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중국의 동북4성이 될 것이라고 얘기하는데 잘못된 시각입니다. 남북정상회담 때 김정일 위원장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중국이 단둥에서 평양까지 고속도로를 깔아주기로 했다. 그런데 내가 거절했다. 중국이 어떤 것을 요구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중국을 달갑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는 남한과 협력해 보려고 했습니다”
⊙ “남북관계가 10년 전으로 퇴보되어 최악의 상황”
⊙ “이명박 정부의 對北정책은 비현실적…지난 3년이 이를 입증”
⊙ “김만복 원장, 해주와 개성 직접 챙기시오”(김정일)
⊙ “남북관계가 10년 전으로 퇴보되어 최악의 상황”
⊙ “이명박 정부의 對北정책은 비현실적…지난 3년이 이를 입증”
⊙ “김만복 원장, 해주와 개성 직접 챙기시오”(김정일)
- 2007년 10월 2일 평양 4·25 문화회관 광장에서 열린 2차 남북정상회담 공식 환영식에서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이 허리를 굽혀 김정일의 손을 두 손으로 붙잡고 인사하고 있다.
친북(親北)좌파 성향의 일본 월간지 《세카이》(世界)에 연평도 포격에 대한 ‘남한 책임론’을 주장했던 김만복(金萬福) 전 국정원장이 최근 서울의 한 대학 특강(特講)에서 이명박(李明博) 정부의 대북(對北)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지난 1월 12일 서울대 행정대학원 특강(국가정책과정)에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인 ‘비핵·개방3000’은 지난 3년간 비(非)현실적임이 증명됐다”며 “현 정부는 김대중ㆍ노무현 정권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규정해 각종 대화 채널과 교류ㆍ협력을 중단했고, 이에 따라 전쟁 발발 우려가 증가해 남북관계는 10년 전으로 퇴보돼 최악의 상황이 됐다”고 주장했다.
이날 강의의 주제는 ‘NLL의 성격과 정치적 함의’였고, 수강생은 지자체단체장, 공기업 임원, 기업 CEO 등 40여 명이었다.
김만복 전 원장은 수강생들에게 강의 내용을 담은 책자와 함께 《세카이》에 실린 문제의 기고문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컬러로 제작해 나눠줬다.
서울대 측은 당초 원세훈(元世勳) 국정원장을 강사로 초청했지만 원 원장이 고사(固辭)하자 김 전 원장에게 강의를 부탁했다.
“제 사찰대상이었던 분도 있을지 모르겠다”
김만복 전 원장은 강의에 앞서 수강생들에게 사전 양해를 구했다.
“강의를 하기 전에 여러분의 명단을 봤습니다. 직업으로 볼 때 여기 계신 분들은 대부분 보수적이고 우파 성향으로 보입니다. 참여정부 때 국정원장을 한 사람으로서 다소 걱정이 됩니다. 혹시 제가 말하는 것이 여러분의 생각과 맞지 않는다면 강의를 즉시 중단시키고 질문해도 좋습니다.”
김 원장은 1974년 중앙정보부에 입사한 후 국정원장까지 된 과정을 간단히 소개했다.
“저는 친절과 성실을 모토로 국정원에서 평생 일했습니다. 그 결과 국정원장까지 지냈습니다. 계급으로 치면 10계단 오른 셈입니다. 저는 이곳 서울대와 인연이 아주 많습니다. 4년 동안 대학생활을 했고, 중앙정보부에 들어간 후 6년 동안 서울대를 담당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 저의 ‘사찰대상’이었던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양심에 거리낌없이 당당히 일했습니다. 국정원을 그만두기 직전(김만복-김양건 대화록 유출 관련) 감찰조사를 받기도 했지만 저는 떳떳했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김만복 원장은 노트북과 슬라이드를 이용해 수강생들의 이해를 도왔다.
그는 천안함 폭침ㆍ연평도 포격의 현장인 ‘서해’를 ‘분쟁의 바다’ ‘전쟁의 바다’로 규정하며 논란의 원인을 ‘NLL’에서 찾았다.
