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화제

현실 속 ‘장그래’를 만나다

‘장그래’들의 진짜 미생 이야기

글 : 백윤호  월간조선 인턴기자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入段은 하늘이 도와야 할 수 있는 영역
⊙ 고졸 출신은 옛말, 대학교 진학도 필수 된 지 오래
⊙ 바둑으로 배운 경험이 회사생활에도 도움 돼

취재지도 : 金泰完 月刊朝鮮 기자
  드라마 ‘미생(未生)’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같은 이름의 바둑 웹툰이 원작이다. 직장인들의 애환을 담고 있다. 매회 공감하는 시청자들이 많아지면서 시청률은 고공행진 중이다.
 
  신입사원 ‘장그래’는 ‘미생’(바둑에서 집이나 대마 등이 살아 있지 않은 상태 혹은 그 돌을 이르는 말이다. 완전히 죽은 돌을 뜻하는 사석과는 달리 미생은 완생할 여지를 남기고 있는 돌을 의미한다는 차이가 있다)이다. 그는 ‘바둑영재’라는 찬사를 들으며 바둑을 시작해 연구생이 됐다. 하지만 입단(入段)에는 실패했다. 바둑을 업(業)으로 삼겠다는 연구생으로서 ‘사석(死石)’을 뒀다. 결국 바둑을 접고 후원자의 낙하산으로 ‘원 인터내셔널’에 인턴으로 취직한다. 그는 소위 취업준비생의 9대 스펙(학벌·학점·영어점수·어학연수·자격증·공모전 입상·인턴 경력·봉사활동·성형수술)은 고사하고 고졸 학력과 컴퓨터활용 자격증만 겨우 갖췄다. 그런데도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계약직 사원으로 입사했다. 그가 ‘완생(完生)’으로 향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묘한 쾌감을 준다. 드라마 속의 미생은 현실에서는 어떨까. 입단하지 못한 바둑연구생들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 사회에 있을까? 사회 속에 있는 ‘장그래’들을 만나 봤다.
 
 
  “결국 바둑과 관련된 일을 하게 됐어요”
 
인터뷰 전 사전 질문지를 보고 있는 김지은씨.
  “작가님이 잘하라고 하시더라고요.”
 
  김지은(金志恩·32)씨는 윤태호 작가가 조언을 구했던 ‘장그래’다. 지금도 따로 연락을 하며 지내고 있다.
 
  “작가님께 인터뷰한다고 하니까 자기도 해야 되냐던데요? 그래서 저만 불렀다고 했죠.”
 
  그는 현재 ‘사이버오로’에서 일하고 있다. 사이버오로는 인터넷 바둑을 서비스하고 프로들이 하는 대국을 생중계해 주는 웹사이트다. 김씨는 ‘미생’을 주제로 한 인터뷰가 신기하다고 한다.
 
  “바둑 관련 인터뷰는 해 봤어요. 아마 대회에서 몇 번 우승하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이런 주제는 처음이에요.”
 
  김씨는 11살에 바둑을 시작했다. 보통 연구생들이 8살에 시작한다는 것에 비하면 늦은 나이다.
 
  “늦게 시작했어도 빨리 늘었어요. 연구생 생활은 17살부터 했죠. 4년 정도 했어요.”
 
  연구생은 재능 있는 청소년들을 뽑아 전문적인 입단 교육을 시키는 제도다. 하지만 입단의 벽은 높다. 김씨가 연구생일 때 여자연구생 50명 중 2명만 입단할 수 있었다. 결국 4년간의 노력은 아쉬움이 됐다.
 
  “막막했어요. 바둑 공부만 하니 학업은 제대로 하지 못했죠. 막상 바둑을 그만두니까 다른 방향으로 선회하기 어렵더라고요.”
 
  대부분의 연구생 출신들은 바둑학원 등에서 바둑을 가르친다. 학업에 대한 부담도 없고 꾸준히 해 왔던 바둑이기에 별도의 다른 노력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수이긴 하지만 일반회사로 가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장그래’와는 달리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아무래도 대학은 가야 도전할 수 있는 분야가 넓잖아요. 저는 명지대학교 바둑학과로 진학했어요. 바둑학과는 실기 위주로 뽑기 때문에 프로나 연구생들이 진학하기에 편하더라고요.”
 
  김씨는 운좋게도 졸업 전에 취업을 했다. 평소 가고 싶었던 바둑 관련 회사였다. 신입이던 시절을 떠올리면 장그래에게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았다. 그의 말이다.
 
