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停戰 60주년 특집] 휴전 반대한 李承晩의 목숨 건 도박, 韓美상호방위조약 : 월간조선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대한민국이 휴전과정에서 얻어 낸 최대의 성과였다.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은 상호방위조약을 얻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이 조약에 우리 민족의 희망과 생명이 달려 있다며 목숨을 건 도박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그 길만이 대한민국이 살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승만은 그런 미국을 상대로 싸우고 또 싸웠다.

반면, 미국은 가급적 한국과 방위조약을 맺으려 하지 않았다. 휴전협상에서 한국을 제외시킨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았다. 기나긴 시련과 고난 끝에 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됐다. 하지만 이승만에게 그 과정은 피를 말리는 여정이었다. 1953년 이승만은 미국과의 일방적인 ‘짝사랑’을 현실로 바꾸었다. 이를 위해 이승만은 마른 수건에서 물을 짜내듯 자신의 지식과 지혜를 총동원했다.

1951년 6월 23일 유엔 주재 소련 대표 말리크(Jacob Malik)는 휴전을 제의했고, 이어진 휴전협상은 6·25전쟁의 최대 분수령이었다. 통일을 갈망하던 이승만에게 휴전은 메가톤급의 충격이었다. 북한의 남침 이후 그가 늘 주창했던 ‘북진통일’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였다. 일순간 모든 것이 무너지는 듯했다. 40년(1905~1945) 동안 해외를 떠돌며 기약 없는 독립운동을 하던 혹독한 시절에도 느껴 보지 못했던 충격과 좌절이었다. 전쟁으로 나라가 결딴난 상태에서 전후(戰後) 보장책이 없는 휴전만을 강요당했기 때문이다.

李承晩, “휴전은 한국에 자살을 강요하는 행위”

70대의 두 반공노장(反共老將) 맥아더와 이승만은 트루먼 대통령이 유엔군의 북진에 제동을 거는 것을 막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맥아더의 해임으로 이승만의 북진통일은 제동이 걸렸다.

이승만은, 휴전은 곧 한국에 ‘사형집행의 영장’이자 ‘자살을 강요하는 행위’로 봤다. 휴전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낸 것도 이런 연유다. 독립운동 때보다 더 힘든 일로 여겼다. 국가생존을 위한 ‘제2의 독립전쟁’을 펼친다는 각오로 임했다. 하지만 마음만 갖고 될 일이 아니었다. 그대로 놔둘 경우 휴전 이후 한국의 앞날은 불을 보듯 번했기 때문이다.

38선이 됐든 휴전선이 됐든 다시 분단된 폐허 위에서, 또 더 강화된 북한의 위협을 그대로 놔둔 상태에서, 단순히 전투행위만 중지하는 휴전은 대한민국을 죽으라고 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전 국토는 공동묘지로 변했고 폐허가 됐기 때문이다. 국가의 장래를 생각할 때 이승만은 답답했다. 한국을 배제한 채 추진하는 미국의 휴전협상이 서운함을 넘어 배신행위로 느껴졌다.

나아가 워싱턴의 생각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승만의 생각으로는 미군이 마음만 먹으면 북진통일을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았다. 이것은 틀린 생각이 아니었다. 당시 유엔군사령관 클라크(Mark W. Clark) 장군도 군사력에 의한 북진통일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했다. 이승만도 “북진통일만이 전쟁을 종결지을 수 있고, 나아가 제3차 세계대전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미국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물론 미국도 한국에 올인할 수는 없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이유가 되지 않았다. 이승만에게는 국운(國運)이 달린 생존의 문제였다. 그가 화를 낸 것도 한국의 생존을 무시한 채 진행하고 있는 미국의 휴전협상을 둘러싼 태도였다. 미국은 마치 적을 대하듯 한국에 냉담했다.

이승만을 힘들게 한 것은 또 있었다. 그의 북진통일을 이해하고 힘이 됐던 맥아더(Douglas MacArthur)가 유엔군사령관 직에서 해임됐다. 이후 미국은 1951년 5월 17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결정했던 휴전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맥아더의 퇴진으로 ‘전쟁에서 승리를 대신할 것이 없다’는 신념도 사라졌다. 전선에서는 ‘이기지도 지지도 말라’는 식의 전투가 진행됐다.

