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김정은과 북한의 개혁·개방 - 北의 최근 변화 어떻게 볼 것인가? : 월간조선

지난 8월 9일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RFA)’은 ‘북한, 사회주의 계획경제 포기선언’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RFA는 이 기사에서 “북한이 새 경제관리 체제를 공식 도입하면서 계획경제와 배급제 포기를 선언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RFA 보도는 지난 7월 15일 있었던 북한군 총참모장 리영호의 전격 해임, 6월 말에 나온 이른바 6·28방침 등과 맞물리면서 북한이 본격적인 개혁·개방으로 나가려는 것 아니냐 하는 관측을 낳았다. 8월 13일에는 북한의 권력실세(實勢)인 장성택(張成澤)이 50여 명의 대규모 사절단을 이끌고 중국방문길에 올랐다. 이 역시 북한의 개혁·개방 가능성과 관련해 여러 가지 해석을 낳고 있다.

7월 6일 김정은(金正恩)이 아내 리설주를 대동하고 미키마우스와 미국 영화 <로키>가 등장하는 공연을 관람했던 것도 이와 연관해 새삼 관심을 끌었다.

이에 앞서 지난 4월 김정은은 ‘4·6 노작’이라는 것을 내놓았다. 4월 19일 《노동신문》을 통해 공개한 이 4·6 노작에서 김정은은 ‘인민생활 향상과 경제강국 건설에서 결정적 전환’, ‘인민들의 먹는 문제 원만히 해결’, ‘경공업 발전을 토대로 인민소비품 문제 해결’, ‘새세기 산업혁명을 바탕으로 지식경제강국 건설’ 등을 강조했다. 단 여기에는 단서가 하나 붙었다. ‘경제사업에서 사회주의 원칙 고수’라는….

김정은은 개혁·개방으로 나가려는 것일까, 아니면 3대 세습으로 흔들리는 집권기반을 다잡으려 구호만 외치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을 두고 많은 북한 문제 전문가들은 뭔가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데는 대체로 동의한다.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김정은의 경제 관련 발언, 미키마우스 공연 관람, 이영호 총참모장 해임 등은 경제개발을 지향하고 있는 김정은이 개혁·개방을 위한 분위기 내지 사전(事前) 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고유환(高有煥) 동국대 교수(북한학)도 김정은이 보여주고 있는 일련의 행보를 ‘김정은식(式) 글라스노스트’라고 표현했다. 그의 분석이다.

“김정은이라는 새로운 지도자의 행보를 보면 이전 지도자(김정일)와는 확실히 다른 것 같습니다. 특히 나름 공개성과 투명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주목됩니다. 관료들의 형식주의, 무사(안일)주의를 공개적으로 질책하고 그 사실을 공개하는가 하면, 리영호 해임 때에도 당 정치국회의를 통해 해임하고 그 이유를 공개했습니다. 김정은이 공개연설을 하거나 이를 실시간 중계하는 경우도 잦아졌습니다. 지난 4월 로켓발사 때 외신기자들을 초청하고, 외무성이 핵실험 않는다고 공표하는 등 어느 정도 예측가능한 행보를 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죠.”

“농업개혁의 시작”

북한의 움직임과 관련해 가장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소위 6·28방침이다. 정식 명칭이 ‘우리 식의 새로운 경제관리 체제를 확립할 데 대하여’인 이 조치는 ▲협동농장의 분조(分組) 규모를 종전의 10~25명에서 사실상 가족규모인 4~6명으로 축소 ▲생산물을 국가와 농장원이 7대3의 비율로 분배하고, 초과 생산량은 농장원 차지 등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이러한 조치는 개혁·개방 초기에 집단농장인 인민공사(人民公社)를 해체하고 개인영농(營農)을 허용했던 덩샤오핑(鄧小平)의 조치를 연상케 한다.

고유환 교수는 “사회주의 국가들이 개혁을 할 때에는 대개 농업개혁에서부터 시작하는데, 6·28방침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농업개혁을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국의 경우 인민공사를 해체하는 것으로 시작, 상당히 빠른 속도로 경작권을 농민에게 부여하고 경작권의 거래도 가능하게 했습니다. 물론 북한은 협동농장 자체를 해체하는 것이 아니고, 아직은 그 안에서 인센티브를 주는 것에 불과하긴 하죠. 자기들은 이를 ‘개선조치’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하지만 시작이 중요합니다. 특히 분조원의 수를 가족규모로 줄인 것과 생산물의 배분 비율을 70대30으로 명기한 것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해서 성과를 내는 분조 단위로 농장 일을 몰아주고, 잉여인력은 경제특구(特區)를 설치해 공업인구로 돌리거나, 중국 러시아 등으로의 인력송출(送出)을 해 외화(外貨)를 벌이들이려 할 것입니다.”

