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복 후 상황에 대한 역사인식은 북한의 《현대조선력사》와 흡사
⊙ “8·18 도끼만행사건은 미군 잘못, 연평도 포격은 한국군의 호국 훈련 때문”
⊙ “키리졸브 연습은 선제 핵공격 훈련”
⊙ “8·18 도끼만행사건은 미군 잘못, 연평도 포격은 한국군의 호국 훈련 때문”
⊙ “키리졸브 연습은 선제 핵공격 훈련”
지난 5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은 《노동자통일교과서-노동자, 통일을 부탁해》(이하 《노동자통일교과서》)를 펴냈다. 이 책의 발간사에서 김영훈 민노총 위원장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오명은 민족의 수치이면서 동시에 노동자 민중들의 삶을 철저히 파괴하고 있다”면서 “‘노동자가 앞장서서 조국을 통일하자!’는 구호가 현실이 되려면 분단과 6·25전쟁의 기원,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분단현실의 문제와 전쟁위기의 본질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자통일교과서》는 현대사 인식, 남북관계, 한미(韓美)동맹, 북핵(北核)문제, 3대 세습, 북한인권 등에 대해 철저히 ‘내재적(內在的) 접근’, 다시 말해 북한의 입장에서 기술(記述)하고 있다. 이 책은 민노총 통일위원회에서 낸 것으로 되어 있다. 그 필자가 누구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북한의 입장을 두둔하는 좌파(左派)학자나 중국학자들의 의견을 다수 인용한 것이 눈에 뜨인다.
유동렬 치안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은 “2001년 전교조 통일위원회가 펴냈던 《이 겨레 살리는 통일》의 경우, 표현만 조금 바꾸었을 뿐 북한 문건을 거의 그대로 가져다 썼기 때문에 그 출전을 파악하기가 비교적 쉬웠다”면서 “《노동자통일교과서》는 지능적으로 편집해서 문건의 출처를 북한으로 단정 짓기 어렵게 해놓았지만, 그 내용은 일관되게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자통일교과서》의 문제점들을 짚어보기로 한다.
역사인식
《노동자통일교과서》에 나타난 현대사 인식은 분단의 책임을 한국 보수세력과 미국에 돌리고, 친일파 청산 실패를 강조하면서, 6·25 남침(南侵)에 대한 북한의 책임을 외면한다. 1980년대 이후 우리 사회에서 풍미하게 된 이러한 역사인식은 북한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에서 펴낸 《현대조선력사》(1985년판)에 나타난 역사인식과 흡사하다.
“해방은 됐지만…”
먼저 해방공간의 정치상황에 대한 《노동자통일교과서》의 기술을 보자.
<분단은, 친일행위로 기득권을 챙겨왔던 이들에게 분단국가의 통치권력을 넘겨주게 하였다. 1945년 광복과 동시에 남과 북은 분단되고 남쪽은 미 군정 통치하에 단독정부가 수립되었다. 이 과정에 국가관리기능을 유지하겠다는 명분으로 일제시대 친일파들을 숙청하지 않고 주요 관직을 맡겼으며 그들이 쥐고 있던 모든 기득권을 그대로 유지시켜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그들의 권력은 대를 이어 계속되고 있다. 반면 항일 독립투쟁과 미 군정하의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여 투쟁했던 노동자 민중들은 철저히 탄압하고 배제했다. 이때 국가보안법이 탄생했고 미 군정과 이승만 정권에 대항하여 투쟁하는 노동자 민중들은 빨갱이, 좌경세력으로 매도당해 왔다.>(21~22쪽)
<해방 직후 태극기가 내걸렸던 조선총독부 건물에는 다시 일장기가 내걸리고 일장기가 내려진 자리에는 성조기가 휘날리게 되었다.
미 군정은 과거 일본 총독부의 지위와 체계를 그대로 인수하였다. 총독부 일본인 관리들은 그대로 유임되었고 이후에는 자문 역할로서 미 군정을 도왔다. 치안유지를 위해 급조한 경찰은 간부의 대부분이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자들로 그 횡포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중략) 해방은 됐지만 상황은 일제시대와 다를 바 없었다.>(62~63쪽)
이러한 인식은 북한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가 펴낸 《현대조선력사》 제2편(새 조국 건설, 조국해방전쟁) 제1장(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의 수행) 제1절(해방 후 조선의 정치정세)의 역사인식과 흡사하다. 그 내용을 보자.
<미제의 남조선 강점과 조선의 분열
(중략) 미제는 남조선을 강점하고 전 조선을 자기 손아귀에 넣으며 우리나라를 저들의 세계제패 계획을 실현하기 위한 전략적 요충으로 만들려고 타산하였다. (중략) 미제는 군정을 실시하면서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구를 그대로 존속시켰다. (중략)
미제는 일제의 통치기구들을 존속시키면서 경찰을 비롯한 일본관리들과 친일 조선인 관리들을 유임시켰으며 일제식민지 통치시기 법률까지도 그대로 적용하였다. (중략)
미제는 민주주의적 정당, 사회단체들의 활동을 각 방면으로 박해하고 탄압하였으며 저들의 식민지 예속화정책과 탄압정책에 반대, 항거하는 혁명가, 애국자들을 검거투옥하였다. (중략) 미제는 인민탄압에 날뛰면서 친일파, 민족반역자 등 반동분자들을 집결시키기에 급급하였으며 그들을 군정기관 내에 끌어들여 식민지 통치의 정치적 지반으로 삼았다.>
反託운동에 대해서도 부정적
과거 국사교과서는 반탁(反託)운동에 대해 한국의 자주독립을 늦추려는 강대국의 결정에 맞선 거족적(擧族的) 항거로 인식하면서, 좌익세력이 모스크바의 지령을 받아 그 대열에서 이탈한 것을 비판했었다. 하지만 《노동자통일교과서》는 신탁통치에 대해 긍정적 입장을 보이면서 반탁운동에 대해 비판적이다.
〈3상회의의 결정은 (중략) 명분으로 본다면 민주적 자치의 경험이 없는 조선의 건국단계에서 연합국의 ‘후견’을 당분간 제공한다는 합리적 방안이기도 했다. (중략) 동아일보의 오보로 인해 찬탁이냐, 반탁이냐를 놓고 상당한 혼선이 빚어졌다. 또 ‘소련이 주장한 신탁통치’를 찬성하는 세력은 ‘좌익’이라는 공식이 만들어졌고, 미 군정은 이를 ‘자기들에게 협조하지 않는 세력’을 제거하는 구실로 둔갑시킨다. 여론은 분열됐고, 소모적인 대립이 거듭되었다. 조선의 독립을 원치 않는 새로운 외세에 대항할 힘은 현저히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이 역시 《현대조선력사》의 인식과 흡사하다.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 결정이 실현되면 조선 또는 남조선을 식민지 예속화하려는 미제의 목적이 달성될 수 없었다. 그래서 이것을 반대하여야겠는데 이 결정에 서명한 미제 자신이 전면에 나서서 반대할 수는 없었다. 이로부터 미제는 3국 외상회의 결정이 신탁통치안이라는 왜곡된 견해를 은근히 유포시켜 즉시 독립을 염원하는 우리 인민대중에게 자극을 주는 한편 반동세력을 사촉하여(부추겨) ‘반탁운동’(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 결정을 반대하는 운동)을 일으키게 하였다. 그러므로 이 ‘반탁운동’은 신탁통치를 반대한다는 간판 밑에 실제로는 신탁통치(식민지 통치)를 실현케 하려는 매국적인 운동, 철저히 미제의 침략정책에 복무하는 배족적인 운동이었다. (중략)
5월 12일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 결정을 반대하는 반동분자들은 이른바 ‘독립전취대회’라는 관제행사를 벌여놓고 애국적 민주인사들의 ‘박멸’에 대하여서와 남조선 단독정부의 수립에 대하여 요란스럽게 떠들어댔다. 그들은 테러단의 시위행렬을 조직하고 민주주의 민족전선과 민주주의 정당, 사회단체들, 진보적인 출판기관들을 습격하였다. 이것은 ‘반탁운동’이 사실상 남조선 단독정부 수립을 획책한 것으로서 결국 미제의 민족분열정책에 장단을 맞춘 매국배족 행위라는 것을 자체 폭로한 것이었다.>
“이승만은 미국이 선택”
《노동자통일교과서》는 분단과정을 서술하면서 그 책임을 이승만에게 돌린다. <찬탁 반탁 분쟁 가운데 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자 이승만은 기다렸다는 듯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공개적으로 주장하기에 이른다. 그 시작이 바로 유명한 ‘정읍발언’(1946년 6월 3일)이다.>(59쪽)
《노동자통일교과서》는 1945년 9월 스탈린이 북한 지역에 친소정권의 수립을 지시했던 사실, 그리고 1946년 2월 북한에서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라는 사실상의 단독정권이 수립되었다는 사실은 외면하면서 마치 분단이 이승만의 ‘정읍발언’에서 비롯된 것인 것처럼 주장한다. 《노동자통일교과서》는 건국대통령 이승만을 이렇게 폄하한다.
