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선택은 감독과 각본을 보고 결정
⊙ 〈가방을 든 여인〉 〈부베의 여인〉 〈타락한 길〉 좋아해
朴興津
⊙ 71세. 서울대 사범대 독어교육과 졸업.
⊙ 《한국일보》 기자, 인천과 이천서 교직. 《미주한국일보》 부장·편집국장 역임.
現 《미주한국일보》 편집위원,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FPA)·LA영화 비평가협회(LAFCA) 회원.
⊙ 〈가방을 든 여인〉 〈부베의 여인〉 〈타락한 길〉 좋아해
朴興津
⊙ 71세. 서울대 사범대 독어교육과 졸업.
⊙ 《한국일보》 기자, 인천과 이천서 교직. 《미주한국일보》 부장·편집국장 역임.
現 《미주한국일보》 편집위원,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FPA)·LA영화 비평가협회(LAFCA) 회원.
-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의 최신작 〈에피 그레이〉.
1960년대 전성기에 B B로 불린 프랑스의 육체파 브리짓 바르도에 맞서 C C라 불리면서 전 세계 남성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던 왕년의 이탈리아 글래머 스타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77)와의 인터뷰가 지난 3월 30일 미국 뉴욕의 레오파드(The Leopard) 식당에서 있었다.
육감적이던 얼굴이 전연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한 카르디날레를 보면서 세월의 무상함을 다시 한 번 깨닫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카르디날레는 그런 세월을 무시나 하듯이 매우 쾌활하고 유머가 많았다. 세상살이의 경륜이 가득한 여인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안경을 쓰고 양손에 반지를 여러 개 낀 카르디날레는 특유의 저음에 다소 서툰 영어로 질문에 간단하면서도 위트 있게 대답했다. 록 허드슨과 캐리 그랜트 등 과거 자기와 연기한 스타들의 얘기를 할 때는 그리움에 젖은 모습을 보였다. 카르디날레는 주제가 ‘시노 메 모로’로 유명한 〈형사〉와 〈부베의 여인〉 및 〈가방을 든 여자〉로 올드팬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카르디날레는 19세기 영국의 미술평론가 존 러스킨과 19세 때 결혼, 불행한 삶을 산 꿈 많은 에피 그레이의 실화를 그린 〈에피 그레이(Effie Gray)〉에서 베니스의 귀부인으로 나온다. 영화의 각본은 오스카상을 탄 배우이기도 한 엠마 톰슨이 썼는데 톰슨은 영화에 출연도 한다.
“배우가 될 생각 없었다”
—당신의 영화들은 한국에서 굉장한 인기를 모았었습니다. 특히 한국 여자들은 당신과 조지 차키리스가 출연한 〈부베의 여인〉(1963)을 사랑했는데 그 영화와 차키리스에 대한 추억이 있는지요.
“정말로 멋있는 영화였지요. 지난번 LA에 들렀을 때 차키리스와 만났어요. 내게 선물을 듬뿍 주었죠. 우리가 영화에 나왔을 때 차키리스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로 오스카 조연상을 탄 지 얼마 안 된 때였지요. 정말로 환상적이었습니다.”
—당신은 우리에겐 여전히 전설입니다. 당신의 생애 중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이 있다면 말해주세요.
