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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주년 시민강좌 | 가까이에서 본 인간 박정희 인간 육영수

암살 시도 현장에 끝까지 남아 행사 마친 지도자는 박정희 대통령뿐

글 : 김동연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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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세광의 총알이 본인에게 빗발치는데, 경호원들에게 “총 쏘지마” 외친 박정희 대통령
⊙ 직원들 퇴근시키려고 일찍 퇴근하는 척하고 다시 집무실로 돌아온 인간 박정희
⊙ 특권의식 내려놓고 소박한 삶을 추구한 인간 육영수
  작년 11월 8일 첫번째로 시작됐던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 시민강좌가 벌써 10회째에 접어들었다. 이번 10번째 행사는 지난 8월 3일 서울 태평로의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정해진 인원수보다 많은 인파가 몰려 일부 참석자들은 박스를 깔고 바닥에 앉아 강연을 지켜보기도 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몰린 것은 아마도 이번 강연의 주제가 가까이에서 본 인간 박정희 인간 육영수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대외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박정희 대통령과 영부인 육영수 여사의 삶을 김두영 전 청와대 비서관을 통해 알아볼 수 있었다. 이번 행사에는 김두영 전 청와대비서관,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여명 청년박정희연구회 부회장이 연사로 나왔다.
 
 
  비서관의 목을 끌어안고 통곡한 인간 박정희
 
김두영 전 청와대 비서관이 인간 박정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김동연
  김두영 전 비서관은 연단에 올라 육영수 여사가 운명했던 그날의 일을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묘사했다. 그가 이 비극적인 날의 주제로 인간 박정희와 인간 육영수를 꼽은 건 인간 박정희의 모습을 가장 극명하게 볼 수 있었던 날이기 때문이라는 소감을 밝혔다. 김 전 비서관의 말이다.
 
  “8·15 광복절 행사일 박정희 대통령은 행사장에 1분 1초도 늦지 않기 위해 도착하고자 정시에 바로 출발했다. 나는 아침 식사를 하고 차에 오르려고 했는데, 이미 박 대통령의 차가 출발을 하고 있어 함께 가지 못했다. 그래서 집에서 텔레비전으로 행사를 보기로 했다. 박 대통령은 어떤 행사든지 1분도 늦지 않는 분으로 유명하다. 당시만 해도 코리안타임이라고 해서 행사나 약속시간에 한 15분, 20분 늦는 것은 예삿일이었는데, 박 대통령은 그렇게 늦은 적이 없다. 그날도 정시에 도착하려고 일찍 출발하신 거다. 집에서 텔레비전 중계로행사를 지켜보던 중 갑자기 방송이 중단됐다. 단순히 방송에 문제가 있는 줄 알았는데, 전화가 걸려 왔다. 서울대병원에 육영수 여사가 계시니 바로 오라는 내용이었다. 병원에 도착해 보니 침대 위에 육영수 여사가 응급처치를 위해 누워 계셨고, 간호사가 심폐소생술인 흉부 압박을 계속해댔다. 간호사가 나에게 (육 여사)발을 높이 들고 있으라고 해서 내가 육영수 여사 양발을 가슴팍에 들고 있었다. 그 후 수술실로 들어갔다. 이후 육 여사가 운명했고, 하늘에서는 비가 내렸으며, 오묘하게도 그날 하늘의 색은 기이할 정도로 노랬다. 운명하시던 날 육 여사가 입고 계시던 노란색 한복색과 똑같을 정도로 하늘이 노랬다. 마치 하늘도 육 여사의 운명을 안타까워하는 듯했다. 육 여사의 유해를 임시로 모셔 놓은 접견실 입구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마구 쏟아져 내렸다. 박정희 대통령은 울고 있던 나를 보고는 내 목을 와락 끌어 안고는 대성통곡을 했다. 그렇게 둘이서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 그 뒤로도 육영수 여사의 빈소에서 박 대통령은 흐느껴 울었고 이 소리를 들은 당직자들이 나중에 나에게 그 사실을 알려줬다.”
 
 
  장례식 다음날 바로 영부인 업무를 영애와 분담한 박 대통령
 
  김 전 비서관은 육영수 여사가 총을 맞는 순간부터 운구차량을 떠나보내는 순간까지의 과정을 보면서, 인간 박정희의 모습을 알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차가울 정도로 담대하면서도 세심했다. 또 한편으로는 한없이 여린 감성을 지닌 인간이었다.
 
