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비화] 대한민국 공군의 起源, 1920년 美 현지에 창설된 「臨政 비행학교·비행대」 : 월간조선

이 글은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대목인 독립운동사를 재조명함은 물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공군력을 앞세운 독립전쟁을 위해 1920년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윌로스(Willows)시 일원에 창설한 ‘비행학교·비행대’가 우리 공군의 자랑스러운 기원임을 밝히는 것이다. 명칭을 비행학교·비행대라고 규정하는 이유는 조종사양성소와 공군부대 역할을 겸하기 때문이다.

공군은 헌법정신에 따라 임정(臨政) 비행학교·비행대가 오늘날 한국 공군의 기원임을 재확인하고 이를 향후 공군 발전의 토대로서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2012년 2월 공군본부에 태스크포스팀을 출범시켰다. 공군 참모총장의 명령에 의해 출범한 태스크포스팀은 공군 참모차장이 지휘하는 가운데 조형물 건립, 다큐멘터리 필름 제작 등 11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비행학교·비행대는 단순한 과거 이야기가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중요한 미래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武裝투쟁 경험 쌓기 위해 세계대전에 參戰

일제의 한반도 침탈 야욕이 거세지던 구한말, 한민족은 일제 수탈을 피하거나 해외에서 개화 또는 독립 운동을 위해 한반도 밖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중국·만주·러시아에서 미국·멕시코에 이르기까지 아시아·유럽·아메리카로 움직였다.

세계지도에서 조선이라는 나라가 사라지자 한민족은 독립운동이라는 시대정신을 공유했는데, 이를 위한 중요한 책략 가운데 하나가 무장(武裝)투쟁이었다. 무장투쟁을 통한 독립 쟁취라는 점에서 당시 한민족은 현재 대다수 한국인들이 막연히 알거나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치열하게 살았다.

한일합방이 있은 지 4년 만에 터진 제1차 세계대전은 무장투쟁을 통한 독립을 모색하던 한국인들에게는 새로운 기회의 장으로 여겨졌다. 이들 가운데는 참전(參戰)을 통해 군사적 노하우(know-how)를 익혀 독립전쟁에 활용할 목적으로 러시아군이나 미군이 된 이들이 많다.

《신한민보》 1917년 9월 13일자에는 러시아군(軍)으로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한인(韓人)들이 부른 ‘구주전장 한인군가’가 게재돼 있다. 러시아군으로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한인들이 군가에 나타나는 대로 ‘1만 건아’ 규모에 이르렀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이 군가는 꽤 많은 수의 한인이 러시아군으로 참전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 군가는 ‘이 싸움에 싸움법을 못 배우면 이담 날 우리 싸움 어이 하리’라며 참전 목적이 훗날 독립전쟁을 위한 것임을 명백히 하고 있다.

동북아시아에 있던 한인들이 독립전쟁을 염두에 두고 러시아군에 들어간 것과 마찬가지로 북아메리카와 하와이에 있던 한인들은 미군에 들어갔다.

《신한민보》 1918년 12월 26일자에는 ‘이 조지 씨는 이번 전쟁에 비행가로 종군하여 저명한 터’라는 기사가 게재돼 있는데 여기 등장하는 ‘이 조지(George Lee)’가 수천 년 한국사를 통틀어 한민족 최초의 파일럿이라는 위대한 파이어니어로 남게 되는 이응호이다.

이응호는 1896년 제물포에서 태어나, 1903년 아버지 이두형을 따라 미국으로 갔다. 그는 어려운 이민생활 속에서도 독립운동에 지성을 다하는 아버지를 보며 자랐다. 수년 동안 1차대전 뉴스를 따라가던 이응호는 미군에 입대해 육군항공대 소속 파일럿으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 156회 출격을 기록하는 전쟁영웅으로 떠올랐다.

그가 파일럿이 되는 과정과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전쟁영웅이 된 부분에 대해 가장 정확하고 종합적인 정보를 담고 있는 문건이 미국신문 《스톡턴 데일리 레코드(Stockton Daily Record)》 1918년 12월 18일자이다.

<조지 리(George Lee)는 21세인 한국인으로 미국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직후 (중략) 미군 항공대에 들어갔으며 (중략) 미첼필드(Mitchell Field) 비행학교를 졸업하면서 파일럿이 됐다. 지난 6월 해외로 파병됐으며 프랑스에 도착한 후 3개월 동안 비행학교와 연계돼 있기도 하고 실전에도 배치됐다가 종전을 맞았다. 전쟁이 끝났을 때는 156회 무사고 출격을 기록하고 있었고, 그는 자신의 지휘관이 빛나는 업적을 치하해 수여한 미군 항공대의 표지가 새겨진 반지를 손가락에 끼고 있다. (하략)>

이응호가 1918년 5월 말 전후해 정식으로 파일럿이 된 그날이 수천 년 한민족 역사에서 최초의 파일럿이 탄생한 날이다.

