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취재] 김정은 지령받고 남한에 直派된 북한 공작원의 실체 : 월간조선

북한 김정은은 배다른 형 김정남을 세 번 암살하려 했다. 그 이상일 수도 있지만, 언론을 통해 공개된 암살 시도 횟수는 세 번이다. 김정남은 김정일의 전처 성혜림(2002년 사망)의 소생이며, 김정은은 고영희(2004년 사망)의 아들이다.

김정은이 가장 처음 김정남을 죽이려 한 것은 2004년 10월이다. 당시 20세의 김정은은 오스트리아의 이종사촌 누이 김옥순을 방문하고 있던 김정남을 암살하려 했다. 하지만 김정남은 “당신을 암살하려는 북한인의 계획을 파악했다”는 오스트리아 당국의 통보 때문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5년 후인 2009년 4월 김정은은 김정남이 비밀 파티를 열어왔던 평양시 중구역 우암각으로 들이닥쳐 마침 회합(會合) 중이던 그의 측근들을 잡아갔다. 우암각은 납북됐던 신상옥·최은희 부부가 평양에 살면서 머물던 고급주택. 1997년께부터 김정남이 평양을 방문할 때면 거처로 애용했다.

당시 평양의 김정남 측근은 김정남에게 이런 사실을 알렸고, 김정남은 “개XX, 어린놈이 나를 죽이려 해”라며 흥분했다. 하지만 해외 떠돌이 처지의 김정남은 권력 중심부에 있던 동생을 당해낼 수 없었다. 급기야 생명의 위협을 느낀 김정남은 마카오에서 싱가포르로 피했다.

세 번째는 2010년 6월 하순이었다. 북한 국가안전보위부(보위부)는 중국에서 활동하는 해외반탐처 공작원 김영수(51)씨에게 ‘김정남을 암살하라’는 지령을 내렸다. 이 사실은 2012년 9월 12일 김씨가 탈북자로 위장해 대한민국에 잠입했다가 구속되면서 알려졌다.

김씨는 국정원 수사 과정에서 “2010년 6월 하순 보위부 중국 담당 특파원으로 임명되었는데 이때 보위부로부터 김정남 테러 계획을 수립하라는 지령을 받고, 한족 택시기사를 매수한 다음 교통사고를 가장해 김정남을 죽인 뒤 북한으로 이송한다는 계획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김정남 암살 실패와 관련해 “중국에 입국하지 않아 실행하지 못했다”고 했다. 김씨가 보위부로부터 김정남 암살 명령을 받은 2010년 7월은 김정일이 셋째 아들 김정은에게 인민군 대장 칭호를 부여(2010년 9월)하면서 3대 세습을 공식화하기 직전이다. 이때는 김정남의 1차 망명설이 나온 시점이기도 하다.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우리의 국가정보원에 해당하는 기구. 북한 최고지도자 직속의 비밀경찰기구로 반체제 사범 색출과 김일성 일가에 대한 비방사건 수사, 대간첩 업무와 해외공작 임무를 전담하는 핵심 조직이다. 법적 절차 없이도 용의자를 구속, 처단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김정남 암살하려 한 김씨는 누구인가?

가장 최근 김정남 암살 지령을 받고 실행에 옮기려 한 김씨의 존재가 흥미로웠다. 어떤 인물이기에 보위부가 ‘김정남 암살’이라는 중책을 그에게 맡긴 것일까. 공안당국 관계자들의 증언과 김씨에 대한 법원의 판결문을 종합해 김씨가 중국에서 어떤 공작을 해왔으며, 2012년도에는 무슨 목적으로 대한민국에 직파(直波)됐는지 추적했다.

1998년 3월 함북 무산군 무산광산연합기업소에서 용해공(鎔解工)으로 일하던 김씨는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총 세 차례(1998, 2000, 2001) 중국으로 탈북을 시도했다. 하지만 탈출하는 족족 공안에 적발돼 북한으로 강제 이송당했다.

세 번째 탈북 실패 후인 2002년 8월, 함북 온성군 보위부 구류장에 수용돼 조사를 받던 김씨에게 보위부 해외반탐처 지도원인 복기섭은 “보위부 공작원이 되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터라 김씨는 복기섭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당과 수령을 위하여 이 한 몸을 바치겠다’는 취지의 맹세문에 피로 서명을 한 뒤 김일성·김정일 초상화 앞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보위부 공작원이 되면 거쳐야 하는 절차였다.

