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역사기행] 막부말(幕府末)~메이지유신기의 역사를 찾아서 : 월간조선

2016년 12월 19일 오후 1시 반. 교토(京都)역 코인라커에 짐을 맡기고 역사(驛舍)를 나섰다. 7년 전 패키지여행으로 교토를 잠깐 돌아본 적은 있지만, 자유여행은 처음이다. 해마다 교토를 찾는다는 후배 기자는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저는 교토에서, 도시가 지리산처럼 깊을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갈 때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보면 볼수록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도시가 교토입니다.” 지리산처럼 깊다는 도시 교토! 이번에 교토를 찾은 것은 금각사(金閣寺·긴카쿠지)나 은각사(銀閣寺)를 보기 위함도, 광륭사(廣隆寺·고료지)에 있는 일본 국보 제1호인 목조미륵반가상을 보기 위함도 아니었다. 도쿠가와(德川) 막부(幕府·바쿠후) 말기~메이지유신(明治維新) 사적지(史蹟地)들을 돌아보기 위함이었다.

교토역에서 나와 서쪽으로 700여m를 걸었다. 사거리를 지나니 화강암 말뚝이 하나 보였다. “이 부근이 신센구미(新選組)의 마지막 낙중(洛中·교토의 중심) 주둔소가 있던 곳”이라는 푯말이다. 근처에는 호텔과 고층건물들만이 즐비할 뿐, 역사의 향취를 느끼게 하는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곁에 있는 아내는 “여기가 뭐 하는 덴데?”라는 표정이다. 하지만 나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내가 목표로 했던 교토의 첫 탐방지, 신센구미 교토 최후의 주둔지인 후도도무라(不動堂)에 온 것이다.

신센구미

영화나 TV드라마, 만화, 소설 등을 통해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진 신센구미는 도쿠가와 막부 말기를 풍미했던 무사(武士)집단이다. 1853년 6월 미국의 페리 제독이 도쿄만에 나타나 막부에 개국(開國)과 통상(通商)을 요구했다. 초유의 사태에 직면한 막부는 그동안 허수아비 취급을 해 왔던 교토의 고메이(孝明)천황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는 한편, 전국의 다이묘(大名·제후)들에게도 의견을 물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면 ‘소통(疏通)’을 시도한 것인데, 그게 오히려 막부의 한계를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도쿠가와 막부 260년 동안 그런 일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천황이 있는 교토는 존왕양이(尊王攘夷·천황을 높이고 서양 오랑캐를 물리치자)를 외치는 낭인(浪人·로닌·소속 번(蕃)에서 벗어난 떠돌이 무사)들로 들끓기 시작했다. 중국 고전에 나온 ‘존왕양이’라는 구호는 천황을 정치에서 소외시키고 서양 오랑캐가 강요한 굴욕적 조약을 수용한 막부 타도를 요구하는 혁명적 구호였다. 이 낭인들은 막부를 지지하는 교토 조정의 공경(公卿·천황 측근의 고위관료)들을 암살하는가 하면, 존왕양이를 위한 거사 자금 모금을 명목으로 교토나 오사카의 부자들의 집을 털었다.

이런 상황에서 쇼군(將軍·막부의 최고 권력자)이 1863년 2월 교토를 방문하게 됐다. 막부는 쇼군을 경호할 낭인 무사단을 모집했다. 아마 ‘낭인으로 낭인을 친다’는 발상이었을 것이다. 에도(江戶) 인근 무사시(武藏) 다마(多摩)라는 시골의 검도 도장 출신인 곤도 이사미(近藤勇), 히지가타 도시조(土方歲三) 등도 이에 응했다. 이들은 나중에 교토의 경비를 책임지고 있던 아이즈(會津) 번주 마쓰다이라 가타모리(松平容保) 수하에 들어갔다. 이들이 바로 신센구미다.

