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陰地의 戰士들

엄상익 변호사가 경험한 정보기관 〈4〉 혹독한 안기부 入部 훈련

여성도 똑같이 받는 훈련 “김현희와 싸워도 이길 자신 있다”

글 :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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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력훈련은 물론 사제폭탄 만드는 교육도 받아
⊙ 규율 위반자들, 체벌 당하면서도 훈련 잔류 선택
⊙ 교육대장의 고백 “우리는 인권을 유린하는 기관원이 아니다”
⊙ 훈련 과정에서 들은 北派 부대의 적나라한 이야기

嚴相益
1954년생. 경기고, 고려대 법대 졸업 / 사법고시 24회, 사법연수원 15기 수료 / 국가안전기획부 정책연구관, 법무법인 ‘정현’ 변호사 역임. 現 엄상익법률사무소 변호사
공수훈련의 한 장면.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안기부 입부(入部)에 따른 훈련 과정에 들어갔을 때, 나는 마치 첩보소설 안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정보요원을 양성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그중 대(對)테러 교육시간에 교관이 이렇게 설명했다.
 
  “어느 날 서울 시민이 먹는 수원지(水源池)에 독극물 한 병이 떨어졌다고 생각해봅시다.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그게 언론에 나면 이 사회는 바로 아수라장이 될 겁니다. 앞으로 세균전도 예상이 됩니다. 연구소에서 변종(變種) 바이러스를 하나 만드는 건 경비가 별로 들지 않습니다. 학자 몇 명이 연구소에서 만들면 되니까요. 그 바이러스를 퍼뜨린다면 세계가 곧 마비될 겁니다.
 
  예전에 일본군 731부대는 페스트균(菌)을 만들어 도자기 폭탄에 넣은 후 중국의 한 지역에 뿌리는 실험을 했습니다. 이런 테러행위는 전쟁보다 더 무서운 겁니다. 세균전은 공격 시기가 불명이고 또 대량살상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회를 마비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테러 전술에서 많이 사용되는 것 중에 독가스나 독극물이 있습니다.”
 
  그는 생화학전에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 생화학전에 쓰이는 각종 화학약품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하기도 했다.
 
  “소련은 캄보디아, 라오스, 아프가니스탄에서 마이코톡신이라는 독소를 사용했어요. 곰팡이류(類)에서 채취한 건데 사람이나 동물에게 급성중독을 일으키죠. 그 종류에는 푸사리움이나 아플라톡신이라는 물질도 있어요. 북한 공작원이 가지고 와서 우리의 수원지에 던지려고 한 물질이죠.
 
  화학작용제 중에서 질식효과를 나타내는 건 포스겐입니다. 혈액에 작용하는 건 염화청산이고 신경에는 G작용제와 VX작용제가 있어요. 그 외 메스암페타민이나 BZ 대마초까지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LSD가 공작상 이용가치가 제일 많아요. 1931년 호프만이라는 사람이 보리깜부기에서 추출한 지혈제인데 0.25mg만 투입해도 환각효과가 납니다. 중추신경이 자극돼 여행을 하는 기분이고 환각이 일어나고 청각도 예민해집니다. 상대방과의 대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망각현상이 있어요. 의학적으로는 혈관 수축 현상이 일어나고 진통효과가 크죠. 북한은 앞으로 환각제들을 생산해서 우리 사회에 퍼뜨릴 걸로 예상합니다.”
 
 
  정보요원의 임무
 
  교관이 잠시 말을 끊었다가 계속했다.
 
  “정치적 암살이 전형적인 테러였죠. 북한의 사주를 받은 재일(在日)교포 문세광이라는 인물이 육영수 여사를 죽였습니다. 그때 국민들의 심리적 충격이 얼마나 컸습니까? 여의도의 63빌딩이 폭파되어 허무하게 무너져 내린다면 그 파급효과가 어떻겠습니까? 그런 게 테러입니다. 정치적 상징 효과가 크죠. 그런 테러는 우리 국민들을 위축시키고 방위력을 약화시킵니다. 테러로 인해 극도의 혼란이 일어났을 때 그 배경을 알아내 원인을 차단하고 사회를 지키는 게 우리 정보요원들의 임무입니다.”
 
