 되기 전의 미개한 상태이기는 하지만, 창시자를 맹신(盲信)하고 있잖아요? 주체사상에는 일종의 종교성이 분명히 있고 종교적으로 해석 가능한 것은 사실이에요.”
—과거에 쓴 글을 보면 단순히 학문적 관심에서 주체사상을 분석한 것을 넘어서, ‘주체사상의 전도사’로 여길 만한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 아닌가요.
“어떤 부분이 그런 건가요? 과거 김일성을 예수에 비유했다고 비난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건 정말 제 의도와는 달라요. 제가 얘기하려던 것은 북한에서 김일성의 위치는 기독교에서 예수의 위치와도 같다는 것이었어요.”
—김일성은 기독교에 대해 뭐라고 말하던가요.
“김일성전집을 보면, 김일성이 자기는 기독교 반대하지 않는다, 어머니(강반석)가 시집을 와서 고통 받을 때 새벽기도 가서 위로를 받았다, 교회는 인민들의 쉼터가 될 수 있다, 다만 조선사람은 조선식으로 기독교를 믿었으면 좋겠다고 얘기하는 대목이 있더군요. 이념성을 배제하고 텍스트만 놓고 볼 때, 그런 얘기는 토착신앙의 입장에서 긍정적으로 보았습니다.”
신 교수는 북한에서 봉수교회를 방문했을 때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봉수교회에서 예배가 끝나고 난 후 관리하는 분들하고 얘기를 했어요. 그들은 ‘예수가 훌륭하다는 건 알겠다. 그러나 예수라고 하는 사람은 어찌됐건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지 우리 민족의 지도자는 아니지 않으냐. 우리는 조국을 잃었을 때 우리의 슬픔과 아픔을 이해하는 우리 민족의 지도자(김일성)가 있는데 왜 남의 지도자를 믿겠는가’라고 하더군요.
그게 토착 신학입니다. ‘김일성이 어떻게 기독론의 주체가 될 수 있나, 어떻게 김일성을 예수와 비교할 수 있나’라고 비판하면 할 말은 없어요. 그건 신앙이지 학술적인 논란은 아니잖아요?”
—미국이나 과거 역사 속에서 기독교의 행태에 대해서는 ‘현실’에 기초해서 비판하면서, 북한에 대해서는 ‘텍스트’를 바탕으로 이해하는 게 올바른 일일까요.
“과거에는 제가 텍스트에 기초해 북한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면서, 북한 체제가 인민을 억압한 부분, 북한 인권 등에 대해 충분히 비판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에요. 거기에 대해 이제는 본격적으로 비판해야 할 때가 오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어요. 이걸 ‘전향’이라고 말한다면 수용하겠습니다. 그러나 과거에 제가 ‘주체사상의 전도사’였다가, 이제 이념적으로 우파, 반공주의자가 되었다고 보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김일성大에서 영어 가르쳐
신은희 교수는 2003~2006년 세 차례 북한을 방문했다. “어떻게 북한을 방문하게 됐느냐”고 묻자, 신 교수는 “먼저 캐나다는 1994년 북한과 수교(修交)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 교수에 의하면, 캐나다의 대학들은 한국의 한국국제협력단(KOICA)처럼 북한에 들어가 영어교육 등 봉사활동을 하려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턴십 모집을 해 왔다고 한다. 기간은 보통 2주 정도. 여기에 지원하는 이들 중에는 북한에서 기독교를 선교해 보려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때는 북한측에서 ‘한국적 배경이 있는 사람보다는 백인을 원한다’고 해서 북한에 가지 못했고, 미국 심슨대 종교학과 교수가 된 후인 2003년 유엔주재 북한대표부에 방북(訪北)을 요청해 성사됐다고 한다.
신은희 교수는 2003년 3월 휴가를 이용해 열흘간 북한을 방문했다. 북한 방문자들이 의례적으로 방문하는 만경대, 김일성사적관, 모란봉, 서해갑문 등을 돌아보았고, 김일성대와 평양외대 학생들과의 영어워크숍에 참여했다고 한다. 신 교수는 “수강자 중에는 학생들 외에도 외무성 등에서 해외사업에 종사하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3월이면 굉장히 추운데 난방이 잘 안 들어왔어요. 저는 30분도 앉아 있기 힘들더군요.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눈물겹게 공부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도와주고 싶더군요.”
—학생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습니까.
“그들은 아주 실질적인 질문을 했어요. 미국에서 하는 채플이 뭐냐, 그건 왜 하느냐, 그에 대한 반응이 어떠냐, 목사는 어떻게 하나 등등. 삼위일체(三位一體) 교리를 수용하기 힘들다고도 하더군요. 사람이 어떻게 사람이면서 신(神)일 수 있느냐는 것이죠. 기독교에 대해 잘 모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물어보니, 김일성의 지시로 1989년에 김일성종합대학교에 종교학부가 만들어졌다고 하더군요.”
“북한 학생들의 해외인턴십 추진”
신 교수는 이후 북한 학생들의 ‘국제화’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회식 등에서 술이 한잔 들어간 후에 북한 사람들하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북한 내부에서만 살아왔던 국내파와 해외파의 인식이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어요. 해외 물을 먹은 사람들은 술김에 ‘솔직히 내가 밖에 안 나가고 조국에서만 살았다면 모르겠지만, 밖이 어떤지 알게 되니 조국에서 살기가 힘들더라’고 얘기해요. 북한의 미래가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전부 유학파예요.
반면에 국내파는 달라요. 한 번은 ‘북한에 지하기독교인들이 있다는데 사실이냐’고 물었더니, ‘그런 사람들이 있으면 내가 다 죽여 버리겠다’고 말하는 걸 보고 참 야만적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그나마 북한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사람은 해외파라고 생각하고, 그런 사람들을 길러 내고 돕는 게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신 교수는 이를 위해 북한 학생들을 위한 인턴십을 추진하기도 했다고 한다.
“남북한 대학과 미국 대학이 서로 교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북한 학생들이 해외로 나와서 외국 학생들과 대화하고, 대학도서관에만 가 봐도 생각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자기들이 얼마나 편협한 사고(思考)를 하고 있었는지 깨달으면, 나중에 북한으로 돌아가서 고위 간부가 됐을 때 자기들이 어떤 정책을 써야 번영할 수 있는지 배워 갈 것 아니겠어요.
저를 담당했던 참사관에게 ‘북한 학생들을 위한 글로벌 인턴십을 만들면, 학생들이 해외로 나올 수 있느냐’고 했더니 ‘나올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런 인턴십을 추진해 봤습니까.
“노무현 정부 시절이었는데, 통일부에 얘기하니 반응이 우호적이었어요. 남북경협기금을 쓸 수 있도록 평양외대에서 공식적인 요청서를 받아 오라고 하더군요.”
“美帝 말을 배우기 위해 손 벌리기는 곤란”
—어떻게 됐습니까.
“평양외대 학과장에게 그 얘길 했더니 총화(總和·논의)를 해 보겠다고 하더군요. 나중에 말하기를 ‘뜻은 고맙지만 인민들 먹이고 입히기 위해서 남(南)에 손을 벌리는 것은 할 수 있겠는데, 미제(美帝)의 말을 배우기 위해서까지 손을 벌리는 것은 자존심이 상해서 못하겠다. 그런 공문(公文) 없이 남에서 선(先) 지원해 주면 나중에 감사편지를 보내겠다’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물 건너 갔구나’ 싶더군요.”