<해방 직후 조선에는 민중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는 여운형, 김구, 김일성 등의 인물들이 있었으며 이들을 중심으로 새 조국을 건설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그와 상관없이 자신들의 정책을 지지할 만한 인물을 물색하였고 미국식 사고방식을 가진 이승만을 선택하였다.>(89쪽)
여운형·박헌영 등 좌익세력이 주도했던 조선인민공화국조차 이승만을 주석으로 추대했을 정도로 이승만의 명망이 압도적이었다거나, 이승만이 좌우합작을 추진하는 미 군정과 내내 불편한 관계에 있었던 사실을 외면하고, 대중적 지지나 인지도가 없는 이승만을 미국이 낙점한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은 《현대조선력사》에서 <미제는 이것으로도 마음이 안 놓여 저들의 오랜 주구인 이승만을 급히 미국으로부터 불러들여 반동의 주축으로 삼았다>고 한 대목을 연상케 한다.
이승만에 대한 폄하와는 반대로 1948년 4월 남북협상에 대한 《노동자통일교과서》의 기술은 호의적이다.
<이 같은 조선 민중의 의지를 대표해 조선 내 모든 정당, 사회단체 대표들은 남북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1948년 4월 29일, 평양)를 열고,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 반대와 자주독립국가 건설을 결의했다.>(60쪽)
여기서도 남북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가 소련 군정당국의 감독 아래 남북한의 친공(親共)정당과 사회단체들을 중심으로 해서 조직된 것이며, 김구와 김규식은 들러리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 또 연석회의가 진행 중이던 1948년 4월 28~29일 북조선인민회의 특별회의가 북한헌법 초안을 승인하는 회의를 여는 등 ‘북조선 단독정부’ 수립을 착착 진행하고 있었던 사실도 외면하고 있다. 《현대조선력사》의 관련 부분 기술을 살펴보자.
<3월 25일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은 ‘남조선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남조선 정당, 사회단체에 고함’이라는 공개서한과 남조선의 각당, 각파들에게 개별서한을 보내 1948년 4월 평양에서 남북연석회의를 열 것을 호소하였다. 민전의 호소는 전체 조선인민의 열광적인 환호 속에 남북조선의 모든 애국적 정당, 사회단체들의 일치한 호응을 받았다. 동요하던 남조선의 중간정치세력과 일부 극우익세력까지도 미제에 의하여 조성된 민족분열의 위기를 절감하고 남북연석회의 참가를 열렬히 희망하였다. (중략)
남북연석회의는 남북조선의 제정당, 사회단체 대표들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여앉아 조성된 민족적 위기를 타개할 구국대책을 토의하고 조국통일의 기치 밑에 사상과 이념, 제도와 신앙을 초월하여 전국의 모든 애국적 민주역량을 단합시켰으며 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위한 투쟁 앞에 새로운 전망을 열어놓았던 역사적인 회의였다. 회의는 김일성의 현명한 영도 밑에 조선인민은 능히 자기 문제를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가진 존엄 있는 민족이라는 것을 온 세상에 과시하였다.>
‘남침’ 언급 한번도 안 해
6·25전쟁과 관련해 《노동자통일교과서》는 대놓고 북침설(北侵說)을 주장하는 바보짓은 하지 않는다. 《노동자통일교과서》는 6·25를 해방 이후 누적된 좌우익 갈등과 남북 간 군사충돌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면서 전쟁 발발 책임을 흐리는 브루스 커밍스류의 수정주의(修正主義) 역사관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이는 1990년대 이후 공개된 구(舊) 소련문서 등을 통해 북한의 남침 사실이 변명의 여지없이 드러난 것을 모른 체하는 것이다.
<기록상으로 볼 때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개시되었다. 그러나 이는 마른 하늘에서 날벼락 치듯 갑자기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한 민중봉기로 시작하여 좌익세력이 주도한 게릴라전(이른바 빨치산)에 이르기까지 한국전쟁 전에 발생한 희생자만 10만명에 이른다. 남한 내에서뿐 아니라 38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 간의 중소규모 전투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전쟁은 이미 진행 중이었다.>(62쪽)
한반도 긴장
6·25 남침과 관련해 북한의 책임을 애써 외면하는 《노동자통일교과서》는 휴전 이후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는 그 책임을 미국과 한국에 전가(轉嫁)한다.
<북한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미국과의 대립 역사이다. 실제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끊임없는 체제 위협을 느끼고 있다.>(197쪽)
<우리는 지금까지 수많은 전쟁위기를 넘겨왔다. 주목할 것은 대부분의 전쟁위기가 남북 간 대결이 아니라 북미 간의 대결로 촉발되었다는 점이다. 1968년 푸에블로호 나포사건, 1969년 EC-121기 격추사건, 1976년 포플러나무 벌채사건 등으로 불거졌던 전쟁위기도 북미 간 대결이었고 1994년 이후부터 국제적 문제로 등장한 북핵문제도 사실상 북미 간 대결이 본질이다. 남과 북 대결로 전쟁위기를 초래한 것은 서해상(NLL)을 둘러싼 대결과 군사적 충돌 정도이다. 이마저도 NLL문제나 한미합동군사훈련 등을 고려해 보면 미국의 개입과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 외 1983년 아웅산 묘지 폭파사건, 1987년 KAL기 폭파사건, 2010년 천안함 침몰사건 등으로 남북의 긴장상황이 발생하기도 했으나, 이는 사건의 원인을 두고 남북 상호간 다툼이 있고 국내에서도 여러 가지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는 사건이므로 잠시 접어두자.>(29~30쪽)
2006년 6월 25일자 《노동신문》이 <전쟁의 화근은 제거되어야 한다>라는 글을 통해 “미제는 푸에블로호 사건, 판문점 사건 등 1950년대 이후에도 끊임없이 반 공화국(북) 도발사건을 일으켜 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지르려고 획책했다”고 주장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시각이다.
8·18사건은 미군 잘못인 것처럼 기술
당연한 얘기겠지만 《노동자통일교과서》는 1960년대 말의 1·21사태나 울진·삼척지구 무장공비침투사건, 1996년 강릉무장공비침투사건은 일언반구 언급조차 않고 있다.
《노동자통일교과서》는 푸에블로호 납치사건을 ‘나포’사건으로, 8·18 도끼만행사건을 ‘포플러나무 벌채사건’으로 지칭함으로써 ‘종북 본능’을 여지없이 과시한다. 8·18 도끼만행사건에 대한 《노동자통일교과서》의 기술을 보자.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 있는 포플러나무를 미군 측이 북한과 사전 상의 없이 벌채하려다 발생한 사건이다. 미군 장교 두 명이 시야를 방해하는 포플러나무를 도끼로 베려다가 이를 제지하려고 달려든 북한 경비병을 향해 도끼를 던졌다. 하지만 북한 경비병은 이 도끼를 맞받아 미군 장교 두 명에게 던졌는데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미국은 이를 ‘북한에 의한 잔학한 학살 사건’이라고 전 세계에 보도하였다.>
지난 2006년 8월 18일 북한 《노동신문》이 사건 30주년을 맞아 “철두철미하게 미제 침략군의 도발에 의해 일어난 판문점 사건은 미제가 조선반도 평화의 파괴자라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었다”면서 “미제 침략군을 하루빨리 남조선에서 철수시키는 것이 제2의 조선전쟁을 막는 길”이라고 주장한 것을 연상케 한다. 미국을 한반도 긴장의 주범으로 꼽는 것이나, 8·18 도끼만행사건의 책임을 미군에 전가하는 점에서 《노동자통일교과서》와 《노동신문》의 논조는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8·18 도끼만행사건은 미군이 북한 측 움직임을 감시하는 데 시야를 가리는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하려다 발생한 사건이다. 북한군이 작업을 제지하다 벌목 작업에 투입된 인부들의 도끼를 먼저 빼앗아 미군 장교 두 명을 타살했다. 미국이 동해상에 항공모함 전단과 폭격기를 전개하고, 다시 현장에 투입된 한국군 공수특전여단이 미루나무를 아예 베어버리는 등 응징 의지를 분명히 하자 김일성은 유감의 뜻을 표명했다. 이런 사건을 마치 미군에게 귀책사유가 있는 것처럼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연평도 포격은 한국군이 유발한 것처럼 묘사
2010년 천안함 폭침에 대해서는 남북 간 다툼과 국내의 의혹제기를 이유로 비껴간 《노동자통일교과서》는 북한이 도발한 연평도 포격사태에 대해서는 우리 측의 호국훈련에 그 원인이 있다고 호도한다.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에서 또 한 번의 전쟁위기의 공포를 경험하였다. 서해상(NLL)에서 호국훈련으로 촉발된 남북 군사적 충돌은 6·25 이후 최초로 민간인 희생을 초래해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호국훈련에 반발한 북한은 충돌 발생 당일 오전부터 수차례 사격중단 요청 전통문을 보냈지만 남측은 이를 무시하고 훈련을 강행한다.>(22쪽)
이는 북한 《노동신문》이 연평도 포격 직후인 2010년 11월 28일 “정정당당한 자위권 행사”라고 주장한 것이나, 북한의 대남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가 2011년 11월 23일 “연평도 사건은 지난해에 남조선 군부 호전광들이 우리 군대의 거듭되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포사격 훈련을 감행하여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한 것과 똑같다.
