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추적] 통합진보당 康宗憲 비례대표 후보의 자서전 《死刑臺에서 敎壇으로》를 보니 : 월간조선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18번인 강종헌(康宗憲·61)씨는 반국가세력을 포괄하는 범민련(조국통일범민족연합)의 핵심 간부 출신이다. 강씨는 2010년 9월 자서전 《사형대(死刑臺)에서 교단(敎壇)으로―내가 체험한 한국 현대사》(角川學藝出版刊)를 일본에서 출간했다. 이 책에서 그는 혁명을 꿈꾸며 모국에 유학하는 순간부터 ‘노동당의 혁명전사’로 커가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강씨는 1975년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의 주범으로 체포돼 13년간 복역했다. 강씨는 1973년 일본에서 공작선을 타고 입북해 노동당에 가입한 혐의 등으로 1977년 3월 대법원에서 사형 판결을 받았다. 당시 판결문은 “피고인 강종헌은 1969년 고교 재학 시부터 1971년 2월 모국 유학 시까지 재일지도원 김영일, 기무라, 하시모토, 다카하시 등에게 주체사상 등 교양을 받고 포섭되었다”고 기술했다.

또 ‘1972년 2월 5일 김일성 회갑 축하선물로 노래를 작사·작곡하고 맹세문을 작성하여 하시모토에게 제공, 고무·찬양하고, 1973년 8월 3일 (니가타현) 가시와사키(柏崎) 해안에서 북괴 공작선에 승선해 한 차례 북한을 방문, 공작금을 수수하고 노동당에 입당해 지령을 수수했다’는 혐의도 있었다.

특히 법원은 강종헌이 작사·작곡한 ‘김일성에 바치는 회갑 축하노래’가 1972년 4월 14일 《노동신문》 2면에 게재됐다고 보았고, 이 같은 사실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委)가 2010년 작성한 ‘재일교포 강종헌에 대한 간첩조작 의혹사건 조사보고서’에도 등장한다.

강종헌은 1심에서는 혐의를 인정했지만 2심 재판부터 “고문에 못 이겨서 (북한에) 갔다 왔다고 허위 진술하게 된 것”이라며 전면 부인했다. 2009년 진실화해위(委)에서 강씨가 고문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해 재심(再審) 권고 판정을 내리자, 강씨는 작년 9월 서울 고등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현재 심리가 진행 중이다.

노태우(盧泰愚) 정부에 의해 1988년 가석방돼 귀일(歸日)한 강종헌은 범민련 핵심 간부로서 이적행위를 공개적으로 전개한다. 강씨는 반국가단체 한통련(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과 이적단체인 범민련 해외본부 공동사무국 차장을 지내다 올해 19대 총선에서 진보당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했다. 지난 8월 6일 신당창당을 공식화한 통합진보당 신당권파 소속 비례대표(박원석·정진후·서기호) 의원들이 앞으로 탈당한다면, 강씨는 구당권파 측의 유일한 비례대표 후보로서 금배지를 달게 된다.

서울대 의대 운동권 서클의 배후로 활동

강종헌이 환갑을 앞둔 2010년 9월, 일본에서 펴낸 자서전 《死刑臺(사형대)에서 敎壇(교단)으로-내가 체험한 한국 현대사》.

이 자서전에는 그가 ‘북한의 혁명전사’로 성장하는 궤적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강종헌은 지금껏 국내에서는 자신이 정치와 무관한 재일교포 유학생으로, 1975년 11월 국군보안사령부에 연행돼 고문당하고 간첩으로 날조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학교 2학년 때 오사카 이쿠노로 이사를 간 강종헌은 외국인 등록을 하면서 조선인으로서 자각하게 됐다고 기술했다(17페이지). 오사카 부립 텐노지고교(天王寺高校)에 진학한 그는 은사인 후쿠다 쓰토무(福田勉)를 만났다. 2학년과 3학년 담임으로 세계사를 가르치던 후쿠다 쓰토무 선생은 일제 때 청진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는 학생들로부터 “빨갱이”라고 불릴 정도로 유물사관에 입각한 수업을 진행했다. 후쿠다 선생은 3학년 마지막 학기 말 시험문제로 ‘러시아 혁명의 세계사적 의의에 대해 기술하라’는 문제를 냈을 정도였다고 강종헌은 기억한다.

후쿠다 선생은 강종헌에게 인도의 네루가 지은 《아버지가 딸에게 얘기하는 세계 역사》를 권했고, 후쿠다 선생을 통해 사회과학의 기초를 배웠다고 했다. 강씨는 그때까지 쓰고 있던 일본식 이름 나카지마(永島)를 자신의 본명(康宗憲)으로 바꾼 결단도 은사 덕분이라고 적었다(17~19페이지).