—북한의 변화, 특히 위로부터의 변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까.
“북한의 상위 1%는 지금 북한이 어떤 상황인지 다 안다고 생각해요. 모르는 것은 인민들이죠.
개성 인근에서 북한 주민을 만났는데 ‘미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어디 어디 가 보았느냐’고 물어요. ‘김일성종합대학에 갔었다’고 하니, ‘아, 세계 최고의 대학 아닙니까’라고 해요. 김일성대 교수들은 도서관을 보자고 해도 마다해요. 보여줄 게 없다는 것이죠. 결국 북한의 변화는 위에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급격한 변화는 어려워도, 상위 1%의 특권이 크게 훼손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점진적인 개혁은 가능하다고 봐요.”
—첫 번째 방북 이후 따로 주체사상을 연구했습니까.
“2003년 북한을 처음 방문하기 전에 북한 유엔대표부 사람들이 책을 몇 권 주었습니다. 북한에 다녀온 후에는 그 사람들이 뭘 믿는지 파악해야겠다는 생각에서 미국 캘리포니아의 북한 관련 서점인 고려서점을 통해 김일성전집 등을 사서 읽기 시작했어요. 2003년부터 3년 정도는 아주 열심히 공부했어요.”
—주체사상을 연구하니 어떻던가요.
“사회정치생명체론이 가장 흥미로웠어요. 어느 사회나 공동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어요. 유교사회에서도 공동체의 조화와 균형을 강조하죠. 당과 수령(首領)과 인민이 하나가 돼서 생명체를 구성하고 인민은 생물학적인 생명체가 아니라 정치적인 공공선(公共善)을 향한 존재라는 주장은 흥미로워요.”
—나는 사회정치생명체론에 가장 거부감이 듭니다. 인민에게 정치적 생명을 부여해 주는 존재가 수령이라는 것인데, 그 부분이 싫습니다.
“저도 북한에서 주체철학자들과 논쟁하면서 그 부분을 지적했어요. 그들은 ‘수령이 아버지고, 당이 어머니고, 인민이 자녀다. 그런데 세상의 어떤 부모가 자녀에게 나쁜 것을 주겠느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뭐라고 했습니까.
“저는 ‘왜 인민이 자녀인가. 인민의 주체성을 담보해 주는 주체사상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힘의 역전(逆轉)현상이 일어나야 한다. 인민이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수령과 당이 희생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렇지 않다면 1%의 사회다. 당신들은 특권을 누리면서 인민은 왜 통제하나. 말이 안 된다’고 했죠.”
—북한에서는 그 ‘힘의 역전현상’이 불가능하다는 게 문제죠.
“제 비판의 마지막도 그거였어요. ‘주체철학이 인민철학으로 거듭나야 된다. 그러면 세계철학계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다. 하지만 상위 1%가 점유하는 지금의 주체철학은 전제(專制)철학이다’.”
“봉수교회 목사는 당원”
—봉수교회에 가 보았다고 했죠. 봉수교회에 대해 선전물에 불과하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거기서 영성(靈性)을 느꼈다는 사람도 있던데요.
“저는 상위 1%가 모든 것을 장악한 통제사회에서 저 정도라도 시작하는 것 자체가 고맙다고 느꼈어요. 성가대를 비롯해서 이것저것 흉내를 내서 하려는 것을 보면서 불교식으로 말하면 연민(憐憫)의 마음을 느꼈어요. 봉수교회가 일종의 외화벌이 종교단체인 것은 틀림없어요. 이곳 사람들 기준으로 보면 마땅치 않겠지만, 그렇게 시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면 변화가 있을 것이고, 나중에는 기독교를 좋아해서 선택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종교학자의 입장에서 볼 때, 봉수교회의 목사들, 거기 나오는 신자들을 ‘종교인’이라고 할 수 있다고 봅니까.
“‘정치적 종교인’이라고 봐요. 외형적으로는 종교인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 사람들의 내면을 모르니…. 그 사람들의 설교나 얘기를 들어 보면 그들에게는 종교가 정치보다 상위개념이 될 수는 없어요. 설교하는 것을 들으면, 민족주의, 애국주의를 얘기하다가 결국은 선군(先軍)주의로 끝내요.
봉수교회 목사 얘기로는 자신의 당내 서열이 상당히 높다고 하더군요. 외국에서 고위층이 오면 찾는 곳이다 보니, 그들을 상대하려면 그래야 한다는 거죠. 신학을 공부하긴 했지만, 당원이라는 것이죠. 당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지 않으면, 봉수교회 목사 자리를 맡을 수 없다고 하더군요.
장충성당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사제(司祭)가 없어요. 북한에서는 로마교황(敎皇)이 수령보다 상위(上位)개념이 아니니, 로마교황의 서품을 받은 사제는 있을 수 없는 거죠. 하지만 교회에서 종교적 의례(儀禮)가 이루어지는데, 그걸 종교라고 하지 않을 수도 없어요.”
“농민들은 100% 주체사상 體化”
—종교적인 의례가 있으면, 그걸 종교로 봅니까.
“종교학에서는 종교의 요소로 교리(敎理), 의례, 사제를 꼽아요. 종교학적 관점에서 보면, 북한의 교회는 그런 점에서 보면 외형적으로는 그 종교성을 부인하기는 힘들어요. 그러나 보편적 종교의 자율성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종교는 아닌 것이 맞아요.”
—교회의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오피셜(official)하다고 할까요, 무척 차분해요. 한국 교회처럼 ‘주여!’ ‘아멘!’이라고 소리치거나 격렬하게 몸짓하는 것은 없어요. 그래도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뭔가 진지하게 간구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어요.”
—북한 사람들이 종교로서 주체사상을 얼마나 체화(體化)하고 있다고 봅니까.
“계층에 따라 다르다고 봅니다. 간부들은 북한정권이 붕괴해도 잘 먹고 잘살 수 있는 사람들이에요. 이들은 정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어요. 주체사상을 체화한 정도가 낮다는 얘기입니다.
반면에 일반 인민들, 특히 지방 농민들은 100% 주체사상을 체화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개안(開眼)수술을 받아 눈을 뜨게 된 북한 사람들의 반응을 보도한 적이 있어요. 안막(眼膜)을 살짝 벗겨내는 간단한 수술인데, 수천 명이 앉아 있는 곳에서 ‘눈이 보인다. 아버지 수령동지의 얼굴을 볼 수 있게 되어서 감사하다’고 절을 하고…. 그걸 보니 ‘이건 아니다. 어떻게 인간을 이렇게 만들어 놓나’ 싶었어요.
금수산기념궁전에 가서 보면, 주민들이 정말 ‘대원수님’ 그러면서 울어요. 처음에는 쇼라고 생각했는데, 진짜였어요. 지난 60년간 해 온 작업이 내재화되어서, 주민들이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 것이죠. 그런 생각이 종교적 신념으로 자리 잡고 있는데, 이명박 대통령 시절의 ‘비핵개방3000’ 같은 정책으로 무너뜨릴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선택의 자유 필요”
—전에 기독교 근본주의의 교조주의적 측면을 비판하면서 ‘북한 주체사상가들이 훨씬 다원주의적(多元主義的)’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지요.
“북한 주체사상가들의 얘기로는, ‘주체사상을 믿는 사람들은 김일성한테 구원 받고 기독교 믿는 사람은 예수한테 구원 받는 거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김일성 믿고 구원 받으라고 강조하지 않는다. 그런데 기독교 신자들은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믿으라고 강요하지 않나’라고 하더군요. 그들은 ‘우리는 획일화된 진리를 갖고 있지만, 진리 자체는 다원화될 수 있다고 본다’는 주장이었어요.”