다만 고 교수는 “6·28방침을 두고 계획경제 탈피라고 보는 것은 아직은 과도한 해석”이라고 선을 그었다.

정성장(鄭成長)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6·28조치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지금 북한의 조치가 중국 덩샤오핑의 초기 개혁과 상당히 닮았다”고 말했다.

“북한은 지금 껍데기뿐 아니라 내용 면에서도 중국을 닮아 가고 있습니다. 생산물을 70대30의 비율로 국가와 농민이 나누기로 한 것은 공적(公的) 부문과 사적(私的) 부문의 분화(分化)가 시작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죠. 이런 의미에서 6·28방침은 과거 7·1조치보다 진일보한 것으로, 7·1조치를 ‘소(小)개혁’이라고 한다면, 이번 조치는 ‘대(大)개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생산수단의 개혁 수준”

이영훈 SK경영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금년에 나온 북한 계간지 《경제연구》 제2호에서는 임금인상을 예고하고 있어, 올 하반기에 정책전환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면서 “정책전환의 내용에는 기존에 알려진 기업, 협동농장의 자율성 제고(提高) 및 임금인상뿐 아니라 금융개혁이 수반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번에 나온 6·28방침은 과거 7·1조치처럼 이미 부분적으로 관례화한 시장경제 관행을 제도화하는 것으로, 그 자체로서는 특별히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지난 2년 7개월 동안 쌀값이 200배 올랐습니다. 이러한 하이퍼인플레이션을 해결하지 못하면 임금인상이나 기업·협동농장의 자율성 제고 효과를 거둘 수 없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금융시스템의 정비가 필요합니다. 중국도 개혁·개방에 나서면서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에서 상업은행 기능을 분리하는 금융개혁을 단행했었습니다.”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북한은 앞으로 3~5년간 기존에 형성되어 있는 시장을 합법화·제도화하고 경제관리 체제를 개선하는 ‘소극적 개혁’을 한 후, 새로운 제도의 도입, 사유기업 인정, 금융개혁 등 ‘적극적 개혁’에 나설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4~5년 정도면 덩샤오핑이 초기 4~5년 동안 했던 정도의 개혁·개방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은 북한의 변화가 아직은 개혁·개방이라고 하기 어렵지만, 결국은 중국식 개혁·개방으로 갈 것으로 보았다.

“최근 김정은의 일련의 발언을 보면 컴퓨터수치제어(CNC) 등 생산수단의 개혁은 추구하지만, 생산관계의 개혁까지는 아직 아닌 것 같습니다. 중국·베트남의 경우에서 보듯, 생산관계의 개혁이 있어야 진정한 의미에서의 개혁·개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농업분조제 도입 등에서 협동농장 체제를 완화는 하되, 집단주의 원칙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인데, 이 경우에는 개혁·개방이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분조제(6·28조치), 배급제 폐지 보도(8월9일 《문화일보》) 등을 보면 생산관계의 개혁도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북한은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결국은 중국식 개혁·개방으로 가리라고 봅니다.”

반면에 동용승(董龍昇)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은 “현재 김정은 체제가 들어서고 나서 변화를 통해 북한 체제를 정상화시키려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것이 과연 개혁·개방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김정일의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의 증언

김정은, “우리나라는 중국을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

김정일의 요리사였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 씨는 북한에 있을 때 스위스 유학 중 방학을 맞아 북한에 돌아와 있던 김정은(2000년 당시 18세)이 북한의 실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곤 했다고 한다.

● “외국 백화점이나 상점엔 어디나 물자와 식량이 넘쳐나는데 놀랐다. 왜 우리나라 상점에는 물건이 없을까요?”

● “우리나라는 공업기술이 상당히 뒤떨어져 있다. 우리나라가 자랑하는 지하자원이라고는 우라늄 정도다. 지금 우리가 초대소에 머물 때도 시도 때도 없이 정전(停電)이 많고, 전력부족이 심각한 상황이다.”

●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에 패했지만, 엄청난 부활을 했다. 일본의 상점들을 가보면 물품들이 넘쳐 흐른다. 우리나라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 “위(김정일)에서 들으니 지금 중국은 여러 가지 면에서 성공하고 있다고 한다. 공업, 상업, 호텔, 농업 등 모두가 잘되고 있다고 한다. 중국이 13억명을 먹이는 농업을 성공적으로 달성한 것은 대단하다. 우리나라는 중국을 여러가지 면에서 모범(벤치마킹)으로 삼아야 한다.” <월간조선 2010년 11월호 『‘김정일의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 - 내가 만난 김정은』〉

변화 추진 주체는 김정은과 장성택

지금 북한의 ‘변화’를 추진하는 주체는 누구일까?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은 “지금 북한이 내놓는 조치들은 이미 김정일(金正日) 시대부터 준비되고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2009년 여름 제2차 핵(核)실험 이후 사실상 핵보유국이 됨으로써 체제위기는 일단 넘겼다고 판단하고 개혁·개방으로 나갈 준비를 해 왔다는 것이다.

