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일, 김정은에게 넘겨준 일부 권력 다시 회수했다는 소문도
⊙ 3대 세습은 김정일의 2대 세습 시기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불안정
⊙ 한반도 주변 안보 공백기인 내년 북한 내부에서 어떤 일이 발생할 수도
孫光柱
⊙ 54세. 고려대 불문과 졸업.
⊙ 《동아일보》·《신동아》 기자. 통일정책연구소 연구위원, 데일리NK 통일전략연구소 대표.
⊙ 3대 세습은 김정일의 2대 세습 시기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불안정
⊙ 한반도 주변 안보 공백기인 내년 북한 내부에서 어떤 일이 발생할 수도
孫光柱
⊙ 54세. 고려대 불문과 졸업.
⊙ 《동아일보》·《신동아》 기자. 통일정책연구소 연구위원, 데일리NK 통일전략연구소 대표.
-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2010년 9월 30일 보도한 김정일의 3남 김정은의 모습(가운데 아래). 새로 선출한 노동당대표들, 노동당대표자회 참석자들과 함께 금수산기념궁에서 사진을 찍었다.
객관적으로 볼 때 최근 2년간 북한 내부는 과거에 비해 많이 변했다. 2002년 시장(장마당) 확대로 조금씩 체제 균열이 생겨오다, 2009년 12월 화폐개혁 실패로 결정적으로 수령-당-대중 수직독재체계의 경로이탈이 시작됐다. 현재 북한 내부는 수령(김일성·김정일)과 수령결사옹위 그룹, 당·군·행정 간부 그룹, 시장에서 결사 생존투쟁을 벌이며 먹고살아야 하는 주민들로 크게 3분화됐다.
물론 북한체제는 지난 40여 년간 대체로 이 세 그룹으로 구성돼 있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과거에는 이 세 그룹이 당생활·조직생활 등으로 강력하게 수직 연결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각각 분리·해체되고 있다는 것이다. 수령그룹, 간부그룹, 일반주민들이 한 국가 안에서 각자도생(各自圖生)하고 있는 형국이다.
법치국가에서는 나라마다 민주주의 발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쨌든 헌법 체계와 법질서 안에서 정부-민간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전통적인 수령-당-대중 수직독재체계가 이미 깨진 북한에서 법 체계를 통해 새 질서가 세워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현재 북한체제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의 핵심이 바로 이것이다.
비유하자면 주민들의 사상생활·조직생활·물질생활을 책임져 온 ‘수령 무한책임’이 현실에서 깨지니까, 그 동전의 뒷면인 ‘수령 무한권한’도 동시에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북한에서는 중앙의 지시가 평양을 넘어서면 도무지 영(令)이 서지 않는다고 한다. 당과 국가 차원에서 지시대로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각 그룹이 모두 따로 노는 것이다.
이에 따라 수령그룹은 오로지 정권을 지키기 위해, 간부그룹은 이 눈치 저 눈치 보면서 온갖 비리·뇌물·속임수·협박 등으로 현존 지위를 지키기 위해, 일반주민들은 시장에서 자신과 가족의 생존 그 자체를 위해, 각각 투쟁하고 있는 형국이다.
계층 간 대립 갈등 심화
이러한 정치사회적 환경에서 박남기(당 재정부장), 류경(보위부 부부장), 김용삼(철도상), 주상성(인민보안부장) 등이 처형 또는 해임된 것으로 보이며, 간부-간부, 간부-주민, 주민-주민 사이에 대립과 갈등, 각종 사건사고들이 늘어나고 있다.
김정일이 지난해 5월부터 1년간 3차례나 방중(訪中)한 이유는 중국의 경제지원을 받고 김일성 출생 100주년인 2012년에 대비하자는 것이지만, 이러한 본질적 문제를 해결할 길은 없다. 중국의 도움도 정권 유지를 위한 ‘땜질’에 불과한 것이다. 앞으로 어느 시기, 어떤 요인에 의해 예상치 못한 사태가 발생할지 누구도 예측이 어렵다.
분명한 사실은, 북·중 간 황금평·나진선봉 공동개발은 북한의 개방을 촉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만, 현 김정일 정권에 연속적이며 계획적인 중국식 개혁개방 연착륙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결국 김정일 정권에 남은 길은 1) 중국의 지원을 받으며 일정 기간 땜질식 정권 유지 2) 김정일의 사망→내부 혼란→정권 붕괴 3) 군(軍) 또는 민간 요인에 의한 체제변혁이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중국의 대북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북한을 위성국가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그러나 미국, 러시아, 일본이라는 주변 대국들 때문에 중국이 북한의 위성국가화를 시도하기는 어렵다. 또 김정일과 북한 통치세력이 아무리 힘이 빠졌다 해도 미·중 간 군사전략 게임의 틈새에서 나름은 ‘주체적으로’ 중국을 이용해 보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현재 김정일은 중국의 지원으로 ‘땜질식’ 정권유지의 길로 가려 하고 있으며, 또 그것이 김정일 입장에서 최악으로 빠지지 않는 ‘차악(次惡)의 길’이다. 이와 함께 김정일은 미국과 한반도평화협정 체결을 시도하여 미·중으로부터 ‘3대 세습정권의 안정’을 보장받으며 동시에 남한 내부를 흔들어놓으려는 게임을 하려는 것이다.