—김일성 유일사상 10대원칙 자체가 ‘나 이외의 다른 신(神)을 섬기지 말라’는 것 아닙니까. 탈북자들이 워낙 많아지면서 탈북자들에 대해 전보다는 덜 엄격하게 대하면서도 중국에 있는 동안 기독교를 접한 탈북자들은 정치범으로 다루는 게 북한입니다. 그런데도 ‘다원주의’라고 할 수 있을까요.
“분명히 북한에 우리가 얘기하는 의미에서 종교의 다원성은 없어요. 그건 멀었어요. 자기들(당 간부들)은 김일성을 믿고 구원받는다고 해도, 인민들에게는 자유권을 줘야 합니다. 인민들에게 ‘주체교’밖에 모르게 만들어 놓고, 그것을 믿으라고 하면 그건 진정한 선택이 아니죠. 다른 여러 종교와 ‘주체교’ 중에서 인민들이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래도 ‘주체교’를 선택한다면 오케이지만, 그걸 선택하지 않는다고 핍박한다면 문제가 있다는 뜻이에요.”
—북한에서 인민들에게 그런 선택권을 주는 것이 가능할까요.
“당분간 힘들다고 봐요. 그건 정치적으로 정말 자유로워질 때나 가능한 얘기겠죠.”
“북한 인권 비판했다”
—북한 사람들과 인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이 있습니까.
“북한 주체학자들과 얘기해 보면, 자기들은 1980년대에야 법철학적 용어로 ‘인권’에 대해 처음 들어보았다고 하더군요. 자기들은 사회주의 제도 아래서 인권이 보장되고 있으며 서구(西歐)의 천부인권(天賦人權) 같은 개념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런 인권보다는 국권(國權), 민족자결권을 포함한 개념으로서의 인권 개념을 생각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에 대해 비판해 본 적은 없습니까.
“‘그렇다면 북핵(北核)을 만들면서 인민들 굶어 죽이는 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반론을 폈어요. 그러면 ‘우리는 생존, 안보 차원에서 피눈물 어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며 감성적으로 호소하더군요. 그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내가 수령이면 한 끼만 먹으며 가난하게 살 거다. 당신들은 잘 먹고 잘살면서 인민들에게만 희생하라고 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요.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기준에서 제기하는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북한도 반드시 반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식이 굶어죽어 가는데 부모가 총칼만 들고 앉아 있으면 되나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북한이 달라져야 합니다.”
신은희 교수는 특히 계급 없는 사회라는 북한이 실은 철저한 계급사회라는 점을 비판했다.
“북한을 방문했을 때, 운전기사와 겸상을 하면 밥을 잘 못 먹어요. 그들은 따로 먹는 것이죠. 우리보다 비루한 음식을. 공공건물에 들어가면 수위가 달려와 굽실거리며 인사를 하는데, 간부들이 그들을 대하는 게 꼭 우리나라에서 재벌회장이 수위에게 하는 것과 똑같아요. 사회주의라고 하면서 그렇게 인민들을 노예화하는 건 말이 안 되죠.”
—과거에 쓴 글에서는 그런 부분이 없었잖습니까.
“그때는 북한 사람들과 친분을 맺어야 했으니까…. 내가 인권 운운하면 북한 비자가 안 나오니까요. 나는 계속 북한을 방문하면서, 학생들과 만나서 가르치고 싶었어요.”
신은희 교수와 북한과의 밀월은 2006년 방북 때, 분주소(파출소) 체험을 하면서 끝났다. 《중앙일보》 보도에 의하면 이것이 그의 ‘전향’의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신 교수는 “그 사건 하나로 생각이 바뀌었다고 하긴 어렵지만, 한 계기가 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분주소에서의 체험
“세 번째 북한에 갔을 때 평양호텔에서 묵었어요. 마침 조총련계 학생들이 와 있었는데, 나를 담당하던 안내원은 그쪽에 친구가 있어서 그들과 어울리고 싶어했어요. 호텔에서 친구들하고 커피를 마시면서 수다를 떠느라고 정신이 없더라고요. ‘혼자서 대동강을 산책하고 오겠다’고 했더니 좋아해요. 세 번째 방문이다 보니 대동강 산책 정도는 혼자서 할 정도가 됐죠.
연광정 근처 벤치에서 다이어리에 소감 등을 메모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날이 어두워지더군요. 서둘러 자리에 일어나 호텔로 뛰어가다 보니 다이어리를 두고 온 거예요. 당황해서 다시 돌아갔는데, 안 보이더군요. 앞에 젊은 남녀가 있어서 ‘여기 있던 다이어리 못 보았느냐. 어떻게 해야 찾을 수 있겠느냐’고 물어봤어요. 두 사람은 나를 분주소(파출소)로 데리고 갔어요. 나를 도와주려고 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외부인 접촉’으로 신고하려고 한 거였어요.
키가 작은 군인이 나와서 나를 세워 두고, 그 젊은이들을 상대로 조서를 꾸미더군요. 태도가 무척 강압적이었어요. ‘내일 너희들 집을 방문할 것’이라고 하는데, 두 사람은 울상이었어요. 조사를 마치고 나가는 그들에게 ‘나 때문에 미안하다’고 했더니, ‘일 없습니다’라면서 서둘러 나가더군요.
지하실로 끌려갔는데 주민들이 앉아 있었어요. 사상범인지 뭔지는 모르겠는데 공포에 질려 있더군요. 끝에 있는 방에 밀어넣고 빗장 문을 닫았는데,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어요.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빛도 창문도 없는 희미한 등불 아래서 앉아 있으려니 별 생각이 다 들었어요. ‘여기서 정말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그 적막감.
같은 날 심문을 하는데 ‘다이어리 안에 뭐가 있냐’고 묻더군요. ‘전화번호랑 필요한 메모가 있다’고 했더니, ‘암호로구만’ 그러는 거예요. 제 얼굴 바로 앞으로 자기 머리를 들이밀면서 ‘그렇게 혼자 조국 돌아다니면 뭔가 캐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우리 조국이 그렇게 간단치 않다’고 소리를 지르는데, 정나미가 떨어지더군요. ‘정치적으로 나를 이용한 것 아닌가’ ‘이런 사회에서는 아무리 좋은 얘기를 나누고 그래도 씨도 안 먹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래 열흘 일정으로 들어갔는데, 그런 일을 당하고 보니, 더 있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몸이 안 좋다는 이유를 대고 일주일 만에 서둘러 나왔어요. 그 후 다시는 북한에 가지도 않았고, 주체사상에 대한 관심도 접었어요.”
“한 번도 운동권에 몸 담았던 적 없다”
2008년 신은희 교수는 경희대 후마니타스대(교양학부) 종교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신 교수는 “경희대에서 영어로 강의할 사람을 뽑는데, 지원해서 됐다”고 말했다.
—주체사상을 교단에서 가르친 적이 있습니까.
“미국 심슨대에서는 현대사회 신흥종교의 한 현상으로, 학문적 측면에서 주체사상을 언급한 적은 있습니다. 그때도 저의 신앙이나 이념으로서 가르친 것은 아니었습니다. 경희대에 오고 난 후에는 일절 그런 얘기를 안 했어요. 상황적 맥락을 고려해야 하니….”
—국내에 들어와서 주사파(主思派)와 접촉해 본 적이 있습니까.
