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발굴 특종

조선어학회 정태진 선생이 해방 직후 간행한 《아름다운 강산》

북에는 白頭山 장엄 봉우리, 남에는 大同·洛東·漢江·錦江의 비단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1946년 12월 해방을 기념해 ‘아름다운 우리 국토’ 예찬한 詩歌를 묶은 시선집
⊙ 김광균·이극로·이은상·변영만·안재홍·한죽송 등의 작품 실려
광복을 맞이해 쏟아져 나온 시민들. 우리말을 당당히 할 수 있게 되면서 한글 연구가 본격화됐다.
  조선어학회가 광복을 기념해 엮은 시가집 《아름다운 강산(江山)》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그동안 《아름다운 강산》의 존재는 국문학자들 사이에 알려졌으나 책에 실린 구체적인 작품은 소개된 적이 없었다. 손바닥 크기의 이 시가집(詩歌集)을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구자룡 선생이 《월간조선》에 전해 왔다.
 
  이 책은 전체 86쪽에 이르며 표지에 작은 글씨로 ‘조선향토예찬’이라 적고 그 아래 큰 글씨로 ‘아름다운 강산’, 작은 글씨로 괄호 안에 ‘시가집’이라 적혀 있다.
 
  책 표지는 산과 들, 강이 나오고 옹기종기 모인 집들을 그린 그림으로 꾸며져 있다. 포개어 그려진 산은 모나지 않고 어머니의 젖무덤마냥 둥글어 포근하게 느껴진다.
 

  표지 아래에는 ‘조선어학회 정태진 추천’이라 명시하고 있다. 한글학자 정태진(丁泰鎭·1903~1952) 선생이 수록작품을 직접 골라 엮은 것으로 보인다.
 
  맨 뒷장 판권(版權)에 적힌 발행 시기는 ‘단기 4279년 12월’이다. 4279년은 해방 직후인 1946년이다.
 
  이 시가집은 해방을 기념해 아름다운 우리 국토를 예찬한 시가를 묶은 일종의 시선집이다. 이극로·변영만·이은상 등 37명(이 중에는 半島人·파랑새·赤駒 등 익명도 있다)의 작품이 실렸으며 여기에는 시·시조 신작도 있고 기존에 발표된 작품도 들어 있다. 독립운동가 신채호, 안재홍이 쓴 작품도 있어 눈길이 간다. 이와 함께 조선시대 임금(태종, 태조, 숙종 등)과 정도전, 정철, 김만중 등이 산수(山水)를 노래한 고시조(古時調), 한시가(漢詩歌·번역)도 들어 있다.
 

  정태진은 《아름다운 강산》의 머리말에서 “조선은 자연의 성경(聖境)이요 문화의 낙원”이라고 적고 있다. 다음은 머리말의 일부다.
 
  〈…북에는 백두산(白頭山)의 장엄한 봉우리가 하늘을 뚫을 듯이 높이 솟고, 남에는 대동(大同) 낙동(洛東) 한강(漢江) 금강(錦江)의 비단같이 아름다운 물이 곱게 곱게 흐르나니 이 땅에 태어난 우리 또한 얼마나 행복스러우랴!
  조선의 청년들아!
  읽으라!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읊은 귀여운 구슬 같은 시를!
  조선의 학생들아!
  노래를 부르라! 삼천리 금수강산은 그대들의 아름답고 우렁찬 노래 곡조를 듣고 싶어 몹시도 그리워 하나니. …〉

 
  머리말 바로 뒷장에는 정태진 선생이 쓴 〈아름다운 강산〉이란 시가 적혀 있다. 3·4·5조의 율격으로 전체 4연 8행으로 이뤄져 있다.
 
  반공에 높이솟은 저백두산은/ 삼천리 배달나라 우리의기상
  만고에 흘러가는 동해바다는/ 무궁화 이동산의 우리의생명
  영원히 아름다운 이강산위에/ 오천년 옛문화를 새로일으켜
  진리의 큰횃불을 높이들고서/ 고려의 밝은빛을 멀리비취세
 
