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연한 對北전략’은 위험, 조지 케넌의 對蘇봉쇄정책에서 교훈 얻어야
⊙ 12월 大選에서는 안보를 최우선시하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야
이병호
⊙ 72세. 육사 졸업. 美 조지타운대 안보학 석사.
⊙ 주미공사, 안기부 국제국장·제2차장, 駐말레이시아대사 역임. 現 울산대 초빙교수.
⊙ 12월 大選에서는 안보를 최우선시하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야
이병호
⊙ 72세. 육사 졸업. 美 조지타운대 안보학 석사.
⊙ 주미공사, 안기부 국제국장·제2차장, 駐말레이시아대사 역임. 現 울산대 초빙교수.
- 지난 4월12일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 노동당 제1비서로 추대된 김정은이 참석자들의 환호에 답례하고 있다.
제19대 총선이 있던 4월 11일, 북한은 김정은(金正恩)을 조선노동당 ‘제1비서’로 추대했다. 종래 노동당을 대표하던 ‘총비서’직은 ‘조선노동당의 영원한 총비서’ 김정일(金正日)을 위한 자리로 남겨졌다. 이는 김일성(金日成) 사후(死後)에 그를 ‘영원한 국가주석’으로 추대했던 것을 연상케 한다. 이와 함께 김정은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장, 정치국 상무위원 등의 직함도 차지했다. 이어 4월13일에는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으로 추대됐다. 이로써 김정일 사후 김정은의 권력승계 과정이 일단락됐다.
김정은이 노동당 제1비서직에 오른 것은 우리가 흔히 잊고 있던 사실을 새삼 상기시켜 준다. 그것은, 북한체제는 본질적으로 공산주의 이념을 근간으로 한 전체주의 체제라는 사실이다. 북한은 ‘주체(主體)사상’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일부 수정한 짝퉁 돌연변이(突然變異)의 악성(惡性) 이론에 불과하다.
마르크스-레닌주의는 모두 알고 있듯이 프롤레타리아혁명론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유산(有産)계급을 타도하고 인민대중이 모두 잘사는 이상(理想)사회를 건설한다는 미명(美名) 아래, 살인·폭력·거짓·선동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지극히 반인륜적(反人倫的)인 이데올로기다. 이 ‘혁명이론’은 20세기에 숱한 비극을 남긴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럼에도 북한은 아직도 이 죽은 이론을 붙들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들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이름과 모양을 조금 바꾸고 다른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수령론(首領論)’을 첨가해 김일성을 신(神)으로 떠받드는 신정(神政)체제를 구축했다. 그게 북한이 내세우는 ‘주체사상’의 실체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공산혁명’이 북한이 추구해야 할 최고의 가치이며, 혁명 완수를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감내해야 하고, 혁명의 뇌수(腦髓)인 자신들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북한주민들을 끊임없이 세뇌(洗腦)시켜 왔다.
덩샤오핑과 金正恩의 차이
이는 겉으로는 사회주의 국가를 표방하면서 공산당 일당독재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계급투쟁론이나 유물사관(唯物史觀), 프롤레타리아혁명론 등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핵심이론을 오래 전에 버리고 국민의 삶의 질(質) 향상을 위해 노력해 온 중국과 대조적이다.
중국이 오늘날 G2의 한 축(軸)을 이루는 나라로 변신할 수 있었던 것은 덩샤오핑(鄧小平)이 마오쩌둥(毛澤東)의 유훈(遺訓)통치를 거부하고 과거와의 단절을 단행하면서부터다. 덩샤오핑은 1978년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사상해방과 실사구시(實事求是)로 일치단결하여 앞을 향해 전진하자”는 연설을 통해 어두운 과거와의 단절을 감행했다.
하지만 김정은은 할아버지, 아버지와의 단절을 감행할 수 없다. 또 북한에서는 김일성사상, 즉 유일(唯一)사상 체제가 너무 오랫동안 자리해 왔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사상해방’을 단행할 수도 없다. 김정일이 죽자마자 나온 구호가 ‘김정일의 유업(遺業)을 받들어 주체혁명을 완수하자’는 것이었다는 사실은 이 점을 잘 말해 준다.
결국 김정은 체제는 혁명을 최우선 가치로 추구해 온 김정일 체제의 연장일 수밖에 없다. 이는 북한주민들의 고통이 앞으로도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안타깝기 짝이 없는 일이다.
문제는 북한정권이 추구하는 주체혁명이 북한 지역 내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북한이 말하는 ‘주체혁명’의 궁극적인 목표는 ‘남조선혁명’, 즉 대한민국의 적화(赤化)이다. 북한체제의 최고규범인 조선노동당 규약 서문은 일찍부터 이 점을 명백하게 밝혀 왔다. 1980년 개최된 노동당 제6차 당대회에서 채택된 당 규약 서문은 다음과 같다.
