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공개] 진주 民家에 머문 朴正熙 - 陸英修 부부 사진 6장 : 월간조선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이 제5대 대통령에 취임한 때는 1963년 12월 17일이다. 취임 1년이 채 안 된 64년 11월 5일 박 대통령은 경남 진주를 방문했다. 진주 개천예술제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개천예술제는 현재 전국 곳곳에서 열리고 있는 지방 축제의 원조격이라고 할 수 있다. 정부 수립 이듬해인 1949년 개천절인 음력 10월 3일에 시작했다. 박 대통령이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시절인 61년부터 참석한 행사다. 박 대통령은 69년까지 이 예술제에 참석했다.

지방에서 열렸지만 개천예술제는 한 국가의 수반(首班)이 참석할 정도로 당시에는 전국적인 규모의 축제였다. 64년 당시 예술제 기간 진주에서 진해 해군군악대 공연을 비롯해 서울국립국악원 연주, 서울서라벌연극부 연극 등이 열린 데서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중앙일간지가 해마다 이 예술제의 개막 소식을 전하고 있음도 물론이다. 다음은 《동아일보》 62년 11월 15일자 기사 중 일부다.

〈…제13회 개천예술제는 15일 상오 11시40분 박정희 최고회의의장을 비롯한 요인과 전국 각지에서 모인 문학예술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임란(壬亂)의 옛터 진주에서 막을 올렸다…〉

64년 이전 박 대통령이 개천예술제에 참석할 때는 숙소가 문제되지 않았다고 한다. 개천예술제에 참석한 다음, 호텔 등이 있어 경호하기에 쉬운 진주 주변의 마산 등에 머물거나 서울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64년의 상황은 달랐다. 박 대통령이 진주에서의 숙박을 계획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지방에서 묵게 될 때 첫 번째 고려 요소는 경호문제였다. 하지만 당시 진주에는 대통령이 묵을 만한 호텔 등의 숙소가 없었다. 결국 대통령 부부와 수행원들이 묵을 만한 규모의 민간인 집을 찾게 됐는데, 그 집이 당시 《서울신문》 사장이었던 김여원(金如原)씨 소유였다.

진주가 고향인 김여원씨는 진주고보를 거쳐 대구사범을 졸업했다. 박 대통령과 대구사범 동문이었다. 진양지구공화당위원장과 서울시정자문위원을 지냈다. 박 대통령보다 5~6세 위였던 김씨를 박 대통령은 “김 선배”라고 호칭했다고 한다.

‘사회사업가’ 陸英修

박 대통령 부부가 묵은 진주 民家의 안주인격인 김경애 할머니와 복도에 서서 환하게 미소 짓고 있는 육 여사. 박 대통령 부부는 그곳에 머문 2박 3일 기간, 김경애 할머니가 끓여주는 된장찌개를 아주 좋아했다고 한다.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陸英修) 여사 부부의 사진을 찍은 이는 김여원씨의 동생 김근원(金槿原)씨였다. 1922년생으로 2000년에 작고한 김근원씨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산악사진가였다. 6·25전쟁 이전부터 서울 종로3가에 사진작업실을 마련하고 사진작가의 길을 걸었지만 그 작업실은 6·25전쟁 와중에 불타 없어졌다고 한다. 그 이후에도 그는 사진작가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활동하다가 1956년 한국산악회에서 주최한 울릉도·독도 답사에 촬영대원으로 참가한 것을 계기로 산악전문 사진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한다.

공식 수행 사진사가 아닌 민간인으로서 박 대통령 부부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것은 박 대통령 부부가 당시 머문 집이 마침 소유주는 형이었지만 그의 부모님이 거처하고 있는 집이었을 뿐만 아니라 김근원씨가 이미 당대에도 알아주는 사진작가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박 대통령이 64년에 진주를 방문하기 이전부터 수행 경호원이었던 이상열씨는 “당시에는 경호상의 문제 때문에 대통령의 사진을 공식 수행 사진사나 언론보도와 관련해서 사진을 찍어야 하는 사진기자 외에 민간인이 찍는 일은 없었다”며 “60년대에는 박 대통령께서 지방을 순시할 때 도지사 공관에 머물거나 간혹 민가에 머무는 경우도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번에 《월간조선》이 공개하는 사진은 박 대통령 부부가 김여원씨의 집 정원을 바라보며 포즈를 취한 장면, 해 뜰 무렵 경찰들이 박 대통령이 묵고 있는 김여원씨 집을 경비하는 장면 등 총 6점이다.

