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매너 9] 박근혜 대통령과 公人의 正裝 : 월간조선

실제 그런 일을 겪은 한국인은 많지 않겠지만 정장(正裝)을 하지 않으면 외국 오페라 극장이나 고급 레스토랑에 못 들어간다는 것쯤은 모르는 사람이 없다. 또 파티에 입고 갈 옷을 두고 야단법석을 피우는 영화장면도 흔하다. 가난한 사람이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세탁소에서 신사복을 빌려 입고 갔다가 세탁꼬리표 때문에 망신을 당했다는 외국 유명 단편소설도 있다. 하지만 요즘의 한국인들은 정장의 의미도 모를뿐더러 인식조차 없는 것 같다.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내리더라.〉〈요한복음〉 21장 7절

베드로가 고기를 잡고 있을 때 부활한 예수가 나타났다. 그러자 베드로가 예수에게로 가기 위해 벗어 두었던 겉옷을 입고 물속으로 뛰어들어 예수에게로 건너갔다는 이야기다. 이 부분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의아해하면서도 깊이 생각지 않고 그냥 넘겨 버린다. 아니, 바다로 뛰어들려면 입었던 옷도 벗을 일인데, 왜 도로 걸쳐 입었을까?

正裝은 人格의 표현

1907년 4월 22일, 서울을 떠난 이준(李儁) 열사가 헤이그로 가는 중간 경유 겸 막후교섭지로 제정러시아의 수도 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해 잠시 머물렀다. 당시 현지신문 상류층 파티 동정란에 그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처음에는 아프리카 무당 샤먼과 같은, 검은 갓에 흰 두루마기 차림의 조선 선비의 느닷없는 출현에 상당히 당황스러웠는데, 점차 그의 원숙하고 품위 있는 사회적인 인격과 풍모에 매료되어 많은 사람이 그의 주장을 경청하게 되었고, 결국 상당수 인사가 조선의 처지를 이해 공감하게 되어 필요한 지지 활동을 베풀기로 의견이 모아졌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이준 열사가 헤이그까지 그 차림으로 가지는 않았다. 주목을 끌기 위해 계획한 퍼포먼스였을 것이다.

축구감독 거스 히딩크는 영국의 호화군단 첼시팀을 맡았을 때, 전(全) 선수에게 정통 아르마니 정장을 똑바로 입을 것을 강요하고 넥타이를 느슨하게 매면 100파운드 벌금을 물렸었다. 그리고 지각을 하거나 훈련 중 휴대전화를 사용하면 훈련에서 제외시키고 내쫓았다. 정장을 해야 정신이 무장되어 소임, 각오, 역량발휘 등 리더십이 생긴다는 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2002년 월드컵 때 한국팀을 맡았을 때에도 처음엔 유럽식 지적(知的) 축구를 접목(接木)시켜 보려 했다가 바로 포기했었다. 선수들에게 억지로 정장 신사복을 입히자 거북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데다가 학습능력이 도저히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해서 체력전(體力戰)으로 나갔다.

아르마니, 伊총리에게 “넥타이를 매라”

지난 2013년 8월 8일 과달루페 팔로메케 주한 볼리비아 대사로부터 신임장을 받고 악수를 나누는 박근혜 대통령. 팔로메케 대사는 검은색 정장 차림인데, 박근혜 대통령은 분홍색 상의에 베이지색 바지 차림이다.

요즘 우리나라 주일 예배하러 가는 사람들을 보면 복장이 장난이 아닌 사람이 부지기수다. 허구한 날 외국 영화에서 주일에 교회에 가기 위해 온 가족, 심지어 어린이들까지 정장을 하는 것을 보고도 자신들은 대충 차려입고 간다. 심지어 반바지, 반팔, 등산복, 추리닝, 샌들 바람으로 교회에 가는 이들도 있다. 이 나라가 선진국이 아니며 스스로 선진국민이 될 수 없음을 자인하는 꼴이다. 그런가 하면 짙은 화장에 명품(名品)으로 치장을 해서, 예배하러 가는지 사교장에 가는지 구분이 안 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아무튼 그 꼴을 보고도 꾸짖어 내쫓지 못하는 목회자들도 참 답답하겠다.

2014년 5월에 취임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단정하고 고급스런 개량 전통복으로 ‘모디룩’이란 유행을 불러오고 있다. 게다가 고가(高價)의 명품 안경, 시계, 만년필을 고집하는 바람에 처음엔 반대파의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지지자들은 친(親)기업적 성향이라며 오히려 반겼다. 하층민 출신인 그가 과연 그만한 명품들을 소화해 낼 수 있을까 싶어 걱정했지만, 교과서로 삼아도 될 만큼 훌륭한 글로벌 매너 모범으로 그 같은 염려를 보기 좋게 불식시켜 버렸다.

