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정토로] 천안함 사태로 물러나는 李相宜 합참의장 : 월간조선

‘36년의 직장생활’을 그만둘 때 심경이 어땠을까. 기자는 평소 알고 지내던 이상의(李相宜·59) 합참의장을 인터뷰하기로 작심하고 지난 6월 15일 그의 의장실로 쳐들어갔다. 천안함 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표를 낸 지 이틀 뒤였다.

그는 천안함 폭침(爆沈) 이후 80여 일 간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그래서 군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 백범(白凡)이 스승 고능선(高能善)의 가르침, ‘벼랑에서 잡은 손마저 놓는 것이야말로 대장부(懸崖撤手丈夫兒)’라는 말을 가슴에 새겼던 것처럼, “군의 모든 허물은 나에게 돌리라”며 벼랑 끝에서 손을 놓은 것이다.

국방부 청사 7층 합동참모회의 의장실 문을 열고 “지나는 길에 들렀다”고 눙치자, 그는 “지금 바쁜데…”라며 기자를 피하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기자는 물러설 수 없었다. 그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차나 한 잔 달라”며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난감한 듯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었다.

“웬 담배냐”고 했더니 “천안함 이후 잠 못 이루는 날이 많아 결국 끊었던 담배를 다시 입에 대게 됐다”고 했다. 소파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끝에 대화는 천안함 관련자에 대한 감사원의 징계 권고까지 갔다.

그러자 그는 “감사원 감사 후, 후배 장교들이 여기저기서 술자리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무너지는 가슴을 억누를 수 없다”고 했다. 그의 얼굴이 금세 붉어졌다. 그러고는 속에 담은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인터뷰를 하는 것은 아니야…”라면서도 분을 삭이지 못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어제(6월 14일) 후임에 한민구(韓民求) 현 참모총장이 임명됐습니다. 취임 9개월 만에 물러나는 셈입니다.

“1970년 2월 사관생도로 출발해 올해로 40년째입니다. 만감이 교차하죠. 군의 명예가 실추되는 상황에서 자칫 제가 멈칫거리면 통수권자나 장관께서 정무적 결심을 하는 데 걸림돌이 될 뿐입니다. 천안함과 관련한 모든 군의 허물은 제 잘못입니다. 부하들이 다시 고개를 들 수 있도록….”(이 의장은 감정이 북받치는 듯 말을 잇지 못했다.)

―감사원의 직무감사 결과에 반발해 김황식(金滉植) 감사원장에게 서한을 보내 감사 담당자와의 토론을 제안했지요?

“의장의 명예는 군의 명예입니다. 급박한 남북대치 상황에서 군 수장(首長)의 명예가 추락하고, 군 전체가 매도당하는데….”

이 의장은 감사원의 “합참 지휘통제실(지통실)을 (3시간) 이탈해 집무실에서 휴식을 취했다”는 감사결과에 대해 “영내(營內)를 벗어나는 것이 이탈 아닌가? 지통실에서 화장실이나 식당에 가는 것도 이탈이냐”고 말했다.

그는 “지휘관은 교대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전시(戰時)에도 수면을 취하면서 지휘한다”며 “내 집무실에는 지통실보다 훨씬 더 많은 통신장비가 있고, 집무실과 지통실은 30초도 걸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지통실을 이탈해 문서를 조작했다’는 감사결과에도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단편명령’ 표지를 공개했다. 하나는 이 의장이 지통실을 비웠을 때 합참 합동작전본부장이 전결처리한 문건, 다른 하나는 이 의장이 지통실로 복귀해 직접 서명한 문건으로 문서번호는 모두 ‘단편명령 제10-17호’(전군 군사대비태세 강화)로 돼 있다.

감사원은 이 의장이 술에 취한 상태에서 지통실을 비웠고, 뒤늦게 복귀해 제대로 상황을 지휘한 것처럼 문서를 꾸몄다는 취지로 국방부에 통보했다.

그는 “하루아침에 비인간적인 사람이 됐고 명예도 잃었다”며 그 사실을 보도한 언론사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3월 27일 오전 1시30분쯤 서북해역 경계 강화가 필요해 ‘단편명령 제10-16호’를 기안시켜 결재했죠. 지통실에서 제 집무실로 올라오면서 다시 전군(全軍) 경계강화가 필요해 황중선(黃中善) 작전본부장에게 지침을 내려 전결(專決)하게 했습니다. 합참은 이를 전군에 팩스로 보냈습니다. 이때가 오전 3시30분이었죠.”