“참 우스워요. 난 배우가 될 생각이 없었습니다. 난 튀니지에서 태어났는데 내가 16세 무렵 학교에 다닐 때 거장 감독과 그의 일행이 카메라를 들고 학교에 나타나 나를 그 앞에 세웠어요. 난 달아났죠. 그랬더니 학교장에게 말해 날 영화에 끌어들였어요. 〈황금 반지〉라는 프랑스 영화였죠. 난 아랍 여자로 나왔습니다. 그 영화는 베를린영화제에서 상을 받았어요. 그다음으로 기억나는 것은 〈고하〉에서 오마 샤리프와 연기한 일입니다. 우린 같이 출발한 셈이지요. 난 운이 좋았어요. 내가 이탈리아에 도착했을 때는 이탈리아 영화의 전성기였지요. 비스콘티와 펠리니, 볼로니니 같은 명장들이 활동을 했을 때였습니다. 불후의 명작인 〈표범(The Leopard)〉과 〈8 1/2〉에 동시에 출연했는데 한 영화에선 금발로 다른 영화에선 흑발로 나와 하루종일 머리색깔을 바꿔야 했어요. 참으로 환상적인 때였습니다. 비스콘티의 영화는 마치 연극처럼 정확하고 주도면밀했습니다. 펠리니는 각본도 없고 즉흥적이었죠. 펠리니의 〈8 1/2〉에선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와 연기했는데 못 잊을 시간들이었습니다.”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를 따라 배우려는 젊은 배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모르겠어요. 난 배우가 될 생각이 없었으니까요. 내겐 예쁜 여동생이 있었는데 그 애가 배우가 되고파 했지요. 감독 등 영화인들이 자꾸 권유해 배우가 된 것이에요. 그들은 마치 연인을 쫓아다니듯이 날 쫓아다녔는데 그럴 땐 금방 ‘예스’라고 말하면 안 되지요.”
—맹렬 여권 운동가이기도 한데 영화와 사회에서 어느 정도 발전이 되었다고 봅니까.
“그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난 여권신장을 위한 유네스코 대사지요. 난 그것을 위해 늘 싸우고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많은 나라에선 남자들이 왕이에요. 난 어렸을 때부터 늘 그런 남자들에 맞서 싸웠는데 여자가 남자보다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싸움이었습니다.”
—이 영화에 대해 말해주세요.
“베니스에서 촬영을 했는데 참으로 아름다운 경험이었습니다. 그런데 의상이 너무 입고 벗기가 힘들어 화장실에 가지 않으려고 잘 먹지를 못했답니다. 그렇지만 의상은 황홀할 지경이었지요. 그리고 또 베니스는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남자와의 사랑에 대해 배운 것이 무엇인지요.
“내가 결단코 결혼 안 한 것 보면 짐작하겠지요. 내겐 딱 한 명의 중요한 남자가 있었는데 그는 내 딸의 아버지인 나폴리 태생의 영화감독 파스쿠알레 스퀴티에리입니다. 영화들을 찍을 때 많은 남자가 내게 구애를 했지만 다 ‘노’했어요.”
“촬영이 끝나면 자신으로 돌아와야”
—영화 〈표범〉에 대해 말해보세요.
“참으로 훌륭한 영화였습니다. 처음에 영화에 버트 랭카스터가 나온다고 하자 사람들이 ‘그는 카우보이여서 이런 시대극은 해낼 수가 없을 걸’이라고들 말했지요. 그러나 그는 멋있게 해냈어요. 우스운 얘기가 있다면 내가 키스를 할 때면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이 내게 ‘네가 키스할 때 난 네 혀를 보고 싶다’고 말한 것이지요. 그러나 난 그 말을 안 따랐어요. 그 후 랭카스터와 난 절친한 사이가 됐습니다. 그는 내게 ‘이제 우리 러브 스토리 하나 만들까’ 하고 농담을 하기도 했어요. 옛 의상을 걸치고 더위를 견뎌내느라 혼이 난 기억이 있는데, 그 옷을 만든 피에로 토지에게 아카데미가 몇 년 전 상을 주었어요. 그때 그가 LA에 올 수가 없어 내가 대신 와서 받았습니다.”
—튀니지 태생인데 아직도 고향과 관계가 있습니까.
“작년에도 갔어요. 난 거기 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지금 그곳엔 민주주의가 자리 잡아 가고 있지만 아직도 그 지역은 전쟁에 시달리고 있어요. 종교전쟁인데 참으로 어리석은 짓들입니다. 난 이해를 못 하겠어요.”
—중동과 유럽, 동양 등 세계를 돌면서 다양한 문화와 접촉을 했는데 그 소감은 무엇인지요.
“나는 여행을 사랑합니다. 나는 호주와 에스키모가 사는 곳을 비롯해 안 가본 데가 없지요. 제게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세상 모든 곳의 사람을 만나 알게 되고 서로 주고받는 것이야말로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지요.”
—영화 선택을 어떻게 하나요.