군사적 승리나 북진통일과 전혀 관계 없는 38도선 부근에서의 고지쟁탈전만이 전개됐다. 이승만은 정치적·군사적으로 손발이 잘린 기분이었다. 휴전을 둘러싼 시점에 한국은 ‘국제적 고아’ 내지는 ‘정치적 외톨이’가 됐다. 유엔도, 한국을 도우러 군대를 파병한 유엔참전국들도 휴전을 갈망했다. 휴전을 빨리 진행할 것을 요구했다.

계속되는 전쟁에 자국의 젊은이들이 이국땅에서 피 흘리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휴전협상이 진행되자 이제 한국을 도와줄 친구는 없었다. 한국은 공산군이라는 직접적인 적(敵) 외에 전후 생존을 위해 ‘휴전’이라는 또 다른 적과 싸워야 했다. 이제 한국은 모든 일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1951년 7월 휴전협상이 진행될 무렵, 한국은 참담한 상황이었다.

미국이 들어줄 수 없는 조건 내세워 협상

이승만 대통령이 1952년 12월 3일 당선인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한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을 맞아 악수하는 모습.

휴전진행 과정에서 한국 정부와 이승만은 철저히 배제됐다. 휴전협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미국은 이를 비밀에 부쳤다. 한국의 운명이 달린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한국이 배제된 것이다. 아이러니컬한 문제였다. 한국민 전체가 가만있지 않았다. 국민과 국회, 그리고 대통령이 하나로 똘똘 뭉쳐 휴전을 반대했다. 한국은 마치 벌집을 쑤셔 놓은 듯했다. 전쟁 이후 국론이 이처럼 하나로 모아진 적도 드물었다.

말리크의 휴전 제안에 이어 소련, 중국, 북한이 이를 지지하고 나서자, 이승만은 “한민족은 통일을 원하고 있으며, 국토를 분할해 온 인위적인 경계선인 38도선을 다시 건설하려는 제안은 한국 국민에게 깊은 실망만 줄 것”이라며 “이 나라를 분단하려는 어떤 평화안도 수락할 수 없다”며 강경한 입장을 표명했다.

국회도 이승만 대통령을 거들었다. 분단으로 치닫고 있는 휴전에 대해 ‘공산 침략군의 무장해제와 압록강·두만강 밖으로의 철수, 국토통일 완수, 한국의 영원한 안전보장 없는 정전 절대 반대’라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변영태(卞榮泰) 외무장관도 다섯 가지 휴전조건을 제시했다. 즉, 중공군의 만주 철수, 북한군의 무장해제, 북한에 대한 제3국의 경제적·군사적 지원방지에 대한 유엔 동의, 한국 문제를 논의하는 국제회의에 한국 대표를 참석시키고, 한국 주권과 영토침범을 불인정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승만은 미국을 상대할 때 이를 협상카드로 썼다. 미국은 그때마다 곤혹스러워했다. 한국이 제시한 중공군의 만주로의 철수와 북한군의 무장해제는 미국이 들어줄 수 없는 조건들이었다. 한국은 휴전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의도였고, 국가의 운명이 걸린 문제를 놓고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그래서 미국이 들어줄 수 없는 조건들을 내세웠다.

정부의 분명한 태도를 밝힌 것이다. 한국 국민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이것을 행동으로 옮겼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전국에서 휴전반대를 외쳤다. 상이용사들까지 거리로 뛰쳐나왔다. 조국의 허리를 인위적으로 절단하고, 조국의 통일을 가로막으며, 단일민족을 남과 북으로 갈라 놓는 강요된 휴전에 대한 결사반대였다.

美, 이승만 정권 교체계획 만들기도

이승만도 휴전을 반대하면서 내심 걱정이 많았다. 그는 한국이 아무리 반대해도 휴전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체념하고 받아들일 문제도 아니었다. 전후 대한민국이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보장책은 ‘한미상호방위조약(韓美相互防衛條約)’뿐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승만은 어떻게 해서든지 이를 성사시켜야 했다. 미국이 알아서 챙겨 주기를 바랐지만, 미국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승만은 실망했다. 평소 자신이 “한국이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우방국은 미국이다”라고 평가한 것에 회의를 품었다. 이승만은 “공산주의라는 사막에서 미국은 자유민주주의의 오아시스(oasis) 역할을 해야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 미국이 휴전을 빌미 삼아 한국을 버리려고 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격이었다.