  교관은 아웅산 폭탄 테러를 예로 들며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1983년 버마(미얀마)의 아웅산 묘소에서 대통령과 수행한 장관들에 대한 대형 테러 사건이 있었습니다. 여러 장관과 수행원이 현장에서 죽었습니다. 당시 국내 지휘부는 공황상태였습니다. 그때 우리 조직은 치밀하게 대응했습니다. 관계기관을 조정하는 사령탑으로 즉각 회의를 주재했습니다. 우리는 북한의 소행으로 추정했습니다. 그렇지만 테러가 일어난 장소는 버마였습니다. 우리가 어떤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고 버마 정부의 조치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럴 때 제일 첫 단계로 중요한 게 현지(現地) 사정을 잘 아는 정보요원의 의견이죠. 버마 주재(駐在) 정보요원은 버마는 오랫동안 영국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뭘 주장해도 증거나 확실한 근거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보관하고 있던 북한이 테러할 때 주로 사용하는 폭약이나 권총 자료들을 버마에 보냈어요. 현지에서 수집한 증거들과 비교해 북한 측 소행인 것을 알게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수사가 급속도로 진전됐습니다. 테러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까 사전에 조직적이고 치밀한 방안을 우리 조직이 계획하고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梨大 科 수석 한 재원도 똑같이 훈련 임해
 
2019년 8월 6일 부산 해운대구 동백섬 누리마루 APEC 하우스에서 열린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대비 對테러 합동훈련’ 모습. 이 훈련엔 국정원 요원 등 40여 명이 참여했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교육은 다양했다. 정예요원들은 사제폭탄을 만드는 교육도 받았다. 편지형 폭탄, 책자형 폭탄 등 다양한 종류가 있었다. 콤퍼지션 폭약은 냄새가 나기 때문에 개[犬]에게 발견되기 쉬운 단점이 있다며 사용하지 말라고 했다. 영화 속에서 폭탄을 장치한 차에 시동을 거는 순간 폭발해, 차가 공중으로 날아가고 화염이 치솟는 장면을 흔히 봤다. 교육은 그런 것들이 모두 현실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오후에는 체육관에서 고정적으로 합기도와 태권도 수련이 있었다. 합기도 사범은 대한민국에서 최고수(最高手)급이라고 했다. 훈련을 받는 정예요원들의 투지도 만만치 않은 것 같았다. 그중 성질이 비교적 괄괄한 요원 하나가 사범의 엎어치기에 넘어갔다. 그는 자존심이 상한 듯 사범을 향해 이런 말을 했다.
 
  “내가 기술이 아직 짧아서 눌리는데 얼마나 합기도를 잘하는지 우리 요원 둘이 먹고 한번 붙어봅시다.”
 
  대단한 결기였다. 사범이 요원 두 사람과 붙었다. 요원 중 한 명이 사범의 허리를 잡고 밀착했다. 다른 한 사람은 공격수였다. 덩치 크고 고수라는 사범이 단번에 제압됐다. 교육을 받는 요원들의 내면에 있는 결기가 보통이 아닌 것 같았다.
 
  여성 요원들도 합기도 수련을 똑같이 했다. 나는 쉬는 시간에 한 여성 요원에게 물었다.
 
  “북한의 여성 첩보원 김현희가 KAL 858기를 폭파하고 잡혔어요. 독극물이 든 앰풀을 입에 넣고 자살하려다가 체포되어 지금도 안전기획부에서 관리하고 있는데 어때요? 북한의 여성 첩보원들과 맞상대하면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이라도 북한 첩보원 김현희와 붙여주시면 저는 이길 자신이 있어요. 뭘 가지고 싸워도 말이죠.”
 
  여성 요원들도 투지와 집착이 대단한 것 같았다. 다른 여성 요원이 사격하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한 일이 있었다.
 
  그 여성 요원은 38구경 리볼버 권총을 손에 들고 표적을 노려본 채 한참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온정신을 집중시키는 것 같았다. 한 발 한 발 실탄이 표적의 중앙에 명중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과(科) 수석을 한 재원이었다. 요원들의 교육에 임하는 자세는 하나하나 적당히 넘어가지 않는 것 같았다.
 
  교육 중에는 댄스도 있었다. 춤 선생이 파트너 여성들을 버스에 태우고 와서 요원들에게 여러 종류의 춤을 가르쳤다. 카드를 배우기도 했다.
 