한국인 파일럿의 탄생

대한민국 임시정부 비행장교 1호인 박희성(위)과 이용근의 조종사 자격증. 임정(臨政)은 박희성, 이용근이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한 지 11일만인 1921년 7월 18일 비행장교로 임명했다. (자료출처=박희성, 이용근 유족)

1920년을 전후로 한국인 출신의 파일럿이 여럿 탄생했다. 1919년 한인(韓人) 파일럿의 다른 선구자인 노정민은 미국 해군 파일럿이 돼 필라델피아에서 시카고까지 비행했다. 1920년에는 미국 레드우드 비행학교에서 비행술을 배운 오림하·이용선·이초 등이 파일럿 자격증을 획득했다. 1921년에는 박희성·이용근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비행학교·비행대 출신으로 수천 년 한국사를 통틀어 한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임관시킨 비행장교 1호가 됐다. 같은 해 안창남이 일본에서 비행교육을 받고 파일럿이 되기도 했다.

먼저 이응호에 이어 1910년대 후반 파일럿이 돼 한국 항공사의 지평을 열었던 노정민에 대해 살펴보자. 노정민은 1916년 9월 학생 신분으로 중국 상해를 떠나 처음 미국 땅을 밟았으며 이로부터 약 3년 후에는 조종사가 돼 있었다. 노정민과 관련된 기록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이 에싱턴(Essington) 미 해군 비행학교에서 훈련받으면서 쓴 <비행세기>란 글이다.

<반도민족이 비행대를 양성하며 연구함이 시기와 응용에 적당하다 하겠다. (중략) 천강지손 반도민족은 국가의 치욕을 씻고 민국의 국민 된 자격과 직책을 하려면 비행술을 연구치 아니하고는 조국을 빛내며 후일에 공중전쟁을 시험하며 세계열강과 더불어 문명을 서로 다툴 수 없다 하나이다.>

국가 차원에서 공군을 창설하자는 제안을 문서로 공개적으로 한 것이었다.

이응호나 노정민과 같은 시대를 살면서 이들처럼 독립전쟁을 위해 파일럿이 된 인물 가운데 최자남도 있다. 최자남 역시 미군에서 군사적 노하우를 얻어 훗날 한국 독립전쟁을 위해 활용하겠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는 샌디에이고(San Diego) 육군비행학교에서 훈련을 받으면서 《신한민보》에 보낸 서한을 통해 소감을 밝히며 독립전쟁을 위해 한인청년들이 조종사가 될 것을 권했다.

<비행자 중에 부상이 있을 때는 두려움도 없지 아니하되 다시 정신을 가다듬어 비행기에 올라 태평양에 높이 떠 쥐 같은 왜왕의 머리를 부술 예상을 느낄 때에는 대한공화국 만만세 소리가 절로 나온다. (중략) 누구든지 상당한 학식과 건장한 체격을 갖춘 이는 많이 비행생활을 시험하기를 권한다.>

한민족의 독립 염원을 담고 터져 나왔던 3·1운동은 국내외적으로 실로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면서 각계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 영향 가운데서도 공군의 기원과 관련해서는 최소한 두 가지가 직접 관계 있다. 하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출현이고, 또 하나는 ‘대한인국민회 청년혈성단’(이하 청년혈성단)이라는 항일(抗日)결사단체의 결성이다.

臨政 차원에서 비행학교·비행대 창설을 주도한 盧伯麟 장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21년 7월 18일부로 박희성ㆍ이용근을 비행장교로 임관시키는 명령문서. 이 문서를 통해 한국 정부에 의한 최초 비행장교가 탄생했다.(1921년 7월20일자 임시정부 공보)

청년혈성단은 3·1운동의 영향으로 상해임시정부가 설립된 직후인 1919년 5월 재미동포 청년들이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독립전쟁을 목적으로 결성한 항일단체이다. 발기인 23명으로 출발한 청년혈성단은 군사적 노하우를 배워 임시정부 군무부의 지휘를 받기로 했다.

청년혈성단이 임시정부 비행학교의 출현과 직접 관계가 있는 이유는 청년혈성단원 다수가 독립전쟁을 위해 조종사가 될 목적으로 미국 군 또는 민간 비행학교에 들어갔으며, 이들이 훗날 임시정부 비행학교의 중요한 인적 구성원이 되기 때문이다. 청년혈성단원 몇 명이 비행학교에 들어갔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발기인 23명 가운데 이용근·이용선·이초·장병훈·최자남·한장호 등 최소 6명이 조종사의 길을 택했던 것은 확인된다.

이들은 청년혈성단의 4대 행동강령 가운데 하나인 ‘독립운동에 사용할 학술 혹은 군사상 기예를 배울 것’을 먼저 본인들 스스로 실천하면서 그 군사상 기예로 비행을 택했다. 그리고 잠시 후 이들은 임시정부의 부름을 받게 된다. 임시정부 초대 군무총장(현 국방장관)으로 임명된 노백린(盧伯麟·1875~ 1926) 장군이 미국 본토 순방에 나서 1920년 1월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했을 때였다.

노백린 임정 군무총장은 개인 또는 단체 차원에서 진행되던 비행 전투 교육을 정부 차원에서 통합하려 했던 인물이다. 당시 독립전쟁을 위해 이응호·노정민·최자남 등이 미군 조종사가 됐고, 이용근·이용선·이초·장병훈·최자남·한장호 등 청년혈성단원들이 미군 비행학교나 민간 비행학교에서 비행교육을 받고 있었다.

