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KOREAN CRISIS

박정희라면 북핵(北核)위기에 어떻게 대응할까

미국·일본과 군사동맹 강화하면서 핵무기 개발 강행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ironheel@chosun.com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① 서울 사수 의지 피력, 총력안보태세 강화
② 지하대피호 정비, 생존배낭 지급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③ IS 토벌 작전에 공군 1개 편대 파병, 드론작전 공동참여 등 한미동맹 강화
④ 군사정보협력협정 체결 등 일본과 군사동맹 맺어
⑤ 대북 공격부대인 전략타격군 신설, 매파 군인을 사령관으로 임명
⑥ 평화협정 체결 주장 등 대북 유화책 일축
⑦ 비밀리에 장거리 미사일, SLBM, 핵무기 개발 성공
1978년 9월 26일 충남 안흥 시험장에서 백곰미사일 발사에 성공하면서 한국은 세계 7번째의 유도탄개발국이 됐다. 사진은 발사 장면을 지켜보는 박정희 대통령.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만일 지금 박정희 대통령이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면, 북핵 문제에 어떻게 대응했을까?
 
  박정희 대통령은 6・25 발발 직전에 육군본부 정보국에 근무하면서 북한군의 남침 징후를 읽어내고 보고서를 올렸었다. 군의 작전과 무기체계에도 밝았다.
 
  생래적 민족주의자였던 그는 미국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었지만, 미국이 대한민국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잘 알았다. 여기에는 포트 실의 미 육군포병학교에서 공부했던 경험도 작용했다. 1961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시절 방미(訪美)했을 때에는 한국군 월남파병을 먼저 제안해 미국 측을 기쁘게 했다. 존슨 대통령 시절에는 실제로 국군 전투부대를 월남에 파병했다. 덕분에 미국은 주한미군을 월남전에 투입하려던 생각을 접었고, 한미관계는 밀월관계를 유지했다. 일본과도 구원을 덮어두고 국교를 정상화했다.
 
  닉슨 대통령이 ‘닉슨독트린’을 발표하고, 주한 미7사단을 철수시키자 박 대통령은 자주국방을 선언하고 방위산업 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미국이 1973년 파리평화협정을 맺고 월남전에서 발을 빼려 하자, 박 대통령은 “이대로 가면 월남은 2년 내에 적화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을 북한에 보내 7・4남북공동성명을 이끌어 냈지만, 이 부장이 합의한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이라는 성명 내용에 대해서는 냉담했다. 오히려 “북한 위정자들이 우리와 핏줄이 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통일을 안 했으면 안 했지, 우리는 공산식으로 통일은 못 하겠다”고 공언했다.
 
  1976년 8・18 도끼만행 사건 때에는 미군과 협조해 공수특전여단을 판문점에 투입해 사건의 발단이 된 미루나무를 잘라버리고, 연백평야까지 북진하려 했다.
 
  1970년대 중반 월남이 공산화되고, 카터 미국 대통령은 주한미군을 철수시키려 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시도했다. 미국의 압력으로 핵개발은 중도에 접었지만, 한국은 세계 7번째로 유도탄을 개발, 생산하는 나라가 됐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0년대 초에는 비대해진 군 조직을 축소하고 지휘계통을 단순화하는 군 구조 개혁을 추진하기도 했다.
 
  이 글은 이런 점들을 감안해 박정희 대통령이 지금 대통령이라면 어떻게 했을지를 가상해 본 것이다. 이 글에 나오는 박정희 대통령의 연설들은 실제 있었던 것들을 지금의 상황에 맞게 조금 손본 것이다.
 
 
  “미국 도움 기대 마라”
 
박정희 대통령은 월남파병을 통해 군사적·경제적 실리를 얻어내고, 한미동맹을 강화했다.
  북한이 핵실험 성공 발표를 하자마자 박정희 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소집했다. 대통령은 먼저 국가정보원장으로부터 북핵실험에 대해 보고를 들었다. 이어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국군의 경계태세에 대한 보고도 들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말했다.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다음 네 가지입니다.
 
