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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입수

신성모 국방부 장관의 육필 6·25전쟁 전황보고서

한강 방어선 돌파당하자 이승만에게 비상계엄 건의

글 : 오동룡  조선뉴스프레스 취재기획위원·군사전문기자  goms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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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전쟁 직후 보름간 ‘대한민국 지휘부 공백상태’를 증언할 ‘퍼즐조각’
⊙ 채병덕 육군총장을 북진 예비군단장, 1군단 군단장으로 김석원 장군 임명 건의
⊙ 장제스의 포병대대 파병 의사를 이 대통령에게 전달
⊙ 7월 4일 인민군 대공포에 격추당한 무스탕 편대장 이근석 대령을 애도
1950년 8월 15일 이승만 대통령과 신성모 국방장관이 8·15 경축식을 끝내고 임시 국회의사당으로 사용하던 대구 문화극장을 떠나고 있다.
  《월간조선》은 6·25전쟁 발발 후 국무총리 서리(署理)를 겸하고 있던 신성모(申性模·1891~1960) 국방부 장관이 1950년 7월 1일부터 12일까지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에게 올린 전황(戰況) 보고서를 단독으로 입수했다. 연세대 이승만연구원(원장 김명섭)이 소장하고 있는 이 친필보고서는 7월 1일부터 12일까지 9차례에 걸쳐 신성모 장관이 육필로 작성한 것이다.
 
  남정옥 전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이제까지 6·25전쟁사에서 전쟁 초기 국방부 장관을 지냈던 신성모의 역할이 없었다”며 “이는 신성모 장관의 전쟁 관련 기록이 전무(全無)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이 문서를 통해 전쟁 초기 신성모 장관의 역할과 함께 국방장관의 보고서를 통해 당시 전쟁 직전의 전황과 국방문제 등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했다.
 
(왼쪽부터) 신성모 장관이 올린 1차 보고서, 제3차 보고서, 제4차 보고서,
  1891년 경남 의령 출생인 신성모는 1910년 보성법률상업학교를 졸업하고 경술국치 후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해, 신채호·안희제 등과 함께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1912년 상하이로 건너가 우쑹(吳淞)상선학교를 거쳐 난징 해군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중국 해군 소위로 해군원수부(元帥府)에서 근무했다.
 
  1921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영국 킹에드워드7세 해양대학을 졸업하고 일등항해사로서 1930년대 영국과 인도를 오가는 정기여객선 선장으로 근무했다. 1940년 임시정부 군사위원으로 있다가, 1948년 11월 귀국했다. 1949년 3월 이범석(李範奭) 장관에 이어 2대 국방부 장관에 임명됐고, 1950년 4월부터 11월까지 국무총리 서리를 겸직했다. 1951년 초 발생한 거창양민학살 사건과 국민방위군 사건의 책임 문제로 1951년 5월 경질됐다.
 
 
  “신성모의 역할에 대한 재평가 가능”
 
신성모 국방장관
  신성모는 ‘낙루장관(落淚長官)’으로 알려졌지만, 그 말 한마디로 폄하하기엔 간단치 않은 이력의 소유자였다. 단지 그 시기 국방부 장관이라는 자리가 어울리지 않았을 뿐이란 지적이다. 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예비역 육군소장)은 “영국 상선에서 오래 근무해 영어는 잘했으나, 군사나 군(軍) 인맥에 대해서는 무지했다”며 “건국 지도자인 이승만 대통령이 군 경력이 없는 신성모 국방장관과 지휘 경험이 없는 일본군 병기소좌 출신의 채병덕 육군총참모장의 조합을 만든 것은 최악의 선택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남정옥 전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이번 육필 전황보고서를 보면 과거 신성모 장관의 6·25전쟁 기간 수행한 역할에 대해 역사적 평가가 바뀔 만한 내용이 상당하다”며 “국무총리 서리와 국방부 장관으로서 조치 내용들을 보고서 형식으로 기록함으로써, 6・25전쟁 초기 ‘대한민국 지휘부’에 대한 소중한 퍼즐조각을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신성모 장관이 전황보고서를 올릴 당시 대한민국 정부는 ‘리더십 공백 상태’였다. 6·25전쟁이 발발한 지 이틀 만인 1950년 6월 27일 새벽 4시 이승만 대통령은 서울역에서 기차에 몸을 싣고 대구를 거쳐 대전으로 향했다. 다음 날인 28일 서울은 인민군에 함락됐고, 한강다리가 폭파돼 서울 시민들은 꼼짝없이 북한군 치하에 발이 묶이고 말았다.
 
  북한군의 공세로 정부는 다시 부산으로 거점을 옮기고 이승만 대통령은 7월 1일 새벽 3시 3명의 수행원만 대동하고 대전을 빠져나갔다. 무장공비 출몰을 우려해 육로 대신 바닷길을 선택했다. 목포항에서 배를 탄 이 대통령은 19시간의 항해 끝에 부산에 도착했다.
 