김정일의 권력세습 과정
북한의 3대 세습은 이 같은 내외적 환경에서 진행되어 지난해 9월 28일 노동당대표자회를 통해 김정은이 후계자로 객관화된 후 벌써 1년이 되었다. 김정은의 후계 세습은 현재 어디까지 진행되어 있을까?
김정일이 김일성으로부터 2대 권력세습을 할 때, 김정일은 1964~1974년까지 10년 동안 정치수업과 김일성 신임 획득 노력, 삼촌 김영주·계모 김성애와의 권력투쟁 등 다양한 경험을 쌓았고, 1980년 10월 6차 당대회까지 후계자로서 공고한 지위를 완전히 구축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대목을 체크해 본다.
▲ 1972년 10월 당중앙위원회 제5기 5차 전원회의에서 당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다.
▲ 1973년 2월 김일성은 김정일에게 ‘3대혁명 소조운동’을 전국적으로 발기하라고 지시했다. 3대혁명 소조운동은 나이 어린 김정일의 정치적 지지기반 역할을 하였다.
▲ 1973년 9월 당중앙위원회 제5기 7차 전원회의에서 조직 및 선전비서로 임명되었다.
▲ 1974년 2월 제5기 8차 전원회의에서 정치위원이 됨으로써 김일성의 후계자로 확정되었다. 김정일은 조선노동당 정치위원회(정치국 전신) 위원, 중앙당 조직비서 겸 조직지도부장, 사상담당비서 겸 선전선동부장의 직책을 갖게 되었다. 당의 사상사업과 인사권, 검열권을 갖게 되었다.
▲ 김정일은 후계자 확정 후 주체사상을 김일성주의로 선포하고 수령(김일성)에 대한 절대화·신격화 작업을 전개하였다. 1974년 4월 14일 그 실천적 지침인 ‘당의 유일사상체계확립의 10대 원칙’(4월 문헌)을 시행하였다.
▲ 김정일은 ‘10대 원칙’을 통해 김일성의 권력이 오로지 후계자인 자신을 통해서만 구현되도록 하는 ‘유일적 지도체제’를 수립하였다.
▲ 김정일은 ‘수령은 인민의 생명의 어버이이기 때문에 인민대중의 선거를 통하여 선출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발생적으로 출현하여 인민대중의 추대를 받게 되는 초인간적인 절대적 존재이며, 수령의 출현은 한 번뿐이고 다음부터는 수령에게 가장 충실한 후계자가 수령의 지위를 물려받게 된다’는 수령론 및 후계자론을 고안해 냈다.
▲ 1977년 김정일은 김동규·유장식 등 반대파를 ‘10대 원칙’에 해독을 끼쳤다는 죄목으로 정치범수용소에 감금하였다. 이들과 가까운 추종자들도 지방의 농장과 광산으로 쫓겨 갔다. 이 과정에서 약 30만명의 당원이 출당되었고, 60만명의 젊은 당원들이 보충되었다.
▲ 1980년 10월 10일 김정일은 당 중앙위원회 6기 1차 전원회의에서 정치국 상무위원, 당중앙위원회 비서,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주석단 서열은 정치국 상무위원인 김일성·김일·오진우에 이어 4위를 차지하였으나, 당시 정치국·비서국·군사위원회에 모두 직책을 가진 사람은 김일성과 김정일, 두 사람이었다. 황장엽 전 노동당 국제비서는 “당시 김일성이 정치국 상무위원회를 만든 이유가 김일성-김정일의 지도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의 경우
▲ 김정은은 2008년 8월 김정일의 뇌졸중 이후 2009년 1월 갑자기 후계자로 내정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따라서 김정은이 김정일처럼 후계자가 되기 위해 ‘투쟁’한 경험은 전무하다.
▲ 김정은은 2009년부터 국가안전보위부에서 활동해 온 것으로 알려지며 ‘김대장’ ‘청년대장’ 등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 김정은은 2010년 9월 27일 최고사령관 명령으로 김경희·최룡해·이영호 등과 함께 ‘인민군 대장’ 칭호를 받았다.
▲ 2010년 9월 28일,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및 당중앙위원에 선임되어 후계자로 등장하였다.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 됨으로써 김정일의 유고시 군권을 장악하는 데 필요한 조건이 구비되었고, 당중앙위원이 됨으로써 앞으로 당중앙위 정치국, 비서국의 주요 직책을 맡을 수 있게 되었다.
▲ 2010년 10월 10일 당 창건 65주년을 맞아 김정일과 함께 열병식을 하는 김정은의 모습이 미국 CNN 방송을 통해 보도되었다. 조선중앙방송, 평양방송, 조선중앙TV는 오전 9시30분부터 11시18분까지 1시간48분 동안 열병 준비상황과 부대 행진을 실황 중계했다. 북한은 열병식을 CNN을 비롯한 외신에 생중계를 허용했다.
