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로나19 진단키트 생산 업체들과 백신 개발 기관 등을 대상으로 보안 취약점 상시 점검
⊙ ‘2020년 김정은 신변이상설’ ‘2013년 장성택 실각설’ 등을 국정원이 정확하게 맞힌 이유
⊙ “박지원 원장 취임 후, ‘일 잘하는 국정원’ ‘미래로 가는 국정원’이란 목표 실현 중”
⊙ 박지원 원장이 어느 업체 대표에게 편지 받은 사연
⊙ 산업기술보호·해킹 대비·대테러 등 ‘新안보’ 업무에 주력
⊙ 국정원 요원이 전하는 해외 첩보전 秘話
⊙ 그들은 지금도 陽地를 위해 陰地에서 일한다
⊙ ‘2020년 김정은 신변이상설’ ‘2013년 장성택 실각설’ 등을 국정원이 정확하게 맞힌 이유
⊙ “박지원 원장 취임 후, ‘일 잘하는 국정원’ ‘미래로 가는 국정원’이란 목표 실현 중”
⊙ 박지원 원장이 어느 업체 대표에게 편지 받은 사연
⊙ 산업기술보호·해킹 대비·대테러 등 ‘新안보’ 업무에 주력
⊙ 국정원 요원이 전하는 해외 첩보전 秘話
⊙ 그들은 지금도 陽地를 위해 陰地에서 일한다
- 서울 내곡동 국가정보원 청사 항공사진. 사진=조선DB
1961년 ‘중앙정보부’로 첫발을 내디딘 ‘국가정보원(국정원)’이 오는 6월 10일, 창설 60주년을 맞는다.
중앙정보부는 창설 20년 후인 1981년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로 개칭됐고 1999년 국가정보원(국정원)으로 이름을 바꾸며 오늘에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이름은 바뀌었지만, 역할만큼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채 60년간 존속해왔다.
“국정원 숨결 닿지 않은 곳 없어”
국정원 60년 역사는 대한민국 현대사 그 자체다. 그동안 국가 정보 체계를 확립했고, 북한 정보와 대공(對共) 수사 등을 통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는 첨병 역할도 했다. 안보기관으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1970년대 우리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유도하고 국내에 신(新)산업 유치를 위한 밑거름을 뿌렸다. 이런 것들이 모두 경제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국가 위상이 높아지면서 국정원의 역할도 더욱 확대됐다. 국제 행사를 치르는 데 있어 국정원이 보이지 않는 역할을 감당한 것이다.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2002한일월드컵, G20서울정상회의, 2018평창동계올림픽 등이 대표적이다. 남북정상회담이 5차례나 개최되는 데에도 국정원이 큰 공헌을 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산업기밀 유출 방지, 사이버 공격 대응, 국제범죄, 테러 대응 등으로 국민과 국익(國益) 보호에 적극 나서고 있다. 국정원이 갖고 있는 이런 역량은 다른 나라 정보기관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다.
과거 외부에 폐쇄적이던 시스템에서 탈피해 사이버 위협, 산업기밀 유출 정보 등은 필요한 기관이나 민간기업 등에 정보공유 서비스를 대폭 확대하고 있다. 이와 함께 영상·위성 등 우주정보 영역에 대해서도 전문성을 강화하고 있다.
국정원은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진단키트 생산 업체들과 백신 개발 기관 등을 대상으로 보안 취약점을 상시적으로 점검하고 있다. 이상징후 발생 시 대응 요령 등 기술보호 대책을 선제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국정원 관계자는 “대한민국 발전 역사 마디마디에 국정원의 숨결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고 자평했다. 이어 “창설 60주년을 맞아 국정원 직원들은 국가 최고 정보기관의 일원(一員)이라는 자부심을 한층 더 되새기고 있다”며 “60년 후에도 언제나 국민에게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다가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박지원 원장 취임 이후, 줄곧 강조해온 ‘일 잘하는 국정원’ ‘미래로 가는 국정원’이라는 가치와 목표가 하나씩 실현되고 있다”고 했다.
‘이름 없는 별’
세계 모든 정보기관이 그러하듯이, 영광이 있으면 오욕의 역사도 있는 법이다. 정보기관은 조직 특성상 비(非)합법적인 업무가 주를 이룬다. 어떤 임무냐에 따라 극소수의 희생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국정원에는 ‘이름 없는 별’(Unsung heroes)이란 조형물이 있다. 국정원 요원 중 국가를 위해 헌신하다가 순직한 이들을 기리는 조형물이다. 이 조형물엔 ‘소리 없이 별로 남은 그대들의 길을 좇아 조국을 지키는 데 헌신하리라’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여기엔 총 19개의 별이 새겨져 있다. 이 19명이 정확히 누구인지는 국정원 내부 직원들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어떤 임무를 수행하다가 순직했는지 역시 알려지지 않고 있다. 모두 국가 안보상의 이유 때문이다.
대한민국 발전과 번영의 밑바탕엔 국정원의 이러한 숨은 노력이 배어 있지만, 또 다른 한편에는 상처와 얼룩도 새겨졌다. 아직도 국정원 하면 대공사건 처리 과정에서 인권침해, 선거 때마다 불거진 정치개입 논란, 민간인 사찰, 불법 도·감청 등을 떠올리는 세인(世人)이 더러 있다.
아픈 과거를 뒤로하고 부정적인 면모를 일신(一新)해 이제 국정원 본연의 업무에 주력하고 있다. 2020년 12월 국정원법 개정으로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성은 더욱 강화됐다. 대(對)테러, 국제범죄, 산업기술유출, 사이버안보, 우주정보 등 업무 역시 법적으로 뒷받침됐다. 고질적인 정치개입 시비(是非)도 사라졌다.
국정원은 개정된 국정원법을 근거로 과거 부정적 이미지를 개선하고 사이버, 환경, 에너지 안보 등 새로운 안보 위협 대응을 통해 미래로 나아가고 있다.

김정은 건강이상설, 장성택 실각설 사전 확인
국가정보원은 정보를 다루는 조직이다. 정보는 국가가 생존하는 데 생명과 같다. 적시(適時)에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는다면 국가 지도자가 올바른 정책 판단을 하거나 외부 위협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
우리는 남북이 체제 대결을 벌이고 있어, 북한 동향과 도발 징후를 조기에 포착해야 한다. 이것이 국정원 업무의 핵심이기도 하다. 북한은 인류 역사상 정보 접근이 가장 어려운 집단으로 알려져 있다.
국정원은 북한 정보를 취합하는 데에 세계 정보기관 사이에서 독보적인 능력을 인정받는다. 2020년 북한 김정은 신변이상설과 2013년 장성택 실각설 등은 모두 국정원의 북한 정보력을 바탕으로 확인된 것들이다.
2020년 4월 15일, 북한 금수산궁전에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북한 고위 간부들이 김일성 생일을 맞아 참배에 나섰다. 김정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김정은 집권 후 첫 불참이었다. 즉각 신변이상설이 제기됐다. 처음에는 일부 인사들이 ‘김정은 건강이상 가능성’을 거론하는 단순 ‘의혹 제기’ 수준이었다.
같은 해 4월 20일 한 인터넷 매체가 “김 위원장이 향산에서 심혈관 시술을 받았다”고 보도한 데 이어, 다음 날 미국 CNN이 “큰 수술을 받고 중대한 위험에 빠졌다”는 속보를 내자 ‘김정은 건강이상’ 의혹은 급속도로 확산됐다. 국내외 언론과 일부 전문가도 ‘심장수술’ ‘뇌졸중’ ‘식물인간’ ‘사망’ 등 다양한 설(說)을 언급했다.
국정원은 김정은이 금수산궁전에 나타나지 않은 바로 다음 날인 4월 16일, 분야별 주무 직원들을 신속히 소집했다. 이들을 통해 김정은 건강이상설 관련 첩보들을 면밀히 점검토록 했다. 그 결과 ‘신변이상’ 가능성은 낮다고 결론 내렸다.
이를 바탕으로 청와대·국회 등에 ‘김정은 건재 사실’을 신속하게 보고해 안보 혼란을 미연에 차단했고, 해외 동맹국의 올바른 정세 판단을 위해 관련 정보를 수시로 공유했다.
국정원은 2013년 12월 3일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의 고모부인 장성택의 실각 징후가 보인다”고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했다. 장성택이 모든 직책에서 해임됐을 가능성이 농후하며, 북한이 장성택의 측근을 비리 등 반당(反黨)·반(反)혁명 혐의로 공개처형한 사실을 내부에 공개 전파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장성택 당시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은 김정일의 여동생인 김경희의 남편으로, 김정은 체제의 2인자 역할을 하던 인물이었다. 그런 점에서 국정원의 보고는 충격적이었다. 이런 연유로 국정원이 공개한 ‘장성택 실각설’을 둘러싸고 신빙성 논란도 제기됐다.
엿새 만인 12월 9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공식적으로 장성택의 직위 해임 사실을 보도했다. 국정원의 북한 정보를 감지하는 능력이 얼마나 정확한지, 전 세계에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국정원은 같은 해 12월 23일 소집된 국회 정보위에서 “장성택은 11월 중순 구금됐고 12월 8일 출당 및 제명 조치됐으며, 12월 12일 사형이 집행됐다”고 추가 보고했다. 북한이 12월 초 공개한 장성택의 체포 장면은 ‘보여주기식 이벤트’로 연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숙청 배경에 대해서는 권력투쟁이 아닌 이권사업과 관련된 갈등이 비화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당시 언론과 전문가 그룹은 국정원이 ‘장성택 실각’을 감지할 수 있었던 비결을 상세히 분석하며 “국정원의 존재감과 북한과 관련한 정보력을 입증했다”고 평가했다. 국정원이 장성택 등 김정은 측근들의 동향을 면밀하게 추적·분석하고, 시긴트(신호감청)·휴민트(인적첩보) 등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첩보 수집에 총력을 기울인 결과였다.
이와 관련해 국정원 관계자는 “국정원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장기간 축적된 북한 정보 수집 역량과 노하우가 있다”며 “북한 정보 수집에 있어서는 국정원이 세계 정보기관 사이에서 독보적인 능력을 인정받는다”고 말했다.
황장엽 국내 송환에도 결정적 기여
앞의 두 사례와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고(故)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귀순 역시 국정원의 역할이 있었다. 국정원은 황장엽 전 비서의 국내 송환 작전에 전력을 기울였다.
1997년 2월 12일 오전 10시, 북한 노동당 비서 황장엽은 여광무역 총사장 김덕홍과 함께 베이징 소재 주중(駐中) 한국대사관 영사부에 진입, 대한민국 망명을 공식 요청했다. 국정원(당시 안기부)은 중국 국가안전부와 외교부에 황장엽의 망명 사실을 알리고 국내 송환과 우리 공관에 대한 경비 강화를 긴급 요청했다.
