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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채와 앨범

김환기·김기창·이중섭·천경자의 걸작, 건스 앤 로지스의 1집 《파괴욕망(Appetite for Destruction)》

나신(裸身), 소, 한국 예수, ‘환기 블루’ 그리고 악동들의 메탈 잔치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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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까지 시대의 난고(難苦)를 그림에 담아
⊙ 하늘 아래 두 태양의 충돌… 액슬 로즈와 슬래시가 만든 정통 메탈
천경자,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 1976, 종이에 채색, 130x162cm
  천경자의 고독한 나신과 이중섭의 살아있는 ‘소’
 
  서울미술관(종로구 부암동)에서 7인의 화가와 걸작을 만났다. 그중에서도 김환기, 김기창, 이중섭, 그리고 천경자가 오래 기억에 남는다.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까지 시대의 난고(難苦)를 그림으로 표현하려 했던 이들이다.
 
  천경자(1924~2015). “현실이란 슬퍼도, 제 아무리 한(恨) 맺힌 일이 있어도 그걸 삼켜 넘겨 웃고 살아야 하는 것”이라 했던 화가. ‘한의 화가’ ‘꽃의 화가’라 불리는 천경자가 마흔아홉에 그린 그림이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다.
 
  코끼리 등에 나신(裸身)의 여인이 웅크리고 있다.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채. 사자, 기린, 얼룩말, 사슴, 멧돼지도 나신이다. 동물들의 눈은 찢어지거나 혹은 없다. 이들에게 연민이란 찾아볼 수 없다. 같은 나신인데도 여자의 나신은 슬프다. 울고 있을 것만 같다. 초원은 이미 빛을 잃었다. 가시덤불 같은 나뭇가지가 손을 비비꼬며 손짓한다. 하늘은 이글이글 불타오른다. 석양일까. 아니면 누가 불을 지른 것일까. 하늘에 반사된 산은 녹슨 청동 빛이다.
 
이중섭, 〈황소〉, 1953, 종이에 에나멜과 유채, 35.5x52cm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는 화가가 아프리카를 횡단하며 대륙의 이미지를 자신의 49세 인생에 중첩시켰다고 한다. 그림 그리는 데 1년여의 긴 작업이 필요했다. 긴 고독의 작업이 코끼리 등에 탄 고개 숙인 여인에게서 묻어난다.
 
  이중섭(1916~1956). “어디까지나 나는 한국인으로서 한국의 모든 것을 올바르고 당당하게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되오”라고 했던 그다. 왜 그가 ‘소’에 천착했는지 모르지만 이중섭의 ‘소’는 그냥 ‘소’가 아니다. 살아있는 ‘소’다. 근육이 하나하나 살아서 뱃가죽에, 등허리에 꼬리를 파르르 떨게 한다. 미술평론가들은 이중섭의 ‘소’에 우리 민족 수난의 역사가 담겨 있다고 한다. 어두운 톤의 바탕색채가 ‘수난’을 연상케 한다. 이중섭의 그림은 대개 종이에 그린 것이 대부분이다. 물감이 부족해 화이트 물감에 공업용 안료인 페인트를 섞어 작업했다. 〈황소〉 역시 공업용 안료가 얹어져 종이의 우글거림이 육안으로 확인될 만큼 손상의 정도가 크다. 그러나 쉽게 마르는 페인트의 속성과 물감이 스며드는 종이의 특성이 아우러져 일필휘지의 빠른 붓놀림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소’의 눈에 자꾸 시선이 간다. ‘소’는 나를, 우리를, 우리 민족을 응시한다. 그 둥근 눈동자와 앙다문 입술, 콧김이 새어나올 것 같은 콧구멍이 살아 숨 쉴 것 같다.
 
 
  김기창의 조선 복색과 김환기의 푸른색
 
김기창, 〈요한에게 세례받음〉, 1952-53, 비단에 채색, 63.5x76cm
  김기창(1913~2001). 청각장애를 앓았던 그. “나는 세상의 온갖 좋고 나쁜 소리와 단절된 적막의 세계로 유배됐다. 그러나 나는 소외된 나를 찾기 위해 한 가지 길을 택했다. 나는 화가가 되었다”고 했던 운보. 〈예수의 생애〉 전작 30점이 전시됐다. 이 작품들은 작년 4월 독일 국립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전’에 초청된 작품이다.
 