“없어요. 그 사람들은 주체사상을 받아들여 이념투쟁을 한 사람들이지만, 저는 한 번도 조직이나 운동권에서 활동한 적이 없어요. 그래서 ‘전향’이라는 말이 잘못됐다는 거예요.”
—국내 주사파와 만나 보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까.
“어떤 사람들이 주사파인지는 모르지만, 있다면 얘기해 보고는 싶어요. 뭣 때문에 (한국 사람들이)그렇게 싫어하는지도 궁금하고…. 누가 있나요, 주체철학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여기서 기자는 국내 주사파의 흐름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두 가지 흐름의 주사파가 있습니다. 하나는 북한의 통치이념인 주체사상을 자신의 정치이념으로 받아들인 종북(從北)세력입니다. 다른 하나는 황장엽(黃長燁)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주장하는 ‘인간중심의 주체철학’의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김일성-김정일이 황장엽 전 비서가 만든 ‘인간중심의 주체철학’을 자신들의 독재를 위한 통치이데올로기로 변질시켰다고 비판하면서, 황 전 비서의 ‘주체철학’을 추종합니다. 1980년대 주사파의 대부(代父)였다가 전향해서 북한민주화운동 및 북한인권운동을 벌이고 있는 김영환씨 등이 그들이죠. 이런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얼핏 들어 보기는 했어요. 그런데 황장엽 전 비서의 ‘인간중심의 주체철학’이라는 것은 남으로 내려와서 각색된 이론을 말한 것 아닌가요?”
—각색된 이론이라면?
“사실 황장엽 비서가 망명해 온 것은 북에서 정치투쟁에서 졌기 때문 아닌가요. 북한권력 내부에 있을 때는 김일성-김정일에게 통치이데올로기를 제공한 게 그분 아닌가요. 그러다가 환경이 바뀌자 목숨의 위협을 느껴 내려왔고, 내려와서 살려니 자신의 주장을 그런 식으로 구분하게 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엽적 관점에 대해 반성”
—다시 묻겠습니다. 그래도 국내 주사파들을 만나 보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까.
“지금 북한의 현실을 보고도 아직 그것을 찬양하는 주사파가 있다면 만나서 얘기해 보고 싶어요. 그것을 어떻게 정당화하는지 보고 싶네요.”
—김영환씨 같은 분하고도 만나 볼 생각이 있나요.
“네.”
—얘기를 들어 보니 ‘전향’이라는 잣대로 평가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인식의 변화’라고 봐야 할까요.
“학자에게 인식의 변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죠. 인식의 변화가 없는 게 더 폐쇄적인 자세 아닌가요. 그걸 이념의 잣대를 가지고 우파에서 좌파로의 전향으로 보는 것은 편협한 생각 같아요. 이념을 잣대로 모든 걸 평가하는 이념의 시대는 끝났다고 생각해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우주적 전향’이라는 표현을 쓴 데 대해서도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간세계를 폭넓게 조망했을 때 인간에게는 거룩한 생명의 존엄성이 존재한다고 봐요. 그런 성찰이 깊어지면서 북한 사회를 바라보는 내 관점이 지엽적이었다는 반성, 인민들이 고통당하는 모습을 보고 침묵하지 않고 지식인으로서 할 말을 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걸 그렇게 표현한 것이었어요.”
—공안기관에서는 신 교수님을 ‘거물’로 보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저를 그렇게 본다는 게 의외였어요. 아직도 한국을 알아 가는 과정에 있지만, 한국에서는 아직도 지식인에 대한 사상검증 같은 게 작동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런 게 아니라 과거에 워낙 활발하게 주체사상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글을 썼기 때문에 주목을 받게 된 것이겠죠.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그런 쪽으로 묘사가 되어 왔으니…. 운동권에서도 알게 모르게 제 책을 많이 보았다고 하더군요. 그동안 주체사상에는 관심을 끊고 지냈는데, 이번 일로 다시 관심이 생긴 셈이니, 이게 운명인가….”
—북한 인권 등에 대해 달라진 인식을 앞으로 신문 칼럼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표명할 생각이 있습니까.
“네. 기회만 주어진다면, 얼마든지요.”⊙
<북조국(북한)에서 수령과 당과 인민은 하나다. … 주체사상에서 수령, 당, 인민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주체사상에서 김일성 대신 하나님을 넣으면 꼭 들어맞는다고까지 할 수 있을 것이다.>
<주체사상을 종교적으로 내면화한 것을 주체영성…. 주체영성은 북조선의 인민대중들 속에 깊이 나타나고 있으며, 그 종교적 현상은 기독인의 절대적인 예수 신봉과 매우 흡사하다.>
<미국은 기독교의 문화기준으로 북을 ‘종교탄압국’으로 지정해 온갖 경제제재를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미국의 종교테러리즘은 어느 누구도 제재할 길이 없다. 북이 정말 ‘종교탄압국’이라면, 미국은 ‘종교테러국’이 아닐까?>
솔직히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뭐하는 사람인가 하고 보니 캐나다 국적의 해외동포로 ‘미국 심슨대 종교철학부 교수’라고 했다. 그의 이름 앞에는 ‘주체사상(主體思想)의 전도사(傳道師)’라는 말이 따라다녔다.
‘轉向’이라는 말에 거부감 강해
지난 8월 1일 《중앙일보》에 그 신은희 교수가 ‘전향(轉向)’했다는 기사가 났다. 이 기사를 보고 신 교수가 2008년 국내에 들어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교양학부)에서 교수로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기사에서 그는 “북한은 특권을 가진 상위 1% 중심의 사회”라면서 “북한에 대한 희망이 10년 만에 절망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그의 인터뷰 기사는 논란이 됐다. 우선 보수우파 쪽에서도 그의 ‘전향’을 흔쾌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보수논객인 조영환 《올인코리아》 편집인은 “신은희 교수는 자신의 교만과 기만을 학생들에게 주입시켜 온 죄악을 저지른 것”이라면서 “중앙일보가 전한 신은희는 아직도 절반만 뉘우쳤지, 그는 여전히 악마의 주술(민중신학)에 취한 상태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그런가 하면 《중앙일보》 기사가 나가기 전후해서 신은희 교수와 접촉했던 이들은 “신 교수가 상당히 심적(心的)으로 힘들어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은희 교수의 현재 심경을 듣기 위해 인터뷰를 요청했다. 기자의 전화를 받은 신 교수는 우선 ‘주체사상의 전도사’와 ‘전향’이라는 말에 대해 심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나는 과거에 종교학자로서 주체사상을 종교적으로 해석한 것이지 ‘전도(傳道)’한 것은 아니다. 지금 ‘인식의 변화’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걸 좌파(左派)에서 우파(右派)로의 ‘전향’으로 해석하지는 말아 달라”는 취지였다. ‘종교학자 신은희 교수의 인식의 변화’에 대해 듣기 위한 것이라는 전제 아래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학자로서의 주장이었을 뿐”
방송 출연을 하기로 했다는 8월 8일. 서울 태평로에 있는 《월간조선》 사무실에서 신은희 교수를 만났다.
—방송은 잘하고 왔습니까.
“못했어요. 방송사에서 이미 ‘주체사상의 전도사 신은희가 전향한 이유는?’이라는 제목을 정해 놓고 있더군요. ‘미안하지만 그런 제목으로는 할 수 없다’고 했어요.”
—‘주체사상의 전도사’라는 표현이 어디서 나온 것입니까.
