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憲裁, “(법무부 제소 땐) 오래 묵힐 일 아니다”
⊙ 법무부, “시간이 필요하다”
⊙ 심사기준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 “구체적 물증 제시 필요”
⊙ 법무부, “시간이 필요하다”
⊙ 심사기준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 “구체적 물증 제시 필요”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 이석기 의원의 ‘RO(Revolutionary Organization·혁명조직)’ 사건 이후, 통진당을 해산시켜야 된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내란을 모의(謀議)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정당이 국가의 지원을 받으며 계속 유지하는 데 대한 국민적 거부감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통진당을 해산시켜야 한다는 움직임은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9월 10일 국민행동본부, 재향군인회, 대령연합회 등은 법무부에 통진당 해산 촉구 청원서를 제출했다. 청원에는 국민 11만명이 서명했다.
국민행동본부 서정갑 본부장은 “법무부는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며 “2004년부터 지금까지 5번에 걸쳐 법무부에 통진당 해산을 요청했지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서 본부장은 “최소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이유라도 알려줘야 하는데, 법무부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아 과연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덧붙였다.
“법무부 직무유기”
우파 시민단체가 법무부에 통진당 해산을 청원하는 이유는 헌법규정 때문이다. 헌법 8조 4항은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하여 해산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결국 통진당을 해산시키기 위해서는 정부를 대표해 법무부가 헌재에 제소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서 본부장은 “직접 헌재에 통진당 해산을 청구하고 싶지만, 헌법 규정 때문에 그러지도 못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법무부는 9월 초 ‘위헌 정당·단체 관련 대책 특별팀’을 구성했다. 법무부 차관 직속으로 꾸려진 특별팀은 서울고검 공판부장이 팀을 이끌고 있다. 그러나 특별팀의 역할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국민행동본부 측은 이렇게 주장했다.
“특별팀은 정당 해산 청구뿐만 아니라 이적단체 해산 문제까지 다룰 예정입니다. 정당 해산은 이미 헌법에 절차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적단체 해산은 관련 규정이 없는 실정입니다. 물론 이적단체 해산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당장 시급한 통진당 해산을 먼저 해야지, 법도 없는 이적단체 문제를 들고나오는 것은 논점을 흐리는 것으로 통진당 문제를 그냥 넘어가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법무부, “시간이 필요하다”
“법무부가 통진당 해산에 관심이 없다”는 주장에 대해, 법무부 관계자는 “과거 사건과 최근에 드러난 혐의는 다르다”며 “특별팀을 구성해 검토하고 있다”고 반복 설명했다. 그는 “특별팀을 구성한 지 아직 일주일도 되지 않았다”며 “특별팀을 구성한 것은 통진당이 해산될 경우 국회의원 신분문제 등 법체계의 문제점을 검토해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한 조치로 이제 시작이기 때문에 시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2004년부터 접수된 통진당 해산 청원은 총 6건이다. 법무부는 통진당 해산 청원을 위해 국내 헌법학자 14명에게 자문을 구해 10명으로부터 회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자문에 참여했던 헌법학자 가운데 한 명은 다음과 같이 기자에게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지난해 7월 법무부가 자문을 요청해 소신을 정리해서 보냈습니다. 통진당은 위헌정당 해산의 요건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독일의 경우 공산당을 해산시켰는데, 구체적인 위험이 없었지만 여러 정황을 고려해서 해악(害惡)을 일으킬 수 있다고 보았죠. 통진당 역시 비슷합니다. 헌법을 보면 정당의 ‘목적’,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 해산할 수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해당 조항은 목적과 활동 가운데 하나라도 위배되면 해산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을 볼 때 목적은 논란이 있겠지만 최소한 행동은 정당 해산의 사유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헌재, “주요사건 適時처리지침 있다”
법무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고 있으나, 이미 19대 국회의원 임기는 거의 절반을 향해 가고 있다. 다음 국회의원 선거일은 2016년 5월로 예정되어 있다. 이렇게 시간을 끌다가는 기존 통진당 의원들이 임기를 무사히 마치게 된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설령 법무부가 헌법재판소에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더라도, 헌재의 결정이 상당기간 미뤄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이런 우려에 대해 헌법재판소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헌재의 입장을 밝혔다.