  신성모 장관은 내각 총리서리와 국방부 장관으로서 정부와 군의 할 일을 대전 임시수도(6월 27일~7월 16일)에서 부산에 있는 이 대통령에게 보고서로 쓴 것이다. 신 장관의 7월 1일 첫 보고서도 ‘고령이신 각하를 우중(雨中)에 배별할 때 죄송한 마음 무어라 아뢰올 수 없다’며 7월 1일 부산으로 떠나는 이 대통령에 대한 안타까운 심경을 적었다.
 
 
  패전 중에 1군단 창설 추진
 
  이승만 대통령은 전쟁 직후인 7월 8일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신 장관 전황보고서에 따르면, 신성모 장관은 7월 5일 보고에서 ‘사태가 점점 더 심중하여지고 군사행동을 지장 없이 하기 위해선 전국적으로 계엄을 선포해야 한다’고 했다. 남정옥 연구원은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위급한 시기에 계엄령까지 선포하면, 계엄사령부도 구성해야 하는 등 군 작전에 혼선을 초래할까 봐 망설이고 있던 상황이었다”며 “7월 4일 북한군이 한강을 도하해 영등포를 돌파하자 이 대통령에게 전시(戰時) 총력 지원을 위해 계엄 선포를 요청했던 것”이라고 했다.
 
  신성모 장관은 채병덕 소장을 예비대 2개 사단을 지휘하는 군단장으로 임명해 북진(北進)에 대비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당시 채 소장은 6·25전쟁 초기 패전에 따른 책임으로 1950년 6월 30일 육군총참모장에서 해임당하고 ‘경남 지구 편성군 사령관’으로 좌천된 상태였다.
 
  남정옥 연구원은 “신 장관은 7월 4일 한강이 도하 당하는 위급한 시기에 채병덕 소장을 군단장으로 임명해 대구에서 2개 사단의 병력을 편성하려 했다”며 “예비사단을 만들어 당장 보충병으로 활용하고 북진 시기에 주력 부대로 활용하겠다는 뜻”이라고 했다. 이와 함께 신 장관은 7차 보고에서 1군단 창설 관련 인사 보고를 하고 있다. 신 장관이 김홍일 소장을 1군단장, 참모장 유재흥 준장, 1사단장 백선엽 대령, 2사단장 이한림 대령, 수도사단장 김석원 준장 등을 1군단 창설 요원으로 임명하고, ‘선조치 후보고’하는 것이 눈길을 끈다.
 
  신성모 장관은 1950년 7월 6일, 장제스 총통의 중국군 포병 약 2개 대대를 파병해 전투하겠다는 의사를 사오위린(邵毓麟) 주한 중국대사를 통해 듣고 이를 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그러나 맥아더 연합군사령관은 병력과 물자수송의 어려움 때문에 대만의 파병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신 장관은 1950년 7월 11일, 오산 남쪽부에서 국군 17연대가 호주 전투기의 오폭(誤爆)으로 큰 피해를 입은 것에 분개하고 있다. 17연대는 강둑을 따라 참호를 파고 있다가 호주 공군기 4대의 오폭으로 200여 명의 장병이 죽거나 다치고 트럭 30대가 불탔다. 이 와중에 연대장 백인엽 대령은 다리에 관통상을 입고 후송됐다. 한편, 1950년 7월 4일, F-51D 무스탕편대의 편대장이 돼 첫 출격에서 전사한 이근석 대령(준장 추서)을 애석해하는 글도 보인다. ‘하늘같이 믿고 그 비행기 뒤를 따라 날아갔던 공군 장교들을 가르쳐줄 사람이 없다!’ 다음은 신성모 장관이 대통령에게 보고한 서한 전문이다.
 
 
  신성모 국무총리 서리 겸 국방부 장관 육필 보고서(1950년 7월 1~12일)
 
  ① 1차 육필보고서(1950년 7월 1일)
 
  (7월) 1일 14시 현재 전황 보고
 
  1. 광나루를 건너 아진지에 침입한 적을 격퇴하고 흑석대에 월경(越境)한 적을 몰살시켰으며, 김포비행장에 침입한 적을 용전 격퇴하였습니다. 일선 장병의 요구는 대포와 기관총입니다.
 
  2. 명조(明朝)까지 미 육전대(陸戰隊·해병대-기자 주)가 일선 전투에 참가케 되어 시국 만회가 확실하겠습니다. 추측건대, 미 육군 폭격이 불가능하고 미 상륙부대에 일선 진출이 또 더 늦어진다면 황송한 말씀이오나 수원까지라도 지키긴 어렵습니다.
 
  3. 이곳 미 대사관과 미 영사관에서 사용할 한국 돈 400만원과 유엔에 100만원을 빌려주도록 한국은행 총재에게 지시하였습니다. 유엔 대표 유어만씨와 제퍼슨씨는 오늘 12시 부산으로부터 이곳에 도착하였습니다. 정부 각료도 대부분 이곳에 소집되어 민심 안정을 주고 있습니다.
 
  4. 고령(高齡)하신 각하를 우중(雨中)에 배별할 때 죄송한 마음 무어라 아뢰올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미국에 큰 원조를 얻고 군경 일치단결로서 반드시 성공하겠습니다. 끝. 국방장관.
 