“1953년 8월 30일 클라크 유엔군 사령관은 남북 간 우발적 해상 충돌을 방지하고 정전(停戰)체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NLL을 그었습니다. 이후 20년간 북한은 공식적으로 이의(異議)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북한 해군력이 보강된 1973년 10월부터 2개월간 43차례에 걸쳐 NLL을 침범했습니다. 이후 북한의 NLL 무력시위는 계속 증가했습니다.”
김 전 원장은 NLL의 성격에 대해 “태생적으로 문제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NLL은 북측과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선포했기 때문에 북측이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정전협정은 ‘서해 해상군사분계선’을 미확정한 상태에서 체결됐습니다. 우리도 NLL을 해ㆍ공군의 ‘초계활동 한계선’으로 설정했기 때문에 우리가 NLL을 영토선으로 방어할 명분이 미약합니다.”
“NLL을 영토선으로 보기에는 미약하다”는 김 원장의 발언과 달리 역대(歷代) 우리 정부는 NLL은 영토선이라는 입장을 일관되게 고수해 왔다.
김 원장은 1990년대 들어 일부 좌파학자들이 NLL의 법적 효과를 부인하는 내용을 자세히 설명했다.
“미국은 ‘NLL이 국제법적 지위를 갖지 않는다’는 입장 유지하는 듯”
그는 NLL에 대한 미국(유엔司)의 입장을 이렇게 해석했다.
“미국은 1973년까지 NLL을 대북 봉쇄선으로 운용했습니다. 1973년 북한이 이의를 제기하자 1975년 입장을 바꾸었습니다. 1975년 2월 28일 당시 국무장관이었던 헨리 키신저가 시달한 비밀외교전문에는 ‘NLL은 국제법적 지위를 갖지 않는다’ ‘한국 정부가 영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고 적혀 있습니다. 미국은 1999년 1차 연평해전 후 우리 정부 입장을 두둔했지만 내부적으로는 기존 입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피격 직후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의 공격을 비난하면서도 NLL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강의에 참석했던 한 인사는 “지금의 미국이 NLL을 국제법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김 원장의 주장에 매우 놀랐다”고 전했다.
김 전 원장은 1ㆍ2차 연평해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98년 2월 김대중 정부 출범 후 대북 포용정책을 추진했습니다. 그 일환으로 선제사격 금지, 확전 자제 지시를 군(軍)에 하달했고 5단계 교전수칙도 마련했습니다. 그런데 1999년 6월 15일 1차 연평해전이 발생했습니다. 북한 경비정 7척이 NLL을 월경해 우리 고속정이 밀어내기를 하자 북한 경비정이 함포사격을 했고 이에 우리 고속정과 초계함이 반격해 14분 만에 우리가 승리했습니다. 2차 연평해전은 2002년 6월 29일에 일어났는데 북한 경비정 3척이 NLL을 넘어오자 우리 고속정 4척이 교전수칙에 따라 경고방송, 시위기동, 차단기동에 이어 교전 대비태세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북한 경비정이 기습적으로 함포 공격을 해 우리 측이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은 ‘잘못된 교전수칙으로 우리 장병들이 사망했다’며 정치공세를 폈습니다.”
김만복 전 원장은 “노무현 정부 출범 후 서해는 평화ㆍ번영의 바다가 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노무현 정권 초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정보관리실장으로 임명된 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 국정원 1차장을 거쳐 정권 후반기에 국정원의 최고 자리에 올랐다.
김 전 원장은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초 ‘연평해전 같은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라’고 특별지시를 내렸다”며 이렇게 얘기했다.
“참여정부 시절 남북은 서해상에서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서해공동어로구역 설정, 북한 민간선박의 해주 직항로 이용 등을 협의했습니다. 그 결과 참여정부 때에는 서해에서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은 전무(全無)했습니다.”
김정일이 김만복 원장에게 ‘해주와 개성 직접 챙기라’고 언급
김만복 원장은 2007년 10월 평양에서 열린 2차 남북정상(頂上)회담 당시 김정일(金正日)이 협상 테이블에서 자신에게 얘기한 내용을 공개했다.