  30점 모두 신약성서의 주요 장면이다. 갓을 쓰고 흰 두루마기를 입은 예수. 모두 한국의 토속적인 향리풍경이다. 들판과 산천은 조선의 복색 그대로다. 세필(細筆)로 묘사되는 현장감은 세계 어느 나라 성화(聖畵)에서도 볼 수 없다. 이스라엘의 예수와 한국의 예수는 다르지 않다고 그림은, 운보는 말한다. 그는 “예수 생애를 조선조라는 시공간에 옮겨 놓았다”고 말했었다. 〈요한에게 세례받음〉에 나오는 천사는 색동옷을 입은 한국의 선녀다. 왜 이리 감격스러울까.
 
  김기창은 예수의 용모를 놓고 고심을 거듭했다고 한다. 성경에는 메시아의 모습이 이렇게 그려져 있다. 구약의 한 구절이다. ‘그는 주님 앞에서 가까스로 돋아난 새순처럼, 메마른 땅의 뿌리처럼 자라났다. 그에게는 우리가 우러러볼 만한 풍채도 위엄도 없었으며 우리가 바랄 만한 모습도 없었다’(이사야서 53:2)고 쓰여 있다. 이사야서(書)에 묘사된 예수는 곱고 잘생긴 분이 아니라 ‘고난받는 종’이다.
 
김환기, 〈산〉, 1958, 캔버스에 유채, 100x73cm
  김환기(1913~1974). 한국 추상화의 선구자. 그의 그림은 구상화에서 볼 수 없는 언어가 들어 있다. 그 언어는 말로 설명할 수 없다. ‘말할 수 없음’을 말한다. 그림에 등장하는 자연은 한국의 산과 강, 달과 구름이다. 전시된 〈산〉 역시 달이, 바위가, 나무가 그림 안에 가득 차 있다. 캄캄한 밤을 연상케 하는 푸른색이 주조다. 푸른 바다가 넘실거리는 듯한 청색 바탕에 한국의 산과 달이 마치 꿈꾸듯 그려졌다. 바다의 고장에서 태어난 김환기의 작품에는 푸른색이 많다.
 
  그의 고향은 전남 신안군 기좌도(현 안좌도). 남도의 조그만 섬마을에서 자란 그는 푸른 바다와 살았다. 그리고 넓은 밤하늘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렸다. 그는 중학교 때 서울로 유학을 떠나지만, 작품에는 언제나 유년시절의 푸른색이 점, 선, 색으로 가득했다.
 
  영어권 국가에서 블루(blue)는 우울한 기분을 자아내지만 김환기의 푸른색은 ‘환기 블루’라고 불릴 만큼 독자적이다. 외국의 코발트블루, 프러시안블루 같은 색채보다는 쪽빛, 반물색, 감파랑 같은 단어가 연상되는 한국적인 푸른색이다.
 
 
  건스 앤 로지스의 1집 앨범, 80년대 말 헤비메탈의 최고봉
 
건스 앤 로지스의 1집 앨범인 《파괴욕망(Appetite for Destruction)》(1987).
  건스 앤 로지스(Guns N' Roses). 총과 장미. 악동 액슬 로즈(Axl Rose)는 한때 ‘할리우드 로즈(Hollywood Rose)’의 보컬이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잘나가던 ‘LA 건스(LA Guns)’와 1985년 결합하면서 밴드 이름을 ‘총과 장미’로 정했다.
 
  얼마 후 ‘LA 건스’의 리더였던 트레이시 건스가 밴드를 탈퇴했지만 이름은 그대로 ‘건스 앤 로지스’였다. 뒤이어 기타리스트 슬래시(Slash·본명은 Saul Hudson)가 가세하면서 전설은 시작된다.
 
  이들의 첫 앨범 《파괴욕망(Appetite for Destruction)》(1987)은 록 역사상 최고의 데뷔앨범으로 손꼽힌다. 147주(3년 3개월) 동안 빌보드 차트에서 떠나지 않았다. 1980년대 후반 헤비메탈이 본 조비(Bon Jovi) 같은 ‘팝 메탈’로 쇠락해 갈 때 이들은 강력한 헤비메탈에 ‘날것’ 그대로의 호소력으로 팬심(心)을 훔쳤다.
 
  특히 〈사랑스런 내 사람(Sweet Child O' Mine)〉의 인기는 1988년 강타한 허리케인이었다. 그해 8월 ‘몬스터즈 오브 록’에서 그들은 대선배 키스, 아이언 메이든, 데이비드 리 루스, 메가데스, 할로윈 등을 넉다운시켰다.
 
