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신의 이름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 급증하는 改名신청자
⊙ 외국인들이 발음하기 쉬운 이름을 짓는 사례도 있다
⊙ 예전에는 순한글 이름이 대세. 하지만 최근에는 다시 한자 이름이 부상하고 있는 추세
⊙ 사회적 흐름에 따라 이름도 변화하는 영미권 국가들
⊙ 가게 이름과 영업이익. 결국은 사업주의 사주가 관건
취재지도 : 崔秉默 月刊朝鮮 편집장
⊙ 외국인들이 발음하기 쉬운 이름을 짓는 사례도 있다
⊙ 예전에는 순한글 이름이 대세. 하지만 최근에는 다시 한자 이름이 부상하고 있는 추세
⊙ 사회적 흐름에 따라 이름도 변화하는 영미권 국가들
⊙ 가게 이름과 영업이익. 결국은 사업주의 사주가 관건
취재지도 : 崔秉默 月刊朝鮮 편집장
- 성북구 미아리 일대에 밀집해 있는 작명과 점을 봐주는 운명철학관들.
‘오징어’ ‘아이팟’ ‘고구마’ ‘선풍기’ ‘수국화’…. 사물 이름이 아니다. 작년부터 인터넷에서 떠돌고 있는 2012년 법정개명 신청 이름들이다. 목록 중에는 ‘방구년’ ‘아병신’ ‘박개새’ 등 욕설을 연상하게 하는 이름부터 ‘초초초’ ‘박혁혁’ ‘최왈왈’ 등 동어를 반복하는 이름도 있다. ‘라울’ ‘곽엑스’ ‘정율라’ 등 한글인지 외국어인지 구분하기 힘든 이름도 더러 발견된다. 게다가 ‘이명박’ ‘오바마’ 등 특정 인물과 동일한 이름을 가진 사람도 개명신청을 했다고 나와 있다. 그러나 이 자료들은 출처가 불분명해서 실제로 개명을 신청한 이름들인지 단정지을 수는 없다.
《월간조선》은 자료의 출처를 확인하기 위해 대법원에 검토를 의뢰했다. 대법원 홍보심의관 이현복 판사는 “보내준 자료를 비롯해 현재 인터넷 사이트에서 공유되고 있는 개명허가 이름 목록은 대법원에서 공개한 자료가 아니다. 개인이 판례를 직접 찾아서 목록을 만들 수는 있겠지만 대법원 측에서는 공식적으로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개인정보보호법에 위반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改名은 누가, 왜 신청하는가?
하지만 개명신청자 수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공식적인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대법원의 《사법연감》 통계에 따르면 2000년에 접수된 개명신청자 수는 4만6743명이었다. 신청자 수가 꾸준히 증가하여 작년에는 15만8960명을 기록했다. 올 상반기에만 8만5318명이니 올해 또 기록을 갈아치울 모양이다. 2000년부터 작년까지 12년 동안 개명신청한 사람의 수는 115만1885명으로 2013년 한국 총인구 수를 기준으로 했을 때 국민 50명 중 한 명이 개명신청을 한 셈이다.
개명신청 허가율도 높아졌다. 2000년에는 3만5507명이 개명을 허가받아 75%의 허가율을 보였는데, 작년에는 15만3162명이 허가받아 96%에 가까운 허가율을 보였다.
어떤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개명을 신청하는지 확인하고자 대법원에 자료를 요청했으나 법적인 이유를 들어 자료 공개를 거절했다. 대법원 공보실의 한 사무관은 “개명을 신청한 사람들의 이름과 개명 사유는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이현복 판사의 설명과 같은 이유였다.
실제로 1995년 1월부터 개인정보보호법이 적용된 이후로 공식적인 자료로는 개명신청자들의 이름과 그 사유를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보호법이 발효되기 전인 1994년에 법원행정처에서 비공식적으로 발간한 《개명 및 호적정정 사례집》에는 신청 사유가 나와 있다. 그중에는 ‘한글이름을 한자 이름으로 바꾸고 싶어서’란 사유가 92.3%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현재의 이름에 선대나 후대의 항렬자가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89.1%, ‘출생신고서에 이름을 잘못 기재한 경우’가 86.1%였다.