북한은 다음 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남조선이 황장엽 비서를 납치하고 망명이라 떠든다면 응당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협박했고, 수십 대의 차량과 150여명의 북한인을 우리 영사부 주위에 배치해 노골적인 위협을 가했다.
2월 15일에는 보위부 산하 정예 특공요원을 베이징에 파견, 영사관 일대의 긴장감이 최고치에 달했다. 국정원은 즉각 황장엽 근접 경호와 방탄 장비 설치, 독살(毒殺)에 대비한 요리사 파견 등 대비 태세를 갖추고 상황을 주시했다.
2월 17일 북한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황장엽이 망명했다면 변절을 의미하므로, 변절자는 갈 테면 가라는 것이 우리 입장이다”고 노선을 선회했다. 안기부는 이때부터 황장엽 일행 탈출 계획을 세우고 한 달 후인 3월 18일, 위장차량을 사전에 출발시켜 취재진과 북한 당국의 추격을 따돌린 뒤 필리핀으로 이송했다.
황장엽 일행은 안기부와 협조 관계에 있던 필리핀 보안당국의 전폭적인 협조로 한 달간 안전하게 체류한 뒤, 4월 20일 무사히 국내로 송환됐다.
산업기밀 보호 “국정원 덕에 재도약 발판 마련”
국내 기업은 세계 시장에 매년 1000억 달러 이상을 수출하고 있다. 우리 기업이 갖고 있는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기술력은 국가 경제의 원동력이다.
국내 기업이 보유한 원천 기술은 끊임없이 해외 기업으로부터 위협받고 있다. 바로 기술유출 위협이다. 국정원은 국가 경쟁력 보호를 위해 산업스파이 차단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연간 수십여 건의 산업스파이 사건을 적발하고 있다.
비근한 예로 카이스트(KAIST) 공학부 A교수는 2017년 한중(韓中) 대학 간 국제 공동연구 프로그램을 주도하며 중국 정부의 ‘천인계획’(해외 고급인재 유치 계획)에 참여했다. A교수는 중국 정부로부터 연구비와 급여 등 각종 편의를 제공받으면서 우리의 국가 핵심 기술인 자율주행차 기술을 중국으로 빼돌렸다.
국정원은 중국의 ‘천인계획’에 대한 정보수집 활동을 하던 중 A교수의 기술유출 정황을 포착했다. 이후 방첩 네트워크와 빅데이터 등 첨단 조사 기법을 동원해 A교수의 기술유출 행태를 추적하는 한편, 국가 R&D 감독 기관인 과학기술부와 공조 조사를 벌여 실체를 확인했다. 과기부는 국정원의 지원자료를 바탕으로 A교수를 검찰에 고발했고, 2020년 8월 검찰은 ‘산업기술보호법’ 등의 위반 혐의로 A교수를 구속기소 했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두께 측정기 제조업체 B사 퇴직 직원 C씨는 2017년 퇴사하면서 핵심 기술 소스코드 일체를 USB에 저장해 갖고 나왔다. 유사 소스코드를 만들어 이익의 일정 부분을 받기로 하고 중국 경쟁업체에 지원했다.
소스코드를 지원받은 중국 업체는 자국(自國) 관련 업체에 해당 기술이 적용된 장비를 저가(低價)에 다량 제조·판매했다. 중국 시장을 타깃으로 기술을 개발한 B사는 중국 업체의 저가 공세에 밀려 최근 잇따라 수주에 실패하면서 회사 사정이 크게 악화됐다.
국정원은 B사 대표 D씨로부터 기술유출 신고를 접수한 후 1년 3개월간 방첩 조사를 거쳐 검찰에 사건을 이첩했다. 기소된 C씨는 지난 1월 21일, 1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대표 D씨는 1심 선고가 있는 날 박지원 국정원장 앞으로 편지를 보냈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그동안 직원들을 구조조정하는 아픔과 매출 감소라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국정원 문을 두드렸는데 산업기술보호 전담팀 덕분에 기억 속에 묻혔던 수많은 증거자료를 다시 찾게 됐고,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국정원의 도움과 조언으로 회사 보안도 전보다 훨씬 강화됐다.”
‘위그선’(바다 위를 1m 정도 떠 고속으로 이동할 수 있는 선박) 제조업체 E사에서 연구소장으로 일하던 F씨와 해외영업팀장 G씨는 2015년 개인 사정을 이유로 E사를 퇴직했다.
그런데 국정원 첩보망에 이들이 함께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구체적인 동향(動向)이 포착됐다.
국정원 조사 결과, F씨는 장남 명의로 동종 업체를 설립·운영 중이었다. G씨는 F씨의 처남이 운영하는 가구회사에 취업한 척하면서 실제로는 말레이시아 업체와 비행선박 공동생산을 추진 중이었다.
국정원 확인 결과, F씨와 G씨는 퇴사하면서 위그선 개발 실험 데이터와 설계도면, 제조공장 라인 배치도 등 E사의 영업기밀을 무단 반출했다. 이들의 기술유출 행각은 국정원의 집요한 조사로 덜미가 잡혀 현재 사법부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위그선 제조 기술은 E사가 세계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31일 ‘바다의 날’ 행사 당시 위그선에 시승한 적도 있다.
국정원 관계자는 “‘기술개발 10년·유출 1초’라는 엄중한 인식을 갖고 국내외 방첩 역량을 총동원해 핵심 기술 보호에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中 거점 보이스피싱 조직 적발·와해
국정원은 2019년 4월 “중국 톈진(天津) 거점 조직이 가짜 금융 앱을 이용해 보이스피싱 범행을 벌이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곧바로 검증에 나섰고, 첩보가 사실임을 확인했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국내 제2금융권 금융사 것으로 위장한 해킹 앱을 통해 피해자의 스마트폰에 저장된 각종 정보를 탈취해왔다. 가짜 메시지를 받은 피해자가 해당 번호로 전화를 걸 경우 보이스피싱 조직에 연결되도록 스마트폰을 완전 장악하는 수법도 사용했다.
국정원은 경찰과 2년간 공조·추적해, 중국 내 코로나19 확산을 피해 국내에 일시 귀국한 조직원 4명을 순차적(2020년 1~6월)으로 붙잡은 데 이어, 2020년 7월 중국 현지에서 총책 등 4명을 추가로 검거했다. 국정원은 중국 공안 측에 중국에서 붙잡힌 4명의 송환을 지속적으로 요청해 검거 8개월 만인 2021년 3월 결국 이들을 국내에 송환시켰다.
국정원은 같은 해 “캄보디아 거점 해킹 조직과 연계된 H씨 일당이 국내 시중은행 해킹을 기도하고 있다”는 첩보도 입수했다. 국정원은 경찰에 관련 내용을 지원한 뒤 합동 검증을 벌였다.
H씨 일당은 국내 모 은행 직원과 공모해 은행 데이터를 조작하는 수법으로 은행 돈을 범행 계좌로 이체하려 했다. 입금 금액보다 많은 돈을 찾을 수 있도록 은행전산망을 조작하는 악성코드를 심으려 한 것이다. 이들의 목표는 하루에 3억~5억원씩 1년 동안 500억원 이상의 돈을 몰래 빼돌리는 것이었다.
국정원은 이 조직의 악성코드를 입수해 실제 은행 전산망 해킹 가능성과 위험성을 평가한 후 해킹 추진 동향을 집중 모니터링했다.
그러던 중 국정원은 이들이 타깃으로 삼은 시중은행에 보낸 이메일에 해킹 프로그램이 설치된 사실을 포착했고, 경찰과 공조해 본거지인 동남아로 출국하기 직전 H씨와 공범 2명을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금융위원회는 이 사건을 계기로 금융전산망 해킹 대비 훈련을 보완·강화했다. 금융감독원도 각 시중은행의 전산망 보안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도록 조치했다.
4만여 대 스마트폰 해킹 적발
국정원은 지난 3월 국내 금융기관을 사칭한 악성 앱이 국내에 광범위하게 유포되고 있는 정황을 포착했다. 국내 이동통신사에 가입된 스마트폰 4만여 대가 이미 악성 앱에 감염돼 있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악성 앱에는 스마트폰 통화기록·문자메시지 절취 기능은 물론, 통화 도청 기능까지 은닉돼 있었다.
국정원은 국내 유관기관과 보안업체와 공조해 악성 앱 긴급 차단 조치에 나섰다. 우선 악성 앱에 감염된 피해자가 악성코드를 제거할 수 있도록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이동통신 3사와 함께 피해 스마트폰을 대상으로 백신점검 안내 긴급 메시지를 발송했다. 추가 확산 방지를 위해 국내 백신업체들과 협조해 스마트폰용 백신을 업데이트했다. 언론을 통해 해킹 피해 사실과 관련 보안대책을 국민들에게 알려 유사 피해를 예방할 수 있도록 했다.
악성 앱이 차단되자 해킹 조직은 탐지 회피를 위해 다양한 변종(變種) 앱을 유포하기 시작했다. 국정원과 금융보안원 등 유관기관은 맞춤형 대응 활동을 전개해 공격을 무력화했으며, 추가 공격에 대비, 해킹 조직 움직임을 지속 모니터링하고 있다.
최근 국가·공공기관과 기업체 정보통신망 보안 수준이 높아져 직접 침투가 어려워지자 해킹 조직들은 ‘공급망 공격’을 강화하고 있다. 공급망 공격이란 IT제품 제조사에 먼저 침투해 생산제품에 악성코드 등을 은닉하고 해당 제품을 도입·사용하는 기관·업체 정보통신망이나 개인 PC를 구조적으로 취약하게 만들어 침투하는 공격 기법 중 하나이다.
국정원은 2020년 5월, 우리 국민 대다수가 사용하는 필수 금융보안 소프트웨어 개발업체가 해킹당한 사실을 탐지했다. 인터넷뱅킹 이용 때 흔히 사용하는 소프트웨어였다.
해커가 마음만 먹으면 1000만 대가 넘는 PC를 파괴해 큰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감염된 PC를 악용해 디도스(Ddos) 공격 등 대규모 사이버 공격을 일으킬 수도 있었다.
국정원은 탐지 즉시 한국인터넷진흥원(KISA)·금융보안원 등 유관기관과 협조해 긴급 대응 조치에 나섰다. 백신업체와 협조해 기존 취약한 프로그램이 설치된 PC를 신속하게 치료했다.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에 해킹 사실을 통보해 취약한 소프트웨어가 더 이상 유통되지 못하도록 했다. 이런 조치로 해킹 공격은 무력화됐다. 금융자료 유출 등 심각한 피해 역시 조기 차단될 수 있었다.
국내 보안업체 대표 I씨는 지난해 12월 사이버 보안 전문가를 사칭하는 인물로부터 소셜미디어를 통해 한 통의 메시지를 받았다.
