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흥진의 할리우드 통신] 〈조이〉의 이사벨라 로셀리니(Isabella Rossellini) : 월간조선

조이 만가노의 실화 〈조이(Joy)〉에서 트루디로 나오는 이사벨라 로셀리니(63)와의 인터뷰가 지난해 11월 미국 LA의 인터콘티넨털 호텔에서 있었다. 트루디는 〈조이〉에서 조이(제니퍼 로렌스)의 이혼한 아버지(로버트 드 니로)의 백만장자 애인으로 나온다.

이사벨라는 할리우드의 슈퍼스타였던 스웨덴 태생 잉그리드 버그만의 딸이다. 그의 아버지는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기수 중 한 사람이었던 로베르토 로셀리니다. 버그만은 전성기에 로마에서 로셀리니의 영화 〈스트롬볼리〉에 출연하다가 사랑에 빠져 세계적 스캔들을 일으켰었다. 둘 다 기혼자였던 버그만과 로셀리니는 각기 이혼도 하기 전에 이사벨라의 오빠를 낳았다. 이 때문에 버그만은 그 후 미국의 금기 인물로 찍혀 10여 년간 할리우드를 떠나 살다가 뒤늦게 컴백했다.

컴백 후 만든 영화가 율 브린너와 공연한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스 2세와 그의 부인 알렉산드라의 얘기 〈아나스타시아〉로 버그만은 이 영화로 오스카 주연상을 탔다.

어머니 얼굴을 빼다 박다시피한(그러나 어머니가 조금 더 아름답다) 이사벨라는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예쁘고 귀여운 모습이었는데 시종일관 눈웃음을 치고 깔깔대고 웃으면서 악센트를 섞어 상냥하고 자상하게 물음에 대답했다. 생명력과 총기가 가득한 인상이었다. 2015년이 잉그리드의 출생 100주년이 되는 해여서 자연 어머니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다.

―영화를 보니 당신은 특수걸레를 고안한 조이에게 선선히 투자를 하던데 실제로 당신으로부터 돈 빌리기가 쉬운가요.

“내가 이 영화를 좋아한 이유는 자기 자신의 사업을 하고자 하는 여자의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조이는 남자의 도움 없이 자신의 제국을 세우려는 여자입니다. 영화에서 나는 죽은 남편의 유산을 물려받은 백만장자이나 그 돈을 어떻게 쓸 줄을 모르지요. 그런 반면 조이는 계획은 있으나 돈이 없어 남편처럼 큰 사업가가 되고픈 내가 조이와 손을 잡은 것입니다.”

―당신은 사업가의 소질이 실제로 있는지요.

“생각보다 소질이 있다고 봅니다. 여자가 독립하려면 재정이 넉넉해야 되지요. 그래서 여자가 독립하려면 일하고 돈을 남편이나 오빠 등에게 맡기지 말고 자신이 관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숫자를 센다는 것은 거추장스런 일이나 그 일은 내가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돈을 다루는 데 있어 어떤 규칙이라도 있습니까.

“네. 우린 성공하면 그곳에 영원히 상주하고 싶어 하나 성공은 언젠가 떠나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이 떠날 때를 생각해 대비책을 마련해야 해요. 전성기에 다람쥐가 도토리를 저장하듯이 말입니다. 제 어머니가 이런 말을 들려줬어요. 할리우드에 오래간만에 돌아와 친구들을 만나 보니 일부 왕년의 슈퍼스타들이 가난에 쪼들리며 살더라고요. 난 그래서 다람쥐처럼 저축을 했습니다. 따라서 이제 나이를 먹어 일이 별로 없어도 난 바닥으로 떨어질 염려는 없지요.”

―이 영화는 모녀관계의 이야기이기도 한데 당신의 어머니와 딸과의 관계에 대해 말해주세요.

“나와 어머니는 유럽에서 성장해 조이의 가족과 비교하긴 힘들지요. 나와 어머니의 관계는 좋았지만 좀 복잡했어요. 우리 가족관계는 다소 복잡했습니다. 나는 딸과 아들이 있는데 둘과의 관계는 아주 좋아요. 우리 가족의 관계를 알고 싶으면 지금 막 개봉된, 내가 깊이 관계한 어머니에 관한 기록영화 〈잉그리드 버그만:그녀의 말들〉을 보면 될 겁니다.”

무성영화는 국제적으로 쉽게 공감 받을 수 있는 장점 지녀

―영화에서 당신은 로버트 드 니로를 전화데이트 형식으로 만나는데 당신은 요즘의 인터넷 사이트를 사용해 애인을 구해볼 의향이 있는지요.

“해본 적 없지만 해야 할 걸 그랬어요. 그러나 아직은 용기가 없네요. 영화에서 힌트를 얻어 실제로 한 번 해볼지도 몰라요.”