“감독과 각본이 우선입니다. 각본이 나쁘면 출연을 거절해요. 그리고 세트에선 감독이 제일 중요하지요. 남들은 다 은퇴했지만 내가 77세에도 일을 하는 것을 기쁘게 여깁니다. 지금까지 150여 편의 영화에 나왔어요.”
—당신의 삶에서 무언가 고쳐보고픈 것이 있는지요.
“인생은 단 한 번뿐인데 고치긴 뭘 고쳐요. 한 가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직업은 안으로 심지가 굳어야 해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정체조차 모르고 말아요. 카메라 앞의 나는 허상으로 촬영이 끝나면 자신에게로 돌아와야 해요.”
—아이들을 어떻게 키웠는지요.
“엄마라는 것은 참 멋있어요. 난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들에게 자유를 주었습니다. 지금 내 딸과 아들은 다 혼자 살고 있습니다. 우린 서로 아주 가깝습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런 건 내 비서가 합니다.”
“성형수술하는 대신 웃으면 돼”
—당신에게 있어 성공과 명성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요.
“그것을 이뤘다고 해서 달라진 것은 없어요. 난 거의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산책하고 신문을 사서 읽고 보디가드도 없어요. 거리의 사람들이 다 나의 보디가드들이지요.”
—명성 중에 가장 즐길 만한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아랍 사람이어서 날 공주라고 부르는 것이에요.”
—성형수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싫어하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나의 어머니는 내게 ‘넌 늘 하하하 하고 웃기 때문에 주름살을 찾아보기가 힘들다’고 했지요. 웃으면 돼요. 성형수술을 하고 난 뒤 거울을 보면 자신을 알아볼 수가 없을 것 아닙니까.”
—B B라 불린 브리짓 바르도에 맞서 C C라 불리며 그로부터 가장 섹시한 여배우의 왕관을 빼앗았는데 둘의 관계는 어땠는지요.
“파파라치들이 우리를 놓고 금발 대 갈색 머리의 대결이라고 자꾸 부추겼지만 우린 아주 좋은 관계였습니다.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였지요.”
—어떻게 힘을 유지해 왔습니까.
“말했듯이 난 어렸을 때부터 늘 남자 아이들과 싸웠어요. 절대로 여자완 싸우질 않았지요. 여자가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난 어렸을 때부터 농구와 배구 등 각종 스포츠를 즐겼습니다. 난 남자아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할리우드에서의 재미있는 경험은 무엇인지요.
“난 늘 보디가드 없이 혼자 걸어다녔는데 경찰들은 날 보면 늘 세운 뒤 ‘왜 보디가드가 없느냐’고 묻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내 대답은 ‘난 보디가드를 원치 않는다’는 것이었지요.”
—당신에게 있어 가장 아름다운 남자는 누구인지요.
“난 많은 아름다운 남자와 일을 해서 고르기가 쉽지는 않지만 록 허드슨이라고 해야겠네요. 그는 나의 좋은 친구였습니다. 당시엔 동성애자의 경우 일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가 함께 있을 땐 마치 연인인 것처럼 행동했어요. 동성애는 배우에겐 독약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서로가 주고받는 대화요 통신입니다.”
—지금 어디서 사나요.
“파리입니다. 31년째 살고 있어요. 딸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치려고 이주했지요. 그뒤로 딸은 공부하려고 런던으로 갔고 난 파리를 안 떠났습니다.”
—딸이 혹시 당신의 직업을 이어받을 생각은 안 하던가요.
“그런 제의가 있었지만 싫답니다. 굉장히 예뻐요. 한번은 LA에서 딸에게 잔 다르크 역이 주어졌는데 거절했습니다.”
—요즘 남자친구가 있습니까.
“내게 남자란 단 하나 내 딸의 아버지뿐입니다.”
“미인대회 참가했다가 우연히 배우가 돼”
—어떻게 해서 배우가 됐습니까.