▲ 조선중앙통신은 2010년 11월 7일 조명록 국방위 제1부위원장 장의위원회 명단에서 김정은을 김정일 다음에 두 번째로 명기하였다. 군 총정치국장의 장의위인 만큼 김정은의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지위를 우선하여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리영호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보다 앞서 기록된 것은 김정은이 사실상 ‘당중앙군사위 제1부위원장 지위’에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 김정일을 수행하는 군 관련 행사가 증가했다. 지난 7월 6일 통일부 통계에 따르면 김정은의 공개활동(김정일 수행) 총 35회 중 86%가 군과 관련된 활동이었다. 김정일의 군 관련 공개활동 14회 중 김정은은 12회를 수행했다.
▲ 김정일과 그의 가족의 경호부대인 호위총국(호위사령부)에 김정은 전담부대가 신설되었다.
포괄적이고 느슨한 지위의 김정은
이상에서 볼 때, 김정일의 2대 세습 시기와 비교하면 김정은의 경우 후계 구축의 초기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정일은 후계자 초기인 1973년부터 이미 당 조직비서, 선전비서를 맡아 당을 장악하는 기반을 닦은 반면, 김정은의 경우 당 권력에 있어서는 당중앙위원이라는 포괄적이고 느슨한 지위에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반면 김정일이 1980년에 이르러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된 점에 비하면 김정은이 군을 장악하는 데는 김정일의 후계 시기보다 다소 앞서 있다고 볼 수 있다. 김정일 후계 시기는 당-국가 체제가 확고했다면, 김정은의 경우 1990년대 중반 이후의 선군정치에 기인한 탓이 크다. 김정은은 처음부터 ‘청년대장’으로 호칭되면서 ‘선군 후계자’ 이미지가 먼저 부각되었다.
하지만 현재 김정은이 실제로 군 인사권을 어느 정도의 수준에서 행사하고 있는지는 불투명하다. 김정일은 후계 초기에 당 조직비서로서 이미 중요한 군 인사권을 행사했었다. 최근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김정일이 김정은에게 일정 부분 권력을 이양해 주었다가 김정은이 일을 서툴게 처리하는 바람에 다시 회수했다는 소문도 있다.
1980년 10월 기준으로 볼 때 김정일은 정치국 상무위원으로서 김일성 다음으로 당의 전체 노선을 지도하는 지위에서, 비서국 조직비서로서 북한사회 전반을 통제하는 권한을 가졌으며, 당중앙군사위원으로서 군에서도 중요한 지위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김정은의 경우 당대표자회를 통해 빠르게 후계자로 공식화되었지만, 1980년 10월 김정일 권력과 도저히 비교할 수 없고, 내용적으로 볼 때는 1974년 2월 제5기 8차 전원회의 시기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9월 28일 이후 김정은의 후계자로서의 행적은 1974~1980년 김정일의 행적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양(量)이 적으며, 질적(質的) 의미도 떨어진다.
북한에서 ‘후계자’는 특정 직책과는 본질적으로 무관한 특성을 갖고 있기는 하다. 북한의 후계문제와 관련해서는 후계자의 지위와 역할, 지도체제를 규정한 ‘후계자론’이라는 공식 문건이 나와 있다. 김정일이 후계자 승계과정에서 권력세습을 정당화하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다. 몇 가지 중요 대목만 짚어본다.
북한의 ‘후계자론’
① 후계자의 지위
“후계자의 절대적 지위는 탁월한 지도자가 후계자로 등장하여 수령의 사업을 보좌하라는 때로부터 시작되며 수령의 혁명위업이 완성될 때까지 계속된다. …(중략)… 오직 수령의 후계자가 차지할 신성불가침의 자리는 어느 당과 국가의 책임자의 위치와는 전혀 다른 절대적인 자리이다. 후계자가 수령을 모시고 추대되는 경우에는 상당한 기간 수령을 보좌하며 수령의 의사를 받들어 모든 분야에서 수령의 영도를 확고히 실현하는 유일한 지도자의 자리를 차지한다.”
이 대목에서 ‘오직 수령의 후계자가 차지할 신성불가침의 자리는 어느 당과 국가의 책임자의 위치와는 전혀 다른 절대적인 자리’라는 말은, 후계자는 당 총비서의 후계자 또는 국방위원장의 후계자가 아니라, ‘수령의 후계자’라는 뜻이다. 이 대목은 후계자론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수령이 초월적 존재인 만큼 후계자도 초월적 존재라는 의미다. 따라서 순전히 이론적으로만 본다면 김정은의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직책은 ‘후계자의 지위’와는 무관하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수령의 후계자는 유일 지도자로서의 절대적 지위를 차지한다”는 점에서 보면, 김정은은 유일 지도자로서의 절대적 지위는 아직 확보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② 후계자의 역할
후계자의 역할은 “수령을 보좌하고 수령의 혁명이론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후계자는 수령을 진심으로 받들고 수령의 사업을 최고의 높이에서 보좌하는 것이다. …(중략)… 무엇보다 수령의 안녕을 철저히 보장하고 권위를 높이기 위한 사업을 조직지도한다. 탁월한 사상이론 활동과 당 및 국가사업의 전반에 대한 정력적인 지도를 통하여 수령이 바라는 대로 혁명과 건설을 정력적으로 추진시킨다. 수령이 창시한 혁명의 지도사상을 고수하고 발전시킨다.”