김씨는 이후 복기섭으로부터 공작원 수칙을 배웠다. 휴대전화는 받는 데에만 사용하고, 보위부는 ‘큰 집’, 본인은 ‘소무’, 영사관은 ‘작은 집’ 등의 암호로 호칭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내용이었다. 김씨는 복기섭으로부터 김북남이라는 가명과 통신연락용 휴대전화, 공작금 2만 위안(400만원)을 받고서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침투했다. 무사히 중국에 도착하자 보위부로부터 전화가 왔다. 첫 명령은 ‘한국 사람들, 특히 한국 기업인, 목사들과 잘 어울리며 포섭하라’는 것이었다.

이에 김씨는 2003년 3월 하순경까지 ‘북한군 대좌 출신 리성남’으로 행세하며 한국인들이 자주 가는 교회 및 식당 등을 탐문하면서 접근 가능한 한국인들을 물색했다. 또 선양·옌타이·웨이하이·칭다오 지역으로 옮겨가면서 중국에서 선교하는 한국인 목사, 선교사, 재중동포 신자(信者) 등을 만나 이들의 신원을 파악해 보위부에 보고했다.

탈북자 사냥꾼

북한 보위부는 2010년 6월 하순 소속 공작원에게 김정남 암살을 명령했다. 사진은 김정은이 2012년 4월 13일 평양의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제12기 제5차회의에 참석한 모습.

첫 번째 지시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김씨는 2003년 4월 당시 베이징시 왕징(望京) 신청 왕징서원 4구 소재 아파트에 있는 보위부 안가로 이동, 6개월간 정식 공작원 교육을 받았다. 교육은 보위부 요원 등으로 구성된 5명의 교관이 담당했으며 교육 내용은 정치사상, 사교술, 상황대처법, 안마, 침술, 차량운전, 정비, 남한정세, 중국어, 한국어 등이었다. 교육을 마친 김씨는 보위부의 권유로 조선노동당에 가입했다.

이후 보위부는 김씨에게 ‘칭다오로 이동해 북한에 투자할 한국 기업인을 포섭하라’는 지령을 내렸다. 김씨는 곧바로 2003년 10월 중순경부터 2004년 7월경까지 ‘고위직 출신 탈북자 황영세’로 행세하면서 칭다오 소재 한인 교회나 한국인 기업을 접촉해 친분을 쌓았다. 북한에 대한 고급 정보가 많은 그에게 한국 기업인들과 선교사들은 깊은 신뢰를 보냈다. 이런 이유로 그는 자연스럽게 선교사들이 탈북자들을 어떻게 지원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었다.

한국 기업인, 선교사들과 가까워진 그에게 보위부는 2007년 ‘탈북자에 대한 성경공부 등 반북 활동사례나 탈북자 지원, 탈북자 은신 여부 등을 관찰하라’는 특명을 내렸다.

김씨는 2007년 9월 한인교회 신자들을 통해 칠도교회의 재중동포 목사 김용운이 북한의 고위간부 친척들에게 성경공부를 시킨다는 정보를 입수, 상부에 보고해 종교모임에 참여한 행정기관 및 기업 간부들을 적발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또 2008년 5월에는 탈북해 중국에 숨어 있던 북한 간부와 가족을 찾아내 체포조에게 연락을 취하기도 했다. 체포된 북한 간부와 가족은 모두 북한으로 강제이송됐다. 2009년 3월에는 탈북자를 지원하는 인물로 알려진 최○○이 운영하는 ‘행복한 낙원’ 양로원에 동거녀 채○○씨를 위장 취업시켜 최씨의 동향을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보고했다. 아울러 김씨는 자신에게 ‘중요한 물건을 팔아줄 수 있느냐’는 제안을 하며 접근한 북한인들을 변방호텔로 유인, 중국 공안에 넘기는 등 능력을 인정받는 공작원으로 성장했다. 2009년 2월 중순 무렵 보위부는 그간 김씨의 공작성과를 인정, ‘중좌’(중령급) 군사칭호와 국기훈장 1급을 수여했다.

김씨, 김창환 선교사 죽음과 관계 있나?