강종헌은 대학 입시에서 탈락했다. 당시 일본의 대학들은 소요사태로 수업도 제대로 못 하고 있었다. 일본 대학을 졸업해도 어차피 차별 때문에 전망이 없다고 생각하던 중, 1970년 11월 ‘전태일 분신 자살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19세의 강종헌은 한국 유학을 결심했다(20페이지). 강종헌은 “전태일의 호소가 심판의 소리처럼 들려서, 그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어떻게 응해야 할 것인지…. 무엇보다 먼저 조국의 상황을 자세히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즉, 유학의 동기가 학문적인 탐구보다 정치적 목적이었음을 고백하고 있다(21페이지).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 재심(再審) 공판에서 지난 6월 28일 증언한 김현장(62)씨가 공개한 1988년 찍은 사진. 강씨는 간첩사건으로, 김씨는 부산 미 문화원 방화사건으로 복역하다가 특별사면으로 석방된 직후 서울 연세대에서 만나 찍은 사진이라고 한다. 가운데가 김씨, 왼쪽이 강씨다.

1971년 4월 5일 강종헌은 서울에 와 서울대 재외국민교육연구소에서 어학 공부를 한다. 1972년 3월 서울대 문리대 의예과에 입학한 그는 의학공부보다 정치·사회 문제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 그는 서울대학병원으로 매혈(賣血)하러 오는 빈곤층, 농촌봉사활동에 참가해 변변한 진료소도 없는 농촌 현실을 보고 의학을 공부하기로 했다고 적고 있다.

강종헌은 유학 온 지 1년3개월 되던 때 친구로부터 ‘7·4공동성명’에 대한 소감을 질문받는다. 강종헌은 “이번에 정부가 공동성명에서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의 통일원칙에 동의한 것은, 북의 정권실체를 인정한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국시(國是)를 반공이 아니라, 평화통일로 변경하는 시대가 된 것이 아닌가”라고 말한다(31페이지).

강종헌은 자서전에서 1973년 일본에서 밀입북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1974년 3월, 의과대학 본과에 진학한 강종헌은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의료혜택을 받는 사회 건설’을 이념으로 하는 서울대 의대의 운동권 서클인 ‘사회의학연구회(社醫硏)’에 참가해 배후에서 활동하게 된다. 학생들은 전국적인 시위 계획을 주도면밀하게 추진해 1974년 4월 3일 의과대학 강당에서 집회를 열어,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합(민청학련) 명의로, ‘민중, 민족, 민주 선언’ 삐라를 배포했지만, 당국의 기민한 대처 때문에 전국적 봉기는 좌절됐다고 적고 있다(43~44페이지).

“일본에 갈 때마다 참고가 될 만한 지식과 정보를 흡수해 서클 학습에 활용하고 있었다. 다만 세관 검열 때문에 마르크스-레닌 원전이나 저명한 해설서는 가져올 수 없었다.”(45~46페이지)

1975년 의과대학의 분위기는 침체되고 이후 ‘사의연’ 재건도 쉽지 않았다. 게다가 2학년이 되면서 의학 공부 비중이 크게 늘어 강종헌은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 1975년 11월 들어서자 주변의 유학생 동료들에게 당국의 조사가 좁혀져 왔다. 강종헌은 우선 신변정리를 해두자는 생각에서 문제가 될 만한 서적과 팸플릿, 주소록 등을 처분했다고 적고 있다(58페이지). 이상은 강종헌이 1975년 11월 28일 자신이 당국에 연행되기 전까지의 상황을 기술한 부분이다.

‘그날이 온다’ 작사·작곡했다고 자랑스레 소개

1975년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당시 법원이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18번 강종헌이 북한에 건넸다고 판시한 김일성 찬양 노래다. 사진 출처는 1972년 4월 14일자 《노동신문》.

강종헌은 1972년 4월 14일 《노동신문》 2면에 게재된 ‘김일성에 바치는 회갑 축하노래’를 작사·작곡한 것으로 법원은 판시했으나, 강씨 자신은 지금도 이를 부인하고 있다. 과연 그러한가? 그 진실을 짐작게 하는 단서가 이 자서전 속에 있다.

강종헌은 진실화해위원회에서 “나는 작사, 작곡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자서전에서 서울구치소에 있을 때 작사·작곡한 노래를 자랑스레 소개하고 있다. 강씨는, 1979년 들어 사형당할 것에 대비해, 파쇼 정권의 희생양이 될지 모르지만 민주화와 조국통일의 날은 반드시 온다는 심경을 한 편의 시(詩)로 만들고, 잊지 않기 위해 곡을 붙여 1979년 4월 19일경 완성시킨 것이 ‘그날이 온다’라는 노래였다며 스스로 작사·작곡을 했던 사실을 밝히고 있다.

강종헌은 마침 구치소 옆 방에 있던 박형규(朴炯圭) 목사(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에게 이 노래를 배우게 해, 박 목사가 출소하는 편에 노래를 가족에게 전달했다고 한다. 강종헌의 영향을 받은 박형규 목사는 이후 각종 집회 때마다 ‘재일한국인정치범’ 석방을 호소하면서 이 노래를 보급시켰다고 한다(90페이지, 120페이지에 가사 전문).