자신을 유럽에서 일하는 정보보안 전문가라고 소개한 그는 자신이 지금까지 수행한 프로젝트 관련 결과물을 소개하며 ‘사이버 보안 합작 사업 및 공동연구’를 제안했다. 본인의 ‘이력서를 확인해보라’며 특정 사이트 접속 링크(URL)까지 덧붙였다. 갑작스러운 연구 제안 등에 의심을 가진 I씨는 국정원에 관련 사실을 알렸다.
국정원은 제보를 바탕으로 메시지에 첨부된 링크를 정밀 분석했고, 링크를 통해 접속되는 사이트에 정교한 해킹 프로그램이 은닉돼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 I씨의 업체 외에도 국내 몇몇 정보보안 업체가 동일한 메시지를 받은 사실을 추가로, 파악했다.
국정원 조사에 따르면, 해커는 국내 정보보안 업체에 침투해 이들이 개발·납품하는 제품에 악성코드를 심어 이 제품을 도입한 기관 전체를 일시에 해킹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국정원은 ‘한국정보보호산업협회’(KISIA)를 통해 국내 200여 정보보안 업체에도 유의토록 안내해 추가적인 공격에 대비토록 했다.
테러·국제범죄 대응의 첨병
기존 안보 위협이 국가 대(對) 국가의 대칭적 성격이 강했다면 최근에는 비(非)국가·초(超)국가적 위협으로 전선(戰線)이 넓어졌다.
초국가적 안보 위협은 개인·국가·다국적기업·국제조직 등 행위자 간 상호 의존 심화로 발생하는 문제인 만큼 국정원의 대응방식도 이에 맞춰 변화하고 있다. 국정원은 최근 이러한 안보환경 변화를 반영해 대(對)테러, 마약, 국제조직, 환경 안보 등 ‘신안보’ 업무에서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재외(在外)국민 안전과 관련한 업무다. 국민들의 해외 이동이 증가함에 따라 재외국민 안전 관련 크고 작은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해가 갈수록 국민 안전에 대한 국가 역할의 기대치가 높아지고 있는 만큼 국정원 역시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헝가리 다뉴브강 유람선 침몰사고의 경우
국정원은 해외에서 발생한 자국민 사고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다. 국정원은 2019년 5월, 헝가리 다뉴브강에서 발생한 유람선 침몰사고 직후 신속대응팀을 현지에 급파해 사고 수습을 위한 지원 활동에 나섰다.
헝가리 정부가 정보기관인 대테러청(TEK) 청장을 사고대책본부장으로 임명하자 평소 정보협력 관계를 유지해오던 국정원이 일선에 투입됐다.
국정원 요원들은 헝가리 측 내부회의에 참석해 효율적인 수색·구조 활동을 요청하고, 헝가리 정부는 사고대응 현황 등 관련 정보를 우리 정부에 공유했다. 헝가리 정부가 자국(自國) 내부회의에 외국 정부 인사를 참여시킨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국정원 요원들은 유가족 헬기 배정과 수색장비 통관 지원 등에도 역할을 했으며, 침몰선박 인양 시 현장 동향을 파악해 국정원 본부 24시간 상황반에 실시간 보고, 중앙재해대책본부 회의에 상황이 공유되도록 했다.
피랍사건 역시 국정원이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는 일 중 하나다. 국정원 관계자에 따르면, 해외에서 피랍된 우리 국민을 찾는 일은 마치 ‘어두운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일’과도 같다고 한다. 사건 해결 과정에서 피랍 인질의 정확한 위치와 납치 주체 등 상세 정보를 파악하는 게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2018년 7월 발생한 리비아 우리 국민 피랍사건과 함께 작년 한 해 나이지리아 해적(海賊)에 의해 발생한 피랍사건 3건(가봉·베냉·토고 해상 우리 국민 피랍)은 현지인들조차 길을 잃으면 빠져나올 수 없는 열대우림·맹그로브 숲과 수천km에 달하는 광범위한 사막에 인질이 억류돼 있었다. 이런 이유로 사건 초기 인질의 안전에 대한 정보 확인에 어려움이 많았다. 시간 경과에 따라 인질들의 건강 악화 등 돌발 상황도 무시할 수 없었다.
열악한 환경에서의 정보 활동은 정보요원의 숙명이다. 국정원은 포탄(砲彈)이 떨어지는 내전(內戰) 국가에, 지명(地名)조차 생소한 아프리카 열사(熱砂)의 땅에 대테러 전문가를 급파했다. 각국 정보기관들과의 정보 협력은 물론 가용 정보자산을 총동원해 인질의 신변안전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협상 주도권 확보에 필요한 정보 수집에도 진력했다.
사건 해결 이후에도 가담 인물 추적은 물론 외교부 등 관계기관과 함께 사건 발생 지역에서의 유사 사건 재발 방지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피랍사건 터지면 국정원 요원은 ‘초긴장’
해외에서 피랍사건이 터지면 국정원 요원들은 초긴장 상태가 된다. 사건 징후가 포착되면 국정원 본부에서 전화가 온다. 퇴근 후 벗었던 옷을 다시 챙겨 입고 아내에게 “긴 밤이 될 거 같다”는 짧은 인사를 전하며 현관문을 나선다.
차를 몰고 회사로 향하는 도중 외교·해수부 등 관계기관으로부터 쉴 새 없이 전화가 온다. “정보 들어오는 대로 공유하겠습니다.” 사무실은 벌써 전쟁터로 변모해 있다. 피랍사건을 담당하는 국정원 요원에 따르면, 매년 수차례 발생하는 사건이지만, 도통 익숙해지지 않는 게 피랍사건이라고 입을 모은다.
국정원은 피랍사건 발생 시 체계적인 매뉴얼을 토대로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사건 조기 해결을 위해 총력 대응한다. TF에는 대테러·협상·무기·지리정보분석·특수어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참여하고, 이들은 각기 가용할 수 있는 정보채널은 물론 지식과 정보를 총동원한다. 그와 동시에 사무실 한쪽에서는 사건발생 지역으로 대테러 파견관을 급파하기 위한 출국 준비에 분주하다.
2020년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하늘길이 막혀 파견관을 급파하는 데 애를 먹었다. 파견 국가 대부분이 열악한 환경이라 파견관은 파상풍·황열병 등의 예방주사를 맞아야만 했다.
현지로 급파된 대테러 파견관은 사건 발생 지역에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는데, 현지 해외정보기관과의 정보 협력과 함께 본부에서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납치 주체와의 협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도록 관계기관과 피해기업에 주요 정보를 제공하고 컨설팅 업무도 병행한다.
국정원 본부에서는 자체 정보자산을 비롯해 관계기관·해외정보기관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입수된 납치주체·인질안전 관련 정보를 분석해 우리 정부의 사건대응전략 수립을 뒷받침한다.
피랍사건 관련 정보 활동의 대부분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여기서 시간은 빠름과 느림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거기에 더해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적시 대응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낮밤이 바뀌어 근무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포함된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정보들의 진위(眞僞)를 파악해 진짜 정보를 솎아내는 것과 활용 방안을 강구하는 건 고도의 집중력과 판단력을 필요로 한다. 국정원에서 생산한 정보가 피랍된 우리 국민의 생명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납치주체와 피해기업 간 협상이 타결돼도 숙제는 남는다. 바로 인질 신병 확보다. 범인들로서는 인질을 넘겨주는 순간이 현장 체포와 직결된다. 따라서 범인 입장에선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작은 오해로도 인질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신병 인수 장소가 사막이나 정글같이 복잡한 지형을 가지고 있다면 서로의 위치를 찾지 못해 접선이 무산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국정원이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피랍됐던 우리 국민의 신병을 인수하면 관계기관으로 구성된 ‘합동조사팀’이 사건 경위 파악과 더불어 범인의 인상착의·행동패턴 등 면밀한 조사를 실시한다. 해당 데이터는 피랍사건 가담 인물 추적과 유사사건 방지를 위한 예방대책 마련에 활용한다.
정보원 한명과 신뢰를 쌓기란…
국정원 요원이 해외에서 벌이는 첩보 작전은 영화에서 보는 것만큼 멋있거나 화려하지 않다. 이들의 신조(信條)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게 곧 첩보전의 시작’이다.
평소 얼마나 많은 정보원을 확보해두느냐에 따라 첩보전의 성패가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을 사는 건 결코 쉽지 않다. 웬만한 신뢰 관계가 아니고서야 누가 고급 정보를 털어놓겠는가.
여기 어느 국정원 요원이 겪은 하나의 사례가 있다. J 요원은 평소 알고 지내던 K국의 지인(知人)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L이라는 사람이 본인의 처지에 불만이 많아 술만 마시면 그렇게 신세 한탄을 한다고 합니다. 새롭게 살아보고 싶다고 하네요. 한번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으면 들어보세요.”
J요원의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L은 국정원이 오랜 기간 관심을 두고 있던 인물 중 한명이었기 때문이다. J요원은 L의 연락처를 확보한 후 ‘도움이 필요하다면 연락을 달라’는 비밀 메시지를 남겼다. L이 연락을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3주가 지나고 전화벨이 울렸다. J요원은 긴장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J요원은 L과 정해진 시각에 정기적으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심한 경계심을 보이던 L은 점차 마음을 열고 협조 의사를 밝혔다.
드디어 L을 만날 시간이 왔다. L은 구(舊)공산권 국가에서 주시하고 있는 인물이기에 그와 만나는 게 발각되지 않도록 극도로 조심해야 했다.
J요원은 또 다른 요원과 함께 L을 만나기 위한 철저한 접선 계획을 세웠다. L의 출장 기간을 활용하기로 했다. L이 우리 요원들을 유인해 테러할 가능성에도 대비, 현지 탈출계획도 마련했다.
접선 당일 J요원은 L에게 접선 장소를 알려주지 않은 채 ‘○○에서 버스를 타고 △△로 이동해 □층 출입구로 나와 ☆☆에서 대기하라’는 취지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미 L의 주요 이동 루트상에서 은밀히 대기하던 J요원은 L의 모든 이동 상황을 체크했다. 그 과정에서 당국의 감시가 없음을 확인했다.
밤늦게 처음 얼굴을 마주한 L은 “드디어 만나 반갑습니다”라며 악수를 굳게 했다. 밤새워 이야기를 나눈 L은 이튿날 돌아갔다. 다음 날 L에게서 문자가 왔다. “반가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L은 J요원의 주요 정보원이 되었다.
국내 정보 폐지… 北·해외 전문기관으로 거듭나
문재인 정부 들어 국정원은 그간의 관성에서 벗어나 대대적인 변화를 꾀하고 있다.
2017년 6월 국내정보관(I/O) 폐지를 시작으로 2017년 8월 대대적 조직 개편을 통해 국내 정보 담당 부서를 전격 해편(解編)했다. 이와 함께, 업무수행 과정에서 위법 소지가 없도록 각 부서에 변호사 자격이 있는 직원을 ‘준법지원관’으로 배치했다. 국정원 직무범위에서 벗어난 정보 활동을 차단하기 위해 위법명령 심사 청구 제도 운영도 강화했다.