“정상회담 때 김정일 위원장에게 ‘해주와 개성을 연계해 개발하자’고 제의했더니 김 위원장이 저에게 ‘김 원장(김만복 원장), 해주 경제특구와 개성 특구는 직접 챙기시오’라고 얘기했고 (저는) ‘예, 알겠습니다’고 말해 급진전을 이뤘습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간첩 잡는 대한민국 정보기관의 총 책임자가 간첩집단의 최고 우두머리에게 ‘지시’를 받는 희한한 장면이 벌어진 셈이다.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주도했던 그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남북 간 합의’를 노무현 정부의 최대 치적이라며 자세히 설명했다.
“서해평화지대는 분쟁 가능성을 해소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입니다. 대결상태를 해소하고 평화를 구축해 남북 간 경제협력을 증진할 수 있는 포괄적 해결방안입니다. ‘안보 지도 위에 평화의 지도’를 덮은 발상의 대전환인 것입니다.”
2007년 10월 4일 저녁, 정상회담을 끝낸 노무현 대통령은 군사분계선을 넘어와 남측 출입국관리사무소(CIQ)에서 가진 ‘대국민 보고’에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는 이번 회담의 최대의 성과”라고 소개했다. 서해평화특별지대는 한반도에 평화와 번영을 가져올 혁신적 조치라는 것이었다.
김만복 전 원장은 일본 잡지 《세카이》 기고문에서 이렇게 적었다.
<2007년 10월 3일 오전 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구상을 제안하자 김정일 위원장은 “이러저러한 문제들은 총리급 회담에서 논의합시다”라고 논의 자체를 회피하였다. (중략) 그날 오후 회의에서 김정일 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점심때 국방위원회의 책임자급 장성들과 논의했습니다. ‘해주공단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문제없다’고 했습니다. 해주도 좋고 해주에서 개성공단에 이르는 강녕군도 활용할 수 있고, 해주항도 개발해서 이용해도 될 것입니다.>
김 전 원장은 ‘분쟁지역인 서해를 남북공동 번영의 중심축으로 만들자’는 노무현 대통령의 제안을 김정일이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강조했다. 그는 강연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서해평화협력지대 설치를 구상하는 단계에서부터 청와대 논의 과정 그리고 북한과 협상하는 과정에서 한 치의 NLL도 양보하지 않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나 이는 당시 통일부 등에서는 NLL 재설정 등의 논의가 심심찮게 흘러나왔던 점과 배치된다.
“대청해전 강경 대응해 군사적 긴장 초래”
그는 수강생들에게 남북정상회담 장면을 찍은 사진도 보여줬다. 사진 중에는 김정일이 김만복 원장에게 한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하자 김 원장이 허리를 굽혀 두 손으로 김정일의 손을 꼭 잡고 인사하는 장면도 들어 있다.
김만복 전 원장은 강의 도중 몇 차례에 걸쳐 “현 정부가 잘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명박 정부 3년이 지난 지금, 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틀렸다는 게 입증됐습니다. 우파 측에서는 ‘과거 정부가 북한에 퍼주기 했다’고 하는데, 통계적으로 보면 과거 정부 10년간 평균적으로 한 해에 1조원 미만으로 지원했습니다. 이 비용은 남북평화를 유지한다는 측면에서 결코 많은 돈이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우리가 했을 때와는 너무 다르게 잘못하고 있어요.”
그는 비화(?話)라며 이런 얘기도 들려줬다.
“북한이 중국의 동북4성이 될 것이라고 얘기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시각입니다. 북한은 절대 동북4성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남북정상회담 때 김정일 위원장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중국이 단둥에서 평양까지 고속도로를 깔아주기로 했다. 그런데 내가 거절했다. 도로를 만들어준 대가로 중국이 어떤 것을 요구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중국을 달갑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는 남한과 협력해 보려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이를 무시하고 있습니다.”