  첫째, 북한이 핵무기를 갖게 된 이상 우리의 국방정책은 근본적으로 수정해야 합니다. 핵무기는 다른 재래식 무기들과는 전혀 다른 ‘절대무기’입니다. 핵무기에 맞설 수 있는 것은 오직 핵무기뿐입니다.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지금까지 유사시 미국이 우리를 도와주러 올 것이라는 것을 전제로 군사전략을 짜 왔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핵미사일이 LA를 타격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미국이 우리를 도와주러 올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자주국방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합니다.
 
  셋째, 북한이 핵무장을 하는 이유 중 하나는 미국과의 협상을 위해서입니다. 북한은 핵무기를 갖게 된 것을 기화로 ‘핵보유국’ 지위를 요구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미국과 협상하려 들 것입니다. 북한은 우리를 배제하고 미국과 협상해 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시키고, 미국과 국교를 수립하려 들 것입니다. 평화체제가 수립되면 주한미군이 주둔해야 할 이유가 사라집니다. 북한이 노리는 것은 바로 이 점입니다.
 
  국방에 있어 우리의 목표는 북한과 전쟁을 해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억제하는 것입니다. 우리 국군이 아무리 막강하다고 해도, 북한은 국군만을 상대로 한다면 자기들이 이길 수 있다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군이 한반도에 있으면 북한은 섣불리 전쟁을 도발하지 못합니다. 미군이 나가지 않도록 모든 방안을 강구해야 합니다.
 
  넷째, 이럴 때일수록 국민들은 국론통일과 내부단결이 중요합니다. 종북세력은 북한의 핵실험을 옹호하고, 우리의 대응조치와 북한에 대한 제재를 막으려 준동할 것입니다. 이를 막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할 것입니다.
 
  다섯째, 국민들을 안심시켜야 합니다. 북한은 핵무기를 믿고 더 공세적인 도발을 해올 수 있습니다. 만일 북한이 도발해 온다면, 우리는 그 이상의 강력한 타격을 가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럴 수 있다는 의지를 분명히 보여줘야 합니다. 아울러 북한의 미사일이나 방사포의 위험에도 철저히 대비해야 합니다.”
 
 
  총력안보태세 강화
 
월남파병으로 박정희 대통령과 존슨 정부는 밀월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1965년 5월 18일 한미정상회담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KIST 설립 지원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이날 박정희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어제 북한공산집단은 국제사회의 우려와 경고를 무시하고 핵실험을 자행했습니다.
 
  지금 우리 국군과 주한미군은 이런 사태에 대비해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고, 엄중한 경계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하한 적의 공격도 능히 이를 저지하고 격멸할 수 있는 충분한 힘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국민 여러분은 믿어주시기 바랍니다.
 
  다만 내가 이 자리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만약에 이런 사태가 일어났을 때 여기에 대처할 수 있는 굳건한 결의와 각오와 반드시 이겨야 되고 또 이길 수 있다는 필승의 신념이 우리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슴 속에 확실히 서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국민 여러분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오늘날의 전쟁은 군이 혼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부와 군과 또 국민이 혼연일체가 되어서 힘을 한데 뭉쳐 총력으로 대결해야만 전쟁에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말하는 총력전이요 총력안보 체제입니다. 따라서 군인뿐만 아니라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전부 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싸우는 전사라는 각오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서 한데 뭉쳐 싸운다면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는 굳은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국민 중 어느 한 사람도 이 대열에서 이탈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미친개는 몽둥이로!”
 
  그러면서 박정희 대통령은 이렇게 당부했다.
 
  “1. 정부의 시책은 국가 안보를 최우선으로 하고, 조속히 만전의 안보 태세를 확립한다.
 
  2. 안보상 취약점이 될 일체의 사회 불안을 용납하지 않으며, 또 불안 요소를 배제한다.
 