  - 정태진, 〈아름다운 강산〉 전문

 
1933년 4월 1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정태진 선생의 귀국 기사다. ‘미국서 교육전공 귀국하여 교육계에. 형설 6년에 금의환향’했다고 썼다.
  이 시가집을 묶은 정태진 선생은 한글학자로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1903년생인 그는 경기도 파주가 고향이다. 개신교 집안에서 태어나 경성고등보통학교, 연희전문학교를 다녔다. 연희전문에서 국학자인 정인보(鄭寅普) 선생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연희전문을 졸업한 뒤 1925년 4월 함경남도 함흥의 영생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 영어와 조선어를 가르쳤다. 그러다 미국 유학길에 올라 1927년 우스터 대학(Wooster College)에서 철학을, 1930년 컬럼비아대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석사학위를 받은 선생은 1931년 9월 귀국, 다시 영생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으나 1938년 3월 조선교육령이 개정·반포돼 조선어 교과가 사라지자 학교를 그만두었다. 1941년 5월부터 ‘조선어학회 전임위원’이라는 직함으로 우리말 사전 편찬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일제의 조선어학회 강제 해산과 탄압으로 함흥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광복 이후 조선어학회를 재건, 우리말 《큰사전》 편찬 작업을 재개하는 한편 연세대·중앙대·홍익대 등지에서 중등 국어교사를 길러 냈다.
 
  선생은 영어가 능통해 미 군정의 고위직 제의를 여러 차례 받았으나 고사하고 우리말 연구에 정진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자 안 쓰기 문제》(1946년 6월), 《중등 국어 독본》(1946년 10월), 《고어독본》(1947년 4월), 《조선고어방언사전》(김병제 共著·1947년 12월) 등을 펴냈으며 1947년 10월 9일 한글날을 기해 발행된 조선어학회의 《큰사전》 제1권, 이듬해 5월 5일 발행된 《큰사전》 제2권의 편찬을 주도하였다.
 
  1949년 9월 25일 조선어학회가 한글학회로 개편할 때, 선생은 이 학회의 이사로 선출되어 활동하게 되었다. 그러나 1952년 11월 2일 5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다음은 《아름다운 강산》에 실린 작품 일부를 소개한다. 표기는 현대어 표기법에 맞게 고쳤음을 밝혀 둔다.
 
 
  〈백두산(白頭山)〉
  - 이극로(李克魯)
 
  백두산! 백두산! 백두산이라!
  하늘 위냐? 하늘 밑이냐?
  하늘에 오르는 사닥다리로구나!
  진세(塵世)의 더러운 기운
  발밑엔들 어찌 미치리
 
  그는 세상(世上)을 내려 살피고
  세상은 그를 우러러 본다
  세상은 만민(萬民)이요 그는 제왕(帝王)이라구나!
 
  × ×
 
  그는 불을 뿜어 살았건만
  더러운 이 세상은 또 거름밭 되었네
  이것 한번 씻고자
  머리에 큰 물동이를 이었고나
  바닷가의 메(뫼-편집자)냐? 메위의 바다냐?
 
  이는 곧 천지(天池)
  예로부터 이 물 맞아
  득천(得天)한 미리(龍) 얼마뇨!
 
  × ×
 
  병풍(屛風)을 두른 듯
  둘러선 십수(十數) 첨봉(尖峯)은
 
  메(뫼-편집자)마루 곧 못둑인걸
  총 끝에 창을 꽂아
  백병전(白兵戰)을 준비(準備)한
  위풍(威風)이 도는 그 모양!
 
  × ×
 
  천둥 소리냐 지둥 소리냐?
  사방(四方)에 떨어지는 폭포(瀑布) 소린걸
  하늘은 경세종(警世鍾)이라
  정신(精神)없이 잠자는 무리를 소리쳐 깨우는구나
 
  × ×
 
  층층(層層) 첩첩히 쌓인
  백옥(白玉)같은 눈 유리같은 얼음
  어느 땐들 녹으랴
 
  북극(北極)과 짝지을 듯
  이는 백두산의 기후(氣候)
  그 늠렬(凜烈)한 기운
  나약(懦弱)한 자를 단련(鍛鍊)하누나!
 
  × ×
 
  모였다가 흩어지고
  흩어졌다가 모이는 구름 안개
  전선(戰線)에 출동(出動)하는 대군(大軍)같이 변동무상(變動無常)!
 
  이는 백두산의 천기(天氣)
  그 무궁(無窮)한 조화수단에(造化手段)에
  어느덧 비가 되어 주울줄 좌악좍
  마르고 타죽던 무엇에나
  생명수(生命水)가 되누나!
 
  × ×
 
  북(北)에서 쏜살같이 불어오는
  북빙양(北氷洋) 얼음깎던 칼날바람
  사람 살을 깎는 듯,
 
  그러나 백두산 방패 되지
  그안에 든 무리야
  엄동(嚴冬) 운한(雲寒)엔들 어떠리!
 