김만복 전 원장은 “이명박 정부는 북한이 붕괴될 것으로 보고 있지만 북한은 절대 붕괴되지 않는다”며 “북한붕괴론적 시각이 대북 강경책을 가져오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천안함 폭침ㆍ연평도 포격과 관련해 서울대 강의와 《세카이》 기고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2009년 11월 북한 경비정 1척이 NLL을 넘어오자 우리 함정이 경고방송 후 곧바로 경고사격을 했습니다. 우리 함정이 북한 경비정을 추격하면서 포탄 4960발을 발사했습니다. 박살을 낸 것입니다. 지금의 한반도 상황은 대청해전 때 강경히 대응해 서해상에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것입니다. 현 상황은 지난 10년간의 진보정권의 대북포용 또는 화해ㆍ협력정책의 부메랑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가 북한붕괴론을 확신하고 남북관계를 악화시킨 결과라는 평소의 생각을 더욱 확신하게 됐습니다.”
《노동신문》 인용하며 “제 강의를 도와주려고 한 건지…” 언급
그는 강의 말미에 ‘서해 분쟁의 해소방안’으로 안보태세 강화, 대북(對北)군사적 우위 확보, 화해ㆍ교류정책 추진,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대체 등을 내놓았다. 그는 강의 전날(1월 11일) 북한 《노동신문》이 보도한 논평을 인용하며 이렇게 말했다.
“제 강의를 도와주려고 한 건지 어제 《노동신문》에 ‘지난해 남측이 우리의 평화협정 체결 제의에 성근한(성실한) 자세로 호응했으면 연평도 포격 사건 같은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내용의 논평이 실렸습니다. 이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야 합니다.”
김만복 전 원장의 강의를 경청했던 한 참석자는 강의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그의 강의는 이명박 정부가 구체적인 해법도 없이 북한이 공격적으로 나오도록 만들었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발언이 보수층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지만 용기를 갖고 강단에 섰다고 했습니다. 일부 수강생 중에는 그의 모습에 ‘겸손하면서 소신 있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가 국방비와 관련해 언급할 때는 공감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는 ‘참여정부는 연간 방위비를 8.9%까지 증액했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연평균 방위비 증액률이 3.4%에 불과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보안을 생명처럼 여기고 국가를 위해 목숨도 버릴 수 있는 정보기관의 최고 책임자가 자신이 한 일을 자랑하고 더군다나 민감한 NLL 문제에 대해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자세는 옳지 않다고 봅니다. 그는 NLL 전문가가 아닙니다. 자신의 주장을 강변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전직 국정원장치고는 참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지난 1월 12일 서울대 행정대학원 특강(국가정책과정)에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인 ‘비핵·개방3000’은 지난 3년간 비(非)현실적임이 증명됐다”며 “현 정부는 김대중ㆍ노무현 정권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규정해 각종 대화 채널과 교류ㆍ협력을 중단했고, 이에 따라 전쟁 발발 우려가 증가해 남북관계는 10년 전으로 퇴보돼 최악의 상황이 됐다”고 주장했다.
이날 강의의 주제는 ‘NLL의 성격과 정치적 함의’였고, 수강생은 지자체단체장, 공기업 임원, 기업 CEO 등 40여 명이었다.
김만복 전 원장은 수강생들에게 강의 내용을 담은 책자와 함께 《세카이》에 실린 문제의 기고문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컬러로 제작해 나눠줬다.
서울대 측은 당초 원세훈(元世勳) 국정원장을 강사로 초청했지만 원 원장이 고사(固辭)하자 김 전 원장에게 강의를 부탁했다.
“제 사찰대상이었던 분도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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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친북좌파 잡지 《세카이》에 실린 김만복 전 원장의 기고문과 서울대 특강 자료. 김 전 원장은 두 개의 자료를 수강생들에게 직접 배포했다. |
“강의를 하기 전에 여러분의 명단을 봤습니다. 직업으로 볼 때 여기 계신 분들은 대부분 보수적이고 우파 성향으로 보입니다. 참여정부 때 국정원장을 한 사람으로서 다소 걱정이 됩니다. 혹시 제가 말하는 것이 여러분의 생각과 맞지 않는다면 강의를 즉시 중단시키고 질문해도 좋습니다.”