—헌재로 넘어가면 시간이 상당히 소요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습니다.
“주요 사건의 경우 내부지침이 있어요. 이를 적시(適時)처리지침이라고 합니다. (결정이) 지연될 경우 국가 혹은 지자체에 중대한 손실이 오거나 사회 전체에 불필요한 소모적 논쟁을 불러일으킬 경우 빨리 처리합니다. 재판관들이 밤을 새워서라도 처리합니다. 구체적인 사례로 BBK특검법 위헌 논란은 2주 만에, 노무현 탄핵 위헌 사건의 경우 2달 만에 선고를 했어요.”
—최종 결정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까요.
“헌재는 법원과는 달라요. 법원은 당사자가 주장하고 입증한 것만으로 판단을 하지만 헌재는 여러 가지 연구조사를 합니다. 국내외 논문, 해외 사례 등을 폭넓게 조사, 연구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결정이 늦어지는 경우가 있지만, 정당해산심판은 오래 묵힐 사안이 아닙니다.”
—법무부가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해 오면 절차는 어떻게 되나요.
“아직 관련 사례가 없어요. 다만 원칙은 있습니다. 정당 해산은 ‘필요적 변론사건’입니다. 즉 구두변론을 해야 하는데, 해산 심판을 청구한 법무부 측과 통진당 측을 재판부가 불러서 질문을 합니다. 또 전문가들의 의견도 듣습니다.”
학계, “심사기준 자체가 모호”
정당해산심판 조항의 핵심은 ‘민주적 기본질서 위배’이다. 이를 입증할 근거 자료는 이미 언론에 공개됐다. 지하조직 비밀회의 녹취록에 따르면 이석기 의원 등은 “북은 모든 행위가 다 애국적이고, 우리는 모든 행위가 다 반역이다”, “오는 전쟁 맞받아치자. 시작된 전쟁은 끝장을 내자. 전쟁을 준비하자”, “비정규전이 벌어질 텐데 선두에 서면 이 또한 명예 아닌가” 등 충격적인 발언이 수없이 이어졌다. 통진당이 적과 손잡고 정부를 전복시키려 했다는 의심을 가지기 충분한 근거이다.
헌법은 정당의 설립을 보장하고, 강제 해산은 오직 헌법재판소의 심판으로 한정하고 있다. 정당은 헌법에 의해 여타의 정치적 결사에 비해 해산절차를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이는 정당의 절차적 특권이다. 통진당 역시 이런 특권을 누리고 있다.
헌법전문가들은 “추상적으로 규정된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라는 심사기준을 통해 통진당의 운명이 결정된다”고 설명한다. 과연 일련의 증거를 헌법재판소가 ‘민주적 기본질서 위배’로 받아들일까.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는 “헌법의 중심가치인 인권,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핵심적 요소들 예를 들어 국민주권, 다수결 원칙, 권력분립, 사법부의 독립을 부정하고 파괴할 경우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것이다”며 “헌법재판소가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결정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과거 헌법재판소는 ‘민주적 기본질서’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란 모든 폭력적 지배와 자의적 지배, 즉 반국가단체의 일인독재 내지 일당독재를 배제하고 다수의 의사에 의한 국민의 자치, 자유·평등의 기본원칙에 의한 법치주의적 통치질서를 말하고 구체적으로 기본적 인권의 존중, 권력분립, 의회제도, 복수정당제도, 선거제도,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골간으로 한 경제질서 및 사법권의 독립 등 우리 내부체제를 말한다.(1990. 4. 2. 89헌가113)”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만 보호
헌재의 결정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민주적 기본질서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한정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주의, 전체주의 등을 명확히 배격(排擊)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정당 설립, 운영의 한계를 규정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헌재의 입장은 학계에서도 폭넓게 지지받고 있다.
최대권 서울대 명예교수(헌법학)는 “헌법에서 이야기하는 ‘민주적 기본질서’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이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헌법에 규정된 민주적 기본질서란 무엇인가요.
“헌법 규정은 민주적 기본질서라고 되어 있지만, 단순한 민주주의가 아닌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에 반하는 정당을 해산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해요.”
—통진당의 경우는 어떤가요.
