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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과의 차 한잔 / 시인 이문길

“죄 없이는 생명도 없다”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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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으로 쓴 시집 《구름》 펴내
⊙ “사람은 부모의 더러운 것까지 받아야 좋은 열매 맺어”
⊙ ‘날이 밝아 서글퍼라 / 찾아갈 곳도 없고 / 두고 갈 것도 없고’
이문길 시인이 경기도 의정부 자택에서 자신의 시론을 말하고 있다.
  원로 시인이 시집을 보내왔다. 대학노트에 손 글씨로 쓴 시집이다. 시집 제목은 《구름》.
 
  이문길(李文吉) 시인의 수기(手記) 시집에는 모두 33편의 시가 실려 있었다. 시를 읽으며 그의 삶을 함께 공유했다. 그의 언어와 상상에 실려 한동안 두둥실 떠다녔다.
 
  나 데려가거라
  나 데려 가아 거라아—
 
  다 왔으니
  돌아가련다
 
  나 데려가아거라
  나 데려가아거라.
  -시 ‘바다’ 전문
 
  하루 종일 할 일 없이
  세상을 떠돌아 오면
  곁에 와있는 푸른 하늘
 
  내 멀리 안 가고
  돌아왔다고
  반갑게 맞아주는 푸른 하늘
 
  나는 오늘도 본다
  하늘에서 다 떠돌고
  돌아가는 흰 구름을.
  -시 ‘구름’ 전문
 
  낙엽 밟는 소리
  무섭다
 
  내 늙어 빈 몸
  낙옆 위를 걸어간다
 
  내 발끝에 일어난 낙엽
  무섭다
 
  바람이 끌고간다.
 
  -시 ‘낙엽’ 전문

 
손 글씨로 쓴 이문길 시인의 시집 《구름》에 실린 시.
  손으로 쓴 시집엔 ‘낙엽’이 ‘낙옆’으로도 적혔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시인에게는 낙엽이 바로 발 옆으로 떨어져 있는 것이 ‘낙옆’일 수도 있다.
 
  시집을 읽다가 시인을 만나기 위해 지난 1월 22일 경기도 의정부에 있는 그의 집을 찾았다. 그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 사는 이야기까지 빠짐없이 들었다.
 
  그는 기자가 만난 누구보다 진지한 어른이었다. 지금도 좋은 시를 쓰고 싶어 하고, 불쌍한 이를 보면 눈물을 흘리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웃을 때는 한없이 개구쟁이처럼 보였다.
 
  “어린 시절 대구 수성교에서 보면 멀리 신암동 경부선 푸른 다리가 보였지요. 기차 가는 것은 잘 보이지 않았으나 기차 연기는 잘 보였어요. ‘칙칙폭폭 칙칙폭폭 꽤액~’ 소리 지르며 기차가 오고갔으나 우리는 기차가 무엇 하러 할 일 없이 오고가는지 알 수가 없었지요.”
 
  이런 이야기도 했다.
 
  “나는 나를 기른 엄마와 낳은 엄마가 따로 있었어요. 나는 기른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고 생모는 ‘어미야’라고 불렀어요. 어떻게 내가 ‘엄마’ 품에서 ‘엄마’ 젖을 먹으며 살게 됐는지는, 나는 너무 아기였고 이야기해 주는 사람도 없어서 나도 잘 몰라요. ‘엄마’에게서 난 아들이 죽고 젖이 불어 주체할 수 없어서 나를 데려다 길렀는지, 아니면 아버지의 뜻에 따라 그렇게 길러졌는지.”
 
  잠시 숨을 몰아쉬더니 이런 말도 덧붙였다.
 
  “사실은 엄마가 셋이었어요. 훗날 이 세 엄마 때문에 상주(喪主)를 세 번이나 했죠. 마지막 엄마가 죽었을 때는 울음도 나오지 않더라고요. 아무튼 나는 무슨 왕족도 아니면서 아버지의 맏아들로 종손(宗孫)을 이어받고, 여섯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지금까지 제사를 지냈어요. 세 엄마 중 생모가 막내로, 길을 잃어 떠도는 것을 데려와 혼례를 치렀다고 해요. 세 엄마 중 ‘엄마’가 키가 제일 작은데도 말이 없고 점잖아 위엄이 있었지만, 아래 두 엄마는 사나워 밤낮으로 싸웠어요.”
 