그런데 강종헌이 체포된 후의 법정투쟁과 옥중생활을 그린 대목에서 독자의 눈에도 미심쩍은 구석들이 눈에 들어온다. 강종헌은 자서전 속에서 무슨 연유인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박형규, 문익환(文益煥) 등 일부 인사의 이름은 예외적으로 밝히는 데 반해, 수감 중의 동료나 접촉한 모든 사람의 이름은 영문 이니셜로만 표기하고 있다. 그가 강조하듯 수감된 인사들이 정말 순수하고 떳떳한 ‘민주화 운동’을 했다면 이름을 밝히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강종헌은 수감생활 중의 추위와 배고픔 등은 자세하게 기술하면서, 놀랍게도 자신이 북한공작원으로 단죄되었던 가장 핵심적 사안인 ‘1973년의 밀입북’에 관해서는 반론조차 시도하지 않았다. ‘파쇼 정권’이 자신을 북한공작원으로 규정해 사형을 언도했던 ‘밀입북’과 ‘밀봉교육(密封敎育·간첩을 양성하고자 외부와의 연락을 차단한 채 이뤄지는 교육)’이 전혀 근거 없는 날조였다면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반론하고 알리바이를 주장하는 것이 자서전의 가장 중요한 대목일 것이다. 어째서 그는 어렵사리 낸 자서전에서 자신과 가족, ‘민주화 운동가들’의 기대를 저버리며 자기변호를 포기한 것일까.

“나라사랑 하는 생각이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

책에는 강종헌이 감옥으로 면회 온 모친에게 “어머니, 사형 판결을 받았지만 너무 걱정 마세요… 주변 사람들과 나라를 사랑하는 생각이 조금 다를 뿐입니다”라고 한 기술이 있다(76페이지). “나라를 사랑하는 생각이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잡거감방(두 사람 이상의 범죄인을 함께 가두는 감방)에서 한국사회의 모순과 민주화와 통일의 필요성을 ‘이론정연’하게 이야기해도 잡범들이 상대해 주지 않았다고 하는 등, 구치소에서 수감자들에게 ‘사상교양’ 사업을 시도했다(80페이지). 반공 교육을 받아 온 소년범을 보면서 암울한 기분이 됐다고 기술하는 대목에서는 그가 주장하는 ‘민주화’가 용공(容共)이었음을 인정하고 있다(83페이지).

강씨는 감옥 속에서도 외부의 소식을 잘 접하고 있었다. 그가 자서전에 기록한 한국 관련 뉴스들은 출소해 일본으로 돌아간 후에나 들을 수 있는 것을 자서전에 정리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총으로 권력을 잡은 자는 백성(민중)에 의해 멸망한다. 박정희는 김재규(金載圭)의 총탄에 의해 죽은 것이 아니다. 그 배경이 된 민중봉기에 의해 목숨을 잃은 것이다.”(92페이지) “1980년 5월 18일부터 5월 27일까지 10일간 계엄군의 무자비한 살육에 대항해 광주의 민중은 무기를 들고 시민군을 조직해 싸웠다.”(93페이지)

강종헌은 5공화국에 대해 ‘어용 대의원’에 의한 대통령 간접선거라며 조소했지만, 자서전 전체를 통해 북한의 독재체제는 단 한번도 비판하지 않았다.

강종헌은 1982년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돼 대전교도소로 이감된 후, 수감자 대부분이 무기수인 남파간첩들과 함께 지낸다. 강씨는 “이들은 조선노동당원으로서의 긍지와 신념을 지키는 ‘비전향 장기수’이다. 사상과 신조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반공국가에서 비전향 장기수의 옥중생활은 그야말로 목숨을 건 것이었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자서전 속에서 비전향 장기수들의 옥중생활이 왜 목숨을 건 것이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그는 본격적인 옥중생활을 시작하면서 이웃 감방의 (비전향 장기수인) K씨와 S씨가 장기 수감 생활에 적응하는 요령을 가르쳐 주었다고도 했다(104~105페이지). 그러나 수감생활의 실상은 반대였음이 그의 기술로 드러난다.

“교도소 내의 대우는 당국과 수용자들의 힘의 관계에서 결정됩니다. 전투적인 청년학생이 다수를 차지하는 옥사(獄舍)에서는 당국도 어떻게 대우하면 좋을지 머리를 싸매게 됩니다…. 그래서 정치범들에게 어느 정도의 생활조건을 용인해 ‘평화공존’을 꾀하게 됩니다. 그러한 사정 덕분에 1982년 여름과 가을은 청년학생과 함께 ‘쾌적한’ 옥중생활을 보냈습니다. 매일 두 시간 정도 실외에서 운동하는 것이 무엇보다 즐거움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생활도 길게는 계속되지 않았습니다.”(106페이지)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2년 반 후인 1984년, 강종헌은 광복절 특사로 다시 징역 20년으로 감형된다. 다음 해인 1985년 7월 대구교도소로 이감된다. 이곳에서 그는 처우 개선을 내걸고 옥중투쟁을 전개한다.