신센구미는 교토의 치안을 어지럽히는 존왕양이파 무사들을 닥치는 대로 베었다. 혹자는 “신센구미가 아니었으면, 메이지유신은 1년쯤 앞당겨졌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들은 메이지유신 후 ‘역신(逆臣)’ ‘악당’으로 몰렸다. 하지만 1910년대 중반부터 신센구미 생존자들의 증언이 나오면서 이들을 달리 보는 시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본의 국민작가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는 《타올라라 검》과 《신센구미 혈풍록》 등을 통해 일종의 ‘정치깡패’였던 신센구미를 도쿠가와 막부의 마지막을 장식한 ‘진정한 사무라이 집단’으로 그려냈다. 이를 바탕으로 수많은 TV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 등이 나왔다.

초기에 미부데라(壬生寺)라는 절에 주둔했던 신센구미는 얼마 후 인근 사찰인 니시혼간지(西本願寺)로 옮겼다가 1867년 6월 후도도무라로 옮겼다. 니시혼간지에서 1만 냥인가 들여서 지어 주었다는 후도도무라의 신센구미 본부는 웬만한 다이묘의 저택 못지않게 웅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는 집(不動堂)’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이곳에 둥지를 튼 지 6개월여 만에 신센구미는 쫓겨나듯이 교토에서 철수해야 했다. 1867년 11월 막부가 정권을 천황에게 반환하는 대정봉환(大政奉還)이, 이듬해 1월에는 조슈(長州)-사쓰마(薩摩)번이 중심이 된 반막부 쿠데타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니시혼간지

신센구미의 두 번째 주둔지였던 니시혼간지.
옆에 보이는 건물은 조사당에 해당하는 고에도로 일본의 국보이다.

후도도무라에서 700여m쯤 떨어진 곳에 있는 니시혼간지는 1591년 건립된 유서 깊은 사찰이다. 원래 13세기 정토진종(淨土眞宗)을 신란쇼닌(親鸞聖人)이 개창한 절인데,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시절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세상과 떨어진 산간에 옹색하게 들어선 한국의 절집들과는 달리 천년 고도(古都)의 시내에 자리 잡은 교토의 절집들은 위풍당당하다. 니시혼간지도 마찬가지다. 방문객을 처음 맞이하는 고에도문(御影堂門)부터 조사당(祖師堂)에 해당하는 고에도, 아미타당(阿彌陀堂) …. 그 규모며 늠름함, 화려함이 프라하, 빈, 밀라노 등에서 보았던 대성당들 못지않다. 고에도, 아미타당, 가라문(唐門) 등은 일본의 국보(國寶)로 지정되어 있다. 니시혼간지 경내 전체는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시마바라에 있는 요정 스미야. 1641년부터 1985년까지 영업했다.

고에도를 바라면서 영화 〈바람의 검 신선조〉를 떠올렸다. 주인공 요시무라 간이치로가 입대하면서 나가쿠라 신파치와 대련하던 장면, 요시무라가 할복(割腹)을 거부하고 난동을 피우는 대원의 목을 한칼에 날려버리던 장면…. 살생을 금하는 것을 첫 번째 계율로 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유서 깊은 절집에 사람 죽이는 걸 업(業)으로 삼는 칼잡이들이 떼로 몰려들어 하고한 날 피냄새를 풍겨댔으니, 스님들 심기가 얼마나 불편했을까? 1만 냥이나 들여서 후도도무라에 신센구미의 새 본부를 지어준 것도 아마 그 때문이었으리라.

니시혼간지 시절 신센구미가 사용했다는 다이고로(太鼓樓)를 끼고 돌아 500m쯤 가면 시마바라오오문(島原大門)이 나온다. 시마바라는 1641년 문을 연 일본 최초의 관허(官許) 유흥가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요정(料亭)이 스미야(角屋)라는 집이다. 1641년 영업을 시작해 1985년까지 영업을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로 치면 조선 인조 때 문을 열어 전두환 정권 시기까지 장사를 한 셈이다. 도쿠가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