  “좌충우돌하는 모습에서 많이 공감했어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회사 매뉴얼과 맞지 않았다든가, 일에 익숙지 않아서 야근을 했는데 잘돼서 성취감을 느꼈던 것들에 더 공감하겠더라고요.”
 
  연구생 출신이라는 타이틀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김씨가 주변 동료들에게 연구생 시절 얘길 하면 신기하게 본다.
 
  “특이한 사람이잖아요. 바둑학과도 한국에서 몇 안 되는 특수학과고. 그래서 주위 사람들에게 연구생 얘길 하면 ‘그런 사람이 내 주위에도 있구나’며 신기해해요.”
 
  어느 덧 6년차가 된 김씨. 그는 바둑 덕분에 사내 유명인사가 됐다. 전국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게 발단이다.
 
  “부장님이 회사 전체 메일로 제 금메달 소식을 알렸어요. 덕분에 대표님부터 전 사원이 저를 ‘금메달리스트’라고 불렀죠.”
 
  김씨에게 완생에 대해 묻자 잠시 고민했다. 인터뷰 내내 활발하게 대답하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완생의 개념을 잘 모르겠어요. 단어의 개념은 알겠는데. 만화에서 오 차장이라든지 김 대리도 완생이라고 볼 수 있나요?”
 
  —보기 힘들죠.
 
  “전 완생은 너무 어려운 거라고 봐요. 바둑에서는 완벽히 두 문을 냈을 때 그렇다고 하는데 완생이라는 거는 문이 없으면 죽잖아요. 죽기 전까지는 문이 날지 안 날지 모르잖아요. 그래서 완생이라는 것은 아직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완생이 되면 멈춰 버릴것 같은 느낌”
 
김수영씨는 질문을 받으면 노트에 적었다.
  김수영(26)씨는 입사한 지 1년을 갓 넘긴 ‘장그래’다. 현재 포스코에서 행정지원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인터뷰가 처음인지 묻자 김씨는 한 번 숨을 쉬고 대답했다.
 
  “아니요. 인터뷰는 해 봤어요. 개인시합 우승하고 나서 바둑TV하고요.”
 
  김씨는 직장인 바둑대회에 회사 대표로 출전해 우승을 차지했을 만큼 상당한 실력을 지녔다. 김씨는 6살 때부터 바둑 공부를 시작했다.
 
  “6살 때 유치원 대신에 학원을 갔어요. 여러 군데 다녔는데 그중에 바둑을 가장 좋아했어요.”
 
  13살에는 바둑도장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바둑을 업으로 삼기 위해서였다. 이후 14살 때부터 6년간 연구생 생활을 했다.
 
  하지만 입단의 벽은 높았다. 어떤 때는 2명 뽑는 시험에서 안타깝게 3등을 한 적도 있었다. 계속되는 입단 실패에 김씨는 지쳤다. 결국 진로를 바꿨다.
 
  “대학교를 갔어요. 학교가 적성에 맞더라고요. 학교생활도 좋았고요. 바둑 공부를 하다 보니 학창시절이 없었어요. 그래서 대외활동도 많이 하고 동아리 회장도 했고요.”
 
  하지만 김씨는 바둑에 대한 미련을 쉽사리 버릴 수 없었다. 결국 다시 한번 바둑을 공부했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흐르다 보니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바둑을 두면서 일을 할 수 있는 곳을 골랐다. 그래서 직장인 바둑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포스코에 입사했다. 우여곡절이 많아서였을까? ‘장그래’를 보면 와 닿는 부분이 많다고 한다.
 
  “바둑만 두다가 세상에 던져진 것에 대해서는 정말 많이 공감했어요. 장그래가 철저히 혼자라고 하잖아요. 그런 부분이 정말 와 닿았어요. 저도 비슷했거든요.”
 
  다양한 사람이 있는 회사에 와 보니 장그래의 기분을 십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장그래가 나 혼자 두는 바둑이 아니라고 하잖아요. 바둑은 내 생각대로 할 수 있는 거지만 회사 업무는 절차라는 게 있어요. 내 생각을 팀장님께 보고를 드리고 다른 부서랑 협업을 해야 되고 하니까 비슷한 걸 느꼈어요.”
 
  신입사원 시절에는 어느 정도까지 보고하고 어느 선까지는 스스로 처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감을 잡기 힘들었다.
 
  “시시콜콜 보고드리는 게 내가 처리를 못해서 하는 건지 아니면 아셔야 해서 보고하는 건지 판단하는 게 어려웠죠.”
 
  바둑을 하면서 늘어난 끈기와 집중력은 회사생활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특히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볼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었다.
 