<조선노동당의 당면 목적은 공화국 북반부에서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이룩하여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과 인민민주주의 혁명과업을 완수하는 데 있으며, 최종 목적은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와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데 있다.>
‘남조선혁명론’이 망가뜨린 북한
이 규약은 2010년 9월 28일, 김정일이 김정은을 후계자로 공식 지명하기 위해 44년 만에 개최된 당대표자회에서 일부 자구(字句)만 수정됐다. 위의 문장 중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라는 표현은 ‘사회주의 강성대국을 건설하여’로, 최종 목적 중 ‘공산주의’라는 표현을 ‘인민 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한다’로 바꾸었다.
북한은 지난 4월11일 소집된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 노동당 규약을 개정하면서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하여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이라는 표현을 ‘온 사회를 김일성-김정일주의화하여…’로, ‘사회주의 강성대국’이라는 표현을 ‘사회주의 강성국가’로 바꾸었다.
이 ‘남조선혁명론’은 북한이 그냥 한번 해 보는 단순한 수사(修辭)가 아니다. 그것은 북한이 내세우고 있는 주체혁명의 핵심이자, 북한정권 수립 이래 지금까지 북한의 대내외(對內外) 정책을 지배해 온 핵심 코드다.
지난 수십년간 북한은 남조선혁명을 위해 별별 짓을 다 해 왔다. 북한이 오늘날 저 지경으로 몰린 주된 원인도 바로 이 ‘남조선혁명론’ 때문이다. 북한은 이를 위해 수십년간 국가예산의 절반 이상을 군사비에 쏟아 부었고, 120만 가까운 현역병을 유지하면서 북한 전체를 병영(兵營)으로 만들었다. 핵(核)무기를 만들었고, 군(軍)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선군(先軍)정치까지 내세웠다.
이렇게 체제를 왜곡해 운영하고 자원을 낭비하는 과정에서 북한경제는 멍들었고 주민은 굶어 죽었다. 물론 이를 핑계로 3대(代)세습이라는 권력놀음에는 성공했다.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북한이 세계 10위권의 경제강국으로 우뚝 선 대한민국을 적화하겠다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망상이다. 이 점은 중국을 비롯해 전세계가 다 아는 사실이다. 아마 김정은도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를 인정하고 노선을 바꾸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렸다.
‘남조선혁명론’은 이처럼 북한체제의 불가역적(不可逆的)인 체제현상(built-in)이 되어 버렸다. 김정은 자신도 이런 고착된 ‘체제현상의 포로(prisoner of system)’일 가능성이 크다. 이것이 한반도 위기의 본질이며 실체다.
‘전갈과 개구리’ 우화
김대중(金大中) 전(前) 대통령은 이솝우화(寓話)를 빌려 자신의 대북(對北) 유화정책을 ‘햇볕정책’이라고 불렀다. 거센 바람보다는 햇볕이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데 효과적이었다는 이솝우화처럼,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유도하기 위해서는 햇볕을 비추듯이 무조건 북한을 감싸 안아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햇볕정책’은 참담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북한 ‘남조선혁명론’의 본질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남조선혁명론’은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북한체제 최고의 가치이며, 존재 이유다. 따라서 ‘햇볕’을 비춘다고 해서 북한체제가 지금까지 추구해 온 목표와 가치를 버릴 가능성은 애초부터 없었다.
이솝우화를 빌려 남북관계를 설명하고자 한다면 김대중 정권이 즐겨 인용했던 ‘햇볕과 나그네’ 우화보다는 ‘전갈과 개구리’라는 우화가 더 적절할 것이다.
<전갈이 강을 건너게 해 달라고 개구리에게 부탁한다. 개구리가 전갈의 독침(毒針)을 걱정해서 주저하자 전갈은 이렇게 설득한다.
“너를 독침으로 찌르면 나도 강물에 빠져 죽게 될 텐데, 그럴 리가 있겠느냐?”
이 말에 설득당한 개구리는 전갈을 등에 태우고 강을 건넌다. 하지만 강 한복판에 이르자 전갈은 독침으로 개구리를 찌른다. 죽어 가면서 개구리는 외친다. “이러면 너도 죽는데 왜 나를 찌르는가?”
전갈은 답한다. “그것이 내 본성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남조선혁명론, 막강한 군사력, 그리고 핵무기 개발은 이 우화 속 전갈의 독침에 해당한다.
4월 13일 소위 ‘광명성 3호’ 발사 강행도 결코 남조선혁명론과 무관치 않다. 미국을 향해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에 끌어들이려는 무력(武力)시위 메시지도 담고 있다.