대법원의 종합법률정보 사이트에 실려 있는 판례를 살펴보면 개명을 왜 신청하는지, 그리고 허가의 기준은 무엇인지 추측할 수 있다.
판례 중 개명신청이 허가된 사례를 몇 가지 살펴보면 ‘이름 중에 사용한 글자가 통상 사용하는 한자가 아니어서 잘못 읽히는 경우’, ‘컴퓨터 등을 이용한 문서작성에 있어 어려움이 있고 성별을 착각하게 하는 경우’, ‘개명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효과와 편의 등이 큰 경우’ 등이었다. 그리고 ‘성전환자의 호적정정 및 개명신청을 허용할 근거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이를 불허한 원심 결정을 파기한다(대법원 2006.6.22. 자 2004스42)’는 항고심의 판례로 미루어 보아 성(性)전환자의 개명신청 사례가 있고 그에 대한 허가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개명허가에 있어 개인의 사회적 권리와 편의를 중요하게 고려한다는 점을 알 수 있는 판례들이다.
반대로 ‘개명허가 결정을 받은 전례가 있는 경우’, ‘신청인의 부모가 당사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신청한 경우’, ‘이름에 따라 건강이 악화되거나 개선된다고 믿어 개명을 신청한 경우’ 등은 이름을 바꿀 수 없는 것으로 판시되어 있다.
이외에도 “성(姓)인 ‘박’을 한글인 ‘밝’으로의 정정을 구하는 신청”은 호적정정 사유나 개명 사유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아 허가되지 않았다. 그리고 파산선고와 면책결정을 받은 신청인은 개명을 허가할 경우 파산선고에 따른 법령상의 제한을 회피할 수 있다는 이유로 역시 개명신청이 기각되었다.
이런 판례들을 종합해 보면 본인의 의사가 고려되지 않고 합리적인 이유가 없거나, 또는 통상적 의식에 일치하지 않는 경우에는 개명신청이 허가되지 않는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개명이 법적인 책임과 연관될 때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이름에서 찾는 트렌드
이름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고 있다. 시대별로 흔한 이름 목록은 대법원을 통해 자료를 구할 수 있었다.
그 자료에 따르면 1945년 남성 출생자 중에서 가장 흔한 이름은 ‘영수’였다. ‘영호’와 ‘영식’이 그 뒤를 이었다. 그러나 1975년 출생자 중 흔한 이름의 목록을 살펴보면 1위는 ‘정훈’이었다. ‘성호’와 ‘성훈’이 그 다음이었는데, 이 목록의 10위권 안에서 1945년에 유행했던 이름은 하나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리고 2005년 출생자들 중 흔한 이름은 ‘민준’, ‘현우’, ‘동현’ 순이었다. 역시 10위권의 목록은 모두 바뀌었다.
여성의 경우도 흔한 이름의 변화가 눈에 띌 정도였다. ‘영자’, ‘정자’, ‘순자’ 등은 1945년 출생자들이 흔하게 사용한 이름이었고, 1975년 출생자들은 ‘미영’, ‘은정’, ‘은주’ 등의 이름을 선호했다. 2005년 출생자들 중 흔한 여성 이름은 ‘서연’, ‘민서’, 서현’ 등이었다.
특이한 점은 1945년 여성 출생자들 중 흔하게 사용한 이름을 1위부터 10위까지 살펴봤을 때 9위의 ‘정순’을 제외하면 모두가 ‘자’ 자로 끝난다는 사실이다. ‘~코’로 끝나는 일본의 영향을 받은 탓이다.
서경대 국어국문학과의 이복규 교수는 “이름은 한국인의 관념을 담고 있다. 따라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한국인들의 관념도 변화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름도 그에 맞춰 바뀌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예전에는 항렬자를 따서 이름을 짓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가문의 전통이 지닌 의미가 희석되고 있고 개성을 드러내려는 사회적 분위기가 강화됨에 따라 최근에는 항렬자를 따서 짓는 경우는 드물다”며 “항렬자에 맞춘 이름이 흔하거나 촌스럽다면 현대인들은 그런 이름을 사용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고 발음하기 쉬운 이름으로 짓는다” 고 말했다.