 
  “남산 지하실에 끌려온 사람들은 이렇게 50대씩 맞고 시작”
 
  교육 중에 작은 사건이 터졌다. 몇몇 요원이 일요일에 외출을 나갔다가 카페에서 불량배들과 시비가 붙은 것이다. 요원들은 한창 피가 끓는 젊은이들이었다. 기가 죽거나 지면 안 된다는 자존심이 강했다. 정보조직에서 요원들의 보호는 철저했다. 조직에서 그들을 바로 데려왔다. 대외적으로 뒤처리를 해주는 부서가 따로 있는 것 같았다. 외부적으로는 비록 잘못했다고 해도 조직원을 철저히 보호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달랐다. 그날 밤이었다. 교육대장이 전체 요원을 체육관에 집합시키고 말했다.
 
  “규율 위반자들 대열 앞에 나와서 서.”
 
  몇몇 요원이 앞으로 나가서 부동(不動)자세로 섰다. 카페에서 싸움한 사람들이었다. 장교 출신도 있었고, 결혼하고 가정을 가진 30대 초반의 요원도 있었다.
 
  “너희 짐 싸서 사회로 다시 나갈래? 아니면 지금 여기서 나한테 맞을래?”
 
  교육대장이 그들에게 선택권을 부여했다. 그렇게 탈락을 시키면서 맨 나중까지 견디고 남는 사람들이 정식 정보요원이 되는 것 같았다.
 
  “맞겠습니다.”
 
  규율 위반자들이 모두 그렇게 대답했다. 이상했다. 맞으면서까지 직장을 고집하는 시대적 분위기는 아니었다. 더구나 대위 출신들은 대부분 중대장이라는 지위를 마친 사람들이었다. 귀대(歸隊)하면 소령 진급을 하고 그 길로 갈 수도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다니던 직장이나 하던 사업이 있었다. 그들이 나가는 건 자유였다. 그런데도 스스로 폭력을 받아들이겠다는 것이었다.
 
  “위반자들 모두 엎드려뻗쳐.”
 
  교육대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규율 위반자들이 바닥에 엎드렸다. 교육대장은 그사이에 준비해놓은 묵직한 박달나무 몽둥이를 손에 들고 있었다. 교육대장은 맨 앞에 엎드려 있는 육군 대위의 둔부를 향해 온몸의 힘을 실어 박달나무 몽둥이를 날렸다. 몽둥이가 ‘휙’ 하고 공기를 날카롭게 가르며 엎드려 있던 대위의 허벅지에 떨어졌다. 순간 대위가 ‘헉’ 하고 숨이 막힌 듯 옆으로 나가 뒹굴었다. 교육대장이 요원 전체를 향해 말했다.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남산의 지하실에 끌려온 사람들은 이렇게 50대씩 맞고 시작한다. 남에게 고통을 가하는 사람은 먼저 이렇게 그 맛이 어떤 것인지 알아두어야 한다.”
 
  이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목검 세례(洗禮)가 퍼부어졌다. 허벅지 살이 터지고 피가 튀었다. 그들은 이를 악물고 참고 있었다. 비명을 지르는 사람이 없었다. 독한 인물들을 모아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맞은 사람들이 다시 대열 속에 들어가 섰다. 교육대장이 그다음 조치를 알렸다.
 
  “다음으로는 규율 위반에 대한 전체의 연대책임을 묻겠다. 진흙탕 물속에 들어가 자신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도록. 알겠나?”
 
  단체가 구보로 흙탕물로 이뤄진 작은 연못으로 갔다. 여성 요원도 예외 없이 흙탕물 속으로 들어갔다. 나도 맨 뒤쪽에서 그들과 함께 물속으로 들어갔다. 밤하늘의 별이 총총했다.
 
 
 
교육대장 “욕하고 싶으면 실컷 해라”

 
  요원들에게 왜 이렇게 혹독한 폭력을 행사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독일 나치의 친위대원들을 훈련시키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머리에 떠올랐다. 칼바람이 부는 얼어붙은 강가에 벌거벗은 채 친위대원들이 서 있었다. 교관이 두껍게 얼어붙은 강의 두 지점에 구멍을 냈다. 맨몸으로 한쪽 얼음구멍으로 들어가 물속에서 헤엄을 쳐서 다른 구멍을 찾아 나오는 훈련이었다. 출구를 찾지 못하면 익사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독한 고통을 받아야 독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정예요원들의 극기 훈련 속에도 그런 의미들이 배어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이 흙탕물 속에서 나와 다시 기숙사 앞 공터에 갔을 때였다. 교육대장이 그곳에 놓인 단 위에 올라 흙탕물투성이가 된 전체를 향해 말했다.
 