이 대목에서 보면 김정은이 김정일에 대한 신체 경호, 즉 수령의 호위사업을 지도해야 한다. 최근 김정은이 호위총국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긴 하다. 그러나 “수령이 창시한 혁명의 지도사상을 고수하고 발전시킨다”는 관점에서 보면 김정은이 주체사상(김일성)과 선군사상(김정일)을 이론적으로 심화·발전시켜야 하는데 지금까지 뚜렷하게 드러난 것은 없다. 김정일이 <주체사상에 대하여> 등의 논문을 당 ‘216호실’ 필진을 시켜서 자기 이름으로 출판했듯이, 앞으로 ‘선군사상에 대하여’류의 논문이 김정은 이름으로 나올 수 있을 것이다.
③ 후계자의 지도체제
후계자는 수령의 영도를 실현하기 위해 유일적 지도체제를 위한 기반을 닦아야 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후계자의 지도체제란 후계자의 조직정치적 지반(기반)을 튼튼히 닦고 그의 영도를 완전히 실현해야 할 사상체계·조직체계·사업질서와 규율 등을 통틀어 말하는 것이다. …(중략)… 후계자의 지도체제는 수령의 영도체제 안에서 당을 골간으로 하여 세워지는 것이다. 후계자의 지도체제는 당의 유일적인 영도체제이다.”
‘사상체계·조직체계·사업질서와 규율 등을 통틀어…’라는 대목에서 보면 지금 김정은의 경우 ‘유일지도체제 수립’에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후계자의 조직정치적 지반을 닦고 있는 중’으로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이 관점에서 최근의 류경(보위부 부부장), 주상성(인민보안부장) 등에 대한 처형, 해임이 이해되며, 동시에 이 대목에서 앞으로 김정일과 김정은의 갈등, 신구 권력 엘리트 간의 갈등이 내연(內燃)할 수 있다.
‘후계자의 지도체제는 당의 유일적인 영도체제’ ‘당을 골간으로…’라는 대목은 김정일의 세습 시기에는 분명했지만, 90년대 이후 상대적으로 약화되었다. 제3차 당대표자회의 결과도 당의 영도적 지위와 역할의 복원에 중점이 두어졌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20년 가까이 비대해진 군의 역할과 당의 영도적 지위가 부딪칠 소지가 있으며, 이는 향후 북한 내부문제와 관련하여 중요한 관찰 포인트 중의 하나이다. 올해 4월 12일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4차 회의에서 김정은의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선출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도 당·군 관계, 후계세습 속도조절 문제, 권력내부 갈등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야심가 김영철 정찰총국장의 역할 주목해야
한 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사실은 김정일의 ‘후계자론’은 1970년대 국제공산주의 운동이 존재했던 시기에 구소련, 중국의 후계문제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만들어진 측면도 분명히 있기 때문에, 지금 기계적으로 김정은의 경우에 대입하는 데는 제한성이 많다는 것이다. 따라서 김정일이 김정은에게 권력을 물려주면서 자신이 만든 ‘후계자론’을 스스로 무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김정은 후계 진행의 뼈대를 한번 추려본다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미래의 어느 시점이든 김정은으로 3대 세습이 이루어질 수 있는 준비는 되었다. 둘째, 현재 김정은의 권력은 1974년 ‘김정일 조직비서’에 미치지 못한다. 셋째, 김정은의 유일적 지도체제가 수립되려면 김정일의 1980년 제6차 당대회 시기의 수준에는 이르러야 하고, 그때까지 김정일에게 자신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입증해야 하는데, 여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경제난·시장 확대·외부정보 확산·주민의식의 변화·수령-당-대중 수직체계의 분열 등 여러 환경적 요인, 핵문제 등 대외적 요인, 그리고 김정일의 건강·김정은 유일지도체제 수립을 위한 숙청과 권력내부 갈등을 감안하면, 김정은이 안정되고 충분한 후계 수업을 받으면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상당히’ 불투명하다.
지금 김정일-정은 부자는 ‘갈 길은 먼데 서산에 해는 지고, 노자는 떨어졌고 둔마(鈍馬)는 움직이지 않는’ 상황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북한의 ‘3대 세습’ 진행을 집중하여 관찰하고 있어야 한다.
통상적으로 젊은 세대는 눈앞에 놓인 여러 난제를 ‘한방에’ 해결하려고 하는 특성이 있는데, 젊은 김정은과 천안함 폭침·연평도 포격을 일으킨 김영철 정찰총국장 같은 야심가의 욕망이 어우러지면 예기치 못한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김영철이 김정은의 능력을 빨리 키워주기 위해 분수에 넘치는 행동을 하고, 이를 장성택·최룡해가 위험하게 보면서 김영철을 제거하려고 하는데, 김영철은 자신의 비천한 출신성분에 대한 콤플렉스도 일시에 만회할 겸 김정은을 데리고 자신의 주특기인 대남 기획도발을 강행하여 김정일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김정은·김영철이 주도해 가는 상황에 업혀 가도록 만드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볼 때 김영철의 파워는 장성택·최룡해에 근접하기 어렵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언제나 세자 책봉과 왕권 교체 시기에는 위험한 권력 갈등이 발생한다. 지금 북한의 3대 세습은 김정일의 2대 세습 시기에 비하면 내외적 안정성 문제에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불안정하다.