이 의장은 오전 5시쯤 다시 지하2층 지통실로 내려와 군사보안 유지(장병정신교육 강화), 골프 및 회식 금지 등 2가지 내용을 문건에 삽입했다고 한다. 이 문건은 오전 6시반쯤 다시 팩스로 전군에 전파됐다.

이 문건에는 이전 문건에서 공란이었던 이 의장 서명란에 이 의장 서명이 있고, 본부장이 연필로 써 놓은 ‘전결’은 지워졌다. 두 번째 문건의 표지에는 ‘본 문건 접수와 동시에 먼저 접수된 동명의 명령을 대체 파기(破棄) 바랍니다’라는 문구가 추가됐다.

“보안규정에 따라 실무자 권한으로 비문(示必文)의 숫자를 줄이는 겁니다. 마치 제가 술 취한 채 자다 내려와 내가 조치한 것처럼 꾸미기 위해 부하인 작전본부장이 전결한 문서를 파기하도록 지시했다는 건… 저를 파렴치범으로 몰려는 시도밖에 안됩니다. 이건 개인을 떠나 군 전체의 명예가 걸린 문제입니다.”

―감사원 감사관들의 조사를 직접 받았나요?

“제가 요청해서 받았죠. 녹취록도 있습니다. 서면조사에 이어 30분 정도 조사에 응했습니다. ‘파기를 지시했느냐’고 묻기에 ‘그건 실무선에서 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실제 대화한 것도 몇 마디 없어요.”

‘폭탄주’ 마시지 않아

이상의 의장은 특히 자신이 천안함 사건 발생 당일 대전에서 열린 ‘합동성 강화 토론회’ 직후 회식자리에서 음주한 것과 관련, “‘3월 26일 밤 술에 취해 사실상 지휘책임을 포기했다’는 언론보도에 대해 아느냐”고 묻자 “동의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누가 그러던가요? 그날 대전 자운대 육군교육사령부에서 합참의장 주관 토론회를 가졌죠. 행사를 마치고 유성에 있는 육군휴양소(계룡스파텔)로 옮겨 저녁식사를 겸해 술을 마셨습니다.”

―누가 참석했나요?

“호스트인 저를 비롯해 미 중부사령부 합동군사령부 부사령관, 육·해·공 참모총장, 해병대사령관, 대학교수, 자문위원단 등 20여 명이었습니다.”

―어떤 술을 마셨나요?

“‘ㅁ자’ 테이블에 둘러앉아 와인을 마셨죠. 회식을 주관하는 제가 술을 한 잔씩 권해야 하기 때문에 국산 양주 한 잔씩을 돌아가면서 권했습니다. 보통 회식이 그런 것 아닙니까. ‘의장님 한 잔’ 하며 권하기도 하고, ‘다음 기차를 타야 한다’고 하면 봐주는 분도 있고….”

―몇 잔 정도 마셨나요? 폐쇄회로 TV에 10잔 정도 마신 걸로 돼 있답니다.

“폐쇄회로 TV가 있는 줄 누가 압니까. 양주를 ‘알잔’에 절반 내지 3분의 1 정도 채워 마셨는데, 10잔 정도나 될까요. 숫자를 세 가며 마시는 사람은 없잖아요?”

―일부 언론에선 ‘폭탄주’를 마시고 만취해 KTX로 상경했다고 합니다만.

“폭탄주를 마셨으면 계산서에 왜 맥주가 없습니까? 미군 장성도 참석한 회식이라 폭탄주를 마실 리가 없죠. 회식도 근무의 연장이라 근무복을 입고, 적당히 마셨고, 절제했습니다. 서대전역에서 오후 9시27분 KTX열차를 타기 위해 8시40분쯤 회식자리를 파했습니다. 오후 7시쯤 시작했으니 1시간40분 정도 걸렸고요.”

―합참의장은 통상 헬기로 이동하는데, 왜 그날 KTX로 이동했나요?

“내려갈 땐 헬기를 이용했고, 올라올 땐 효율상 KTX를 탔죠. 유성에서 헬기를 타려면 교육사령부로 30분이나 걸려 이동해야 하는 데다, 행사가 다 끝나기까지 헬기 승무원 4명을 헬기장에 대기시킨다는 게 불합리합니다. 또 야간 헬기 이동이 안전하진 않습니다.”