  “이걸로 오늘 밤의 징계와 훈련은 끝이다.”
 
  그가 손목시계를 보면서 덧붙였다.
 
  “지금부터 딱 1분 시간을 주겠다. 그사이에 나한테 욕을 하고 싶으면 공개적으로 실컷 해라. 그건 허용한다. 시작!”
 
  그가 말을 끝내자마자 요원들 속에서 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야, 이 ××놈아.”
 
  “으, 저 ×× 맞짱 뜨면 한 방에 뒈질 ××가….”
 
  “아, 억울해.”
 
  그들의 가슴속에 있던 응어리가 터져 나왔다. 싱긋이 웃으면서 묵묵히 듣고 있던 교육대장이 시계를 보다가 “자, 이제 나 욕하는 거 끝”이라고 말했다. 갑자기 주위가 조용해졌다. 교육대장이 전과는 다른 부드러운 표정이 되어 이런 말을 했다.
 
  “나 역시 대학을 졸업하고 너희처럼 정보부에 들어와 10여 년 전 이런 훈련을 받고 정보요원이 됐다. 난 직업으로서 이 생활에 긍지를 느낀다. 왜 그럴까? 적어도 이 조직의 신분증을 가지면 이 사회에서 나는 자유롭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나를 무시하고 깔아뭉개지 못하기 때문이다. 며칠 전 내가 겪은 걸 예로 들겠다.
 
  출근길에 내가 운전하는 코란도와 어떤 고관(高官)의 차가 광화문 거리에서 시비가 붙었다. 그런데 그 차에 타고 있던 사람이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면서 눈알을 부라리고 목소리를 높였다. 내가 시큰둥하니까 신분증까지 내게 보였다. 얼핏 보니까 꽤 높은 것 같았다. 내가 그 신분증을 뺏어 그놈이 보는 앞에서 꼬깃꼬깃 구겨서 바닥에 팽개쳐버렸다. 그러면서 안전기획부 요원이란 신분증을 잠깐 보여줬다. 갑자기 그놈의 얼굴이 허옇게 변하면서 당황하는 것 같았다. 우리의 신분증이라는 게 그런 힘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우리를 무서워하지 않는 기관이 없다. 이 신분증을 가지고 있으면 어디도 들어갈 수 있다. 누구한테도 꿀리고 살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그런 자존심과 자유를 위해 이 직업을 선택했다.”
 
  그가 잠시 침묵했다가 말을 계속했다.
 
  “모든 특권 뒤에는 그 대가(代價)로 치러야 할 의무가 있다. 여러분은 왜 이렇게 철저한 훈련을 받는지 아는가? 만약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는 제일 먼저 수송기를 타고 바로 평양 상공으로 가서 투하된다. 우리는 첩보 공작대로 적진(敵陣) 깊숙이 들어가 게릴라 활동을 해야 하는 거다. 나 역시 평양에 내 담당구역이 있다. 그런 운명을 알기 때문에 나는 아들도 하나밖에 낳지 않았다. 그리고 중산층 아파트에서 검소하게 살고 있다. 우리는 사회에서 오해하듯 특권을 누리고 인권을 유린하는 그런 기관원이 아니다. 목숨을 국가에 맡겨놓고 음지(陰地)에서 싸우는 마지막 전쟁의 전사들이라는 걸 인식하길 바란다.”
 
  그의 말이 설득력 있게 가슴속에 스며들었다.
 
 
  “구름 속에 나 혼자만 있는 게 무서웠어요”
 
  한밤중에 교육대장이 나를 조용히 자신의 방으로 불렀다. 그가 커피를 잔에 따라 내게 주면서 말했다.
 
  “저는 솔직히 변호사가 왜 이런 훈련 과정에 참여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살지 않아도 되는데 말이죠. 하여튼 훈련을 따라갈 수 있으면 참여해보고 무리라고 생각 들면 뒤에서 그냥 보기만 하세요.”
 