북한이 이처럼 대한민국을 적화시키겠다고 달려드는 이상, 남북관계 개선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대한민국이 공존공영(共存共榮)의 대상이 아니라 타도의 대상인 이상, 우리가 아무리 우호적 정책을 취한다 하더라도 북한은 이를 악용(惡用)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김대중-노무현(盧武鉉) 정부 10년간 대북(對北) 포용정책의 결과가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케넌의 對蘇봉쇄전략 교훈
1947년 주(駐)모스크바 미국대사관에 근무하고 있던 외교관 조지 케넌은 대소(對蘇)봉쇄전략을 주장하는 장문(長文)의 전보(long telegram)를 워싱턴으로 타전(打電)했다. 케넌은 같은 해 ‘X’라는 필명으로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지(誌)에 봉쇄전략을 주장하는 기고문을 실었다.
그는 이 글에서 “소련은 달래거나(charmed), 또는 설득을 통해(talked)서는 결코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면서 “소련의 팽창정책은 장기적(long-term), 인내(patience)를 지닌, 그리고 단호한(firm) 정책으로 봉쇄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또한 이 과정에서 미국은 모양보다는 실질적 진전을 가져오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60여년 전 케넌이 쓴 이 글은 오늘날 우리가 취해야 할 대북정책의 기본 방향을 그대로 제시해 준다. 당시 소련의 팽창주의는 세계공산혁명이라는 공산주의 이데올로기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처럼 소련의 팽창주의는 소련 공산주의 체제의 본질적 성향의 발로였기 때문에 조지 케넌은 봉쇄정책만이 유일한 대안(代案)임을 분명히 했던 것이다.
북한의 남조선혁명론도 소련의 팽창주의 못지않게 체제의 본성으로 굳어진 체제이념이다. 따라서 달랠 수도, 설득할 수도 없다. 결국 북한 스스로 그 허망함을 깨닫고 내려놓게 하는 수밖에 없다. 때문에 북한에 대해서는 긴 인내를 가지고 장기적으로 단호히 대처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방안이다.
소련 공산주의가 망하기까지 70년이 걸렸다. 물론 그 과정에는 데탕트 기간도 있었고 미소 간 대화도 꾸준히 이루어졌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흔들림 없이 봉쇄정책을 추진한 것이 결국 자유진영에 승리를 가져다준 주(主)원인이었음을 유념해야 한다.
‘유연한 對北정책’의 위험성
김정은 등장 이후 북한 정권은 더욱 격렬하게 대남(對南)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3월 4일 평양에서는 15만명의 군민(軍民)을 동원한 대규모 대남규탄 군중집회를 열었다. 이 대회 참석자들은 주먹을 휘두르며 “이명박 역도” “정신병자” 등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해대면서 ‘무자비한 성전(聖戰)’ 운운하는 전쟁위협을 늘어놓았다. 김정은의 정치가 앞으로도 대남 증오를 기반으로 펼쳐질 것임을 강력히 예고한 것이다.
군중대회 하루 전인 3월 3일 김정은은 판문점을 방문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적(敵)들과 항시적으로 총부리를 맞대고 있으니 언제나 최대의 격동 상태를 유지하라”고 지시했다.
뿐만이 아니다. 2월 28일자 《노동신문》은 “박근혜는 독재적 근성을 천성으로 타고났다”며 박근혜(朴槿惠)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난했다. 이후에도 북한은 박근혜 위원장에 대한 공세를 지속적으로 강화했다. 남남(南南)갈등을 부추기는 노골적인 선거개입 시도였다.
그런데 우리 사회 일각에서 이에 분노하기는커녕 “남북관계가 꽁꽁 얼어붙은 것이 이명박 정부의 대북(對北) 강경정책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천안함·연평도 사건도 이쯤에서 접고 유연한 대북정책을 펴야 한다는 주장마저 나돈다. 본말이 전도된 주장들이다.
남북관계의 경색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원래 남북관계는 지난 60년간 늘 그래 왔다. 햇볕정책 10년간 겉으로는 남북관계가 개선된 것처럼 보였지만, 이것은 착시(錯視)현상에 불과했다. 그 근저(根底)에는 여전히 북한의 대남 적대의식이 시퍼렇게 살아 있었다.
‘유연한 대북정책’이란 소리는 듣기에는 그럴듯하다. 그러나 실제 적용에 있어서는 실체가 모호하게 될 소지가 높은 추상적이고 위험한 개념이다. 잘못 적용하면 북한에 이용만 당하고 깔보이는 빌미를 줄 수도 있다.
‘유연한 대북정책’은 북한이 원하는 것을 들어준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즉 주한미군(駐韓美軍) 철수, 한미(韓美)합동훈련 폐기, 국가보안법 철폐, 북방한계선(NLL) 폐기, 식량과 돈을 따지지 않고 북한이 달라고 하는 대로 퍼주는 것 등을 말한다. 하지만 이는 대한민국의 입장에서는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들이다.