  × ×
 
  누가 진세를 피하고자
  마음을 닦고자
  안광(眼光)을 넓히고자 하는가?
  묻지 말고 저리만 올라가소,
 
  × ×
 
  날빛보다 밝은 등대(燈臺)로다
  소경이 길을 찾을듯
  사나운 풍우(風雨)에 길잃은 사공들아!
  정신 차려 노를 저어
  저 등대만 보고 가소!
 
  × ×
 
  우뚝 선 보탑(寶塔)이로다
  영원(永遠)히 조선 겨레의 보탑이로구나!
  (水陸二十萬里 두루 돌아)
 
  (편집자: 이극로(1893~1978)는 조선어학회 간사 및 상무이사를 맡아 《조선어사전》을 펴내는 데 기여했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6년형을 선고받아 옥살이를 했다. 해방 뒤 북한에 남아 조명을 못 받다가 몇 해 전부터 국내에 기념사업회가 꾸려졌다. 저서로 《한글맞춤법 통일안》(1933), 《조선어 표준말 모음》(1936) 등이 있다.)
 
 
  〈백두산(白頭山) 가는 길에〉
  - 변영만(卞榮晩)
 
  백두산 가는 길
  장려한 채 지리하다
  넘는 재 건너는 물
  앞막는 숲 가로뇐 덕
  끝없이 가고 또 가고
  번갈아서 나서네.
 
  무두봉(無頭峯) 기어 올라
  천리천평(千里天坪) 내다보니
  넓기도 넓을시고
  우리 옛터 이 아닌가?
  인 흥이 잦기도 전에
  눈물 벌써 흐르네.
 
  (편집자: 변영만(1889~1954)은 시인 변영로(卞榮魯)의 형으로 법조인이자 한학자, 영문학자, 시인, 문필가로 활동했다. 1909년 안중근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자 그의 변호에 참여하려 했으나 한국변호사의 변호가 불허됐다. 그러자 불복해 청원서를 내기도 했다. 해방 후 반민특위 재판장을 지냈다.)
 
 
  〈두만강(豆滿江)의 서정(抒情)〉
  - 한죽송(韓竹松)
 
  속삭이던 그날밤 맺은 그언약
  달빛에 아롱졌던 임의 그모습.
  한많은 이강위에 세월은 가도
  내어이 잊으리까 그리운 그대
 
  물길 천리(千里) 두만강 버들이 피고
  뜸북새 목메어우는 처량한 밤엔
  꿈자취 애달파라 새로운 옛날
  아득한 만주하늘 별빛만 차다.
 
  다홍치마 적시며 풀려진 닻줄
  남은 정 원수라오 참아 못잊어
  나룻가 실버들에 옛꿈을 엮어
  임가신 그나라로 흘려보내리.
 
 
  〈사공(沙工)의 노래〉
  - 한죽송
 
한글학자 정태진 선생이 《아름다운 강산》에 수록된 작품을 직접 골라 엮은 것으로 보인다.
  두만강 천리(千里)언덕 버들이 피면
  물방아 노래따라 닻을 풀더니
  임그린 하소인가 흐르는 단풍(丹楓)
  오늘도 강에 떠서 해골 보내네.
 
  갈숯에 달빛어려 배를 멈추고
  초막에 흐트러진 불타는 향수(鄕愁)
  이강에 오고가며 몇해이던고
  뼈저린 추억속에 꿈길만 멀다.
 
  강넘는 나그네를 달래주면서
  한깊은 물결위에 늙는 이 청춘(靑春)
  못잊는 고향하늘 아득한 생각
  기러기 우는밤에 잠못 듭니다.
 
  (편집자: 일제시대에 요절한 시인으로 1939년 민요시집 《방아찧는 처녀(處女)》를 출간하기도 했다.)
 
 
  〈천지(天池) 가에서〉
  - 황오(黃澳)
 
  반공(半空)에 봉(峰)이 솟고
  호수(湖水)에 달빛 떴다
  천만고(千萬古) 묵은 침묵
  백벽(白壁)에 어렸고나
 
  백사(白沙)에 앉은 나그네
  마음 빈듯 하여라.
  (그山 그江 하룻밤)
 
  (편집자: 황오 시인은 해방 직후 ‘전조선문필가협회’에서 활동했다. 전조선문필가협회는 임화(林和) 등 좌파문인이 주동한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와 ‘프로예술연맹’에 대항해 우익 진영의 문화를 옹호하기 위해 1946년 3월 발족한 문화단체다.)
 