“7월 31일, (재일교포 간첩 L 등과 함께) 저녁식사를 거부하고 알루미늄 식기로 쇠창살을 두드리면서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순식간에 비상사태가 돼 간수들이 달려왔습니다…. 우리들도 옥중에서 항의 단식투쟁에 들어갔기 때문에 수일간의 대치를 거쳐 교도소 당국과 합의가 성립됐습니다. 이처럼 큰 고통을 대가로 지불하기는 했으나, 대구교도소에서의 처우개선을 쟁취했습니다.”(109~111페이지)

“노태우 정권은 국경일을 기해 정치범을 단계적으로 석방했습니다”, “나도 다음번에 내 차례가 되는가 가슴이 부풀었습니다”, “잘 아는 간수가 미리 가석방을 (몰래) 알려주었습니다”라는 대목에서는 교도소의 교도관 일부가 호의를 보여준 분위기가 느껴진다(118페이지). 1988년 12월 출소를 앞둔 강종헌은 이렇게 적었다. “마지막으로 또 하나의 절차가 남아 있었습니다. 가석방이기 때문에 ‘출소 후엔 국법을 준수하겠다’는 취지의 서류에 서명했습니다.”(119페이지)

‘한국문제연구소’ 개소식날 조총련계 청년들 축하

1990년 7월 26일 김포공항에 도착한 범민족대회 해외교포 대표단. 공항청사에서 환영나온 전민련 관계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왼쪽부터 이종현(유럽), 은호기(미주), 노길남(미국), 양동민(일본), 강종헌(일본), 김정부(일본)씨.

1988년 12월 21일 대구교도소에서 가석방된 강종헌은 교도소 정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반국가 활동에 나선다. 강종헌은 감옥생활을 거치면서 어느덧 ‘통일운동’의 핵심적 존재로 부상했다. 감옥 속에서 동료 수감자들에게 보여온 투쟁성과 감옥 속에서 만들어진 인맥, 외부에서 그를 석방시키는 운동을 해온 후원세력이 결합된 것이다.

석방 나흘 후인 크리스마스 이브날, 강종헌은 박형규 목사의 거리예배에 참석했다. 예배 마지막 순서에 그들은 강씨가 교도소에서 작사·작곡한 ‘그날이 온다’를 함께 불렀다(123페이지). 해가 바뀌면서 강종헌은 문익환 목사 집에도 식사 초대를 받았다. 이때 문 목사는 “금년 중에 무슨 일이 있어도 평양에 간다”는 대목이 포함된 유명한 ‘잠꼬대 아닌 잠꼬대’라는 자작시(自作詩)를 읊었다.

강종헌의 자서전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가석방돼 귀일한 다음 전개한 반국가 활동에 관한 기술이다. 그는 한국에서의 통일운동 투쟁 흐름 속에 자신의 이야기를 집어넣어 자서전으로 만들었다. 남한 정세를 정리한 자서전의 큰 줄기는 평양 측과 유사할 것으로 짐작되므로 그 점을 알 수 있다는 것은 그런대로 흥미로운 일이다. 하지만 자서전인지 통일교재인지 헷갈리는 것만은 분명하다.

자서전에서 강씨는 자신을 ‘재일한국인정치범’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는 1989년 4월 4일 일본으로 귀환하자마자 일주일 만에 일본 전국을 돌며 ‘한국 내 정치범 석방운동’을 전개한다. 14년 만에 일본으로 돌아간 강종헌이 일주일도 안 돼 전국 순회 집회를 기획한 것이다. 그는 벅찬 일정 때문에 그해 여름 건강을 해쳐서 휴양을 해야 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강종헌은 1989년 11월 22일 오사카 기타구에 있는 빌딩에 ‘한국문제연구소’를 열었다. 11월 22일에 연구소를 개소한 것은 1975년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 발표가 11월 22일이었던 것을 상기해 정했다고 한다. 강씨는 자신의 연구소 개소를 후원한 사람들을 밝히지 않고 있지만, 귀일 후에 알게 된 조총련 청년 십수 명이 축하해 주었다고 대략적으로 밝히고 있다(134페이지).

1989년 여름부터 과로 때문에 쉬고 있던 강씨는 10월에 재일한국인 3세인 한 여인을 알게 돼 1990년 5월 3일 교토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1991년 4월에는 연구소 기관지 《한국의 소리》를 창간한다. 호마다 민족단체 청년들과 일본친구들이 기고해 주었다고 했다. 강씨의 자서전을 보면 그가 귀일 후에 그를 전폭 지원한 것은 민족단체 청년들, 즉 반국가단체인 조총련과 한통련이었음을 알 수 있다.

강씨는 전후 설명 없이 1991년 봄부터 범민련 해외본부 공동사무국 사무차장이 됐다고 지나가는 말처럼 간단히 적고 있다(140페이지). 시기적으로 보아 《한국의 소리》는 범민련 해외본부 공동사무국의 기관지이기도 했다고 볼 수 있다.

강종헌은 바로 이 반국가세력들을 포괄하는 범민련 해외본부 공동사무국 차장이라는 핵심적 직책을 담당한다. 범민련 해외본부 공동사무국의 또 한 명의 차장은 각종 간첩사건에 단골처럼 등장하는 조총련 정치국 출신 대남공작원 박용(朴勇)이다. 자서전에는 박용에 대해서도 언급이 전혀 없다. 이토록 극도로 감춘다는 것은 그 정도로 비밀이었다는 방증이다.

1992년 평양 범민족대회 참석이 첫 방북?