  이 공연 후 〈Sweet Child O' Mine〉은 ‘빌보드 핫 100(Billboard Hot 100)’ 차트 1위(1988년 9월 10일)에 올랐다. 한 달도 안 돼 입소문이 났던 모양이다. 갑자기 전 세계가 건스 앤 로지스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웰컴 투 더 정글(Welcome to the Jungle)〉, 〈파라다이스 시티(Paradise City)〉를 동반 히트시키며 1집 앨범 《Appetite for Destruction》은 미국에서만 1800만 장, 전 세계적으로 3300만 장이 팔려 나갔다(1년 전에 앨범이 발매됐음을 감안하면 놀라운 결과다).
 
  더블 앨범인 이들의 3집 《유즈 유어 일루전(Use your illusion) 1,2》(1991)은 건스 앤 로지스 최전성기의 마지막 리즈 시절을 확인할 수 있는 앨범이다. 1집이 힘으로 승부하는 메탈로 채워졌다면 2집은 발라드, 펑크, 클래식이 골고루 섞여 있다. 음악적으로 훨씬 성숙해졌다고 할까.
 
  앨범커버는 독특하다. 라파엘의 작품 〈아테네 학당의 사람들〉 중 ‘두 명’을 발취했다. 왜 이 두 명에 주목했을까. 혹시 액슬과 슬래시가 아닐까.
 
  이 앨범 중 〈돈 크라이(Don't Cry)〉와 〈노벰버 레인(November Rain)〉, 밥 딜런의 곡을 커버한 〈노킹 온 헤븐스 도어(Knockin' On Heaven's Door)〉가 히트했다. 전자의 노래는 폭넓은 음역대를 막힘 없이 휘젓는 액슬의 보컬이 압권이고, 후자는 기타리스트 슬래시의 폭풍 기타연주가 압권이다.
 
  전 세계 팝 보컬 중에서 액슬 로즈는 머라이어 캐리, 프린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톰 요크(라디오헤드의 리더싱어), 프레디 머큐리(그룹 퀸의 보컬리스트)와 함께, 아니 이들보다 가장 넓은 음역대를 지닌 것으로 조사됐다. 이 조사는 《허핑턴포스트 US》(2014년 5월 21일자)에 게재됐다.
 
  슬래시는 ‘깁슨 레스폴’ 기타를 애용한다. 영국의 전설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지미 페이지(Jimmy Page)처럼 블루스를 기반으로 한 정통파 기타 연주자로 불린다. 지난 2010년 영국의 BBC가 선정한 ‘최근 30년간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 순위에서 레드 핫 칠리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 출신의 존 프루시안테(John Frusciante)에 이어 2위에 올랐다. 2011년 미국 음악잡지 《롤링스톤》 지가 선정한 세계 100대 기타리스트에서 65위.
 
 
  액슬과 슬래시, 재결합할까
 
건스 앤 로지스 오리지널 멤버들. 가운데가 보컬 액슬 로즈, 오른쪽 끝이 기타리스트 슬래시.
  그러나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이 존재할 수 없다. 액슬과 슬래시는 시종 티격태격 불협화음을 냈고 결국 팀이 해체됐다. 누가 먼저 잘못했는지는 몰라도 액슬 로즈와 다른 멤버 간의 불화가 절정으로 치닫자 슬래시가 탈퇴하고 만다. 슬래시는 이후 ‘벨벳 리볼버(Velvet Revolver)’라는 밴드를 결성했고 액슬 로즈는 껍데기뿐인 건스 앤 로지스로 활동했다. 과거 리즈 시절의 사운드와는 거리가 멀었다. 게다가 액슬은 노쇠한 데다 뚱뚱해졌고 그 넓던 음역대의 목도 힘을 잃었다.
 
  건스 앤 로지스는 2011년 12월 로큰롤 명예의전당 헌액이 확정됐다. 이후 오리지널 멤버의 재결합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액슬 로즈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능성이 있어 보이긴 하지만 결코 그렇게 될 것 같지 않다(It was always looked at as a possibility, but it never seemed right or felt right)”고 말했다.
 
  슬래시는 한 발 더 나아갔다. “우리 모두는 상당히 긍정적이어서 (재결성이) 일어나지 않았으나 여전히 우리 마음을 설레게 한다(We all were pretty positive (the reunion) would never happen, so it’s still sort of blowing our minds)”고 여지를 남겼다.
 
  액슬은 이제 쉰일곱, 슬래시는 쉰넷의 나이다. 많은 팬은 더 늙기 전에 두 사람의 재회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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