―왜 급박한 상황에 KTX를 타냐는 겁니다.

“현재 기준으로 생각하면 자꾸 문제가 확대 재생산이 되는 법입니다. 만일 천안함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KTX를 타고 올라와 관사로 퇴근했을 겁니다. 공식석상에, 공인들과 일과 후 술을 마신 건 공무의 연속입니다. 물론, 사건이 난 후에 술을 마셨다면 파렴치범들이겠죠.”

―밤 10시42분 국방부 지휘통제실에 도착해 장관 주관 상황평가회의에 참석했죠? 그때 장관은 음주 사실을 알았나요?

“장관께서 바로 옆자리에 앉아 눈으로 코로 판단하셨을 테니까요. 폭탄주 10잔을 마셨다면 혀가 꼬부라져 공군작전사령관, 해군작전사령관, 2함대사령관과 화상회의(VTC)를 진행할 수 있었을까요? 오 기자는 폭탄주 10잔 마시고 정상적인 대화를 할 수 있습니까?”

지난 4월 26일 평택 해군2함대사령부에 마련된 `천안함 46용사 분향소에서 이상의 합참의장이 일일이 경례를 하고 있다.

敵 잠수함 잡을 기회 놓쳐

―KTX로 상경하는 도중에 천안함 피격 소식을 들었죠?

“그렇죠. 김학주 작전참모부장(육군 소장)이 전화를 걸어, ‘천안함이 파공(破空)돼 침수 중’이라고 보고하기에, 파공과 침수 정도를 물으니 초기상황이라 몰라요. ‘적정(敵情)은 어떤가, 미측에 통보는 했나, 인명구조에 전념하라, 천안함 지역 공백이 발생했으니 전력을 보강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그는 “지통실에 올라가니 장관님이 10여분 전에 도착해 있었다”며 “장관님과 대화를 나누고 화상회의로 작전 담당자들과 화상회의를 하는 데 큰 진전이 없었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대청해전 이후 합참은 전술토의에서 북한이 기존 침투방식과 달리 잠수함을 이용해 서북해역에서 우리 함정을 은밀하게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고 했는데, 왜 실제 대응을 못했나요?

“가장 아쉬운 점입니다. 대청해전 이후 합참은 수상함에서 승산(勝算)이 없어 잠수함(정)으로 공격할 것을 예상하고 대비했죠. 솔직히 군은 서북해역이 수심이 낮고 조류가 빠르고 탁류(濁流)라 잠수함 기동을 간과한 측면이 있습니다. 제가 잠수함(정) 공격을 대비한 전술토의를 부쳤습니다. 11월 1차토의를 거쳐, 12월 말일 2차 전술토의로 확정해 1월 20일 예하부대에 하달했습니다.”

합참은 2~3월 키리졸브 훈련을 마치고 4월 중 적 잠수함 대비태세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를 검열(檢閱)하기로 했다고 한다.

“키리졸브 훈련에 합참이 매달리다 보니 후속조치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고심 끝에 4월 중 검열을 하기로 했죠. 그래야 예하부대가 준비를 하니까요. 아이로니컬하게도 천안함이 기습당하기 전날인 3월 25일, 합참 전비태세검열실은 검열을 위한 준비회의를 열었습니다. 만약 예하부대가 지침대로 준비를 제대로 수행했더라면, 천안함을 공격한 적 잠수함을 오히려 잡는 전과(戰果)를 올렸을 겁니다.”

‘새 떼’로 본 2함대사 판단은 무리 없어

―사건 직후 해당 해역으로 기동하던 속초함은 밤 10시55분 9.7km 거리에 ‘미식별 물체’가 있는 것을 사격통제레이더로 포착해 격파사격을 실시했답니다. 속초함은 2함대사령부에 “북한 반잠수정으로 판단된다”고 보고했습니다. 2함대사령부는 표적물을 ‘새 떼’로 바꿀 것을 지시했습니다. 최초 상황보고를 중간부대에서 추정·가감하는 것을 금지한 ‘보고지침’을 위반한 것은 아닐까요?