  박 대통령은 운구 행렬을 떠나보낸 그 이튿날 육 여사를 모셨던 제2부속실 직원들을 불렀다. 그러고는 “내자가 저렇게 되었으니 얼마나 비통하겠는가. 제2부속실 직원들을 제일 먼저 부른 이유는 내자가 하던 일 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처리하고, 근혜가 할 수 있는 일은 근혜가 하도록 하겠으니 항목을 정리해 올려라”라는 지시를 했다고 김 비서관은 말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의 아내를 잃은 상황에서도 국가의 장으로서 공과 사를 명확히 구분하고 곧장 국무에 차질이 없도록 한 것이다. 그의 냉철한 성격도 이 부분에서 엿볼 수 있다.
 
  김 전 비서관은 영부인이 하셨던 나환자촌 지원, 양지회 운영, 민원처리 등의 업무 항목을 표로 만들었고, 비고란에 ‘이것은 각하가 맡으심이 좋겠음’ ‘이것은 큰 영애가 하는 게 좋겠음’과 같은 식으로 의견을 붙였다. 이후 박 대통령은 검토해 보시고는 김 비서관이 적은 의견에 ‘동의함’이라는 의견을 적어 돌려주셨다.
 
  영부인 서거 이후 박 대통령의 집무 방식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퇴근이 평소보다 조금 빨라졌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은 자신이 퇴근하지 않으면, 직원들이 퇴근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일단 2층으로 퇴근했다가 밤이 되면 다시 집무실로 내려와 밀린 서류 결재와 같은 일을 보는 때가 많았다고 한다.
 
  김 비서관은 육 여사가 총에 맞는 순간 박 대통령이 어떤 식으로 대응을 했는지 당시 자리에 있던 경호원들을 통해 소상히 들었다. 경호원들을 향해 가장 처음 박 대통령이 내린 명령은 “총 쏘지 마”였다고 한다. 저격범이 관객석에서 총을 쐈기 때문에 경호원들은 즉각적으로 대응사격을 하려 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경호원들에게 총을 쏘지 말라고 지시했다.
 
  김 전 비서관의 말대로 나중에 이와 관련된 사건 기록과 당시 현장 상황을 담은 영상을 보면 연단 위에 있던 경호원들이 총을 쏘지 않는다. 경호실장만 총을 꺼내는 것처럼 보일 뿐 연단 위 경호원들이 발포는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비서관은 총을 쏘지 말라는 대통령의 지시 이후에는 쓰러진 육영수 여사를 보고 경호원들에게 “저기 우리 내자한테 빨리 가 봐!”라고 명했다. 육 여사가 쓰러진 걸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이 박 대통령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당시 연단 아래로 몸을 낮추면서 박 대통령의 목소리가 연단 위 마이크에는 녹음이 되지 않아 이 점이 안타깝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육 여사가 총을 맞고 실려 나간 뒤에도 계속 현장에 있었다. 모든 상황이 종료되자,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남은 연설문을 읽었고 행사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켰다. 비서관은 이런 박정희 대통령의 모습에서 인간 박정희가 보인다고 했다. ‘총 쏘지 마’라는 지시는 관객 중에 누군가가 경호원의 총에 맞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에 나온 것이라고 했다.
 
 
  생명이 있는 만물을 사랑한 인간 박정희
 
박정희 대통령은 영웅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는 조갑제 대표. 사진=김동연
  조갑제 대표는 이러한 박정희 대통령을 초인이자 영웅이라고 했다. 그는 과거 박 대통령이 김재규의 총에 맞고 서거하기 직전의 모습을 취재 내용에 근거해 설명했다. 10·26 사건 현장에 있던 두 여인의 증언 내용을 보면, 총을 맞고도 박 대통령은 “난 괜찮아”라는 말을 했다. 여기서 “난 괜찮아”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조 대표는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 모두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 말의 의미는 “난 괜찮으니 당신들은 피하라”라는 의미였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다. 심지어 식물이나 동물까지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을 아끼는 사람이다. 박 대통령은 근대사에서 산업화와 산림화를 동시에 이룬 유일한 지도자다. 민둥산이던 한국의 산에 울창한 숲을 만드는 산림화 정책을 산업화와 함께 진행한 대통령이다. 그만큼 나무 한 그루의 생명까지도 소중히 여긴 지도자다.
 