보위부는 2010년 2월 엘리트 공작원으로 성장한 김씨에게 김창환 선교사 감시를 명령한다. 김 선교사는 북한 주민과 탈북자를 위해 헌신해 온 인물이다. 김씨는 ‘한 사장’이라는 가명을 사용하던 김창환 선교사에게 ‘북한국 대좌 출신 탈북자 리성남’으로 행세하며 접근했다. 이후 김씨는 김 선교사가 운영하는 안가(安家)에 머물면서 “김 선교사가 다수의 탈북자를 몽골을 통해 한국에 입국시켰다”는 정보를 입수, 보위부에 보고했다. 보위부는 김창환이 보위부와도 관계가 있다면서 “세밀히 관찰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김씨는 2010년 4월 초 김 선교사의 안가를 떠나면서 보위부에 “김창환이 보위부와도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지만 한국과도 연계가 긴밀한 사람으로 보인다”고 보고했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김 선교사는 2011년 8월 21일 단둥(丹東) 시내에서 갑자기 사망했는데 사인(死因)은 ‘브롬화스티그민 중독’이었다. 브롬화스티그민은 부교감신경 흥분제로 10mg만 인체에 투여해도 호흡이 정지되고 심장마비로 즉시 사망하는 맹독성 물질이다. 통상 ‘청산가리’로 알려진 시안화칼륨에 비해 5배나 강한 독성을 지녔다. 북한 공작원들이 즐겨 사용하는 독극물이다. 2011년 10월 대북 전단을 뿌려온 탈북단체 대표 박상학씨를 암살하려 했던 북한 공작원도 이 독극물로 만든 독침을 가지고 있었다.

태국 통해 남한에 침투

김정남 암살 지령을 받은 김모씨의 주 임무는 중국 내 탈북자를 감시하는 것이었다.

중국에서 보위부 소속 체포조와 함께 ▲중요 탈북자들의 소재 파악 및 체포·강제북송 ▲탈북자를 지원 중인 내국인 선교사 등의 신원·동향 파악 ▲탈북자들의 한국 입국 루트 파악 및 봉쇄 ▲북한 내 기독교 유입 차단을 위한 한국인 목사·선교사 활동 견제 등의 임무를 수행해 오던 김씨에게 2012년 3월 4일 성명 불상의 보위부 간부 2명이 만나자고 했다. 약속 장소는 옌지(延吉)시 소재 라경호텔 4층 보위부 안가였다. 이곳에서 보위부 간부들은 김씨에게 대한민국 침투 지시를 내렸다. 이후 김씨는 안가에서 보위부 간부로부터 침투방법, 국가정보원 신문(訊問) 및 검찰 수사 회피 방법 등을 교육받았다. 보위부 간부는 김씨에게 “한국에 침투하면 북한 인권 운동을 펼치는 탈북자 박상학에게 접근하고,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 중 생활고를 겪는 자들을 다시 귀북(歸北)시켜 기자회견 등을 통해 인권 문제를 제기, 남한이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을 상황을 만들라”는 지령을 내렸다.

이 시기는 김정은이 “지난해 몇몇 안 되는 인간쓰레기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전체 사회주의 조국의 품에 다시 안기게 하라”고 명한 시기와 일치한다. 김정일이 ‘양강도 출신은 버려라’고 했다는 첩보와 달리 아들인 김정은은 ‘범죄를 저지르고 탈북했더라도 돌아오면 받아주라’는 교지를 내렸다고 한다.

한국 침투를 결심한 김씨는 공작활동 중 접촉해 친분이 있는 한국인인 기독교 북한선교회 이수봉 목사에게 “김정은 정권이 들어서게 돼 탈북했다. 한국행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이 목사는 김씨에게 ‘황 사장’을 소개해 줬다. 김씨는 황 사장의 안내에 따라 2012년 3월 30일 동거녀와 함께 선양으로 이동, 멍라(勐臘)현→라오스 국경→태국으로 갔다. 태국에 도착한 시기는 2012년 4월 5일이었다. 태국에 도착한 김씨는 곧장 치앙콩 경찰서에 탈북자임을 밝히고 자수했다. 탈북자들의 상당수는 태국을 경유한다. 중국 내 재외 공관 진입이 막히고, 다른 입국 루트도 차단되면서 태국이 한국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생존 루트인 탓이다. 게다가 태국은 탈북자를 강제로 북송하지도 않는다.

2012년 4월 25일 태국 주재 한국대사관 직원에게 대한민국행 의사를 밝힌 김씨는 2012년 6월 7일 방콕을 출발, 2012년 6월 8일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김씨는 곧장 국가정보원과 군, 경찰로 구성된 합동신문센터에서 1~2개월 동안 북한 내 행적과 탈북 목적에 대해 조사를 받았다. 해당 지역 출신 탈북자들을 통해 수집했던 정보와 대조해 가며 신원을 속이거나 탈북 목적을 거짓으로 진술하지는 않았는지 집중적으로 조사하는데 김씨는 이 과정에서 공작원임이 드러나 체포됐다.