  3. 언론은 무책임한 안보 논의를 삼가야 한다.
 
  4. 모든 국민은 안보상 책무 수행에 자진 성실하여야 한다.
 
  5. 모든 국민은 안보 위주의 새 가치관을 확립하여야 한다.
 
  6. 최악의 경우, 우리가 향유하고 있는 자유의 일부도 유보할 결의를 가져야 한다.”
 
  이 담화 말미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정부는 곧 임시국회 소집을 요청, 전국의 지하대피호를 점검, 보수하고, 전 국민에게 생존배낭을 지급하기 위한 추가경정예산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야당인 민주평화당은 “정부가 불필요하게 국민들을 불안하게 한다”면서 추가경정예산안에 반대했다. 국민들은 “국민은 앉아서 죽으라는 거냐?”면서 야당을 비난했다. 야당 지지도가 폭락했다.
 
  대부분의 국민은 평소대로 차분하게 일상생활을 영위했다. 긴급하게 원대복귀한 국군 장병들은 경계태세를 강화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그날 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말했다.
 
  “미친개에게는 몽둥이가 약입니다. 나는 대한민국을 방위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말했다.
 
  “미친개에게는 몽둥이라? 정말 멋진 말씀입니다. 미국은 커다란 몽둥이들을 아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필요하시다면 얼마든지 빌려드리겠습니다.”
 
  박정희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태평양함대의 이지스함을 동해상에 배치하고, 수도권과 평택미군기지를 방어하기 위해 사드 3개 포대를 즉각 추가 도입해 평택 이남에 배치하기로 합의했다. 이와 함께 양국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을 조속히 개최한다는 데도 합의했다. 양국 정부는 이 사실을 다음날 즉각 발표했다.
 
 
 
‘번개사업’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후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 제2수석 비서관을 불렀다.
 
  “임자,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우리도 핵무기를 만들어야겠어. 그거 말고는 답이 없어.”
 
  “맞습니다. 각하!”
 
  “이 일을 맡길 만한 사람이 있을까?”
 
  “있습니다. 서균렬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교수입니다. 그는 전부터 6개월이면 우리도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다음날 서균렬 교수가 청와대로 들어왔다. 박 대통령이 물었다. “서 교수, 정말 6개월 내에 핵무기를 만들 수 있소?”
 
  “미국은 70년 전에 만들었습니다. 북한도 만들었습니다. 세계 3대 원자력 강국이자 5대 공업국인 우리가 왜 못 만듭니까?
 
  국내 원자력 발전소 여기저기에 널려 있는 게 플루토늄입니다. 핵무기 5000개를 만들 수 있는 분량입니다. 플루토늄을 재처리하는 데 시간은 좀 걸리지만, 길게 잡아도 6개월이면 우리도 핵무장을 할 수 있습니다. 굳이 핵실험 안 해도 됩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만으로도 핵실험을 할 수 있습니다.”
 
  서 교수는 박정희 대통령의 눈을 응시하면서 덧붙였다.
 
  “각하, 핵개발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정치적 결단’입니다.”
 
  “알겠소.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6개월은 참아내겠소.”
 
  박정희 대통령은 대통령 과학기술수석비서관 자리를 신설, 서균렬 교수를 그 자리에 앉혔다. 이렇게 해서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 ‘번개사업’이 시작됐다.
 
 
  IS토벌작전에 공군 파병 제안
 
  북한이 핵실험을 한 지 2주 후, 일본 사세보항에 정박 중인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에서 한미정상회담이 열렸다. 두 사람은 사드 추가 배치에 대한 중국의 반발에 대한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중국이 자국 내 한국 기업과 상품에 대한 제재를 가하고 한한령(限韓令)을 내린 데 대해 WTO(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말했다.
 
  “주한미군과 동맹국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사드를 배치했다는 이유로 중국이 그런 짓을 하는 것은 미국에 대한 공격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경제적으로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입니다.”
 