“북한은 지난 2월 외자관련법 등을 비롯해 14개의 개혁·개방 관련 법률들을 공포했습니다. 김정은 정권이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런 조치가 취해진 것은, 이러한 조치들이 이미 김정일 시대부터 준비되어 왔다는 것을 보여주죠. 아마 김정일이 살아 있었다면 김정일이 권력 일선에서 물러난 후 김정은을 전면에 내세워 개혁·개방을 추진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북한정권 입장에서는 안정적이기 때문입니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정책변화의 동력(動力)을 유학 경험을 가진 김정은에게서 찾았다.

“북한의 정책변화 폭과 속도가 빠릅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김정은이 감수성이 예민한 젊은 시기에 스위스 베른에 유학하면서 자본주의를 직접 체험한, 북한에 있는 기존의 인간들과는 다른 새로운 인간형이라는 데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는 “현재로서는 북한이 갑작스럽게 유일사상 체제를 바꾸기 어렵겠지만, 역설적으로 유일사상 체제이기 때문에 수령인 김정은이 바꾸자고 하면 교조주의적 사상이론에서 실용주의적 사상이론으로의 수정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은 “북한에서는 지금 경제문제에 대해 ‘내각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지만, 북한의 권력구조상 내각에 맡겨서는 한계가 있다”면서도 북한이 개혁·개방을 추진할 경우, 그 힘은 김정은에게서 나올 것으로 보았다.

“김정은은 중국이나 다른 나라의 경우와는 달리 권력투쟁 끝에 권좌에 오른 것이 아니라, 전제왕조의 군주처럼 아버지의 권력과 권위, 통치시스템을 그대로 물려받았습니다. 때문에 김정은에게는 개혁·개방을 추진할 힘이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탈북자인 김흥광 NK지식인연대 대표는 북한의 권력실세인 장성택에게 기대를 표시했다.

“과거 북한의 정책변화가 실패했던 것은 개혁설계사가 최고권력자인 김정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밑에서 건의를 하면 ‘그럼 한번 해 봐’ 하는 수준에서 허락을 했다가 잘못되면 책임을 묻고 개혁조치를 뒤집었죠. 때문에 개혁조치가 번번이 실패했던 것입니다. 이번에는 사실상 최고권력자로 개혁성향이 강한 장성택이 추진하고 있고, 김정은이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번에는 과거와는 다를 것으로 봅니다.”

중국 모델이냐, 베트남 모델이냐

평양 창광거리에 새로 건설된 살림집을 돌아보는 김정은. 김정은은 근래 경제와 인민생활 개선에 대한 의지를 자주 표명하고 있다.

북한이 본격적으로 개혁·개방으로 나간다면, 선택 가능한 모델로는 흔히 중국 모델과 베트남 모델을 든다. 두 나라 모두 성공적으로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면서도 공산당 일당독재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공통된다. 양자(兩者)의 차이에 대해 동용승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은 이렇게 설명했다.

“첫째, 중국은 경제특구를 설정하고, 이를 점(點)→선(線)→면(面)으로 점진적으로 확산시키는 정책을 썼습니다. 반면에 베트남은 일거에 전면적으로 개혁·개방에 들어갔습니다.

둘째, 중국은 화교자본을 비롯해 내부자본이 어느 정도 축적되어 있었기 때문에 개혁·개방 조치를 취하면서 외부(IMF 등)의 영향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웠습니다. 반면에 내부에 축적된 자본 없이 개혁·개방에 나선 베트남은 외부의 영향에 취약했습니다.

셋째, 중국은 개혁·개방에 나서기 전 미국과 수교 등 대외환경을 먼저 정비했지만, 베트남은 도이머이 정책을 시행하고 나서 10년 가까운 1995년에야 미국과 수교했습니다.”

그는 “북한은 외부의 영향을 덜 받는 중국 모델을 취하고 싶겠지만, 내부에 축적된 자본이 없기 때문에 외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결국 북한은 중국과 베트남 모델의 중간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북한이 싱가포르식 모델에 관심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싱가포르의 경우, 정치는 인민행동당이 1당 장기집권을 하고 있는 권위주의 체제지만, 경제적으로는 지식기반산업과 관광 물류 금융 등이 강점입니다.

