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停戰 60주년 특집] 停戰 60주년 행사 준비하는 金仁圭 한국전쟁기념재단 이사장 : 월간조선

“한반도에 진정한 봄이 옵니다. 지금의 정전(停戰)체제를 이제 뛰어넘어야 합니다.”

김인규(金仁圭) 한국전쟁기념재단 이사장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묻어났다. 올해 정전 60주년을 맞아 대규모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그는 머지않아 한반도에 새로운 분위기가 형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은 지금의 정전상태를 선호해 왔습니다. 그러나 미·중(美中) 패권시대에 맞춰 양국(兩國)은 한반도에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걸 느끼고 있어요. 우리는 이 기회를 잘 이용해야 합니다. 60년 동안 끌어온 정전체제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야 해요.”

—‘멈춰진 전쟁’ ‘잊힌 전쟁’인 6·25가 휴전된 지 60년이 됐습니다. 현 시점에서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뭐라고 봐야 합니까.

“전후(戰後) 세계에서 분단된 나라는 한국, 독일, 예멘, 베트남 등 네 나라였지만 우리를 제외하고 세 나라는 모두 통일됐어요. 우리도 하루빨리 합쳐야 해요. 그런데도 북한은 주한(駐韓)미군 철수를 목적으로 정전협정 대신 평화협정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죠. 얼마 전에는 ‘정전협정을 무시한다’고 했어요. 그건 전쟁을 하겠다는 의미죠.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들도 잘 알아요. 정전 60주년을 기점으로 한반도의 평화메시지를 전 세계에 알려야 해요. 지금의 정전협정을 평화와 통일을 향한 신개념 협정으로 바꿀 때가 됐어요.”

“한 치의 땅도 거저 얻은 것이 없다”

올해는 정전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6ㆍ25전쟁에는 21개 나라에서 온 젊은이들이 유엔군의 이름으로 참전해 자유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

2010년 출범한 한국전쟁기념재단은 6·25전쟁에 참전한 해외 용사들의 희생을 소중히 여기고 그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후손들에게 전하고자 설립된 재단이다. 백선엽(白善燁) 장군이 초대 이사장을 맡았다가 작년 12월부터 김 이사장이 맡고 있다.

“백선엽 장군은 ‘한 치의 땅도 거저 얻은 것이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전후 세대들은 전쟁이 왜 발생했고, 정전협정이 언제 체결됐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몰라요. 그래서 저희가 나선 겁니다. 모르면 가르쳐야 해요. 우리 선배 세대들과 해외 참전용사들이 목숨을 맞바꿔 대한민국을 살려냈고 경제발전·민주화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을 알아야 해요. 이제 우리가 전쟁에 참여한 21개 UN연합국의 후손들에게 교육으로 보은할 차례입니다.”

—해외 참전용사들은 6·25를 어떤 전쟁으로 인식하고 있습니까.

“유엔군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나라가 참전한 첫 전쟁입니다. 우리에게 6·25는 동족상잔(同族相殘)이라는 아픈 역사이지만, 해외 참전용사들은 한반도의 공산화를 막고 자유민주주의를 일궈낸 기적의 역사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지금 살아 있는 용사들은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요.”

—6·25의 명칭과 관련해 ‘한국전쟁’이 아니라 ‘6·25남침전쟁’이 정확한 용어라는 의견이 있습니다.

“우리 내부에서도 이 같은 논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기구입니다. 유엔과 미국이 한국전쟁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글로벌 관점에서 한국전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겁니다. 사실 외국에서는 전쟁이 발발한 날보다 전쟁이 끝난 날을 더 중요시해요. 그래서 종전(終戰), 정전을 기념하는 겁니다. 2010년 6·25전쟁 60주년을 앞두고 정부 차원에서 ‘6·25전쟁 60주년 기념사업회’를 만들었는데 이때도 내부적으로 논란이 좀 있었지요.”

—기념재단의 주요 사업으로는 어떤 게 있습니까.

“해외 참전용사 직계 후손들을 위한 교육·장학사업을 주로 해요. 우리의 정치·경제·IT리더십 프로그램을 교육시켜 자신들의 나라와 한국을 잇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 남아프리카공화국, 에티오피아, 콜롬비아, 태국, 터키, 필리핀 등 7개국 참전용사들의 직계 후손을 한국에 데려와 교육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혜택을 본 학생이 40명이 넘어요. 올해에도 열여섯 명이 국내 주요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받았던 나라에서 되갚는 국가로의 도약”

한국전쟁기념재단은 오는 7월 UN참전국 교향악단 평화음악회, DMZ 155마일 평화대장정 등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김인규 이사장은 “받았던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국가가 되기 위해 기념재단은 교육으로 보은하고 있다”고 했다.

“이 일은 우리가 받았던 나라에서 되갚는 국가로의 도약입니다. 국격(國格) 향상에도 기여하고 있어요. 나아가 세계 평화와 공동체 건설이라는 인류의 소중한 꿈을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자는 운동이기도 하지요.”