박 대통령 부부가 정원을 바라보고 있는 사진은 육 여사의 사진 가운데는 보기 드물게 외투에 장갑까지 끼고 핸드백을 든 모습의 양장 차림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그 곁에 서 있는 박 대통령은 군복도 칼같이 다려 입고 다녔던 예의 그 모습 그대로 조끼까지 걸친 단정한 양복 차림이다.

육 여사는 1972년 2월 외신(外信)들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의상관(衣裳觀)에 대해 이렇게 밝힌 바 있다.

“한복은 참으로 품위가 있어 보인다. 나는 공적인 장소에선 거의 한복 차림을 한다. 어릴 때부터 한복을 입어서 한복을 입어야 기분이 좋아지고 많은 사람이 내가 한복을 입는 것을 좋아하고 있다. 그러나 집에서 일할 때나 사회봉사활동을 할 때는 활동적인 양장을 한다. 의복은 입는 사람의 몸에 맞고 그리고 개성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지나치게 유행에 민감한 것을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이번에 공개하는 사진 속 육 여사의 옷차림도 그의 말대로 입는 사람의 몸에도 잘 맞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개성도 잘 살리고 있다. 그렇다면 그 사진 속 육 여사는 왜 그가 즐기던 한복을 입지 않고 양장 차림이었을까.

“사회봉사활동을 할 때는 양장을 한다”는 그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육 여사는 진주에 가서도 남편 박 대통령이 다른 일을 보고 있을 때 틈을 내 어려운 이웃들을 찾아갔다. 물론 진주에 가서도 개천예술제 행사 등 공식행사에 참석할 때 육 여사는 한복 차림으로 참석했다. 다음은 육 여사가 진주에 머물렀던 기간인 64년 11월 6일자 《경향신문》 기사다.

〈박 대통령과 함께 진주에 온 대통령 부인 육 여사는 6일 이곳 신혜원, 기독육아원, 어린이동산원을 시찰하고 금일봉을 전달했다.〉

육 여사가 틈만 나면 당시의 소록도 나환자촌 등 소외된 이웃들을 찾아다녔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행사 참석차 지방을 방문했어도 육 여사는 거의 습관처럼 어려운 이웃들을 찾아다녔던 것이다. 지금도 포털 네이버에서 육 여사를 인물검색하면 ‘전 영부인’에 이어 ‘사회사업가’라는 소개가 뒤따른다. 육 여사의 살아생전 활동에 잘 어울리는 직책 소개가 아닌가 싶다.

뒷단이 뜯어진 치마를 입은 프란체스카

진주 민가에 머물고 있는 동안 찾아온 지방 인사들과 환담을 나누고 있는 박 대통령.

육 여사 곁에서 양복에 조끼까지 단정하게 입고 있는 박 대통령의 복식(服飾) 습관은 어땠을까.

박 대통령의 양복을 만들었던 재단사 윤인중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은 언제나 옷감을 고를 때 값싼 혼방 국산 제품을 골랐다. 주로 감색이나 짙은 회색에 줄무늬가 들어간 것을 선호했다”면서 “안감이 너덜너덜해져도 고집스레 낡은 양복을 수선해서 입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에 공개하는 흑백사진 속 박 대통령의 양복도 깔끔해 보이기는 하지만 바지의 주름으로 보아 새로 맞춘 양복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집주인인 김여원씨의 어머니 김경애씨와 복도에서 찍은 사진도 있는데 육 여사 특유의 환한 미소를 만날 수 있다.

이 사진들은 김근원씨의 아들 김상훈씨가 부친의 사진집을 내기 위해 사진자료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최근 발견했다. 김씨는 “아버지가 사진 필름 뒤에 ‘1964년 진주집’이라고 기록을 해놓았고 당시 진주집에는 저희 조부모님이 살고 계셨다”면서 “아버지가 살아생전에 그때의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사진을 찍어둔 것까지는 잘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사진 6점은 지난해 12월 17일부터 대통령 기록관 기록물로 소장됐다. 김씨는 “이 사진들을 개인의 소유로 하기보다는 공공의 소유로 하는 것이 돌아가신 아버님에 대한 도리인 것 같아서 정부 기록물로 넘겼다”고 말했다.