反美
《노동자통일교과서》는 첫머리부터 “한국사회는 지나치게 친미 지향적인 사회”라고 주장한다. 한미관계의 불평등성을 강조하면서 《노동자통일교과서》는 주한미군 범죄와 효순이·미선이 사건을 되풀이 언급한다.
<대통령이 뼛속까지 친미주의자일 뿐 아니라, 정치, 경제계, 문화계, 학계 등 한국사회 거의 모든 지도층이 미국 유학을 필수처럼 생각하고 미국식 세계관이 뼛속까지 들어찬 친미주의자들이다. (중략) 주한미군에 의해 억울하게 죽은 미선이 효순이 재판 등 일일이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중략)
‘한미동맹’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군사적으로,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미국으로부터 어느 하나 자유롭지 못한 현실은 전혀 개선되고 있지 못하다. 한미동맹은, 미국은 우리에게 장밋빛 미래일까. 미국만이 우리의 대안일까. 선택권조차 주어져 있지 못한 것이 지금의 한국사회 현실이다.>(12쪽)
효순·미선 사건 매개로 미군 비난
이를 북한 매체의 대남 선전선동과 비교해 보자.
<미제에 의해 억울하게 숨진 효순이와 미선이의 넋은 남조선 인민들이 10년 전 온 남녘땅을 뒤덮었던 거대한 항거의 촛불바다를 다시금 펼쳐줄 것을 애타게 호소하고 있다.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학생 학살사건은 미국의 오만성, 야수적 본성과 함께 남조선 친미사대 매국노들의 죄악을 낱낱이 고발하고 있다. 남조선에서 미군을 몰아내고 보수패당의 친미사대 매국정책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2012년 6월 13일자 《노동신문》)
<미군에 의한 여학생 학살사건이 있은 때로부터 1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남조선에서는 아직도 미군의 범죄행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남조선에서 미군에 의한 침략과 약탈, 살인과 강간, 폭행이 그칠 새 없이 감행되는 것은 이명박과 같은 역적배들이 외세에 아부 굴종하기 때문이다.>(2012년 6월 13일자 《노동신문》)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휴전 이후 남북 간 긴장관계를 언급하면서 “대부분의 전쟁위기가 남북 간 대결이 아니라 북미 간의 대결로 촉발되었다”고 주장한 《노동자통일교과서》는 이후에도 미국과 주한미군이 한반도 긴장의 주범이라고 되풀이 주장한다.
<한미동맹은 종종 ‘보험’에 비유된다. 그러나 이 보험은 ‘북한의 남침’으로부터 보호해 준다는 한미동맹 존재의 첫 번째 근거가 지켜지지 않아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우선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북-미 간의 무력충돌이 한반도 평화를 가장 위태롭게 하는 요인으로 되고 있기 때문이다.>(93쪽)
<전 세계에서 미국이 한 지역에서 5개의 전쟁계획을 갖고 있는 곳은 한반도가 유일하다.>(95쪽)
<작전계획 5027의 변천과정을 보면 (중략) 이는 미국이 탈냉전 이후 북한에 대한 전쟁위협 강도가 더욱 심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97쪽)
“키리졸브 훈련은 북침 전쟁연습”
《노동자통일교과서》는 특히 한미 양국의 전시(戰時)증원 훈련인 키리졸브 훈련에 대해 특히 비판적이다.
<한미연합사는 키리졸브/독수리 훈련이 연례적 방어훈련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훈련은 훈련의 목적, 동원되는 병력과 물자, 지휘체계를 보았을 때, 선제공격용일 뿐 아니라 핵전쟁 훈련임이 분명하다.>(99쪽)
이러한 기술은 키리졸브 훈련 및 독수리 훈련에 대한 북한의 비난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올해 키리졸브/독수리 훈련을 앞둔 지난 2월 7일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가 “이번 전쟁연습 책동은 단순한 군사훈련이 아니라 실전으로 넘어가기 위한 위험한 불장난”이라고 한 것이나 평양방송이 2월 27일 “이번 연습은 우리 공화국을 노린 핵시험 전쟁, 예비전쟁”이라고 주장한 것이 그 예이다. 2010년 3월 7일에는 북한군 판문점대표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이번 연습의 성격 자체가 핵전쟁 연습, 북침전쟁 연습”이라고 주장하면서 비핵화(非核化) 과정 중단을 선언하기도 했다.
《노동자통일교과서》는 주한미군 분담금이나 평택 미군기지 이전 비용 등을 거론하면서 이렇게 주장한다.
<과연 한미동맹은 국익을 가져다주는가? 오히려 한국의 군사비를 잡아먹는 거대한 해충은 아닌지 검토해 보아야 한다. 미국에서는 복지정책을 종종 국방비 감소와 함께 이야기하는데, 한국도 복지논쟁이 뜨거운 요즘 군사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116쪽)
<한국 정부는 그동안 누구에게 더 많이 퍼주기를 해왔는가? ‘퍼주기’의 대상이 북한이 아닌 주한미군은 아닌지 생각해 보자.>(119쪽)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이 2006년 8월 28일 <강점자, 지배자의 오만한 전횡>이라는 글에서 “미국은 남조선과 해마다 ‘방위비분담금협상’이라는 것을 벌여 놓고 강박 절반, 회유 절반으로 미군 유지비를 눈덩이 굴리듯 불리고 있다”면서 “제반 사실은 남조선-미국 동맹이라는 것은 평등하고 진실한 우방관계가 아니라 정치, 경제, 군사 등 모든 분야에서 미국에 철저히 지배되는 종속관계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던 것을 연상케 한다.
주한미군 범죄나 주한미군으로 인한 전쟁위협에 대한 주장은 필연적으로 주한미군 철수 주장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노동자통일교과서》의 기술을 보자.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주둔 문제를 성역화하면서 논쟁하는 것 자체를 금기시하는 분위기는 극복되어야 한다. (중략) 한반도가 분단되어 있고 한미동맹이 유지되는 한 사라지지 않을, 주한미군 문제를 모두가 동일하게 공감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시도들은 반드시 필요하다.>(123쪽)
이러한 논리는 북한이 일관되게 주장해 온 것이기도 하다. 일례로 올해 1월 12일자 《노동신문》은 <미제침략군을 남조선에서 하루빨리 철수시켜야 한다>는 ‘정론’에서 “조선반도에서 전쟁을 막고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조미 사이의 불안정한 정전상태를 하루빨리 끝장내고 항구적인 평화보장체계를 수립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주장했고, 2006년 6월 25일에는 “미국이 진심으로 북침 의사가 없고 조선반도(한반도)의 평화를 바란다면 미군을 남조선에서 하루빨리 철수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노동자통일교과서》는 북한 식량난의 책임마저 미국으로 돌린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북의 식량부족사태는 북 체제 문제이기 전에 국토지형 조건상의 문제이며 미국의 경제봉쇄조치 등으로 국제사회로부터 수입할 수 있는 통로가 막혀 있는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다.>(16쪽)
北核문제
지금까지 보아온 친북반미 논조의 연장선상에서 《노동자통일교과서》는 북핵문제에 대해서도 북한의 입장을 두호(斗護)한다. 《노동자통일교과서》의 북핵문제와 관련된 기술을 보자.