 
  ② 3차 육필보고서(1950년 7월 2일)
 
1950년 6월 17일 38선 부근에서 방한한 존 덜레스 미 국무장관을 수행하고 있는 신성모 장관(쌍안경 든 사람).
  (6월) 30일 일선 적의 습격이 극히 위험하여 진지 보수가 시간문제이므로 이것을 이유 삼아서 수원 재류 미 군인 전부 퇴각하여 대전에 집중한 후, 회의결과에 미 응원군의 대전 도착과 천기가 좋아서 폭격기의 구원이 있어서야 대전도 보수(保守)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기후 불순으로 비행기의 원조도 작일 야(夜)에 받지 못하고 미군의 도착도 되지 못하여 기대하던바 원조를 받지 못하였으나 일선의 장병은 결사전투하는 정신과 미군의 원조가 쉬이 온다는 기쁜 생각 아래에 악전고투하여 오늘까지 일선을 지키고 있는 중입니다. 적의 강력한 부대가 외곽으로 전진하여 수원, 대전을 목적하고 공격을 개시하였음으로 미군의 전선 출동이 늦어도 내일 이내로 되어야 일선도 보지(保持)하고 대전도 안수(安守)할 수 있을 것이나, 만일에 하루 더 늦는다면 일선은 막론이고 대전 이곳도 위협을 당할 것입니다.
 
  오늘 다행히 날씨가 좋아서 미군 비행기가 계속 폭격하므로 적의 전진을 막고 있사오매 일부 미군의 선발대는 대전에 도착하였고, 계속 도착할 줄 아오나 너무 시간이 급하므로 대단 우려를 느끼는 바입니다.
 
  30일 대전 인심을 안정시키기 위하여 각원(閣員) 중 소수가 남아서 종일 노력한 결과 인심(人心)도 적이 진정되어 가는 중. 각원과 국회의원을 태운 차가 전주에 도착 후 조치를 물었음으로 곧 자원하여 대전으로 돌아오고 싶은 각원은 오라고 연락한 결과, 사회부 장관과 공보처장을 제외한 각원은 현재 대전에 집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대전 인심은 대단히 좋아졌사오며 미군과도 잘 연락작전 진행하고 오직 응원군만 바라고 있는 중이온대, 대통령의 마산(馬山) 집중하라는 명령을 받잡고 각의를 소집하와 그 결과를 보고코자 하옵나이다.
 
  각원 중 대통령의 제2회 전보를 받잡고, 재석 각원 전체는 회의를 마친 후 대기하고 있는 중입니다. 각원 대표로 각원 중 1인을 파송하여 대통령께 제반을 보고하고 싶사오나 각기 직장에 일을 하기 위하여 고(高) 비서를 각원 대표로 특파 보고하기로 결정하였음으로 내일 비행기 편으로 내려가겠습니다. 밤새 경과는 내일 첨부하여 보고하겠습니다. 대통령과 동부인의 건강을 비오며 이만 상달(上達)하나이다. 단기 4283년 7월 2일 야(夜) 신성모 배상.
 
 
  ③ 4차 육필보고서(1950년 7월 3일)
 
낙동강 전선 최대 격전이었던 다부동 전투 당시 백선엽 사단장(왼쪽)이 신성모 국방장관에게 전황을 설명하는 모습.
  대통령 각하 서함(書函)을 받자왔나이다. 제3차 보고서를 고(高) 비서 편에 보내 올렸사오며 그 후 일선 정세는 변동이 없습니다. 아침 10시경에 오래 기다리던 우리 비행기 4기가 처음으로 대전 상공에 나타났사오며, 일선에 진출 폭격할 터입니다. 미군의 내도(來到)를 아직 기다리고 있사오며 딘(Dean) 소장이 지금 도착하여 군사회의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위급한 사태를 알 터이오니 군사 책임상으로, 또 우리의 친우(親友)로서 적절한 조치를 할 줄 믿으오나 대통령께서 친히 말씀하시면 1분이라도 빠르게 미 응원군이 일선에 전진 작전하여 충용 무쌍한 우리의 장병들이 한 사람이라도 더 희생 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문하신 정부 소재지에 대하여 무초씨와 처치 장군의 의견을 물은바 2~3일만 더 기다려 작정(作定)하자고 합니다. 3차 보고에도 말씀한 바와 같이 사회부 장관과 공보처장 외에는 정부 각원 전부가 대전에 집결되어 있사오며, 국회의장과 다소 의원들도 대전에 돌아와 있습니다. 부통령께서도 전주에 평안히 계신다는 소식을 신(申) 의장 편으로 들었습니다.
 
  오늘 아침 국무회의에서 보건부 장관이 사무집행하기 위하여 부산으로 출장하겠다고 하옵기에 허가하였습니다. 재무부 장관의 보고에 현재 대전에 소재한 100원 화폐가 1주일가량 쓸 것이 있다 하오며 그 후에는 천원 화폐를 부득이 써야 하겠다는 요청이 있음으로 국무위원 일동은 부득이한 경우에만 사용하자는 결의를 하였습니다.
 