이문길 시인은…
 
  1939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1959년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수료했다. 1981년 첫 시집 《허생의 오막살이》를 쓴 이래 모두 17권의 시집과 자선 시선집 《그리운 집이여》, 시산문집 《석남사 도토리》, 동시 선집 《눈물 많은 동화》 등을 펴냈다. 1983년 대구문학상을 수상했고 1998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손수 지은 외딴집
 
이문길 시인이 오래전 대구 수성구 변두리에 손수 지은 외딴집 그림.
  젊은 시절, 시인은 수성교 부근에 손수 외딴집을 짓고 살았다. 지금은 그 일대가 대구의 교통 요지 중 하나지만 과거엔 그저 흔한 시골이었다. 그는 수성 들녘 길을 걸어 오르내리며 연장이래야 괭이 하나와 쇠스랑 하나, 삽 하나로 집을 지었다. 잔솔과 잡나무를 베어 한 평 한 평 넓혀갔다. 고생은 되었으나 밭이 조금씩 넓어지는 것을 보며 희망도 생겼다.
 
  “도시락 하나를 싸 들고 가서 하루 종일 인적 없는 산골짝에서 보내고 저녁이면 걸어서 내려왔어요. 집을 지은 후 제일 문제가 된 것은 방에 불을 들이지 않은 것이었어요. 북향한 습지에 부엌을 북쪽으로 내고 굴뚝을 남쪽에 세워서 그런지 불을 때도 아랫목만 조금 따뜻하고 윗목은 얼음장같이 차가웠지요.”
 

  그의 집은 들쥐, 생쥐, 시궁창쥐, 천장쥐, 변소쥐뿐 아니라 두더지, 다람쥐, 족제비 그리고 산에서 내려온 청설모까지 돌아다녀 가히 쥐의 천국이었다. 집 밖에 사는 쥐는 과일나무에 올라가 과일을 갉아먹고 슬레이트 지방 위를 몰려다니며 달리기 시합을 하고 놀았으나 부엌에 사는 쥐는 고추 물어 나르기, 비누 물어 나르기, 양말 물어 나르기, 걸레까지 물어 나르고 밤새도록 천장에 들어가려고 갉아대었다.
 
  “한밤중 쥐약 먹은 쥐를 먹은 검둥이가 신음하며 눈에 불을 켜고 살려달라고 밤새도록 집을 빙글빙글 돌며 뛰어다녀 우리 온 식구가 한잠도 자지 못한 일도 있었지요.”
 
  그런 집에서 그렇게 자식 낳고 살았다. 그 살아가는 몸부림이 그를 시인으로 만들었는지 모른다. 수기 시집에 실린 ‘외딴집’을 소개한다.
 
  저녁 무렵
  낯선 마을 외딴집 곁을 지나다 보았다
  뒤안에 밝아오는 환한 햇빛을
 
  흙벽에 걸려 있는
  녹슨 쇠스랑, 삼태기
  땅에 굴러 있는 소죽통
 
  생각난다
  옛 산골짝 외딴집
  거기 겨울이면 굴뚝 뒤에
  저희끼리 모여 놀던 아이들
  그리고 거기 어디서 숨죽여 울던 아내
 
  저녁 무렵 낯선 마을 지나다 보았다
  사람 떠난 빈집
  그 집 뒤안에 환하게 밝아 있는
  저녁 햇빛을.

 
  이문길 시인의 말이다.
 
  “유명하다고 하는 책 중 내가 여태껏 다 읽지 못하고 읽다가 그만둔 책이 있다면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고도를 기다리며》와 《어린왕자》예요. 《어린왕자》는 쓴 사람(생텍쥐페리-편집자 주) 이름이 ‘쥐때…’ 어쩌고 괴상한 것도 싫었지만 ‘어린 왕자’란 말이 우선 싫었어요. 그 사람이 쓴, 비행기 타고 가면서 온갖 잡(雜)생각 한 것(《야간비행》을 말하는 듯-편집자 주)은 읽었지만, 《어린왕자》는 유명한 책이라고 해서 억지로라도 읽어주려고 했지만 3분의 1쯤 읽고 끝내 다 읽지 못하고 말았어요. 왜 못 읽었느냐 하면, 사람이면 사람이고 아이면 아이지 애초에 왕자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고, 또 직설적이지 못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비유로 쓴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요.”
 
 
  詩의 본질은 적막
 
  ― 시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시의 본질은 적막(寂寞)입니다. 정말 적막이 없으면 시는 존재하지 않아요. 시는 그 적막을 넘어가는 적막입니다. 시의 본질은 적막강산이에요.”
 
  ― 죄(罪)란 무엇일까요?
 