북한의 억지요구를 일부 들어줘서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모양이 갖추어진다고 해도 이는 한반도 평화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북한의 나쁜 버릇을 부추기는 부작용만 초래할 것이다.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
물론 30년 넘게 북한을 철권통치해 온 김정일의 퇴장은 북한이 새롭게 변하는 전기(轉機)가 될 수도 있다. 북한 시스템이 아무리 강고하더라도 최소한 그간의 정책노선을 고민해 보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북한의 진정성이 엿보이는 남북관계 개선의 기회가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이를 당연히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적 가치와 존엄성은 지켜져야 한다. 대한민국은 북한이 함부로 해도 되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자명하다. 북한이 아무리 노력해도 대한민국을 적화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계속 일깨워 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북한이 더 이상 희망이 없는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다고 인식해야만 진로변경이 가능하다. 북한이 남조선혁명이 가능하다고 믿는 한, 어떤 남북대화도, 또 어떤 남북한 간 합의도 다 소용없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답답해도 이외에 다른 왕도(王道)는 없다. 따라서 북한의 모든 대남책동은 철저히 봉쇄되어야 한다. 조그만 틈새라도 허락해서는 안 된다. 무력도발이건, 사이버테러건, 간접침략이건, 그리고 대화를 빙자한 남남갈등 조장이건 간에, 분연히 맞서 모두 무산시켜야 한다.
근래에, 이러한 국가적 당위(當爲)를 실현하려는 국가 전체의 의지가 지속적으로 약화되고, 국민들의 안보의식도 극도로 해이(解弛)해지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렇게 된 데는 다양한 정치적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북한을 포용의 대상으로만 여겼던 좌파 정부의 대북정책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북한의 안보위협에 대한 경계는 완전히 풀어졌었다.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서도 무덤덤했다. “핵문제는 미·북(美北) 간에 풀어야 하는 문제”라는 북한 주장에 동조하는 분위기마저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고 공언했다.
그렇게 한 번 약화된 안보의식은 정부가 바뀌었어도 좀처럼 강화되지 않았다. 그 결과 애국가 대신에 이상한 행진곡을 부르고, 김일성 사진 앞에서 절을 하는 행사를 버젓이 벌이는 종북좌파(從北左派) 세력이 국회에 진출할 정도로 정치적 입지가 강화되었다. 일부 유명 연예인·소설가·지식인들이 이들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하는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젊은 세대는 대체로 이런 현상에 대해 무감각하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건강한 상식이 무시되고 거짓과 선동, 왜곡과 음모론이 판치는 경박하고 병든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
이는 김정은 집단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고무적인 상황이다. 북한의 대남 적화전략의 한 축인 남조선혁명역량 구축작업이 제대로 굴러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職의 본질은 ‘국가安危를 위한 고독한 결단’
구한말(舊韓末) 나라 잃은 설움을 이기지 못하고 자결한 매천 황현(梅泉 黃玹)은 “국가가 먼저 스스로를 해친 연후에 남이 쳐들어오는구나!”라고 탄식했다.
100년 전 황현이 탄식했던 것과 같은 자해(自害)행위가 현재 우리 사회에서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다. ‘언론·사상의 자유’, ‘민족과 통일’이라는 거대 담론(談論)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들 종북좌파 세력의 작태는 우리의 안보의지와 국가기강을 약화시키고 북한의 적화책동을 돕는 이적(利敵)행위다.
그런데도 이를 제어할 국가기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색깔론’이라는 역(逆)공세에 주눅 들고, 국가보안법은 사실상 기능을 못하고 있다. 이래 가지고는 핵무장한 북한의 적화위협을 감당할 수 없다. 생지옥에서 신음하는 북한 동포도 구할 수 없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그의 자서전 《결정의 순간들 (Decision Points)》에서 “대통령직(職)의 본질은 국가안위(安危)를 위한 고독한 결단”이라고 말했다.
부시가 경제와 복지와 같은 국정과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쓴 것은 아닐 것이다. 국가안위 문제만큼은 다른 사람에게 위임할 수 없는 오로지 대통령만의 고독한 책임임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 절실하게 느꼈다는 술회일 것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직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도 안보다. 김정일 사후 북한은 자극적인 대남비방과 선동, 미사일 발사, 군사적 위협 등을 통해, 여전히 대한민국의 안보에 위협적인 존재임을 보여주고 있다.
대통령다운 용기가 있는 지도자가 나와야
러시아의 문호(文豪) 도스토옙스키는 “독재는 습관이다. 독재는 마침내는 질병으로 변한다”고 말했다. 그는 “독재는 가장 훌륭한 인간도 죽일 수 있으며 짐승 수준으로 타락시킬 수도 있다”면서 “피와 권력은 도취를 낳는다”고 했다.