  식량에 대해서는 대전에 한하여는 아직까지 넉넉히 지내오며 앞으로 서울에나 이북에 동포의 식량을 생각하여 다량 숫자를 확보하자고 농림부 장관에게 말씀드렸사오며, 외국 수입이라도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한바, 이에 대하여 농림부 장관과 재무부 장관으로 하여금 계획을 작성하여 대통령의 결재를 받아 실시하도록 언급하였습니다. 일본에 유학하던 육군장교 중 21명이 대전에 도착하였습니다. 각기 적소에 배치하였습니다.
 
  3차 보고에 말씀 올린 바와 같이 미 원조군이 오늘 밤 내로 일선에 진출하기를 기다리고 바라옵니다. 무초 대사는 대전 주재 후로 주야를 가리지 않고 군사에나 치안에나 충심으로 노력해오는바, 면식(眠食)이 부족하여 얼굴이 여위어졌는데, 오히려 우리들을 위안시키느라고 고무하는 대사는 과연 무어라고 감사를 드릴는지 저로서는 부족하오니 대통령께서 고마운 말씀을 해주시기를 바라옵나이다.
 
  서울에 대한 소식은 구구하여 믿을 수 없사오나 전반적으로 들어오는 정보는 잔인무도한 공산도배들이 대한민국에 충성하는 사람들의 가족, 노유(老幼)를 막론하고 학살한다는 것입니다. 천의(天意)를 믿으오니 설분(雪憤)할 때가 가까이 있을 줄을 믿어 의심치 아니하나이다. 끝으로 대통령 각하와 동부인의 건강을 비나이다. 단기 4283년 7월 3일 국방부 장관 신성모.
 
 
  ④ 5차 육필보고서(1950년 7월 4일)
 
1950년 7월4일자 제5차 보고서. 오스트레일리아 공군의 오폭으로 17연대장 백인엽 대령이 부상당했다고 보고하고 있다.
  어젯밤 7시 이후 일선 정황을 대략 보고하옵나이다. 어제 오후에 오스트레일리아 비행사가 아군 진지를 적진인가 오인하고 장시간 폭격 사격하여 우리 국군의 200여 명에 살상을 내였으며. 특히 17연대장 백인엽(옹진전투에 해주까지 갔던 연대장)이 부상을 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약 2주간 치료받으면 출진할 수 있다 하오니 과히 염려 마시기를 바라옵나이다.
 
  인명의 부상뿐 아니라 미 군수품에 막대한 손해를 낸 것이 크게 유감되는 바입니다. 이로 인하여 일선은 매우 혼돈해서 위험하게 되었으나 밤 내로 다시 정돈해서 지금은 영등포 시가를 철퇴한 후에 다른 진지에는 다른 변동 없이 잘들 지키고 악전하고 있는 중입니다. 측면으로 광나루를 건너 이천을 목표하여 대전, 수원 중간을 엿보던 적은 국군 6사단 부대의 용전으로서 대항할 뿐 아니라 격퇴하여 오늘 아침까지는 수원-대전 간에 차단의 염려는 없습니다.
 
  오늘 밤에 떠나 전선의 장병을 위안하고 내일 대전으로 돌아올 예정입니다. 어젯밤에 재무부 장관과 한국은행 총재 두 분에게 화폐에 대한 대통령의 분부를 전달시키고 곧 추진하라 하였습니다.
 
  채병덕 소장에게 대해서 방송은 아직 실행하지 못하옵고 다시 분부를 기다려 방송하려 합니다. 채 소장을 어제 대전으로 불러서 설명한 결과, 아무 주저 없이 절대 복종하겠다고 맹서하옵고 수원에 가서 사무 인계를 하고 돌아와 이곳에 있사오며, 일선 장병도 이 인사이동에 대하여 아무 애행이 없사오니 조금도 걱정 말아 주시기를 바라옵나이다. 채 소장은 군단장의 일원으로 대구에 주재해서 2개 사단의 보충 신편훈련 완수에 중대한 준비 일을 맡겼사오니 대통령께서 용허해주시기를 바라옵나이다.
 
  지금 일선에서 싸우는 국군 전체의 병력이 매우 박약함으로 부대 보충이 지급(至急)한 일일뿐 아니라 북진의 주력부대를 지금부터 예비해야 할 것입니다. 이 일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채 소장이 적임이라 생각하옵고, 군단장으로 임명시키고 2개 사단을 우선 편성·훈련시키라 하였사오니 대통령께서 부산의 미국 수송책임자에게 명령하시든지 또는 맥아더 원수에게 직접 교섭하셔서 우선 이 2개 사단의 요구하는 장비 일체를 대구에 직접 보급하도록 주선해주셔야 이상 계획을 이룰 것입니다.
 
  채병덕 소장이 지금 대통령께 보고하기 위해 내려갔으니 위무의 말씀을 하여 주시고 2개 사단 편성 훈련에 중한 책임을 달성하라고 엄명해주시기를 바라옵나이다, 대통령과 동부인의 건강을 비옵고 이만 보고를 올리나이다. 7월 4일 국방장관 신성모 올림.
 