부친의 대를 이어 사진작가의 길을 걷고 있는 김상훈씨는 박 대통령과 관련한 사진을 찾는 과정에서 부친이 촬영한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의 사진도 발견했다고 한다. 김씨는 “박 대통령 사진과 함께 50년대에 남한산성에서 아버지가 찍은 이승만 대통령과 프란체스카 부부의 사진도 나왔는데 뒷단이 뜯어져 있는 치마를 입고 있는 프란체스카 여사의 모습을 보고 그분이 얼마나 검소한 분이었나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면서 가슴이 뭉클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 사진은 최근 다른 매체를 통해 공개했는데 차마 프란체스카 여사의 뜯어진 뒷단을 그대로 보여줄 수가 없어서 일부 보정작업을 한 후 공개했다”고 덧붙였다.

김상훈씨는 “박 대통령은 할머니가 끓여주는 된장찌개를 정말 맛있게 먹었다고 들었다”며 “원래는 1박 2일 동안 머물 예정이었는데 지역 민원 등을 청취하느라 일정을 2박 3일로 연장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급하게 수세식 화장실로 고쳤지만…

이른 아침에 박 대통령 부부가 묵었던 진주 민가의 경비를 서고 있는 경찰들의 모습.

다음은 김상훈씨가 박 대통령 부부가 진주 민가에 머물게 되기까지의 과정 등에 대해 부친으로부터 전해들은 에피소드를 정리한 내용이다.

〈박 대통령 부부가 수행원들과 함께 2박 3일 동안 묵었던 민가는 진주시 본성동 233-4번지에 있었다. 이 집은 도시개발이 진행되면서 집의 일부가 도로에 편입되는 등의 이유로 지금은 사라졌다. 진주에서 가장 컸던 이 집은 원래부터 김여원씨 소유가 아니었다.

김여원씨는 6·25 전쟁 중 우연한 기회에 이 집을 소유하게 됐다. 김씨의 부모님을 비롯한 그의 가족들은 일제 때 서울로 이사를 가서 살다가 6·25를 만났다. 전쟁이 발발한 후 그의 가족들은 부산으로 피란을 했다. 진주는 6·25 당시 부산을 함락하려는 인민군들이 집결해 격전이 벌어졌던 곳이다. 격전지였기 때문에 피란지 부산에서 들은 진주에 관한 소식은 진주가 불바다가 돼 대부분의 집이나 건물이 없어졌다는 이야기뿐이었다.

그런 소문이 도는 가운데 부산으로 피란을 온 진주에서 의사를 하던 사람이 자신의 진주집을 팔겠다고 나섰다. 자신의 집도 불에 타 없어졌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김여원씨는 고향에 땅이라도 사놓으면 나중에 집을 지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그 집을 샀다.

전쟁이 끝나고 김여원씨의 가족들은 고향 진주로 갔다. 소문으로 듣던 그대로 진주는 대부분의 집과 건물이 불에 타 폐허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김여원씨가 의사로부터 구입한 집은 멀쩡했다. 그 집은 일제 때 요정과 식당으로 사용하던 커다란 집이었다. 김상훈씨의 기억에 따르면 50여m에 이르는 긴 복도를 따라 여러 개의 방이 있는 집이었다. 집을 판 의사는 방이 많은 그 집을 병원으로 개조해 사용할 생각이었었다. 진주를 점령한 인민군들은 그 집을 사령부로 사용했는데 급하게 철수하느라 그 집을 불태우지 않고 그대로 남겨두고 떠났다고 한다.

나중에 집이 멀쩡한 것을 알고 집을 팔았던 의사는 다시 되팔라고 했지만 고향에 다시 정착하기를 원하는 부모님 때문에 김여원씨는 집을 되팔지 않았다. 그때부터 김여원씨의 부모님이 그곳에서 살았고 김근원씨도 그곳에 자주 찾아가 머물곤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박 대통령 부부가 64년에 진주를 방문할 때 그 집을 숙소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자신의 집이 대통령 숙소로 정해지자 김여원씨는 동생 김근원씨에게 집을 새로 수리하게 하는 등 박 대통령 부부를 맞을 준비를 시켰다.