도스토옙스키의 말처럼 세상 물정 모르는 나이에 권력을 쥔 김정은은 현재 피와 권력에 도취해 있다. 탈북자(脫北者)에 대한 사살명령, 김정일 장례기간 중 일탈(逸脫)행위를 한 간부들을 무자비하게 총살했다는 첩보가 이를 방증하고 있다. 8억 달러가 넘는 비용을 들여 가면서 로켓을 발사하는 무모함도 같은 맥락의 행위다. 그런 김정은이 대한민국을 ‘적’으로 지목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12월 대선(大選)에서는 국가안보를 대통령 선택의 가장 중요한 자격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북한위협의 실체를 제대로 인식하고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적 질서와 존엄을 지켜 내겠다는 결의가 충일(充溢)한 지도자, 흐트러진 안보의식을 바로잡고 국가수호의 결기가 충만한, 국민적 단합을 이루어 낼 수 있는 ‘대통령다운 용기(Presidential Courage)’를 지닌 지도자가 대통령이 되어야만 한다. 전쟁 가능성이 1%라도 존재하는 한, 국가는 당연히 안보가치를 최우선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12월 대선은 대한민국의 존망(存亡)을 가르는 선거가 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 국민이 올바른 선택을 해야만 대한민국을 지켜 내고, 더 나아가 ‘죽음의 땅’으로 변한 한반도의 반쪽을 살려 낼 수 있다. 중대한 역사의 고비마다 현명한 선택을 해 왔던 우리 국민의 저력(底力)에 기대를 해 본다.⊙
김정은이 노동당 제1비서직에 오른 것은 우리가 흔히 잊고 있던 사실을 새삼 상기시켜 준다. 그것은, 북한체제는 본질적으로 공산주의 이념을 근간으로 한 전체주의 체제라는 사실이다. 북한은 ‘주체(主體)사상’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는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일부 수정한 짝퉁 돌연변이(突然變異)의 악성(惡性) 이론에 불과하다.
마르크스-레닌주의는 모두 알고 있듯이 프롤레타리아혁명론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유산(有産)계급을 타도하고 인민대중이 모두 잘사는 이상(理想)사회를 건설한다는 미명(美名) 아래, 살인·폭력·거짓·선동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지극히 반인륜적(反人倫的)인 이데올로기다. 이 ‘혁명이론’은 20세기에 숱한 비극을 남긴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럼에도 북한은 아직도 이 죽은 이론을 붙들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들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이름과 모양을 조금 바꾸고 다른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수령론(首領論)’을 첨가해 김일성을 신(神)으로 떠받드는 신정(神政)체제를 구축했다. 그게 북한이 내세우는 ‘주체사상’의 실체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공산혁명’이 북한이 추구해야 할 최고의 가치이며, 혁명 완수를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감내해야 하고, 혁명의 뇌수(腦髓)인 자신들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북한주민들을 끊임없이 세뇌(洗腦)시켜 왔다.
덩샤오핑과 金正恩의 차이
이는 겉으로는 사회주의 국가를 표방하면서 공산당 일당독재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계급투쟁론이나 유물사관(唯物史觀), 프롤레타리아혁명론 등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핵심이론을 오래 전에 버리고 국민의 삶의 질(質) 향상을 위해 노력해 온 중국과 대조적이다.
중국이 오늘날 G2의 한 축(軸)을 이루는 나라로 변신할 수 있었던 것은 덩샤오핑(鄧小平)이 마오쩌둥(毛澤東)의 유훈(遺訓)통치를 거부하고 과거와의 단절을 단행하면서부터다. 덩샤오핑은 1978년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사상해방과 실사구시(實事求是)로 일치단결하여 앞을 향해 전진하자”는 연설을 통해 어두운 과거와의 단절을 감행했다.
하지만 김정은은 할아버지, 아버지와의 단절을 감행할 수 없다. 또 북한에서는 김일성사상, 즉 유일(唯一)사상 체제가 너무 오랫동안 자리해 왔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사상해방’을 단행할 수도 없다. 김정일이 죽자마자 나온 구호가 ‘김정일의 유업(遺業)을 받들어 주체혁명을 완수하자’는 것이었다는 사실은 이 점을 잘 말해 준다.
결국 김정은 체제는 혁명을 최우선 가치로 추구해 온 김정일 체제의 연장일 수밖에 없다. 이는 북한주민들의 고통이 앞으로도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안타깝기 짝이 없는 일이다.
문제는 북한정권이 추구하는 주체혁명이 북한 지역 내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북한이 말하는 ‘주체혁명’의 궁극적인 목표는 ‘남조선혁명’, 즉 대한민국의 적화(赤化)이다. 북한체제의 최고규범인 조선노동당 규약 서문은 일찍부터 이 점을 명백하게 밝혀 왔다. 1980년 개최된 노동당 제6차 당대회에서 채택된 당 규약 서문은 다음과 같다.
<조선노동당의 당면 목적은 공화국 북반부에서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이룩하여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과 인민민주주의 혁명과업을 완수하는 데 있으며, 최종 목적은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와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데 있다.>
‘남조선혁명론’이 망가뜨린 북한
이 규약은 2010년 9월 28일, 김정일이 김정은을 후계자로 공식 지명하기 위해 44년 만에 개최된 당대표자회에서 일부 자구(字句)만 수정됐다. 위의 문장 중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라는 표현은 ‘사회주의 강성대국을 건설하여’로, 최종 목적 중 ‘공산주의’라는 표현을 ‘인민 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한다’로 바꾸었다.