 
  ⑤ 6차 육필보고서(1950년 7월 5일)
 
1950년 7월5일자 제6차 보고서는 미군 투입 사실을 알고 국군이 사기가 올랐다고 보고했다.
  5차 보고서에 이미 말씀 올린 바와 같이 국군병력의 보충이 시급한 바이므로 채병덕 소장은 이미 경남북 지구에 파송하여 소집·편성·훈련의 계획을 세워 곧 실시하라고 하였사오며(약 2만명, 2개 사단), 동일한 목적으로 일간 신태영(申泰英) 소장을 전주로, 이응준(李應俊) 소장을 광주로 파견하여 각각 2개 사단(약 2만명)을 청년방위대원이나 기타 애국청년단체에서 소집하여 편성 훈련에 착수하기로 하겠습니다. 이상 6개 사단의 무장이 시급히 필요하오니 이것을 대통령께서 전화로 요청하시어 미군 부대의 긴급수송이 끝난 뒤에 우리의 무장도 공급해주시기를 지금부터 교섭해주시기를 바라옵나이다.
 
  어제 오전 11시부터 영등포 전선에서 강력한 적이 10여 대의 탱크를 앞세우고 안양, 시흥, 수원 도로로 침입하였음으로 부득이 일선 국군은 수원으로 후퇴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적의 탱크와 대포에 놀란 병사들은 수원에 그치지 않고 오산까지 후퇴하는 도중에 미군의 포병과 탱크부대를 보고는 비로소 나날이 미군이 원조한다는 말이 참으로 사실인 것을 보고 그제야 용기백배 되어 그 자리에서 수원을 향하여 전진 중에 있습니다. 우리의 주력은 벌써 수원 시내에서 적군과 혼전하고 있는 중입니다. 미군은 기계부대와 보병과 진지를 구성하고 싸우며, 국군은 전방에서 분투하오니 미군의 주력이 집합될 때까지 수원과 오산을 방수(防守)할 것 같습니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이미 절반이나 손상당한 우리 군력을 아낄 수 없이 전선에 세워서 고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손상이 많이 남으로써 병력의 보충이 시급한 문제입니다. 인력은 800만 대한청년이 있으니 걱정할 바 없사오나, 무장이 손에 들어올 때까지 초조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겠습니다. 서울에 입성한 후 38선에 쳐들어갈 때 어찌 미군의 군력만 믿겠습니까. 강력한 우리 국군이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올라가 우리의 국경을 지킬 넉넉한 우리 병력이 있어야 차진 나라를 지킬 터이오니, 지금부터 이러한 목적 아래 계획을 세우고 훈련을 시키겠다는 것이오니 무기원조에 대통령께서 미리 교섭하시와주시옵기를 바라옵나이다.
 
  우리 공군의 활약은 예기(豫期)한 바와 같이 폭탄이 있는 대로 적을 폭격 사격하여 오던바, 어제 오전 11시 적의 탱크가 수원을 향하여 들이밀 때에 이것을 폭파하려고 나갔던 우리 비행기 4대 중에 이근석(李根晳) 대령이 조종하던 비행기가 적탄에 맞아서 떨어졌습니다.
 
  한국 공군의 제일 우수한 기능을 가졌으며 또 세계적 기록을 이룬 이근석 대령을 잃은 공군 일동은 총참모장으로부터 병졸까지라도 애도하는 바입니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군인으로서 전사한 데 대하여 슬퍼 우는 것이 아니라, 지난 두 해 동안 그 비행기를 얻어가지고 온갖 정성을 다 드렸던 이 대령은 어렵게 얻은 그 비행기를 겨우 이틀 타고 전사한 것이 원통하다는 뜻이오, 하늘같이 믿고 그 비행기 뒤를 따라 날아갔던 공군 장교들을 가르쳐줄 사람이 없다 하여 운다는 것입니다.
 
  일선의 전황은 밤새 별 변동이 없이 후퇴하는 우리 군은 적시 재편성 배치에 밤새도록 일하고 지냅니다. 몸소 일선에 나아가 보고 나오고 싶으오나 몸을 뺄 수 없어 마음대로 못 하오니 고전분투하는 장병에 대한 낯이 없습니다. 국무회의와 국회의원연락위원회의에는 매일 반 시간씩 출석하여 그날그날 전황을 보고하며 다 같이 대소사를 의논하고 지내오니, 이에 대하여 너무 염려 마시고 지내옵기 바라나이다.
 
  오늘 아침 경찰전화를 통하여 비행기 보내라는 분부가 계셨다고 하온바 천후부적(天候不適) 하여 비행기를 보내지 못하오나 천후만 좋아지면 비행기를 수배하겠습니다. 경찰전화는 부산-대전 간 교환대가 많으므로 누설되기 쉽사오니 부산의 갤베스톤 전화(Galveston Switch Board)로 미군 사령부 Phone No.1을 부르시면 곧 저와 직통할 수 있습니다.
 