작년에 북한은 싱가포르 경제관료를 평양으로 초청해 학습모임을 가졌는데, 최태복 내각총리가 이 자리에 나타나 ‘우린 싱가포르 모델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물론 북한이 실제로 싱가포르의 첨단 자본주의 경제를 따라 배울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목표는 그렇게 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중국에 보여주기 위한 제스처”

하지만 북한의 개혁·개방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열린북한방송’ 대표를 지냈던 하태경(河泰慶) 새누리당 의원은 “지금 북한의 개혁·개방 제스처는 중국의 지원을 받아 내기 위한 단기대응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중국이 북한에 개혁·개방과 긴장고조 중단을 요구해 왔기 때문에 일종의 보여주기식 정책을 펴고 있는 것입니다. 김정은이 유원지에서 북한주재 중국대사와 놀이기구를 같이 탄 것이 그 단적인 예입니다. 김정은은 오는 10월 시진핑(習近平) 등 5세대 지도부가 들어서면 중국을 방문해 더 많은 지원을 받아 내려 하겠지만, 중국에서 돌아온 후에는 다시 보수적으로 바뀔 가능성이 있습니다. 북한이 지금 취하고 있는 조치의 의미나, 북한이 본격적인 개혁·개방으로 나갈 것인지는 1~2년 정도 지나야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 의원은 북한의 개혁·개방 가능성을 비판적으로 보는 이유로 “김정은은 권력장악력이 약하다”는 점을 꼽았다.

“권력을 100이라고 할 때 장성택이 30, 김경희가 30, 최룡해가 10, 김정은이 20, 그리고 김옥·김여정 등 일가붙이나 김영남 등 원로, 김정각 등 군부가 10 정도를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권력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에 김정은이 의미 있는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지난 1월까지 청와대 통일비서관을 지냈던 김영호(金暎浩) 외교통상부 인권대사(성신여대 교수)는 국제관계의 측면에서 북한의 개혁·개방 가능성을 낮게 보았다.

“과거 고르바초프나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할 때에는 대내적인 개혁·개방 의지 피력과 함께, 대미(對美)관계 개선 등 대외환경 정비에도 신경을 썼습니다. 그런데 지금 김정은 체제하의 북한에서는 그런 신호가 안 보입니다. 북한 매체나 당국자들의 얘기를 보면 여전히 미국의 대북(對北)적대시 정책이나 한국의 대북정책을 강경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김정은이 모란봉악단 공연에서 미키마우스나 영화 <로키>를 등장시키긴 했지만, 이미지 메이킹과 정책의 본질은 구별해서 봐야 합니다. 북한이 진정 개혁·개방을 하려 한다면 금강산관광 문제 등 남북관계부터 정상화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는 한 북한의 움직임은 신중하게 봐야 합니다.”

개혁·개방의 5가지 징표

손광주(孫光柱) 데일리NK 통일전략연구소장은 “4월 당대표자회, 김일성 100회 생일을 기점으로 일부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본격적인 개혁·개방으로 방향을 잡거나, 북한이 지금까지 전혀 하지 않던 ‘새로운 개혁’을 시도하는 것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손 소장은 “과거 김일성 시절에도 ‘사회주의노동보수(報酬)제’를 통해 초과 생산량에 대해 상금 보조금 명목으로 분배할 수 있도록 했었지만,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변화가 본질적인 개혁·개방 변화로 방향을 잡을 수 있을 것인지를 보려면 ▲선군(군사우선주의) 노선이 현실에서 얼마나 약화되는가 ▲북한의 행동이 대내의 선전용인지 실제 변화를 위한 것인지 관찰 ▲수령 우상화 정도가 얼마나 약화되는가 ▲당-국가-군 간부들의 선발과 배치에서 출신성분(토대) 요인이 얼마나 약화되는가 ▲대외활동에서 국제규범 준수가 어느 정도로 진척이 있느냐(마약, 무기밀매, 기타 범죄행위의 약화) 등을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오경섭 세종연구소 연구위원도 “김정은 중심의 지배연합은 개혁·개방을 추진하면 자신들의 권력이 약화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경제개혁과 개방을 추진할 가능성은 낮다”면서 “김정은이 근본적 개혁·개방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주체사상에 대한 재(再)해석을 실행하면서 개혁·개방을 선언해야 한다”고 말했다.