특히 한국·미국·중국에서 동시에 리더십 교체가 있는 한반도 주변 안보 공백기인 2012년에 북한 내부에서 어떤 일이 발생할 수도 있음을 우리는 유념해야 할 것이다.⊙
물론 북한체제는 지난 40여 년간 대체로 이 세 그룹으로 구성돼 있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과거에는 이 세 그룹이 당생활·조직생활 등으로 강력하게 수직 연결되어 있었지만 지금은 각각 분리·해체되고 있다는 것이다. 수령그룹, 간부그룹, 일반주민들이 한 국가 안에서 각자도생(各自圖生)하고 있는 형국이다.
법치국가에서는 나라마다 민주주의 발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쨌든 헌법 체계와 법질서 안에서 정부-민간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전통적인 수령-당-대중 수직독재체계가 이미 깨진 북한에서 법 체계를 통해 새 질서가 세워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현재 북한체제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의 핵심이 바로 이것이다.
비유하자면 주민들의 사상생활·조직생활·물질생활을 책임져 온 ‘수령 무한책임’이 현실에서 깨지니까, 그 동전의 뒷면인 ‘수령 무한권한’도 동시에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북한에서는 중앙의 지시가 평양을 넘어서면 도무지 영(令)이 서지 않는다고 한다. 당과 국가 차원에서 지시대로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각 그룹이 모두 따로 노는 것이다.
이에 따라 수령그룹은 오로지 정권을 지키기 위해, 간부그룹은 이 눈치 저 눈치 보면서 온갖 비리·뇌물·속임수·협박 등으로 현존 지위를 지키기 위해, 일반주민들은 시장에서 자신과 가족의 생존 그 자체를 위해, 각각 투쟁하고 있는 형국이다.
계층 간 대립 갈등 심화
이러한 정치사회적 환경에서 박남기(당 재정부장), 류경(보위부 부부장), 김용삼(철도상), 주상성(인민보안부장) 등이 처형 또는 해임된 것으로 보이며, 간부-간부, 간부-주민, 주민-주민 사이에 대립과 갈등, 각종 사건사고들이 늘어나고 있다.
김정일이 지난해 5월부터 1년간 3차례나 방중(訪中)한 이유는 중국의 경제지원을 받고 김일성 출생 100주년인 2012년에 대비하자는 것이지만, 이러한 본질적 문제를 해결할 길은 없다. 중국의 도움도 정권 유지를 위한 ‘땜질’에 불과한 것이다. 앞으로 어느 시기, 어떤 요인에 의해 예상치 못한 사태가 발생할지 누구도 예측이 어렵다.
분명한 사실은, 북·중 간 황금평·나진선봉 공동개발은 북한의 개방을 촉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만, 현 김정일 정권에 연속적이며 계획적인 중국식 개혁개방 연착륙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결국 김정일 정권에 남은 길은 1) 중국의 지원을 받으며 일정 기간 땜질식 정권 유지 2) 김정일의 사망→내부 혼란→정권 붕괴 3) 군(軍) 또는 민간 요인에 의한 체제변혁이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중국의 대북 영향력이 커짐에 따라 북한을 위성국가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그러나 미국, 러시아, 일본이라는 주변 대국들 때문에 중국이 북한의 위성국가화를 시도하기는 어렵다. 또 김정일과 북한 통치세력이 아무리 힘이 빠졌다 해도 미·중 간 군사전략 게임의 틈새에서 나름은 ‘주체적으로’ 중국을 이용해 보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현재 김정일은 중국의 지원으로 ‘땜질식’ 정권유지의 길로 가려 하고 있으며, 또 그것이 김정일 입장에서 최악으로 빠지지 않는 ‘차악(次惡)의 길’이다. 이와 함께 김정일은 미국과 한반도평화협정 체결을 시도하여 미·중으로부터 ‘3대 세습정권의 안정’을 보장받으며 동시에 남한 내부를 흔들어놓으려는 게임을 하려는 것이다.
김정일의 권력세습 과정
북한의 3대 세습은 이 같은 내외적 환경에서 진행되어 지난해 9월 28일 노동당대표자회를 통해 김정은이 후계자로 객관화된 후 벌써 1년이 되었다. 김정은의 후계 세습은 현재 어디까지 진행되어 있을까?
김정일이 김일성으로부터 2대 권력세습을 할 때, 김정일은 1964~1974년까지 10년 동안 정치수업과 김일성 신임 획득 노력, 삼촌 김영주·계모 김성애와의 권력투쟁 등 다양한 경험을 쌓았고, 1980년 10월 6차 당대회까지 후계자로서 공고한 지위를 완전히 구축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대목을 체크해 본다.