  지금(오전 11시) 전선 보고에 공산군과 미군과 사이에 전투가 일어났습니다. 결과는 이후 보고로 올리겠습니다. 사태가 점점 더 심중하여지고 군사행동이 지장 없이 하기 위하여서는 전국적으로 계엄을 선포하여야 하겠습니다. 대통령께서 고려하셔서 하명해주시기를 기다리겠습니다. 공보처장은 이곳에 있어서 할 일이 많은데 이후에는 이곳에서 일보라고 말씀해주시기 바라옵나이다. 대통령 각하와 동부인의 건강을 빌면서 우선 이만 올리나이다. 단기 4283년 7월 5일 국방부 장관 신성모 배상.
 
 
  ⑥ 7차 육필보고서(1950년 7월 6일)
 
1950년 7월6일자 제7차 보고서는 1군단 편성과 군 인사에 대해 보고하고 있다.
  어제 아침 5시부터 오산 방면에서 미군과 충돌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어제 종일은 비가 많이 오므로 큰 충돌은 없었사오나 오늘 아침부터는 미군부대와 적의 주력과 전투한 결과, 적의 전진을 막지 못하여 후퇴를 하는 중입니다. 미군의 대포와 각종 기계로서도 전진하는 적의 탱크를 막지 못하고 비로소 놀란 듯이 대단 긴장들 하고 있습니다.
 
  적의 주목적은 대전입니다. 그리하여 적 주력 2개 사단으로 수십 대의 탱크를 앞세우고 수원, 대전 대로를 전진하며, 또 2개 사단의 세력으로 탱크와 장갑차를 앞세우고 충주와 청주를 엿보고 전진하는데, 이 정면에는 우리 국군의 주력이 분투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투의 잠시 경험으로 우리 국군의 모든 고충을 아는 듯하오며, 특히 우리 보병이 용감 선전함을 칭송까지 합니다. 적의 전진을 급히 막지 아니하면 1~2일 이내로 대전이 위협을 받을 것 같습니다.
 
  오늘 채병덕 소장 편에 상신한바, 좀 고려하시고 2, 3일 더 기다리시는 것이 좋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오늘 아침부터 일선에서 물러오는 무기 없는 군인들을 수집하여 무장을 시킬 때까지 재훈련을 시키려고 하오며, 이 후퇴하는 수천의 군인들 수습이 그리 용이하지 않았사오나 불과 몇 시간 내에 다 완전히 정돈시켰습니다. 하루 더 싸울수록 병력이 소모되므로 신병 소집·편성·훈련이 시급하므로, 채 소장은 이미 대구-부산 간에 이의 계획대로 착수하여 실행하는 중이오며, 이응준 소장과 이형근 준장을 전남 광주로, 신태영 소장과 원용덕 준장을 전북 전주로 파송하여 신병훈련에 착수케 하였습니다.
 
  일선 정면의 국군 3개 사단을 1군단으로 편성하여 김홍일(金弘壹) 소장을 제1군단장으로, 유재흥(劉載興) 준장을 참모장으로 임명하여 3개 사단을 통수 지휘키로 하였사오며, 3개 사단 중 제1사단장에 백선엽 대령, 제2사단장에 이한림(李翰林) 대령, 수도사단장에 김석원(金錫源) 준장을 임명시켰사오니 재가하여주시기를 바라나이다.
 
  김석원 준장을 불러서 “과거는 다 청산하고 앞으로는 명령을 복종하겠다면은 중한 책임을 지우겠다”고 말씀하고, 첫째 일선의 사단장이 되어서 부대를 지휘하여 서울 수도에 수도사단이 먼저 입성할 기회가 있으니 그대의 충성과 지용을 대통령에게나 국민에게 바칠 때이며, 둘째로 신체가 약하고 마음에 주저가 있다면 후방에서(청주 같은 데서) 신병훈련을 맡아 할 일이 있다고 말하고, “가서 밤에 잘 생각해서 내일 다시 와서 보고하라”고 하였더니 오늘 오후에 와서 “절대 복종하겠다”고 맹서하고 “수도사단장의 책임을 맡겠다”고 함으로 입의 말로써 복종한다고 하지 말고 마음으로써 복종하겠느냐고 물으니 그리하겠습니다 라고 하여 수도사단장에 임명한 것입니다.
 
  다음은 국회의원들이 각각 나서서 민중에 호소하여 정부를 지지하고 공산당 투쟁에 적극 협력하도록 유세한다 하여, 한 의원에게 여비 3만원씩 우선 있어야 하겠다 하여 각의에 통과하여 쓰기로 하였사오며, 또 전국 애국단체 중심으로 구국총력연맹을 조직하고 회장에 조병옥(趙炳玉), 부회장에 배은희(裵恩希), 김도연(金度演) 3씨를 선택해서 전 국민에 호소하여 국민 총궐기를 부르짖고 힘과 마음을 합하여 공산당 투쟁에 정부를 옹호지지하자는 뜻으로 활약하려고 하는바, 소요 경비가 약 1000만원 계상되는데, 정부에서 우선 500만원만 보조하면 남은 것은 민간에 거금(醵金)하기로 하고, 즉시 실행하겠다고 하므로 이 역시 국무회의에 통과하여 실행하도록 하려 하오니 재가하여주시기를 바라옵나이다.
 
