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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에세이

조지 오웰 70주기

“거짓이 지배하는 시대에 진실을 말하는 것은 혁명적 행위이다”

글 :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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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 內戰에 참전했다가 스탈린주의자들의 만행 체험한 후 전체주의 고발에 전념
⊙ 평생 사회주의자였으면서도 공산주의의 惡行 외면하지 않은 진정한 진보주의자
⊙ “상대가 듣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라도 말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진정한 자유”
⊙ “오웰이 이룬 진정한 업적은, 얄팍하고 거짓되고 혹은 필시 악에 물들었을 도덕이 판치는 시대에 그 자신 스스로가 믿을 만한 도덕주의자가 된 것”(폴 존슨)
  위선(僞善)의 계절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는 자리에서 “청와대든 정부든 집권여당이든 권력형 비리가 있다면 엄정한 자세로 임해주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던 대통령은 검찰의 수사가 ‘살아 있는 권력’, 자신의 측근들을 겨누자 수사 책임자들을 좌천시켜버리더니, 그걸로도 모자라 검찰의 수사 기능을 아예 박탈해버렸다.
 
  더 기가 막히는 일은 그렇게 정의(正義)와 진보(進步), ‘앙가주망(사회참여)’을 외쳐대던 지식인들이 대부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입을 다물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니 오히려 그 부패한 권력에 부역(附逆)하기를 마다하지 않고 있다. 어쩌면 그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좇아 행동하기 마련이고, 그게 ‘합리적인 선택’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나 시장(市場)의 원리를 배척하는 자들이 이럴 때면 꼭 시장의 원리에 충실하게 행동한다. 그래서 그들을 ‘강남 좌파’라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하지만 모든 인간이 그렇게 너절하게 사는 것은 아니다. 시류(時流)를 거스르면서 옳다고 믿는 바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진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진짜 ‘지식인’이었고, ‘행동하는 양심’이었다. 1월 21일 70주기(週忌)를 맞은 조지 오웰(George Orwell・본명 에릭 아서 블레어·1903~1950)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파시즘에 저항한다는 핑계로 강요하는 파시즘’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은 ‘진짜 진보’였다. 명문 이튼학교를 졸업한 후 대영제국 인도경찰로 버마(지금의 미얀마)에서 5년간 근무했던 그는 식민지 민중을 착취하는 제국주의에 환멸을 느끼고 사표를 던졌다. 한동안 파리와 런던에서 접시닦이 등 밑바닥 생활을 한 경험도 있는 그는 ‘못 가진 자’들에 가슴 아파하면서 인류의 미래는 사회주의에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됐다. 1937년에는 《위건부두로 가는 길》을 통해 영국 탄광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을 고발하기도 했다.
 
  조지 오웰은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다. 1936년 스페인 내전이 발발했다. 그해 11월 오웰은 아내 아일린과 함께 스페인으로 달려갔다. 그는 마르크스주의통일노동당(POUM) 민병대 소속으로 파시스트들과 전투 중 목에 총상(銃傷)을 입기도 했다.
 
  얼마 후 오웰은 뜻하지 않은 횡액을 당했다. 당시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이 이끄는 국가주의세력(우익)에 맞서는 스페인 공화정부(좌익)에는 민주주의자, 사회주의자, 사회민주주의자, 자유주의자, 무정부주의자 등 다양한 세력이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소련이 무기와 군사고문단 등을 제공하면서 공화정부 내에서 스탈린주의를 맹종하는 공산주의자들이 득세하게 되었다. 이들은 공화정부 내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해 스탈린식 숙청을 자행했다.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며 파시스트들과 피 흘리며 싸웠던 비(非)스탈린주의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 등이 비밀경찰에 체포되어 소리 없이 ‘증발’됐다(‘증발’은 후일 《1984》에서 중요한 소재가 된다. 또 좌우를 막론하고 독재국가에서 일상적인 현실이 된다).
 
  비스탈린주의 사회주의 정당이던 마르크스주의통일노동당 소속인 오웰의 숙소에도 비밀경찰이 들이닥쳐 압수 수색을 했다. 위험이 닥친 것을 깨달은 오웰은 1937년 7월 아내와 함께 천신만고 끝에 스페인을 탈출, 영국으로 돌아왔다. 이때 오웰은 ‘전체주의(全體主義)’가 어떤 것인가를 뼈저리게 느꼈다. 지인(知人)에게 보낸 편지에서 오웰은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진정한 공포정치의 시작이다. 파시즘에 저항한다는 핑계로 강요하는 파시즘, 한꺼번에 100명씩 투옥되어 재판도 없이 몇 달씩 갇힌 사람들, 발행이 금지된 신문들….”
 