2020년 12월 ‘국정원법 전부 개정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1961년 중앙정보부 창설 이후 처음으로 국정원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명확해졌다.
법은 국정원 운영원칙으로 ‘정치적 중립 유지’를 명시했고 ‘국내 보안정보’ 용어 삭제와 정치 관여 우려 정보수집·분석 조직 설치를 금지했다.
대공수사 관련 조항을 삭제하는 대신, 안보범죄정보 수집 직무를 신설했고 대공수사 공백 방지를 위해 수사권 이관을 2023년 12월 31일까지 3년 유예했다.
직무수행 관련 국회 보고 조항을 신설해 국가안보 중대 사안이 발생하거나, 특정 사안에 대해 정보위 3분의 2 요구 시 정보위 보고 의무도 규정해 직무수행에 대한 국회의 통제도 강화했다.
국정원은 ▲시행령 ▲정보활동 기본 지침 ▲각종 내부 규정들을 신속하게 마련·정비하는 등 후속 조치를 차질없이 이행 중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2018년 6월 지방선거를 비롯해 2020년 4월 총선과 지난 4월 재보궐선거 등 연이은 선거에서 단 한 건의 정치 개입 논란도 없었다. ‘정치 절연(絶緣)’을 증명한 셈이다.
국정원은 개정된 법에 명시된 북한·해외 정보, 산업스파이, 테러, 사이버위협 대응과 같은 본연의 업무에 매진하면서 ▲경제방첩 ▲우주정보 ▲해외 국민의 안전 보호를 위한 대응 조치 등 신규 영역도 강화했다.
박지원 국정원장은 기자간담회 등을 통해 “국민이 신뢰하시는 그날까지 개혁, 또 개혁해서 세계 제1의 북한·해외 정보 전문 기관으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대공수사는 국정원 존립 근거 중 하나다. 1961년 중앙정보부가 창설된 이래 60년간 대한민국 안보의 최일선에서 자유민주주의 위협에 맞서 국가와 국민의 안보를 수호해왔다.
국정원은 ‘이석기 RO’(2013년)·‘왕재산’(2011년)·‘일심회’(2006년) 등 대규모 고정간첩 조직을 적발했다. 북한 직파 부부간첩·황장엽 암살조 침투간첩 등 60년간 총 600여명의 간첩을 검거했다.
국정원은 2020년 12월 대공수사권 이관을 골자로 하는 국정원법 개정에 따라 2024년 대공수사권 경찰 이관을 위해 현재 대공수사 조직을 ‘북한 연계 안보침해 행위’ 관련 정보 수집·분석·검증 조직으로 개편 중에 있다.
수사권 이관으로 인한 안보공백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경찰과 ‘안보수사협의체’를 발족했으며 이후 정기회의를 개회하며 ▲해외정보 지원 ▲대공수사 기법 전수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등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국정원은 3년의 이관 유예기간에 모든 대공수사를 경찰과 합동으로 진행하며 긴밀한 공조 협력 관계를 구축할 예정이다.
박지원 국정원장은 국정원법 개정 이후 김창룡 경찰청장 등 경찰 수뇌부를 국정원으로 초청해 “남은 기간 동안 사이버 수사 등 국정원의 대공수사 기법을 경찰에 모두 전수할 것”이라고 말하며 대공수사권의 차질 없는 이관과 공조를 약속했다.
과거사 진상규명 적극 지원
국정원은 과거사 진상규명을 위해 ▲5·18 ▲세월호 ▲부마항쟁 등 관련 국정원 보유 자료를 관계 기관과 당사자들에게 제공·열람토록 하는 등 적극 지원해왔다.
5·18 민주화운동의 경우 국정원은 현 정부 출범 이후 국가기록원·국방부 특조위·‘5·18 진상조사위’에 총 6차례 국정원이 보유하고 있는 기록물을 지원했다. 특히 박지원 국정원장 취임 이후 4차례에 걸쳐 총 101건의 문서(6888쪽)와 사진 257장, 영상자료 1건이 제공됐다.
국정원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 ‘국정원 관련 의혹’ 해소를 위해 2021년 1월 20일부터 일절 가공 없이 ‘세월호’ 단어가 포함된 모든 문서목록 전량 68만여 건 열람을 지원하고 있다.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는 지난 1월 20일부터 관련 자료를 순차적으로 열람 중이다. 4월 21일 기준으로 사참위는 27만 건의 자료 열람을 완료했고, 남은 자료 열람도 7월까지 마무리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다.
국정원은 이 밖에도 피해자 눈높이에서 세월호 의혹을 규명해나간다는 방침 아래 2020년 9월 유가족 초청 행사를 개최한 데 이어, 지난 1월에도 유가족을 만나, 세월호 자료 제공 과정을 설명하고 의견을 경청했다.
국정원은 부마항쟁 진상규명 및 피해자 명예회복 지원을 위해서도 지난 3월 24일 국정원이 보유 중인 관련 자료 총 132건(1447쪽)을 ‘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 및 관련자 명예회복 심의위원회(부마민주항쟁 심의위)’에 제공했다. 2017년에 5건(51쪽) 지원에 이은 두 번째다.
생산 주체별로 중앙정보부 문건 42건(214쪽), 경찰 생산 문건 75건(1212쪽), 군(軍) 생산 문건 15건(21쪽)이다.
자료 주요 내용은 ▲당시 상황 분석과 수사방향 ▲일부 대학 동향 ▲주요 관련자 및 연행자 명단·평정·처리 판단 보고 ▲개인별 사건 이첩·송치자료 등이다.
국정원이 제공한 연행자 명단 자료는 부마항쟁 진상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의 길을 열어준 것으로 평가받았다.
당시 계엄군에게 잡혀 즉결심판에 회부된 부산 지역 즉결심판 대상자는 526명이었는데, 지금까지 명단·수사자료 등 구체적인 증거가 없었다. 현재까지 피해 신고자 40명 중 29명만 인정을 받았다.
심의위는 국정원 자료를 토대로 즉결심판에 회부된 526명을 모두 확인하고, 처벌받고도 인정을 받지 못한 486명에게 피해 사실을 알리고 명예회복을 지원할 계획이다.
“미국의 CIA 같은 기구를 창설해야겠어”
이제 국정원의 약사(略史)를 알아보도록 하자. 국정원의 전신(前身)인 중앙정보부(정보부)는 모두가 아는 대로 ‘3김’ 중 한명인 김종필(金鍾泌) 주도로 창설됐다. 김종필은 1961년 5·16혁명 이전부터 정보부 창설 구상을 하고 있었다. 조갑제(趙甲濟) 전 《월간조선》 대표가 쓴 《박정희 전기》는 이 부분을 이렇게 적고 있다.
〈5·16 당시 최영택(전 주일공사) 중령은 서울 남산 하얏트 호텔 자리에 있던 육군 첩보부대(HID) 첩보과장이었다. 새벽 4시쯤 총소리를 들은 최 중령은 육본 관사(館舍)에서 허겁지겁 옷을 입고 부대로 나왔다…. 김종필은 최 중령을 단번에 알아보더니 “오 너 왔구나. 이리 와”라며 손짓을 했다…. 그러면서 첫마디가 “야, 이제부터 우리 할 일이 있다. 너는 이 시간부터 일 좀 해라”. 김종필은 즉시 점퍼의 지퍼를 열고 오른손을 품 안에 넣더니 잠시 후 수십 장의 문건이 가지런히 접힌 뭉치를 꺼냈다. 그걸 최 중령 앞에서 부지런히 넘겨가더니 한 페이지를 찾아 쭉 펼쳐 보였다. 거기에는 혁명정부 기구표가 그려져 있었다. 대통령 직속으로는 ‘중앙정보부’가 실선(實線)으로 연결돼 있었다. 김종필은 최영택 중령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정보국에 있을 때 평소 생각했던 미국의 CIA 같은 기구를 창설해야겠어. 넌 이제부터 이 작업 좀 해야겠다. 지금부터 착수하자.”〉
김종필은 이후 초대 정보부장에 취임했다. 그의 말처럼 정보부는 미국의 CIA를 모방했다. 그래서 한때 영문명이 KCIA였다. 그러나 CIA가 국가안보에만 전념하는 조직이었다면, 정보부는 CIA와는 달리 정권 안보가 첫 번째 임무였다.
혁명 이틀 후인 5월 18일 김종필은 혁명 동지이자 자신의 육사 8기 동기생들을 불러 자신이 대강 정해준 지침에 따라 중앙정보부 조직안을 만들게 했다. 이를 토대로 6월 10일 중앙정보부가 정식 발족했다.
김종필은 정보부 부훈(部訓)도 정했다. 김영삼 정부 때까지 이어진 그 유명한 ‘우리는 음지(陰地)에서 일하고 양지(陽地)를 지향한다’이다. 퇴직한 국정원 요원들은 정보기관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는, 그러면서 가장 잘 만든 부훈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대중 정부 들어 ‘정보(情報)는 국력(國力)이다’(1998년)로 바뀌었고, 2008년 ‘자유(自由)와 진리(眞理)를 향한 무명(無名)의 헌신(獻身)’, 2016년 ‘소리 없는 헌신, 오직 대한민국 수호(守護)와 영광(榮光)을 위하여’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국정원
지금도 중앙정보부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제법 강하다. 하지만 국익을 위해 중앙정보부는 많은 활동을 벌였다. 1960년대 중반 통일볍씨 개발을 지원, 당시 곤궁했던 식량 사정 개선에 일조한 게 대표적이다.
1972년 7월,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북한과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를 시작으로 북한과 대화의 물꼬가 터졌다. 같은 해 12월, 남북조절위원회 회의가 서울과 평양에서 번갈아가며 열렸다. 남북조절위는 1976년에 한 차례 더 개최됐다.
1981년 1월 출범한 국가안전기획부는 1983년 버마(미얀마) 아웅산 테러가 발생했을 때, 이 테러가 북한 소행임을 밝히는 데 큰 공헌을 했다. 1987년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범 김현희를 검거해 국내로 송환하는 데에도 안기부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남한사회주의노동자연맹(사노맹) 사건(1990년), 중부지역당 사건(1992년)을 일망타진하는 데 안기부가 주효한 역할을 했다.
1995년 9월, 서울 내곡동 신청사 준공과 동시에 온라인 대국민 정보서비스를 개시해 국민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노력을 시도했다.
2000년대 들어 국정원은 자체 역량 강화에 나섰다. 2000년 남북관계 개선에 따른 업무를 효율적으로 관장하기 위해 ‘3차장제’를 신설했다. 2002년과 2005년엔 각각 국가정보대학원과 테러정보종합센터를 신설했다. 2009년엔 산업기밀보호를 위한 ‘111콜센터’도 발족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국정원은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남북정상회담(2018년 4월)과 남・북・미 3국 정상회담(2019년 6월) 지원에 앞장섰다.