  이상 조치에 대하여 이곳의 내외 여론이 다들 찬동한다 합니다. 적은 일 같사옵지만 그동안 미군의 군수품 수송으로 인하여 사령부 간부 일동과 대사관 또 유엔 제위(諸位)들의 보급이 불충분하여 대단 곤란히 지냄을 보고, 제 독단으로 매일 계란 100개씩, 계(鷄) 5(尾)씩, 과일 약간과 담배를 제공해주오니 대단들 좋아합니다. 역시 재가해주실 줄 믿습니다. 특별히 무초씨와 사령관 딘 장군은 여러 날 잠을 자지 않고 우리를 돕겠다고 정성을 쓰는 것을 볼 때에 이상에 준 물자로서 그들의 공로를 갚는다 할 수 없는 생각이 가슴에 벅찹니다.
 
  중국 소(邵) 대사가 오늘 오후 5시에 찾아와서 장(蔣) 총통이 유엔과 맥아더 사령관의 허락을 맡아서 중국 군대 포병 약 2개 대대를 우리나라에 보내서 협조하여 전투하겠다고 하는 통고를 말씀하므로 고맙다고 인사한 뒤에 이 일은 우리 대통령께 보고 올릴 것이며 맥아더 장군이 전투지 사령관 딘 장군에게 명령하여 우리에게 통고할 것이라고 답하였사오니 이에 대한 조치를 하시(下示)하여주시기를 바라옵나이다. 대통령과 동부인의 건강을 비옵고 우선 이만 올리나이다. 단기 4283년 7월 6일 국방부 장관 신성모 배상.
 
 
  ⑦ 대구 行營 1차보고(1950년 7월 10일)
 
  그동안 뵈옵고 친히 보고드릴 기회가 있을까 하여 서면으로 올리지 아니하였습니다. 일선 전황에 어제 밤부터 아침까지 우리 국군 제1군단은 정면 진천, 음성, 장호원리 전면에서 격전 중이오며, 특히 미 공군의 맹렬한 사격과 폭격으로 적은 혼란 퇴각하는 중이니 이 정면에는 오는 밤 동안에 별 변동이 없으리라고 생각하오며 충주와 단양 방면에는 적의 주력이 집중되어 전진의 기세를 취하고 있다는데, 우리 국군은 측면 공세에 준비를 하고 있으며 공군은 협조가 절대 필요하므로 사령관에게 요청하여 시급 공습을 요구한바, 그대로 된다 하면은 우리 국군 정면에는 오늘 밤내에 별 변동이 없으리라고 믿습니다.
 
  외무부 장관에게 전화로 분부하신 데 의하여 교통·재무·국방은 이곳에 기타 장관은 명령한 곳으로 모이게 하였사오니 이때에는 각 장관이 대통령께 모여 보고 올렸을 줄 믿사옵나이다. 지금 듣자오니 외무부 장관과 공보처장이 이곳에 그냥 있다 하오니, 대통령의 분부 계시면 어느 곳으로든지 가도록 하겠나이다. 국회비상위원회가 이곳에서 매일 모여 일하고 있사오니 그들 거취에 대하여 지시하여주시옵기 바라나이다. 대통령 각하와 동부인 건강을 비옵고 아직 이만 올리나이다. 단기 4283년 7월 10일 국방부 장관 신성모 배상.
 
 
  ⑧ 대구 행영 2차보고(1950년 7월 11일)
 
1950년 7월 26일 맥아더 장군이 신성모 국방장관을 격려하고 있다.
  일선 전황은 밤새 특별한 대변동은 없사옵고 다만 소규모적 전진과 후퇴는 면할 수 없이 있었사오며, 이러한 변동은 앞으로도 있을 것 같사오며, 특별히 미군과 공동작전 하므로 진퇴는 그들과 같이 할 터이오니 후퇴가 있다 하오면 모두 다 계획대로 할 것입니다.
 
  후일에 유효한 전진을 하여 대공(大功)의 완수를 기약하므로 목하에 계획적 후퇴는 한다 하지만, 후퇴 후의 수습은 과연 어려운 일이오나 죽음을 맹서하고 악전고투하고 오는 우리의 국군이라, 지금까지는 부대의 형체를 이루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손실은 너무나 많아 통분한 바입니다. 오직 미군의 배치가 하루빨리 되어서 전진 전진으로 나아가기를 고대하고, 일선 장병에게 위안하며 지내는 바입니다.
 
  어제 밤 전화 분부를 받잡고 즉시 채병덕 소장에게 엄명하여 일본 99식이나 38식 소총 약 100정과 이에 소요되는 사병 약 100명을 가지고 대구시 보초에 당(當)케 하며, 채 소장은 막료 몇 명을 데리고 10명, 100명, 1000명의 청년방위대원을 죽창(竹槍)과 검봉(劒棒)으로 우선 초급훈련부터 시작하여 일선 장비의 여유가 있는 후에 후방 신편부대에도 무장시켜 전선에 보충을 하기로 하자는 본지(本旨)이니, 이대로 실행하고 기타 장병 일동은 누구를 막론하고 속히 총동원시켜 대구를 떠나 대전을 향하라고 엄명하였습니다.
 