  “분명한 것은 죄 없이는 생명도 없다는 겁니다. 신부나 스님도 천당에 못 가요. 그들은 자식이 없잖아요. 생명이 없잖아요. 집 나간 자식, 집 나가서 울고 있는 자식을 하늘이 건져주지, 죽을 때까지 ‘죄가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하나님 하느님 찾는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 하느님을 몰라요.”
 
  ― 종교를 안 갖고 계십니까?
 
  “나도 TV로 종교 방송은 봐요. 천당이 있다고는 믿지 않지만 그들의 설교에 귀를 기울여요. 훌륭한 목사님의 설교, 찬송가나 불교의 백팔대참회문(百八大懺悔文)을 듣습니다. 왜냐하면 종교 속에는 내 시보다 훨씬 좋은 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거짓말’이란 자작 시를 보여주었다.
 
  누가
  김수환 추기경님을 보고
  선생님은 5개 국어를 잘하신다고 하는데
  무엇을 제일 잘하십니까 하고
  물으니
 
  추기경님이 웃으시면서
  내가 제일 잘하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라고 말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처음으로
  추기경님이 좋았다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형님같이
  좋았는데
  한동안 지난 후에야 알았다
 
  추기경님은 거짓말 안 하지만
  언제나 거짓말하고 싶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 때로 죽음이 두려울 때는 없나요?
 
  “나는 죽음을 걱정하지 않아요. 가야 할 저승이 없다는 걸 알았거든요. 참으로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야 알았지요. 세상 끝나는 날 없어지면 된다는 걸, 세상 생명은 저승이 없다는 걸, 이승에서 없어진 건 저승에도 없다는 걸.”
 
  ― 횡재를 꿈꾼 적은 없습니까?
 
  “횡재, 좋아했지요. 흥부 놀부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어디 다리 부러진 제비가 없는지 살폈어요. 그리고 어른이 되고서도 흥부가 돼서 박씨 같은 걸 가져오는 제비가 없는지, 봄이 되면 제비가 나는 하늘을 살폈습니다. 박 타다가 예쁜 여자가 쏟아져 나오면 아내가 좋아할 리도 없고, 금 같은 것이 너무 많이 나와도 도둑이 들어 단명할 것이란 생각도 들었죠.”
 
 
  이름 모를 풀꽃을 보며
 
원예사로 일하던 젊은 시절의 이문길 시인.
  ― 한때 원예사로 일했다고 들었는데.
 
  “효성여대(현 대구가톨릭대) 원예학과의 온실 근무 교직원으로 7년을 근무했어요. 1급 기능사가 되니까 교직 높은 지위에 있던 선배가 월급을 올려주었고, 후배 교수는 내가 낸 시집을 학생들에게 팔아주었습니다. 그때 대구문학상을 받았지요.”
 
  ― 당연히 꽃을 좋아하시겠군요.
 
  “나는 정작 달마다 무슨 꽃이 피는지 잘 몰라요. 나는 모를 때는 아내가 좋아하는 화투를 생각합니다. 1월은 한겨울이라 꽃이 없고, 2월은 매화, 3월은 벚꽃, 4월은 흑싸리, 5월은 난초, 6월은 목단, 7월은 홍싸리, 8월은 공산이고 9월은 국화, 10월은 단풍, 11월은 모르겠고 12월은 오동나무 똥통…. 겨울이 될 무렵 꽃 같지 않은 꽃양배추가 있지만 나는 꽃으로 여기지 않아요.”
 
  ― 나무를 키우며 깨달은 게 있다면?
 
  “과수 농사를 지으면서 알았어요, 나무가 열매를 맺으려면 질소 하나만 주면 안 된다는 걸. 질소 하나만 주면 나무는 크게 자라지만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걸. 나무가 열매를 맺으려면 질소, 인산가리, 미량의 요소(尿素) 그리고 햇빛, 바람, 비… 있을 건 다 있어야 좋은 열매를 맺는다는 걸 알았어요. 사람은 부모의 더러운 것까지 받아야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고, 부모 나무가 죽어 폭삭 내려앉아 거름이 돼야 좋은 열매가 맺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내 부모는 보통 사람과 같은 죄인이었죠. 그래서 나는 한세상 잘 살다가 가요.”
 
  ― 요즘 제일 행복할 때는 언제인가요?
 
  “흰 구름 떠있는 수락산 북쪽 가까운 개울가 풀숲에 오목눈이 새떼 우는 소리가 들려요. 매일 다니는 산책길인 의정부 고산지구 철로 공사가 끝난 들녘 길은 인적이 없어요. 나는 그 길 끝 돌축대에 앉아 까치 까마귀 산새 우는 소리를 들으며 하늘을 바라보는 게 하루 중 제일 평안하고 행복해요.”
 