그런가 하면 2014년 2월에 취임한 이탈리아의 스타 총리 마테오 렌치는 ‘청바지 총리’로 소문났다. 이에 보다 못한 이탈리아의 패션 거장 조르조 아르마니가 “넥타이를 매라”며 총리에 어울리는 정장을 갖추라고 충고를 한 적도 있다.

예전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여러분은 내가 짙은 회색이나 감색 정장만 입는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나는 무엇을 먹을지, 무엇을 입을지에 관한 결정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찮은 일에 신경을 쓰면서 이 시대를 헤쳐 나갈 수는 없으니까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선거 때가 되면 한국의 정치인들이 우르르 현충원을 찾는데, 그럴 때마다 따라온 일행 중에는 노타이에다 반팔, 유색 양복, 점퍼나 패딩 오버코트를 걸친 사람이 꼭 있다. 준비가 안 됐으면 추모 대열에서 빠지는 게 도리이거늘 개념 없이 끼어들어 사진을 못 쓰게 만들기도 한다.

근래 대통령을 비롯하여 우리나라 여성 관료나 여성 정치인들을 보면, 하나같이 공인(公人)으로서의 정장 개념이 전무(全無)한 어글리 패션을 보여주고 있다. 모두들 제멋에 겨운 국적불명, 의미불명, 소통불가, 연예인 흉내내기의 튀는 패션이다.

신사복은 검은색이 기본이다. 따라서 공적인 행사에 참여하거나 공공의 공간에서 일을 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검은 정장을 입는다. 품격 있는 파티나 시상식에 참석하는 여성들 역시 검정(부부동반일 경우 회색) 드레스를 입는다. 아직도 전통적인 복장을 고수하는 국가나 민족이 있지만, 선진국을 비롯한 지구상 대부분의 나라가 이런 현대화한 신사 숙녀 복장을 정장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고전적인 해석을 하자면 검은색은 결코 긍정적이거나 호의적인 색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불길한 색이다. 죽음의 색이기도 해서 심지어 한국과 같은 일부 민족은 전통적으로 검은색으로 옷을 해 입은 적이 없다. 검은색은 가장 천하고 낮은 색이다. 해서 가장 낮은 계층이 입던 옷색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신사복 정장은 왜 검은색일까? 신사복이 서양에서 시작되었으니 당연히 성경에서 그 실마리를 찾는 게 가장 빠르겠다.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상대를 높이기 위해 자신을 한없이 낮추는’ 의미로 검은색 옷을 입었다. 때문에 스스로 낮은 데로 임한 수도사들이 검은색 옷을 즐겨 입었다. 여기에 계몽주의, 민주주의 시대를 맞아 공공(公共)의 개념이 생기면서 공직자, 집사, 변호사 등등 국민이나 주인, 고객을 받드는 일을 하는 사람들부터 검은색 정장을 하게 되면서 지금은 오히려 권위를 나타내는 색이 되었다. 레스토랑 웨이터나 공직자는 물론 국가수반까지 똑같이 검은색 정장을 한다. 실용성도 고려했겠지만 그보다 봉사의 의미가 먼저일 것이다.

朴槿惠 대통령의 옷은 ‘새마을 패션’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은 취임 후 지금까지 한복 외에는 치마 정장을 하고 나온 적이 거의 없다. 국립묘지 참배 때에만 검은 정장을 했다. 어느 연예인 못지않은 자기만의 독특한 차림새를 고집하고 있다. 모두 유사한 캐주얼풍 유니폼 디자인에 색깔만 다른 상의를 여러 벌 만들어 월화수목금토, 보남파초노주빨, 춘하추동을 연출해 내고 있다.

문외한이라 그런지 필자는 박근혜 대통령이 입은 옷들에 대해 ‘새마을 패션’이라고밖에 달리 적당한 표현이 생각나지 않는다. 승무원 유니폼이 떠오르지 않는 이가 있다면 그는 어쩜 아마존 오지에서 살다 온 미개인일 것이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박근혜 대통령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입었다면 청와대에서 허드렛일하는 여직원이나 호텔 벨보이로 오인(誤認)했다 해도 할 말이 없을 만큼 아슬아슬하다. 박 대통령의 옷을 만드는 이가 혹시 예전에 호텔 종업원 유니폼을 전문적으로 만들던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종업원 같은 서비스 정신으로 국민을 섬기겠다는 각오일까? 아무렴 호의적인 한국 언론처럼 세계인들도 그렇게 인식했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냉정하게 바라보면 그 반대다. 무엇보다 변화무쌍한 상의 색깔 때문에 정작 자신의 ‘신뢰’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실패한 것 같다. 일관성보다는 고집만 남은 듯 보일 위험이 더 크다.