북한은 지난 4월11일 소집된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 노동당 규약을 개정하면서 ‘온 사회를 주체사상화하여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이라는 표현을 ‘온 사회를 김일성-김정일주의화하여…’로, ‘사회주의 강성대국’이라는 표현을 ‘사회주의 강성국가’로 바꾸었다.
이 ‘남조선혁명론’은 북한이 그냥 한번 해 보는 단순한 수사(修辭)가 아니다. 그것은 북한이 내세우고 있는 주체혁명의 핵심이자, 북한정권 수립 이래 지금까지 북한의 대내외(對內外) 정책을 지배해 온 핵심 코드다.
지난 수십년간 북한은 남조선혁명을 위해 별별 짓을 다 해 왔다. 북한이 오늘날 저 지경으로 몰린 주된 원인도 바로 이 ‘남조선혁명론’ 때문이다. 북한은 이를 위해 수십년간 국가예산의 절반 이상을 군사비에 쏟아 부었고, 120만 가까운 현역병을 유지하면서 북한 전체를 병영(兵營)으로 만들었다. 핵(核)무기를 만들었고, 군(軍)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선군(先軍)정치까지 내세웠다.
이렇게 체제를 왜곡해 운영하고 자원을 낭비하는 과정에서 북한경제는 멍들었고 주민은 굶어 죽었다. 물론 이를 핑계로 3대(代)세습이라는 권력놀음에는 성공했다.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북한이 세계 10위권의 경제강국으로 우뚝 선 대한민국을 적화하겠다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망상이다. 이 점은 중국을 비롯해 전세계가 다 아는 사실이다. 아마 김정은도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를 인정하고 노선을 바꾸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렸다.
‘남조선혁명론’은 이처럼 북한체제의 불가역적(不可逆的)인 체제현상(built-in)이 되어 버렸다. 김정은 자신도 이런 고착된 ‘체제현상의 포로(prisoner of system)’일 가능성이 크다. 이것이 한반도 위기의 본질이며 실체다.
‘전갈과 개구리’ 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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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정권의 햇볕정책은 북한체제의 본질을 간과해 실패로 끝났다. |
‘남조선혁명론’은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북한체제 최고의 가치이며, 존재 이유다. 따라서 ‘햇볕’을 비춘다고 해서 북한체제가 지금까지 추구해 온 목표와 가치를 버릴 가능성은 애초부터 없었다.
이솝우화를 빌려 남북관계를 설명하고자 한다면 김대중 정권이 즐겨 인용했던 ‘햇볕과 나그네’ 우화보다는 ‘전갈과 개구리’라는 우화가 더 적절할 것이다.
<전갈이 강을 건너게 해 달라고 개구리에게 부탁한다. 개구리가 전갈의 독침(毒針)을 걱정해서 주저하자 전갈은 이렇게 설득한다.
“너를 독침으로 찌르면 나도 강물에 빠져 죽게 될 텐데, 그럴 리가 있겠느냐?”
이 말에 설득당한 개구리는 전갈을 등에 태우고 강을 건넌다. 하지만 강 한복판에 이르자 전갈은 독침으로 개구리를 찌른다. 죽어 가면서 개구리는 외친다. “이러면 너도 죽는데 왜 나를 찌르는가?”
전갈은 답한다. “그것이 내 본성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남조선혁명론, 막강한 군사력, 그리고 핵무기 개발은 이 우화 속 전갈의 독침에 해당한다.
4월 13일 소위 ‘광명성 3호’ 발사 강행도 결코 남조선혁명론과 무관치 않다. 미국을 향해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에 끌어들이려는 무력(武力)시위 메시지도 담고 있다.
북한이 이처럼 대한민국을 적화시키겠다고 달려드는 이상, 남북관계 개선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대한민국이 공존공영(共存共榮)의 대상이 아니라 타도의 대상인 이상, 우리가 아무리 우호적 정책을 취한다 하더라도 북한은 이를 악용(惡用)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김대중-노무현(盧武鉉) 정부 10년간 대북(對北) 포용정책의 결과가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케넌의 對蘇봉쇄전략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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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소봉쇄정책을 주창한 조지 케넌. |
그는 이 글에서 “소련은 달래거나(charmed), 또는 설득을 통해(talked)서는 결코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면서 “소련의 팽창정책은 장기적(long-term), 인내(patience)를 지닌, 그리고 단호한(firm) 정책으로 봉쇄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또한 이 과정에서 미국은 모양보다는 실질적 진전을 가져오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60여년 전 케넌이 쓴 이 글은 오늘날 우리가 취해야 할 대북정책의 기본 방향을 그대로 제시해 준다. 당시 소련의 팽창주의는 세계공산혁명이라는 공산주의 이데올로기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처럼 소련의 팽창주의는 소련 공산주의 체제의 본질적 성향의 발로였기 때문에 조지 케넌은 봉쇄정책만이 유일한 대안(代案)임을 분명히 했던 것이다.