  이와 함께 트럼프 대통령은 박 대통령에게 “북핵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일본과의 협력이 중요하다”면서 “한국은 일본과 불쾌한 과거가 있지만, 거기에 얽매이지 말고 일본과 잘 지내주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박 대통령도 기꺼이 동의했다.
 
  이때는 IS가 시리아・이라크에서 급속히 세력을 확대하기 시작할 때였다. 박정희 대통령이 말했다.
 
  “IS(이슬람국가) 문제 때문에 고민이 많으시죠?”
 
  “그렇습니다. 동맹국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말씀인데, 우리도 공군 F-15 전폭기 2개 편대를 파병하고 싶습니다. 각하의 뜻은 어떠십니까?”
 
  “너무나 감사한 말씀입니다. 하지만 그러면 한국의 영공 방위에 공백이 생기진 않을까요?”
 
  “그 공백은 주일 미공군이나 동해상에 배치된 미 항공모함들이 충분히 메워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몇 대의 한국 공군기가 기지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한국군과 미군이 그 어떤 적에 대해서도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우는 혈맹이라는 것을 국제사회에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군의 드론작전에 한국군 참여키로

 
한미연합사령부 창설로 한미동맹은 더욱 굳건해졌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8년 11월 7일 한미연합사령부 창설식에서 베시 장군에게 부대기를 수여했다.
  “현명하신 각하의 말씀에 감명받았습니다.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도 나오듯이 동맹은 ‘같은 적을 가지는 것’입니다. 각하의 뜻을 고맙게 받아들이겠습니다. IS와의 작전에 나서는 한국 공군기에 합동직격탄(JDAM)을 아낌없이 제공하겠습니다. 아마 이 소식을 들으면, ‘로켓맨’은 밤잠을 좀 설치게 될 것입니다. 하하하.”
 
  트럼프 대통령이 말을 이었다.
 
  “각하와 얘기를 나누다 보니 좋은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습니다. 우리가 운용하는 드론작전에 한국군도 함께 참여하면 어떻겠습니까? 한국군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입니다. ‘로켓맨’에게는 둘도 없는 경고가 될 것이고요.”
 
  이날 한미 양국 정상은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 및 탄두 중량 제한을 철폐하고, 원자력 연구에서 한국의 자율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한미원자력협정을 개정하기로 합의했다. 이와 함께 한미연합사령부 내에 드론특수임무대를 만들어 한미 양국 군이 함께 운영하기로 했다.
 
  한미 양국 군이 드론특수임무대를 만든다는 발표에 북한은 즉각 “최고 존엄에 대한 모독”이라며 반발했다. 하지만 이후 김정은의 현지 지도는 눈에 띄게 감소했다.
 
  한국 공군을 IS와의 전쟁에 파견하기로 하자 좌익 세력들은 일제히 들고일어났다. 이들은 “왜 남의 전쟁에 우리 군대를 보내느냐? 그러다가 한국인들도 이슬람 테러의 대상이 되면 누가 책임질 거냐?”고 주장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파병부대 환송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물론 지금과 같이 국내외로 당면한 여러 문제가 매우 어렵고 중대한 시기에 있어서 우리의 가장 귀중한 한국의 아들들을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게 될 중동전선에 파견하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우리에게 있어서는 물심양면으로 크나큰 걱정과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늘날 자유세계의 일원으로서는 응당히 지녀야 할 도의적인 책임이요, 또한 의무라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일본과 군사협력 강화
 
  얼마 후 박정희 대통령은 필리핀을 방문,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한국은 필리핀에 퇴역을 앞둔 참수리 고속정 10척과 209급 잠수함 1척을 무상으로 제공하기로 했다. 필리핀은 한국으로부터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서 생산한 FA-50 경공격기 10대를 구입하기로 했다. 한국은 이를 위한 차관을 필리핀에 제공하기로 했다. 한국은 또 육군특수전사령부 정예요원들로 구성된 군사고문단을 필리핀에 파견해, 이슬람 반군 토벌 작전을 벌이는 필리핀 특수부대를 교육해 주기로 했다.
 