  “바둑을 두다 보니까 상대방이 뭘 생각하고 있는지 파악해야 했어요. 이게 업무에서도 도움이 됐죠. ‘저 사람은 뭘 생각해서 이 의견을 말하는 걸까?’ ‘원하는 게 뭐지?’ 이렇게 생각하게 됐죠.”
 
  회사 생활이 무척 재밌다고 하는 김씨. 이제 바둑과는 다른 새로운 재미를 찾았다고 한다.
 
  “그전까지는 바둑밖에 몰랐어요. 세상을 바라볼 이유를 못 느꼈죠. 하지만 회사생활을 하다 보니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관심을 가져야 하고 내가 맡은 업무에서 직원들이 어떻게 느끼는지 생각해야 해요.”
 
  그의 회사생활 목표는 어느 정도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바둑을 두던 사람이 일도 잘한다는 공식을 만들고 싶은 것이다. 본인을 미생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물론이죠”라고 자신있게 대답한다. 하지만 완생이 되고 싶진 않다고 말한다.
 
  “바둑에서 완생은 좋은 거지만 삶에서 완생은 좋은 건지 잘 모르겠어요. 미생이니까 완생이 되기 위해 공부하고 그런 건데 완생이 되면 멈춰 버린 느낌일 것 같아요.”
 
 
  “바둑이 업무파악에 도움”
 
바둑 연구생에서 계리사로 진로를 바꾼 김민수씨.
  김민수(金玟洙·29)씨는 2년차 사원이다. ‘장그래’와 비슷한 연차로 신입사원의 티를 벗어나고 있는 중이다. 현재 삼성생명에서 보험계리사로 상품개발을 하고 있다. 김씨는 7살부터 바둑 공부를 했다. 연구생 생활은 12살에 시작했다. 바둑에 집중하기 위해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로 진학하지 않았다. 그러던 그에게 슬럼프가 찾아왔다.
 
  “17살 때였어요. 바둑 실력이 늘지 않는 거예요. 그즈음에 프로기사를 목표로 해야 할지 다른 길을 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슬럼프가 와 버린 거죠. 그래서 결심했어요. 다른 걸 해 보기로.”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고려대학교 화공생명공학과에 입학했다. 바둑의 논리적인 면이 공학적인 것과 맞지 않겠냐는 고민에서 선택한 과였다. 그러다가 계리사란 직업을 알게 된 후 금융공학을 연계 전공했다. 완전히 진로를 바꾼 것이다.
 
  “진로를 새로운 분야로 바꾸다 보니 미생의 첫 장면에서 굉장히 공감했어요. 바둑을 포기하고 사회로 나오는 부분. 전혀 다른 분야로 가는 그 슬픔, 어려움을 저도 겪어 봤거든요.”
 
  연구생 출신이란 것을 회사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신기해한다”고 말한다.
 
  “바둑에 대해 조금 아시는 분은 200수 이상 뒀던 걸 어떻게 복기하냐면서 천재 아니냐고 물어봐요. 그렇진 않은데 말이죠. 저희는 늘 하던 것이거든요.”
 
  오히려 같은 연구생 출신인 장그래가 회사 일을 해 내는 것을 보고 “대단하다”고 치켜세운다.
 
  “신입사원들은 처음에 실수도 많이 하잖아요. 저도 그랬어요. 인턴이나 신입이나 초보예요. 그런데 장그래는 회사생활도 잘하는 것 같아요. 인턴이나 사원 때나 큰 프로젝트를 같이 하잖아요. 현실에서는 그러기 쉽지 않거든요.”
 
  —장그래가 사회생활에서 고수라는 건가요.
 
  “장그래는 고수죠. 제가 생각했을 때 바둑은 단일한 룰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그 룰만 파악하면 돼요. 그런데 사회생활은 많은 사람이 다양한 기준을 가지고 일을 해 훨씬 복잡하죠. 그래서 사회생활이 어려운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보면 장그래는 빨리 일을 파악하는 것 같아요.”
 
  바둑이 업무에 도움이 되냐고 묻자 그는 “업무파악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집중력과 끈기가 업무 배울 때 도움이 됐어요. 남들보다 한두 수 먼저 형세를 파악한다는 평가도 받아요. 아무래도 바둑을 만 판 넘게 두다 보니 감각이 생긴 것 같아요.”
 
  김씨는 바둑인에서 공대인, 공대인에서 금융인으로 안착했다. 그의 인생이 좋은 결정으로 바뀐 것이다. 어려운 선택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었던 노하우에 대해 물었다. 그는 “노하우라고 하기에는 너무 거창하다”며 손사래를 쳤다.
 