노백린 장군은 1895년 조선정부 관비유학생으로 일본 게이오 의숙에 유학하고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대한제국 육군 참위(현재 소위)로 임관, 정령(현재 대령) 진급과 함께 연성학교 교장이 됐다. 1907년 군부(현재 국방부) 교육국장을 맡지만 불과 2달도 못돼 대한제국 군대가 일제에 의해 강제 해산되는 비운의 현장에 서게 된다. 한일합방으로 대한제국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질 무렵 노백린은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1916년 12월 하와이로 망명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의해 군무총장으로 임명된 노백린은 임시대통령 이승만(李承晩) 및 민족지도자 서재필(徐載弼) 등 미국 본토에 있던 지도자들과 만나고자 본토 순방에 나섰다. 그는 본토 순방 초기에는 재미동포 청년들을 시베리아로 보내 현지에 파병된 미군과 협력해 광복군을 양성할 계획이었으나 미국의 파견군 소환결정으로 이 계획이 무산되자 노선을 수정했다. 노선 수정은 본토 방문 후반부인 1920년 1월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하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비행학교·비행대 창설로 이어진다.

재미동포 청년들을 시베리아로 보내 광복군을 양성하겠다는 계획을 버린 노백린은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해야 하는 숙제를 안은 채 미국 서부 방문을 위해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이때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는 대대적 환영행사를 준비해 조국 정부의 군사책임자를 열렬히 맞으면서 환영식에 ‘레드우드 비행학교’에서 조종을 배우고 있던 재미동포 청년들을 합창단으로 초청했다.

한인청년 파일럿 지망생들과 첫 만남이 있은 지 약 3주 후인 1920년 2월 5일 노백린은 ‘레드우드 비행학교’를 답사하면서 대부분 청년혈성단 출신으로 그곳에서 비행을 배우던 이용근·이용선·이초·장병훈·최자남·한장호 등 한인청년 6명과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이 사진은 노백린이 다른 6명과 똑같이 완벽한 비행복을 착용, 임시정부 차원에서 비행학교·비행대를 창설하기로 마음을 굳혔음을 시사하고 있다.

백만장자 김종림의 獻身

김종림 선생. 대한민국 임시정부 비행가양성사 총재. 그의 재정적 후원이 없었다면 임정의 비행학교ㆍ비행대는 출범하지 못했을 것이다.(사진제공=김종림 유족)

이 무렵 노백린에게는 어려운 숙제가 남아 있었다. 바로 군자금이었다. 공군은 비행기도 장만해야 하고 조종사도 훈련시켜야 하는 그야말로 돈이 많이 들어가는 군대였다. 이때 노백린은 한 인물을 만나는데 그가 독립운동가이자 신문인, 사회봉사자였던 백만장자 김종림(1884 ~1973)이었다.

김종림은 젊은 나이에 빈손으로 미국으로 가, 조국도 없는 가난한 이민자로서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난세를 타고 불과 10여년 만에 막대한 부를 축적한 풍운아였다. 그는 자신의 재산을 통해 임시정부 산하 공군의 기틀을 다지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김종림이 미국 본토에 도착한 것은 1907년 1월로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Salt Lake City)로 갔다. 철도노동자로 일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 철도노동자의 삶을 청산하고 1908년 캘리포니아로 돌아와, 독립운동가이자 사업가로서 면모를 서서히 드러내게 된다. 이 시기에 김종림은 아직은 사업가로서 탐색기를 보내면서도 1913년 안창호·조병옥 등과 함께 흥사단을 창설하는데, 그는 당시 각 1명이던 8도 대표 가운데 함경도 대표를 역임했다.

이 무렵 캘리포니아는 산업적으로 획기적 전환점을 돌게 된다.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쌀 생산이 전무하다시피 했던 캘리포니아가 1912년부터 상업적 쌀농사를 시작한 것이다. 이로부터 불과 2년 만에 터진 1차대전으로 유럽이 황폐화하면서 세계 곡물시장의 수급이 급변하자 캘리포니아는 쌀농사로 톡톡히 재미를 보게 된다. 오늘날 캘리포니아 쌀농사의 메카로 알려진 윌로스의 대평원이 그 무렵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김종림을 포함, 구한말 미국으로 건너가 이곳에 정착한 한국인 다수가 쌀농사를 지었는데 그중 일부는 상당한 재산가가 됐다. 이들의 경제력은 이 무렵 조선독립운동의 버팀목이었다.

포항공대 인문사회학부 고정휴 교수에 따르면, 1919년 5월에서 1920년 12월 사이 임시정부의 재정수입 13만1909달러(상하이 실버 달러) 가운데 재미동포 기부금이 45%였다. 1919년 재미동포의 독립자금 기부액 8만8000달러 가운데 49%에 달하는 4만2955달러가 새크라멘토 밸리 일원에서 농업에 종사하던 한인들의 곳간에서 나왔다.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1차대전은 김종림의 인생도 바꿨다. 그는 세계곡물시장의 수급과 가격이 급변하는 격랑을 헤치며 쌀농사를 통해 거부(巨富)로 떠올랐다. 김종림의 농토는 해마다 확장돼 1915년 최소 100에이커, 1916년 최소 280에이커, 1917년 최소 1030에이커, 1918년 최소 1800에이커, 1919년 최소 3300에이커로 커 갔다. 김종림이 벌어들인 순익만 1918년 약 28만 달러, 1919년 약 52만 달러로 추정된다.