 
  〈고도(古都)의 기억(記憶)〉
  - 김광균(金光均)
 
  1
  남대문(南大門) 인경종이 밤깊어 울면
  옛도성(都城) 어둔길에 등불도 울어
 
  선죽교(善竹橋) 돌난간에 실비 내리면
  청천(靑天)을 울고가신 옛임 넋인가
 
  숭양원(崧陽院) 뒤수풀에 밤새가 울고
  자남산(子男山) 옛정자(亭子)에 지새는 안개
 
  2
  고궁(古宮)엔 탑(塔)도 없고 회랑(回廊)도 없고
  만월대(滿月臺) 빈돈대에 낙엽(落葉) 소리뿐
 
  경덕궁(敬德宮) 고대(高臺)뒤에 밤이 깊으면
  지파리(池波里) 잠든물결 대답도 없이
  송악산(松岳山) 망루(望樓)위에 별빛만 조니
  고도(古都)여 애닯고나 옛꿈이 설워
 
  (편집자: 김광균(1914~1993)은 경기도 개성이 고향이다. 193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설야(雪夜)〉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와사등(瓦斯燈)》(1939), 《기항지》(1947), 《황혼가》(1959) 등이 있다.)
 
 
  〈모란대(牡丹台)에서〉
  - 민동선(閔東宣)
 
  금수강산(錦繡江山) 모란대(牡丹台)며 청류벽(淸流壁) 대동강(大同江)을
  남들은 좋다하나 나는홀로 슬퍼하네
  외롭고 고달픈손이야 승경(勝景)무삼 하리오
 
  대동강(大同江) 흐르는물 천고(千古)에 푸르도다
  계월향(桂月香) 고운넋은 몇천고(千古)를 푸를것고
  장부(丈夫)로 타고난 몸이니 유방백세(流芳百世) 하리라.(1932.8.4.)
 
  (편집자: 시조시인 민동선은 일제시대 경북 김천지역에서 활동한 시인으로 서울에서 수학하고 안심사(安心寺)에서 불교 수도를 하면서 〈한글 경판(經版)을 뵈옵고〉라는 시조를 발표했다. 1930년대 당시 불교적 색채가 강한 시조를 쓰기도 했다. 김천은 조선시대부터 영남 사림의 영향을 많이 받은 곳이다.)
 
1935년 조선어학회 표준어사정위원들이 현충사를 방문하고 찍은 기념사진. 앞줄 맨 왼쪽이 정세권, 둘째 줄 왼쪽에서 둘째가 이극로, 넷째가 안재홍이다.
 
  〈조선의 영혼(靈魂)〉
  - 박귀송(朴貴松)
 
  풍옥(豐沃)한 땅덩이
  여명(麗明)한 산천(山川)
  재질(才質)좋은 숲을 손안댄 처녀림(處女林)
  고대(古代)의 건물(建物)과도 같이 찬란하여라
 
  평화(平和)로운 심사(心思)
  자유(自由)로운 생활(生活)
  강(江)가에 널어놓은 새하얀 빨래
  오오 조선의 마음은 조선의 폐(肺)는
  행인(行人)이 입은 백의(白衣)보다도 결백하도다
 
  이러한 땅에서 우리는 나서 우리는 자라
  대자연(大自然) 조선의 품에서 우리는 살아
  아름다운 조선을 노래하였고
 
  이른 아침 뛰노는 어린 아이들은
  영원(永遠)한 조선의 이마에 매달려 홀홀 웃음 웃나니
  힘 있는 삶 속에 자라나는 삼천리(三千里)의 영혼(靈魂)이여
  길이길이 이땅에 늘어가거라
 
  풍옥한 땅덩이
  여명한 산천
  품질(品質) 좋은 곡식 울울한 삼림(森林)
  오오 조선의 품은 조선의 가슴은
  목동(牧童)의 피리소리보다도 자유롭도다
  (세기(世紀)의 예언(豫言))
 
  (편집자: 박귀송 시인이 1935년 펴낸 시집 《세기의 예언》에 실린 시를 재수록했다. 시인은 백석(白石) 시인의 시풍과 닮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몇 해 동안 국문학계에서 백석 시인이 주목을 받자 더불어 주목을 받았다. 박귀송은 “시는 간결하고 솔직해야 한다. 시인은 결코 귀신이나 선인(仙人)이 아니다. 시인의 생활은 보통사람의 일상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조회 : 524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201811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프리미엄결제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 마음챙김 명상 클래스
  • 조선뉴스프레스 선정 초청작가 특별기획전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