“예하부대로 갈수록 장비가 상급부대보다 떨어지고, 경험요소도 부족하고, 참모진도 튼튼하지 못합니다. 예하부대는 판단을 해선 안 되고 사실만 보고해야 합니다. 판단은 상급부대가 하는 것이지요. 전 ‘새 떼’라고 한 2함대의 판단은 지금도 무리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속초함은 반잠수정이라고 생각하고 격파사격을 했고, 대응한 것으로 끝난 겁니다. 2함대사령관이 ‘반잠수정’이라고 하면 골치가 아플 테니 ‘새 떼’로 바꾸라고 지시한다는 건 요즘 군대를 모르고 하는 말씀입니다. 요즘 장병들은 보고 들은 대로 이야기합니다.”

―천안함 피격 29분 뒤인 오후 9시51분경, 해군 출신 합참의 한 간부가 청와대에 근무하는 해군 상관인 김모 행정관(해군 대령)에게 휴대전화로 사건 소식을 알렸습니다. 청와대 국방비서관이 합참으로 거꾸로 확인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합참의장은 사건발생 49분, 국방장관은 52분에야 알았는데 말이죠. 어떻게 된 겁니까.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는 짤막하게만 답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간부를 어떻게 했나요?

“아직 그가 누군지 파악도 안 했습니다. 이번 인사가 끝나면 밝혀질 겁니다. 알아봐야 제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는 “합참의장에게, 작전만 할 것이 아니라 합참 소속 군인들을 인사할 수 있는 인사권을 부여해야 한다”면서 “군의 영(令)은 읍참마속(泣斬馬謖)에서 나온다”고 했다.

“상벌권은 작전운영과 함께 붙어 다녀야 합니다. 그런 권한 없이 작전운용만 하면 밑에 있는 부하들이 소속만 합참이지, 각자 자군(自軍)의 총장을 바라보며 일을 하게 됩니다. 명령체계가 흐트러지는 것을 합참의장은 인사권을 통해 시스템적으로 막을 수 있는 겁니다.”

―천안함 피격 순간의 열상감지(熱像感知)장비(TOD) 동영상은 정말 존재하지 않는 겁니까.

“정말 없습니다. TOD장비는 해변에 침투한 적이나 선박을 잡는 겁니다. 바다를 관측하는 장비가 아니죠. 만약 TOD 동영상이 존재한다면, 그것을 촬영한 병사는 임무수행을 안 한 겁니다. ‘쾅’ 하고 피격당하는 소리를 듣고 순간적으로 장비를 돌려 촬영을 했다는 얘기가 되는 겁니다.”

―천안함이 왜 백령도 일대 사고해역에 있었나요?

“적의 동굴진지에 있는 해안포, 그리고 사정거리 80~90km 지대함 미사일을 피해 음영(陰影·그늘)구역으로 기동해야 적의 해안포 위협으로부터 안전합니다. 천안함은 NLL을 감시하는 임무를 띠고 있으니까요. 말하자면 백령도를 은폐·엄폐물로 활용한 거지요.”

―천안함 침몰 2~3일 전 해군 2함대사령부에 북 잠수정 동향이 수상하다는 정보가 입수됐다면서요? 그런데도 왜 2함대사령부는 잠수함이나 어뢰 대응능력이 떨어지는 천안함을 배치했습니까.

“육군은 사단사령부를 철책 인근에 두지 않습니다. 적의 위협을 받기 때문이지요. 마찬가지로 해군도 전략적으로 능력을 갖춘 구축함을 후방에 두고, 순발력이 있는 함정을 전방에 배치합니다.”

―둘로 쪼개져 침몰한 천안함에서 왜 군은 69시간 생존할 수 있다는 말을 했나요? 기동 중인 함정이 침몰하면 출입문도 개방돼 있고, 수온이 3도 이하로 낮아 30분 이내에 사망한다고 합니다만.

“당시 상황에선 그 누구라도 ‘30분 이내에 전원 사망했으니 단념하라’고 유가족에게 말할 강심장은 없었을 겁니다. 실종자 가족들이 하도 애를 태우니까 안타까운 마음에 그런 걸로 봅니다.”

―천안함으로부터 어뢰피격 보고를 받고도 2함대사령부는 이 사실을 합참, 해군작전사령부 등 상급부대에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천안함 최초 보고가 제대로만 전파됐다면, 우리 군의 대응태세는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만일 어뢰에 맞은 것이 확실했다면, 의장으로서 제 조치가 확 달라졌을 겁니다. 민감한 부분이긴 하지만, 천안함을 때린 놈은 올라갔을 테니까, 적 잠수함이나 잠수정 기지를 바로 때리면 그만입니다. 교전규칙상 ‘비례성의 원칙’이죠.”