기념재단에 참여하는 인사들로는 김인규 이사장을 비롯해, 이기수 대법원 양형위원회 위원장·박철 한국외대 총장·서교일 순천향대 이사장(이상 기념재단 부이사장), 인요한 연세대 국제진료소장·방석호 홍익대 법대학장·김택환 경기대 교수·전영기 JTBC 앵커·배희숙 이나루 티앤티 대표·이정호 우리투자증권 이사·서대원 중앙대 초빙교수(이상 기념재단 이사) 등이다.

사업자금은 대부분 개인 및 기업, 단체의 후원으로 조달된다. 재단은 서울대, 한양대, 외국어대, 숙명여대 등 서울 시내 주요 대학들과 MOU를 체결, 참전용사 후손 교육에 정성을 쏟고 있다.

김인규 이사장의 말이다.

“대한민국이 전후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국가라는 측면에서 6·25 참전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21개 나라 참전용사들과 지원 민간인들이 큰 자부심을 갖고 있는 이유죠. 그러나 외국에 비해 우리는 그렇지 못해요. 국민적 관심을 높이는 방안은 바로 정부가 발벗고 나서는 겁니다. 다행히 박근혜(朴槿惠)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정전 60주년 행사에 관심을 갖고 저희 기념재단과 함께 공동으로 준비하고 있어 그나마 다행입니다.”

김인규 이사장은 올해 7월 정전협정 60주년을 기념해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우선 UN참전국으로 구성된 교향악단 평화음악회를 들 수 있다. 6·25에 참전한 21개국에서 1~2명의 연주단원을 선발, 국내 단원들과 함께 UN참전국 교향악단을 결성한다. 교향악단은 오늘 7월 26일 도라산역과 7월 30일 부산문화회관에서 대(大)평화콘서트를 열고, KBS가 이를 직접 중계할 예정이다. 국방장관을 지낸 김태영(金泰榮) 평화음악회 추진단장은 “정전 60주년을 맞아 처음으로 국내외 음악인으로 구성되는 교향악단은 남북관계의 긴장을 해소하고 세계 평화를 노래하는 뜻 깊은 음악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기념재단은 또 8~10월에 걸쳐 해군과 공동으로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그리스, 에티오피아 등 10개 참전국을 방문해 6·25 참전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하는 ‘대한민국 해군순양함대 참전국 기념방문’을 추진하고 있다.

北주민, 유럽축구 보며 대환호

엄홍길휴먼재단과는 7월 27일부터 8월 11일까지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DMZ 155마일을 따라 걷는 평화대장정을 개최한다. KBS 사장 출신인 김인규 이사장은 KBS와 터키방송(TRT) 공동으로 정전 60주년 특집방송 <내 기억 속의 전쟁>을 제작한다.

“제가 KBS 사장으로 있을 때부터 준비해 온 다큐멘터리인데 올해 정전 60주년을 기념해 만들었지요. 우리나라와 터키는 6·25를 통해 형제의 나라가 됐습니다. 그런 내용을 바탕으로 양국의 우호증진과 결속을 다질 계획입니다.”

기념재단은 정전협정 체결 당시 한국군을 이끌었던 백선엽 장군과 당시 미국 통역사였던 리처드 언더우드의 만남을 추진해 정전 60주년의 의미를 되새긴다. 이 밖에 한반도 평화대토론회, 남북공동 미술대전, 평화통일콘서트 등도 연다.

김인규 이사장은 한국전쟁기념재단을 맡은 계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저는 6·25가 터지기 넉 달 전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서 태어났어요. 10남매 중 막내였는데 제일 큰형은 장교로 참전했다 돌아가셨죠. 그 시절 다들 그랬지만 전쟁 통에 저는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자랐습니다. 전쟁은 어떤 이유에서든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자라면서 하게 됐지요. 분단된 지 60년이 된 지금, 전쟁 방지와 통일을 위해서는 남북 대화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더 중요한 게 미국·중국의 역할이라 할 수 있어요. 제가 6·25 참전용사들에게 관심을 갖고 정전협정에 관심을 갖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런 일들이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외교적 수단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김인규 이사장은 북한의 변화에도 관심이 많다. 그는 작년 7월 KBS 사장으로 재직할 당시 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이하 ABU) 회장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 무렵 북한은 국내 언론사들을 직접 거론하며 “좌표를 찍어 폭파하겠다”고 협박했다. KBS도 그중 하나였다. KBS 사장이자 ABU 회장인 그의 방북(訪北)을 두고 북한 내부에서 설전이 벌어졌다고 한다. 급한 쪽은 북한이었다. 결국 김 이사장은 북한 내(內) 방송프로그램 지원과 런던올림픽 중계 문제 등을 협의하기 위해 평양에 들어갔다.

—북측의 요청이 있었던 겁니까.