김 원장은 1974년 중앙정보부에 입사한 후 국정원장까지 된 과정을 간단히 소개했다.
“저는 친절과 성실을 모토로 국정원에서 평생 일했습니다. 그 결과 국정원장까지 지냈습니다. 계급으로 치면 10계단 오른 셈입니다. 저는 이곳 서울대와 인연이 아주 많습니다. 4년 동안 대학생활을 했고, 중앙정보부에 들어간 후 6년 동안 서울대를 담당했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 중에 저의 ‘사찰대상’이었던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양심에 거리낌없이 당당히 일했습니다. 국정원을 그만두기 직전(김만복-김양건 대화록 유출 관련) 감찰조사를 받기도 했지만 저는 떳떳했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김만복 원장은 노트북과 슬라이드를 이용해 수강생들의 이해를 도왔다.
그는 천안함 폭침ㆍ연평도 포격의 현장인 ‘서해’를 ‘분쟁의 바다’ ‘전쟁의 바다’로 규정하며 논란의 원인을 ‘NLL’에서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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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만복 전 원장이 서울대 행정대학원 수강생들에게 나눠준 강의 책자에 실린 남북정상회담 장면. 아래 사진에서 김정일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잡고 인사하는 이가 김만복 전 원장이다. |
김 전 원장은 NLL의 성격에 대해 “태생적으로 문제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NLL은 북측과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선포했기 때문에 북측이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정전협정은 ‘서해 해상군사분계선’을 미확정한 상태에서 체결됐습니다. 우리도 NLL을 해ㆍ공군의 ‘초계활동 한계선’으로 설정했기 때문에 우리가 NLL을 영토선으로 방어할 명분이 미약합니다.”
“NLL을 영토선으로 보기에는 미약하다”는 김 원장의 발언과 달리 역대(歷代) 우리 정부는 NLL은 영토선이라는 입장을 일관되게 고수해 왔다.
김 원장은 1990년대 들어 일부 좌파학자들이 NLL의 법적 효과를 부인하는 내용을 자세히 설명했다.
“미국은 ‘NLL이 국제법적 지위를 갖지 않는다’는 입장 유지하는 듯”
그는 NLL에 대한 미국(유엔司)의 입장을 이렇게 해석했다.
“미국은 1973년까지 NLL을 대북 봉쇄선으로 운용했습니다. 1973년 북한이 이의를 제기하자 1975년 입장을 바꾸었습니다. 1975년 2월 28일 당시 국무장관이었던 헨리 키신저가 시달한 비밀외교전문에는 ‘NLL은 국제법적 지위를 갖지 않는다’ ‘한국 정부가 영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고 적혀 있습니다. 미국은 1999년 1차 연평해전 후 우리 정부 입장을 두둔했지만 내부적으로는 기존 입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2010년 11월 23일 연평도 피격 직후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의 공격을 비난하면서도 NLL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강의에 참석했던 한 인사는 “지금의 미국이 NLL을 국제법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김 원장의 주장에 매우 놀랐다”고 전했다.
김 전 원장은 1ㆍ2차 연평해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98년 2월 김대중 정부 출범 후 대북 포용정책을 추진했습니다. 그 일환으로 선제사격 금지, 확전 자제 지시를 군(軍)에 하달했고 5단계 교전수칙도 마련했습니다. 그런데 1999년 6월 15일 1차 연평해전이 발생했습니다. 북한 경비정 7척이 NLL을 월경해 우리 고속정이 밀어내기를 하자 북한 경비정이 함포사격을 했고 이에 우리 고속정과 초계함이 반격해 14분 만에 우리가 승리했습니다. 2차 연평해전은 2002년 6월 29일에 일어났는데 북한 경비정 3척이 NLL을 넘어오자 우리 고속정 4척이 교전수칙에 따라 경고방송, 시위기동, 차단기동에 이어 교전 대비태세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북한 경비정이 기습적으로 함포 공격을 해 우리 측이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은 ‘잘못된 교전수칙으로 우리 장병들이 사망했다’며 정치공세를 폈습니다.”