<북한은 1992년 1월 30일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핵안전협정을 체결했다. 더불어 1992년 2월부터 6차례의 핵사찰을 받았다. 그러나 미국은 다시 북한의 핵을 문제 삼기 시작했다.
IAEA는 북한이 미신고한 연변 2개 기지에 대한 특별사찰을 요구했다. (중략) 거기에 미국은 1992년 계속되어 오던 북미대화협상안에 인권문제와 미사일 수출 금지 등을 갑자기 추가시키려고 하면서 북미 간의 대화는 수포로 돌아간다. (중략) 북한은 이에 1993년 2월 12일 NPT 탈퇴를 선언한다. (중략) 미국은 북한을 군사적으로 압박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중략)
가까스로 북미 간에는 대화와 협상을 통해 1994년 제네바합의가 이뤄졌다. 미국은 북한의 경제제재를 정상화하고 북한은 핵연료봉을 봉인하고 핵발전소를 중단하여 경수로 등을 지급받기로 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러한 합의사항을 거의 지키지 않았다. 북미 간의 대립은 계속되었다. 미국은 1998년 북한의 금창리 동굴에 대한 핵개발 의혹을 제기하고 2002년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는 등 압박을 계속해 왔다. 그리고 결국 북한은 핵보유 선언과 미사일 발사, 핵실험, 광명성 발사 등으로 ‘핵보유국’임을 천명하게 된다.>(198~199쪽)
<실제 북한 핵개발의 원인과 역사적 배경을 따지다 보면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자위적 수단으로 개발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103쪽)
북핵에 대한 《노동자통일교과서》의 기술은, 북한의 핵개발이 미국의 부당한 압력에 대한 정당한 자위행위(自衛行爲)인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러한 논리구조는 북한의 주장 그대로다.
일례로 북한 외무성은 2006년 10월 3일 핵실험을 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북한의 핵보유는 이제 공공연한 사실”
<우리는 현 미 행정부가 조미 기본합의문을 뒤집고 우리의 자주권과 생존권을 엄중히 위협한 데 맞서 불가피하게 핵무기 전파 방지조약에서 탈퇴하였다. 미국의 핵전쟁 위협과 제재 압력 책동이 계단식으로 확대되는 데 따라 우리는 투명한 대응 과정을 거쳐 합법적으로 현대적인 핵무기를 만들었다는 것을 공식 선포하였다. 핵무기 보유 선포는 핵시험을 전제로 한 것이다. 미국의 극단적인 핵전쟁 위협과 제재 압력 책동은 우리로 하여금 상응한 방어적 대응 조치로써 핵 억제력 확보의 필수적인 공정상 요구인 핵시험을 진행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중략)
자기의 믿음직한 전쟁 억제력이 없으면 인민이 억울하게 희생당하고 나라의 자주권이 여지없이 농락당하게 된다는 것은 오늘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약육강식의 유혈 참극들이 보여주는 피의 교훈이다. 우리의 핵무기는 철두철미 미국의 침략 위협에 맞서 우리 국가의 최고 이익과 우리 민족의 안전을 지키며 조선반도에서 새 전쟁을 막고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는 믿음직한 전쟁 억제력이 될 것이다.>
북한 중앙통신은 올해 2월 29일 서울 핵안보정상회의를 앞두고 낸 논평에서도 “조선반도에서 실질적인 핵안전과 평화가 이루어지자면 미국과 남조선 괴뢰들의 핵위협부터 완전히 제거돼야 한다”면서 “지금 우리 공화국의 자위적 핵억제력은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전의 위력한 담보”라고 주장했다.
《노동자통일교과서》도 북한은 핵보유국이며, 북핵이 ‘전쟁억지력’이라는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북한의 핵보유는 이제 의혹이 아니라 공공연한 사실이 되었다. (중략) 그리고 이는 북한이 위험국가로 분류되는 이유이자, 또 북한을 쉽게 공격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201쪽)
북한인권과 3代 세습, 통일
《노동자통일교과서》는 북한인권 문제에서도 북한의 입장을 열심히 대변하고 있다.
<북한인권 비판의 두 가지 화두는 기본권과 생존권이다. 기본적으로 주어져야 하는 천부 인권을 사회제도가 가로막고 있다는 것과 굶는 사람들을 외면한다는 생존권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북한인권에 대한 오해는 사회주의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거나, 북한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발생하는 경우도 많다. (중략) 북한은 서방식에서 주장하는 인권의 개념을 무조건적으로 자기들에게 적용시키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중략) 국권의 수호가 인권에 우선하며, 자주권이 수호될 때 인권이 보장될 수 있다는, 즉 인권은 즉 국권이라는 ‘우리식 인권’을 주장하고 있다.>(215~216쪽)
이런 주장은 유엔 등에서 북한인권이 문제될 때마다 북한 정권이나 외교관들이 늘 하는 소리다. 《노동자통일교과서》는 이러한 주장을 여과없이 소개하면서 “1998년 사회주의 헌법 개정 시 거주와 여행의 자유조항(제75조)을 신설하였고, 유엔인권이사회 권고에 따라 유추해석 조항(구형법 제10조)을 폐지하고 죄형법정주의를 수용하는 조항(형법 제6조)을 신설한 바 있다”(217쪽)고 기술하는 등 북한의 인권개선 노력을 열심히 소개하고 있다.
최근 이슈가 된 탈북자 송환문제에 대해서는 친북 성향의 학자인 백학순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의 입을 빌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말하는 탈북자 북송문제는 인권, 생명권 자체 관점보다도 이 문제를 앞세우는 사람들의 정치적 접근 차원으로 보인다”고 비판한다. 탈북자들의 북한인권 실태에 대한 증언이 전혀 없는 것은 물론이다.
3대 세습에 대한 북한 논리 소개
《노동자통일교과서》는 3대 세습에 대해서는 그 본질보다는 북한의 ‘내재적 논리’에 따라 접근한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상이고 이데올로기다. (중략) 결국 권력을 이양하는 것은 그러한 이데올로기를 어떻게 안정적으로 이양시키느냐의 문제이다. (중략) 이러한 가운데 북한은 후계자는 그 이전 지도자의 뜻을 충실히 이행하고, 실천해 가야 하는 사람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고 이를 이론화한다. 그러한 가운데 자신들의 후계자를 선출하고 내세우는 것이다. 그것이 왜 ‘아들이어야 하느냐’는 문제에 대해서는 북한은 거론할 이유가 없다고 답한다. 아들이어서가 아니라, 가장 훌륭한 지도자를 후계로 내세워야 한다는 것이다.>(221~222쪽)
이처럼 북한을 존중하는 《노동자통일교과서》는 통일문제에 대해 ‘체제공존형 통일’을 주장한다.
<만일 통일을 체제통합을 통해서 해결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남과 북의 평화적 통일은 불가능하다. (중략) 그 답은 6·15선언과 10·4정상선언에 있다. (중략) 남북의 정상들은 대결과 전쟁을 부르는 체제통합적 통일이 아닌 남과 북의 상호체제를 인정함과 동시에 존중하며 공동번영할 수 있도록 상호체체공존형 통일을 이루기로 합의하였다. 체제공존형 통일이란, 남측의 자본주의와 북측의 사회주의 체제를 그대로 인정하고 민족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통일을 말한다.>
역사상 통일에는 ‘체제통합형 통일’이 있을 뿐, ‘체제공존형 통일’은 있어본 적이 없었다. 다만 무력에 의해서냐(베트남), 일방의 체제붕괴와 대화(동서독)를 통해서냐가 달랐을 뿐이다. 이러한 ‘체제공존형 통일’, 즉 연방제 통일방안은 북한이 1960년대 이래 지속적으로 주장해 왔고 1980년 조선노동당 6차대회에서 내놓은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북남이 상대방의 사상과 제도를 인정하고 용납하는 기초 위에서 민족통일정부를 수립”)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왜 필자와 책을 공개하지 않나?