무게감 있게 입는 것은 국가수반의 의무

국가수반은 단적으로 말해 그 나라의 ‘얼굴마담’이다. 일정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내·외빈 접견이다. 한데 유니폼은 단체 근무복이다. 대통령이란 직위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설사 집무실에서야 그렇다 하더라도 외빈을 맞아 사진을 찍을 적엔 품격 있는 정장을 하고 나오는 것이 환대 매너다. 수만 킬로미터를 날아온 귀빈에게 이왕지사 품격 있는 사진을 자랑스럽게 들고 가게 하는 것이 국익(國益)에 도움 되지 않을까 싶다.

현재 세계의 여성 지도자들 중 치마 대신 바지를 더 선호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는 사실 몸매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치마로는 굵은 허리를 감출 수가 없어서 바지를 선호하는 것이다.

어린 소녀라 하더라도 치마 정장을 하면 숙녀로 대접하는 게 서양의 신사도(紳士道)이다. 그 신사도는 숙녀를 보호해야 한다는 중세(中世)의 기사도(騎士道)에서 나왔다. 여성성(女性性)이 대통령 직분 수행에 단점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장점일 수도 있을진대 왜 굳이 바지차림을 고집하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박근혜 대통령처럼 빳빳하게 세운 깃, 커다란 주머니, 몸에 맞지 않는 헐렁함은 흡사 상의가 유니폼이나 갑옷처럼 느껴져 다른 이의 범접을 막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초지일관 회색 바지 및 상의 비례로 인한 언밸런스는 보는 이로 하여금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 옷을 만들 적에는 상대와 나란히 세워 놓고 설계를 해야 함에도 당신의 권위만 생각하고 독존(獨尊)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원색적인 색깔 역시 지나치게 튀어서 어딜 가나, 누구와 같이 서도 품격이 떨어진다. 상대와의 조화를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뜻이다. 때문에 상대는 첫눈에 ‘아, 이 사람은 독선(獨善)이 강하고 남에 대한 배려심이 없구나!’ 하고 파악한다. 그러니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질 턱이 없겠다.

대통령의 차림새를 두고 이렇게 함부로 품평하는 것이 얼마나 불경(不敬)스럽고 시건방진 일인지 모른다. 그렇다고 혹여 국격(國格)과 한국 패션산업을 적어도 10년은 후퇴시킬 ‘벌거벗은 임금님놀이’를 보고도 모른 척하는 것 또한 도리가 아니다. 맹자(孟子)는 “사람은 스스로 업신여긴 뒤에야 남에게서 모욕을 당하고, 나라도 스스로 해친 뒤에야 남의 손에 망하게 된다 (夫人必自侮然後人侮之, 國必自伐而後人伐之)”고 했다.

옷이란 남들이 어찌 보아 줄지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일하기 편하고 검소한 복장도 좋지만, 국력에 비례해서 고급스럽고 무게감 있는 정장을 갖추는 것이 국가수반으로서의 의무이자 덕목이겠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여성의 경우 남성에 비해 복장이 자유로울 수 있다고 관대하게 생각한다. 공인의 경우 남성이나 여성이나 공히 짙은 정장이 기본이라는 인식이 매우 희박하다.

여성도 공적 자리에서는 正裝을 입어야

무엇보다 디너나 파티에서는 호스트든 게스트든 여성은 무조건 치마 정장이어야 한다. 특히 부부동반 모임에서는 반드시 치마여야 한다. 여성이 바지를 입는다는 것은 오피니언 리더로서 중성성(中性性)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거기에다 목걸이와 귀걸이를 모두 하지 않으면 인격적으로 결함이 있는 사람으로 의심 받을 수도 있다.