 
  전체주의를 고발하기 시작하다
 
  오웰은 스페인에서 스탈린주의자들이 저지르고 있는 만행을 고발하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파시즘의 공포가 유럽을 누르고 있던 당시, 영국의 ‘진보 세력’은 그런 소리를 듣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영(陣營)논리’에 빠져 있던 그들이 듣고 싶어 했던 것은 파시즘에 맞서는 좌파들의 영웅담이었지, ‘진보 진영’ 내부를 배회하면서 진보 세력을 말살하고 있는 전체주의의 악령(惡靈)에 대한 고발이 아니었다. 전에 오웰의 책을 냈던 출판사조차 그의 책을 내기를 거부했다. 오웰이 스페인에서 겪은 체험을 그린 《카탈로니아 찬가》는 출판사를 바꾸어 어렵게 나왔지만, 영국 내 좌파 세력들은 입을 모아 그 책을 비방했다. 일반 국민들은 국민들대로 남의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내전 이야기에 싫증을 내고 있었다. 결국 이 책은 거의 팔리지 않았다.
 
  하지만 오웰은 이미 자신의 삶을 전체주의의 위험을 고발하는 데 바치기로 결심했다. 그는 “최고 통치자가 ‘둘 더하기 둘은 다섯이다’라고 결정해버리면, 그것이 진실이 되는 그런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것 같다”고 걱정했다. 10여 년 후에 나올 《1984》에 대한 구상은 이때부터 시작된 셈이다.
 
  이 무렵 폐결핵을 앓기 시작한 그에게 소설가 헨리 밀러는 이렇게 충고했다.
 
  “외부 세상에 대해 생각하고 불안해하기를 멈추세요. 우리는 참을 수밖에 없어요.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을 당신 혼자서 짊어질 수는 없습니다(그런 일은 히틀러와 무솔리니 같은 인간에게 맡겨두십시오).”
 
  하지만 오웰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1939년 8월 말 나치 독일의 폴란드 침공을 앞두고 국제적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독일의 외무장관 리벤트로프가 모스크바를 방문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오웰은 이렇게 다짐했다.
 
  “이것은 전쟁의 시작이었고, 아무리 체임벌린 총리의 정부(보수당 정부-기자 주)라고 하더라도, 나는 영국 정부에 충성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조지 오웰은 전체주의 세력과의 전쟁에 기꺼이 자신을 던질 각오가 되어 있었다. 독립노동당이라는 좌파정당에 몸담고 있던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당의 평화 일변도 노선에 반발해 탈당(脫黨)했다. 오웰은 사회주의자이기 이전에 영국의 애국자였던 것이다.
 
  1939년 9월 1일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터졌다. 오웰이 경고해오던 전체주의의 위험이 현실화된 것이다.
 
 
  그는 여전히 사회주의자였다
 
  하지만 오웰의 입지는 오히려 좁아졌다. 오웰에게 전체주의의 공포를 가르쳐준 스탈린이 나치에 맞서는 영국의 동맹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식인들은 물론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도 친(親)러시아 열풍이 불었다. ‘스탈린의 악(惡)’을 고발하는 일은 더욱 어려워졌다. 전쟁 중 BBC에서 선전요원으로 일했던 오웰은 소련에 대한 작은 비판조차 용납되지 않는 분위기가 견디기 힘들었다. 하지만 다른 대다수 영국인처럼 나치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그런 상황을 참아내야 했다. 이런 경험은 오웰의 가슴 속에 끓어오르고 있던,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통제 체제에 대한 반감을 더욱 부추겼다.
 
  그 결과물이 1944년에 나온 《동물농장》이었다. 그러나 스탈린 체제를 야유한 그 책을 내줄 출판사는 쉽게 발견할 수 없었다. 책은 1946년 2월에야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뉴 스테이츠먼 앤드 네이션》은 “이 작품은 소련에 대한 어리석은 숭배의 상당 부분을 바로잡아줄 것”이라고 평했다.
 
  여기서 하나 분명히 해둬야 할 것이 있다. 조지 오웰이 ‘전향(轉向)’을 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여전히 견결한 사회주의자였다. 1945년 여름 오웰은 허버트 리드, 버트런드 러셀, 시릴 코널리 등 ‘진보적 지식인’들과 함께 자유수호위원회라는 조직을 만들어 부의장직을 맡았다. 이 단체는 정치범 옹호, 임의 체포 저지, 표현의 자유 증진 등을 목표로 했다. 조지 오웰은 좌우(左右)를 막론하고 전체주의의 야만에 대해 눈을 감지 않았다. 진영논리에 함몰되지도 않았다.
 