2020년 12월 ‘국가정보원법’이 개정됨에 따라 ‘국정원-경찰 안보수사협력체’가 발족했다. 국정원은 경찰과 ‘2인3각’ 형식으로 대공수사를 하게 돼 업무의 효율성을 꾀할 수 있게 됐다. 지난 4월엔 삼성, SK, 포스코, 현대자동차 등 41개 기업이 회원으로 참여하는 ‘산업보안한림원’과 사이버 위협 정보를 공유하기로 했다. 국정원 역사상 최초로 사이버 공격 및 해킹, 위험 탐지 등에 관한 자료를 민간 기업과 공유하기로 한 것이다.
창설 60년을 맞은 국정원은 이처럼 세계화・정보화 추세와 국제 정보환경 변화에 발맞추어 명실상부한 ‘21세기형 선진 정보기관’으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과거의 얼룩을 지워내고, 환갑의 나이에도 변화와 개혁을 게을리하지 않는 국정원. 이제 과거를 딛고, 현재를 넘어 미래를 향해 도약할 준비를 끝마친 상태다.⊙
중앙정보부는 창설 20년 후인 1981년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로 개칭됐고 1999년 국가정보원(국정원)으로 이름을 바꾸며 오늘에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이름은 바뀌었지만, 역할만큼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채 60년간 존속해왔다.
“국정원 숨결 닿지 않은 곳 없어”
국정원 60년 역사는 대한민국 현대사 그 자체다. 그동안 국가 정보 체계를 확립했고, 북한 정보와 대공(對共) 수사 등을 통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는 첨병 역할도 했다. 안보기관으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1970년대 우리 기업들의 해외 진출을 유도하고 국내에 신(新)산업 유치를 위한 밑거름을 뿌렸다. 이런 것들이 모두 경제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국가 위상이 높아지면서 국정원의 역할도 더욱 확대됐다. 국제 행사를 치르는 데 있어 국정원이 보이지 않는 역할을 감당한 것이다.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2002한일월드컵, G20서울정상회의, 2018평창동계올림픽 등이 대표적이다. 남북정상회담이 5차례나 개최되는 데에도 국정원이 큰 공헌을 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산업기밀 유출 방지, 사이버 공격 대응, 국제범죄, 테러 대응 등으로 국민과 국익(國益) 보호에 적극 나서고 있다. 국정원이 갖고 있는 이런 역량은 다른 나라 정보기관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다.
과거 외부에 폐쇄적이던 시스템에서 탈피해 사이버 위협, 산업기밀 유출 정보 등은 필요한 기관이나 민간기업 등에 정보공유 서비스를 대폭 확대하고 있다. 이와 함께 영상·위성 등 우주정보 영역에 대해서도 전문성을 강화하고 있다.
국정원은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진단키트 생산 업체들과 백신 개발 기관 등을 대상으로 보안 취약점을 상시적으로 점검하고 있다. 이상징후 발생 시 대응 요령 등 기술보호 대책을 선제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국정원 관계자는 “대한민국 발전 역사 마디마디에 국정원의 숨결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고 자평했다. 이어 “창설 60주년을 맞아 국정원 직원들은 국가 최고 정보기관의 일원(一員)이라는 자부심을 한층 더 되새기고 있다”며 “60년 후에도 언제나 국민에게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다가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박지원 원장 취임 이후, 줄곧 강조해온 ‘일 잘하는 국정원’ ‘미래로 가는 국정원’이라는 가치와 목표가 하나씩 실현되고 있다”고 했다.
‘이름 없는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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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7월 20일 국정원 청사에 설치된 ‘이름 없는 별’ 조형물 앞에서 묵념을 한 후 방명록에 글을 쓰고 있다. 문 대통령 왼쪽은 서훈 당시 국정원장(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다. 사진=청와대 |
국정원에는 ‘이름 없는 별’(Unsung heroes)이란 조형물이 있다. 국정원 요원 중 국가를 위해 헌신하다가 순직한 이들을 기리는 조형물이다. 이 조형물엔 ‘소리 없이 별로 남은 그대들의 길을 좇아 조국을 지키는 데 헌신하리라’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여기엔 총 19개의 별이 새겨져 있다. 이 19명이 정확히 누구인지는 국정원 내부 직원들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어떤 임무를 수행하다가 순직했는지 역시 알려지지 않고 있다. 모두 국가 안보상의 이유 때문이다.
대한민국 발전과 번영의 밑바탕엔 국정원의 이러한 숨은 노력이 배어 있지만, 또 다른 한편에는 상처와 얼룩도 새겨졌다. 아직도 국정원 하면 대공사건 처리 과정에서 인권침해, 선거 때마다 불거진 정치개입 논란, 민간인 사찰, 불법 도·감청 등을 떠올리는 세인(世人)이 더러 있다.
아픈 과거를 뒤로하고 부정적인 면모를 일신(一新)해 이제 국정원 본연의 업무에 주력하고 있다. 2020년 12월 국정원법 개정으로 국정원의 정치적 중립성은 더욱 강화됐다. 대(對)테러, 국제범죄, 산업기술유출, 사이버안보, 우주정보 등 업무 역시 법적으로 뒷받침됐다. 고질적인 정치개입 시비(是非)도 사라졌다.
국정원은 개정된 국정원법을 근거로 과거 부정적 이미지를 개선하고 사이버, 환경, 에너지 안보 등 새로운 안보 위협 대응을 통해 미래로 나아가고 있다.

김정은 건강이상설, 장성택 실각설 사전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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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13일 YTN이 북한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이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 후 즉시 사형 집행이 됐다고 보도하고 있다. 사진=YTN 캡처 |
우리는 남북이 체제 대결을 벌이고 있어, 북한 동향과 도발 징후를 조기에 포착해야 한다. 이것이 국정원 업무의 핵심이기도 하다. 북한은 인류 역사상 정보 접근이 가장 어려운 집단으로 알려져 있다.
국정원은 북한 정보를 취합하는 데에 세계 정보기관 사이에서 독보적인 능력을 인정받는다. 2020년 북한 김정은 신변이상설과 2013년 장성택 실각설 등은 모두 국정원의 북한 정보력을 바탕으로 확인된 것들이다.
2020년 4월 15일, 북한 금수산궁전에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북한 고위 간부들이 김일성 생일을 맞아 참배에 나섰다. 김정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김정은 집권 후 첫 불참이었다. 즉각 신변이상설이 제기됐다. 처음에는 일부 인사들이 ‘김정은 건강이상 가능성’을 거론하는 단순 ‘의혹 제기’ 수준이었다.
같은 해 4월 20일 한 인터넷 매체가 “김 위원장이 향산에서 심혈관 시술을 받았다”고 보도한 데 이어, 다음 날 미국 CNN이 “큰 수술을 받고 중대한 위험에 빠졌다”는 속보를 내자 ‘김정은 건강이상’ 의혹은 급속도로 확산됐다. 국내외 언론과 일부 전문가도 ‘심장수술’ ‘뇌졸중’ ‘식물인간’ ‘사망’ 등 다양한 설(說)을 언급했다.
국정원은 김정은이 금수산궁전에 나타나지 않은 바로 다음 날인 4월 16일, 분야별 주무 직원들을 신속히 소집했다. 이들을 통해 김정은 건강이상설 관련 첩보들을 면밀히 점검토록 했다. 그 결과 ‘신변이상’ 가능성은 낮다고 결론 내렸다.
이를 바탕으로 청와대·국회 등에 ‘김정은 건재 사실’을 신속하게 보고해 안보 혼란을 미연에 차단했고, 해외 동맹국의 올바른 정세 판단을 위해 관련 정보를 수시로 공유했다.
국정원은 2013년 12월 3일 “김정은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의 고모부인 장성택의 실각 징후가 보인다”고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했다. 장성택이 모든 직책에서 해임됐을 가능성이 농후하며, 북한이 장성택의 측근을 비리 등 반당(反黨)·반(反)혁명 혐의로 공개처형한 사실을 내부에 공개 전파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장성택 당시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은 김정일의 여동생인 김경희의 남편으로, 김정은 체제의 2인자 역할을 하던 인물이었다. 그런 점에서 국정원의 보고는 충격적이었다. 이런 연유로 국정원이 공개한 ‘장성택 실각설’을 둘러싸고 신빙성 논란도 제기됐다.
엿새 만인 12월 9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공식적으로 장성택의 직위 해임 사실을 보도했다. 국정원의 북한 정보를 감지하는 능력이 얼마나 정확한지, 전 세계에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국정원은 같은 해 12월 23일 소집된 국회 정보위에서 “장성택은 11월 중순 구금됐고 12월 8일 출당 및 제명 조치됐으며, 12월 12일 사형이 집행됐다”고 추가 보고했다. 북한이 12월 초 공개한 장성택의 체포 장면은 ‘보여주기식 이벤트’로 연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숙청 배경에 대해서는 권력투쟁이 아닌 이권사업과 관련된 갈등이 비화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당시 언론과 전문가 그룹은 국정원이 ‘장성택 실각’을 감지할 수 있었던 비결을 상세히 분석하며 “국정원의 존재감과 북한과 관련한 정보력을 입증했다”고 평가했다. 국정원이 장성택 등 김정은 측근들의 동향을 면밀하게 추적·분석하고, 시긴트(신호감청)·휴민트(인적첩보) 등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첩보 수집에 총력을 기울인 결과였다.
이와 관련해 국정원 관계자는 “국정원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장기간 축적된 북한 정보 수집 역량과 노하우가 있다”며 “북한 정보 수집에 있어서는 국정원이 세계 정보기관 사이에서 독보적인 능력을 인정받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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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의 망명 요청 67일 만인 1997년 4월 20일, 서울공항을 통해 입국한 북한 노동당 황장엽(오른쪽) 비서와 측근인 조선여광무역연합총회사 김덕홍 전 총사장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조선DB |
1997년 2월 12일 오전 10시, 북한 노동당 비서 황장엽은 여광무역 총사장 김덕홍과 함께 베이징 소재 주중(駐中) 한국대사관 영사부에 진입, 대한민국 망명을 공식 요청했다. 국정원(당시 안기부)은 중국 국가안전부와 외교부에 황장엽의 망명 사실을 알리고 국내 송환과 우리 공관에 대한 경비 강화를 긴급 요청했다.
북한은 다음 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남조선이 황장엽 비서를 납치하고 망명이라 떠든다면 응당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협박했고, 수십 대의 차량과 150여명의 북한인을 우리 영사부 주위에 배치해 노골적인 위협을 가했다.
2월 15일에는 보위부 산하 정예 특공요원을 베이징에 파견, 영사관 일대의 긴장감이 최고치에 달했다. 국정원은 즉각 황장엽 근접 경호와 방탄 장비 설치, 독살(毒殺)에 대비한 요리사 파견 등 대비 태세를 갖추고 상황을 주시했다.