강씨는 자서전에서 현란하고 장황한 내용들로 ‘통일사업’을 포장해 독자의 관심을 돌린다. 물론 교묘한 용어전술을 구사한다. 그는 1991년 4월 일본 지바현에서 열린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대해, 남북한이 ‘통일팀’을 파견했다고 했다(141페이지). 아마도 그가 해외본부 공동사무국 차장으로서 첫 번째로 간여한 사업이었을 것이다. 이는 북측의 전형적인 용어전술이다. 당시 남북 간 합의된 공식 용어는 ‘단일팀’이었기 때문이다.

북한은 동구와 소련이 해체되는 상황에서 한국의 북방외교로 인해 외교적 위기에 처하자 남쪽에 흡수되지 않기 위해 민족공조 전술을 외치기 시작한다. 이 일은 범민련 해외본부 공동사무국 차장인 강종헌의 임무로서, 강씨는 본격적으로 평양 측 대변인 역할을 시작한다.

강종헌은 제3차 범민족대회에 범민련 해외본부가 대표단을 파견하게 돼 1992년 8월 2일 나고야발 전세기편으로 첫 방북할 기회를 얻었다고 적고 있다. 만일 법원 판결대로 1973년 8월 니가타현 가시와사키시 해안을 통해 밀입북한 것이 사실이라면, 강씨는 태연히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강종헌은 방북의 감상을 이렇게 적고 있다.

“21년 전인 1971년 4월 모국 유학을 결의하고, 처음으로 남의 김포공항에 내렸을 때와 같은 감개를 느꼈습니다. 조국만이 줄 수 있는 상냥함과 엄격함일까요? 불과 두 주일 정도의 체재를 통해 북의 조국을 말할 수는 없습니다. 대회 행사에 참가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민중과 접촉도 행사를 통한 것에 한정됩니다. ‘이동의 자유도 없는 나라에 가봤자 즐겁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지만, 그래도 실제로 가 보고 비로소 알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수도 평양뿐 아니라, 백두산, 개성, 판문점까지 북의 조국을 종단했던 것이 나에게 귀중한 체험이 되었습니다. 정치체제에 대한 찬부(贊否)는 제쳐 두고, 그 아름다운 산하는 틀림없는 나의 조국이며, 뜨거운 마음으로 통일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동포라는 강한 애착이 싹 텄기 때문입니다.”(144페이지)

강씨는 방북에 앞서 사전에 면회를 신청했던 백모(伯母·아버지의 누나)는 만나지 못했고, 오사카에 살다 입북한 먼 친척 아저씨가 뉴스를 보고 호텔로 찾아와서 만났다고 한다. 강씨는 자서전에서 수만 명 이상의 북송자 가족이 겪는 비극, 투옥과 강제실종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난처한 처지가 된다. 강씨는 이러한 비극에 대해서도 ‘남이든 북이든 민중이 정책과 체제를 비판하는 것이 반국가·반혁명으로 단죄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통일을 지향해야 한다’ 말하면서, 북한 동포의 노예적 참상이 북의 폭압체제 때문이 아니라 분단 때문이라고 호도했다(146페이지).

평양 당국의 반대 설득해 비전향 장기수 집 방문

1999년 강종헌은 범민련 해외본부 공동사무국 차장 직책을 그만둔다. 자서전에는 왜 그만두었는지 경위 설명이 전혀 없다. 강씨는 2001년 8월 15일 평양에서 열린 ‘민족통일대축전’에 해외대표단으로 참가해 옥중에서 함께 있었던 남쪽의 통일운동가들을 만난다.

강씨는 생각하는 바가 있어 이번이 마지막 방북이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대전교도소에서 신세를 졌던 K씨와 L씨에 대해 평양에서 특별면회를 신청했다고 한다. 두 명은 2000년 9월 김정일(金正日)의 요구에 따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북으로 송환한 비전향 장기수 63명의 일원이었다. 강씨는 K와 L의 가정을 방문하려고 했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호텔에서 만나라”고 했고, 강씨는 그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강종헌은 자신의 옥중 동료였던 비전향 장기수 가정을 찾아가는 경위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놀라운 고백을 한다.

“행사가 끝난 8월 17일, 두 사람이 숙소인 양각도 호텔로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나는 마음을 독하게 먹고 ‘호텔에서는 만나지 않겠다’는 의사를 담당자에게 전했습니다. 두 분께는 ‘내일 반드시 자택으로 방문하겠다’고 인사하고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날 밤 담당부서와의 길고 심각한 교섭이 시작됐습니다. 담당관도 몇 번인가 상사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관례를 깨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최종적으로 내가 전한 의사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선생님들의 생활을 공개하지 않는 사정은 잘 압니다. 그러나 나는 두 분과 남의 형무소에서 고락을 나눈 동지입니다. 지금도 동지적인 신뢰관계로 맺어져 있습니다. 조국은 혁명동지의 의리를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기는 나라가 아니었습니까? 내게 호텔에서 만나라는 말입니까? 가정을 방문해서 가족 분들에게도 인사를 하는 것이 도리가 아닙니까? 상부의 책임 있는 분에게 내 의사를 전해 주십시오. 만약, 옥중에서 함께 싸운 동지의 집에도 갈 수 없다면, 내가 이 나라를 다시 방문할 필요가 없습니다.”(154페이지)

다음 날 아침, 강씨는 담당자로부터 “특별 배려입니다. 점심 지나서 L씨 집을 방문할 것이니 준비해 주세요. K씨도 거기서 합류합니다”라는 통고를 받는다. 강씨는 “솔직히 ‘특별 배려’에 감사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며 “(北으로) 귀환하신 여러분들이 국가로부터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을 알고 마음이 조금 풀렸다”고 했다(154페이지).