“국정원이 나를 속였다”

김씨의 중국 내 공작 내용과 한국 침투, 체포 과정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기자는 그의 상황을 잘 아는 이로부터 새로운 이야기를 듣게 됐다. 김씨가 ‘나는 자수했는데 국정원 직원이 포상금을 노리고 체포한 것으로 보고해 형량이 무거워졌다’고 하소연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인사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김씨는 국정원에 대한 실망감이 커 형기를 마치고 자유인이 되더라도 국정원과 관련한 일은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김씨가 실제 자수를 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를 직접 만나야 했다. 그가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파악하기 위해 담당 변호사에게 자료요청을 했지만, 변호사는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다며 거부했다. “김씨가 자수를 주장하고 있다”는 정보만 가지고 무작정 서울구치소로 향했다. 2013년 2월 7일이었다.

면회 신청을 하고 순서가 오길 기다렸다. 명절을 앞둬서인지 면회인이 많았다. 이윽고 차례가 됐다. 우락부락하고 험상궂은 사내를 상상하며 면회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면회실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은 그는 평범한 외모의 소유자였다. 공작원 같지 않아 보였다. 인사 대신 “자수를 했는데 국정원이 이를 인정하지 않아 무거운 형량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왔다”는 질문을 던졌다. 2012년 12월 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이원범 부장판사)는 그에게 징역 4년과 자격정지 4년을 선고했다.

“자수한 것 후회한다”

서울구치소에서 만난 김씨는 “자수를 했는데 국정원이 체포한 것으로 조서를 꾸며 형량이 늘어났다”고 주장했다.

기자라는 신분을 밝히지 않았지만 이내 눈치챈 김씨는 “진짜 너무 억울하다”고 했다. 다음은 10분간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자수한 게 맞나요.

“변호사님도 자수했다고 하잖아요. 대한민국에서 살 의향이 없었다면 자수를 하지 않죠. (혐의를) 마지막까지 부인했겠죠.”

—왜 자수를 했나요.

“내가 배웠던 대한민국이 아니었기 때문에 자수했어요.”

—북한은 대한민국을 어떻게 가르치나요.

“심한 말로 거지만 사는 나라로 배웠습니다.”

—언제 어떻게 자수를 했는지 설명해 주십시오.

“제가 남침 명령을 받고 탈북자로 속여 태국을 통해 2012년 6월 8일 들어왔는데 그때 국가정보원 합동신문센터 심문 과정에서 자수했습니다.”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는데 형량이 무겁다고 생각합니까.

“그렇습니다. 대한민국을 믿고 모든 것을 밝혔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괜히 자수를 한 것 같습니다.”

—담당 변호사에게 당신 주장의 근거자료를 달라고 하니, 당신이 반대한다고 안 내놓더라고요.

“저에 대한 보도가 나오면 북에 있는 가족이 죽습니다. 이미 죽었겠지만….” 이 답변을 할 때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가족이 죽은 것을 확인했나요.

“확인은 못 했죠. 여기 갇혀 있으니까요. 그런데 황장엽 암살하려고 들어온 정찰총국 애들 있지 않습니까. 게네 가족 다 죽었습니다. 가족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면회시간이 끝나 일어나려 하자 그는 자신의 변호사와 함께 수사접견을 와달라고 요구했다. 고개만 살짝 끄덕이고 나서 자리를 옮겼다. 그의 말이 사실일까. 2013년 2월 13일 국정원에 문의했다. 국정원은 황당한 반응을 보였다. 이후 《월간조선》은 김영수 수사일지 요약본을 입수했다.

“김씨는 自首와 自白의 개념 혼동”

국정원은 김씨의 주장에 대해 “자수와 자백의 개념을 혼동하고 있다”고 일축했다.

요약본에 따르면 김씨는 태국 주재 한국대사관 인터뷰(2012.4.25, 1회), 중앙합동신문센터에 수용된 날(2012.6.8, 2회), 1차 신문(6.18~ 6.22, 3회)까지는 자신이 노동자 출신이며 생활고로 탈북하였다고 진술하다, 2012년 6월 25일 실시한 2차 정밀심문 과정에서 보위부 간첩임을 자백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김씨와 중국에서 8년 동안 함께 산 동거녀 채○○조차도 본명을 알지 못하고 가명(오성훈)만 알고 있었던 점, 중국 체류 중 한국인 교회 관계자들이 수차 한국행 기회를 제공했음에도 이를 거절타가 뒤늦게 입국을 결심한 점 등 의문이 발생해 정밀조사하자 김씨가 그때야(2012년 6월 26일) 탈북자로 위장해 침투하였다고 자백했다”고 했다.