―집안 장식은 어떻게 하며 몇 개국 언어를 합니까.

“난 시골에 살아요. 유기농 농장에서 키운 채소를 식당에 공급합니다. 큰 사업은 아니에요. 그러나 그로 인해 멋진 삶의 스타일을 갖게 되는데 난 개조한 헛간에서 살고 있지요. 150년이 조금 넘은 건물로 천장은 높고 대들보는 낡았습니다. 언어는 영어, 프랑스어, 그리고 이탈리아어를 할 줄 압니다. 스페인어도 하고 이해하지만 일은 앞의 3개국어로만 합니다.”

―당신은 최근에 무성영화의 섹스 심벌이었던 루돌프 발렌티노에 관한 영화 〈침묵의 삶〉에 나왔는데 무성영화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난 발렌티노와 함께 무성영화를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합니다. 무성영화에서는 배우들이 말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영어를 잘 못 해도 국제적인 스타들을 썼지요. 발렌티노도 영어 잘 못 했을 거예요. 난 지금도 무성영화가 있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무성영화의 연기는 유성영화와는 달라 더욱 국제적으로 쉽게 공감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예술형태인데도 단지 지나간 기술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것이 유감이네요.”

―데이비드 O. 러셀 감독이 당신에게 이탈리아 여자 역을 어떻게 표현하라 요청한 게 있나요.

“트루디를 이탈리아 여자로 한 것은 제가 그 역을 맡았기 때문이고 또 트루디가 순전한 미국인 가족인 조이네와는 다른 국외자여야 하기 때문이었지요. 그녀는 남편에게만 의존하고 살았기 때문에 남편이 죽은 뒤로 남자가 필요했어요. 트루디는 남자 없으면 못 사는 여자예요. 그러나 트루디는 외국인인 이방인이어서 반드시 이탈리아 배우가 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폴란드나 스페인 배우 등 그 누구도 할 수 있지요.”

―당신이 말했듯이 당신의 가족도 조이네처럼 다소 복잡한데 그에 대해 얘기해 주세요.

“우리 가족은 스웨덴 혈통도 있고 이탈리아 혈통도 있습니다. 직접 가족은 없지만 미국은 우리 삶에 있어 매우 중요하지요. 내 어머니의 마지막 남편은 스웨덴 사람으로 어머니가 사망한 후, 재혼해 스위스의 로잔에서 살다가 3~4년 전에 사망했어요. 난 요즘도 가끔 로잔에 사는 죽은 의붓아버지의 부인을 방문하는데 우린 사이가 좋아요.”

―어머니의 촬영장에 자주 찾아갔었는지요.

“어머니는 대사 외우는 것을 비롯해 연습을 아주 충실히 했습니다. 어머니는 각본을 읽고 기억으로 대사를 말하지 않고 늘 각본을 들고 다니며 보면서 계속 반복했어요. 대사 지도자도 있었는데 어머니는 완전히 대사를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어머니는 5개국어를 했지요. 나도 어머니처럼 대사 외우는 데 있어 철저합니다. 어머니한테서 배운 습관입니다.”

―당신은 환경보호에 적극적인데 지구 환경보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내게 그 문제를 풀 지혜는 없어요. 난 어려서부터 동물들을 사랑했습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사다 준 동물 행동에 관한 책을 애독했고 10대 때는 아프리카의 침팬지 보호에 삶을 바친 제인 구달에 심취했지요. 그래서 나도 그때 동물의 행동에 관해 공부하려고 했고 그것이 내 취미가 됐어요. 난 지금도 그런 책을 읽고 있으며 휴가 때 아이들과 함께 아프리카에 가도 사파리에 가지요. 요즘에는 연기가 뜸해지면서 난 다시 대학에서 동물 행동학에 대해 공부를 하는데 곧 석사학위를 받습니다. 그래서 유기농 농장도 경작하는 것이고 또 동물에 관한 단편영화도 만들고 쇼도 합니다. 돈도 못 벌고 또 배우 같은 인기직업도 아니나 지금 내 생애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난 또 새 관찰도 즐깁니다.”

“성공은 늘 대가의 지불과 함께 와”

이사벨라 로셀리니는 잉그리드 버그만의 딸이다.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이사벨라는 인터뷰 내내 눈웃음을 치며 자상하게 답했다.

―벌도 키운다는 말을 들었는데요.

“10개의 벌집에서 1년에 100파운드의 꿀을 채취합니다. 난 30에이커에 달하는 농장이 있기 때문에 벌들이 다른 곳에 안 가도 내 농장에서 살충제 안 묻은 영양물을 충분히 섭취할 수가 있지요.”

―어머니의 출생 100주년을 맞은 기분이 어떤지요.