  이것은 딘 장군과 회의한 결과에 대구, 광주, 전주 각처에 산재한 장병들을 최소 시간 내로 일선으로 진출시키게 된 것입니다. 또 딘 장군에게 대통령이 전화하신 뜻을 충분히 설명하였음으로 잘 요해(了解)가 되었사오니 아무 오해가 없을 것을 알아주시기를 바라나이다.
 
  지난 2일간 음식에 중독되어 몹시 앓느라고 직책에 한만(閑漫)하게 되어 감독을 충분히 못한 결과에 이상과 같은 말썽이 있게 된 것은 황송하고 죄송하옵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잘 단속하올 터이오니 안심하여주시옵기 바라나이다. 제 몸은 지금은 원려(遠慮)해주신 덕택으로 회복되었사오니 걱정 말아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대통령 각하와 동부인의 건강을 비옵고 우선 이만 올리나이다. 단기 4283년 7월 11일. 국방부 장관 신성모 배상.
 
 
  ⑨ 대구 행영 3차보고(1950년 7월 12일)
 
  일선의 전황은 밤새로 별로 큰 변동은 없었으나 우리 국군의 정찰기로 적을 수색하는 중이오며 단양과 충주 정면에는 집중한 적을 공군으로 폭격시키고 있습니다, 조치원, 천안 간 다수의 적이 산간에 숨어 대기 태세를 취하여 야간 행동을 취할 우려가 있으므로 이곳에서 경찰유격대를 조직하여 전방에 수색대를 출동시키려 하는 중입니다. 우려스러운 일은 대양주(오스트레일리아) 비행기가 수삼차(數三次) 수원, 청주, 음성지구의 아군을 습격하여 막대한 피해를 당한 것입니다.
 
  특히 어제 오후에 전북 이리를 폭격하여 많은 생명과 가옥을 희생케 된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이미 미군사령부를 거쳐서 유엔총사령관에게 대양주 비행사를 38 이북에 대해서만 폭격하라고 시키든지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공습의 사명을 주지 말고 지상임무를 맡기는 것이 옳겠다고 말씀하였사오니, 대통령께서도 이 점에 대하여 유엔군 최고책임자에게 말씀하시어 억울한 희생이 다시 나지 않도록 하여주시기 바라나이다.
 
  국무위원들은 대전, 대구 사이에 출입하시려면 그러는 것이 좋을 듯이 말씀하였습니다. 또 남아 있는 국회의원들도 다들 말씀해드렸습니다. 3~4일 동안에 기후만 좋으면, 우리의 주력의 준비도 충분히 될 터이오니 최대의 노력을 다하여 이 시기를 더 늦추지 말고 총공격을 시작하여 하루빨리 실지를 광복하고 전재(戰災)에 빠진 동포를 구출할 생각으로 일선 장병은 고무하고, 백 가지 천 가지의 부족과 어려운 것을 다 참고 견디며 시간시간을 지내가는 중이온데, 무장·비무장의 우리 국군은 충용하게도 진지를 지키며 잔인무도한 공산군과 결사분투하고 싸우니, 비록 수는 적고 무장은 넉넉지 못하더라도 이들을 믿을 수가 있사오니 과히 걱정 말아 주시기를 바라옵나이다.
 
  계엄령을 발표한 후, 경찰과 일반 민중의 자발적 협조는 과연 우리의 전도를 위하여 행복스러운 것이오니 감개무량할 뿐입니다. 특히 군 상하를 막론하고 폭언·폭행을 못하게 단속하고 지내오니 염려 말아 주기를 바라옵나이다. 지금 들려오는 정보에 조치원, 천안 정면에서 수다(數多)한 적이 미군 진전에 나타났음으로 격전 중에 있습니다.
 
  철도 운영에 지장이 없이 최대의 능률을 발휘케 하는 철도 당국자와 교통부 장관의 공이 막대하다고 생각합니다. 재무부 장관과 한국은행 총재의 유능한 조치에 아무 지장없이 군경관민이 활동하고 추진하므로 군사행동에 막대한 공을 이루어줍니다. 체신부 장관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전신, 전화에 전보다 실적을 내고 있사오나 널리 퍼진 전선(電線)에 빈번히 피해를 입으니 복구공작이 곤란하여 막대한 지장이 없지 않습니다.
 
  미군장병들과 무초 대사의 활동과 노력은 사람으로 보고 게을리할 수 없게 하오며, 그들의 감사한 공훈은 시간시간이 더 높아지오니 감격에 감격을 싸 모아 지금은 말로도 글로도 할 수가 없사오나, 뒷날에 이 거룩한 빚을 다 갚아줄 때가 있기를 하나님께 빌며 있는 바입니다. 우선 이만 보고드리옵고 대통령과 동부인의 건강을 비오며 이만 올리나이다. 단기 4283년 7월 12일. 국방부 장관 신성모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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