“당연히 해산되어야죠. 종북세력 아닙니까. 북한을 사랑하고, 남한을 부끄러워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또 전쟁이 나면 (사회시설을) 파괴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말한 것이 드러났습니다. 이것만으로도 목적,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판단할 수 있어요. 비록 헌법에 민주적 기본질서라고 서술되어 있지만, 이는 자유민주주의로 해석해야 됩니다. 북한도 스스로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으니까요. 우리는 그와 다른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지켜야 돼요. 통진당은 이를 부정했기 때문에 해산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헌법재판소는 정부로부터 정당 해산 심판 청구를 받으면 해당 정당의 활동을 우선적으로 정지시키는 가처분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궁극적으로 해산을 확정하려면 헌법재판관 전체 9명 중 7명 이상이 출석해 이 가운데 6명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일부에서는 설사 통진당을 해산시켜도 유사한 정당이 다시 설립될 것을 우려한다. 그러나 정당법은 해산된 정당과 유사한 목적을 가진 이른바 ‘대체정당’의 창설을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해산된 정당의 대표자 및 간부는 해산된 정당의 강령 또는 기본정책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정당을 설립할 수 없고, 해산된 정당의 명칭과 동일한 명칭은 다시 정당의 이름으로 사용할 수 없다.
“구체적 물증 제시 필요”
정당 해산의 구체적인 절차는 헌법재판소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법에 따르면, 정부는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헌재에 제소할 수 있고, 정당해산심판 청구서에는 해산을 요구하는 정당명과 청구의 이유를 기재하도록 규정(헌재법 55, 56조)하고 있다. 국무회의에서 위헌정당제소를 의결하면 법무부장관이 정부를 대표해 심판청구서를 헌재에 제출(헌재법 25조 1항)하도록 하고 있다.
통진당은 정당 해산 청구를 준비하는 법무부 등의 움직임을 정치탄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는 이유는 헌법이 정당해산사유는 엄격하게 해석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역사적 이유가 있다.
헌정사(憲政史)에서 정당해산사건은 1956년 창당된 진보당 사건이 있다. 대법원은 진보당의 강령 및 정책 자체는 합헌(合憲)이라고 판시(1959. 2. 27. 대판 4291형상559)했지만 진보당은 1958년 2월 25일 당시 공보실에 의해 등록 취소됨으로써 행정청의 직권으로 해산됐다. 한편 농림부장관, 국회부의장을 지내고 진보당을 창당한 조봉암 선생은 1958년 간첩죄 등으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5년이 선고됐으나 2, 3심에서 각각 사형이 선고됐다. 1959년 7월 재심 청구가 기각되면서 바로 사형이 집행됐다. 2011년 1월 대법원은 조봉암 선생에 대한 재심에서 국가변란목적 단체결성과 간첩 혐의에 대해 대법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무죄를 선고했다.
장영수 교수는 “진보당 사건은 정당에 대한 정부의 탄압으로 봐야 한다”며 “헌법에 정당해산제도가 있는 것은, 과거와 같이 일방적으로 (정당 해산을)하면 안 된다는 의미에서 생긴 것이다”고 말했다. 장 교수의 설명이다.
—통진당 위헌정당 해산의 쟁점(爭點)은 무엇인가요.
“정황과 추측으로 혐의를 입증할 수는 없어요. 이석기 의원의 통진당 비밀회의 발언은 녹취록으로 확인이 되었지요. 그러나 이를 이 의원의 개인적 일탈(逸脫)로 볼 것인지 아니면 통진당 조직 활동의 일부로 보아야 하는지 규명해야 됩니다. 녹취록만 가지고 이를 입증하기는 불충분해요. 통진당 측도 이를 알고 법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비밀조직 RO와 통진당 간의 관계 역시 입증되어야 합니다. RO가 통진당의 하부조직이라는 것이 밝혀져야 정당 해산이 가능합니다. 단지 조직원 몇 명이 통진당 소속이라는 것만으로는 어려워요.”
—정당 해산에 엄격한 기준을 두는 이유는요.