강종헌이 감히 평양의 담당관을 상대로 당당하게 교섭을 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또는 다른 사안은 결코 의도적으로 노출, 발설하지 않은 그가 대담하게도 김정일 체제에 대한 충신(忠臣)의 표상인 ‘비전향 장기수’들과 ‘혁명동지’임은 왜 드러낸 것일까?

이 책을 쓴 것은 2010년 9월이다. 강종헌이 단순히 자신의 혁명성과 동지애를 자랑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강종헌은 자신의 혁명성과 지도핵심이란 사실을 입증하려고 이 부분을 기술한 것은 아닐까. 혹시 이 부분으로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전략공천을 받게 된 것은 아닌지 궁금할 따름이다.

석사학위 논문에서 日北 수교 제안

강씨는 ‘북한의 움직이는 해상 공작기지’로 불리는 ‘만경봉호’를 타고 세 번째로 2001년 8월 북한에 다녀온 직후 대학원 진학 수속을 밟는다. 교토대학은 대학원 과정 수업 자격이 없다고 강씨의 입학을 거절했으나, 리쓰메이칸(立命館)대학 대학원 국제관계학부와 오사카대학 대학원 국제공공정책연구과는 입학이 허가됐다. 강씨는 등록금이 싼 오사카대학 대학원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가 대학원에 제출한 ‘연구계획서’는 ‘조선반도의 평화보장과 남북통일’을 과제로 선정했다. 2004년 3월 국제공공정책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강종헌 논문의 제목은 ‘김대중 정권의 대(對)북조선 외교 햇볕정책의 성과와 한계’였다(161페이지).

강씨는 석사학위 논문의 마지막 장에서 “북조선과 가장 치열하게 대치해 온 한국 정부가 왜 이전의 적대정책에서 포용정책으로 전환했는가. 선입관과 편견에 사로잡히지 말고 그 의미를 파악하는 일이 교착상태에 빠진 일조(日朝·日北)교섭을 타개하는 힌트가 되지 않을까”라며 일본도 김대중 정부처럼 대북 화해 제스처를 취하고 수교 교섭에 나서라고 촉구했다(162페이지). 김대중 정부 시절 외교안보수석을 지낸 임동원(林東源)씨가 일본 조야를 설득하려 할 때 사용한 선공후득(先供後得)의 논리와 흡사하다.

지금도 대한민국 법원이 반국가단체라는 판단을 유지하고 있는 범민련과 한통련의 일원인 강종헌씨가 반국가단체인 한통련 대표단으로 방한했다고 자랑하고 있는 대목도 눈에 띈다.

“노무현(盧武鉉) 정권 등장으로 역대 정권 아래서 불이익을 받았던 사람들의 명예회복 문제가 관심을 끌게 됐다. 귀일 후 범민련과 한통련의 일원으로 ‘민족운동’에 관계해 온 나도 반국가단체의 구성원으로 분류돼 모국의 자유왕래가 허가되지 않았었다. ‘해외민주인사의 명예회복과 귀국 보장을 위한 범국민추진위원회’라는 단체가 구성돼 민변(民辯)을 비롯해 진보적 단체가 중심이 돼 정력적으로 운동을 전개, 그들의 헌신적 운동 덕분에 2003년 9월 19일 우리들 한통련 대표단은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독일에서 4명이 합류해 해외민주인사 일행 33명은 도착 당일 저녁에 기독교회관에서 박용길 장로 등이 참석한 환영식이 있었고 광주, 부산 등 민주화 운동의 성지를 순례할 수 있었다.”(166페이지)

위의 기술 중에 뻔뻔스런 대목은 “모국의 자유왕래가 허가되지 않았었다”고 불이익을 받았음을 강조하면서 한국을 ‘모국’으로 표현한 대목이다. 강씨는 자서전 전체를 통해 조선민족, 조선문화, 조선반도 등 ‘조선’을 민족의 총칭으로 고집하면서, 대한민국을 ‘모국’이라고 말하는 대목은 거북스럽다.

강씨는 평양을 방문했을 때 친족조차 제대로 면회하지 못했고, 교도소에서 함께했던 동지의 집조차 방문할 수 없었던 북한에 대해서는 한마디 불평 없이, 반국가사범인 자신이 남측에서 불이익을 받은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그야말로 적반하장인 셈이다.

전교조의 활동을 높이 평가

강종헌씨는 2004년 3월 석사학위를 받는 동안 반국가단체인 한통련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한통련 방한단에 참가하는 등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뿐만 아니라 학업에 벅찼을 것임에도 이 기간 중에 6·15공동위원회 일본지역위원으로 연방제 추진운동에 관계하고 있었다(169페이지).