김씨가 20일 가까이 자신은 일반 생계형 탈북자라고 신분을 속여왔다는 것이다. 수사일지에는 김씨가 공작원 신분을 자백한 이후에도 핵심 범죄사실에 대해서는 계속 은폐를 시도했다는 내용도 적시(摘示)돼 있었다.

국정원 관계자는 “김씨는 수사기관에 자수가 아니라 집중적인 추궁을 견디지 못하고 범행사실을 자백한 자”라며 “법률용어 개념을 잘 알지 못하는 김씨가 자백과 자수의 개념을 혼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씨의 刑量은 적당한가

자수를 했다는 김씨의 주장이 허위라면 4년은 그다지 무거운 형량이 아니라는 분석이다. 2008년 9월 10일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소속 직파 간첩 원정화가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김씨는 4년 형량(刑量)이 무겁다고 했다. 자수를 했다는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억울한 부분이 있을지 모른다. 과거 사례를 살펴보니, 자수 간첩의 경우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한 예로 2003년 한○○씨의 경우 국정원으로부터 북한의 지령을 받아 중국에서 주요 탈북자 20명을 체포해 북송하고, 중국 체류 한국인 등에 대해 납치공작을 기도한 ‘북한보위부 간첩’으로 규정됐지만 자수가 인정돼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자수를 했다는 김씨의 주장이 허위라면 4년은 그다지 무거운 형량이 아니다. 간첩죄의 경우 법정형량이 징역 7년 이상이고, 최대 절반까지 감경(減輕)받아도 징역 3년6개월 형이다.

실제 탈북자로 위장하여 한국에 침투했지만, 합동심문 과정에서 간첩이란 사실이 드러난 이들이 받은 형량은 김씨가 받은 형량과 비슷했다.

우선 2011년 6월 보위부로부터 남파 임무를 받고 탈북자로 위장해 입국한 북한 국경수비부대 상좌(소위) 출신 허모씨는 징역 3년에 자격정지 3년을 선고받았다. 수원지법 제11형사부(부장판사 이동훈)는 “피고인의 범행은 대한민국의 존립 및 안전을 위협할 수 있고, 생존을 위해 탈북한 진성 탈북자를 모두 ‘간첩’으로 의심할 수 있는 위험성이 커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허씨는 정부 합동심문 과정에서 위장 탈북한 사실이 드러났던 사례다.

지난 2008년 ‘한국판 마타하리’로 알려진 여자 간첩 원정화도 징역 5년 형을 선고받았다. 원씨는 보위부의 지시를 받고 탈북자로 위장 입국해 군 장교와 접촉, 군사기밀을 빼냈다.

당시 원씨는 항소를 포기했다. 원씨의 변호인은 “재판부가 충분히 고려해 판결을 내렸다고 생각해 항소하지 않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2012년 5월 탈북자로 위장해 국내에 잠입한 보위부 소속 이경애도 형량은 징역 5년이었다. 이경애는 2000년대 초 보위부에서 공작원 교육을 받고 중국으로 파견됐으며 그곳에서 위조지폐를 중국 위안화로 교환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이후 이경애는 2012년 5월 탈북자로 위장해 한국으로 침투했다. 이경애는 합동신문센터에서 “탈북 이후 중국에서 한국인 남성과 동거를 했는데 그가 한국으로 들어가게 되자 나도 브로커를 통해 한국으로 오게 됐다”고 입국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 합동신문조는 이경애의 진술이 앞뒤가 맞지 않고 현재의 북한 실상과 다른 내용이 많이 나온다는 점을 수상히 여겨 그를 추궁했고 결국 “북한 공작원”이라는 자백을 받아냈다.

재판부의 量刑 이유

재판부는 김씨에게 징역 4년 및 자격정지 4년을 구형한 이유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다음은 판결문을 요약한 내용이다.

<피고인이 북한에서 태어나고 성장하면서 우리나라의 국가보안법에 대한 법의식은 기대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중국 내 탈북자들이 북한으로 강제송환될 경우 생명의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사정을 알면서도 탈북자의 소재를 파악, 북송되도록 하는 임무를 수행한 것은 그들의 자유와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한 것이다. 또 피고인이 대한민국에 잠입하여 성공적으로 정착했다면 추후 대한민국의 존립과 안전을 중대하게 위협할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으로 보여 엄중한 처벌이 요구된다. 다만 피고인은 보위부의 위협과 회유를 받아 공작원이 됐고, 대한민국 잠입 직후 중앙합동신문센터 조사 과정에서 자신의 신분이 드러나자 자신의 범행을 모두 자백하고 수사에 협조한 점은 참작해 형을 정하는 바이다.> 2차 항소심은 오는 3월 12일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