“우연이에요. 튀니지에서 미인대회가 있었는데 그때 행사 관계자 한 사람이 거기에 있던 나를 무조건 잡아끌어 무대에 내보냈어요. 그러곤 당선 부상으로 베니스영화제에 보냈지요. 거기서 비키니를 입었는데 파파라치들이 사진을 찍는다고 난리법석을 떨더군요. 그때 비키니를 처음 입어봤습니다. 이어 영화감독과 제작자들이 영화 출연을 제의했지만 난 ‘노’라고 했어요. 집에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영화를 거절한 여자’라는 제목의 나에 관한 기사를 읽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후 영화 관계자들이 내 아버지에게 전보를 수없이 보내 날 배우로 내보내라고 독촉을 했지요. 그래서 견디다 못해 갑자기 로마의 촬영실험센터에 등록을 하게 된 것입니다. 난 고약한 성질이 있어 주위 사람들이 다 날 싫어했어요.”
—그때 영화인들이 당신의 섹시한 음성을 싫어했다는 말이 사실인지요.
“이탈리아 말을 못 하는데다가 음성까지 남자 것 같아서 싫어했습니다. 내 얼굴을 안 보고 목소리만 들으면 날 남자로 착각했지요.”
—〈에피 그레이〉의 각본을 읽었을 때 소감은 어땠는지요.
“엠마 톰슨은 정말로 흥미 있는 글을 썼어요. 정말 기가 막힌 경험이었습니다.”
—존 웨인과 나온 〈서커스 월드〉는 어땠습니까.
“그는 나의 아버지로, 그리고 리타 헤이워드가 나의 어머니로 나왔지요. 헤이워드는 당시 내게 꿈과도 같은 여인이었습니다. 우린 영화를 마드리드에서 찍었는데 그때 그곳에 비틀스가 공연을 와 구경을 갔지요.”
—누구의 옷을 입나요. 또 장신구들을 좋아합니까.
“늘 아르마니입니다. 장신구들도 좋아합니다.”
—집은 무엇으로 가꾸나요.
“골동품입니다. 난 신비한 분위기를 지닌 집을 좋아합니다. 내 집은 센강 근처에 있습니다.”
—가장 애착을 느끼는 영화는 무엇입니까.
“가장 중요한 영화는 비스콘티의 〈표범〉과 펠리니의 〈8 1/2〉입니다. 그리고 〈가방을 든 여인〉과 〈부베의 여인〉이죠. 장-폴 벨몽도와 나온 〈타락한 길〉도 좋아합니다.”
—튀니지 대 이탈리아팀이 축구경기를 하면 어느 쪽을 응원하겠습니까.
“이탈리아지요.”
—할리우드에서의 경험 중 기억나는 것은 무엇입니까.
“〈서커스 월드〉를 찍을 때 리타 헤이워드가 내 대기실을 찾아와 날 보더니 울기 시작하더라고요. 난 영문을 몰랐지요. 이어 그는 ‘나도 한때 아름다웠지’라고 말을 했어요. 그는 그때도 아름다웠는데 과거의 자기가 더 아름다웠다고 여기는 것 같았습니다.”
—왜 아르마니를 좋아하는지요.
“내 피부는 매우 예민한데다가 합성섬유에 알레르기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육감적이던 얼굴이 전연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한 카르디날레를 보면서 세월의 무상함을 다시 한 번 깨닫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카르디날레는 그런 세월을 무시나 하듯이 매우 쾌활하고 유머가 많았다. 세상살이의 경륜이 가득한 여인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안경을 쓰고 양손에 반지를 여러 개 낀 카르디날레는 특유의 저음에 다소 서툰 영어로 질문에 간단하면서도 위트 있게 대답했다. 록 허드슨과 캐리 그랜트 등 과거 자기와 연기한 스타들의 얘기를 할 때는 그리움에 젖은 모습을 보였다. 카르디날레는 주제가 ‘시노 메 모로’로 유명한 〈형사〉와 〈부베의 여인〉 및 〈가방을 든 여자〉로 올드팬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카르디날레는 19세기 영국의 미술평론가 존 러스킨과 19세 때 결혼, 불행한 삶을 산 꿈 많은 에피 그레이의 실화를 그린 〈에피 그레이(Effie Gray)〉에서 베니스의 귀부인으로 나온다. 영화의 각본은 오스카상을 탄 배우이기도 한 엠마 톰슨이 썼는데 톰슨은 영화에 출연도 한다.