정우역학작명원의 양정우 작명가는 순한글 이름을 문의하는 고객이 한때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젊은 부모들 중에서 한글 이름을 문의하러 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며 “한글 이름의 경우 대부분 부모들이 직접 지어서 가져오곤 한다. 하지만 성명학에서는 한글 이름이든 한자 이름이든, 심지어 영어 이름이라도 한자에 기반해 좋은 이름을 구분한다. 파자(破字)나 자의(字意) 등의 방법을 이용해서 이름을 분석하는데 순한글 이름의 경우 음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뜻이 좋은 한자를 지정해 주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에는 사람들의 활동 지역이 제한적이었고 성명을 기재하는 문서도 많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이름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남들과 이름이 비슷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며 “하지만 현대 사회에선 학적부, 주민등록부 등 이름을 기재하는 문서가 많고 인터넷의 활성화로 활동 범위도 굉장히 넓어져 이름을 사용할 일이 많아졌다. 또한 취직할 때 인사과에도 이름을 등록하기 때문에 이름은 생업과도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이름을 많이 쓴다는 사실 때문에 작명할 때 자신의 개성이나 발음 등을 상당히 고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알 유 냄궁민수?”
지난달 초에 개봉한 이후 굉장한 흥행몰이 중인 영화 <설국열차>에서 송강호가 분한 캐릭터의 극중 이름은 ‘남궁민수’이다. 영화 초반에 주인공인 커티스가 “알 유 냄궁민수?”라며 그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자 송강호가 “그래 맞다. 근데 냄이 아니라 남이야, 남. 남궁민수. 남궁이 성이고 민수가 이름이다. 이 무식한 놈아”라며 핀잔을 주는 장면이 나온다.
봉준호 감독은 “외국인이 발음하기 힘든 이름을 써서 궁금증을 유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남궁민수의 딸로 나오는 ‘요나’에 대해서는 “성경에서 차용했는데 외국인도 발음하기 쉬워서”라고 말했다.
영어 이름이나 외국인이 발음하기 쉬운 한글 이름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국내 음악가들 중에는 해외에서 연주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 중에는 외국인들에게 쉽게 각인되기 위해 그들이 발음하기 쉬운 이름을 예명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는 본명이 ‘조수경’이다. 그녀가 이름을 바꾼 이유는 ‘경’의 발음이 외국인에게 생소하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도 해외에서는 ‘사라 장’이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발음하기도 쉬울뿐더러 영주란 이름을 영어로 발음하면 젊은 유대인(Young Jew)이라는 뜻으로 들릴 수도 있어 오해를 살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국내 언론에서도 사라 장이란 이름으로 통일하여 표기하고 있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국내 가수들 중에서도 발음상의 문제로 예명을 사용하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수 박정현은 일본에서 활동할 때 일본인들이 발음하기 쉬운 ‘리나 파크(Lena Park)’란 영어 이름을 사용했다. 아시아 각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그룹 가수인 동방신기의 멤버 최강창민과 영웅재중은 해외에서 각각 ‘맥스’와 ‘히어로’란 이름으로 활동 중이다.
‘신현수’에서 ‘신지아’로
작곡가들도 마찬가지다. ‘이단옆차기’, ‘용감한 형제’, ‘똘아이 박’ 등 히트곡 제조기로 알려진 유명한 작곡가들의 영어 이름은 각각 ‘더블킥(Double Kick)’, ‘브레이버 브로(Braver Bro)’, ‘크레이지 팍(Crazy Park)’이다. 해외에서 홍보활동을 할 때는 이런 영어 이름을 사용한다. 낯선 한글 이름에 비해 영어 이름이 오히려 더 친숙하게 들릴 정도다.