“《통일뉴스》에서 처음 저를 소개하면서 재미있게 표현한다고 ‘주체사상의 전도사?’라고 했어요. 나중에 다르게 생각하는 분들이 물음표를 떼고 사용했어요. 이번에 《중앙일보》 기사에서 완전히 저를 ‘주체사상의 전도사’로 불렸던 것처럼 써서 굉장히 난감하고 황당해요.”
—그럼 아니란 얘기인가요? 교수님의 글을 보고 그런 느낌을 받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솔직히 처음에 북한 입장에서 쓴 글이 상당히 있기는 해요. 학자로서 자기 학설을 얘기하고, 소개하고, 글로 쓸 수는 있는 것 아닌가요? 그걸 마치 선교사들이 들고 복음 전도하듯 전도했다고 하는 것은 다르죠.”
신 교수는 “《중앙일보》 기사가 나간 후 다양한 비난이 들어오는 등 여파가 심하다”고 말했다.
“‘주체사상의 전도사’라는 표현이 제일 기분 나빴어요. 주변 사람들이 너무 놀라면서 저를 그렇게 받아들이는 게 당황스러웠어요. 가까이 지내던 교수가 나를 피하고… 서운했어요.”
—전에 쓴 글을 보면 기독교 근본주의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더군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근본주의 성향이 강하죠.
“그런 것에 대해 저는 굉장히 비판적이에요. 전에 쓴 방북기(訪北記)에도 주체근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분명히 들어 있어요. 글에서 그 양(量)이 많지는 않아도 글마다 그런 비판이 들어 있는데, 친북적(親北的)인 내용만 화제가 되어 버리니….”
—원래 기독교 집안입니까.
“네. 한때 선교사로 나가려 했던 적도 있고, 목사 수련을 받은 적도 있어요. 지금은 특정 종교는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주체사상에는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까.
“제가 1990년대에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임마뉴엘신학대를 나왔는데, 사회복음(Social Gospel)을 강조하는 대학이었어요. 자유주의 신학(神學)이면서 사회개혁을 강조하는 리버럴한 성향이 강한 곳이었어요.
그런 지적 배경 아래서 민중신학, 토착신앙 같은데 관심을 갖게 되면서 북한에 대한 관심도 생겼어요. ‘북한 주민의 99%가 신봉하는 주체철학에 대해 종교적·신학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 거죠.”
—본인의 이념으로 주체사상을 받아들인 건 아니라는 얘긴가요.
“네. 북한에 대한 저의 관심은 이념적인 게 아니라 신학적·종교적인 것이었어요. 그런데 한국에 오면서 그게 이념적 논쟁으로 전환되니, 당혹스럽네요. 솔직히 기자님이 보낸 질문들을 보고서도 충격을 받았어요.”
—그 얘기를 들으니 10여 년 전 종교 관련 외국사이트에서 북한의 ‘주체교(主體敎)’를 인구 기준으로 세계 10위의 종교로 꼽은 것을 본 기억이 나네요.
“외국 종교 교과서에 문선명·김일성 등장”
 |
| 김일성종합대학 강의실의 김일성이 앉았던 좌석을 하얀천으로 덮어 성별(聖別)해 놓았다. 대학 박물관에 김일성이 사용했던 밥그릇은 유물로 전시되어 있다. |
—주체사상이 종교라는 말인가요.
“주체사상을 고등종교(religion)로 보기는 어렵죠. 그러나 신학적으로 ‘정치화된 종교적 현상’ 내지 ‘정치화된 국가종교’로 해석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해요. 고등종교가 되기 전의 미개한 상태이기는 하지만, 창시자를 맹신(盲信)하고 있잖아요? 주체사상에는 일종의 종교성이 분명히 있고 종교적으로 해석 가능한 것은 사실이에요.”
—과거에 쓴 글을 보면 단순히 학문적 관심에서 주체사상을 분석한 것을 넘어서, ‘주체사상의 전도사’로 여길 만한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 아닌가요.
“어떤 부분이 그런 건가요? 과거 김일성을 예수에 비유했다고 비난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건 정말 제 의도와는 달라요. 제가 얘기하려던 것은 북한에서 김일성의 위치는 기독교에서 예수의 위치와도 같다는 것이었어요.”
—김일성은 기독교에 대해 뭐라고 말하던가요.
“김일성전집을 보면, 김일성이 자기는 기독교 반대하지 않는다, 어머니(강반석)가 시집을 와서 고통 받을 때 새벽기도 가서 위로를 받았다, 교회는 인민들의 쉼터가 될 수 있다, 다만 조선사람은 조선식으로 기독교를 믿었으면 좋겠다고 얘기하는 대목이 있더군요. 이념성을 배제하고 텍스트만 놓고 볼 때, 그런 얘기는 토착신앙의 입장에서 긍정적으로 보았습니다.”
신 교수는 북한에서 봉수교회를 방문했을 때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봉수교회에서 예배가 끝나고 난 후 관리하는 분들하고 얘기를 했어요. 그들은 ‘예수가 훌륭하다는 건 알겠다. 그러나 예수라고 하는 사람은 어찌됐건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지 우리 민족의 지도자는 아니지 않으냐. 우리는 조국을 잃었을 때 우리의 슬픔과 아픔을 이해하는 우리 민족의 지도자(김일성)가 있는데 왜 남의 지도자를 믿겠는가’라고 하더군요.
그게 토착 신학입니다. ‘김일성이 어떻게 기독론의 주체가 될 수 있나, 어떻게 김일성을 예수와 비교할 수 있나’라고 비판하면 할 말은 없어요. 그건 신앙이지 학술적인 논란은 아니잖아요?”
—미국이나 과거 역사 속에서 기독교의 행태에 대해서는 ‘현실’에 기초해서 비판하면서, 북한에 대해서는 ‘텍스트’를 바탕으로 이해하는 게 올바른 일일까요.
“과거에는 제가 텍스트에 기초해 북한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면서, 북한 체제가 인민을 억압한 부분, 북한 인권 등에 대해 충분히 비판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에요. 거기에 대해 이제는 본격적으로 비판해야 할 때가 오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어요. 이걸 ‘전향’이라고 말한다면 수용하겠습니다. 그러나 과거에 제가 ‘주체사상의 전도사’였다가, 이제 이념적으로 우파, 반공주의자가 되었다고 보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김일성大에서 영어 가르쳐
신은희 교수는 2003~2006년 세 차례 북한을 방문했다. “어떻게 북한을 방문하게 됐느냐”고 묻자, 신 교수는 “먼저 캐나다는 1994년 북한과 수교(修交)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 교수에 의하면, 캐나다의 대학들은 한국의 한국국제협력단(KOICA)처럼 북한에 들어가 영어교육 등 봉사활동을 하려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턴십 모집을 해 왔다고 한다. 기간은 보통 2주 정도. 여기에 지원하는 이들 중에는 북한에서 기독교를 선교해 보려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때는 북한측에서 ‘한국적 배경이 있는 사람보다는 백인을 원한다’고 해서 북한에 가지 못했고, 미국 심슨대 종교학과 교수가 된 후인 2003년 유엔주재 북한대표부에 방북(訪北)을 요청해 성사됐다고 한다.