디너든 파티든 목적은 보다 긴밀하게 소통하고 교감하여 신뢰를 다지자는 것이다. 한데 혼자서 특별한 옷을 입고 나타나면? 본인이야 튀어서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을 만끽할지 모르지만 호스트와 다른 손님들은? 그저 입발림으로 옷자랑하고 칭찬해 주는 것 외엔 더 나눌 말이 없어진다. 게다가 튀는 옷 때문에 다른 어떤 사람과도 앙상블이 불가능하다. 상대를 불편하게 만든다. 희한한 옷 때문에 상대와 인간적인 교감이 방해된다. 해서 남들과 비슷한 평범한 정장이나 드레스를 입고 나가는 것이다. 그래야 누구와도 거리낌 없는 대화를 나누며 교감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은 평범한 비즈니스 포멀 정장 차림이 표현해 주는 헌법상 직분의 무게와 권위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 지금처럼 국무회의나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캐주얼풍 복장으로 흘리듯 하는 모두(冒頭)발언을 하고 받아쓰기를 연출하는 것과 정장 차림으로 국민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하는 발언은 그 무게가 다를 것이다.

바지 입고 브로치 다는 건 잘못

박근혜 대통령이 상의에 다는 브로치는 바지 차림과 어울리지 않을뿐더러, 그 의미도 불분명하다.

현대적 의미의 리더란 영웅적인 사람이 아니다. 지도자란 모든 면에서 누구와도 뚜렷하게 구별되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누구과도 잘 어울려야 하는 사람이다.

외국 지도자들을 국빈(國賓)으로 초대했으면 어떻게 하면 더 품격 있게 환대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오히려 손님이 더 돋보이도록 배려하는 게 기본적인 상식이다. 그러면서 상대에 비해 지나치게 격이 떨어지지 않으면서도 앙상블을 이뤄 서로 소통하고 교감할 수 있는 정장을 하는 게 예의겠다. 그런 게 주인다운 생각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패션 롤모델로 삼고 있는 독일 메르켈 총리는 얼핏 박 대통령처럼 요란한 색 옷을 입는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메르켈 총리는 언제나 검정 바지에 검정 구두, 검정 양말로 신사에 준한 기준을 지키고 있다. 게다가 유색 상의 역시 단정한 정장인 데다 고급스럽다. 그도 경우에 따라 검정 정장 모드를 입고 파티에선 검정 드레스를 입는다.

참고로, 박 대통령이 달고 다니는 브로치는 사적 취향인 데다 아무런 메시지조차 없다. 아부하기 좋아하는 삼류 이미지메이킹 강사들이 이런 저런 구실을 붙여 패션 감각이 남다르다고 치켜세우지만 실은 어처구니없는 난센스다. 브로치는 치마 정장에나 다는 것이다. 여성이라 해도 바지를 입으면 남성에 준하는 것이 글로벌 매너다. 그러니 남성이 브로치를 다는 꼴이다. 브로치 대신 버락 오바마 대통령처럼 국기 배지를 다는 게 정격이다. 자고로 공인, 특히 최고지도자에겐 ‘제멋’이란 없다.

그 무엇보다 근본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패션에서 다른 어느 여성 지도자들과도 비교 불가능하다. 어떤 옷을 입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 옷을 소화해 내느냐 못해 내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의 특이한 패션도 문제지만 근본적으로 바른 자세가 안 되기 때문에 아무리 그럴듯한 옷을 입어도 그 격(格)을 제대로 살려낼 수가 없다. 박 대통령은 평소 무슨 건강체조를 한다고 하는데 어떤 특정 동작을 너무 오래 하는 바람에 자라목에 가슴이 오그라든 것이 아닐까 짐작된다. 그걸 감추려고 칼라 뒷깃을 억지로 세우는 바람에 우스꽝스런 모양새가 되고 있다.

트레이닝복은 인격이 아니라 동물격

거스 히딩크 전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은 운동장에서도 정장 차림을 고집했다.

품격은 옷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바른 자세에서 나온다. 한국의 톱 탤런트는 물론 심지어 수퍼모델조차도 해외진출이 불가능한 원인 중의 하나가 바로 이 바르지 못한 자세 때문이라면 다들 설마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패션쇼 사진을 비교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하나같이 엉거주춤 굽은 자세로 당당함을 잃었다.

한국의 거의 모든 스포츠 선수들은 정장에 대한 개념이 거의 없다. 고작 국가대표 선수가 되어 국제대회 참석 때 입는 단체복 정도다. 동네 골목에선 트레이닝복 바람에 슬리퍼 끌고 다니는 체육관 관장이나 아이들을 자주 본다.

