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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공산주의자들과 협상할 때 명심해야 할 10가지

글 : 박희석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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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11월 30일 판문점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유엔군 측 휴전회담 대표단의 모습. 왼쪽부터 하워드 터너 미 공군 소장, 한국 육군 이형근 소장, 회담 수석대표인 터너 조이 미 해군 제독(중장), 알 리비 미 해군 제독(소장), 헨리 호데스 미 육군 소장, 알레이 버크 미 해군 제독(소장).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월 6일 독일 베를린에서 “한반도 평화와 남북협력을 위해 남북 간 대화가 필요하다”며 “여건이 갖춰지고 한반도의 긴장과 대치국면을 전환할 계기가 된다면 언제 어디서든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과 만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아마 북한의 ICBM 발사 등으로 조성된 긴장국면만 해소되면 문재인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남북대화에 나설 것이다. 남북대화에 나서는 이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 하나 있다. C. 터너 조이 제독이 쓴 《공산주의자는 어떻게 협상하는가?》라는 책이다. 조이 제독은 휴전협상이 시작된 1952년 7월부터 10개월 동안 유엔군측 수석대표로 일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공산주의자들의 농간 때문에 온갖 쓴맛을 다 보았다.
 
  조이 제독은 회담 첫날부터 공산주의자들의 장난 때문에 골탕을 먹었다. 1951년 7월 10일, 개성 봉래장에서 정전(停戰)회담 첫 회의가 열렸을 때였다. 양측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첫 대면을 했을 때, 유엔군측 수석대표 C. 터너 조이 제독은 폭삭 주저앉은 듯한 모습이었다. 후일 그는 이때 자신의 모습을 ‘어뢰를 맞고 침몰하고 있는 모습의 해군제독’이라고 표현했다. 반면에 공산측 대표단장인 남일(당시 북한군 총참모장, 후일 외무상 역임)은 조이 제독보다 1피트는 솟아 있었다. 공산측이 조이 제독에게는 보통 의자보다 낮은 의자를, 남일에게는 보통 의자보다 4인치 정도 높은 의자를 내주었기 때문이다. 조이 제독은 재빨리 옆의 의자로 바꾸어 앉았지만, 공산측 사진사들의 사진촬영이 이미 끝난 다음이었다.
 
 
  “똑같은 양보를 요구하라”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조이 제독은 이후 10개월 12일 동안 공산주의자들의 억지와 정치선전, 지연전술과 씨름해야 했다. 조이 제독은 휴전협상 과정에서 얻은 교훈을 이렇게 정리했다.
 
  ① 적이 정전(停戰)을 청할 때 압력을 낮추지 마라. 압력을 증가시켜라. 공산측이 진실로 알아듣는 논리는 오직 힘뿐이다.
 
  ② 회담을 열자는 공산측 제의에 서둘러 반응하지 마라.
 
  ③ 공산측이 일방적으로 회담장소를 선정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
 
  ④ 공산측과 협상할 팀은 최고의 자질을 갖춘 사람들이어야 한다. 계급·명성·직위는 두 번째 고려 사항이다. 차선의 팀으로는 절대 안 된다.
 
  ⑤ 단순히 회담을 진척시키기 위하여 공산측으로부터 아무 것도 받지 않고 양보만 해서는 결코 안 된다. 크건 작건 간에 모든 문제에서 공산측에게 똑같은 양보를 요구하라.
 
  ⑥ 서두르는 태도를 피하라. 언제든지 협상을 종결하거나 연기할 의사가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어라. 합리적인 기간이 지나도 진전된 것이 없다고 생각되면 협상을 종결시켜라.
 
  ⑦ 공산측과의 회담의제는 주의 깊게 검토해야 한다.
 
  ⑧ 당신의 입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장광설식으로 반복적인 발언을 하지 마라. 당신이 말을 많이 할수록 더 많은 표적들을 교활한 공산주의 선전용으로 제공하게 된다. 공산측 협상자들은 반응이 별로 없는 상대를 당혹해하고 두려워한다.
 
  ⑨ 회담에 들어가기 전에 정치적 목적을 구체적으로 설정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는 일을 추진할 사람들에게 이를 알려주어야 한다. 국가이익에 치명적인 경우에만 그것을 변경시켜야 한다.
 
  ⑩ 오직 협상이 자유를 위해 공헌할 수 있을 때에만 공산주의와 협상에 들어가야 한다. 적이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협상해서는 안 된다.
 
 
  오늘날에도 유효한 조이 제독의 충고
 
  지난 20여 년간 진행된 남북대화, 혹은 미국·북한 회담을 돌아보면, 조이 제독의 지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조이 제독은 공산측 대표단의 구성과 능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공산주의자들은 협상팀을 대단히 주의 깊게 선발한다. 대표단 요원 선정시 지적 능력이 첫 번째 고려 요소이며, 평판·계급 및 직책은 두 번째 고려 요소이다. 지구력 그리고 논리성에 대항하는 냉철한 처신이 정전회담 대표단의 가장 중요한 특성처럼 보였다.”
 
  오늘날에도 북한의 ‘대남일꾼’들은 최고의 엘리트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네바 핵합의 등 북한과의 회담에 나섰던 미국측 대표들은 북한 외교관들의 능력과 끈기, 집요함에 혀를 내둘렀다.
 
  조이 제독은 ‘공산측이 일방적으로 회담장소를 선정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하지만 제1·2차 남북 정상회담은 모두 평양에서 열렸다. 장소 선정에서부터 북한에 지고 들어간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정일을 서울로 초청했지만, 김정일은 오지 않았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햇볕정책은 끊임없이 논란이 됐다. 그 이유 가운데 상당 부분은 ‘단순히 회담을 진척시키기 위하여 공산측으로부터 아무 것도 받지 않고 양보’만 하거나 서두르는 태도를 보인 데 기인한 것이다. 반면에 1992년 북한이 남북기본합의서에 동의한 것은 소련·동구 사회주의의 붕괴로 북한이 국제적으로 고립되어 있었던 데다가, 당시 노태우 정권이 북한측에 대해 회담을 중단할 수도 있다는 의지를 강하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조이 제독은 “공산주의자들은 상대편이 양보하면 이를 상대편이 약하다는 신호로 본다”면서 “공산주의자에게 1인치를 주면 그들은 1마일을 가지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그는 공산주의자들을 절대로 믿지 말라고 되풀이해서 강조했다. “공산주의자들의 협정 신뢰성을 믿는 사람들은 낡은 동아줄에 위험천만하게 매달려 있는 것과 같다”, “어떤 식으로 되어 있든 간에 공산주의자와의 약속은 믿지 마라. 공산주의자의 행동만 믿어라”는 말도 했다. 평화협정 운운하는 달콤한 얘기가 나오는 오늘날 우리가 반드시 명심해야 할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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