“배우가 될 생각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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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의 대표작 〈부베의 여인〉. |
“정말로 멋있는 영화였지요. 지난번 LA에 들렀을 때 차키리스와 만났어요. 내게 선물을 듬뿍 주었죠. 우리가 영화에 나왔을 때 차키리스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로 오스카 조연상을 탄 지 얼마 안 된 때였지요. 정말로 환상적이었습니다.”
—당신은 우리에겐 여전히 전설입니다. 당신의 생애 중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이 있다면 말해주세요.
“참 우스워요. 난 배우가 될 생각이 없었습니다. 난 튀니지에서 태어났는데 내가 16세 무렵 학교에 다닐 때 거장 감독과 그의 일행이 카메라를 들고 학교에 나타나 나를 그 앞에 세웠어요. 난 달아났죠. 그랬더니 학교장에게 말해 날 영화에 끌어들였어요. 〈황금 반지〉라는 프랑스 영화였죠. 난 아랍 여자로 나왔습니다. 그 영화는 베를린영화제에서 상을 받았어요. 그다음으로 기억나는 것은 〈고하〉에서 오마 샤리프와 연기한 일입니다. 우린 같이 출발한 셈이지요. 난 운이 좋았어요. 내가 이탈리아에 도착했을 때는 이탈리아 영화의 전성기였지요. 비스콘티와 펠리니, 볼로니니 같은 명장들이 활동을 했을 때였습니다. 불후의 명작인 〈표범(The Leopard)〉과 〈8 1/2〉에 동시에 출연했는데 한 영화에선 금발로 다른 영화에선 흑발로 나와 하루종일 머리색깔을 바꿔야 했어요. 참으로 환상적인 때였습니다. 비스콘티의 영화는 마치 연극처럼 정확하고 주도면밀했습니다. 펠리니는 각본도 없고 즉흥적이었죠. 펠리니의 〈8 1/2〉에선 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와 연기했는데 못 잊을 시간들이었습니다.”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를 따라 배우려는 젊은 배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모르겠어요. 난 배우가 될 생각이 없었으니까요. 내겐 예쁜 여동생이 있었는데 그 애가 배우가 되고파 했지요. 감독 등 영화인들이 자꾸 권유해 배우가 된 것이에요. 그들은 마치 연인을 쫓아다니듯이 날 쫓아다녔는데 그럴 땐 금방 ‘예스’라고 말하면 안 되지요.”
—맹렬 여권 운동가이기도 한데 영화와 사회에서 어느 정도 발전이 되었다고 봅니까.
“그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난 여권신장을 위한 유네스코 대사지요. 난 그것을 위해 늘 싸우고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많은 나라에선 남자들이 왕이에요. 난 어렸을 때부터 늘 그런 남자들에 맞서 싸웠는데 여자가 남자보다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싸움이었습니다.”
—이 영화에 대해 말해주세요.
“베니스에서 촬영을 했는데 참으로 아름다운 경험이었습니다. 그런데 의상이 너무 입고 벗기가 힘들어 화장실에 가지 않으려고 잘 먹지를 못했답니다. 그렇지만 의상은 황홀할 지경이었지요. 그리고 또 베니스는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남자와의 사랑에 대해 배운 것이 무엇인지요.
“내가 결단코 결혼 안 한 것 보면 짐작하겠지요. 내겐 딱 한 명의 중요한 남자가 있었는데 그는 내 딸의 아버지인 나폴리 태생의 영화감독 파스쿠알레 스퀴티에리입니다. 영화들을 찍을 때 많은 남자가 내게 구애를 했지만 다 ‘노’했어요.”
“촬영이 끝나면 자신으로 돌아와야”
—영화 〈표범〉에 대해 말해보세요.
“참으로 훌륭한 영화였습니다. 처음에 영화에 버트 랭카스터가 나온다고 하자 사람들이 ‘그는 카우보이여서 이런 시대극은 해낼 수가 없을 걸’이라고들 말했지요. 그러나 그는 멋있게 해냈어요. 우스운 얘기가 있다면 내가 키스를 할 때면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이 내게 ‘네가 키스할 때 난 네 혀를 보고 싶다’고 말한 것이지요. 그러나 난 그 말을 안 따랐어요. 그 후 랭카스터와 난 절친한 사이가 됐습니다. 그는 내게 ‘이제 우리 러브 스토리 하나 만들까’ 하고 농담을 하기도 했어요. 옛 의상을 걸치고 더위를 견뎌내느라 혼이 난 기억이 있는데, 그 옷을 만든 피에로 토지에게 아카데미가 몇 년 전 상을 주었어요. 그때 그가 LA에 올 수가 없어 내가 대신 와서 받았습니다.”