UDT 훈련장 만들 생각도

―합참의장 권한으로 한미연합사와 별개로 북한 기지를 즉각 타격할 수 있나요?

“‘데프콘3’가 발령되기 전의 모든 작전권한은 합참의장에게 있습니다. 한국군은 강합니다. 우리군은 충분한 수단과 능력이 있습니다. 물론, 당시 야간에 불의의 피격을 당해 살아남기도 어려운 판에 적의 공격을 정확하게 판단하기는 쉽지 않았을 겁니다.”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을 상당부분 추진해 진전을 이룬 상황이라 천안함 폭침에 대해 북한의 소행 가능성을 배제하고 내부요인에 의한 침몰에 무게를 두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사실인가요?

“정말 소설 같은 이야기입니다. 청와대에서 예단하지 말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건 통수권자께서 정무적으로 정확한 판단을 했다고 봅니다.”

―김태영 장관이 사고 직후 안보회의에 들어갔을 때, 어뢰라는 정보를 멤버들에게 전달하지는 않았습니까.

“장관께서 아신 건, ‘천안함이 파공에 의해 침수 중’이란 것뿐이었습니다. 배는 가라앉았고, 수십 명이 구조됐다는 정도였죠.”

―민군합동조사단은 범행현장에서 김정일(金正日)의 지문이라고 할 만한 북한제 어뢰파편과 한글표기까지 발견했습니다. 그 결과 현재 북한을 전방위로 압박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5월 15일 토요일로 기억합니다. 김정두 제독(탐색구조단장)의 보고를 받고 눈물이 났습니다. 정말 신(神)이 대한민국을 돕고 계신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일, 어뢰추진체를 찾지 못했다면, 사고해역을 해군 특수전여단(UDT) 훈련장으로 만들어 끝까지 찾아내려 했습니다.”

―발표를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시점에서 초조하진 않았습니까.

“당시 결정적 증거(smoking gun)가 나오지 않아 그렇지 조사는 착착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뢰추진체가 절묘한 시기에 나온 겁니다. 좀 더 일찍 나왔더라면 조사단이 다른 객관적인 조사들을 소홀히 했을 겁니다. 막판까지 성분 분석 등 최선을 다하고 있을 때, 어뢰추진체가 ‘탁’ 튀어나온 겁니다.”

이 의장은 “북한이 이례적으로 즉각 반응해 ‘검열단’을 보내겠다고 했을 때 수용을 검토했느냐”고 묻자, “검토할 가치도 없잖은가?”라고 반문했다.

“살인을 저지른 범인이 경찰을 불러놓고 현장검증을 하겠다는 것과 같죠. 벌써 ‘검열단’이란 명칭을 붙인 것을 보십시오. 검열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상급부대가 예하부대를 살피는 게 검열입니다. 속으로 ‘당신들 검열단이 오는 대신, 우리는 어뢰 제조공장과 잠수함 기지를 검열하자’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作戰을 감사하는 나라

감사원은 지난 6월 10일 천안함 침몰사건과 관련해 전투준비·대응조치 등을 제대로 하지 못한 군 주요 지휘부 25명을 국방부에 통보하면서 징계 등의 조치를 요구했다. 국방장관이 감사원의 권고를 받아들여 문책(問責)을 한다면, 군은 ‘하나회’ 이래 최대의 문책인사를 하는 것이다.

―감사원이 국군의 작전을 감사할 수 있다고 봅니까.

“지난 4월 20일 장관께서 천안함 사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지휘보고와 위기대응 등에 문제가 제기되고 국민의혹이 커지면서 감사원에 직무감찰을 요청했던 겁니다. 국방부가 요청한 취지는 시스템상의 문제점을 봐 달라는 이야기였지, 군의 작전을 감사해 달라는 게 아니었죠. 감사원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非) 군사전문가들이 전문지식 없이 작전운용 파트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애초부터 버거운 일입니다.”

그는 “행정부서의 규정과 법령은 군대의 예규와는 다르다”면서 “행정부는 법이나 훈령에 따라 적용하면 되지만, 군대 예규는 상황·여건에 따라 융통성 있게 적용해야 하는 특성이 있다”고 했다.