신은희 교수는 2003년 3월 휴가를 이용해 열흘간 북한을 방문했다. 북한 방문자들이 의례적으로 방문하는 만경대, 김일성사적관, 모란봉, 서해갑문 등을 돌아보았고, 김일성대와 평양외대 학생들과의 영어워크숍에 참여했다고 한다. 신 교수는 “수강자 중에는 학생들 외에도 외무성 등에서 해외사업에 종사하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3월이면 굉장히 추운데 난방이 잘 안 들어왔어요. 저는 30분도 앉아 있기 힘들더군요.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눈물겹게 공부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도와주고 싶더군요.”
—학생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습니까.
“그들은 아주 실질적인 질문을 했어요. 미국에서 하는 채플이 뭐냐, 그건 왜 하느냐, 그에 대한 반응이 어떠냐, 목사는 어떻게 하나 등등. 삼위일체(三位一體) 교리를 수용하기 힘들다고도 하더군요. 사람이 어떻게 사람이면서 신(神)일 수 있느냐는 것이죠. 기독교에 대해 잘 모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물어보니, 김일성의 지시로 1989년에 김일성종합대학교에 종교학부가 만들어졌다고 하더군요.”
“북한 학생들의 해외인턴십 추진”
 |
| 평양외국어대학교에서 영어강의 하는 신은희 교수. 평양외대 학생들은 김일성대 학생들에 비해 리버럴해 보였다. |
“회식 등에서 술이 한잔 들어간 후에 북한 사람들하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북한 내부에서만 살아왔던 국내파와 해외파의 인식이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어요. 해외 물을 먹은 사람들은 술김에 ‘솔직히 내가 밖에 안 나가고 조국에서만 살았다면 모르겠지만, 밖이 어떤지 알게 되니 조국에서 살기가 힘들더라’고 얘기해요. 북한의 미래가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전부 유학파예요.
반면에 국내파는 달라요. 한 번은 ‘북한에 지하기독교인들이 있다는데 사실이냐’고 물었더니, ‘그런 사람들이 있으면 내가 다 죽여 버리겠다’고 말하는 걸 보고 참 야만적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어요.
그나마 북한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사람은 해외파라고 생각하고, 그런 사람들을 길러 내고 돕는 게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신 교수는 이를 위해 북한 학생들을 위한 인턴십을 추진하기도 했다고 한다.
“남북한 대학과 미국 대학이 서로 교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북한 학생들이 해외로 나와서 외국 학생들과 대화하고, 대학도서관에만 가 봐도 생각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자기들이 얼마나 편협한 사고(思考)를 하고 있었는지 깨달으면, 나중에 북한으로 돌아가서 고위 간부가 됐을 때 자기들이 어떤 정책을 써야 번영할 수 있는지 배워 갈 것 아니겠어요.
저를 담당했던 참사관에게 ‘북한 학생들을 위한 글로벌 인턴십을 만들면, 학생들이 해외로 나올 수 있느냐’고 했더니 ‘나올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런 인턴십을 추진해 봤습니까.
“노무현 정부 시절이었는데, 통일부에 얘기하니 반응이 우호적이었어요. 남북경협기금을 쓸 수 있도록 평양외대에서 공식적인 요청서를 받아 오라고 하더군요.”
“美帝 말을 배우기 위해 손 벌리기는 곤란”
—어떻게 됐습니까.
“평양외대 학과장에게 그 얘길 했더니 총화(總和·논의)를 해 보겠다고 하더군요. 나중에 말하기를 ‘뜻은 고맙지만 인민들 먹이고 입히기 위해서 남(南)에 손을 벌리는 것은 할 수 있겠는데, 미제(美帝)의 말을 배우기 위해서까지 손을 벌리는 것은 자존심이 상해서 못하겠다. 그런 공문(公文) 없이 남에서 선(先) 지원해 주면 나중에 감사편지를 보내겠다’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물 건너 갔구나’ 싶더군요.”
—북한의 변화, 특히 위로부터의 변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까.
“북한의 상위 1%는 지금 북한이 어떤 상황인지 다 안다고 생각해요. 모르는 것은 인민들이죠.
개성 인근에서 북한 주민을 만났는데 ‘미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어디 어디 가 보았느냐’고 물어요. ‘김일성종합대학에 갔었다’고 하니, ‘아, 세계 최고의 대학 아닙니까’라고 해요. 김일성대 교수들은 도서관을 보자고 해도 마다해요. 보여줄 게 없다는 것이죠. 결국 북한의 변화는 위에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급격한 변화는 어려워도, 상위 1%의 특권이 크게 훼손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점진적인 개혁은 가능하다고 봐요.”
—첫 번째 방북 이후 따로 주체사상을 연구했습니까.
“2003년 북한을 처음 방문하기 전에 북한 유엔대표부 사람들이 책을 몇 권 주었습니다. 북한에 다녀온 후에는 그 사람들이 뭘 믿는지 파악해야겠다는 생각에서 미국 캘리포니아의 북한 관련 서점인 고려서점을 통해 김일성전집 등을 사서 읽기 시작했어요. 2003년부터 3년 정도는 아주 열심히 공부했어요.”
—주체사상을 연구하니 어떻던가요.
“사회정치생명체론이 가장 흥미로웠어요. 어느 사회나 공동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어요. 유교사회에서도 공동체의 조화와 균형을 강조하죠. 당과 수령(首領)과 인민이 하나가 돼서 생명체를 구성하고 인민은 생물학적인 생명체가 아니라 정치적인 공공선(公共善)을 향한 존재라는 주장은 흥미로워요.”
—나는 사회정치생명체론에 가장 거부감이 듭니다. 인민에게 정치적 생명을 부여해 주는 존재가 수령이라는 것인데, 그 부분이 싫습니다.
“저도 북한에서 주체철학자들과 논쟁하면서 그 부분을 지적했어요. 그들은 ‘수령이 아버지고, 당이 어머니고, 인민이 자녀다. 그런데 세상의 어떤 부모가 자녀에게 나쁜 것을 주겠느냐’고 하더군요.”
—그래서 뭐라고 했습니까.
“저는 ‘왜 인민이 자녀인가. 인민의 주체성을 담보해 주는 주체사상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힘의 역전(逆轉)현상이 일어나야 한다. 인민이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수령과 당이 희생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렇지 않다면 1%의 사회다. 당신들은 특권을 누리면서 인민은 왜 통제하나. 말이 안 된다’고 했죠.”
—북한에서는 그 ‘힘의 역전현상’이 불가능하다는 게 문제죠.
“제 비판의 마지막도 그거였어요. ‘주체철학이 인민철학으로 거듭나야 된다. 그러면 세계철학계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다. 하지만 상위 1%가 점유하는 지금의 주체철학은 전제(專制)철학이다’.”
“봉수교회 목사는 당원”
 |
| 북한 장충성당의 관리 신부와 함께. 이곳에서는 로마교황의 사제 서품을 받지 않은 성직자들이 미사를 진행한다. |
“저는 상위 1%가 모든 것을 장악한 통제사회에서 저 정도라도 시작하는 것 자체가 고맙다고 느꼈어요. 성가대를 비롯해서 이것저것 흉내를 내서 하려는 것을 보면서 불교식으로 말하면 연민(憐憫)의 마음을 느꼈어요. 봉수교회가 일종의 외화벌이 종교단체인 것은 틀림없어요. 이곳 사람들 기준으로 보면 마땅치 않겠지만, 그렇게 시작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면 변화가 있을 것이고, 나중에는 기독교를 좋아해서 선택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종교학자의 입장에서 볼 때, 봉수교회의 목사들, 거기 나오는 신자들을 ‘종교인’이라고 할 수 있다고 봅니까.