  파격적인 특혜였다. 그가 덧붙였다.
 
  “교육을 받는 요원들과 친하게 지내도록 하세요. 저 사람들의 애로사항이나 정신세계를 파악해서 형님같이 조언을 주시기도 하고요. 그리고 그 사항들을 더러 내게 알려주시면 저도 교육대장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엄 변호사를 부(副)교육대장쯤으로 생각하겠습니다.”
 
  의외로 그는 보통 인물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반듯한 인품을 가졌다. 마음을 열 줄도 알고 소박한 삶이 뭔지 아는 사람 같았다. 그래서 그들의 대장직을 맡았는지도 모른다. 훈련받는 요원들 중에는 나를 형같이 생각해주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었다. 한번은 친분을 쌓은 공군 대위에게 물었다.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빨간 마후라의 전투기 파일럿인데 왜 이런 훈련을 받아?”
 
  “형님이 몰라서 그런 소리를 하시는 것 같은데요. 저는 비행기 타는 게 죽는 것보다 싫었어요. 새까만 밤중에 전투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 혼자 있어 보세요. 혼자만 있다는 게 너무 무섭기도 하고 몇 바퀴를 회전하고 나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바다인지 땅인지 구별이 안 돼요. 그래서 사람 사는 세상에 있으려고 여기로 왔죠.”
 
  생텍쥐페리 소설을 보면 사막의 위에서 비행하는 고독을 묘사하기도 했다. 가정환경이 좋은 집 아들도 많았다. 그들 중에는 신사같이 행동하는 정보기관 간부에게 매력을 느끼고 아들이 정보요원이 되는 걸 허락한 경우도 있었다.
 
 
 
교육대장의 과거

 
  그다음 훈련은 공수(空輸)훈련이었다. 연병장에서 요원들은 무거운 헬멧에 낙하산 보따리를 등에 지고 “공수! 멸공! 공수! 멸공!” 하고 구호를 외치면서 뛰었다. 근처 사격장에서 ‘타! 타! 타!’ 하고 연발 사격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비가 와서 수송기가 뜨지 않는 날이면 요원들은 막사에서 시간을 보냈다. 포커나 고스톱을 하기도 하고 조용히 독서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도 그들과 함께 공수부대 내무반에서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 저녁 막사 안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근처의 벤치에 앉아 있을 때였다. 교육대장이 다가와 옆에 앉으면서 말했다.
 
  “나도 오랜만에 재미 삼아 낙하산을 탔는데 바람을 잘못 잡았는지 거꾸로 날아가더라고. 그러니까 뒤통수 방향으로 가는 거야. 앞을 보면서 가야 사뿐히 땅에 내리는데 뒤로 가니까 불안하더라고. 잘못하면 뒤통수를 바위에 처박고 다칠 수도 있잖아?”
 
  그는 내게 친구같이 살갑게 대해주었다. 훈련 과정마다 나한테 자세하게 설명하고 그 의미를 알려주었다. 그와 나는 이따금씩 훈련장을 나와 시내 호텔에 가서 식사하기도 하고 커피숍에 가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가 먼저 마음을 활짝 열고 내게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았다.
 
  “나는 시골에서 자랐고 대학도 일류를 나오지 못했어. 허름한 아파트에 마누라하고 아들 하나야. 안전기획부에서 받는 월급이 사회에서 취직한 친구들에 비하면 몇 배 많은 셈인데 이만하면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 여기 안전기획부 안에서도 분야에 따라 사람들의 삶이 달라. 국내 정보국의 정보관들은 기자처럼 출입처를 가지고 있지. 그 기관에서 대접받고 이권(利權)에도 관여하고 화려하지. 그렇지만 나는 그렇게 화려한 보직이 아니야. 그늘에서 남들이 하지 않는 이런 교육대장을 하지. 앞으로도 나는 인기 없는 대공(對共) 업무 쪽으로 갈 거야. 힘들고 빛이 나지 않아도 그게 좋다고 생각해.”
 
  그 조직 안에도 빛과 그림자가 있는 것 같았다.
 
  그다음 훈련은 담력을 키우는 과정이었다. 깊은 산속의 한 정보부대로 들어갔다. 그 부대에서는 먼저 괴기영화 장면들을 집중적으로 보여주었다. 공포심을 유발하는 것 같았다. 그 부대의 지하에는 깊은 암흑 동굴이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본능적인 감각으로만 움직이는 훈련이었다.
 