북한의 남조선혁명론도 소련의 팽창주의 못지않게 체제의 본성으로 굳어진 체제이념이다. 따라서 달랠 수도, 설득할 수도 없다. 결국 북한 스스로 그 허망함을 깨닫고 내려놓게 하는 수밖에 없다. 때문에 북한에 대해서는 긴 인내를 가지고 장기적으로 단호히 대처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방안이다.
소련 공산주의가 망하기까지 70년이 걸렸다. 물론 그 과정에는 데탕트 기간도 있었고 미소 간 대화도 꾸준히 이루어졌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흔들림 없이 봉쇄정책을 추진한 것이 결국 자유진영에 승리를 가져다준 주(主)원인이었음을 유념해야 한다.
‘유연한 對北정책’의 위험성
김정은 등장 이후 북한 정권은 더욱 격렬하게 대남(對南)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3월 4일 평양에서는 15만명의 군민(軍民)을 동원한 대규모 대남규탄 군중집회를 열었다. 이 대회 참석자들은 주먹을 휘두르며 “이명박 역도” “정신병자” 등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해대면서 ‘무자비한 성전(聖戰)’ 운운하는 전쟁위협을 늘어놓았다. 김정은의 정치가 앞으로도 대남 증오를 기반으로 펼쳐질 것임을 강력히 예고한 것이다.
군중대회 하루 전인 3월 3일 김정은은 판문점을 방문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적(敵)들과 항시적으로 총부리를 맞대고 있으니 언제나 최대의 격동 상태를 유지하라”고 지시했다.
뿐만이 아니다. 2월 28일자 《노동신문》은 “박근혜는 독재적 근성을 천성으로 타고났다”며 박근혜(朴槿惠)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난했다. 이후에도 북한은 박근혜 위원장에 대한 공세를 지속적으로 강화했다. 남남(南南)갈등을 부추기는 노골적인 선거개입 시도였다.
그런데 우리 사회 일각에서 이에 분노하기는커녕 “남북관계가 꽁꽁 얼어붙은 것이 이명박 정부의 대북(對北) 강경정책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천안함·연평도 사건도 이쯤에서 접고 유연한 대북정책을 펴야 한다는 주장마저 나돈다. 본말이 전도된 주장들이다.
남북관계의 경색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원래 남북관계는 지난 60년간 늘 그래 왔다. 햇볕정책 10년간 겉으로는 남북관계가 개선된 것처럼 보였지만, 이것은 착시(錯視)현상에 불과했다. 그 근저(根底)에는 여전히 북한의 대남 적대의식이 시퍼렇게 살아 있었다.
‘유연한 대북정책’이란 소리는 듣기에는 그럴듯하다. 그러나 실제 적용에 있어서는 실체가 모호하게 될 소지가 높은 추상적이고 위험한 개념이다. 잘못 적용하면 북한에 이용만 당하고 깔보이는 빌미를 줄 수도 있다.
‘유연한 대북정책’은 북한이 원하는 것을 들어준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즉 주한미군(駐韓美軍) 철수, 한미(韓美)합동훈련 폐기, 국가보안법 철폐, 북방한계선(NLL) 폐기, 식량과 돈을 따지지 않고 북한이 달라고 하는 대로 퍼주는 것 등을 말한다. 하지만 이는 대한민국의 입장에서는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들이다.
북한의 억지요구를 일부 들어줘서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모양이 갖추어진다고 해도 이는 한반도 평화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북한의 나쁜 버릇을 부추기는 부작용만 초래할 것이다.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
물론 30년 넘게 북한을 철권통치해 온 김정일의 퇴장은 북한이 새롭게 변하는 전기(轉機)가 될 수도 있다. 북한 시스템이 아무리 강고하더라도 최소한 그간의 정책노선을 고민해 보는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북한의 진정성이 엿보이는 남북관계 개선의 기회가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이를 당연히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적 가치와 존엄성은 지켜져야 한다. 대한민국은 북한이 함부로 해도 되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자명하다. 북한이 아무리 노력해도 대한민국을 적화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계속 일깨워 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북한이 더 이상 희망이 없는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다고 인식해야만 진로변경이 가능하다. 북한이 남조선혁명이 가능하다고 믿는 한, 어떤 남북대화도, 또 어떤 남북한 간 합의도 다 소용없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답답해도 이외에 다른 왕도(王道)는 없다. 따라서 북한의 모든 대남책동은 철저히 봉쇄되어야 한다. 조그만 틈새라도 허락해서는 안 된다. 무력도발이건, 사이버테러건, 간접침략이건, 그리고 대화를 빙자한 남남갈등 조장이건 간에, 분연히 맞서 모두 무산시켜야 한다.