국내파 바이올리니스트 신현수는 올해 초부터 ‘신지아’로 이름을 바꾸고 활동하고 있다. 그녀는 작년 말까지 신현수라는 이름으로 세계의 콩쿠르를 휩쓸며 ‘케이-클래식’의 선두주자로서 왕성한 활동을 펼쳐 왔다. 사단법인 한국음악협회의 주최로 10월 1일에 열리는 ‘2013 제31회 대한민국국제음악제’의 참가 준비로 바쁜 그녀에게 이름을 바꾼 이유를 물어보았다. 그녀는 “클래식 연주가라는 고루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좀 더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왜 ‘지아’라는 이름을 선택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현수라는 예전 이름은 너무 흔하기도 하고 외국인이 발음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아라는 이름은 한자로 풀이하면 지혜롭고 아름답다는 좋은 뜻을 가지고 있어요. 외국인들이 발음하기도 쉽고요. 최근에 일본에서 활동을 시작했는데 일본 분들도 지아라는 이름이 더 발음하기 쉽다고 합니다. 이름이 바뀌었다고 제 음악 활동이 바뀌는 것도 아니니 이름에 큰 의미를 두진 않아요. 하지만 이름을 발음하기 쉬우면 대중에게 쉽게 각인될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개명을 결정했습니다.”
그녀는 “지도교수님을 비롯해 몇몇 분들은 지금까지 신현수란 이름으로 많은 커리어를 쌓아 왔는데 왜 굳이 이름을 바꾸려 하냐며 부정적으로 보기도 했다”며 “그래서 고민도 많이 했지만 사정을 말씀드리고 심사숙고한 끝에 개명을 결정했다. 지금은 대부분 이해하고 긍정적으로 봐 주시는 편”이라고 했다. 뒤이어 “아직까지 이름 때문에 더 유명해졌다는 생각이 들진 않지만 SNS에서 바뀐 이름을 좋게 봐 주시고 격려해 주시는 분들이 많다. 그래서 바뀐 이름에 걸맞게 스스로 더 노력하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영어이름에 대한 거부감 적어
한국사회언어학회가 2004년에 발간한 <한국인의 영어 이름 사용실태와 작명 방식 변화에 대한 영어의 영향> 보고서를 살펴보면 영어 이름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보고서는 S대학 재학생 131명과 S전자의 20대 후반에서 30대 사이의 사원 100명, 총 23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에 따르면 당시 젊은 층의 사람들은 영어 이름에 대해 거부감이 크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과반수의 젊은 사람들(20대 94명 중 64명, 30대 128명 중 70명)은 이미 영어 이름을 한글 이름과 함께 사용했다.
‘자녀에게 이름을 지어 줄 때 외국인이 발음하기 쉬운 이름으로 지어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란 질문에 대해서는 여성의 경우 찬성 17%, 반대 22%로 나타났고 남성은 4.5%가 찬성, 34%가 반대 의사를 나타냈다.
이로 미루어 남성은 외국인을 고려하여 이름을 짓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강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자녀의 양육자가 실질적으로 여성인 점을 감안할 때, 여성의 온건한 태도가 자녀의 언어생활에 더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앞서 인용한 보고서만 해도 벌써 9년 전의 것이다. 그리고 예술가나 연예인들도 해외 활동을 위해 영어 이름 또는 영어 발음과 비슷한 한글 이름을 예명으로 사용하거나, 혹은 그런 이름들을 본명과 병용(倂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이름을 그렇게 바꾼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요즘 작명계에선 ‘복고’가 대세
그렇다면 지금도 순한글 이름이나 영어 이름, 혹은 외국인이 발음하기 쉬운 이름이 인기가 있을까. 우선 앞서 언급한 《개명 및 호적정정 사례집》을 살펴보면 ‘한자 이름을 한글 이름으로 바꾸고자 하는 경우’는 허가율이 76.1%인 데 비해 ‘한글 이름을 한자 이름으로 바꾸고자 하는 경우’는 92.3%였다. 한글 이름이 대세라 하더라도 한자 이름에 비해 개명신청 허가를 받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대아 작명원의 박태현 작명가는 “한때 순한글 이름들이 유행했지만 지금은 다시 한자 이름이 부상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그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유행하는 이름이 변화해 온 것은 사실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글로벌화에 따라 영어 이름이 유행했고 개성이 중시되는 경향에 의해 발음이 예쁜 순한글 이름이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들도 이제는 한자 이름으로 개명하길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원인을 묻자 그는 “‘아름’, ‘한빛’, ‘초롱’ 같은 순한글 이름은 듣기엔 좋을지 몰라도 나이가 들면 부담스럽게 들릴 수 있다. 그리고 중화권에서는 한자의 영향력이 퇴색되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와 일본에선 아직도 한자를 장려하는 편이다. 한자가 품고 있는 뜻이 심오하고 사주팔자와 연관이 깊으니 종국에는 한자 이름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답했다.