  이에 대해 중국은 자기들과 해양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필리핀을 지원하는 데 대해 불쾌감을 표시했다. 한국 외교부는 “중국도 찬성하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을 지원하는 것일 뿐이며, 한국이 지원한 퇴역 함정들은 중국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하여튼 국제사회는 이를 중국이 북한 핵문제 해결에 성의를 보이지 않고 있는 데 대한 한미 양국의 경고로 해석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귀국길에 일본에 들러 아베 신타로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양국은 ‘군사정보협력협정’과 ‘해난구조협력협정’을 체결했다. 전자는 북한의 핵개발 및 미사일 발사와 관련되는 정보의 공유를, 후자는 북한 선박의 검색 및 북한 해안봉쇄 등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북핵실험 이후 숨을 죽이고 있던 좌파단체들이 일제히 “원수 일본과 손잡고 동족을 적대시하는 친일정권 타도하자”며 들고일어섰다.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은 대국민 성명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우리가 대치하고 있는 적은 북한 공산주의 세력입니다. 우리는 이 나라를 어느 누구에게도 다시 빼앗겨서는 안 되지만, 더욱이 공산주의와 싸워 이기기 위하여서는 우리와 손잡을 수 있고 벗이 될 수 있다면 누구하고라도 손을 잡아야 합니다. 우리의 자유와 독립을 수호하고 내일의 조국을 위해서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라면,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과거의 감정을 참고 씻어버리는 것이 진실로 조국을 사랑하는 길이 아니겠습니까?”
 
 
  전략타격군 신설
 
1972년 12월 1일 서울에 온 박성철 북한 부수상을 접견한 박정희 대통령. 박 대통령은 남북대화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박정희 대통령은 오래전부터 생각해 오던 군(軍) 구조 개혁도 단행했다. 합참의장 직속으로 전략타격군을 신설한 것이다. 여기에는 육군 소속이던 특수전사령부와 유도탄사령부, 해군 산하이던 해병대사령부가 배속됐다. 이 부대는 방어용 부대가 아니라 유사시 북한군 후방을 공격하기 위한 부대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박정인 육군 제3사단장을 대장으로 두 계급 특진시켜 전략타격군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박 장군은 그로부터 열흘 전, 북한군이 기관총 사격을 가해 우리 장병 3명이 부상당하자 사단이 보유하고 있는 K-9 자주포와 155mm 포를 동원해 북한군 진지를 포격한 인물이었다. 국방부 장관이 “성격이 다른 부대들을 모아 신설하는 부대이니만큼, 조절 능력이 뛰어난 고참 중장급 장성 중에서 사령관을 임명하면 좋겠다”고 건의했지만, 박 대통령은 이렇게 일축했다.
 
  “지금 필요한 사람은 ‘싸움꾼’이지 ‘정치꾼’이 아니오.”
 
  영국 국방부가 200억 파운드(약 30조6184억원)의 부족한 재정을 충당하기 위해, 군용기와 장갑차량, 헬리콥터 이착륙함 등을 헐값에 ‘대방출’하려 한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박정희 대통령은 국방부 장관에게 이들 무기 중 필요한 것을 검토해 구입하라고 지시했다. 결국 워터크 수송용 장갑차량 85대, 헬리콥터 이착륙함 ‘오션’, C-130 수송기 등을 들여오게 됐다. 모두 전략타격군의 공세적 작전에 도움이 되는 장비들이었다. 이와 함께 한국은 프랑스에서 4000t급 중고 원자력 추진 잠수함 두 척도 도입했다.
 