▲ 1972년 10월 당중앙위원회 제5기 5차 전원회의에서 당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다.
▲ 1973년 2월 김일성은 김정일에게 ‘3대혁명 소조운동’을 전국적으로 발기하라고 지시했다. 3대혁명 소조운동은 나이 어린 김정일의 정치적 지지기반 역할을 하였다.
▲ 1973년 9월 당중앙위원회 제5기 7차 전원회의에서 조직 및 선전비서로 임명되었다.
▲ 1974년 2월 제5기 8차 전원회의에서 정치위원이 됨으로써 김일성의 후계자로 확정되었다. 김정일은 조선노동당 정치위원회(정치국 전신) 위원, 중앙당 조직비서 겸 조직지도부장, 사상담당비서 겸 선전선동부장의 직책을 갖게 되었다. 당의 사상사업과 인사권, 검열권을 갖게 되었다.
▲ 김정일은 후계자 확정 후 주체사상을 김일성주의로 선포하고 수령(김일성)에 대한 절대화·신격화 작업을 전개하였다. 1974년 4월 14일 그 실천적 지침인 ‘당의 유일사상체계확립의 10대 원칙’(4월 문헌)을 시행하였다.
▲ 김정일은 ‘10대 원칙’을 통해 김일성의 권력이 오로지 후계자인 자신을 통해서만 구현되도록 하는 ‘유일적 지도체제’를 수립하였다.
▲ 김정일은 ‘수령은 인민의 생명의 어버이이기 때문에 인민대중의 선거를 통하여 선출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발생적으로 출현하여 인민대중의 추대를 받게 되는 초인간적인 절대적 존재이며, 수령의 출현은 한 번뿐이고 다음부터는 수령에게 가장 충실한 후계자가 수령의 지위를 물려받게 된다’는 수령론 및 후계자론을 고안해 냈다.
▲ 1977년 김정일은 김동규·유장식 등 반대파를 ‘10대 원칙’에 해독을 끼쳤다는 죄목으로 정치범수용소에 감금하였다. 이들과 가까운 추종자들도 지방의 농장과 광산으로 쫓겨 갔다. 이 과정에서 약 30만명의 당원이 출당되었고, 60만명의 젊은 당원들이 보충되었다.
▲ 1980년 10월 10일 김정일은 당 중앙위원회 6기 1차 전원회의에서 정치국 상무위원, 당중앙위원회 비서,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주석단 서열은 정치국 상무위원인 김일성·김일·오진우에 이어 4위를 차지하였으나, 당시 정치국·비서국·군사위원회에 모두 직책을 가진 사람은 김일성과 김정일, 두 사람이었다. 황장엽 전 노동당 국제비서는 “당시 김일성이 정치국 상무위원회를 만든 이유가 김일성-김정일의 지도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의 경우
▲ 김정은은 2008년 8월 김정일의 뇌졸중 이후 2009년 1월 갑자기 후계자로 내정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따라서 김정은이 김정일처럼 후계자가 되기 위해 ‘투쟁’한 경험은 전무하다.
▲ 김정은은 2009년부터 국가안전보위부에서 활동해 온 것으로 알려지며 ‘김대장’ ‘청년대장’ 등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 김정은은 2010년 9월 27일 최고사령관 명령으로 김경희·최룡해·이영호 등과 함께 ‘인민군 대장’ 칭호를 받았다.
▲ 2010년 9월 28일,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및 당중앙위원에 선임되어 후계자로 등장하였다.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 됨으로써 김정일의 유고시 군권을 장악하는 데 필요한 조건이 구비되었고, 당중앙위원이 됨으로써 앞으로 당중앙위 정치국, 비서국의 주요 직책을 맡을 수 있게 되었다.
▲ 2010년 10월 10일 당 창건 65주년을 맞아 김정일과 함께 열병식을 하는 김정은의 모습이 미국 CNN 방송을 통해 보도되었다. 조선중앙방송, 평양방송, 조선중앙TV는 오전 9시30분부터 11시18분까지 1시간48분 동안 열병 준비상황과 부대 행진을 실황 중계했다. 북한은 열병식을 CNN을 비롯한 외신에 생중계를 허용했다.
▲ 조선중앙통신은 2010년 11월 7일 조명록 국방위 제1부위원장 장의위원회 명단에서 김정은을 김정일 다음에 두 번째로 명기하였다. 군 총정치국장의 장의위인 만큼 김정은의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지위를 우선하여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리영호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보다 앞서 기록된 것은 김정은이 사실상 ‘당중앙군사위 제1부위원장 지위’에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 김정일을 수행하는 군 관련 행사가 증가했다. 지난 7월 6일 통일부 통계에 따르면 김정은의 공개활동(김정일 수행) 총 35회 중 86%가 군과 관련된 활동이었다. 김정일의 군 관련 공개활동 14회 중 김정은은 12회를 수행했다.
▲ 김정일과 그의 가족의 경호부대인 호위총국(호위사령부)에 김정은 전담부대가 신설되었다.