  ― 이름 모를 풀꽃을 좋아하신다고 들었는데.
 
  “길가에 앉아 들 끝에 있는 공원묘지를 바라보고, 하늘을 쳐다보고, 내 앞을 보다가 깜짝 놀랐지요. 언제 피었는지, 아주 작은 풀꽃 수백 개가 한꺼번에 활짝 피어 나를 보고 있었어요. 마치 누군가가 내게 주려고 기다리다 가져온 선물 같았습니다. 그 풀꽃을 보며 세상에 와있는 행복을 느꼈습니다.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그 어떤 종교에서도 알지 못한 행복이었죠.”
 
  ― 풀꽃이 얼마나 많았길래….
 
  “꽃 꼬투리를 살펴보니 한 줄기에 800개가 달려 있었어요. 그 작은 800개 꽃이 한꺼번에 잠시 피어 나를 보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나는 다시 한 번 행복했어요. 나는 그 풀꽃을 본 후, 세상은 울며 사는 곳이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억만년 세월 속에 잠시 존재했다 사라져도 행복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분명 시인은 말을 하고 있었으나, 그 울림은 마치 행과 연으로 엮인 시의 리듬처럼 가슴에 스며들었다.
 
 
  다시 태어나면 쇠똥구리로
 
이문길 시인이 펴낸 시집과 산문집들.
  ―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은지요?
 
  “혹시 이 세상에 다시 올 수 있다면 그때는 쇠똥구리로 태어나 소똥이나 굴리며 살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소똥도 동그랗게 뭉치는 것은 힘든 일이고 또 너무 크게 뭉치면 굴리기 힘들고, 똥도 없는 짚 뭉치 같은 것을 굴려보았자 소용없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어요. 더욱이 새가 날아와 소똥은 두고 쇠똥구리를 잡아가면 쇠똥구리로 태어난 게 헛일이지만, 그래도 쇠똥구리를 보면 웬일인지 자꾸 쇠똥구리가 되고 싶어요.
 
  늙으면 일 안 하고 살 수 있도록 구석에 소똥 뭉치 한 개를 숨겨놨어요. 볕 안 드는 깊은 구멍 속에서 쉬면서 소똥이나 먹으며 아무도 모르게 세상 살다 떠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서글퍼라 / 날이 밝아 서글퍼라
 
  기자는 그동안 살면서 자신의 몸보다 20배는 더 커 보이는소똥을 굴리며 똥을 먹는다는 쇠똥구리로 태어나고 싶다는 사람을 처음 보았다. 앞으로도 만날 확률은 희박할 것이다. 그런 말을 하는 시인은 행복해 보였다.
 
  그런데 슬프게도 쇠똥구리가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농약이나 항생제가 들어 있는 사료를 먹은 소나 염소가 농약 성분이 쌓인 똥을 배설하고 그것을 먹는 쇠똥구리가 죽거나 알을 낳지 못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언젠가 접한 기사가 떠올랐다. 쇠똥구리로 다시 태어나 삶을 살아가는 일도 쉽지 않아 보인다. 행복해 보이는 시인에게 차마 이 사실을 말해 줄 수 없었다.
 
  시인의 수기 시집에 실린 시 몇 편 더.
 
  아침이 되니
  서글퍼라
 
  날이 밝아
  서글퍼라
 
  찾아갈 곳도 없고
  두고 갈 것도 없고
  서글퍼라
  자고 나니 서글퍼라
 
  서글퍼라
  날이 밝아 서글퍼라.
  -시 ‘아침’ 전문
 
  오래 산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것이다
 
  왜 사는지
  모르고 사는 사람도 많지만
 
  오래 산다는 것은
  참으로 귀하고 귀한 것이다.
 
  -시 ‘오래 산다는 것은’ 전문

 
  작별 인사를 하고 돌아서려는데, 노시인이 벌꿀 한 단지를 선물로 주었다. 꿀이 만들어지려면 벌이 꽃에서 수집한 꿀샘의 꽃꿀이 효소를 포함한 벌의 타액과 섞여 물리적·화학적으로 변화하고, 벌들이 날갯짓하며 수분을 증발시켜 꿀을 농축하고 숙성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시인이 손으로 공책에 한 자 한 자 눌러 적은 시도 그러하리라.
 
  시인이 건네준 꿀단지를 가슴 가득 안았다. 시의 마음을 꼬옥 안았다. 그를 감동시킨 수백 개의 풀꽃으로 만들어진 꿀의 마음을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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