그 밖에도 《노동자통일교과서》는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을 선진국 문턱에 올려놓은 수출지향형 발전모델을 폄하하고, ‘민족자립경제’를 내세워 1950년대 이래 좌파들이 주장해 온 ‘내포적 근대화론’으로의 회귀를 종용하며, 한미FTA를 반대한다. 통일이 될 경우 ‘대륙경제’로의 편입과 북한의 풍부한(?) 지하자원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환상을 고무한다. 2000년대 이후 북한이 추진해 온 개혁개방 노력이 제법 실체가 있는 것처럼 부풀려 보고, 북한의 과학기술능력이 미국·독일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치켜세우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계량적 증거는 제시하지 못한다. 북한을 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나 브라질 룰라의 사회주의처럼 수많은 사회주의 가운데 하나로 이해해 보자고 호소하는가 하면, 미국과 자본주의 이외에 다른 대안을 갖고 있지 못한 한국의 현실을 통탄한다. 실제적 근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매사 어떻게든 북한의 역성만 들려고 하는 모습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자신들의 입장이 옹색하다는 것을 민노총 스스로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전교조가 11년 전 《이 겨레 살리는 통일》의 필진을 공개하고 책을 대형서점 등에서 시판했던 것과는 달리, 《노동자통일교과서》는 필자가 누군지 밝히지도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책이 나온 지 두 달이 지나도록 자기들끼리만 돌려보고 있으니 말이다.⊙
<취재지원=장애리·이한솔 월간조선 인턴기자>
《노동자통일교과서》는 현대사 인식, 남북관계, 한미(韓美)동맹, 북핵(北核)문제, 3대 세습, 북한인권 등에 대해 철저히 ‘내재적(內在的) 접근’, 다시 말해 북한의 입장에서 기술(記述)하고 있다. 이 책은 민노총 통일위원회에서 낸 것으로 되어 있다. 그 필자가 누구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북한의 입장을 두둔하는 좌파(左派)학자나 중국학자들의 의견을 다수 인용한 것이 눈에 뜨인다.
유동렬 치안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은 “2001년 전교조 통일위원회가 펴냈던 《이 겨레 살리는 통일》의 경우, 표현만 조금 바꾸었을 뿐 북한 문건을 거의 그대로 가져다 썼기 때문에 그 출전을 파악하기가 비교적 쉬웠다”면서 “《노동자통일교과서》는 지능적으로 편집해서 문건의 출처를 북한으로 단정 짓기 어렵게 해놓았지만, 그 내용은 일관되게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자통일교과서》의 문제점들을 짚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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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5월 1일 민노총과 한국노총 등 양대 노총 주최로 경남 창원시 창원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남북노동자대회에 참가한 북한 노동자대표단이 한반도기를 흔들며 입장하고 있다. |
역사인식
《노동자통일교과서》에 나타난 현대사 인식은 분단의 책임을 한국 보수세력과 미국에 돌리고, 친일파 청산 실패를 강조하면서, 6·25 남침(南侵)에 대한 북한의 책임을 외면한다. 1980년대 이후 우리 사회에서 풍미하게 된 이러한 역사인식은 북한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에서 펴낸 《현대조선력사》(1985년판)에 나타난 역사인식과 흡사하다.
“해방은 됐지만…”
먼저 해방공간의 정치상황에 대한 《노동자통일교과서》의 기술을 보자.
<분단은, 친일행위로 기득권을 챙겨왔던 이들에게 분단국가의 통치권력을 넘겨주게 하였다. 1945년 광복과 동시에 남과 북은 분단되고 남쪽은 미 군정 통치하에 단독정부가 수립되었다. 이 과정에 국가관리기능을 유지하겠다는 명분으로 일제시대 친일파들을 숙청하지 않고 주요 관직을 맡겼으며 그들이 쥐고 있던 모든 기득권을 그대로 유지시켜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그들의 권력은 대를 이어 계속되고 있다. 반면 항일 독립투쟁과 미 군정하의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여 투쟁했던 노동자 민중들은 철저히 탄압하고 배제했다. 이때 국가보안법이 탄생했고 미 군정과 이승만 정권에 대항하여 투쟁하는 노동자 민중들은 빨갱이, 좌경세력으로 매도당해 왔다.>(21~22쪽)
<해방 직후 태극기가 내걸렸던 조선총독부 건물에는 다시 일장기가 내걸리고 일장기가 내려진 자리에는 성조기가 휘날리게 되었다.
미 군정은 과거 일본 총독부의 지위와 체계를 그대로 인수하였다. 총독부 일본인 관리들은 그대로 유임되었고 이후에는 자문 역할로서 미 군정을 도왔다. 치안유지를 위해 급조한 경찰은 간부의 대부분이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자들로 그 횡포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중략) 해방은 됐지만 상황은 일제시대와 다를 바 없었다.>(62~63쪽)
이러한 인식은 북한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가 펴낸 《현대조선력사》 제2편(새 조국 건설, 조국해방전쟁) 제1장(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의 수행) 제1절(해방 후 조선의 정치정세)의 역사인식과 흡사하다. 그 내용을 보자.
<미제의 남조선 강점과 조선의 분열
(중략) 미제는 남조선을 강점하고 전 조선을 자기 손아귀에 넣으며 우리나라를 저들의 세계제패 계획을 실현하기 위한 전략적 요충으로 만들려고 타산하였다. (중략) 미제는 군정을 실시하면서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구를 그대로 존속시켰다. (중략)
미제는 일제의 통치기구들을 존속시키면서 경찰을 비롯한 일본관리들과 친일 조선인 관리들을 유임시켰으며 일제식민지 통치시기 법률까지도 그대로 적용하였다. (중략)
미제는 민주주의적 정당, 사회단체들의 활동을 각 방면으로 박해하고 탄압하였으며 저들의 식민지 예속화정책과 탄압정책에 반대, 항거하는 혁명가, 애국자들을 검거투옥하였다. (중략) 미제는 인민탄압에 날뛰면서 친일파, 민족반역자 등 반동분자들을 집결시키기에 급급하였으며 그들을 군정기관 내에 끌어들여 식민지 통치의 정치적 지반으로 삼았다.>
反託운동에 대해서도 부정적
과거 국사교과서는 반탁(反託)운동에 대해 한국의 자주독립을 늦추려는 강대국의 결정에 맞선 거족적(擧族的) 항거로 인식하면서, 좌익세력이 모스크바의 지령을 받아 그 대열에서 이탈한 것을 비판했었다. 하지만 《노동자통일교과서》는 신탁통치에 대해 긍정적 입장을 보이면서 반탁운동에 대해 비판적이다.
〈3상회의의 결정은 (중략) 명분으로 본다면 민주적 자치의 경험이 없는 조선의 건국단계에서 연합국의 ‘후견’을 당분간 제공한다는 합리적 방안이기도 했다. (중략) 동아일보의 오보로 인해 찬탁이냐, 반탁이냐를 놓고 상당한 혼선이 빚어졌다. 또 ‘소련이 주장한 신탁통치’를 찬성하는 세력은 ‘좌익’이라는 공식이 만들어졌고, 미 군정은 이를 ‘자기들에게 협조하지 않는 세력’을 제거하는 구실로 둔갑시킨다. 여론은 분열됐고, 소모적인 대립이 거듭되었다. 조선의 독립을 원치 않는 새로운 외세에 대항할 힘은 현저히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이 역시 《현대조선력사》의 인식과 흡사하다.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 결정이 실현되면 조선 또는 남조선을 식민지 예속화하려는 미제의 목적이 달성될 수 없었다. 그래서 이것을 반대하여야겠는데 이 결정에 서명한 미제 자신이 전면에 나서서 반대할 수는 없었다. 이로부터 미제는 3국 외상회의 결정이 신탁통치안이라는 왜곡된 견해를 은근히 유포시켜 즉시 독립을 염원하는 우리 인민대중에게 자극을 주는 한편 반동세력을 사촉하여(부추겨) ‘반탁운동’(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 결정을 반대하는 운동)을 일으키게 하였다. 그러므로 이 ‘반탁운동’은 신탁통치를 반대한다는 간판 밑에 실제로는 신탁통치(식민지 통치)를 실현케 하려는 매국적인 운동, 철저히 미제의 침략정책에 복무하는 배족적인 운동이었다. (중략)
5월 12일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 결정을 반대하는 반동분자들은 이른바 ‘독립전취대회’라는 관제행사를 벌여놓고 애국적 민주인사들의 ‘박멸’에 대하여서와 남조선 단독정부의 수립에 대하여 요란스럽게 떠들어댔다. 그들은 테러단의 시위행렬을 조직하고 민주주의 민족전선과 민주주의 정당, 사회단체들, 진보적인 출판기관들을 습격하였다. 이것은 ‘반탁운동’이 사실상 남조선 단독정부 수립을 획책한 것으로서 결국 미제의 민족분열정책에 장단을 맞춘 매국배족 행위라는 것을 자체 폭로한 것이었다.>
“이승만은 미국이 선택”
《노동자통일교과서》는 분단과정을 서술하면서 그 책임을 이승만에게 돌린다. <찬탁 반탁 분쟁 가운데 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자 이승만은 기다렸다는 듯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공개적으로 주장하기에 이른다. 그 시작이 바로 유명한 ‘정읍발언’(1946년 6월 3일)이다.>(59쪽)
《노동자통일교과서》는 1945년 9월 스탈린이 북한 지역에 친소정권의 수립을 지시했던 사실, 그리고 1946년 2월 북한에서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라는 사실상의 단독정권이 수립되었다는 사실은 외면하면서 마치 분단이 이승만의 ‘정읍발언’에서 비롯된 것인 것처럼 주장한다. 《노동자통일교과서》는 건국대통령 이승만을 이렇게 폄하한다.