—튀니지 태생인데 아직도 고향과 관계가 있습니까.
“작년에도 갔어요. 난 거기 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지금 그곳엔 민주주의가 자리 잡아 가고 있지만 아직도 그 지역은 전쟁에 시달리고 있어요. 종교전쟁인데 참으로 어리석은 짓들입니다. 난 이해를 못 하겠어요.”
—중동과 유럽, 동양 등 세계를 돌면서 다양한 문화와 접촉을 했는데 그 소감은 무엇인지요.
“나는 여행을 사랑합니다. 나는 호주와 에스키모가 사는 곳을 비롯해 안 가본 데가 없지요. 제게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세상 모든 곳의 사람을 만나 알게 되고 서로 주고받는 것이야말로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지요.”
—영화 선택을 어떻게 하나요.
“감독과 각본이 우선입니다. 각본이 나쁘면 출연을 거절해요. 그리고 세트에선 감독이 제일 중요하지요. 남들은 다 은퇴했지만 내가 77세에도 일을 하는 것을 기쁘게 여깁니다. 지금까지 150여 편의 영화에 나왔어요.”
—당신의 삶에서 무언가 고쳐보고픈 것이 있는지요.
“인생은 단 한 번뿐인데 고치긴 뭘 고쳐요. 한 가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직업은 안으로 심지가 굳어야 해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정체조차 모르고 말아요. 카메라 앞의 나는 허상으로 촬영이 끝나면 자신에게로 돌아와야 해요.”
—아이들을 어떻게 키웠는지요.
“엄마라는 것은 참 멋있어요. 난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들에게 자유를 주었습니다. 지금 내 딸과 아들은 다 혼자 살고 있습니다. 우린 서로 아주 가깝습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런 건 내 비서가 합니다.”
“성형수술하는 대신 웃으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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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와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
“그것을 이뤘다고 해서 달라진 것은 없어요. 난 거의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산책하고 신문을 사서 읽고 보디가드도 없어요. 거리의 사람들이 다 나의 보디가드들이지요.”
—명성 중에 가장 즐길 만한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아랍 사람이어서 날 공주라고 부르는 것이에요.”
—성형수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싫어하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나의 어머니는 내게 ‘넌 늘 하하하 하고 웃기 때문에 주름살을 찾아보기가 힘들다’고 했지요. 웃으면 돼요. 성형수술을 하고 난 뒤 거울을 보면 자신을 알아볼 수가 없을 것 아닙니까.”
—B B라 불린 브리짓 바르도에 맞서 C C라 불리며 그로부터 가장 섹시한 여배우의 왕관을 빼앗았는데 둘의 관계는 어땠는지요.
“파파라치들이 우리를 놓고 금발 대 갈색 머리의 대결이라고 자꾸 부추겼지만 우린 아주 좋은 관계였습니다.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였지요.”
—어떻게 힘을 유지해 왔습니까.
“말했듯이 난 어렸을 때부터 늘 남자 아이들과 싸웠어요. 절대로 여자완 싸우질 않았지요. 여자가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난 어렸을 때부터 농구와 배구 등 각종 스포츠를 즐겼습니다. 난 남자아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할리우드에서의 재미있는 경험은 무엇인지요.
“난 늘 보디가드 없이 혼자 걸어다녔는데 경찰들은 날 보면 늘 세운 뒤 ‘왜 보디가드가 없느냐’고 묻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내 대답은 ‘난 보디가드를 원치 않는다’는 것이었지요.”
—당신에게 있어 가장 아름다운 남자는 누구인지요.