“북한이 작년 1월 말에 ABU에 연락을 해왔어요. 북한의 방송조직 공식명칭은 조선중앙방송위원회인데 ABU에 유럽축구(유럽컵) 중계권을 달라는 겁니다. 일반적으로 국제 스포츠 게임은 중계권을 파는 게 정상적인데 북한의 경우 워낙 특수한 케이스니까 그냥 중계권을 주기로 했습니다. 총 32경기가 있었는데 북한 방송당국은 매일 밤 8시부터 2시간 동안 축구경기를 모두 내보냈어요. 이게 대박이 난 겁니다. 집집마다 그걸 다 봤나 봐요. 딱딱하고 재미없는 뉴스만 보다가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봤으니 얼마나 좋겠어요. 북한 당국에서는 이걸 주민들을 통제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택한 것 같아요. 아무튼 그 후 우리(ABU) 측 실무진에게 런던올림픽 중계권까지 달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뿐만 아니었어요. 이 친구들이 ‘런던에 우리(조선) 방송단을 보내고 싶다. 가서 방송하게 해달라’는 요구도 했어요. 엔지니어, 리포터, 카메라맨 등을 보내겠다는 겁니다. 그래서 ABU 스포츠팀장이 북한 실무진에게 ‘ABU 회장에게 직접 부탁해야 한다. 실무진이 처리할 문제가 아니다’고 하자 결국 북측이 회장인 저를 평양에 초청한 겁니다.”

1991년의 평양과 2012년의 평양

김인규 이사장은 “60년 동안 끌어온 정전체제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작년 7월 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ABU) 회장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 조선중앙TV 방송시설을 둘러봤다. 뉴스룸 앵커석에 앉은 김 이사장.

—이명박 정부 때 북한을 방문한 인사로서는 아마 최고위층인 것 같은데요.

“저의 평양 방북을 놓고 일부에서는 이명박 정권의 밀사(密使) 아니냐는 식의 얘기가 있었어요. 사실이 아닙니다. 방송과 스포츠 관련 협의가 전부였어요.”

—평양 방문 느낌이 어떻던가요.

“1991년 KBS 정치부장으로 있을 때 제4차 남북고위급회담 취재를 위해 평양에 처음 갔습니다. 그 후 20년 만에 다시 간 거였는데 분위기가 많이 달랐어요. 뭐라고 할까, 뭔가 풀렸다 할까요. 평양역 앞에 노숙자도 있었고, 의자에 드러누워 자는 사람도 있었어요. 과거 같으면 사전에 다 ‘처치’해 놓았겠지요. 사진도 찍었어요.”

—촬영을 허락하던가요.

“이른 아침에 고려호텔을 나서려고 하니까 호텔 관계자가 ‘어디 가시냐’고 묻더군요. 산책하러 간다고 하니 그냥 보내줍디다. 같이 평양을 방문했던 ABU 간부들과 함께 시내구경을 나섰지요. 평양역 쪽으로 가면서 이란 출신인 ABU 사무총장과 호주 출신 스포츠국장이 사진을 막 찍었어요. 제가 찍으라고 했지요. 한참 찍으니까 군인들이 왔는데 외국인 관광객처럼 행동하니까 그냥 놔둬요. 많이 바뀐 거지요.”

—조선중앙방송에도 가봤습니까.

“조선중앙방송위원회 건물에 중앙방송과 평양라디오 등 주요 기관이 다 있었어요. 중앙방송국 뉴스룸까지 구경했지요. 메인 앵커석에 앉아보기도 했고요. 같은 방송인이라고 약간의 동질감이 발동하더군요. 한 가지 코치를 해줬지요. 메인 뉴스의 사진배경을 바꾸라고 한 겁니다. 우리가 북한뉴스 장면을 보면 평양시내 사진을 배경으로 아나운서들이 나오는데 그 배경사진을 바꾸라고 한 것이죠. 외국에서도 조선중앙방송을 보는데 뭔가 변화의 모습을 보여줘야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했지요. 일리가 있다고 판단했는지 두 달 뒤 작년 9월부터 다른 배경화면이 나오기 시작합디다. 전자장치로 바꾼 겁니다.”

“국제계약 준수하고 국제회의 자주 참석하라”

—북한의 방송시설과 수준은 어느 정도입니까.

“우리의 60~70년대 수준이지만 최신식으로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어요.”

—북한 김정은 정권의 미래를 어떻게 예상합니까.

“방송인의 입장에서 볼 때, 김정은이 권력을 잡았지만 자기 할아버지나 아버지처럼 강도가 강해 보이진 않아요. 그래서 김정은이 생각한 게 텔레비전인 것 같아요. 북한 인민의 마음을 잡기 위해 미디어를 활용하겠다는 것이지요. 아마 북한은 앞으로 국제 스포츠 경기를 많이 내보낼 것 같습니다. 아시안게임, 브라질월드컵까지 달라고 하고 있어요. 저는 북한 방송 관계자들에게 ‘국제관계에 따라 계약을 체결하라.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국제회의에도 자주 참석해야 한다’고 말해 줬습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우리의 도움이 필수적입니다. 제게 직접적으로 여러 프로그램을 달라고 요청해 왔는데 그들이 요구한 것 중에서 <생로병사의 비밀>을 먼저 줬지요. BBC다큐멘터리도 달라고 해서 제가 BBC방송 사장을 만나 북의 요청을 전달하고 프로그램이 전달되도록 했어요. 아무튼 앞으로 남북관계에서 돌파구가 생길 것 같고 그런 측면에서 이번 정전 60주년 행사가 중요한 모멘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