“천안함이란 특정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적용해야 하는 매뉴얼이 따로 있습니까. 권한을 가진 지휘관이 현장상황에 맞게 적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작전은 얼마나 다양한 상황으로 나뉩니까. 오늘도 동해안에 기관총을 장착한 10t짜리 선박이 출현했다는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그 상황을 뭘로 적용합니까. 현장대응입니다.”

―그렇다면 왜 굳이 감사원 직무감찰을 요청한 겁니까.

“천안함 사건은 언론이나 야당, 시민단체 등에서 의혹을 부풀리고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 마당에 합참의 전비태세검열단에서 조사를 하면 누가 믿겠느냐는 겁니다. 그럴 바에야 정부공인기관인 감사원이 하면 객관성이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 고육지책(苦肉之策)으로 맡긴 겁니다.”

―감사원의 징계 통고를 받은 사람들 가운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제가 보기에 억울한 측면이 있는 사람들도 꽤 있습니다. 특히 정책·공보라인이 그렇습니다.”

정책·공보라인 징계 억울

―억울한 것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소명하면 되지 않습니까.

“그게 군인의 한계입니다. 본인들이 적극적으로 나서면 여론의 뭇매를 맞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합참의장인 내가 모든 책임을 지고 나가겠다고 한 겁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감사결과에 불만을 표시하는 군에 대해, ‘반성 안 하는 군(軍)’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감사원의 지적에 대해 겸허히 수용합니다. 다만, 한 가지 잘못을 했다고 다른 잘못까지 덤터기 씌우는 건 군을 두 번 죽이는 것과 같습니다. 군이 천성적으로 명령에 복종하는 집단이라 적극적으로 대응을 못해서 발생하는 일입니다.”

이상의 의장은 “위계질서가 생명인 군이란 집단을 감사한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라면서 “감사를 받으면서 소위 ‘감사기법(監査技法)’에 의해 지휘관과 부하 간의 신뢰가 무너지는 일들이 일어났다”고 했다. 그는 ‘군을 떠나면서 어떤 점이 절실하게 군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고 하자, “군은 국민의 지지와 사랑이 없이는 힘을 쓸 수 없는 조직”이라며 “아무리 비싼 무기체계를 갖추고 있더라도 국민의 관심 없이는 고철덩어리에 불과하다”고 했다.

대화가 점심시간을 훌쩍 넘기자 이상의 의장은 “식사를 간단히 하자”며 합참 식당으로 기자를 안내했다. 그곳에는 김기수 전략기획본부장(육군 중장), 황중선 합동작전본부장(육군 중장) 등 합참 간부들이 식사 중이었다. 감사원 감사 결과, 무더기로 징계요구를 받은 장성들이었다. 그들은 잠자코 식사에만 열중했다.

기자에게 된장국을 떠 주던 이상의 의장이 “9개월 만에 물러난다”며 “유니폼을 평생 자랑스럽게 생각했는데…, 후회는 없다”고 했다. “전역 후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라고 묻자, “잠을 푹 자 보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결국, 이 의장은 천안함 사건을 겪으면서 느꼈던 심경을 기자에게 상당 부분 털어놓은 셈이다. 그는 기자에게 “보도는 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기자는 국가안보 차원에서 의미 있는 그의 말들을 기사화해야겠다는 욕구를 강하게 느꼈다.

이상의 의장 손에 한 통의 편지가 들려 있었다. 그가 최근 군 장병들에게 손수 붓펜으로 쓴 것이었다. ‘나의 전우이자 부하, 그리고 후배 여러분’으로 시작되는 편지는 ‘지난 36년간의 군 생활을 통해 가장 비통하고 참담한 심정으로, 그리고 군복을 입은 최고 선임자의 이름으로 이 글을 보낸다’로 시작되는 ‘이별 편지’였다. 마지막 문장은 이랬다.

<미국 국민들은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침몰한 애리조나 전함을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진주만 깊은 바닷속에 그대로 수장(水葬)시켜 놓고 장병들의 전의(戰意)를 고양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도 천안함의 처참하고 참담한 모습을 우리들의 가슴속 깊은 곳에 묻어 두고 영원히 인양하지 맙시다. 그리하여 우리들이 약해질 때, 타성에 젖을 때, 교만해질 때, 다시 꺼내어 보고 산화한 천안함 영웅들을 기억하면서 조국의 영토·영해·영공을 영광스럽게 수호하는 전사(戰士)가 될 것을 다짐합시다.>⊙

<취재지원 = 李彩炫月刊朝鮮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