2월 17일 북한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황장엽이 망명했다면 변절을 의미하므로, 변절자는 갈 테면 가라는 것이 우리 입장이다”고 노선을 선회했다. 안기부는 이때부터 황장엽 일행 탈출 계획을 세우고 한 달 후인 3월 18일, 위장차량을 사전에 출발시켜 취재진과 북한 당국의 추격을 따돌린 뒤 필리핀으로 이송했다.
황장엽 일행은 안기부와 협조 관계에 있던 필리핀 보안당국의 전폭적인 협조로 한 달간 안전하게 체류한 뒤, 4월 20일 무사히 국내로 송환됐다.
산업기밀 보호 “국정원 덕에 재도약 발판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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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31일 전북 군산 새만금 신시도 광장에서 열린 제22회 바다의 날 기념식에서 아론 위그선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뉴시스 |
국내 기업이 보유한 원천 기술은 끊임없이 해외 기업으로부터 위협받고 있다. 바로 기술유출 위협이다. 국정원은 국가 경쟁력 보호를 위해 산업스파이 차단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연간 수십여 건의 산업스파이 사건을 적발하고 있다.
비근한 예로 카이스트(KAIST) 공학부 A교수는 2017년 한중(韓中) 대학 간 국제 공동연구 프로그램을 주도하며 중국 정부의 ‘천인계획’(해외 고급인재 유치 계획)에 참여했다. A교수는 중국 정부로부터 연구비와 급여 등 각종 편의를 제공받으면서 우리의 국가 핵심 기술인 자율주행차 기술을 중국으로 빼돌렸다.
국정원은 중국의 ‘천인계획’에 대한 정보수집 활동을 하던 중 A교수의 기술유출 정황을 포착했다. 이후 방첩 네트워크와 빅데이터 등 첨단 조사 기법을 동원해 A교수의 기술유출 행태를 추적하는 한편, 국가 R&D 감독 기관인 과학기술부와 공조 조사를 벌여 실체를 확인했다. 과기부는 국정원의 지원자료를 바탕으로 A교수를 검찰에 고발했고, 2020년 8월 검찰은 ‘산업기술보호법’ 등의 위반 혐의로 A교수를 구속기소 했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두께 측정기 제조업체 B사 퇴직 직원 C씨는 2017년 퇴사하면서 핵심 기술 소스코드 일체를 USB에 저장해 갖고 나왔다. 유사 소스코드를 만들어 이익의 일정 부분을 받기로 하고 중국 경쟁업체에 지원했다.
소스코드를 지원받은 중국 업체는 자국(自國) 관련 업체에 해당 기술이 적용된 장비를 저가(低價)에 다량 제조·판매했다. 중국 시장을 타깃으로 기술을 개발한 B사는 중국 업체의 저가 공세에 밀려 최근 잇따라 수주에 실패하면서 회사 사정이 크게 악화됐다.
국정원은 B사 대표 D씨로부터 기술유출 신고를 접수한 후 1년 3개월간 방첩 조사를 거쳐 검찰에 사건을 이첩했다. 기소된 C씨는 지난 1월 21일, 1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대표 D씨는 1심 선고가 있는 날 박지원 국정원장 앞으로 편지를 보냈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그동안 직원들을 구조조정하는 아픔과 매출 감소라는 이루 말할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국정원 문을 두드렸는데 산업기술보호 전담팀 덕분에 기억 속에 묻혔던 수많은 증거자료를 다시 찾게 됐고,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국정원의 도움과 조언으로 회사 보안도 전보다 훨씬 강화됐다.”
‘위그선’(바다 위를 1m 정도 떠 고속으로 이동할 수 있는 선박) 제조업체 E사에서 연구소장으로 일하던 F씨와 해외영업팀장 G씨는 2015년 개인 사정을 이유로 E사를 퇴직했다.
그런데 국정원 첩보망에 이들이 함께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구체적인 동향(動向)이 포착됐다.
국정원 조사 결과, F씨는 장남 명의로 동종 업체를 설립·운영 중이었다. G씨는 F씨의 처남이 운영하는 가구회사에 취업한 척하면서 실제로는 말레이시아 업체와 비행선박 공동생산을 추진 중이었다.
국정원 확인 결과, F씨와 G씨는 퇴사하면서 위그선 개발 실험 데이터와 설계도면, 제조공장 라인 배치도 등 E사의 영업기밀을 무단 반출했다. 이들의 기술유출 행각은 국정원의 집요한 조사로 덜미가 잡혀 현재 사법부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위그선 제조 기술은 E사가 세계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31일 ‘바다의 날’ 행사 당시 위그선에 시승한 적도 있다.
국정원 관계자는 “‘기술개발 10년·유출 1초’라는 엄중한 인식을 갖고 국내외 방첩 역량을 총동원해 핵심 기술 보호에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中 거점 보이스피싱 조직 적발·와해
국정원은 2019년 4월 “중국 톈진(天津) 거점 조직이 가짜 금융 앱을 이용해 보이스피싱 범행을 벌이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곧바로 검증에 나섰고, 첩보가 사실임을 확인했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국내 제2금융권 금융사 것으로 위장한 해킹 앱을 통해 피해자의 스마트폰에 저장된 각종 정보를 탈취해왔다. 가짜 메시지를 받은 피해자가 해당 번호로 전화를 걸 경우 보이스피싱 조직에 연결되도록 스마트폰을 완전 장악하는 수법도 사용했다.
국정원은 경찰과 2년간 공조·추적해, 중국 내 코로나19 확산을 피해 국내에 일시 귀국한 조직원 4명을 순차적(2020년 1~6월)으로 붙잡은 데 이어, 2020년 7월 중국 현지에서 총책 등 4명을 추가로 검거했다. 국정원은 중국 공안 측에 중국에서 붙잡힌 4명의 송환을 지속적으로 요청해 검거 8개월 만인 2021년 3월 결국 이들을 국내에 송환시켰다.
국정원은 같은 해 “캄보디아 거점 해킹 조직과 연계된 H씨 일당이 국내 시중은행 해킹을 기도하고 있다”는 첩보도 입수했다. 국정원은 경찰에 관련 내용을 지원한 뒤 합동 검증을 벌였다.
H씨 일당은 국내 모 은행 직원과 공모해 은행 데이터를 조작하는 수법으로 은행 돈을 범행 계좌로 이체하려 했다. 입금 금액보다 많은 돈을 찾을 수 있도록 은행전산망을 조작하는 악성코드를 심으려 한 것이다. 이들의 목표는 하루에 3억~5억원씩 1년 동안 500억원 이상의 돈을 몰래 빼돌리는 것이었다.
국정원은 이 조직의 악성코드를 입수해 실제 은행 전산망 해킹 가능성과 위험성을 평가한 후 해킹 추진 동향을 집중 모니터링했다.
그러던 중 국정원은 이들이 타깃으로 삼은 시중은행에 보낸 이메일에 해킹 프로그램이 설치된 사실을 포착했고, 경찰과 공조해 본거지인 동남아로 출국하기 직전 H씨와 공범 2명을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금융위원회는 이 사건을 계기로 금융전산망 해킹 대비 훈련을 보완·강화했다. 금융감독원도 각 시중은행의 전산망 보안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도록 조치했다.
4만여 대 스마트폰 해킹 적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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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8일, 국가정보원 최종일 3차장 주관으로 국무조정실, 미래부, 금융위, 국방위 등 14개 부처 국장급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 국가사이버안전 대책회의’가 열리고 있다. 국정원은 이날 북한이 정부 주요 인사 수십명의 스마트폰을 해킹해 통화내역, 문자메시지, 음성통화 내용 등을 빼냈다고 밝혔다. 사진=국가정보원 |
국정원은 국내 유관기관과 보안업체와 공조해 악성 앱 긴급 차단 조치에 나섰다. 우선 악성 앱에 감염된 피해자가 악성코드를 제거할 수 있도록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이동통신 3사와 함께 피해 스마트폰을 대상으로 백신점검 안내 긴급 메시지를 발송했다. 추가 확산 방지를 위해 국내 백신업체들과 협조해 스마트폰용 백신을 업데이트했다. 언론을 통해 해킹 피해 사실과 관련 보안대책을 국민들에게 알려 유사 피해를 예방할 수 있도록 했다.
악성 앱이 차단되자 해킹 조직은 탐지 회피를 위해 다양한 변종(變種) 앱을 유포하기 시작했다. 국정원과 금융보안원 등 유관기관은 맞춤형 대응 활동을 전개해 공격을 무력화했으며, 추가 공격에 대비, 해킹 조직 움직임을 지속 모니터링하고 있다.
최근 국가·공공기관과 기업체 정보통신망 보안 수준이 높아져 직접 침투가 어려워지자 해킹 조직들은 ‘공급망 공격’을 강화하고 있다. 공급망 공격이란 IT제품 제조사에 먼저 침투해 생산제품에 악성코드 등을 은닉하고 해당 제품을 도입·사용하는 기관·업체 정보통신망이나 개인 PC를 구조적으로 취약하게 만들어 침투하는 공격 기법 중 하나이다.
국정원은 2020년 5월, 우리 국민 대다수가 사용하는 필수 금융보안 소프트웨어 개발업체가 해킹당한 사실을 탐지했다. 인터넷뱅킹 이용 때 흔히 사용하는 소프트웨어였다.
해커가 마음만 먹으면 1000만 대가 넘는 PC를 파괴해 큰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감염된 PC를 악용해 디도스(Ddos) 공격 등 대규모 사이버 공격을 일으킬 수도 있었다.
국정원은 탐지 즉시 한국인터넷진흥원(KISA)·금융보안원 등 유관기관과 협조해 긴급 대응 조치에 나섰다. 백신업체와 협조해 기존 취약한 프로그램이 설치된 PC를 신속하게 치료했다.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에 해킹 사실을 통보해 취약한 소프트웨어가 더 이상 유통되지 못하도록 했다. 이런 조치로 해킹 공격은 무력화됐다. 금융자료 유출 등 심각한 피해 역시 조기 차단될 수 있었다.
국내 보안업체 대표 I씨는 지난해 12월 사이버 보안 전문가를 사칭하는 인물로부터 소셜미디어를 통해 한 통의 메시지를 받았다.
자신을 유럽에서 일하는 정보보안 전문가라고 소개한 그는 자신이 지금까지 수행한 프로젝트 관련 결과물을 소개하며 ‘사이버 보안 합작 사업 및 공동연구’를 제안했다. 본인의 ‘이력서를 확인해보라’며 특정 사이트 접속 링크(URL)까지 덧붙였다. 갑작스러운 연구 제안 등에 의심을 가진 I씨는 국정원에 관련 사실을 알렸다.