근래에, 이러한 국가적 당위(當爲)를 실현하려는 국가 전체의 의지가 지속적으로 약화되고, 국민들의 안보의식도 극도로 해이(解弛)해지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렇게 된 데는 다양한 정치적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북한을 포용의 대상으로만 여겼던 좌파 정부의 대북정책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북한의 안보위협에 대한 경계는 완전히 풀어졌었다.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서도 무덤덤했다. “핵문제는 미·북(美北) 간에 풀어야 하는 문제”라는 북한 주장에 동조하는 분위기마저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고 공언했다.
그렇게 한 번 약화된 안보의식은 정부가 바뀌었어도 좀처럼 강화되지 않았다. 그 결과 애국가 대신에 이상한 행진곡을 부르고, 김일성 사진 앞에서 절을 하는 행사를 버젓이 벌이는 종북좌파(從北左派) 세력이 국회에 진출할 정도로 정치적 입지가 강화되었다. 일부 유명 연예인·소설가·지식인들이 이들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하는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젊은 세대는 대체로 이런 현상에 대해 무감각하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건강한 상식이 무시되고 거짓과 선동, 왜곡과 음모론이 판치는 경박하고 병든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
이는 김정은 집단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고무적인 상황이다. 북한의 대남 적화전략의 한 축인 남조선혁명역량 구축작업이 제대로 굴러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職의 본질은 ‘국가安危를 위한 고독한 결단’
구한말(舊韓末) 나라 잃은 설움을 이기지 못하고 자결한 매천 황현(梅泉 黃玹)은 “국가가 먼저 스스로를 해친 연후에 남이 쳐들어오는구나!”라고 탄식했다.
100년 전 황현이 탄식했던 것과 같은 자해(自害)행위가 현재 우리 사회에서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다. ‘언론·사상의 자유’, ‘민족과 통일’이라는 거대 담론(談論)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들 종북좌파 세력의 작태는 우리의 안보의지와 국가기강을 약화시키고 북한의 적화책동을 돕는 이적(利敵)행위다.
그런데도 이를 제어할 국가기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색깔론’이라는 역(逆)공세에 주눅 들고, 국가보안법은 사실상 기능을 못하고 있다. 이래 가지고는 핵무장한 북한의 적화위협을 감당할 수 없다. 생지옥에서 신음하는 북한 동포도 구할 수 없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그의 자서전 《결정의 순간들 (Decision Points)》에서 “대통령직(職)의 본질은 국가안위(安危)를 위한 고독한 결단”이라고 말했다.
부시가 경제와 복지와 같은 국정과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쓴 것은 아닐 것이다. 국가안위 문제만큼은 다른 사람에게 위임할 수 없는 오로지 대통령만의 고독한 책임임을 자신의 경험을 통해 절실하게 느꼈다는 술회일 것이다.
대한민국 대통령직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도 안보다. 김정일 사후 북한은 자극적인 대남비방과 선동, 미사일 발사, 군사적 위협 등을 통해, 여전히 대한민국의 안보에 위협적인 존재임을 보여주고 있다.
대통령다운 용기가 있는 지도자가 나와야
러시아의 문호(文豪) 도스토옙스키는 “독재는 습관이다. 독재는 마침내는 질병으로 변한다”고 말했다. 그는 “독재는 가장 훌륭한 인간도 죽일 수 있으며 짐승 수준으로 타락시킬 수도 있다”면서 “피와 권력은 도취를 낳는다”고 했다.
도스토옙스키의 말처럼 세상 물정 모르는 나이에 권력을 쥔 김정은은 현재 피와 권력에 도취해 있다. 탈북자(脫北者)에 대한 사살명령, 김정일 장례기간 중 일탈(逸脫)행위를 한 간부들을 무자비하게 총살했다는 첩보가 이를 방증하고 있다. 8억 달러가 넘는 비용을 들여 가면서 로켓을 발사하는 무모함도 같은 맥락의 행위다. 그런 김정은이 대한민국을 ‘적’으로 지목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12월 대선(大選)에서는 국가안보를 대통령 선택의 가장 중요한 자격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북한위협의 실체를 제대로 인식하고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적 질서와 존엄을 지켜 내겠다는 결의가 충일(充溢)한 지도자, 흐트러진 안보의식을 바로잡고 국가수호의 결기가 충만한, 국민적 단합을 이루어 낼 수 있는 ‘대통령다운 용기(Presidential Courage)’를 지닌 지도자가 대통령이 되어야만 한다. 전쟁 가능성이 1%라도 존재하는 한, 국가는 당연히 안보가치를 최우선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12월 대선은 대한민국의 존망(存亡)을 가르는 선거가 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 국민이 올바른 선택을 해야만 대한민국을 지켜 내고, 더 나아가 ‘죽음의 땅’으로 변한 한반도의 반쪽을 살려 낼 수 있다. 중대한 역사의 고비마다 현명한 선택을 해 왔던 우리 국민의 저력(底力)에 기대를 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