  조 대표는 박정희 대통령이 위기의 순간에서 내뱉은 말 속에 인간 박정희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난다고 했다. “총 쏘지 마”와 “난 괜찮아” 이 두 표현은 모두 자신보다는 남을 생각하고, 타인의 목숨을 소중히 여겼다는 것이다. 영부인이 총에 맞았음에도, 경호원들이 총을 쏘면 다른 사람이 다칠 수 있어 발포를 저지했다. 10·26때는 본인(박정희)을 신경쓰다가 현장의 두 여인이 총에 맞을지도 모르니 먼저 피하라고 안심을 시킨 것이다. 조 대표는 과거 박지만씨를 인터뷰하면서 인간 박정희를 재확인했다. 박지만씨는 “아버지는 생명을 사랑하신 분이었어요,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 나무 꽃 강아지들을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쪽으로 아버지에 대해서 쓴 글이 없더군요”라고 말했다.
 
  조갑제 대표는 박정희 대통령은 역사 속의 다른 영웅들과는 분명 다른 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다.
 
  “박정희는 파란만장한 시대를 헤쳐 가면서 영욕과 청탁을 함께 들이마셨던 사람이다. 더러운 강물 같은 한 시대를 삼켜 바다와 같은 다른 시대를 빚어 낸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정신을 맑게 유지했던 초인(超人)이었다. 그는 알렉산더 대왕과 같은 호쾌한 영웅도 아니고 나폴레옹과 같은 전광석화의 천재도 아니었다. 부끄럼 타는 영웅이고 눈물이 많은 초인, 그리고 한 소박한 서민이었다. 그는 한국인의 애환을 느낄 줄 알고 그들의 숨결을 읽을 줄 안 토종 한국인이었다. 민족의 한을 자신의 에너지로 승화시켜 근대화로써 그 한을 푼 혁명가였다.
 
  자주인(自主人) 박정희는 실용·자주의 정치 철학을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그릇에 담으려고 했다. ‘한국적 민주주의’란, 당시 나이가 30세도 안 되는 어린 한국의 민주주의를 한국의 역사 발전 단계에 맞추려는 시도였다. 국민의 기본권 가운데 정치적인 자유를 제한하는 대신 물질적 자유의 확보를 위해서 국력을 집중적으로 투입한다는 한시적 전략이기도 했다.
 
  박정희는 인권 탄압자가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획기적으로 인권신장에 기여한 사람이다. 인권개념 가운데 적어도 50%는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일 것이고, 박정희는 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다음 단계인 정신적 인권 신장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정치의 주제라고 생각했고 이를 성취했다는 점이 그를 역사적 인물로 만든 것이다. 위대한 정치가는 상식을 실천하는 이다.
 
  당대의 대다수 지식인들이 하느님처럼 모시려고 했던 서구식 민주주의를 감히 한국식으로 변형시키려고 했던 점에 박정희의 위대성과 이단성이 있다. 주자학을 받아들여 주자교(朱子敎)로 교조화했던 한국 지식인의 사대성은 미국식 민주주의를 민주교(民主敎)로 만들었고 이를 주체적으로 수정하려는 박정희를 이단으로 몰아붙였다. 물론 미국은 미제(美製) 이념을 위해서 충성을 다짐하는 기특한 지식인들에게 강력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미국은 냉철하게 박정희에 대해선 외경심 어린 평가를, 민주화 세력에 대해선 경멸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었음을, 그의 사후 글라이스틴 대사의 보고 전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박정희는 1급 사상가였다. 그는 말을 쉽고 적게 하고 행동을 크게 하는 사상가였다.”
 
 
  전세계 지도자 중 암살 시도 직후, 현장에 남아 행사 마친 사람은 없어 …
 
  《월간조선》은 세계 정상들에게 시도된 여러 종류의 총기 암살 사례 등을 찾아봤다. 찾아본 모든 사례에서 앞서 박정희 대통령과 같은 경우는 하나도 없다. 김 비서관이 말한 두 가지는 이례적인 것이다. 첫째, 경호원의 대응사격 저지 명령, 둘째, 암살 시도 후 행사 재진행이다. 레이건 대통령 총격, 아프가니스탄 지도자의 암살 시도, 불가리아 지도자 암살 시도 등 거의 모든 총기 암살 시도에서 경호원들은 즉각적으로 암살범을 향해 총을 발포한다. 자신을 향한 총에 지도자가 경호원들의 발포를 저지하는 경우는 없다. 또 총격이 있고 난 직후 암살 위기를 모면한 리더가 다시 그 장소에 남아서 행사를 마치는 경우도 없다.
 