포괄적이고 느슨한 지위의 김정은
이상에서 볼 때, 김정일의 2대 세습 시기와 비교하면 김정은의 경우 후계 구축의 초기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정일은 후계자 초기인 1973년부터 이미 당 조직비서, 선전비서를 맡아 당을 장악하는 기반을 닦은 반면, 김정은의 경우 당 권력에 있어서는 당중앙위원이라는 포괄적이고 느슨한 지위에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반면 김정일이 1980년에 이르러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된 점에 비하면 김정은이 군을 장악하는 데는 김정일의 후계 시기보다 다소 앞서 있다고 볼 수 있다. 김정일 후계 시기는 당-국가 체제가 확고했다면, 김정은의 경우 1990년대 중반 이후의 선군정치에 기인한 탓이 크다. 김정은은 처음부터 ‘청년대장’으로 호칭되면서 ‘선군 후계자’ 이미지가 먼저 부각되었다.
하지만 현재 김정은이 실제로 군 인사권을 어느 정도의 수준에서 행사하고 있는지는 불투명하다. 김정일은 후계 초기에 당 조직비서로서 이미 중요한 군 인사권을 행사했었다. 최근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김정일이 김정은에게 일정 부분 권력을 이양해 주었다가 김정은이 일을 서툴게 처리하는 바람에 다시 회수했다는 소문도 있다.
1980년 10월 기준으로 볼 때 김정일은 정치국 상무위원으로서 김일성 다음으로 당의 전체 노선을 지도하는 지위에서, 비서국 조직비서로서 북한사회 전반을 통제하는 권한을 가졌으며, 당중앙군사위원으로서 군에서도 중요한 지위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김정은의 경우 당대표자회를 통해 빠르게 후계자로 공식화되었지만, 1980년 10월 김정일 권력과 도저히 비교할 수 없고, 내용적으로 볼 때는 1974년 2월 제5기 8차 전원회의 시기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9월 28일 이후 김정은의 후계자로서의 행적은 1974~1980년 김정일의 행적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양(量)이 적으며, 질적(質的) 의미도 떨어진다.
북한에서 ‘후계자’는 특정 직책과는 본질적으로 무관한 특성을 갖고 있기는 하다. 북한의 후계문제와 관련해서는 후계자의 지위와 역할, 지도체제를 규정한 ‘후계자론’이라는 공식 문건이 나와 있다. 김정일이 후계자 승계과정에서 권력세습을 정당화하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다. 몇 가지 중요 대목만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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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9월 28일 평양에서 김정일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조선노동당대표자회에서 참석자들이 박수치고 있다. |
북한의 ‘후계자론’
① 후계자의 지위
“후계자의 절대적 지위는 탁월한 지도자가 후계자로 등장하여 수령의 사업을 보좌하라는 때로부터 시작되며 수령의 혁명위업이 완성될 때까지 계속된다. …(중략)… 오직 수령의 후계자가 차지할 신성불가침의 자리는 어느 당과 국가의 책임자의 위치와는 전혀 다른 절대적인 자리이다. 후계자가 수령을 모시고 추대되는 경우에는 상당한 기간 수령을 보좌하며 수령의 의사를 받들어 모든 분야에서 수령의 영도를 확고히 실현하는 유일한 지도자의 자리를 차지한다.”
이 대목에서 ‘오직 수령의 후계자가 차지할 신성불가침의 자리는 어느 당과 국가의 책임자의 위치와는 전혀 다른 절대적인 자리’라는 말은, 후계자는 당 총비서의 후계자 또는 국방위원장의 후계자가 아니라, ‘수령의 후계자’라는 뜻이다. 이 대목은 후계자론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수령이 초월적 존재인 만큼 후계자도 초월적 존재라는 의미다. 따라서 순전히 이론적으로만 본다면 김정은의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직책은 ‘후계자의 지위’와는 무관하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수령의 후계자는 유일 지도자로서의 절대적 지위를 차지한다”는 점에서 보면, 김정은은 유일 지도자로서의 절대적 지위는 아직 확보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② 후계자의 역할
후계자의 역할은 “수령을 보좌하고 수령의 혁명이론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후계자는 수령을 진심으로 받들고 수령의 사업을 최고의 높이에서 보좌하는 것이다. …(중략)… 무엇보다 수령의 안녕을 철저히 보장하고 권위를 높이기 위한 사업을 조직지도한다. 탁월한 사상이론 활동과 당 및 국가사업의 전반에 대한 정력적인 지도를 통하여 수령이 바라는 대로 혁명과 건설을 정력적으로 추진시킨다. 수령이 창시한 혁명의 지도사상을 고수하고 발전시킨다.”
이 대목에서 보면 김정은이 김정일에 대한 신체 경호, 즉 수령의 호위사업을 지도해야 한다. 최근 김정은이 호위총국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긴 하다. 그러나 “수령이 창시한 혁명의 지도사상을 고수하고 발전시킨다”는 관점에서 보면 김정은이 주체사상(김일성)과 선군사상(김정일)을 이론적으로 심화·발전시켜야 하는데 지금까지 뚜렷하게 드러난 것은 없다. 김정일이 <주체사상에 대하여> 등의 논문을 당 ‘216호실’ 필진을 시켜서 자기 이름으로 출판했듯이, 앞으로 ‘선군사상에 대하여’류의 논문이 김정은 이름으로 나올 수 있을 것이다.