독립수단으로 군사력을 중시했던 김종림은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미국도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자 환갑을 눈앞에 둔 나이에도 불구하고 미군(美軍)에 들어갔다. 김종림뿐 아니라 그의 두 아들 모두 미국 해군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 태평양전선에서 일본과 싸웠다. 3부자 모두 군인이 돼 일본과 싸운 셈이다.

조선독립을 위해 비행조종사 양성

이동휘 국무총리가 노백린 군무총장에게 보낸 1920년 4월 13일자 서신(왼쪽)과 노백린 군무총장이 이동휘 국무총리에 보낸 1920년 5월 19일자 답신. 비행대 문제에 관해 지침을 주고받고 있다. (자료출처=독립기념관)

돈을 벌 줄도 알았고 쓸 줄도 알았던 김종림은 1920년 초 노백린을 만나면서 자신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업적이면서 독립운동사에 길이 남을 결정을 한다.

김종림은 공군양성 계획에 흔쾌히 동참하기로 하고 즉시 이를 행동에 옮겨 비행학교 창설을 위해 일시불로 2만 달러를 내고 매달 3000달러씩 지원하기로 했다. 한 해 지원금만 약 5만 달러에 달했다. 미국 경제학계가 분석한 화폐가치 환산 기준에 따르면, 당시 5만 달러는 요즘 돈으로 1000만 달러를 약간 밑도는 거금이었다. 당시 김종림은 레드우드 비행학교에서 조종술을 배워 독립전쟁에 참가하려는 한장호의 교육비를 지원하고 있었다.

임시정부는 공군력을 앞세운 독립전쟁이라는 원대한 계획을 갖고 1920년 3월 캘리포니아 북부 윌로스 일원에 비행학교를 창설했다. 비행학교 창설과 그를 위한 준비에 대해서는 미국신문 《윌로스 데일리 저널(Willows Daily Journal)》 1920년 2월 19일자에 자세히 전해진다.

<쌀농사를 짓는 부호 한국인 김종림씨가 한인 청년들에게 비행을 가르치기 위해 윌로스 근처에 비행장을 설치할 계획이라고 오늘 말했다. 그들은 체육 문화 교사 1명과 영어 교사 1명도 채용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최근 문 닫은 퀸트학교(Quint school)를 이미 임대했다. 학교 인근에 있는 비행장 부지는 40에이커인데, 이 땅도 이미 구매를 마쳤다. 한국인들에게 비행을 가르칠 조종사 1명과 교사들을 도울 직원들도 이미 채용했다. 최첨단 기종인 비행기 3대도 이미 사들여 곧 도착한다. 비행장은 즉시 모습을 갖출 것이며 격납고들도 만들어질 것이다. 정비사 2명이 이 비행기들을 최적의 상태로 유지할 것이다. (중략) 최근 김종림씨의 부인이 S. M. 체니 교육감을 찾아왔는데 (중략) 이 학교에 약 100명의 학생들이 다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 후 김종림씨가 교육감을 만나 학생수를 15명으로 줄였다. (중략) 이곳에서 비행교육을 받는 한국인들은 자기들의 조국으로 보내져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가 적절한 때가 되면 일본으로부터 조국을 되찾는 데 기여할 것으로 믿어진다.>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한 재미 한인사회가 공군력을 통한 독립전쟁에 대한 관심과 실천으로 어느 정도 하부구조(infrastructure)를 축적한 상황에서 임시정부 군사정책을 책임진 노백린의 캘리포니아 방문이 곧바로 비행학교 설립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이 기사는 비행학교 설립 목적이 ‘독립전쟁을 위한 조종사 양성’임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이 비행학교는 ‘국무총리→군무총장’으로 이어지는 공식적인 지휘계통에 따라 임정의 지휘를 받는 정규 군사학교였다.

노백린이 군무총장이라는 공식 직책을 갖고 이 비행학교를 창설했다는 점 외에도, 이 비행학교가 임시정부의 공식 군사정책의 일환으로 설립됐다는 사실을 가장 직접적으로 입증하는 문건이 이동휘 국무총리가 노백린에게 보낸 1920년 4월 13일자 서신이다.

<비행대의 일은 아주 찬성입니다. 적이 우리의 병력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니, 도리어 육지전으로 승리를 얻기에는 적의 강함을 감당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형, 공중전의 계획은 매우 어렵고 복잡하니 서신으로는 다 전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비행대의 조성과 비행가 양성의 일은 현재 우리가 서둘러야 하는 필요 불가결한 일일 것입니다. (중략) 1. 비행대에 관한 건은 우리 형께서 가장 적절한 인물을 선택하시어 그로 하여금 계속 일을 진행케 하십시오. 2. 비행기(원문에는 ‘飛行車’로 돼 있음) 10대(원문에는 ‘匹’로 돼 있음)는 이 서신으로써 충분히 희망적이며, 우리 형제께서는 (하략).>

이동휘와 노백린은 둘 다 대한제국군 영관장교 출신으로 독립전쟁에 관해 비슷한 견해를 가진 입장이었다. 이동휘는 참령(소령), 노백린은 정령(대령) 출신이다.