“토지의 분배가 우선되어야”

남북고위급회담 대표를 지낸 이동복(李東馥) 전 의원은 중국식 개혁·개방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소로, 즉 ①개인우상화의 폐지 ②‘인치(人治)’의 지양과 ‘법치(法治)’의 회복, 그리고 ③이른바 ‘사회주의 시장경제’의 전면적 시행을 꼽았다. 이 전 의원은 “과거 1980년대 후야오방 총서기부터 시작해서 근래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 등이 김일성-김정일에게 개혁·개방을 여러 차례 설득했음에도 북한이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중국식 개혁·개방의 수용은 곧 북한판 ‘김가왕조(金家王朝)’의 가계(家系)에 대한 우상화의 파기를 초래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고 지적한다.

탈북자들의 경우, 북한의 개혁·개방에 대해서는 물론, 6·28 방침에 대해서도 거의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홍순경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은 “김정은이 궁여지책으로 6·28방침 같은 것을 내놓았는데, 과거 김일성·김정일 시대에도 이번과 비슷한 수준의 시도는 여러 차례 있었지만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그는 “진정한 의미의 개혁·개방이 이루어지려면 토지의 분배와 시장을 인정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데, 그에 대한 언급이 없다”고 말했다.

이민복(李民馥) 대북풍선단장은 북한에 있을 때 농업과학원 소속 농업과학자로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집단농업을 해체하고 개인농을 해야 한다”고 건의하는 편지를 김일성에게 보냈다가 문제가 되어 1990년 탈북했다. 그는 “지금 나오고 있는 조치들은 과거 시도했던 것과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고 말했다.

“기껏 크게 부른 게 농민들에게 30%를 떼어주겠다는 것인데, 중국처럼 협동농장을 해체하고 농민들에게 땅을 떼어주고 마음대로 하라고 하기 전에는 안됩니다. 지난 수십년간 북한주민들은 뙈기밭에 재미를 붙였습니다. 뙈기밭 60평이면 1년 먹을 옥수수가 나옵니다. 고작 30% 나눠주는 것을 바라보고 벌판에 나가 일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지금 북한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북한의 개혁·개방에 대해 기대 섞인 말들을 많이 하는데, 그들은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모릅니다.”

그는 장성택의 방중(訪中)에 대해서도 “김일성·김정일은 중국에 안 갔다 왔나? 김정일은 상하이(上海)에 가서 ‘천지개벽’ 운운했지만 북한이 달라진 게 뭐 있나”라고 꼬집었다.

“재산권 보장 先行되어야”

어쩌면 최근 북한의 변화 조짐에 대한 논란은 부질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북한 스스로 언명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29일 북한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발표를 통해 “괴뢰패당(남한)은 우리의 현실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면서 ‘정책변화의 조짐’이니 ‘개혁·개방 시도’니 떠들고 있다”면서 “우리에게서 정책변화나 개혁·개방을 기대하는 것은 해가 서쪽에서 뜨기를 바라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개꿈”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은 “모든 정책은 절세위인들(김일성과 김정일-편집자 주)의 사상과 위업을 대를 이어 계승 완성하기 위한 것이며, 추호의 변화도 있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 속에 ‘북한식 개혁·개방’의 목표와 한계가 다 포함되어 있는 것 아닐까?

박형준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센터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의 ‘6·28방침’은 새로운 ‘개혁·개방’의 서막인가?>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6·28방침’이 실효성이 있으려면, 북한은 외부적으로 주변국과 대담한 긴장완화를 추진하여, 원조, 투자와 기술, 그리고 시장을 제공받아야 할 것이다. 아울러 북한 내부적으로 일반 주민의 투자와 노력 증대를 유발시킬 수 있는 인센티브와 공공재의 공급을 현저히 늘려야 한다.

여기서 핵심적인 것은 주민이 정당한 노력을 통해 축적한 재산을 앞으로 정권이 부당하게 불시에 약탈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신뢰 있게 보장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안전한 재산권에 대한 신뢰 있는 보장을 제공하는 것은 현재와 같은 정권의 현저한 권력독점 구조가 지속하는 한 불가능할 것이다. 안전한 재산권에 대한 보장은 권력독점이 약화되고 사회 내에 일정 수준의 견제와 균형을 보장하는 제도가 성립할 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보장을 하게 되면, 정권과 특수기관이 국가재산을 자의적(恣意的)으로 사적 용도로 오용하는 능력, 그리고 주민의 재부(財富)를 필요할 때마다 자의적으로 약탈할 수 있는 능력이 현저히 제한된다. 따라서 이것은 아직까지 북한 당국으로서는 상상할 수 있는 영역 바깥의 사항이다.

이러한 상황에 가시적 변화가 없을 가능성이 많고 따라서 ‘6·28방침’은 연기만 크게 나는 불발탄이 될 가능성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