국정원은 제보를 바탕으로 메시지에 첨부된 링크를 정밀 분석했고, 링크를 통해 접속되는 사이트에 정교한 해킹 프로그램이 은닉돼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 I씨의 업체 외에도 국내 몇몇 정보보안 업체가 동일한 메시지를 받은 사실을 추가로, 파악했다.
국정원 조사에 따르면, 해커는 국내 정보보안 업체에 침투해 이들이 개발·납품하는 제품에 악성코드를 심어 이 제품을 도입한 기관 전체를 일시에 해킹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국정원은 ‘한국정보보호산업협회’(KISIA)를 통해 국내 200여 정보보안 업체에도 유의토록 안내해 추가적인 공격에 대비토록 했다.
기존 안보 위협이 국가 대(對) 국가의 대칭적 성격이 강했다면 최근에는 비(非)국가·초(超)국가적 위협으로 전선(戰線)이 넓어졌다.
초국가적 안보 위협은 개인·국가·다국적기업·국제조직 등 행위자 간 상호 의존 심화로 발생하는 문제인 만큼 국정원의 대응방식도 이에 맞춰 변화하고 있다. 국정원은 최근 이러한 안보환경 변화를 반영해 대(對)테러, 마약, 국제조직, 환경 안보 등 ‘신안보’ 업무에서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재외(在外)국민 안전과 관련한 업무다. 국민들의 해외 이동이 증가함에 따라 재외국민 안전 관련 크고 작은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해가 갈수록 국민 안전에 대한 국가 역할의 기대치가 높아지고 있는 만큼 국정원 역시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헝가리 다뉴브강 유람선 침몰사고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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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5일(현지시각),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발생한 유람선 침몰사고 현장에서 유람선 인양작업에 동원된 인양선이 강을 따라 사고 현장을 향해 가고 있다. 사진=뉴시스 |
헝가리 정부가 정보기관인 대테러청(TEK) 청장을 사고대책본부장으로 임명하자 평소 정보협력 관계를 유지해오던 국정원이 일선에 투입됐다.
국정원 요원들은 헝가리 측 내부회의에 참석해 효율적인 수색·구조 활동을 요청하고, 헝가리 정부는 사고대응 현황 등 관련 정보를 우리 정부에 공유했다. 헝가리 정부가 자국(自國) 내부회의에 외국 정부 인사를 참여시킨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국정원 요원들은 유가족 헬기 배정과 수색장비 통관 지원 등에도 역할을 했으며, 침몰선박 인양 시 현장 동향을 파악해 국정원 본부 24시간 상황반에 실시간 보고, 중앙재해대책본부 회의에 상황이 공유되도록 했다.
피랍사건 역시 국정원이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는 일 중 하나다. 국정원 관계자에 따르면, 해외에서 피랍된 우리 국민을 찾는 일은 마치 ‘어두운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일’과도 같다고 한다. 사건 해결 과정에서 피랍 인질의 정확한 위치와 납치 주체 등 상세 정보를 파악하는 게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2018년 7월 발생한 리비아 우리 국민 피랍사건과 함께 작년 한 해 나이지리아 해적(海賊)에 의해 발생한 피랍사건 3건(가봉·베냉·토고 해상 우리 국민 피랍)은 현지인들조차 길을 잃으면 빠져나올 수 없는 열대우림·맹그로브 숲과 수천km에 달하는 광범위한 사막에 인질이 억류돼 있었다. 이런 이유로 사건 초기 인질의 안전에 대한 정보 확인에 어려움이 많았다. 시간 경과에 따라 인질들의 건강 악화 등 돌발 상황도 무시할 수 없었다.
열악한 환경에서의 정보 활동은 정보요원의 숙명이다. 국정원은 포탄(砲彈)이 떨어지는 내전(內戰) 국가에, 지명(地名)조차 생소한 아프리카 열사(熱砂)의 땅에 대테러 전문가를 급파했다. 각국 정보기관들과의 정보 협력은 물론 가용 정보자산을 총동원해 인질의 신변안전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협상 주도권 확보에 필요한 정보 수집에도 진력했다.
사건 해결 이후에도 가담 인물 추적은 물론 외교부 등 관계기관과 함께 사건 발생 지역에서의 유사 사건 재발 방지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피랍사건 터지면 국정원 요원은 ‘초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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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리비아에서 무장세력에게 납치돼 억류돼 있다가 315일 만에 석방된 주모(62)씨(가운데)가 2019년 5월 18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차를 몰고 회사로 향하는 도중 외교·해수부 등 관계기관으로부터 쉴 새 없이 전화가 온다. “정보 들어오는 대로 공유하겠습니다.” 사무실은 벌써 전쟁터로 변모해 있다. 피랍사건을 담당하는 국정원 요원에 따르면, 매년 수차례 발생하는 사건이지만, 도통 익숙해지지 않는 게 피랍사건이라고 입을 모은다.
국정원은 피랍사건 발생 시 체계적인 매뉴얼을 토대로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사건 조기 해결을 위해 총력 대응한다. TF에는 대테러·협상·무기·지리정보분석·특수어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참여하고, 이들은 각기 가용할 수 있는 정보채널은 물론 지식과 정보를 총동원한다. 그와 동시에 사무실 한쪽에서는 사건발생 지역으로 대테러 파견관을 급파하기 위한 출국 준비에 분주하다.
2020년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하늘길이 막혀 파견관을 급파하는 데 애를 먹었다. 파견 국가 대부분이 열악한 환경이라 파견관은 파상풍·황열병 등의 예방주사를 맞아야만 했다.
현지로 급파된 대테러 파견관은 사건 발생 지역에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는데, 현지 해외정보기관과의 정보 협력과 함께 본부에서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납치 주체와의 협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도록 관계기관과 피해기업에 주요 정보를 제공하고 컨설팅 업무도 병행한다.
국정원 본부에서는 자체 정보자산을 비롯해 관계기관·해외정보기관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입수된 납치주체·인질안전 관련 정보를 분석해 우리 정부의 사건대응전략 수립을 뒷받침한다.
피랍사건 관련 정보 활동의 대부분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여기서 시간은 빠름과 느림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거기에 더해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적시 대응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낮밤이 바뀌어 근무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포함된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정보들의 진위(眞僞)를 파악해 진짜 정보를 솎아내는 것과 활용 방안을 강구하는 건 고도의 집중력과 판단력을 필요로 한다. 국정원에서 생산한 정보가 피랍된 우리 국민의 생명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납치주체와 피해기업 간 협상이 타결돼도 숙제는 남는다. 바로 인질 신병 확보다. 범인들로서는 인질을 넘겨주는 순간이 현장 체포와 직결된다. 따라서 범인 입장에선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작은 오해로도 인질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신병 인수 장소가 사막이나 정글같이 복잡한 지형을 가지고 있다면 서로의 위치를 찾지 못해 접선이 무산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국정원이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피랍됐던 우리 국민의 신병을 인수하면 관계기관으로 구성된 ‘합동조사팀’이 사건 경위 파악과 더불어 범인의 인상착의·행동패턴 등 면밀한 조사를 실시한다. 해당 데이터는 피랍사건 가담 인물 추적과 유사사건 방지를 위한 예방대책 마련에 활용한다.
정보원 한명과 신뢰를 쌓기란…
국정원 요원이 해외에서 벌이는 첩보 작전은 영화에서 보는 것만큼 멋있거나 화려하지 않다. 이들의 신조(信條)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게 곧 첩보전의 시작’이다.
평소 얼마나 많은 정보원을 확보해두느냐에 따라 첩보전의 성패가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을 사는 건 결코 쉽지 않다. 웬만한 신뢰 관계가 아니고서야 누가 고급 정보를 털어놓겠는가.
여기 어느 국정원 요원이 겪은 하나의 사례가 있다. J 요원은 평소 알고 지내던 K국의 지인(知人)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L이라는 사람이 본인의 처지에 불만이 많아 술만 마시면 그렇게 신세 한탄을 한다고 합니다. 새롭게 살아보고 싶다고 하네요. 한번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으면 들어보세요.”
J요원의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L은 국정원이 오랜 기간 관심을 두고 있던 인물 중 한명이었기 때문이다. J요원은 L의 연락처를 확보한 후 ‘도움이 필요하다면 연락을 달라’는 비밀 메시지를 남겼다. L이 연락을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3주가 지나고 전화벨이 울렸다. J요원은 긴장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J요원은 L과 정해진 시각에 정기적으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심한 경계심을 보이던 L은 점차 마음을 열고 협조 의사를 밝혔다.
드디어 L을 만날 시간이 왔다. L은 구(舊)공산권 국가에서 주시하고 있는 인물이기에 그와 만나는 게 발각되지 않도록 극도로 조심해야 했다.
J요원은 또 다른 요원과 함께 L을 만나기 위한 철저한 접선 계획을 세웠다. L의 출장 기간을 활용하기로 했다. L이 우리 요원들을 유인해 테러할 가능성에도 대비, 현지 탈출계획도 마련했다.
접선 당일 J요원은 L에게 접선 장소를 알려주지 않은 채 ‘○○에서 버스를 타고 △△로 이동해 □층 출입구로 나와 ☆☆에서 대기하라’는 취지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미 L의 주요 이동 루트상에서 은밀히 대기하던 J요원은 L의 모든 이동 상황을 체크했다. 그 과정에서 당국의 감시가 없음을 확인했다.
밤늦게 처음 얼굴을 마주한 L은 “드디어 만나 반갑습니다”라며 악수를 굳게 했다. 밤새워 이야기를 나눈 L은 이튿날 돌아갔다. 다음 날 L에게서 문자가 왔다. “반가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L은 J요원의 주요 정보원이 되었다.
국내 정보 폐지… 北·해외 전문기관으로 거듭나
문재인 정부 들어 국정원은 그간의 관성에서 벗어나 대대적인 변화를 꾀하고 있다.
2017년 6월 국내정보관(I/O) 폐지를 시작으로 2017년 8월 대대적 조직 개편을 통해 국내 정보 담당 부서를 전격 해편(解編)했다. 이와 함께, 업무수행 과정에서 위법 소지가 없도록 각 부서에 변호사 자격이 있는 직원을 ‘준법지원관’으로 배치했다. 국정원 직무범위에서 벗어난 정보 활동을 차단하기 위해 위법명령 심사 청구 제도 운영도 강화했다.
2020년 12월 ‘국정원법 전부 개정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1961년 중앙정보부 창설 이후 처음으로 국정원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명확해졌다.
법은 국정원 운영원칙으로 ‘정치적 중립 유지’를 명시했고 ‘국내 보안정보’ 용어 삭제와 정치 관여 우려 정보수집·분석 조직 설치를 금지했다.
대공수사 관련 조항을 삭제하는 대신, 안보범죄정보 수집 직무를 신설했고 대공수사 공백 방지를 위해 수사권 이관을 2023년 12월 31일까지 3년 유예했다.