“정당 해산은 엄격한 요건과 절차에 따라야 해요. 정당해산제도는 그 절차를 엄격하게 해서 야당의 탄압을 막으려는 목적도 가지고 있습니다. 양면성(兩面性)이 있는 것이죠. 결국 수사기관이 얼마나 신빙성(信憑性) 있는 증거를 확보하느냐에 따라 정당 해산이 가능하다고 보입니다.”
의원직 상실 여부는 논란
정당이 해산될 경우 소속 의원의 의원직 상실 여부가 논란이 될 수 있다. 위헌정당 소속 의원의 신분이 어떻게 되느냐에 대한 관련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전국구 의원은 자격을 상실한다고 하더라도 지역구 의원의 경우 논란이 될 수 있다.
독일의 경우 1952년 사회주의제국당에 대한 위헌 판결에서 “의원직은 상실되지만, 이미 의회에서 행한 의결의 효력에는 영향이 없다”고 판시했다. 독일은 그 후 연방선거법에서 위헌정당 해산 시 의원직을 상실한다는 명문 규정을 두어 논란을 입법으로 해결했다.
논란에 대해,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신평 교수는 “헌법에 위헌정당에 소속되어 있는 의원의 신분 문제에 대해 명문(明文)의 규정이 없어 논란이 되고 있지만, 헌재가 통진당 해산을 결정할 경우 소속 의원의 의원직 상실 여부에 대해서도 판단을 내릴 것이다”며 “헌재의 (소속 의원이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자격심사 결과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적단체 해산법 필요
이와 관련해 헌법학자들은 이번 기회에 위헌정당 해산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입법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독일의 경우, 연방헌법재판소에 의해 위헌으로 선언된 정당 및 해산된 정당의 대체조직, 배후조정자 등을 처벌하도록 형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또 위헌정당으로 결정이 되면 단체의 선전물의 반포를 금지하고 있다.
또 이적단체를 해산시킬 수 없는 허술한 법체계 역시 손질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위헌정당은 헌법에서 해산의 길을 열어놓고 있지만 이적단체를 해산시킬 수 있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조국통일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는 ‘주한미군 철수, 연방제 통일 실현’ 등을 강령으로 설립돼, 1997년 5월 대법원으로부터 이적단체 판결을 받았다. 그 후 4차례 대법원은 “(대법원의) 이적단체 판단 결정은 정당하다”고 판단했지만, 해당 단체는 해산되지 않았다. 이는 결사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 21조를 제한할 ‘이적단체 해산법’이 아직까지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통진당이 이런 법률적 쟁점과 허점을 파고들 것으로 보인다. 헌정질서를 흔들려 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통진당은 헌법의 튼튼한 보호를 받으며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을 칠 것이다. 구체적인 전략도 나오고 있다. 녹취록이 공개돼 여론이 불리해진 통진당은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보장’ 등을 주장하며 여론전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국가안전보장을 위해 법률에 의해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헌법 37조 2항)할 수 있기 때문에 통진당의 주장은 헌법전문가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결국 헌법재판소가 납득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증거 제출 여부에 따라 통진당의 운명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
국민행동본부 서정갑 본부장은 “법무부는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며 “2004년부터 지금까지 5번에 걸쳐 법무부에 통진당 해산을 요청했지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서 본부장은 “최소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 이유라도 알려줘야 하는데, 법무부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아 과연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덧붙였다.
“법무부 직무유기”
우파 시민단체가 법무부에 통진당 해산을 청원하는 이유는 헌법규정 때문이다. 헌법 8조 4항은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하여 해산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결국 통진당을 해산시키기 위해서는 정부를 대표해 법무부가 헌재에 제소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서 본부장은 “직접 헌재에 통진당 해산을 청구하고 싶지만, 헌법 규정 때문에 그러지도 못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법무부는 9월 초 ‘위헌 정당·단체 관련 대책 특별팀’을 구성했다. 법무부 차관 직속으로 꾸려진 특별팀은 서울고검 공판부장이 팀을 이끌고 있다. 그러나 특별팀의 역할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국민행동본부 측은 이렇게 주장했다.