첨단 훈련기 3~5대 보유·생도 24명으로 훈련 시작

노백린 군무총장(가운데)이 1920년 2월 5일 ‘레드우드 비행학교’를 방문, 이곳에서 독립전쟁을 위해 이미 비행을 배우고 있던 한인청년들과 찍은 사진. (사진출처=USC동아시아도서관)

앞서 살펴본 《윌로스 데일리 저널》 기사와 이동휘 국무총리의 지휘서신은 임시정부가 어느 정도 규모를 염두에 두고 비행학교를 창설했는지에 대해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윌로스 데일리 저널》 2월 19일자 기사에는 ‘김종림씨의 부인은 이 학교에 약 100명의 학생들이 다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돼 있다. 실제로 이 학교는 이로부터 불과 수개월 만인 1920년 여름 한인청년 수십 명에게 비행훈련을 시켰다. 이동휘의 서신에는 ‘비행기 10대는 이 서신으로써 충분히 희망적’이라고 쓰여 있다. 《윌로스 데일리 저널》과 이동휘의 지휘서신을 종합하면, 임시정부는 ‘비행기 10대를 보유하고, 생도 100명을 동시에 교육할 수 있는’ 규모를 염두에 두고 비행학교를 설립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당시 미국 비행학교의 파일럿 기본 훈련기간이 평균 6개월 정도였음을 감안하면, 임정은 ‘비행기 10대를 보유하고 1년에 200명을 파일럿으로 배출하는 수준’으로 가져가려 했음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이 비행학교는 이로부터 불과 수개월 만에 최첨단 훈련기 3~5대를 자체적으로 보유하게 된다.

오늘날 한국 공군사관학교가 한 학년에 170명 안팎의 생도를 갖고 있으며 이들 가운데 절반 정도가 조종사로 배출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시 임정이 대규모 계획을 추진했음을 알 수 있다.

임정(臨政)은 윌로스에 이어 중국 여러 곳에도 비행학교를 세우고 먼저 배출되는 조종사들을 나중에 세우는 비행학교의 교관으로 활용해 줄잡아 수백 내지 수천 명의 조종사를 대거 양성하려는 계획이었던 것 같다.

이 비행학교가 실질적으로 문을 연 날은 1920년 3월 1~19일 사이로 생도 24명으로 출발, 곧바로 비행기도 보유하는 등 급속히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비행학교에 처음 입교한 청년 24명은 정비사·학생·전도사·실업가 등으로 직업도 다양했는데 학생 수는 이로부터 3개월 후인 6월 22일 현재 30명으로 늘어났다.

비행학교는 1920년 7월 5일 축하비행까지 곁들인 공식 개교식을 갖고 조직도 정비하면서 박차를 가했다. 이 공식 개교일이 수천 년 우리 역사에서 공군이라는 씨앗이 공식적으로 뿌려진 날이다.

비행학교 관계자들은 이날 개교식 후 비행학교의 유지와 경영을 돕기 위해 ‘비행가양성사’를 조직하고 ‘비행가양성사 장정’을 채택, 비행학교를 보다 체계화했다. 편제상 비행가양성사는 비행가양성소(비행학교)의 상급기관으로, 학교 운영을 총괄하는 비행학교 감독관을 임명하는 시스템이었다. 이에 따라 비행가양성사 초대 총재에 김종림(당시 34세·흥사단원), 비행학교 초대 감독관에 곽림대(당시 35세·흥사단원)가 각각 취임했다. 이 무렵 비행학교 학생 16명이 창립회원이 돼 ‘대한인 비행가 구락부’를 조직했다. 이 모임은 한국 최초의 파일럿 클럽으로, 한장호(당시 27세·흥사단원)가 초대 회장을 맡았다.

일본의 감시

1920년 9월 20일자 일본 정보보고서 중 <국외정보:최근 구미에 있어서 불령선인의 행동>의 일부. 당시 일본은 임시정부의 비행학교ㆍ비행대가 급속히 체계를 잡자 날카롭게 신경을 곤두세웠다.(자료출처=독립기념관)

비행학교가 급속히 체계를 잡자 일본은 날카롭게 신경을 곤두세웠다. 일본은 1920년 9월 20일자 정보보고서 <국외정보: 최근 구미에 있어서 불령선인의 행동>(문서번호: 고경 제29493호 비수 12219호, 수신: 조선총독부 경무국장 등) 등을 통해 비행학교에 대한 정보를 취합했다.

이 정보보고서는 20쪽 분량으로, ‘캘리포니아에 있는 조선인비행기학교’라는 제목으로 3쪽에 걸쳐 임시정부 비행학교 문제를 다루고, 이어서 노백린 장군을 중심으로 한 캘리포니아 북부 재미동포사회의 군사적 독립운동 동향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비행학교 관련 정보는 다음과 같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윌로스에 있는 조선인비행기학교는 지난 7월 7일 제1회 졸업식을 거행했다. 당일 교장 노백린, 총재 김종림은 “장래 일본에 대한 독립전쟁은 비행기에 의존하는 것 외의 수단은 없다”고 극언을 했다. 제1회 졸업생은 우병옥·오림하·이용식·이초 등 4명이며, 현재 연습생은 25명이고, 무선전신 장치가 있는 완전한 비행기가 5대 있다.>

임시정부 비행학교ㆍ비행대가 훈련기로 사용했던 ‘스탠더드 J-1’.