2005년 노무현 정부는 8·15 통일행사를 ‘민족대축전’이라는 이름으로 서울에서 개최했다. 강씨는 이 행사에 해외대표단 150명의 일원으로 참석했다고 적고 있다(169페이지). 강씨는 자서전에서 옥중에서 함께 지냈던 종북세력들의 당시 근황을 소개하고 있다.

“8·15대회가 끝난 후의 교류회에서 1982년 여름에 대전형무소에 함께 수감됐던 반가운 친구와 재회했다. 당시 학생이었던 그들도 각 지역의 시민단체에서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며 지금도 통일운동을 계속하고 있었다. 옥중 동료 중에는 국회의원과 장관이 된 친구도 있었다. 그러한 저명인보다도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각자의 지역과 직장에서 활기 있게 활동하는 그들을 진심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했다.”(170페이지)

강씨는 당시 전교조 후배와의 대화를 통해 전교조 활동을 높이 평가했다. “대전에서 고교 사회과 선생을 하고 있는 후배가 말했습니다. ‘형, 한국사회가 여기까지 오는 건 쉽지 않았어! 사람들이 북에 대한 불신과 적의(敵意)를 극복하는 데는 정말 긴 시간이 필요했거든…. 교육 현장에서 이를 실천하는 데 참여한 것은 행복했다고 생각해.’ 조용한 미소와 변함없는 겸허한 자세에 이쪽이 부끄러워졌습니다. 한국사회의 민주적 발전은, 그리고 통일의식의 심화는 이름도 없는 그들 민중의 헌신이 가져온 것임을 새삼 깨달았습니다.”(171페이지)

강씨는 석사 과정을 마치고 2004년 4월부터 오사카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시작한다. 그가 제출한 박사학위 논문 제목은 ‘조선반도에서의 비핵화와 정상화―미조(美朝)의 상호위협 삭감에 의한 평화체제’로 지금까지 평양이 강변해 온 내용을 놀라울 정도로 되풀이한 것이다.

강씨는 논문에서 “비핵화뿐 아니라 정상화(조선전쟁의 종결, 즉 美-朝와 日-朝 수교)를 강조한 것은 일방적인 핵 폐기 강요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교훈을 염두에 둔 것”이라며 “상호 위협 삭감이라는 용어는 ‘북조선으로부터의 위협’과 동시에 ‘북조선에 대한 위협’도 고려하지 않는 한, 평화체제도 비핵화도 달성되지 않을 것임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172페이지).

그의 박사학위 논문 주장들은 《노동신문》 등 평양 당국의 주장 또는 발표문과 내용상 차이가 없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강씨는 2007년 3월 23일 5년 만에 오사카대학에서 국제공공정책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강씨 자신은 5년간 대학원 생활을 통해 조금 시야가 넓어진 느낌이 들었다고 적고 있다(174페이지). 그러나 그의 자서전에 기술된 그의 학위논문 요지를 보면 《노동신문》 등 평양 당국의 조선노동당원들이 만들어낸 논리와 표현을 연상시킨다.

북한의 생지옥 상황에 대해서는 침묵

2003년 6월 15일 조총련 후쿠오카 지부에서 강연하고 있는 강종헌.

강종헌은 2007년 3월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강단에 선다. 와세다대학 아시아연구기구 객원교수 자리다. 그는 비정규직 교원의 비애(悲哀)를 4페이지에 걸쳐 비교적 소상히 밝혔다. 그래도 강씨는 와세다대에서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국제사회와 평화’, ‘국제 복지론’, ‘현대의 인권’ 등을 강의하고 있다고 했다(175페이지).

강씨는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도 맡고 있다. ‘조선반도와 일본’이라는 주제의 4회 연속 강좌다. ‘탈아입구(脫亞入歐)와 정한론(征韓論)’, ‘대동아공영권과 식민지 지배’, ‘조선반도에서 본 일본의 평화헌법’, ‘윤동주(尹東柱)의 생과 사’로 구성된다.

자서전에는 강씨가 스스로 소개한 시민강좌의 대표작이 실려 있다. 자신의 역량을 총동원한 강연 내용은 조총련의 선전사업 방향 및 논리와 거의 일치한다. 예컨대 조선노동당의 대남전략, 대외전략 수행이라는 측면에서 한·미·일을 무자비하게 비판하는 것이다.

강씨가 강단에 선 이유와 목적을 알 수 있는 이 강연은, 2008년 5월 11일 효고현(兵庫縣) 다카라즈카(寶塚) 시의회의 ‘위안부 의견서 가결 보고회’에서 한 기념강연이다. 자서전 188쪽에서 216쪽까지 전문이 실려 있다. ‘21세기의 조선반도와 일본―역사의 사실에서 진실로’라는 강연의 내용을 살펴보면, 강씨의 사고 틀을 엿볼 수 있다.

강씨는 자신의 투옥(投獄) 경험은 강조하면서, 북한의 생지옥 상황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미국과 일본이 힘의 논리를 추구한다고 비판하면서도, 정작 군사력을 권력의 근원으로 삼고 있는 북한과 팽창주의 중국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는다. 태평양전쟁 때의 위안부 문제에는 집착하면서, 현재진행형으로 인신매매를 당하는 탈북 여성들의 문제를 외면·침묵하는 것이야말로 스스로가 종북세력임을 자인하는 꼴이다.