미국을 다룰 카드를 찾아내야 했다. 이승만은 미국을 압박할 카드 두 가지를 찾아냈다. 하나는 유엔군으로부터 국군을 철수시켜 단독북진을 하는 것이었다. 미국의 위신과 자존심을 상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국력과 군사력만 갖고는 북진통일을 할 수 없었다. 군대유지도 어려운 때였다.

그런데 미국의 도움 없이 북진통일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잘못 사용할 경우 국제사회로부터 역풍을 맞을 수도 있었다. 국가 장래를 생각할 때 위험부담이 컸다. 이승만은 이를 사용하지 않았다. 유엔군사령부는 혹시나 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책을 강구했다. 이른바 ‘에버레디계획(Plan Everready)’이다. 골칫거리인 이승만 대신 다루기 쉬운 사람을 남한의 새 지도자로 내세우기 위한 이승만 정권 전복계획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잘못 판단했다.

李承晩, 포로석방 카드로 ‘미국 요리’

이승만 대통령은 유엔군측의 반대를 무릅쓰고 “우리의 운명은 우리가 결정한다”며 반공포로를 석방해 휴전회담을 진행하는 미국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또 하나는 반공포로 석방이었다. 미국은 송환을 거부하는 반공포로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요구를 무시했다. 미국의 처사에 이승만은 격분했다. 마음에 걸렸던지 미국은 브리그스(Ellis O. Briggs) 주한미국 대사와 클라크 장군을 이승만에게 보내 “정전협정 체결에 협력하면 정치적·경제적·군사적 지원을 보장하겠다”고 했다.

당시 상황에서 미국의 약속은 믿음을 주지 못했다. 이승만은 단호하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은 모든 유엔군을 철수시킬 수 있다. 이제 우리의 운명은 우리가 결정한다. 누구에게 싸워 달라고도 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민주주의가 우리를 도울 것이라고 의존한 것이 실수다. 이제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 대통령에게 협력한다는 보장을 할 수 없다”고 했다.

며칠 후 다시 방문한 클라크에게 “한국 정부는 현재의 휴전조약을 결코 수락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그것이 자살을 의미한다 해도 계속 싸울 것이다. 이후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어떤 조치도 자유로이 취할 것이다”라고 했다.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1953년 6월 18일, 이승만은 반공포로 석방을 단행했다. 워싱턴과 국제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미국은 “등 뒤에 칼을 꽂는 배신행위”라고 비난했다. 공산군 측도 “미국은 한국을 통제할 수 있는가”라며 볼멘소리를 했다. 유엔 참전 우방국도 이승만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이승만은 “다소 늦었지만 해야 할 일을 했다”며 느긋해했다.

상황이 바뀌었다. 이제 미국은 휴전을 하려면 이승만을 달래야 했다. 아이젠하워가 특사를 한국에 급파했던 이유다. 2년간 수세(守勢)에 몰렸던 이승만의 강력한 드라이브가 먹히는 순간이었다. 이제 이승만이 미국을 요리할 차례였다. 이때 그가 내세운 회심의 ‘빅카드’가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이었다.

로버트슨 특사, “유엔군 철수”로 압박

워싱턴은 대통령 특사로 국무부 극동담당 차관보인 로버트슨(Walter S. Robertson)과 육군참모총장 콜린스(J. Lawton Collins)를 파견했다. 이때 덜레스(John F. Dulles) 국무장관은 서신을 보내 “한국이 휴전을 위태롭게 할 권리가 없다”며 이승만에게 쌓인 앙금을 드러냈다.