“우리 모두 어머니의 출생을 축하한 것에 지극히 만족해요. 올해 칸 영화제 포스터는 어머니에게 바친 것이었고 또 기록영화도 나왔으니 말입니다. 프랑스와 스웨덴과 뉴욕에서는 회고전을 열었지요. 난 런던 무대에서는 제러미 아이언스와 함께, 그리고 파리 무대에서는 제라르 드파르디외와 함께 어머니의 자서전을 읽기도 했습니다. 어머니는 내가 마티(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와 결혼했을 때 사망했는데 마티는 영화 보존에 열성인 사람이어서 일기와 각본, 편지와 계약서와 포스터 등 어머니가 남긴 모든 것을 보관했다가 고스란히 웨스턴대학에 기증했습니다. 어머니는 늘 촬영기와 사진기를 들고 다니면서 촬영장에서도 촬영하고 사진을 찍었는데 지금 보면 예술적으로도 훌륭한 놀라운 기록들입니다. 이것은 어머니의 출생을 축하하는 것과는 또 다른 의미를 지녔다고 봅니다.”

―트루디는 성격이 까다로운 여자로 묘사됐는데 본인은 어떤지요.

“사람들이 가끔 날 보고 위협적이라고들 하는데 난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트루디 역을 하고 나서 그 말을 이해하게 됐네요. 아이들이 날 보고 ‘엄마, 엄마가 화를 내면 정말로 무서워요’라고 하거든요. 이제야 사람들의 말을 알겠어요.”

―〈조이〉는 실패에 관한 영화이기도 한데 당신도 실패한 경험이 있는지요.

“물론이지요. 성공에는 많은 후퇴도 있게 마련입니다. 이 영화는 성공은 늘 대가의 지불과 함께 온다는 것을 알려주지요.”

―어느 프랑스 여배우가 할리우드는 나이 먹은 배우들의 재능을 무시하고 젊고 예쁜 여배우들을 고용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는 말을 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맞아요. 영화계는 나이 먹은 관객도 키울 줄 알아야 합니다. 요즘 관객의 주류가 18~25세의 남자이기 때문에 할리우드는 그들에게 맞는 영화에 몰두하는 것 같아요. 그러나 프랑스 영화는 나이 먹은 관객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매년 카트린 드뇌브를 볼 수 있는 것이 그 한 예입니다. 내 개인적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난 연기 외에도 다른 하는 일이 많아 다행이지요. 난 여지껏 한 번도 옆으로 밀려난 사람이라는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 다시 모델을 하고 싶지만 아무도 날 써주질 않는군요. 난 아직도 유용한 데도 말입니다.”

“나는 과격한 사람 좋아해”

―제니퍼 로렌스가 당신에게 조언 같은 걸 요청하던가요.

“아뇨. 로렌스가 작고 귀여운 개를 가지고 있기에 우린 그저 개에 관한 얘기와 함께 이런저런 잡담을 나눴을 뿐입니다.”

―남에게서 돈 빌려본 적이 있는지요.

“딱 한 번 있어요. 집을 살 때 은행에서 융자를 받았는데 그때 난 배우와 모델로 일하고 있긴 했지만 그 직업이 언제 일자리가 떨어질지 모르는 것이어서 융자금 상환 못 하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에 떨었었지요. 그래서 융자 담당자에게 잘 보이려고 슬픈 눈동자를 굴렸었습니다. 그때 난 배우 초년생이었는데, 돈 꾼 뒤 내 인기가 급상승해서 번 돈으로 빚을 몽땅 갚아버렸어요.”

―데이비드 O. 러셀 감독이 당신을 찾았을 때 놀랐나요.

“깜짝 놀랐어요. 난 데이비드가 매우 과격한 감독이란 말은 들었지만 그때까지 그를 만난 적은 없었어요. 그때 난 뉴욕의 택시 안에 있었는데 데이비드가 전화를 걸어서 장장 45분간이나 특수걸레 얘기를 하는데 난 도통 그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혼란스러웠습니다. 그 후 스크린 테스트를 위해 갔는데 무려 8시간이나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 자리에는 드 니로도 있었는데 갑자기 데이비드가 나타나더니 날 보고 드 니로를 애무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드 니로를 애무했지요. 우리 둘 사이의 화학작용을 보려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러곤 한 달간 아무 소식이 없더라고요. 그런데 내가 파리에서 동물에 관한 쇼를 준비하고 있는데 새벽 2시 반에 전화가 걸려 왔어요. 데이비드였는데, 의상 테스트를 해야 하니 내일 올 수 없느냐고 묻는 거예요. 그래서 무슨 의상을 말하느냐고 되물었지요. 난 그때 〈조이〉에 대한 생각은 까맣게 잊고 있었어요. 이에 데이비드가 트루디 역을 내가 했으면 좋겠다고 그러더군요. 그 말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난 사실 스크린 테스트 후 데이비드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가 있었습니다. 나는 과격한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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