康宗憲의 인맥들

2009년 11월 13일 도라산역에서 남북철도연결을 위한 성금을 전달한 삼천리철도 도상태 이사장(가운데)에게 이재정 전 장관(맨 오른쪽)이 감사패를 전달하고 있다. 이 전 장관 왼쪽이 강종헌씨.

자서전의 마지막 부분에는 학자로 변신한 ‘혁명가’ 강종헌의 인맥과 활동을 더듬어 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나온다. ‘삼천리철도와의 만남’이라는 대목이다(183~188페이지). 강종헌은 2009년 11월 13일부터 2박3일간 도상태(都相太) 삼천리철도 이사장과 함께 경의선 비무장지대 철도 구간을 시찰하고 자서전에 그 기행문을 실었다. 이 시찰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장관을 역임한 임동원, 정세현(丁世鉉), 이재정(李在禎) 장관의 초청으로 이뤄졌다. 도상태는 강종헌의 비례대표 출마에 개입했다고 스스로 밝힌 한통련 관련 인사다.

‘삼천리철도’는 6·15공동선언을 기념하기 위해 2000년 9월 30일 일본에서 결성한 비영리법인이다. 일본 공안당국 관계자들은 삼천리철도를 조총련과 한통련의 ‘별동대’로 본다. 강종헌은 박사학위를 마친 후 삼천리철도의 행사에 핵심적으로 관여해 왔다. 통역, 사회, 강연 등 중요한 행사에는 빠지지 않는다. 삼천리철도는 남북 철도 연결 지원을 내세우고 있지만, 6·15남북공동선언 실천이 목적이다. 따라서 삼천리철도의 중요 연례 행사는 매년 6월 개최하는 ‘6·15공동선언 축제’다.

삼천리철도의 6·15공동선언축제에 참석한 국내인사들의 면면을 보자. 2001년 6월 17일 열린 제1회 행사에는 김근태, 이재정, 이부영, 박용길, 임종석, 유원호, 진관이 참석했고, 이듬해 6월 16일에 열린 2회 행사에는 임수경, 이시우가 참가했다. 지난 6월 17일 열린 제12회 축제 때 강종헌은 통진당 비례후보로 나선 경험과 한국정세를 분석하는 강연을 했다. 이 자리에서 도상태와 강종헌은 통합진보당과의 관계를 적당히 얼버무렸다고 한다.

삼천리철도가 주관한 행사는 ‘6·15정신’에 따라 조총련과 한통련이 참가한다. 2009년 12월 임동원씨 부부를 초청했던 재일코리언협의회도 조총련 출신과 한통련 등 회색분자들이 중심이다. 강종헌과 가까운 일본인 중에는 《아사히신문》 서울지국장이었던 하사바 기요시(波佐場淸)와 《아사히신문》 기자로서 종군위안부 문제를 부각시켜 온 우에무라 다카시(植村隆)가 특히 눈에 띈다.

도상태 삼천리철도 이사장이 민단에 보낸 공개질의장 일부. ‘작년(2011년) 서울에 나가 새누리당, 민주당, 진보통합당을 찾아 이번 총선거의 비례대표로 재일교포 후보자를 추천해 줄 것을 요청했었다. 그 결과 통합진보당만이 그 자리를 마련해 주었고, 본인이 강종헌씨에게 강력하게 출마를 요청했다’고 돼 있다. 강종헌의 비례대표 출마에 도상태 위원장이 개입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출처: 한기덕 삼천리철도 사무국장의 페이스북)

하사바는 강종헌과 함께 김대중 회고록을 일본어로 번역했고, 임동원의 자서전 《피스 메이커》(이와나미쇼텐 刊)도 일본어로 번역했다. 국가정보원장을 역임한 임동원씨가 반국가단체와 이적단체에 속해 활동하는 인물을 모를 리는 없을 것이다. 자서전에 등장하는 임동원 전 국정원장과 강종헌씨의 접점은 언제 어디서 시작된 것일지 흥미로운 대목이다.

일본 오비린대학 홍형(洪熒) 객원교수는 “강씨의 자서전 《사형대에서 교단으로》는 한마디로 정직하지 못하다”면서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역사 뒤집기가 간첩과 반국가단체 핵심들로 하여금 당당히 국회의원으로 나서게 만들었다”고 했다.

한편,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사건의 김현장(金鉉奬)씨는 “강종헌씨는 평양에서 제대로 밀봉교육을 받고 남파됐던 핵심분자”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1980년대 대전과 대구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함께했다.

김씨는 얼마 전 인터넷신문 《조갑제닷컴》에 게재한 ‘못잊을 나의 친구 종헌에게’라는 공개편지에서 “너의 모든 행동을 멈추고 너의 조국(북한)으로 돌아가기 바란다”며 “자네의 행동을 멈추지 않으면 나는 내 조국을 지키고자 자네의 고법재판의 증인으로 출석하겠다”고 했다. 실제로 김씨는 지난 6월 28일 서울고법 303호 법정에서 ‘강종헌은 북한의 간첩’이라는 취지의 증언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