“‘정치적 종교인’이라고 봐요. 외형적으로는 종교인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 사람들의 내면을 모르니…. 그 사람들의 설교나 얘기를 들어 보면 그들에게는 종교가 정치보다 상위개념이 될 수는 없어요. 설교하는 것을 들으면, 민족주의, 애국주의를 얘기하다가 결국은 선군(先軍)주의로 끝내요.
봉수교회 목사 얘기로는 자신의 당내 서열이 상당히 높다고 하더군요. 외국에서 고위층이 오면 찾는 곳이다 보니, 그들을 상대하려면 그래야 한다는 거죠. 신학을 공부하긴 했지만, 당원이라는 것이죠. 당에 대한 충성심이 강하지 않으면, 봉수교회 목사 자리를 맡을 수 없다고 하더군요.
장충성당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사제(司祭)가 없어요. 북한에서는 로마교황(敎皇)이 수령보다 상위(上位)개념이 아니니, 로마교황의 서품을 받은 사제는 있을 수 없는 거죠. 하지만 교회에서 종교적 의례(儀禮)가 이루어지는데, 그걸 종교라고 하지 않을 수도 없어요.”
“농민들은 100% 주체사상 體化”
—종교적인 의례가 있으면, 그걸 종교로 봅니까.
“종교학에서는 종교의 요소로 교리(敎理), 의례, 사제를 꼽아요. 종교학적 관점에서 보면, 북한의 교회는 그런 점에서 보면 외형적으로는 그 종교성을 부인하기는 힘들어요. 그러나 보편적 종교의 자율성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종교는 아닌 것이 맞아요.”
—교회의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오피셜(official)하다고 할까요, 무척 차분해요. 한국 교회처럼 ‘주여!’ ‘아멘!’이라고 소리치거나 격렬하게 몸짓하는 것은 없어요. 그래도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뭔가 진지하게 간구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어요.”
—북한 사람들이 종교로서 주체사상을 얼마나 체화(體化)하고 있다고 봅니까.
“계층에 따라 다르다고 봅니다. 간부들은 북한정권이 붕괴해도 잘 먹고 잘살 수 있는 사람들이에요. 이들은 정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어요. 주체사상을 체화한 정도가 낮다는 얘기입니다.
반면에 일반 인민들, 특히 지방 농민들은 100% 주체사상을 체화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개안(開眼)수술을 받아 눈을 뜨게 된 북한 사람들의 반응을 보도한 적이 있어요. 안막(眼膜)을 살짝 벗겨내는 간단한 수술인데, 수천 명이 앉아 있는 곳에서 ‘눈이 보인다. 아버지 수령동지의 얼굴을 볼 수 있게 되어서 감사하다’고 절을 하고…. 그걸 보니 ‘이건 아니다. 어떻게 인간을 이렇게 만들어 놓나’ 싶었어요.
금수산기념궁전에 가서 보면, 주민들이 정말 ‘대원수님’ 그러면서 울어요. 처음에는 쇼라고 생각했는데, 진짜였어요. 지난 60년간 해 온 작업이 내재화되어서, 주민들이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 것이죠. 그런 생각이 종교적 신념으로 자리 잡고 있는데, 이명박 대통령 시절의 ‘비핵개방3000’ 같은 정책으로 무너뜨릴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선택의 자유 필요”
—전에 기독교 근본주의의 교조주의적 측면을 비판하면서 ‘북한 주체사상가들이 훨씬 다원주의적(多元主義的)’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지요.
“북한 주체사상가들의 얘기로는, ‘주체사상을 믿는 사람들은 김일성한테 구원 받고 기독교 믿는 사람은 예수한테 구원 받는 거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김일성 믿고 구원 받으라고 강조하지 않는다. 그런데 기독교 신자들은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믿으라고 강요하지 않나’라고 하더군요. 그들은 ‘우리는 획일화된 진리를 갖고 있지만, 진리 자체는 다원화될 수 있다고 본다’는 주장이었어요.”
—김일성 유일사상 10대원칙 자체가 ‘나 이외의 다른 신(神)을 섬기지 말라’는 것 아닙니까. 탈북자들이 워낙 많아지면서 탈북자들에 대해 전보다는 덜 엄격하게 대하면서도 중국에 있는 동안 기독교를 접한 탈북자들은 정치범으로 다루는 게 북한입니다. 그런데도 ‘다원주의’라고 할 수 있을까요.
“분명히 북한에 우리가 얘기하는 의미에서 종교의 다원성은 없어요. 그건 멀었어요. 자기들(당 간부들)은 김일성을 믿고 구원받는다고 해도, 인민들에게는 자유권을 줘야 합니다. 인민들에게 ‘주체교’밖에 모르게 만들어 놓고, 그것을 믿으라고 하면 그건 진정한 선택이 아니죠. 다른 여러 종교와 ‘주체교’ 중에서 인민들이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래도 ‘주체교’를 선택한다면 오케이지만, 그걸 선택하지 않는다고 핍박한다면 문제가 있다는 뜻이에요.”
—북한에서 인민들에게 그런 선택권을 주는 것이 가능할까요.
“당분간 힘들다고 봐요. 그건 정치적으로 정말 자유로워질 때나 가능한 얘기겠죠.”
“북한 인권 비판했다”
—북한 사람들과 인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이 있습니까.
“북한 주체학자들과 얘기해 보면, 자기들은 1980년대에야 법철학적 용어로 ‘인권’에 대해 처음 들어보았다고 하더군요. 자기들은 사회주의 제도 아래서 인권이 보장되고 있으며 서구(西歐)의 천부인권(天賦人權) 같은 개념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런 인권보다는 국권(國權), 민족자결권을 포함한 개념으로서의 인권 개념을 생각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에 대해 비판해 본 적은 없습니까.
“‘그렇다면 북핵(北核)을 만들면서 인민들 굶어 죽이는 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반론을 폈어요. 그러면 ‘우리는 생존, 안보 차원에서 피눈물 어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며 감성적으로 호소하더군요. 그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내가 수령이면 한 끼만 먹으며 가난하게 살 거다. 당신들은 잘 먹고 잘살면서 인민들에게만 희생하라고 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요.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기준에서 제기하는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북한도 반드시 반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식이 굶어죽어 가는데 부모가 총칼만 들고 앉아 있으면 되나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북한이 달라져야 합니다.”
신은희 교수는 특히 계급 없는 사회라는 북한이 실은 철저한 계급사회라는 점을 비판했다.
“북한을 방문했을 때, 운전기사와 겸상을 하면 밥을 잘 못 먹어요. 그들은 따로 먹는 것이죠. 우리보다 비루한 음식을. 공공건물에 들어가면 수위가 달려와 굽실거리며 인사를 하는데, 간부들이 그들을 대하는 게 꼭 우리나라에서 재벌회장이 수위에게 하는 것과 똑같아요. 사회주의라고 하면서 그렇게 인민들을 노예화하는 건 말이 안 되죠.”
—과거에 쓴 글에서는 그런 부분이 없었잖습니까.
“그때는 북한 사람들과 친분을 맺어야 했으니까…. 내가 인권 운운하면 북한 비자가 안 나오니까요. 나는 계속 북한을 방문하면서, 학생들과 만나서 가르치고 싶었어요.”