<해방 직후 조선에는 민중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는 여운형, 김구, 김일성 등의 인물들이 있었으며 이들을 중심으로 새 조국을 건설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그와 상관없이 자신들의 정책을 지지할 만한 인물을 물색하였고 미국식 사고방식을 가진 이승만을 선택하였다.>(89쪽)
여운형·박헌영 등 좌익세력이 주도했던 조선인민공화국조차 이승만을 주석으로 추대했을 정도로 이승만의 명망이 압도적이었다거나, 이승만이 좌우합작을 추진하는 미 군정과 내내 불편한 관계에 있었던 사실을 외면하고, 대중적 지지나 인지도가 없는 이승만을 미국이 낙점한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은 《현대조선력사》에서 <미제는 이것으로도 마음이 안 놓여 저들의 오랜 주구인 이승만을 급히 미국으로부터 불러들여 반동의 주축으로 삼았다>고 한 대목을 연상케 한다.
이승만에 대한 폄하와는 반대로 1948년 4월 남북협상에 대한 《노동자통일교과서》의 기술은 호의적이다.
<이 같은 조선 민중의 의지를 대표해 조선 내 모든 정당, 사회단체 대표들은 남북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1948년 4월 29일, 평양)를 열고,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 반대와 자주독립국가 건설을 결의했다.>(60쪽)
여기서도 남북제정당사회단체연석회의가 소련 군정당국의 감독 아래 남북한의 친공(親共)정당과 사회단체들을 중심으로 해서 조직된 것이며, 김구와 김규식은 들러리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 또 연석회의가 진행 중이던 1948년 4월 28~29일 북조선인민회의 특별회의가 북한헌법 초안을 승인하는 회의를 여는 등 ‘북조선 단독정부’ 수립을 착착 진행하고 있었던 사실도 외면하고 있다. 《현대조선력사》의 관련 부분 기술을 살펴보자.
<3월 25일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은 ‘남조선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남조선 정당, 사회단체에 고함’이라는 공개서한과 남조선의 각당, 각파들에게 개별서한을 보내 1948년 4월 평양에서 남북연석회의를 열 것을 호소하였다. 민전의 호소는 전체 조선인민의 열광적인 환호 속에 남북조선의 모든 애국적 정당, 사회단체들의 일치한 호응을 받았다. 동요하던 남조선의 중간정치세력과 일부 극우익세력까지도 미제에 의하여 조성된 민족분열의 위기를 절감하고 남북연석회의 참가를 열렬히 희망하였다. (중략)
남북연석회의는 남북조선의 제정당, 사회단체 대표들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여앉아 조성된 민족적 위기를 타개할 구국대책을 토의하고 조국통일의 기치 밑에 사상과 이념, 제도와 신앙을 초월하여 전국의 모든 애국적 민주역량을 단합시켰으며 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위한 투쟁 앞에 새로운 전망을 열어놓았던 역사적인 회의였다. 회의는 김일성의 현명한 영도 밑에 조선인민은 능히 자기 문제를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가진 존엄 있는 민족이라는 것을 온 세상에 과시하였다.>
‘남침’ 언급 한번도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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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자통일교과서》는 6·25전쟁과 관련해 기술하면서 ‘남침’이라는 표현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다. |
<기록상으로 볼 때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개시되었다. 그러나 이는 마른 하늘에서 날벼락 치듯 갑자기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한 민중봉기로 시작하여 좌익세력이 주도한 게릴라전(이른바 빨치산)에 이르기까지 한국전쟁 전에 발생한 희생자만 10만명에 이른다. 남한 내에서뿐 아니라 38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 간의 중소규모 전투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전쟁은 이미 진행 중이었다.>(62쪽)
한반도 긴장
6·25 남침과 관련해 북한의 책임을 애써 외면하는 《노동자통일교과서》는 휴전 이후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는 그 책임을 미국과 한국에 전가(轉嫁)한다.
<북한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미국과의 대립 역사이다. 실제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끊임없는 체제 위협을 느끼고 있다.>(197쪽)
<우리는 지금까지 수많은 전쟁위기를 넘겨왔다. 주목할 것은 대부분의 전쟁위기가 남북 간 대결이 아니라 북미 간의 대결로 촉발되었다는 점이다. 1968년 푸에블로호 나포사건, 1969년 EC-121기 격추사건, 1976년 포플러나무 벌채사건 등으로 불거졌던 전쟁위기도 북미 간 대결이었고 1994년 이후부터 국제적 문제로 등장한 북핵문제도 사실상 북미 간 대결이 본질이다. 남과 북 대결로 전쟁위기를 초래한 것은 서해상(NLL)을 둘러싼 대결과 군사적 충돌 정도이다. 이마저도 NLL문제나 한미합동군사훈련 등을 고려해 보면 미국의 개입과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 외 1983년 아웅산 묘지 폭파사건, 1987년 KAL기 폭파사건, 2010년 천안함 침몰사건 등으로 남북의 긴장상황이 발생하기도 했으나, 이는 사건의 원인을 두고 남북 상호간 다툼이 있고 국내에서도 여러 가지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는 사건이므로 잠시 접어두자.>(29~30쪽)
2006년 6월 25일자 《노동신문》이 <전쟁의 화근은 제거되어야 한다>라는 글을 통해 “미제는 푸에블로호 사건, 판문점 사건 등 1950년대 이후에도 끊임없이 반 공화국(북) 도발사건을 일으켜 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지르려고 획책했다”고 주장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시각이다.
8·18사건은 미군 잘못인 것처럼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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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자통일교과서》는 8·18 도끼만행사건이 미군의 잘못으로 벌어진 것처럼 기술하고 있다. |
《노동자통일교과서》는 푸에블로호 납치사건을 ‘나포’사건으로, 8·18 도끼만행사건을 ‘포플러나무 벌채사건’으로 지칭함으로써 ‘종북 본능’을 여지없이 과시한다. 8·18 도끼만행사건에 대한 《노동자통일교과서》의 기술을 보자.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 있는 포플러나무를 미군 측이 북한과 사전 상의 없이 벌채하려다 발생한 사건이다. 미군 장교 두 명이 시야를 방해하는 포플러나무를 도끼로 베려다가 이를 제지하려고 달려든 북한 경비병을 향해 도끼를 던졌다. 하지만 북한 경비병은 이 도끼를 맞받아 미군 장교 두 명에게 던졌는데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미국은 이를 ‘북한에 의한 잔학한 학살 사건’이라고 전 세계에 보도하였다.>
지난 2006년 8월 18일 북한 《노동신문》이 사건 30주년을 맞아 “철두철미하게 미제 침략군의 도발에 의해 일어난 판문점 사건은 미제가 조선반도 평화의 파괴자라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었다”면서 “미제 침략군을 하루빨리 남조선에서 철수시키는 것이 제2의 조선전쟁을 막는 길”이라고 주장한 것을 연상케 한다. 미국을 한반도 긴장의 주범으로 꼽는 것이나, 8·18 도끼만행사건의 책임을 미군에 전가하는 점에서 《노동자통일교과서》와 《노동신문》의 논조는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8·18 도끼만행사건은 미군이 북한 측 움직임을 감시하는 데 시야를 가리는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하려다 발생한 사건이다. 북한군이 작업을 제지하다 벌목 작업에 투입된 인부들의 도끼를 먼저 빼앗아 미군 장교 두 명을 타살했다. 미국이 동해상에 항공모함 전단과 폭격기를 전개하고, 다시 현장에 투입된 한국군 공수특전여단이 미루나무를 아예 베어버리는 등 응징 의지를 분명히 하자 김일성은 유감의 뜻을 표명했다. 이런 사건을 마치 미군에게 귀책사유가 있는 것처럼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연평도 포격은 한국군이 유발한 것처럼 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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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자통일교과서》는 北의 연평도 포격사태도 우리 군의 호국훈련으로 인해 야기된 것처럼 주장한다. |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에서 또 한 번의 전쟁위기의 공포를 경험하였다. 서해상(NLL)에서 호국훈련으로 촉발된 남북 군사적 충돌은 6·25 이후 최초로 민간인 희생을 초래해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호국훈련에 반발한 북한은 충돌 발생 당일 오전부터 수차례 사격중단 요청 전통문을 보냈지만 남측은 이를 무시하고 훈련을 강행한다.>(22쪽)
이는 북한 《노동신문》이 연평도 포격 직후인 2010년 11월 28일 “정정당당한 자위권 행사”라고 주장한 것이나, 북한의 대남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가 2011년 11월 23일 “연평도 사건은 지난해에 남조선 군부 호전광들이 우리 군대의 거듭되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포사격 훈련을 감행하여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한 것과 똑같다.