많은 한국 선수는 국내든 해외든 입단 사인하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정장 대신 트레이닝복이나 티셔츠 차림이다. 성인(成人)이 아닌 미성년 취급 받고 있음도 눈치 채지 못한다. 그 정장 한 벌 때문에 국격은 고사하고 자신들의 값어치가 얼마나 디스카운트당하는지, 연봉(年俸) 외에 마땅히 따라와야 할 알파(부가가치)를 다 놓치고 있음을 알 리가 없다.

‘스포츠 선수니까 그런 차림이 당연한 것 아니냐?’고 할는지 모른다. 하지만 기실 운동 그 자체는 동물격(動物格)이다. 인격(人格) 함양 어쩌고 하는 건 구실이다. 실은 인간이 문명화하면서 차츰 망각 내지는 퇴화(退化)하고 있는 동물적 야성(野性)을 되살리는 행위다. 여기에 이왕 절제미, 규율미, 우아미 등 미학적 도덕적 오락적 요소를 가미시켜 인격화, 상품화한 것이 오늘날의 스포츠다. ‘난 운동선수니까 매너니 품격이니 하는 거추장스런 것은 배운 적도 없고 또 필요도 없다, 그러니 그냥 막 입고 다녀도 된다’는 발상은 말 그대로 스스로 인격을 포기하는 소치다.

누구든 선수이기 이전에 한 인격체다. 운동장을 벗어나면 즉각 인격으로 되돌아와야 한다. 그걸 매너, 정장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는 축구스타 베컴을 비롯한 외국 유명 스포츠선수들과 비교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한국 선수나 감독들은 이런 이치를 모른다. 엘리트 체육이란 미명하에 어렸을 적부터 피동적인 훈련에 익숙한 한국 선수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기란 쉽지 않다. 해서 스스로는 정장 하나도 제대로 못 갖춰 입는 것이다.

올림픽 금메달 목에 건다고 인격이 금격(金格)이 되는 게 아니다. 아무 데나 모자 쓰고 추리닝이나 러닝셔츠 바람으로 돌아다니는 게 운동선수의 특권(特權)은 아니다. 심하게 말하자면 우리 밖을 어슬렁거리는 짐승격이다.

자기존중은 자기가 하는 것이지 누가 챙겨 주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가 자신을 존중하지 않으면서 남에게서 존중받으려는 건 난센스다. 그런 사람이 남을 제대로 존중할 줄 알까? 배려가 뭔지 알기는 할까? 어떤 분야에서든 영웅이 되기 전에 먼저 신사가 되어야 한다.

인간사회에서 貴賤은 없을 수 없어

흔히들 하기 쉬운 말로 반상(班常)의 구별이 없어졌다고는 하지만, 기실 문명사회에서 사람과 사람의 차별이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차이, 차별 없이는 발전이나 진보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그런 사회가 있다면 그건 극락이거나 야만이겠다.

한국의 중·고교 교사들의 행색을 보면 과연 저 사람들이 선생일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 때가 많다.

가령 세월호 참사 40여 일 후 모(某) 신문에 ‘세월호를 말한다’는 집담회에 다섯 명의 중·고교 교사들이 나온 적이 있는데 그들의 복장이 가관이었다. 추념적 분위기는 고사하고 공적 이슈를 다루는 공개석상에 너절하기 짝이 없는 옷을 걸치고 나왔다. 정장 개념 완전 제로. 그렇게 스스로 품위를 갖추지도 못하면서 무슨 사건만 터지면 교권(敎權) 침해, 교사의 권위 추락, 선생 대접 안 해 준다며 불평한다. 특히 진보를 주창하는 교사들일수록 더 심하다. 사진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바람에 기사를 읽기도 전에 말 다르고 행동이 다를 것이라는 선입견이 들어 그들 주장에 신뢰가 가지 않는다.

명가(名家)! 고품격(高品格) 가풍을 가진 집안들을 보면 대부분 잘산다. 이런 가문은 설사 가세가 기울어 어려움에 처해도 쉽게 포기하거나 타락하지 않고 빠르게 회복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러니 사소하다고 무시하지 말고 남다른, 남보다 우월할 수 있는, 자기 존엄성을 확보할 수 있는 매너로 품격을 갖추는 것, 그런 게 진정한 지혜라 하겠다.

남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을 무례(無禮)하다고 욕하지만 자기를 함부로 하는 사람을 우리는 천박(淺薄)하다고 한다. 정장 매너는 가장 기초적인 자기존중이자 상대에 대한 배려다. 언제나 그렇듯 한국은 하드웨어(物格)보다 소프트웨어(人格)가 문제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품격이 곧 국격이다. 그리고 그것만이 우리가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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