신은희 교수와 북한과의 밀월은 2006년 방북 때, 분주소(파출소) 체험을 하면서 끝났다. 《중앙일보》 보도에 의하면 이것이 그의 ‘전향’의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신 교수는 “그 사건 하나로 생각이 바뀌었다고 하긴 어렵지만, 한 계기가 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분주소에서의 체험
 |
| 북한의 한 사찰에서 ‘조선식’ 승려와 함께. 북한의 종교인들은 ‘정치적 종교인’이라고 할 수 있다. |
연광정 근처 벤치에서 다이어리에 소감 등을 메모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날이 어두워지더군요. 서둘러 자리에 일어나 호텔로 뛰어가다 보니 다이어리를 두고 온 거예요. 당황해서 다시 돌아갔는데, 안 보이더군요. 앞에 젊은 남녀가 있어서 ‘여기 있던 다이어리 못 보았느냐. 어떻게 해야 찾을 수 있겠느냐’고 물어봤어요. 두 사람은 나를 분주소(파출소)로 데리고 갔어요. 나를 도와주려고 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외부인 접촉’으로 신고하려고 한 거였어요.
키가 작은 군인이 나와서 나를 세워 두고, 그 젊은이들을 상대로 조서를 꾸미더군요. 태도가 무척 강압적이었어요. ‘내일 너희들 집을 방문할 것’이라고 하는데, 두 사람은 울상이었어요. 조사를 마치고 나가는 그들에게 ‘나 때문에 미안하다’고 했더니, ‘일 없습니다’라면서 서둘러 나가더군요.
지하실로 끌려갔는데 주민들이 앉아 있었어요. 사상범인지 뭔지는 모르겠는데 공포에 질려 있더군요. 끝에 있는 방에 밀어넣고 빗장 문을 닫았는데,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어요.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빛도 창문도 없는 희미한 등불 아래서 앉아 있으려니 별 생각이 다 들었어요. ‘여기서 정말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그 적막감.
같은 날 심문을 하는데 ‘다이어리 안에 뭐가 있냐’고 묻더군요. ‘전화번호랑 필요한 메모가 있다’고 했더니, ‘암호로구만’ 그러는 거예요. 제 얼굴 바로 앞으로 자기 머리를 들이밀면서 ‘그렇게 혼자 조국 돌아다니면 뭔가 캐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우리 조국이 그렇게 간단치 않다’고 소리를 지르는데, 정나미가 떨어지더군요. ‘정치적으로 나를 이용한 것 아닌가’ ‘이런 사회에서는 아무리 좋은 얘기를 나누고 그래도 씨도 안 먹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래 열흘 일정으로 들어갔는데, 그런 일을 당하고 보니, 더 있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몸이 안 좋다는 이유를 대고 일주일 만에 서둘러 나왔어요. 그 후 다시는 북한에 가지도 않았고, 주체사상에 대한 관심도 접었어요.”
“한 번도 운동권에 몸 담았던 적 없다”
2008년 신은희 교수는 경희대 후마니타스대(교양학부) 종교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신 교수는 “경희대에서 영어로 강의할 사람을 뽑는데, 지원해서 됐다”고 말했다.
—주체사상을 교단에서 가르친 적이 있습니까.
“미국 심슨대에서는 현대사회 신흥종교의 한 현상으로, 학문적 측면에서 주체사상을 언급한 적은 있습니다. 그때도 저의 신앙이나 이념으로서 가르친 것은 아니었습니다. 경희대에 오고 난 후에는 일절 그런 얘기를 안 했어요. 상황적 맥락을 고려해야 하니….”
—국내에 들어와서 주사파(主思派)와 접촉해 본 적이 있습니까.
“없어요. 그 사람들은 주체사상을 받아들여 이념투쟁을 한 사람들이지만, 저는 한 번도 조직이나 운동권에서 활동한 적이 없어요. 그래서 ‘전향’이라는 말이 잘못됐다는 거예요.”
—국내 주사파와 만나 보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까.
“어떤 사람들이 주사파인지는 모르지만, 있다면 얘기해 보고는 싶어요. 뭣 때문에 (한국 사람들이)그렇게 싫어하는지도 궁금하고…. 누가 있나요, 주체철학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여기서 기자는 국내 주사파의 흐름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두 가지 흐름의 주사파가 있습니다. 하나는 북한의 통치이념인 주체사상을 자신의 정치이념으로 받아들인 종북(從北)세력입니다. 다른 하나는 황장엽(黃長燁)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주장하는 ‘인간중심의 주체철학’의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김일성-김정일이 황장엽 전 비서가 만든 ‘인간중심의 주체철학’을 자신들의 독재를 위한 통치이데올로기로 변질시켰다고 비판하면서, 황 전 비서의 ‘주체철학’을 추종합니다. 1980년대 주사파의 대부(代父)였다가 전향해서 북한민주화운동 및 북한인권운동을 벌이고 있는 김영환씨 등이 그들이죠. 이런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얼핏 들어 보기는 했어요. 그런데 황장엽 전 비서의 ‘인간중심의 주체철학’이라는 것은 남으로 내려와서 각색된 이론을 말한 것 아닌가요?”
—각색된 이론이라면?
“사실 황장엽 비서가 망명해 온 것은 북에서 정치투쟁에서 졌기 때문 아닌가요. 북한권력 내부에 있을 때는 김일성-김정일에게 통치이데올로기를 제공한 게 그분 아닌가요. 그러다가 환경이 바뀌자 목숨의 위협을 느껴 내려왔고, 내려와서 살려니 자신의 주장을 그런 식으로 구분하게 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엽적 관점에 대해 반성”
—다시 묻겠습니다. 그래도 국내 주사파들을 만나 보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까.
“지금 북한의 현실을 보고도 아직 그것을 찬양하는 주사파가 있다면 만나서 얘기해 보고 싶어요. 그것을 어떻게 정당화하는지 보고 싶네요.”
—김영환씨 같은 분하고도 만나 볼 생각이 있나요.
“네.”
—얘기를 들어 보니 ‘전향’이라는 잣대로 평가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인식의 변화’라고 봐야 할까요.
“학자에게 인식의 변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죠. 인식의 변화가 없는 게 더 폐쇄적인 자세 아닌가요. 그걸 이념의 잣대를 가지고 우파에서 좌파로의 전향으로 보는 것은 편협한 생각 같아요. 이념을 잣대로 모든 걸 평가하는 이념의 시대는 끝났다고 생각해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우주적 전향’이라는 표현을 쓴 데 대해서도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간세계를 폭넓게 조망했을 때 인간에게는 거룩한 생명의 존엄성이 존재한다고 봐요. 그런 성찰이 깊어지면서 북한 사회를 바라보는 내 관점이 지엽적이었다는 반성, 인민들이 고통당하는 모습을 보고 침묵하지 않고 지식인으로서 할 말을 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걸 그렇게 표현한 것이었어요.”
—공안기관에서는 신 교수님을 ‘거물’로 보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저를 그렇게 본다는 게 의외였어요. 아직도 한국을 알아 가는 과정에 있지만, 한국에서는 아직도 지식인에 대한 사상검증 같은 게 작동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런 게 아니라 과거에 워낙 활발하게 주체사상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글을 썼기 때문에 주목을 받게 된 것이겠죠.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그런 쪽으로 묘사가 되어 왔으니…. 운동권에서도 알게 모르게 제 책을 많이 보았다고 하더군요. 그동안 주체사상에는 관심을 끊고 지냈는데, 이번 일로 다시 관심이 생긴 셈이니, 이게 운명인가….”
—북한 인권 등에 대해 달라진 인식을 앞으로 신문 칼럼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표명할 생각이 있습니까.
“네. 기회만 주어진다면, 얼마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