“특별팀은 정당 해산 청구뿐만 아니라 이적단체 해산 문제까지 다룰 예정입니다. 정당 해산은 이미 헌법에 절차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적단체 해산은 관련 규정이 없는 실정입니다. 물론 이적단체 해산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당장 시급한 통진당 해산을 먼저 해야지, 법도 없는 이적단체 문제를 들고나오는 것은 논점을 흐리는 것으로 통진당 문제를 그냥 넘어가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법무부, “시간이 필요하다”
“법무부가 통진당 해산에 관심이 없다”는 주장에 대해, 법무부 관계자는 “과거 사건과 최근에 드러난 혐의는 다르다”며 “특별팀을 구성해 검토하고 있다”고 반복 설명했다. 그는 “특별팀을 구성한 지 아직 일주일도 되지 않았다”며 “특별팀을 구성한 것은 통진당이 해산될 경우 국회의원 신분문제 등 법체계의 문제점을 검토해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한 조치로 이제 시작이기 때문에 시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2004년부터 접수된 통진당 해산 청원은 총 6건이다. 법무부는 통진당 해산 청원을 위해 국내 헌법학자 14명에게 자문을 구해 10명으로부터 회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자문에 참여했던 헌법학자 가운데 한 명은 다음과 같이 기자에게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지난해 7월 법무부가 자문을 요청해 소신을 정리해서 보냈습니다. 통진당은 위헌정당 해산의 요건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독일의 경우 공산당을 해산시켰는데, 구체적인 위험이 없었지만 여러 정황을 고려해서 해악(害惡)을 일으킬 수 있다고 보았죠. 통진당 역시 비슷합니다. 헌법을 보면 정당의 ‘목적’,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 해산할 수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해당 조항은 목적과 활동 가운데 하나라도 위배되면 해산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을 볼 때 목적은 논란이 있겠지만 최소한 행동은 정당 해산의 사유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헌재, “주요사건 適時처리지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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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5일 광주(光州)시민단체총연합회 회원들이 광주광역시 광주공원 시민회관 앞 광장에서 통합진보당 해체와 종북세력 척결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이런 우려에 대해 헌법재판소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헌재의 입장을 밝혔다.
—헌재로 넘어가면 시간이 상당히 소요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습니다.
“주요 사건의 경우 내부지침이 있어요. 이를 적시(適時)처리지침이라고 합니다. (결정이) 지연될 경우 국가 혹은 지자체에 중대한 손실이 오거나 사회 전체에 불필요한 소모적 논쟁을 불러일으킬 경우 빨리 처리합니다. 재판관들이 밤을 새워서라도 처리합니다. 구체적인 사례로 BBK특검법 위헌 논란은 2주 만에, 노무현 탄핵 위헌 사건의 경우 2달 만에 선고를 했어요.”
—최종 결정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까요.
“헌재는 법원과는 달라요. 법원은 당사자가 주장하고 입증한 것만으로 판단을 하지만 헌재는 여러 가지 연구조사를 합니다. 국내외 논문, 해외 사례 등을 폭넓게 조사, 연구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결정이 늦어지는 경우가 있지만, 정당해산심판은 오래 묵힐 사안이 아닙니다.”
—법무부가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해 오면 절차는 어떻게 되나요.
“아직 관련 사례가 없어요. 다만 원칙은 있습니다. 정당 해산은 ‘필요적 변론사건’입니다. 즉 구두변론을 해야 하는데, 해산 심판을 청구한 법무부 측과 통진당 측을 재판부가 불러서 질문을 합니다. 또 전문가들의 의견도 듣습니다.”
학계, “심사기준 자체가 모호”
정당해산심판 조항의 핵심은 ‘민주적 기본질서 위배’이다. 이를 입증할 근거 자료는 이미 언론에 공개됐다. 지하조직 비밀회의 녹취록에 따르면 이석기 의원 등은 “북은 모든 행위가 다 애국적이고, 우리는 모든 행위가 다 반역이다”, “오는 전쟁 맞받아치자. 시작된 전쟁은 끝장을 내자. 전쟁을 준비하자”, “비정규전이 벌어질 텐데 선두에 서면 이 또한 명예 아닌가” 등 충격적인 발언이 수없이 이어졌다. 통진당이 적과 손잡고 정부를 전복시키려 했다는 의심을 가지기 충분한 근거이다.