김만복 전 원장은 “노무현 정부 출범 후 서해는 평화ㆍ번영의 바다가 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노무현 정권 초기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정보관리실장으로 임명된 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 국정원 1차장을 거쳐 정권 후반기에 국정원의 최고 자리에 올랐다.
김 전 원장은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초 ‘연평해전 같은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라’고 특별지시를 내렸다”며 이렇게 얘기했다.
“참여정부 시절 남북은 서해상에서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서해공동어로구역 설정, 북한 민간선박의 해주 직항로 이용 등을 협의했습니다. 그 결과 참여정부 때에는 서해에서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은 전무(全無)했습니다.”
김정일이 김만복 원장에게 ‘해주와 개성 직접 챙기라’고 언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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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전 대통령 내외와 김정일 등이 2007년 10월 3일 백화원 영빈관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 왼쪽부터 백종천 전 안보실장, 이재정 전 통일부장관, 노 전 대통령, 김정일, 권양숙 여사, 권오규 전 재경부총리, 김만복 전 국정원장. |
김만복 원장은 2007년 10월 평양에서 열린 2차 남북정상(頂上)회담 당시 김정일(金正日)이 협상 테이블에서 자신에게 얘기한 내용을 공개했다.
“정상회담 때 김정일 위원장에게 ‘해주와 개성을 연계해 개발하자’고 제의했더니 김 위원장이 저에게 ‘김 원장(김만복 원장), 해주 경제특구와 개성 특구는 직접 챙기시오’라고 얘기했고 (저는) ‘예, 알겠습니다’고 말해 급진전을 이뤘습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간첩 잡는 대한민국 정보기관의 총 책임자가 간첩집단의 최고 우두머리에게 ‘지시’를 받는 희한한 장면이 벌어진 셈이다.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주도했던 그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남북 간 합의’를 노무현 정부의 최대 치적이라며 자세히 설명했다.
“서해평화지대는 분쟁 가능성을 해소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입니다. 대결상태를 해소하고 평화를 구축해 남북 간 경제협력을 증진할 수 있는 포괄적 해결방안입니다. ‘안보 지도 위에 평화의 지도’를 덮은 발상의 대전환인 것입니다.”
2007년 10월 4일 저녁, 정상회담을 끝낸 노무현 대통령은 군사분계선을 넘어와 남측 출입국관리사무소(CIQ)에서 가진 ‘대국민 보고’에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는 이번 회담의 최대의 성과”라고 소개했다. 서해평화특별지대는 한반도에 평화와 번영을 가져올 혁신적 조치라는 것이었다.
김만복 전 원장은 일본 잡지 《세카이》 기고문에서 이렇게 적었다.
<2007년 10월 3일 오전 회의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구상을 제안하자 김정일 위원장은 “이러저러한 문제들은 총리급 회담에서 논의합시다”라고 논의 자체를 회피하였다. (중략) 그날 오후 회의에서 김정일 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노무현 대통령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점심때 국방위원회의 책임자급 장성들과 논의했습니다. ‘해주공단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문제없다’고 했습니다. 해주도 좋고 해주에서 개성공단에 이르는 강녕군도 활용할 수 있고, 해주항도 개발해서 이용해도 될 것입니다.>
김 전 원장은 ‘분쟁지역인 서해를 남북공동 번영의 중심축으로 만들자’는 노무현 대통령의 제안을 김정일이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강조했다. 그는 강연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서해평화협력지대 설치를 구상하는 단계에서부터 청와대 논의 과정 그리고 북한과 협상하는 과정에서 한 치의 NLL도 양보하지 않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나 이는 당시 통일부 등에서는 NLL 재설정 등의 논의가 심심찮게 흘러나왔던 점과 배치된다.