1921년 3월 25일자 정보보고서에서는 이 비행학교를 ‘호국독립군 비행기학교’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정보보고서는 비행학교의 전체적 윤곽과 관계 인물에서 운영방식에 이르기까지 정보가 취합돼 있어 일본 당국이 큰 틀에서 움직임을 이해하는 데는 지장이 없을 정도지만, 개교식 날짜, 노백린 직함, 졸업생 이름 등 여러 면에서 사실과 조금씩 달라 정확성 자체는 다소 떨어졌다.

이 비행학교가 사용했던 비행기는 2인승 복엽기로 당시 최첨단 훈련기 가운데 하나였던 ‘스탠더드 J-1’이었다. ‘스탠더드 J-1’은 제1차 세계대전 때 미국 육군 및 해군 항공대가 훈련기로 사용하던 기종으로 미국회사인 스탠더드(Standard) 항공사가 제작,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6년 처녀비행을 했던 기종이다.

당시로서는 최첨단 기종이었으나 원래 장착돼 있던 4기통 ‘홀스캇 A7a 엔진’에 문제가 있어 비행 중에 떨림이 심해, 역시 최첨단 훈련기로서 명성을 날리던 ‘커티스 JN-4’(Curtiss JN-4: ‘OX-5’ 엔진 장착)보다는 다소 선호도가 낮았다.

K.A.C는 ‘Korean Air Corps’의 略字

임시정부 비행학교ㆍ비행대 모습. 비행기 동체에 ‘K.A.C.’라는 글씨가 보인다. K.A.C.는 ‘Korean Air Corps’(대한민국 비행대)의 약자이다.

비행학교는 처음 설립 때부터 비행대(飛行隊) 창설을 염두에 둔 1단계 조치였다. 국무총리 이동휘, 군무총장 노백린, 비행가양성사 총재 김종림을 비롯해 이 비행학교에서 비행교육을 받던 생도들도 이 비행학교를 곧 비행대로 인식했으며, 비행학교 설립과 함께 급속히 자리도 잡고 체계화하면서 곧바로 비행대라는 용어도 사용하기 시작했다.

비행대라는 용어와 개념은 임시정부가 1919년 11월 5일 반포한 ‘법률 제2호 대한민국임시관제’에 이미 등장한다. 임정은 여기서 임시대통령의 직할기관으로 대본영·참모부·군사참의회·회계감사원을 둔다고 하고, 군무부의 편제에서 육군국은 육군비행대에 관한 사항을 다루고 해군국은 해군비행대에 관한 사항을 다루도록 했다.

비행학교를 설립한 직후인 1920년 4월 13일 이동휘 국무총리가 노백린에게 보낸 서신에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비행대의 일은 아주 찬성입니다. (중략) 그러나 비행대의 조성과 비행가 양성의 일은 현재 우리가 서둘러야 하는 필요 불가결한 일일 것입니다. (중략) 비행대에 관한 건은 우리 형께서 가장 적절한 인물을 선택하시어 그로 하여금 계속 일을 진행케 하십시오.”

이로부터 일주일 후인 1920년 4월 20일자 《독립신문》에 게재된 당시 비행학교 생도의 기고문에서도 비행대와 무선전신대가 등장한다. ‘비행대’라는 용어는 이 비행학교·비행대의 모습을 담은 사진 가운데 하나에 당시 누군가가 써 넣은 ‘미국 가주 한인비행대 노백린 장군 지휘하에’라는 메모에도 등장한다. 비행학교에서 비행대로의 개념 확대는 당시 비행학교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을 통해 명백하게 나타난다.

이 사진들에는 당시 비행학교·비행대가 사용했던 비행기들이 담겨 있는데 이 비행기 동체에는 ‘K.A.C.’라는 영문 약자가 쓰여 있다. ‘K.A.C.’가 무엇의 약자인지를 보여주는 문건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임시정부 비행학교·비행대를 깊이 연구한 미국 남가주대학(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동아시아도서관장 케네스 클라인(Kenneth Klein) 박사는 “이 비행학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독립전쟁을 목적으로 공군 양성을 위해 공식적으로 추진했다. 따라서 ‘K.A.C’는 ‘대한민국 비행대’ 또는 ‘대한민국 공군’을 뜻하는 ‘Korean Air Corps’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비행학교는 7월 공식 개교식도 갖고 3~5대의 훈련기도 자체 보유하면서 시스템도 정비하는 등 급속히 자리를 잡기 시작했으나, 김종림의 농장이 1920년 10월 폭풍우로 결정적 타격을 입으면서 위기를 맞았다. 캘리포니아에서는 통상 10월 첫째 주부터 쌀 수확을 시작하므로 김종림의 농장이 1920년 10월 둘째 주에 발생한 폭풍우에 며칠만이라도 일찍 수확을 시작했더라면 비행학교·비행대의 미래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게 하는 아쉬운 대목이다.

연희전문학교 축구부 주장 출신의 박희성

비행학교 후원에 적극적이었던 다른 농장의 한인 동포들도 제1차 세계대전 종료와 함께 쌀 특수가 끝남에 따라 재정적으로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재미동포사회의 무게중심은 사업적으로 농업에서 상업으로 옮겨졌고, 지리적으로도 윌로스와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한 캘리포니아 북부에서 로스앤젤레스를 중심으로 한 캘리포니아 남부로 이동했다.