  나는 요원들을 따라 지하 동굴로 내려갔다. 눈을 감으나 뜨나 마찬가지인 농밀한 암흑이었다. 희미한 물소리가 들렸다. 여러 장애물이 설치되어 있었다. 물 위에 통나무가 떠 있었다. 그 통나무를 감지하고 타고 건너야 했다.
 
 
  北派 부대에 있었던 한 장교의 이야기
 
2008년 6월 6일 서울광장에서 북파 공작원 출신 단체 소속 회원들이 호국 영령에 대한 108배를 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전기가 흐르는 철조망이 가로지른 곳도 있었다. 철조망 중간쯤 한 사람이 간신히 통과할 수 있도록 조그만 구멍을 만들어놓았다. 그걸 손으로 더듬어 찾은 후 뚫고 나가야 했다. 어둠 저쪽 희미한 붉은 불빛이 보이는 곳도 있었다. 땅속의 작은 공간이었다. 바닥에 유리 어항이 있고 그 안에 몇 개의 하얀 바둑알이 있었다. 그 위에 뱀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바둑알을 하나씩 집어 가지고 가야 했다.
 
  또 다른 지하방이 있었다. 시신이 담긴 듯한 낡은 관이 놓여 있었고 오래된 뼈들이 흩어져 있었다. 무덤 속인 것 같았다. 그 사이를 통과해야 했다. 못이 박힌 각목과 나무 조각들이 산같이 쌓인 곳도 있었다. 감각만으로는 나갈 구멍을 찾기 어려운 곳이었다. 성급하게 몸을 움직였다가는 못에 긁혀 상처가 날 것 같았다. 그 동굴을 상처 없이 얼마나 빨리 빠져나오느냐에 따라 요원들의 점수가 매겨졌다.
 
  정보부대에서 오랜 세월을 지낸 한 고급 장교와 만났다. 그는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철책선을 넘어 북한을 여러 번 갔다 온 것 같았다. 평탄치 않은 과거가 엿보였다. 저녁 시간 그와 함께 부대 근처의 허름한 식당으로 갔다.
 
  벽에 붙인 메뉴에 수육이 들어 있었다.
 
  “수육을 드시렵니까?”
 
  내가 물었다.
 
  “아니 저는 설렁탕이면 됩니다.”
 
  “술은요?”
 
  “저는 술은 한 잔만 먹어도 빨개집니다.”
 
  겉으로 보기에 그는 사람 좋은 이웃 아저씨 같은 타입이었다.
 
  “정보부대에 얼마나 계셨습니까?”
 
  내가 물었다.
 
  “벌써 30년 가깝게 있는 것 같습니다.”
 
  “30년이나요?”
 
  “그것도 운명입니다. 제가 월남전에 참전해 귀국했을 때였어요. 명령서가 내려왔는데 특수부대로 가라는 내용이었죠. 그 부대를 찾아갔는데 한남동 근처에 있는 자그마한 개인 건물이더라고요. 입구에 검은 철모를 쓴 군인이 보초를 서고 있었죠.
 
  안으로 들어갔더니 전부 사복을 입은 채 근무하고 있었어요. 대통령 특명으로 만들어진 북파(北派) 공작부대라는 겁니다. 그곳의 대장이 나보고 서약서부터 쓰라고 했어요. 그 내용을 보니까 조국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라는 겁니다. 나는 속으로 이제 죽었구나 싶었어요. 그렇지만 그 시절은 그걸 거절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죠. 위에서 찍어서 내려왔는데 어떻게 그걸 거부합니까?
 
  그렇게 북파 부대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내가 하는 일은 북으로 가는 공작원을 철책선 넘어 북한 지역에 데리고 가고, 또 그곳까지 마중을 나가서 데리고 오는 일이었어요. 더러 남북 양쪽 초소에 발각되기도 했어요. 그럴 땐 양쪽에서 기관총을 쏘고 포를 쏴대죠. 총탄으로 화막(火幕)이 생기는데 그 사이를 뚫고 나오다가 여러 사람 다치기도 하고 죽기도 했죠. 저는 다행히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사형수·무기수 중 자원하는 이들로 만들어진 北派 부대
 
  “공작원들이 왜 북으로 간 겁니까?”
 