특사 일행은 1953년 6월 24일 일본 도쿄에 도착해 클라크 유엔군사령관, 머피(Robert D. Murphy) 주일대사와 전략회의를 갖고, “빨리 휴전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만약 회담에서 이승만이 미국의 요구조건을 듣지 않을 때 “유엔군을 한국에서 철수한다”는 카드를 내세우기로 하고, 아이젠하워의 승인을 받았다. 이승만과의 한판 승부를 앞두고 미국이 짜낸 ‘압박카드’였다. 그만큼 이승만을 버겁게 여겼다.

특사 일행은 6·25전쟁 발발 3주년인 1953년 6월 25일에 서울에 도착했다. 로버트슨 특사는 공항에서 “정전협정 및 포로교환과 앞으로의 정치회담 문제를 한국 정부와 협의하러 왔다”고 했다. 특사 일행은 이튿날인 6월 26일 경무대를 방문하고 이곳에서 7월 12일까지 이승만과 마지막 일전(一戰)을 벌이게 됐다. 외교전이었다.

한쪽은 생존, 한쪽은 명예로운 휴전을 두고 자존심을 건 싸움을 펼쳤다. 이승만은 먼저 “4가지 요구사항을 들어 주면, 정전협정을 받아들이겠다”며 선수를 쳤다. 첫째, 상호방위조약을 보장한다. 둘째, 경제원조와 한국군 20개 사단 증강을 지원한다. 셋째, 한국인 반공포로는 비무장지대로 이송해 중립국송환위원회에 인도한다. 넷째, 정치회담에도 시한 제한(90일)을 둔다.

로버트슨은 이승만의 요구사항을 워싱턴에 문의했다. 특사가 결정할 문제가 아니었다. 6월 27일 아이젠하워는 서신을 통해 “필리핀과 유사한 상호방위조약을 협상할 수 있다. 하지만 상원의 인준이 필요하므로 보장할 수 없다”고 했다. 이승만이 회답했다. “상호방위조약을 정전협정 체결 이전에 매듭짓자”며 “정치회담이 결렬될 경우, 특히 중공군이 북한에서 철수하지 않을 때는 전투를 재개하고, 유엔군사령부가 전쟁을 승리로 해결하려는 한국 정부의 노력에 협력하면 한국군을 유엔군사령부의 지휘 아래 둔다”고 했다. 미국 특사는 이번에도 “내게 그런 권한이 없다”면서 워싱턴에 문의했다.

미국의 답변은 앞선 것과 비슷했다. “필리핀식 상호방위조약과 같은 협상을 즉각 개시할 수 있다. 비준은 상원의 권한이다.” 그러면서 “정치회담 결렬시 전투를 재개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이승만은 한국에 유리한 방위조약 내용을 요구했다. 첫째, 한국의 법적 관할권은 두만강과 압록강까지 확대하는 것을 양국 정부는 인정한다. 둘째, 필요할 경우 한반도와 근해(近海)에 미국의 육·해·공군기지를 설치한다. 셋째, 무력침략을 받을 경우, 즉각 자동으로 개입한다. 적용범위는 본토·섬·군대·선박·비행기를 포함한다. 이에 대해 미국은 ‘무력침략을 받을 경우, 즉각 개입’을 제외하고는 모두 받아들였다.

‘세 마리 토끼’를 잡은 이승만의 승리

1953년 10월 1일 워싱턴에서 변영태 외무장관(오른쪽)과 덜레스 미 국무장관이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서명하고 있다. 휴전반대 북진통일을 내세우고 반공포로를 석방한 이승만 대통령의 강수에 미국은 두 손을 들고 휴전에 대한 반대급부로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에 동의했다.

이승만과 로버트슨은 1953년 7월 11일까지 모든 문제에 합의했다. 첫째, 휴전성립 후 한미양국은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다. 이를 위해 덜레스 국무장관이 상원의원들을 설득한다. 둘째, 미국은 장기간의 경제원조와 우선 2억 달러의 원조를 제공한다. 별도로 유엔군사령관은 95만 달러어치의 식료품을 한국민에게 공급한다. 셋째, 한국군을 20개 사단으로 증강하고, 이에 합당한 해·공군력을 지원한다. 넷째, 정치회담에서 90일을 경과해도 구체적 성과를 얻지 못하면 한미 양국은 철수한다. 다섯째, 정치회담 이전에 공동 목표를 토의하기 위해 한미 간 고위급회담을 개최한다.