직무수행 관련 국회 보고 조항을 신설해 국가안보 중대 사안이 발생하거나, 특정 사안에 대해 정보위 3분의 2 요구 시 정보위 보고 의무도 규정해 직무수행에 대한 국회의 통제도 강화했다.
국정원은 ▲시행령 ▲정보활동 기본 지침 ▲각종 내부 규정들을 신속하게 마련·정비하는 등 후속 조치를 차질없이 이행 중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2018년 6월 지방선거를 비롯해 2020년 4월 총선과 지난 4월 재보궐선거 등 연이은 선거에서 단 한 건의 정치 개입 논란도 없었다. ‘정치 절연(絶緣)’을 증명한 셈이다.
국정원은 개정된 법에 명시된 북한·해외 정보, 산업스파이, 테러, 사이버위협 대응과 같은 본연의 업무에 매진하면서 ▲경제방첩 ▲우주정보 ▲해외 국민의 안전 보호를 위한 대응 조치 등 신규 영역도 강화했다.
박지원 국정원장은 기자간담회 등을 통해 “국민이 신뢰하시는 그날까지 개혁, 또 개혁해서 세계 제1의 북한·해외 정보 전문 기관으로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대공수사는 국정원 존립 근거 중 하나다. 1961년 중앙정보부가 창설된 이래 60년간 대한민국 안보의 최일선에서 자유민주주의 위협에 맞서 국가와 국민의 안보를 수호해왔다.
국정원은 ‘이석기 RO’(2013년)·‘왕재산’(2011년)·‘일심회’(2006년) 등 대규모 고정간첩 조직을 적발했다. 북한 직파 부부간첩·황장엽 암살조 침투간첩 등 60년간 총 600여명의 간첩을 검거했다.
국정원은 2020년 12월 대공수사권 이관을 골자로 하는 국정원법 개정에 따라 2024년 대공수사권 경찰 이관을 위해 현재 대공수사 조직을 ‘북한 연계 안보침해 행위’ 관련 정보 수집·분석·검증 조직으로 개편 중에 있다.
수사권 이관으로 인한 안보공백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경찰과 ‘안보수사협의체’를 발족했으며 이후 정기회의를 개회하며 ▲해외정보 지원 ▲대공수사 기법 전수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등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국정원은 3년의 이관 유예기간에 모든 대공수사를 경찰과 합동으로 진행하며 긴밀한 공조 협력 관계를 구축할 예정이다.
박지원 국정원장은 국정원법 개정 이후 김창룡 경찰청장 등 경찰 수뇌부를 국정원으로 초청해 “남은 기간 동안 사이버 수사 등 국정원의 대공수사 기법을 경찰에 모두 전수할 것”이라고 말하며 대공수사권의 차질 없는 이관과 공조를 약속했다.
과거사 진상규명 적극 지원
국정원은 과거사 진상규명을 위해 ▲5·18 ▲세월호 ▲부마항쟁 등 관련 국정원 보유 자료를 관계 기관과 당사자들에게 제공·열람토록 하는 등 적극 지원해왔다.
5·18 민주화운동의 경우 국정원은 현 정부 출범 이후 국가기록원·국방부 특조위·‘5·18 진상조사위’에 총 6차례 국정원이 보유하고 있는 기록물을 지원했다. 특히 박지원 국정원장 취임 이후 4차례에 걸쳐 총 101건의 문서(6888쪽)와 사진 257장, 영상자료 1건이 제공됐다.
국정원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 ‘국정원 관련 의혹’ 해소를 위해 2021년 1월 20일부터 일절 가공 없이 ‘세월호’ 단어가 포함된 모든 문서목록 전량 68만여 건 열람을 지원하고 있다.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는 지난 1월 20일부터 관련 자료를 순차적으로 열람 중이다. 4월 21일 기준으로 사참위는 27만 건의 자료 열람을 완료했고, 남은 자료 열람도 7월까지 마무리될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다.
국정원은 이 밖에도 피해자 눈높이에서 세월호 의혹을 규명해나간다는 방침 아래 2020년 9월 유가족 초청 행사를 개최한 데 이어, 지난 1월에도 유가족을 만나, 세월호 자료 제공 과정을 설명하고 의견을 경청했다.
국정원은 부마항쟁 진상규명 및 피해자 명예회복 지원을 위해서도 지난 3월 24일 국정원이 보유 중인 관련 자료 총 132건(1447쪽)을 ‘부마민주항쟁 진상규명 및 관련자 명예회복 심의위원회(부마민주항쟁 심의위)’에 제공했다. 2017년에 5건(51쪽) 지원에 이은 두 번째다.
생산 주체별로 중앙정보부 문건 42건(214쪽), 경찰 생산 문건 75건(1212쪽), 군(軍) 생산 문건 15건(21쪽)이다.
자료 주요 내용은 ▲당시 상황 분석과 수사방향 ▲일부 대학 동향 ▲주요 관련자 및 연행자 명단·평정·처리 판단 보고 ▲개인별 사건 이첩·송치자료 등이다.
국정원이 제공한 연행자 명단 자료는 부마항쟁 진상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의 길을 열어준 것으로 평가받았다.
당시 계엄군에게 잡혀 즉결심판에 회부된 부산 지역 즉결심판 대상자는 526명이었는데, 지금까지 명단·수사자료 등 구체적인 증거가 없었다. 현재까지 피해 신고자 40명 중 29명만 인정을 받았다.
심의위는 국정원 자료를 토대로 즉결심판에 회부된 526명을 모두 확인하고, 처벌받고도 인정을 받지 못한 486명에게 피해 사실을 알리고 명예회복을 지원할 계획이다.
“미국의 CIA 같은 기구를 창설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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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중앙정보부를 방문한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과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이 악수하고 있다. 사진=조선DB |
〈5·16 당시 최영택(전 주일공사) 중령은 서울 남산 하얏트 호텔 자리에 있던 육군 첩보부대(HID) 첩보과장이었다. 새벽 4시쯤 총소리를 들은 최 중령은 육본 관사(館舍)에서 허겁지겁 옷을 입고 부대로 나왔다…. 김종필은 최 중령을 단번에 알아보더니 “오 너 왔구나. 이리 와”라며 손짓을 했다…. 그러면서 첫마디가 “야, 이제부터 우리 할 일이 있다. 너는 이 시간부터 일 좀 해라”. 김종필은 즉시 점퍼의 지퍼를 열고 오른손을 품 안에 넣더니 잠시 후 수십 장의 문건이 가지런히 접힌 뭉치를 꺼냈다. 그걸 최 중령 앞에서 부지런히 넘겨가더니 한 페이지를 찾아 쭉 펼쳐 보였다. 거기에는 혁명정부 기구표가 그려져 있었다. 대통령 직속으로는 ‘중앙정보부’가 실선(實線)으로 연결돼 있었다. 김종필은 최영택 중령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정보국에 있을 때 평소 생각했던 미국의 CIA 같은 기구를 창설해야겠어. 넌 이제부터 이 작업 좀 해야겠다. 지금부터 착수하자.”〉
김종필은 이후 초대 정보부장에 취임했다. 그의 말처럼 정보부는 미국의 CIA를 모방했다. 그래서 한때 영문명이 KCIA였다. 그러나 CIA가 국가안보에만 전념하는 조직이었다면, 정보부는 CIA와는 달리 정권 안보가 첫 번째 임무였다.
혁명 이틀 후인 5월 18일 김종필은 혁명 동지이자 자신의 육사 8기 동기생들을 불러 자신이 대강 정해준 지침에 따라 중앙정보부 조직안을 만들게 했다. 이를 토대로 6월 10일 중앙정보부가 정식 발족했다.
김종필은 정보부 부훈(部訓)도 정했다. 김영삼 정부 때까지 이어진 그 유명한 ‘우리는 음지(陰地)에서 일하고 양지(陽地)를 지향한다’이다. 퇴직한 국정원 요원들은 정보기관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는, 그러면서 가장 잘 만든 부훈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대중 정부 들어 ‘정보(情報)는 국력(國力)이다’(1998년)로 바뀌었고, 2008년 ‘자유(自由)와 진리(眞理)를 향한 무명(無名)의 헌신(獻身)’, 2016년 ‘소리 없는 헌신, 오직 대한민국 수호(守護)와 영광(榮光)을 위하여’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국정원
지금도 중앙정보부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제법 강하다. 하지만 국익을 위해 중앙정보부는 많은 활동을 벌였다. 1960년대 중반 통일볍씨 개발을 지원, 당시 곤궁했던 식량 사정 개선에 일조한 게 대표적이다.
1972년 7월,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북한과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를 시작으로 북한과 대화의 물꼬가 터졌다. 같은 해 12월, 남북조절위원회 회의가 서울과 평양에서 번갈아가며 열렸다. 남북조절위는 1976년에 한 차례 더 개최됐다.
1981년 1월 출범한 국가안전기획부는 1983년 버마(미얀마) 아웅산 테러가 발생했을 때, 이 테러가 북한 소행임을 밝히는 데 큰 공헌을 했다. 1987년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범 김현희를 검거해 국내로 송환하는 데에도 안기부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남한사회주의노동자연맹(사노맹) 사건(1990년), 중부지역당 사건(1992년)을 일망타진하는 데 안기부가 주효한 역할을 했다.
1995년 9월, 서울 내곡동 신청사 준공과 동시에 온라인 대국민 정보서비스를 개시해 국민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노력을 시도했다.
2000년대 들어 국정원은 자체 역량 강화에 나섰다. 2000년 남북관계 개선에 따른 업무를 효율적으로 관장하기 위해 ‘3차장제’를 신설했다. 2002년과 2005년엔 각각 국가정보대학원과 테러정보종합센터를 신설했다. 2009년엔 산업기밀보호를 위한 ‘111콜센터’도 발족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국정원은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남북정상회담(2018년 4월)과 남・북・미 3국 정상회담(2019년 6월) 지원에 앞장섰다.
2020년 12월 ‘국가정보원법’이 개정됨에 따라 ‘국정원-경찰 안보수사협력체’가 발족했다. 국정원은 경찰과 ‘2인3각’ 형식으로 대공수사를 하게 돼 업무의 효율성을 꾀할 수 있게 됐다. 지난 4월엔 삼성, SK, 포스코, 현대자동차 등 41개 기업이 회원으로 참여하는 ‘산업보안한림원’과 사이버 위협 정보를 공유하기로 했다. 국정원 역사상 최초로 사이버 공격 및 해킹, 위험 탐지 등에 관한 자료를 민간 기업과 공유하기로 한 것이다.
창설 60년을 맞은 국정원은 이처럼 세계화・정보화 추세와 국제 정보환경 변화에 발맞추어 명실상부한 ‘21세기형 선진 정보기관’으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과거의 얼룩을 지워내고, 환갑의 나이에도 변화와 개혁을 게을리하지 않는 국정원. 이제 과거를 딛고, 현재를 넘어 미래를 향해 도약할 준비를 끝마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