가장 시급한 것은 대통령 전용 화장실이었다. 기존에 있던 화장실들도 깨끗하기는 했지만 재래식 화장실이었다. 급한 대로 대통령 전용 화장실을 수세식으로 바꿨다. 화장실을 수세식으로 바꾸고 나서 새로 생긴 문제는 화장지였다.

우리나라에 두루마리 화장지가 처음 등장한 때는 1961년이다. 모 화장지 회사에서 만들었는데 생산 초기라 제품이 조악해 널리 사용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화장지 업계에서는 1970년에 설립한 유한킴벌리를 국내 최초의 화장지 회사로 보고 있다. 유한킴벌리는 1971년부터 본격적으로 화장지를 생산하는데 두루마리 화장지로 유명한 ‘뽀삐 화장지’의 생산이 본격화한 때는 1974년이다.

이러니 64년 당시에 제대로 된 화장지를 구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김근원씨는 진주 시내를 다 뒤져서 화장지를 하나 구했는데 대통령 내외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이 사용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의 화장지였다. 정확히 말하면 당시 김근원씨가 구한 화장지는 도저히 사용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고 한다.

美軍 PX에서 美製 화장지를 구했지만…

연단에 앉아 개천예술제 공연을 지켜보고 있는 박 대통령 부부.

결국 김근원씨는 인접해 있는 마산까지 달려갔다. 당시 마산에는 미군(美軍) PX에서 유출된 물품들이 꽤 나돌았는데 그 가운데는 화장지도 있었다. 김씨는 그 화장지를 어렵게 한 개 구해와 수세식 화장실에 비치했다. 당시로서는 질이 꽤 좋은 미제(美製) 화장지까지 구해다 화장실에 비치해 놓은 터라 김씨는 적이 안심이 됐다. 그는 그 사실을 형 김여원씨에게 전했다.

김여원씨는 동생으로부터 미제 화장지를 구해다 화장실에 비치해 놨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대경실색했다. 그는 동생에게 “당장 그 미제 화장지를 치우라”고 지시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밀수품 근절을 위해 관계기관에 강력하게 단속하라고 지시를 해놓은 터였다.

어린이들이 펼치는 가장행렬을 지켜보며 박수를 치고 있는 박 대통령 부부. 육영수 여사는 육영재단을 설립했을 정도로 어린이들에게 많은 사랑과 관심을 기울였다.

김근원씨는 어쩔 도리 없이 다시 진주 시내에서 구한 국산 두루마리 화장지를 대통령 내외가 쓰게 될 화장실에 두었다. 박 대통령 내외가 머무는 2박 3일 동안 김씨는 그 화장지가 계속 신경 쓰였다. 그런 화장지를 쓰게 하는 게 여간 민망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대통령 내외는 화장지와 관련해 아무런 말이 없었다. 만약 대통령 내외 중 누구라도 화장지 질에 대해 불평을 했다면 수행원들이 득달같이 달려와 다그쳤을 텐데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김씨는 혹시 수행원들이 다른 고급 화장지를 가져와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봤다.

대통령 내외가 집을 떠나자마자 김근원씨가 확인한 것은 자신이 대통령 내외를 위해 비치해 놓은 그 조악한 화장지였다. 김씨는 대통령 내외가 자신이 갖다놓은 화장지를 사용한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통령 내외가 떠나간 이후였지만 김씨는 참으로 민망하고 죄송스러웠다고 한다. 그 후 김근원씨는 좋은 국산 화장지를 볼 때마다 아들 김상훈씨에게 “그때 이런 화장지가 있었다면 내가 그때 그렇게 대통령 내외분께 민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하곤 했다고 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지역 민원 청취 때문에 1박 2일 일정이 2박 3일로 연장, 지방에 머물면서도 중앙에서 처리해야 할 업무들을 그대로 처리했던 것 같다. 64년 11월 6일자 중앙일간지들은 전날 저녁 진주에서 있었던 박 대통령의 수행기자단과의 회견 내용을 일제히 보도하고 있다. 이날의 주요 회견 내용은 당시 진행하고 있던 한일(韓日) 협상, 서독 방문 등 외교 문제와 사립학교법 개정안 등의 국내 현안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었다. 머무는 곳이 어디든 국가가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한 생각을 한시도 놓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