“대청해전 강경 대응해 군사적 긴장 초래”
그는 수강생들에게 남북정상회담 장면을 찍은 사진도 보여줬다. 사진 중에는 김정일이 김만복 원장에게 한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하자 김 원장이 허리를 굽혀 두 손으로 김정일의 손을 꼭 잡고 인사하는 장면도 들어 있다.
김만복 전 원장은 강의 도중 몇 차례에 걸쳐 “현 정부가 잘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명박 정부 3년이 지난 지금, 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틀렸다는 게 입증됐습니다. 우파 측에서는 ‘과거 정부가 북한에 퍼주기 했다’고 하는데, 통계적으로 보면 과거 정부 10년간 평균적으로 한 해에 1조원 미만으로 지원했습니다. 이 비용은 남북평화를 유지한다는 측면에서 결코 많은 돈이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우리가 했을 때와는 너무 다르게 잘못하고 있어요.”
그는 비화(?話)라며 이런 얘기도 들려줬다.
“북한이 중국의 동북4성이 될 것이라고 얘기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시각입니다. 북한은 절대 동북4성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남북정상회담 때 김정일 위원장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중국이 단둥에서 평양까지 고속도로를 깔아주기로 했다. 그런데 내가 거절했다. 도로를 만들어준 대가로 중국이 어떤 것을 요구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중국을 달갑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는 남한과 협력해 보려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이를 무시하고 있습니다.”
김만복 전 원장은 “이명박 정부는 북한이 붕괴될 것으로 보고 있지만 북한은 절대 붕괴되지 않는다”며 “북한붕괴론적 시각이 대북 강경책을 가져오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천안함 폭침ㆍ연평도 포격과 관련해 서울대 강의와 《세카이》 기고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2009년 11월 북한 경비정 1척이 NLL을 넘어오자 우리 함정이 경고방송 후 곧바로 경고사격을 했습니다. 우리 함정이 북한 경비정을 추격하면서 포탄 4960발을 발사했습니다. 박살을 낸 것입니다. 지금의 한반도 상황은 대청해전 때 강경히 대응해 서해상에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것입니다. 현 상황은 지난 10년간의 진보정권의 대북포용 또는 화해ㆍ협력정책의 부메랑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가 북한붕괴론을 확신하고 남북관계를 악화시킨 결과라는 평소의 생각을 더욱 확신하게 됐습니다.”
《노동신문》 인용하며 “제 강의를 도와주려고 한 건지…” 언급
그는 강의 말미에 ‘서해 분쟁의 해소방안’으로 안보태세 강화, 대북(對北)군사적 우위 확보, 화해ㆍ교류정책 추진,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대체 등을 내놓았다. 그는 강의 전날(1월 11일) 북한 《노동신문》이 보도한 논평을 인용하며 이렇게 말했다.
“제 강의를 도와주려고 한 건지 어제 《노동신문》에 ‘지난해 남측이 우리의 평화협정 체결 제의에 성근한(성실한) 자세로 호응했으면 연평도 포격 사건 같은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내용의 논평이 실렸습니다. 이제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야 합니다.”
김만복 전 원장의 강의를 경청했던 한 참석자는 강의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그의 강의는 이명박 정부가 구체적인 해법도 없이 북한이 공격적으로 나오도록 만들었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발언이 보수층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지만 용기를 갖고 강단에 섰다고 했습니다. 일부 수강생 중에는 그의 모습에 ‘겸손하면서 소신 있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가 국방비와 관련해 언급할 때는 공감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는 ‘참여정부는 연간 방위비를 8.9%까지 증액했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연평균 방위비 증액률이 3.4%에 불과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보안을 생명처럼 여기고 국가를 위해 목숨도 버릴 수 있는 정보기관의 최고 책임자가 자신이 한 일을 자랑하고 더군다나 민감한 NLL 문제에 대해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자세는 옳지 않다고 봅니다. 그는 NLL 전문가가 아닙니다. 자신의 주장을 강변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전직 국정원장치고는 참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권영찬
(2011-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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