이승만의 승리였다. 한미상호방위조약뿐만 아니라 경제원조와 한국군 증강까지 얻어냈다. 그것도 전혀 비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받아냈다. 대한민국의 희망이자 생존인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은 이제 시간문제가 됐다. 2년간 미국과의 ‘싸움’에서 이긴 것이다.

국제적 외톨이를 감내하며 미국을 압박해 승리했다. 로버트슨 특사 일행은 7월 12일 한국을 떠났다. 이때 서울과 워싱턴에서는 이승만-로버트슨 회담 결과를 발표했다. 이승만이 그토록 갈망하던 미국과의 ‘동맹’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정전협정 체결 직후인 1953년 8월 4일, 조약체결을 위해 덜레스 국무장관이 8명의 고위사절들을 대동하고 방한해 한국 대표와 방위조약에 대한 내용을 검토했다. 그때 이승만은 덜레스에게 “한국은 생존을 위해 투쟁하고 있으며, 소련과 중국이 북한을 지원하는 한 진정한 휴전이나 평화는 있을 수 없다”고 하면서, “한국이 도움을 요청할 유일한 나라는 미국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승만은 또 “한국의 운명은 세계적 문제이며, 한국이 공산화되면 다른 나라들도 곧 공산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약내용에 대한 검토가 끝나자, 1953년 8월 8일 변영태 외무장관과 덜레스 국무장관이 중앙청에서 상호방위조약에 가조인했고, 그해 10월 1일 워싱턴에서 양국 외무장관이 정식으로 서명했다.

10개 사단 추가신설 등 한국군 증강도 얻어내

한미동맹이 시작됐으나 발효까지에는 아직 절차가 남아 있었다. 양국 국회의 비준을 받아야 했다. 먼저 한국 국회가 1954년 1월 15일에, 그리고 미 상원외교위원회가 1954년 1월 19일에 “대외적인 무력공격이 있을 때에만 상호 원조할 책무를 갖는다는 조항을 첨가한다”는 조건부로 가결했다. 이로부터 1주일 뒤인 1월 26일, 미 상원이 비준했다. 하지만 마지막 단계인 비준서 교환이 양국의 입장차이로 연기됐다. 원래 비준서 교환은 1954년 3월 28일 하려 했으나, 이승만이 즉각적인 군사력 증강을 요구함에 따라 미국이 연기했다. 비준서 교환은 그해 11월 17일 이뤄졌다. 이로써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정식으로 발효됐다.

이날 양국은 군사 및 경제원조에 관한 합의의사록에도 조인했다. 합의의사록에는 미국이 한국에 1955 회계연도에 4억2000만 달러의 군사원조와 2억8000만 달러의 경제원조를 제공하고, 10개 예비사단의 추가 신설과 79척의 군함, 그리고 약 100대의 제트 전투기를 제공한다고 했다.

한국은 미국의 지원조건에 “유엔군사령부가 한국 방위에 책임을 부담하는 동안 한국군을 유엔군사령부의 작전지휘권하에 둔다”고 합의했다.

합의의사록의 조인으로 한국은 육군 66만1000명, 해군 1만5000명, 해병대 2만7500명, 공군 1만6500명 등 72만명의 상비군을 유지하게 됐다. 이로써 이승만은 1949년 주한미군 철수를 전후해 미국에 끈질기게 요구했던 상호방위조약과 한국군 증강의 실현을 보게 됐다. 이승만의 오랜 꿈이 실현됐다.

이로써 한미동맹이 그 ‘거보(巨步)’를 내딛게 됐다. 그로부터 60년이 지났다. 한국은 놀랄 만큼 발전했고, 미국은 그런 한국을 “안보적·경제적 우등생”이라며 치켜세웠다. 한미동맹을 있게 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한미 양국 모두의 승리였다. 한미동맹 60년의 쾌거였다. 그 중심에는 대한민국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 군사적 안보가 정치적 민주주의나 경제적 발전보다도 우선돼야 한다고 굳게 믿었던 이승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위대한 지도자’의 ‘위대한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