  “어려운 선택이 필요할 때는 후회를 기준으로 판단했어요. 선택했을 때 후회가 남을 것 같다면 더 가 봐야 하는 거고 남지 않을 것 같다면 선택했죠. 일단 착수를 했기 때문에 그 전 일에 대해 미련이나 아쉬움을 갖지 않았고요.”
 
  그는 결국 완생과 사석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던 미생이었다. 김씨에게 완생과 사석에 대한 의미를 물었다.
 
  “사석이 인생을 포기하는 상태라면 완생은 정말 모든 게 완벽한 이상향이라고 생각해요. 그 완생을 향해 저는 달려가고 있는 거고요. 단기적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자기개발을 해 나가면서 한 단계 도약하다 보면 더 멀리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완생의 의미는 비전”
 
입단하지는 못했지만 바둑에 대한 열정은 남아 있다. 직장인 바둑대회 출전 당시 박경규씨.
  4년차 사원인 박경규(朴炅奎·31)씨에게도 바둑은 다 이루지 못한 꿈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뜻을 품고 바둑계에 들어갔으나 연구생의 문턱에서 꿈을 접었다. 어린 나이에는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던 바둑이었다. 하지만 중학교 졸업할 즈음이 되자 고민이 시작됐다. 입단을 하기에는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실력이 느는 것도 한계가 보였다. 그때 도장에 있던 다른 연구생이 눈에 들어왔다.
 
  “같은 도장에 다니던 고등학교 3학년 형이 있었어요. 그 형이 계속 입단도 못하고 아마에서 잘 두는 것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 있었거든요. 그 형을 보면서 저도 저렇게 되겠다 싶어 결심했죠.”
 
  이후 숭실대학교로 진학해 ROTC생활을 했다. 9사단 정보장교로 복무를 했는데 이때 바둑이 업무에 도움이 됐다고 한다.
 
  “제가 복무할 때 군단 음어대회를 했어요. 음어라는 게 결국 암호를 풀어서 해석하는 거잖아요. 이게 바둑과 비슷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때의 경험이 저에게 도움이 됐죠. 우승도 하고 휴가도 받았어요.”
 
  장교 전역 후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신입사원 시절 얘기를 묻자 “정신이 없었다”고 말한다.
 
  “신입사원이라면 겪는 일인 것 같아요. 제대하자마자 엔지니어로서의 머리를 써야 되니 정신이 없었죠. 소프트웨어를 배우는데 ARM이란 수업이 있어요. 강사분이 ‘머리에 암이 생긴다’ 할 정도로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박씨는 그 시절 선배들에게 질문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던 것 같다고 말한다.
 
  “제가 모르기 때문에 원하는 답을 찾기 위해서는 선배들한테 질문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질문해야 하는지 가장 고민했어요. 왜냐면 선배들은 바쁜 시간 쪼개서 제 질문을 들어 주는 건데 아무거나 물어보면 시간낭비만 되잖아요. 그래서 질문의 포인트를 잡고 공부를 한 다음 물어봤죠.”
 
  그는 이 습관이 자신이 생각하는 ‘신입사원의 예의’라고 강조한다. 때론 쉬운 길을 돌아갈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 습관 덕분에 회사업무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됐다.
 
  미생을 보면 공감되는 부분이 크다고 한다. 특히 대사 한 구절이 크게 와 닿았다.
 
  “극 중에 ‘뭔가 이루고 싶다면 다른 것보다도 체력이 바탕이 돼야 된다’란 대사가 있어요. 제 나름의 꿈과 비전을 가지고 노력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건 회사일 가운데서 해야 하니까요. 정말 와 닿더라고요. 그래서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죠. 열심히.”
 
  효도하기 위해 노력하는 ‘장그래’의 모습도 꼭 ‘나’ 같았다고 한다. 그의 말이다.
 
  “부모님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하는 효도가 시간이 지나서 하는 효도와는 즐거운 게 다르잖아요. 제가 취업했을 때 부모님이 이곳저곳에 자랑하시는 걸 보면서 뿌듯함을 느꼈어요. 장그래가 ‘어머니의 자랑’이듯 저도 ‘부모님의 자랑’인 거죠.”
 
  바둑인에서 직장인이 됐지만 그는 여전히 바둑을 놓지는 않고 있다.
 
  “직장인 바둑대회에 나가고 있어요. 같은 도장 출신이었던 김민수, 차진혁 사원이 삼성에 있더라고요. 이들과 같이 팀을 꾸렸어요. 삼성에서는 맨처음 바둑대회를 나간 거예요. 작년에는 4위 했죠.”
 
  박씨는 지금도 완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에게 완생의 의미를 묻자 그는 “비전”이라고 말한다.
 