 
  목숨과 바꾼 《1984》
 
  1946년 3월 사랑하는 아내이자 동지였던 아일린이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오웰 자신도 폐결핵으로 하루가 다르게 건강이 나빠지고 있었지만, 그는 전체주의에 대한 고발을 멈추지 않았다. 가상(假想)의 전체주의 디스토피아를 다룬 소설 《1984》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1948년 말 조지 오웰은 《1984》의 초고(草稿)를 완성했다(《1984》는 ‘1948’을 살짝 비튼 것이다). 본인의 말처럼 ‘10만 단어 이상, 어쩌면 12만5000단어쯤 되는 끔찍이도 긴 책을 레밍턴 타자기로 두들기면서’ 써낸 원고였다. 하지만 그 원고를 깨끗하게 쳐줄 타이피스트를 구할 수 없었다. 《1984》에는 오웰이 창작해낸, 당시 영어에서는 존재하지 않던 수많은 단어가 산재(散在)해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맡길 일이 아니었다. 오웰은 그해 12월 침대나 안락의자에 앉아서 2~3주 동안 《1984》 원고를 직접 다시 타이핑했다. 이 작업을 마친 후 오웰은 탈진(脫盡)해서 쓰러지고 말았다. 이 마지막 투혼이 결국 오웰의 최후를 재촉했다. 《1984》는 오웰이 목숨과 바꾼 책이었다.
 
  1949년 1월 조지 오웰은 병원에 입원했다. 그해 6월 영국과 미국에서 출간된 《1984》는 오웰이 예상한 것을 훨씬 넘어서는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오웰의 수명은 하루하루 줄어들고 있었다. 그해 10월 13일 오웰은 소니아 브라우넬이라는 출판사 직원과 재혼했다. 결혼식은 오웰의 병실에서 간단하게 치러졌다. 오래전부터 의사는 오웰에게 스위스로 요양여행을 다녀오라고 권했다. 이는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더는 없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오웰은 스위스의 맑은 공기를 마시지 못했다. 출발을 나흘 앞둔 1950년 1월 21일, 오웰은 숨을 거두었다. 향년 46세. 불꽃처럼 치열하게 살다 간 인생이었다.
 
  1947년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조지 오웰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생각한다. 작가의 첫째 의무는 자기 본연의 모습을 잘 보존하는 것이고, 진실을 말하는 것이 ‘시의적절하지 않다’거나 이런저런 불길한 영향력을 ‘본의 아니게 행사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핑계로, 거짓말을 하고 사실을 은폐하거나 주관적인 감정을 왜곡하도록 강요당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오웰은 입으로만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실제로 그렇게 살았다. 영국의 저술가이자 언론인인 폴 존슨은 오웰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오웰이 이룬 진정한 업적을 말하자면, 얄팍하고 거짓되고 혹은 필시 악에 물들었을 도덕이 판치는 시대에 그 자신 스스로가 믿을 만한 도덕주의자가 된 것이었다. 다시 말해 그는 자신의 글들이 내포한 의미들을 신(神)의 정의의 저울로 잰 사람이었다. 그 모든 의미들을 신의 눈인 ‘영원의 관점’에서 보았던 그는 당대의 그 누구도 되고자 노력하지 않은 진지한 작가였다. 이런 점에서 오늘의 젊은 작가들은 그를 통해 배워야 한다. 문학적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도덕적 측면에서, 무엇을 위해 분투해야 하며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를 배워야 한다.”
 
 
  조지 오웰의 명언들
 
  오웰의 이튼학교 동창인 시릴 코널리(영국의 작가 겸 문학평론가)는 오웰에 대해 “그 시절 우리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신(神)에 근접한 사람이었다”고 극찬했다.
 
  조지 오웰은 명언(名言)을 많이 남겼다. 《동물농장》에서 그는 “상대가 듣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이라도 말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진정한 자유이다”라고 일갈했다.
 
  《1984》에 나오는 말들 가운데는 “과거를 지배하는 사람이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사람이 과거를 지배한다”는 말이 특히 가슴에 와닿는다. 1970년대 후반 《해방전후사의 인식》이라는 책으로 대한민국의 역사를 뒤틀기 시작한 좌파는 당시 미래 세대인 대학생들의 가슴과 머리를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오늘날 권력을 잡은 그들은 다시 ‘과거사’에 대한 공식적인 재평가나 교과서를 통해 ‘과거’를 지배하고 있다.
 
  하지만 오웰의 말 가운데 지금, 바로 지금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말은 바로 이것이다.
 
  “거짓이 지배하는 시대에 진실을 말하는 것은 혁명적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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