“난 많은 아름다운 남자와 일을 해서 고르기가 쉽지는 않지만 록 허드슨이라고 해야겠네요. 그는 나의 좋은 친구였습니다. 당시엔 동성애자의 경우 일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가 함께 있을 땐 마치 연인인 것처럼 행동했어요. 동성애는 배우에겐 독약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서로가 주고받는 대화요 통신입니다.”
—지금 어디서 사나요.
“파리입니다. 31년째 살고 있어요. 딸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치려고 이주했지요. 그뒤로 딸은 공부하려고 런던으로 갔고 난 파리를 안 떠났습니다.”
—딸이 혹시 당신의 직업을 이어받을 생각은 안 하던가요.
“그런 제의가 있었지만 싫답니다. 굉장히 예뻐요. 한번은 LA에서 딸에게 잔 다르크 역이 주어졌는데 거절했습니다.”
—요즘 남자친구가 있습니까.
“내게 남자란 단 하나 내 딸의 아버지뿐입니다.”
“미인대회 참가했다가 우연히 배우가 돼”
—어떻게 해서 배우가 됐습니까.
“우연이에요. 튀니지에서 미인대회가 있었는데 그때 행사 관계자 한 사람이 거기에 있던 나를 무조건 잡아끌어 무대에 내보냈어요. 그러곤 당선 부상으로 베니스영화제에 보냈지요. 거기서 비키니를 입었는데 파파라치들이 사진을 찍는다고 난리법석을 떨더군요. 그때 비키니를 처음 입어봤습니다. 이어 영화감독과 제작자들이 영화 출연을 제의했지만 난 ‘노’라고 했어요. 집에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영화를 거절한 여자’라는 제목의 나에 관한 기사를 읽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 후 영화 관계자들이 내 아버지에게 전보를 수없이 보내 날 배우로 내보내라고 독촉을 했지요. 그래서 견디다 못해 갑자기 로마의 촬영실험센터에 등록을 하게 된 것입니다. 난 고약한 성질이 있어 주위 사람들이 다 날 싫어했어요.”
—그때 영화인들이 당신의 섹시한 음성을 싫어했다는 말이 사실인지요.
“이탈리아 말을 못 하는데다가 음성까지 남자 것 같아서 싫어했습니다. 내 얼굴을 안 보고 목소리만 들으면 날 남자로 착각했지요.”
—〈에피 그레이〉의 각본을 읽었을 때 소감은 어땠는지요.
“엠마 톰슨은 정말로 흥미 있는 글을 썼어요. 정말 기가 막힌 경험이었습니다.”
—존 웨인과 나온 〈서커스 월드〉는 어땠습니까.
“그는 나의 아버지로, 그리고 리타 헤이워드가 나의 어머니로 나왔지요. 헤이워드는 당시 내게 꿈과도 같은 여인이었습니다. 우린 영화를 마드리드에서 찍었는데 그때 그곳에 비틀스가 공연을 와 구경을 갔지요.”
—누구의 옷을 입나요. 또 장신구들을 좋아합니까.
“늘 아르마니입니다. 장신구들도 좋아합니다.”
—집은 무엇으로 가꾸나요.
“골동품입니다. 난 신비한 분위기를 지닌 집을 좋아합니다. 내 집은 센강 근처에 있습니다.”
—가장 애착을 느끼는 영화는 무엇입니까.
“가장 중요한 영화는 비스콘티의 〈표범〉과 펠리니의 〈8 1/2〉입니다. 그리고 〈가방을 든 여인〉과 〈부베의 여인〉이죠. 장-폴 벨몽도와 나온 〈타락한 길〉도 좋아합니다.”
—튀니지 대 이탈리아팀이 축구경기를 하면 어느 쪽을 응원하겠습니까.
“이탈리아지요.”
—할리우드에서의 경험 중 기억나는 것은 무엇입니까.
“〈서커스 월드〉를 찍을 때 리타 헤이워드가 내 대기실을 찾아와 날 보더니 울기 시작하더라고요. 난 영문을 몰랐지요. 이어 그는 ‘나도 한때 아름다웠지’라고 말을 했어요. 그는 그때도 아름다웠는데 과거의 자기가 더 아름다웠다고 여기는 것 같았습니다.”
—왜 아르마니를 좋아하는지요.
“내 피부는 매우 예민한데다가 합성섬유에 알레르기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