  “제 비전이 ‘귀한 사람과 귀한 경험을 공유하자’는 거예요. 귀한 사람이 되려면 저도 업무를 잘 알고 상태가 좋아야 한다고 보거든요. 그래야 제 곁에 좋은 사람이 모이니까요. 그래서 그들을 모아 같이 일해 보고 싶어요.”
 
  그는 이를 위해 멘토 역할을 자처한다. 얼마 전에는 입단하지 못한 연구생들을 데리고 멘토링을 직접 해 줬다. 20대의 갓 완생을 달려가는 미생들에게 박씨는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요즘에는 소녀시대 멤버 이름은 알아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잘 모르잖아요. 그러니 면접도 어렵고 자기소개서 쓰는 것도 벅차죠. 혼자 생각을 하는 시간을 늘려서 자기 자신에 대해 객관적으로 봐야 해요. 그래야 무슨 결정을 하든 후회하지 않을 수 있어요.”
 

  [인터뷰] 미생 원작자 윤태호
 
  “저도 장그래였던 시절이 있었죠”
 
   여러가지 스케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그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장그래’란 캐릭터의 실제 모델이 있나요.
 
  “특정 회사나 모델을 정해 놓고 그리지 않았어요. 대체적으로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 부분만 따와서 그린 거예요. 황인성씨도 만나 보면 적극적이고 스마트해요. 제가 생각하고 있는 여리고 섬세한 감성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과는 다르죠. 그저 제가 생각하는 캐릭터의 이미지에 조금씩 필요한 정보를 추가시킨 거예요.”
 
  —취재하면서 기억에 남는 분이 있나요.
 
  “‘장그래’가 만화에서 보면 물건을 들고 팔아 보라는 미션을 받아요. 그때 한국기원에 갔었어요. 그런데 연구생 출신이라는 분이 ‘우리는 입단하지 못한 기억이 처절해서 그 근처에도 가지 않는데 너무 비현실적인 거 아니냐. 프로가 못된 사람을 너무 피상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댓글을 달았었어요.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간 거라고 쓰고 싶었지만 잘 묘사하지 못했던 것 같아서 너무 죄송했죠.”
 
  —작가가 장그래였던 시절은 어땠나요.
 
  “미대에 실패했을 때 그 심정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계속 그림만 그리고 살아왔었으니까 미대에 실패하면 진로가 끝났다고 생각했었죠. 다행히도 그림을 창작하는 만화를 하게 됐으니까 제 길로 온 거라고 생각해요. 그때 당시에는 어떻게 해서든 작가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서 20대가 힘들었죠. 그 시절엔 어떻게든 작가가 돼야겠다는 생각에 이기적이었던 것 같아요.”
 
  —어떤 부분이 이기적이었나요.
 
  “문하생 시절에 빨리 진급하고 싶고 작가가 빨리 되고 싶어서 선배들하고 굉장히 불화를 일으켰어요. 제 욕심을 챙기는 것도 많았어요. 화실에도 일종의 계급이 있는 데 저는 빨리 올라서고 싶으니까 화실 질서를 엉망으로 만들면서까지 올라갔어요. 뒤처리를 하다가 배경 가는데 1년이 걸리는데 저는 선생님한테 어필해서 3개월 만에 올라갔었죠. 저 때문에 화실 질서가 흐트려졌었죠. 이기적이었어요. 지금은 굉장히 후회하고 있죠. 지나고 보면 너무나 부끄러워요.”
 
  —작가가 생각하는 완생의 의미는 뭘까요.
 
  “꿈같아요. 잡을 수 없고 이룰 수도 없고 그러나 누구나 자기가 하고 싶은 꿈이 있는 것처럼. 그게 완생이라고 생각해요.”
 
  —시즌2에서 장그래는 어떤 모습으로 나올까요.
 
  “후배도 받고 신입 티도 벗을 것 같아요. 누군가의 선배가 돼서 자기 입장도 있을 거잖아요. 항상 부족한 사람으로 있는 게 아니지요. 거기서는 정사원이 되는데 달라진 책임감으로 어떻게 일을 할 것인가에 대한 얘기가 있을 거고요. 그리고 지금까지는 계약직으로서 자기를 증명해야 하는 압박감이 있었다면 그때는 일상적으로 잘해야 되니까요. 그럴 때 어떻게 자기를 환기시켜 가며 일을 잘할 수 있을지가 주된 이야기가 될 것 같아요.”⊙
조회 : 19411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201912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프리미엄결제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도서출간 배너
  • 월간조선 2018년 4월호 부록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