  실제 경호와 관련된 규정을 찾아봐도 총소리가 들리면 곧장 VIP를 경호원들이 둘러싸고 재빨리 그 현장을 벗어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아직 저격범 문세광 이외의 다른 잔당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행사를 끝까지 진행한다. 분명 현장에는 육 여사의 핏자국 등이 남아 있었을 테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당시 현장의 영상을 찾아봐도 박 대통령은 연설 목소리 톤조차 그대로다.
 
  본지가 찾아본 암살 시도 사례 중 유일하게 행사장을 끝까지 지킨 사람으로는 박정희 대통령 외에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이 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도 박정희 대통령에 비할 바는 아니다. 왜냐하면 부시 대통령이 마주했던 상황은, 정확히 말하자면 암살 시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과거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연설을 하던 부시 대통령을 향해 현지 기자가 신발 두 짝을 연달아 던진다. 해당 국가에서 신발을 던지는 것은 상대방에게 모욕을 줄 때 하는 행동이다. 당시 부시 대통령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 신발을 던졌을 뿐 총을 쏘지는 않았다. 부시 대통령은 고개를 숙여 신발을 다 피한다. 경호원들이 신발을 던진 사람을 그 자리에서 제압한 뒤 끌고 나갔다. 행사는 재개됐다. 만약 신발을 던진 사람이 총을 쏘았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이날 강의 내용을 종합하면 박정희 대통령이 얼마나 담대한 지도자인지, 또 얼마나 인간적인 지도자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특권의식 내려놓고 청와대의 정책 보완 위해 일침도 서슴지 않았던 인간 육영수
 
젊은 여성들이 생각하는 육영수 여사에 대해 설명 중인 여명 부회장. 사진=김동연
  여명 청년박정희연구회 부회장은 앞서 두 연사가 인간 박정희를 주로 조명한 것과 달리 인간 육영수를 집중 조명했다. 그는 육영수 여사가 청와대 입성 이후에도 특권의식에 사로잡히지 않는 삶을 지향했다고 강조했다. 여명 부회장의 말이다.
 
  “아이들의 학교 통학때 청와대 차량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아이들이 어디를 가든지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걸어서 이동하도록 했다. 식사도 화려한 고급 음식을 매끼 먹기보다는 단출한 가족 식사를 준비했다. 육 여사의 특권의식 내려놓기는 그가 추진했던 업무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나병환자들이 모여 있는 전남 소록도를 방문해 환자들을 직접 간호하고 어려운 점을 들어주었다. 대외적으로 육영수 여사가 보여준 이미지와 달리 가정에서는 남편의 정책 등을 일정 부분 수정하거나 보완할 수 있도록 솔직한 의견을 제시하는 여성이기도 했다. 이런 이유에서 육 여사는 ‘청와대 내 야당’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여명 부회장은 육영수 여사를 최근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는 현모양처의 표본으로 여기고, 이런 현모양처는 남성중심적 사회의 산물이기 때문에 타파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다고 했다. 이 문제가 온라인상에서 페미니즘의 주제가 되어 현모양처는 더 이상 추구되어야 할 여성상이 아니라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고 했다.
 
  여명 부회장은 청중을 향해 “그런데 현모양처가 무엇이 잘못되었냐”고 되물었다. “남편을 내조하여 더 좋은 가정을 이루도록 돕는 것이 무엇이 잘못된 것이냐”고 말했다. 이 말을 하자마자 청중들은 그의 말에 동의하는 의미로 환호와 박수가 쏟아냈다. 그의 말을 종합하면 아직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육 여사를 공부해 더 많이 알려야 한다. 또 육영수 여사야말로 진정한 여성들의 우상이자 본받아야 할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번 강의를 통해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청와대의 뒷이야기를 소상히 들을 수 있었다. 또 한국의 지도자였던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인간적인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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