反美
《노동자통일교과서》는 첫머리부터 “한국사회는 지나치게 친미 지향적인 사회”라고 주장한다. 한미관계의 불평등성을 강조하면서 《노동자통일교과서》는 주한미군 범죄와 효순이·미선이 사건을 되풀이 언급한다.
<대통령이 뼛속까지 친미주의자일 뿐 아니라, 정치, 경제계, 문화계, 학계 등 한국사회 거의 모든 지도층이 미국 유학을 필수처럼 생각하고 미국식 세계관이 뼛속까지 들어찬 친미주의자들이다. (중략) 주한미군에 의해 억울하게 죽은 미선이 효순이 재판 등 일일이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중략)
‘한미동맹’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군사적으로,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미국으로부터 어느 하나 자유롭지 못한 현실은 전혀 개선되고 있지 못하다. 한미동맹은, 미국은 우리에게 장밋빛 미래일까. 미국만이 우리의 대안일까. 선택권조차 주어져 있지 못한 것이 지금의 한국사회 현실이다.>(12쪽)
효순·미선 사건 매개로 미군 비난
이를 북한 매체의 대남 선전선동과 비교해 보자.
<미제에 의해 억울하게 숨진 효순이와 미선이의 넋은 남조선 인민들이 10년 전 온 남녘땅을 뒤덮었던 거대한 항거의 촛불바다를 다시금 펼쳐줄 것을 애타게 호소하고 있다.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학생 학살사건은 미국의 오만성, 야수적 본성과 함께 남조선 친미사대 매국노들의 죄악을 낱낱이 고발하고 있다. 남조선에서 미군을 몰아내고 보수패당의 친미사대 매국정책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2012년 6월 13일자 《노동신문》)
<미군에 의한 여학생 학살사건이 있은 때로부터 1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남조선에서는 아직도 미군의 범죄행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남조선에서 미군에 의한 침략과 약탈, 살인과 강간, 폭행이 그칠 새 없이 감행되는 것은 이명박과 같은 역적배들이 외세에 아부 굴종하기 때문이다.>(2012년 6월 13일자 《노동신문》)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휴전 이후 남북 간 긴장관계를 언급하면서 “대부분의 전쟁위기가 남북 간 대결이 아니라 북미 간의 대결로 촉발되었다”고 주장한 《노동자통일교과서》는 이후에도 미국과 주한미군이 한반도 긴장의 주범이라고 되풀이 주장한다.
<한미동맹은 종종 ‘보험’에 비유된다. 그러나 이 보험은 ‘북한의 남침’으로부터 보호해 준다는 한미동맹 존재의 첫 번째 근거가 지켜지지 않아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우선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북-미 간의 무력충돌이 한반도 평화를 가장 위태롭게 하는 요인으로 되고 있기 때문이다.>(93쪽)
<전 세계에서 미국이 한 지역에서 5개의 전쟁계획을 갖고 있는 곳은 한반도가 유일하다.>(95쪽)
<작전계획 5027의 변천과정을 보면 (중략) 이는 미국이 탈냉전 이후 북한에 대한 전쟁위협 강도가 더욱 심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97쪽)
“키리졸브 훈련은 북침 전쟁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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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자통일교과서》는 키리졸브 훈련을 북침을 위한 핵전쟁 훈련이라는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대변한다. 사진은 키리졸브 훈련에 참가한 주한미군. |
<한미연합사는 키리졸브/독수리 훈련이 연례적 방어훈련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훈련은 훈련의 목적, 동원되는 병력과 물자, 지휘체계를 보았을 때, 선제공격용일 뿐 아니라 핵전쟁 훈련임이 분명하다.>(99쪽)
이러한 기술은 키리졸브 훈련 및 독수리 훈련에 대한 북한의 비난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올해 키리졸브/독수리 훈련을 앞둔 지난 2월 7일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가 “이번 전쟁연습 책동은 단순한 군사훈련이 아니라 실전으로 넘어가기 위한 위험한 불장난”이라고 한 것이나 평양방송이 2월 27일 “이번 연습은 우리 공화국을 노린 핵시험 전쟁, 예비전쟁”이라고 주장한 것이 그 예이다. 2010년 3월 7일에는 북한군 판문점대표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이번 연습의 성격 자체가 핵전쟁 연습, 북침전쟁 연습”이라고 주장하면서 비핵화(非核化) 과정 중단을 선언하기도 했다.
《노동자통일교과서》는 주한미군 분담금이나 평택 미군기지 이전 비용 등을 거론하면서 이렇게 주장한다.
<과연 한미동맹은 국익을 가져다주는가? 오히려 한국의 군사비를 잡아먹는 거대한 해충은 아닌지 검토해 보아야 한다. 미국에서는 복지정책을 종종 국방비 감소와 함께 이야기하는데, 한국도 복지논쟁이 뜨거운 요즘 군사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116쪽)
<한국 정부는 그동안 누구에게 더 많이 퍼주기를 해왔는가? ‘퍼주기’의 대상이 북한이 아닌 주한미군은 아닌지 생각해 보자.>(119쪽)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이 2006년 8월 28일 <강점자, 지배자의 오만한 전횡>이라는 글에서 “미국은 남조선과 해마다 ‘방위비분담금협상’이라는 것을 벌여 놓고 강박 절반, 회유 절반으로 미군 유지비를 눈덩이 굴리듯 불리고 있다”면서 “제반 사실은 남조선-미국 동맹이라는 것은 평등하고 진실한 우방관계가 아니라 정치, 경제, 군사 등 모든 분야에서 미국에 철저히 지배되는 종속관계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던 것을 연상케 한다.
주한미군 범죄나 주한미군으로 인한 전쟁위협에 대한 주장은 필연적으로 주한미군 철수 주장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노동자통일교과서》의 기술을 보자.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주둔 문제를 성역화하면서 논쟁하는 것 자체를 금기시하는 분위기는 극복되어야 한다. (중략) 한반도가 분단되어 있고 한미동맹이 유지되는 한 사라지지 않을, 주한미군 문제를 모두가 동일하게 공감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시도들은 반드시 필요하다.>(123쪽)
이러한 논리는 북한이 일관되게 주장해 온 것이기도 하다. 일례로 올해 1월 12일자 《노동신문》은 <미제침략군을 남조선에서 하루빨리 철수시켜야 한다>는 ‘정론’에서 “조선반도에서 전쟁을 막고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조미 사이의 불안정한 정전상태를 하루빨리 끝장내고 항구적인 평화보장체계를 수립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주장했고, 2006년 6월 25일에는 “미국이 진심으로 북침 의사가 없고 조선반도(한반도)의 평화를 바란다면 미군을 남조선에서 하루빨리 철수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노동자통일교과서》는 북한 식량난의 책임마저 미국으로 돌린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북의 식량부족사태는 북 체제 문제이기 전에 국토지형 조건상의 문제이며 미국의 경제봉쇄조치 등으로 국제사회로부터 수입할 수 있는 통로가 막혀 있는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다.>(16쪽)
北核문제
지금까지 보아온 친북반미 논조의 연장선상에서 《노동자통일교과서》는 북핵문제에 대해서도 북한의 입장을 두호(斗護)한다. 《노동자통일교과서》의 북핵문제와 관련된 기술을 보자.
<북한은 1992년 1월 30일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핵안전협정을 체결했다. 더불어 1992년 2월부터 6차례의 핵사찰을 받았다. 그러나 미국은 다시 북한의 핵을 문제 삼기 시작했다.