헌법은 정당의 설립을 보장하고, 강제 해산은 오직 헌법재판소의 심판으로 한정하고 있다. 정당은 헌법에 의해 여타의 정치적 결사에 비해 해산절차를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이는 정당의 절차적 특권이다. 통진당 역시 이런 특권을 누리고 있다.
헌법전문가들은 “추상적으로 규정된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라는 심사기준을 통해 통진당의 운명이 결정된다”고 설명한다. 과연 일련의 증거를 헌법재판소가 ‘민주적 기본질서 위배’로 받아들일까.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는 “헌법의 중심가치인 인권,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핵심적 요소들 예를 들어 국민주권, 다수결 원칙, 권력분립, 사법부의 독립을 부정하고 파괴할 경우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것이다”며 “헌법재판소가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결정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과거 헌법재판소는 ‘민주적 기본질서’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란 모든 폭력적 지배와 자의적 지배, 즉 반국가단체의 일인독재 내지 일당독재를 배제하고 다수의 의사에 의한 국민의 자치, 자유·평등의 기본원칙에 의한 법치주의적 통치질서를 말하고 구체적으로 기본적 인권의 존중, 권력분립, 의회제도, 복수정당제도, 선거제도,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골간으로 한 경제질서 및 사법권의 독립 등 우리 내부체제를 말한다.(1990. 4. 2. 89헌가113)”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만 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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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5일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수원 지방법원으로 호송된 이석기 의원이 법정으로 들어가며 지지자들과 손을 잡고 있다. |
최대권 서울대 명예교수(헌법학)는 “헌법에서 이야기하는 ‘민주적 기본질서’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이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헌법에 규정된 민주적 기본질서란 무엇인가요.
“헌법 규정은 민주적 기본질서라고 되어 있지만, 단순한 민주주의가 아닌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에 반하는 정당을 해산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해요.”
—통진당의 경우는 어떤가요.
“당연히 해산되어야죠. 종북세력 아닙니까. 북한을 사랑하고, 남한을 부끄러워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또 전쟁이 나면 (사회시설을) 파괴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말한 것이 드러났습니다. 이것만으로도 목적,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판단할 수 있어요. 비록 헌법에 민주적 기본질서라고 서술되어 있지만, 이는 자유민주주의로 해석해야 됩니다. 북한도 스스로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으니까요. 우리는 그와 다른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지켜야 돼요. 통진당은 이를 부정했기 때문에 해산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헌법재판소는 정부로부터 정당 해산 심판 청구를 받으면 해당 정당의 활동을 우선적으로 정지시키는 가처분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궁극적으로 해산을 확정하려면 헌법재판관 전체 9명 중 7명 이상이 출석해 이 가운데 6명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일부에서는 설사 통진당을 해산시켜도 유사한 정당이 다시 설립될 것을 우려한다. 그러나 정당법은 해산된 정당과 유사한 목적을 가진 이른바 ‘대체정당’의 창설을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해산된 정당의 대표자 및 간부는 해산된 정당의 강령 또는 기본정책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정당을 설립할 수 없고, 해산된 정당의 명칭과 동일한 명칭은 다시 정당의 이름으로 사용할 수 없다.
“구체적 물증 제시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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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5일 저녁 구속영장이 발부된 이석기 의원이 수원 남부경찰서에서 구치소로 호송되기 위해 국정원 직원 및 경찰들에 둘러싸여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
통진당은 정당 해산 청구를 준비하는 법무부 등의 움직임을 정치탄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는 이유는 헌법이 정당해산사유는 엄격하게 해석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역사적 이유가 있다.
헌정사(憲政史)에서 정당해산사건은 1956년 창당된 진보당 사건이 있다. 대법원은 진보당의 강령 및 정책 자체는 합헌(合憲)이라고 판시(1959. 2. 27. 대판 4291형상559)했지만 진보당은 1958년 2월 25일 당시 공보실에 의해 등록 취소됨으로써 행정청의 직권으로 해산됐다. 한편 농림부장관, 국회부의장을 지내고 진보당을 창당한 조봉암 선생은 1958년 간첩죄 등으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5년이 선고됐으나 2, 3심에서 각각 사형이 선고됐다. 1959년 7월 재심 청구가 기각되면서 바로 사형이 집행됐다. 2011년 1월 대법원은 조봉암 선생에 대한 재심에서 국가변란목적 단체결성과 간첩 혐의에 대해 대법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무죄를 선고했다.