임시정부 비행학교·비행대의 재정을 도맡다시피 했던 비행가양성사 총재 김종림의 농장이 폭풍우로 직격탄을 맞자 비행학교·비행대는 재정이 어려워지면서 기능이 사실상 정지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비행을 배우던 한인 청년들이 선택할 수 있었던 길은 조종사가 돼 독립전쟁에 참가하겠다는 꿈을 버리지 않고 미국인 민간 비행학교에서 비행을 계속 배우거나, 아니면 그 꿈을 버리는 것이었다. 임시정부가 공식적으로 비행장교로 임명함으로써 ‘비행장교 1호’가 된 박희성과 이용근은 전자를 택한 인물들이다.

박희성(朴熙成·1896~1937)은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현재 미국 뉴저지주에 살고 있는 박희도(기미독립선언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의 아들 박승두, 그의 아들 박홍남의 증언이다.

“박희성은 둘째 형(박희도)이 다니고 있던 연희전문학교(연세대학교의 전신)에 들어가 축구부 주장을 지냈다. 그때 둘째 형이 ‘학교에 다니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미국으로 가서 비행술을 배워 독립전쟁을 준비하라’고 해서 미국으로 와 임시정부 비행학교에 다녔다.”

미국 연방정부 인구조사자료에 따르면 박희성의 미국 도착연도는 1918년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1918년 11월에 끝났다는 사실과 당시 조선에서 미국 본토까지 가기 위해서는 약 2개월 이상 소요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박희성은 1917년 말에 조선을 떠나 1918년 초에 미국에 도착했거나 또는 늦어도 1918년 10월 말 전에는 조선을 떠나 같은 해 미국에 도착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박희성은 제1차 세계대전이 진행 중일 때 조선을 떠났다는 얘기다. 한민족 최초의 파일럿 이응호가 조종사로 세계대전에 참전해 군사적 노하우를 체득하고 이를 바탕으로 훗날 독립전쟁에 참가하려고 미군 파일럿이 됐듯, 박희성도 똑같은 길을 모색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 인구조사자료에는 박희성의 직업이 정비사로 돼 있어, 그가 미국에 간 후 조종사가 되기 위해 착실히 준비하고 있었음도 알 수 있다.

박희성은 1920년 3월 임시정부 비행학교가 개교하자마자 정몽룡·조종익 등 다른 한인 청년 23명과 함께 이곳에 들어갔다. 박희성이 당시 비행을 배우던 한인 청년들 가운데 가장 기량이 뛰어났다는 기록도 있다. 박희성은 김종림의 농장이 타격을 입으면서 임시정부 비행학교·비행대가 휘청거리자 새크라멘토에 있는 미국 민간비행학교에서 비행훈련을 계속했다. 이 학교는 박희성의 기량을 높이 사 장학생으로 비행교육을 계속 받도록 해 줬다.

한민족 최초의 파일럿 이응호(미국명 George Lee)의 미 육군 징병카드. 1917년 6월 5일자. 이응호가 1896년 제물포 출신임을 알 수 있다.(자료출처=트레이시족보협회)

훈련 중 기체 추락으로 중상 입은 박희성

박희성은 1921년 4월 10일 조종사 자격시험을 치르다 기체사고로 비행기가 대파되면서 중상을 입은 후, 본인은 수술을 거부했으나 의사의 결단으로 생명을 구했다. 연희전문 축구부 주장을 지낸 사실이 시사하듯 당시 조선 최고의 지성과 체력을 겸비한 청년으로서 독립전쟁을 위해 조종사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미국으로 건너갔던 박희성은 사선(死線)을 넘나드는 큰 사고를 당했음에도 불굴의 투지로 병상을 떨치고 일어나, 수술을 받은 지 불과 3주도 못 된 5월 22일 조종사 자격시험을 다시 치렀다.

박희성은 이 시험을 통과해 이로부터 두 달 후인 1921년 7월 7일 국제항공연맹(FIA)으로부터 조종사자격증을 받았다. 같은 날 이용근 역시 국제항공연맹 조종사자격증을 받았다.

박희성과 이용근이 파일럿이 됐다는 보고를 받은 임시정부는 즉시 장교 임명 조치를 취해 1921년 7월 18일 두 조종사를 ‘육군 비행병참위(飛行兵參尉)’로 임명했다. 두 사람이 국제항공연맹으로부터 조종사자격증을 받은 지 불과 11일 만이었으며, 이로써 수천 년 한국사에 걸쳐 한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임명한 ‘비행장교 1호’가 탄생했다.

참위는 오늘날 소위에 해당하며, 임정이 이들을 ‘육군 참위’로 임명한 것은 독립된 공군 편제가 등장하지 않은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임정은 박희성과 이용근을 비행장교로 임관시키면서 그간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포상금도 주기로 결정했는데, 두 사람에 대한 임관 및 포상 명령은 1921년 7월 20일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공보에 게재돼 있다.

첫 조종사 자격시험에서 발생한 기체사고에 따른 중상의 후유증에 시달리며 평생을 병석에서 고통스럽게 살던 박희성. 그는 결국 독립전쟁에 참가하지 못하고 그렇게도 원하던 조선의 독립도 보지 못한 채 독신으로 살다가 1937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숨을 거뒀다.