IAEA는 북한이 미신고한 연변 2개 기지에 대한 특별사찰을 요구했다. (중략) 거기에 미국은 1992년 계속되어 오던 북미대화협상안에 인권문제와 미사일 수출 금지 등을 갑자기 추가시키려고 하면서 북미 간의 대화는 수포로 돌아간다. (중략) 북한은 이에 1993년 2월 12일 NPT 탈퇴를 선언한다. (중략) 미국은 북한을 군사적으로 압박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중략)
가까스로 북미 간에는 대화와 협상을 통해 1994년 제네바합의가 이뤄졌다. 미국은 북한의 경제제재를 정상화하고 북한은 핵연료봉을 봉인하고 핵발전소를 중단하여 경수로 등을 지급받기로 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러한 합의사항을 거의 지키지 않았다. 북미 간의 대립은 계속되었다. 미국은 1998년 북한의 금창리 동굴에 대한 핵개발 의혹을 제기하고 2002년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는 등 압박을 계속해 왔다. 그리고 결국 북한은 핵보유 선언과 미사일 발사, 핵실험, 광명성 발사 등으로 ‘핵보유국’임을 천명하게 된다.>(198~199쪽)
<실제 북한 핵개발의 원인과 역사적 배경을 따지다 보면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자위적 수단으로 개발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103쪽)
북핵에 대한 《노동자통일교과서》의 기술은, 북한의 핵개발이 미국의 부당한 압력에 대한 정당한 자위행위(自衛行爲)인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러한 논리구조는 북한의 주장 그대로다.
일례로 북한 외무성은 2006년 10월 3일 핵실험을 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북한의 핵보유는 이제 공공연한 사실”
<우리는 현 미 행정부가 조미 기본합의문을 뒤집고 우리의 자주권과 생존권을 엄중히 위협한 데 맞서 불가피하게 핵무기 전파 방지조약에서 탈퇴하였다. 미국의 핵전쟁 위협과 제재 압력 책동이 계단식으로 확대되는 데 따라 우리는 투명한 대응 과정을 거쳐 합법적으로 현대적인 핵무기를 만들었다는 것을 공식 선포하였다. 핵무기 보유 선포는 핵시험을 전제로 한 것이다. 미국의 극단적인 핵전쟁 위협과 제재 압력 책동은 우리로 하여금 상응한 방어적 대응 조치로써 핵 억제력 확보의 필수적인 공정상 요구인 핵시험을 진행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중략)
자기의 믿음직한 전쟁 억제력이 없으면 인민이 억울하게 희생당하고 나라의 자주권이 여지없이 농락당하게 된다는 것은 오늘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약육강식의 유혈 참극들이 보여주는 피의 교훈이다. 우리의 핵무기는 철두철미 미국의 침략 위협에 맞서 우리 국가의 최고 이익과 우리 민족의 안전을 지키며 조선반도에서 새 전쟁을 막고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는 믿음직한 전쟁 억제력이 될 것이다.>
북한 중앙통신은 올해 2월 29일 서울 핵안보정상회의를 앞두고 낸 논평에서도 “조선반도에서 실질적인 핵안전과 평화가 이루어지자면 미국과 남조선 괴뢰들의 핵위협부터 완전히 제거돼야 한다”면서 “지금 우리 공화국의 자위적 핵억제력은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전의 위력한 담보”라고 주장했다.
《노동자통일교과서》도 북한은 핵보유국이며, 북핵이 ‘전쟁억지력’이라는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북한의 핵보유는 이제 의혹이 아니라 공공연한 사실이 되었다. (중략) 그리고 이는 북한이 위험국가로 분류되는 이유이자, 또 북한을 쉽게 공격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201쪽)
북한인권과 3代 세습, 통일
《노동자통일교과서》는 북한인권 문제에서도 북한의 입장을 열심히 대변하고 있다.
<북한인권 비판의 두 가지 화두는 기본권과 생존권이다. 기본적으로 주어져야 하는 천부 인권을 사회제도가 가로막고 있다는 것과 굶는 사람들을 외면한다는 생존권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북한인권에 대한 오해는 사회주의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거나, 북한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발생하는 경우도 많다. (중략) 북한은 서방식에서 주장하는 인권의 개념을 무조건적으로 자기들에게 적용시키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중략) 국권의 수호가 인권에 우선하며, 자주권이 수호될 때 인권이 보장될 수 있다는, 즉 인권은 즉 국권이라는 ‘우리식 인권’을 주장하고 있다.>(215~216쪽)
이런 주장은 유엔 등에서 북한인권이 문제될 때마다 북한 정권이나 외교관들이 늘 하는 소리다. 《노동자통일교과서》는 이러한 주장을 여과없이 소개하면서 “1998년 사회주의 헌법 개정 시 거주와 여행의 자유조항(제75조)을 신설하였고, 유엔인권이사회 권고에 따라 유추해석 조항(구형법 제10조)을 폐지하고 죄형법정주의를 수용하는 조항(형법 제6조)을 신설한 바 있다”(217쪽)고 기술하는 등 북한의 인권개선 노력을 열심히 소개하고 있다.
최근 이슈가 된 탈북자 송환문제에 대해서는 친북 성향의 학자인 백학순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의 입을 빌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말하는 탈북자 북송문제는 인권, 생명권 자체 관점보다도 이 문제를 앞세우는 사람들의 정치적 접근 차원으로 보인다”고 비판한다. 탈북자들의 북한인권 실태에 대한 증언이 전혀 없는 것은 물론이다.
3대 세습에 대한 북한 논리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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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자통일교과서》는 3대 세습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북한의 입장을 그대로 소개하고 있다. |
<사회주의 체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상이고 이데올로기다. (중략) 결국 권력을 이양하는 것은 그러한 이데올로기를 어떻게 안정적으로 이양시키느냐의 문제이다. (중략) 이러한 가운데 북한은 후계자는 그 이전 지도자의 뜻을 충실히 이행하고, 실천해 가야 하는 사람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고 이를 이론화한다. 그러한 가운데 자신들의 후계자를 선출하고 내세우는 것이다. 그것이 왜 ‘아들이어야 하느냐’는 문제에 대해서는 북한은 거론할 이유가 없다고 답한다. 아들이어서가 아니라, 가장 훌륭한 지도자를 후계로 내세워야 한다는 것이다.>(221~222쪽)
이처럼 북한을 존중하는 《노동자통일교과서》는 통일문제에 대해 ‘체제공존형 통일’을 주장한다.
<만일 통일을 체제통합을 통해서 해결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남과 북의 평화적 통일은 불가능하다. (중략) 그 답은 6·15선언과 10·4정상선언에 있다. (중략) 남북의 정상들은 대결과 전쟁을 부르는 체제통합적 통일이 아닌 남과 북의 상호체제를 인정함과 동시에 존중하며 공동번영할 수 있도록 상호체체공존형 통일을 이루기로 합의하였다. 체제공존형 통일이란, 남측의 자본주의와 북측의 사회주의 체제를 그대로 인정하고 민족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통일을 말한다.>
역사상 통일에는 ‘체제통합형 통일’이 있을 뿐, ‘체제공존형 통일’은 있어본 적이 없었다. 다만 무력에 의해서냐(베트남), 일방의 체제붕괴와 대화(동서독)를 통해서냐가 달랐을 뿐이다. 이러한 ‘체제공존형 통일’, 즉 연방제 통일방안은 북한이 1960년대 이래 지속적으로 주장해 왔고 1980년 조선노동당 6차대회에서 내놓은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북남이 상대방의 사상과 제도를 인정하고 용납하는 기초 위에서 민족통일정부를 수립”)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왜 필자와 책을 공개하지 않나?
그 밖에도 《노동자통일교과서》는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을 선진국 문턱에 올려놓은 수출지향형 발전모델을 폄하하고, ‘민족자립경제’를 내세워 1950년대 이래 좌파들이 주장해 온 ‘내포적 근대화론’으로의 회귀를 종용하며, 한미FTA를 반대한다. 통일이 될 경우 ‘대륙경제’로의 편입과 북한의 풍부한(?) 지하자원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환상을 고무한다. 2000년대 이후 북한이 추진해 온 개혁개방 노력이 제법 실체가 있는 것처럼 부풀려 보고, 북한의 과학기술능력이 미국·독일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치켜세우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계량적 증거는 제시하지 못한다. 북한을 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나 브라질 룰라의 사회주의처럼 수많은 사회주의 가운데 하나로 이해해 보자고 호소하는가 하면, 미국과 자본주의 이외에 다른 대안을 갖고 있지 못한 한국의 현실을 통탄한다. 실제적 근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매사 어떻게든 북한의 역성만 들려고 하는 모습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자신들의 입장이 옹색하다는 것을 민노총 스스로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전교조가 11년 전 《이 겨레 살리는 통일》의 필진을 공개하고 책을 대형서점 등에서 시판했던 것과는 달리, 《노동자통일교과서》는 필자가 누군지 밝히지도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책이 나온 지 두 달이 지나도록 자기들끼리만 돌려보고 있으니 말이다.⊙
<취재지원=장애리·이한솔 월간조선 인턴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