장영수 교수는 “진보당 사건은 정당에 대한 정부의 탄압으로 봐야 한다”며 “헌법에 정당해산제도가 있는 것은, 과거와 같이 일방적으로 (정당 해산을)하면 안 된다는 의미에서 생긴 것이다”고 말했다. 장 교수의 설명이다.
—통진당 위헌정당 해산의 쟁점(爭點)은 무엇인가요.
“정황과 추측으로 혐의를 입증할 수는 없어요. 이석기 의원의 통진당 비밀회의 발언은 녹취록으로 확인이 되었지요. 그러나 이를 이 의원의 개인적 일탈(逸脫)로 볼 것인지 아니면 통진당 조직 활동의 일부로 보아야 하는지 규명해야 됩니다. 녹취록만 가지고 이를 입증하기는 불충분해요. 통진당 측도 이를 알고 법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비밀조직 RO와 통진당 간의 관계 역시 입증되어야 합니다. RO가 통진당의 하부조직이라는 것이 밝혀져야 정당 해산이 가능합니다. 단지 조직원 몇 명이 통진당 소속이라는 것만으로는 어려워요.”
—정당 해산에 엄격한 기준을 두는 이유는요.
“정당 해산은 엄격한 요건과 절차에 따라야 해요. 정당해산제도는 그 절차를 엄격하게 해서 야당의 탄압을 막으려는 목적도 가지고 있습니다. 양면성(兩面性)이 있는 것이죠. 결국 수사기관이 얼마나 신빙성(信憑性) 있는 증거를 확보하느냐에 따라 정당 해산이 가능하다고 보입니다.”
의원직 상실 여부는 논란
정당이 해산될 경우 소속 의원의 의원직 상실 여부가 논란이 될 수 있다. 위헌정당 소속 의원의 신분이 어떻게 되느냐에 대한 관련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전국구 의원은 자격을 상실한다고 하더라도 지역구 의원의 경우 논란이 될 수 있다.
독일의 경우 1952년 사회주의제국당에 대한 위헌 판결에서 “의원직은 상실되지만, 이미 의회에서 행한 의결의 효력에는 영향이 없다”고 판시했다. 독일은 그 후 연방선거법에서 위헌정당 해산 시 의원직을 상실한다는 명문 규정을 두어 논란을 입법으로 해결했다.
논란에 대해,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신평 교수는 “헌법에 위헌정당에 소속되어 있는 의원의 신분 문제에 대해 명문(明文)의 규정이 없어 논란이 되고 있지만, 헌재가 통진당 해산을 결정할 경우 소속 의원의 의원직 상실 여부에 대해서도 판단을 내릴 것이다”며 “헌재의 (소속 의원이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자격심사 결과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적단체 해산법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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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 10일 경기도 과천 정부청사 앞에서 국민행동본부 관계자들이 통합진보당의 해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
또 이적단체를 해산시킬 수 없는 허술한 법체계 역시 손질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위헌정당은 헌법에서 해산의 길을 열어놓고 있지만 이적단체를 해산시킬 수 있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조국통일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는 ‘주한미군 철수, 연방제 통일 실현’ 등을 강령으로 설립돼, 1997년 5월 대법원으로부터 이적단체 판결을 받았다. 그 후 4차례 대법원은 “(대법원의) 이적단체 판단 결정은 정당하다”고 판단했지만, 해당 단체는 해산되지 않았다. 이는 결사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 21조를 제한할 ‘이적단체 해산법’이 아직까지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도 통진당이 이런 법률적 쟁점과 허점을 파고들 것으로 보인다. 헌정질서를 흔들려 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통진당은 헌법의 튼튼한 보호를 받으며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을 칠 것이다. 구체적인 전략도 나오고 있다. 녹취록이 공개돼 여론이 불리해진 통진당은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보장’ 등을 주장하며 여론전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국가안전보장을 위해 법률에 의해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헌법 37조 2항)할 수 있기 때문에 통진당의 주장은 헌법전문가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결국 헌법재판소가 납득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증거 제출 여부에 따라 통진당의 운명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