한국정부는 2010년 광복절을 맞아 박희성을 독립운동가로 인정하고 건국포장을 수여했으며 그동안 미국에 있던 그의 유해를 같은 해 11월 대전국립현충원으로 봉환했다. 이 봉환식 때 한국 공군은 군기를 앞세운 가운데 공군 참모차장이 공군 지휘부 및 의장대를 대동하고 그의 유해를 맞음으로써, 오늘날 한국 공군이 이 비행학교·비행대 및 비행장교 1호 박희성의 후예임을 대내외적으로 재천명했다.

또다른 비행장교 1호 이용근

이용근(李用根·1894~1950)은 평남 강서군에서 태어나 숭실중학과 평양 관립일어학교를 마친 후 조선에서 3년간 교사 생활을 하다가 1916년 미국으로 갔으며 대한인청년혈성단이 결성될 때 발기인 23명 가운데 한 명이었다.

이용근은 임정이 1920년 윌로스에 비행학교를 세우기 전부터 캘리포니아주 레드우드시티(Redwood City)에 있는 미국인 민간비행학교인 ‘레드우드 비행학교’에서 역시 청년혈성단 발기인인 한장호·장병훈 등과 함께 비행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1920년 6월 레드우드비행학교를 졸업한 다음 임시정부 비행학교·비행대로 옮겼다. 그러나 비행학교·비행대가 곤란에 처하자 박희성 등과 함께 새크라멘토에 있는 미국인 민간비행학교에서 훈련을 계속했다. 이용근은 1921년 4월 박희성의 기체사고가 나던 날 원래는 박희성에 이어 시험을 치를 계획이었으나 박희성의 사고로 기체가 대파돼 시험을 치르지 못했다가 다음 달인 5월 박희성이 조종사 자격시험에 합격할 때 같이 시험에 응시해 합격했다.

임시정부는 1921년 7월 18일 이용근을 박희성과 함께 ‘육군 비행병참위’로 임명해 한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임명한 ‘비행장교 1호’ 2명 중 한 명이 됐다.

이로부터 2년 후인 1923년 이용근은 조선으로 귀국했다. 아쉽게도 그가 이후 조선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관련 자료가 없다. 비행과 인연을 계속 맺었거나 독립운동을 했다는 기록 또한 발견되지 않고 있다.

임시정부 비행학교·비행대는 최대의 재정후원자였던 김종림의 쌀농사가 1920년 10월 폭풍우의 타격을 이듬해에도 회복하지 못하면서 1921년 날개를 접기 시작했다. 당시 상황은 비행가양성사 총재 김종림의 청원서를 통해 잘 엿볼 수 있다. 이 청원서는 위기에 처한 비행학교·비행대를 도울 것을 촉구하는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 총회장 최진하의 <비행학생 도웁시다>라는 권고문에 소개돼 있다.(《신한민보》 1921년 5월 5일자)

이 청원서는 김종림이 1921년 4월 10일 박희성이 이용근·정몽룡과 함께 레드우드시티에 있던 미국 민간비행학교에서 첫 조종사 자격시험을 치르다 기체사고로 추락해 중상을 입은 것과 관련, 한국인의 애국심을 높이 사 무상으로 비행기를 빌려줬던 백인에 대한 보상 등을 위해 재미동포사회의 재정지원을 청하며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에 보낸 것이다.

김종림은 이 청원서를 통해 한 해 전 설립된 비행가양성사의 해체를 알리고 있다. 국내 학계 일각은 이 문건에 입각, 비행학교의 폐교 시점을 이때로 잡고 있다. 그러나 이 문건에 등장하는 해체의 대상은 ‘비행가양성소’(=비행학교)가 아니라 ‘비행가양성사’이다.

臨政 비행학교·비행대 정신 계승한 대한민국 空軍

2010년 11월 15일 대전국립현충원에서 열린 박희성 독립지사의 유해봉환식에서 김용홍 당시 공군 참모차장이 헌화하고 있다.

김종림이 총재로 있던 ‘비행가양성사’는 1921년 4월 폐쇄됐으나 임시정부는 1921년 7월 ‘비행가양성소’ 출신으로서 국제항공연맹으로부터 조종사자격증을 획득한 박희성과 이용근을 비행장교로 임명하면서 공군 양성에 대한 의지를 견지했다. 그러나 비행학교·비행대를 위한 최대의 재정후원자였던 김종림은 1921년 들어서도 한 해 전 폭풍우로 입었던 피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후 김종림은 재기를 시도했지만 다시는 옛 영화를 회복하지 못했다. 김종림의 사업이 휘청거리면서 최대의 재정후원자를 잃은 비행학교·비행대 역시 다시 날개를 펴지 못했고 이와 함께 임시정부의 공군 양성 계획도 표류하기 시작했다.

이 비행학교 관계자들은 훗날 독자적으로 미군이나 중국군으로 대일(對日)전쟁에 참전하거나 민간인으로 또는 임시정부 요원으로 독립운동을 계속했다. 홍윤정 박사에 따르면, 임시정부는 이후에도 독자적 비행대를 편성하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1943년 8월 공군설계위원회 조례를 공포해 공군을 창설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고, 1945년 3월 미국과 공조해 한국공군 창설 계획을 수립했으나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불발됐다.

끊임없이 이어지던 임시정부의 조종사 양성과 공군 창설 노력과 정신은 1948년 대한민국 건국 이후 공군 창설로 계승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