  “박정희 대통령은 미국에 의존하지 않고 광범위한 군사정보를 직접 구해오라고 하셨어요. 북한으로 가서 문서를 탈취해오기도 하고, 적을 잡아 오고 시설을 폭파하기도 했어요. 미국이 수백 개의 군사위성을 띄워도 영변 핵발전소의 설계도를 구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럴 때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사람이 가서 훔쳐 와야 하는 거 아닌가요? 또 대통령이 북한의 어떤 구체적인 사정들을 몰래 확인하려고 하시죠. 그럴 때 사람이 간 겁니다.”
 
  “어떤 사람들을 북파 부대원으로 차출했습니까?”
 
  “처음에는 사형수나 무기수 중에서 자원하는 사람들을 받았어요. 형(刑) 감면을 조건으로 한 거죠. 그들로 구성된 부대의 능력이 대단했어요. 대북(對北) 응징 조치는 물론이고 북한의 무장공비가 다대포 앞바다에 침투했을 때도 대단했죠. 당시 상부에서 공비들을 죽이지 말고 생포하라는 명령을 내렸어요. 교전(交戰)하면 공비들이 다 죽을 거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는 그 북파 부대원 몇 명을 다대포로 투입시켰죠. 무기를 주지 않고 공비를 때려잡으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그 북파 부대원들이 무장공비에게 접근해 기절시켜서 생포한 거예요.
 
  그걸 언론에 사실대로 보도할 수 있겠습니까? 그 부대의 존재 자체가 비밀인데요. 그래서 관할 부대에서 잡은 것으로 하고 모든 훈장이나 표창이 엉뚱한 데로 가버렸죠.”
 
 
  해상침투훈련
 
  다음 훈련 과정은 해상 침투훈련이었다. 요원들은 인천 앞바다의 한 섬에서 전투수영과 잠수훈련을 받았다. 전투수영이란 소리 내지 않고 바다나 강을 통해 적진으로 들어가는 훈련이었다. 소리 없이 유영(遊泳)하다가 그 자리에서 밥을 먹고 또 헤엄쳐 나가는 과정이었다.
 
  나는 그들 사이에 끼어 산소통을 지고 허리에는 납덩이를 단 잠수복을 입고 바닷속 14m 아래로 내려가봤다. 그곳은 초록의 또 다른 세상이었다. 바위구멍마다 물고기들이 머리를 내밀고 지나가는 나를 동그란 눈으로 신기한 듯 보고 있었다. 바닥에서 게들이 나를 발견하고 옆걸음으로 열심히 도망치기도 했다. 적막한 바닷속, 산소호흡기를 문 입에서 물방울이 부글부글 소리를 내며 올라가고 있었다.
 
  기본훈련이 끝나고 요원들은 해군함정을 타고 서쪽으로 향했다. 실미도를 지나고 용유도를 빠져나가 배는 북서쪽으로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달렸다. 바다 위에 있는 무인도가 또 다른 훈련장이었다. 그곳에서 고무보트를 팀별로 머리에 이고 달리고 포복하고 구르고 달리고 했다.
 
  어느 날 해군 정보부대장이 나타났다. 그가 요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해군 정보부대는 유사시 여러분을 공작지점에 무사히 안착시키는 임무를 맡고 있습니다. 열심히 훈련하셔서 앞으로 우리와 서로 호흡을 맞출 수 있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북에서의 현지 공작을, 우리 해군은 여러분의 생명을 구해오는 임무입니다.”
 
  그가 잠시 말을 끊었다가 계속했다.
 
  “국가안전기획부는 우리 정보부대에 예산을 줍니다. 현재 여러 장비가 노후했습니다. 또 바닷가 공장지대나 산업시설 사이에 위장(僞裝)해 있는 우리 정보부대가 노출되기 쉬운 위험에 있습니다. 앞으로 여러분께서 예산을 충분히 지원해주셨으면 하는 게 부대장으로서의 희망입니다.”
 
  안전기획부와 군 정보부대와의 관계가 짐작되었다. 훈련 뒤에는 고기와 과일이 나오고 충분한 휴식이 주어졌다. 그 기간에도 사회 어느 직장보다 높은 급료와 수당이 지급되고 있었다. 정보기관 정예요원들의 고된 훈련들이 끝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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