③ 후계자의 지도체제
후계자는 수령의 영도를 실현하기 위해 유일적 지도체제를 위한 기반을 닦아야 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후계자의 지도체제란 후계자의 조직정치적 지반(기반)을 튼튼히 닦고 그의 영도를 완전히 실현해야 할 사상체계·조직체계·사업질서와 규율 등을 통틀어 말하는 것이다. …(중략)… 후계자의 지도체제는 수령의 영도체제 안에서 당을 골간으로 하여 세워지는 것이다. 후계자의 지도체제는 당의 유일적인 영도체제이다.”
‘사상체계·조직체계·사업질서와 규율 등을 통틀어…’라는 대목에서 보면 지금 김정은의 경우 ‘유일지도체제 수립’에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후계자의 조직정치적 지반을 닦고 있는 중’으로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이 관점에서 최근의 류경(보위부 부부장), 주상성(인민보안부장) 등에 대한 처형, 해임이 이해되며, 동시에 이 대목에서 앞으로 김정일과 김정은의 갈등, 신구 권력 엘리트 간의 갈등이 내연(內燃)할 수 있다.
‘후계자의 지도체제는 당의 유일적인 영도체제’ ‘당을 골간으로…’라는 대목은 김정일의 세습 시기에는 분명했지만, 90년대 이후 상대적으로 약화되었다. 제3차 당대표자회의 결과도 당의 영도적 지위와 역할의 복원에 중점이 두어졌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20년 가까이 비대해진 군의 역할과 당의 영도적 지위가 부딪칠 소지가 있으며, 이는 향후 북한 내부문제와 관련하여 중요한 관찰 포인트 중의 하나이다. 올해 4월 12일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4차 회의에서 김정은의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선출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도 당·군 관계, 후계세습 속도조절 문제, 권력내부 갈등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야심가 김영철 정찰총국장의 역할 주목해야
한 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사실은 김정일의 ‘후계자론’은 1970년대 국제공산주의 운동이 존재했던 시기에 구소련, 중국의 후계문제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만들어진 측면도 분명히 있기 때문에, 지금 기계적으로 김정은의 경우에 대입하는 데는 제한성이 많다는 것이다. 따라서 김정일이 김정은에게 권력을 물려주면서 자신이 만든 ‘후계자론’을 스스로 무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김정은 후계 진행의 뼈대를 한번 추려본다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미래의 어느 시점이든 김정은으로 3대 세습이 이루어질 수 있는 준비는 되었다. 둘째, 현재 김정은의 권력은 1974년 ‘김정일 조직비서’에 미치지 못한다. 셋째, 김정은의 유일적 지도체제가 수립되려면 김정일의 1980년 제6차 당대회 시기의 수준에는 이르러야 하고, 그때까지 김정일에게 자신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입증해야 하는데, 여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따라서 경제난·시장 확대·외부정보 확산·주민의식의 변화·수령-당-대중 수직체계의 분열 등 여러 환경적 요인, 핵문제 등 대외적 요인, 그리고 김정일의 건강·김정은 유일지도체제 수립을 위한 숙청과 권력내부 갈등을 감안하면, 김정은이 안정되고 충분한 후계 수업을 받으면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상당히’ 불투명하다.
지금 김정일-정은 부자는 ‘갈 길은 먼데 서산에 해는 지고, 노자는 떨어졌고 둔마(鈍馬)는 움직이지 않는’ 상황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북한의 ‘3대 세습’ 진행을 집중하여 관찰하고 있어야 한다.
통상적으로 젊은 세대는 눈앞에 놓인 여러 난제를 ‘한방에’ 해결하려고 하는 특성이 있는데, 젊은 김정은과 천안함 폭침·연평도 포격을 일으킨 김영철 정찰총국장 같은 야심가의 욕망이 어우러지면 예기치 못한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김영철이 김정은의 능력을 빨리 키워주기 위해 분수에 넘치는 행동을 하고, 이를 장성택·최룡해가 위험하게 보면서 김영철을 제거하려고 하는데, 김영철은 자신의 비천한 출신성분에 대한 콤플렉스도 일시에 만회할 겸 김정은을 데리고 자신의 주특기인 대남 기획도발을 강행하여 김정일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김정은·김영철이 주도해 가는 상황에 업혀 가도록 만드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볼 때 김영철의 파워는 장성택·최룡해에 근접하기 어렵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언제나 세자 책봉과 왕권 교체 시기에는 위험한 권력 갈등이 발생한다. 지금 북한의 3대 세습은 김정일의 2대 세습 시기에 비하면 내외적 안정성 문제에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불안정하다.
특히 한국·미국·중국에서 동시에 리더십 교체가 있는 한반도 주변 안보 공백기인 2012년에 북한 내부에서 어떤 일이 발생할 수도 있음을 우리는 유념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