 
  평화협정 체결 주장 일축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자, 미국 일각에서는 대북 유화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도 이에 동조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야당인 민주평화당 대표는 《뉴욕타임스》와의 기자회견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한반도에서 전쟁이 다시 일어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면서 북한과 평화협정을 맺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박정희 대통령은 국가전략군 사령부 창설식 유시(諭示)에서 이렇게 말했다.
 
  “공산주의자들과 맺은 평화협정이다, 조약이다, 또는 긴장 완화다, 화해다 운운하는 것은 그들과 우리와의 힘의 균형이 이루어지고 있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만약에 힘의 균형이 일단 깨지고, 우리에게 어떤 약점이 생기거나 또는 우리가 약하다고 그들이 보았을 때에는 지금까지 체결한 협정이니 하는 것은 하루아침에 휴지처럼 내동댕이치고 당장 무력이나 폭력을 가지고 덤벼드는 것이 바로 공산주의자들입니다. 이는 공산주의자들의 기본 전술입니다.
 
  공산주의자들과 휴전을 한다, 협정을 맺는다, 또는 대화를 한다고 할 때에는 우리는 각별히 조심해야 합니다. 그들이 이런 데 응해 올 때에는, 그들이 힘으로서는 이쪽을 넘어뜨릴 수 없으니까 어떤 새로운 음모를 꾸며서 이를 추진하기 위한 준비의 시간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파리평화협정 체결 후 공산주의자들의 배신과 남침으로 2년 만에 패망한 월남의 경우를 우리는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트럼프, 한국의 핵개발 묵인
 
1976년 8·18 도끼만행 사건 후 박정희 대통령은 공수부대를 공동경비구역에 투입해 사건의 발단이 된 미루나무를 잘라버림으로써 대북응징 의지를 표명했다.
  이러는 사이에 한국의 핵무기 개발은 착착 진행됐다. 북한이 핵실험을 한 지 6개월 후, 미국 《허핑턴포스트》는 “한국이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에 착수, 현재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렀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6개월 만에 핵무기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미 남조선은 오래전부터 핵무기를 개발해 온 것이 분명하며, 이로써 공화국의 핵무기 개발은 정당한 것이었음이 입증됐다”고 주장했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박정희 대통령의 핵무기 개발은 한미동맹을 훼손하는 어리석은 일”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국무부는 “한국의 핵무기 개발은 핵비확산과 북핵 저지를 위한 국제적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한국이 (핵무기를) 갖는 것은 그렇게 나쁜 일이 아니다. 만약 한국이 그런 핵 위협을 확보한다면, 그게 우리에게 왜 나쁜 일인지 모르겠다. 한국은 지금도 중동에서 우리와 함께 IS의 미친놈들과 싸우고 있는 진정한 우리의 친구 아닌가?”
 
  중국과 러시아는 IAEA(국제원자력기구)가 즉각 한국을 핵사찰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 한국에 대한 제재안을 상정했다.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미국대사는 거부권을 행사했다.
 
 
  필리핀 해저에서의 핵실험
 
  《허핑턴포스트》의 보도가 있은 지 한 달 후, 한국은 사정거리 1500km의 지대지 유도탄 발사에 성공했다. 일주일 후에는 프랑스에서 도입한 원자력 추진 잠수함 ‘손원일함’에서 사정거리 500km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3발을 연속발사했다. 이는 한국이 이미 충분한 수량의 SLBM을 확보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로써 한국은 북한은 물론 중국 동부해안 도시들까지 사정권에 둘 수 있게 됐다.
 
  다음날 필리핀 남부 바다 해저에서 진도 6.7의 지진이 발생했다. 필리핀 정부는 자연지진이라고 발표했지만, 외국의 지진관측 기구들은 수소폭탄급 핵실험으로 인한 인공지진이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어느 나라가 핵실험을 했느냐 하는 것이었다. 중국의 《환구시보》는 “한국이 필리핀에 군사원조를 해준 대가로, 필리핀 해저에서 핵실험을 실시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국 정부는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

Lo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