옥수산장 작명원의 강태구 작명가도 비슷한 말을 했다. 그는 “순한글 이름이나 영어 발음과 비슷한 이름은 구시대적 발상에서 나온 이름이고 지금은 한자 이름을 원하는 고객들이 많다”고 했다. 다만 그는 외국인이 발음하기 쉽고 순한글 이름처럼 발음이 예쁜 한자 이름을 권장한다고 말했다.
漢字 이름을 찾는 사람들
미소 한국작명원의 장기령 작명가 역시 “순한글 이름이 대세인 시대는 지났다”고 말했다. 그는 “순한글 이름이든 영어 이름이든 상관 없이 과거에 비해 개성을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특이한 이름을 문의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름은 일단 성명학적으로 좋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자를 기반으로 이름을 지어야 하고, 발음이나 특이성은 부차적인 사안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많은 작명가들이 흔한 순한글 이름으로 ‘이슬’을 예로 들었는데, 보통 부모들이 ‘맑다, 깨끗하다’는 의미를 염두에 두고 자녀의 이름으로 지어 준다고 했다. 하지만 이슬은 세상에 존재하는 시간이 짧아 이름으로 쓰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한편 ‘취업할 때 대부분의 이력서가 한자 이름을 요구하고 있어서’라는 이유로 한자 이름을 찾는 경우도 간혹 있다고 한다.
문성철학원의 김성헌 작명가는 “이름을 짓거나 바꿀 때 사주팔자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작명가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사실이다”며 “동양의 고전인 주역에서부터 성명학은 동양 문화권의 주류로 자리매김했다. 한마디로 역사와 전통이 아주 오래된 학문의 한 갈래이다. 성명학의 원리나 이론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성명학의 원리는 결국 이름의 한자에서 결정된다. 작명소를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운명을 바꾸어 보려고 오는 이상 이름의 한자가 중요시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글 이름을 가진 사람들도 한자 이름을 갖길 원한다”고 했다.
사회적 트렌드를 반영하는 외국 이름들
외국의 경우는 어떨까. 미국의 경우에도 한국처럼 작명에 유행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름의 뜻과 운명을 중요시하는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미디어 콘텐츠나 사회적인 유행이 작명에 영향을 주는 경향이 있다.
전세계 14개국에 지부를 두고 3400만명의 부모가 이용하고 있는 미국의 웹사이트 베이비센터는 2012년에 출생한 45만명의 아기 이름을 토대로 트렌드를 분석했다.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부모들은 자녀의 이름을 지을 때 이름이 지닌 뜻을 중시하지 않고 팝 문화나 유명인, 운동선수, 그리고 정치인들에 의해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2012년은 영국의 팝가수가 인기를 끈 해였는데 그 영향은 이름에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원 다이렉션(One Direction)’이란 영국 밴드는 그 선두주자로서 다섯 명의 멤버 중 네 명의 이름이 2012년 신생아 이름의 목록에 등장했다. 그중 한 멤버인 리엄(Liam)의 이름은 작년에 이어 가장 많은 신생아 이름 4위를 차지했다.
스마트폰이 전세계적인 인기를 얻자 아이폰 제조업체인 애플사를 본떠 아기의 이름을 ‘애플(Apple)’로 짓는 사례도 발견되고 있다. 애플이란 이름을 지닌 여아의 수는 2004년 이후로 2012년까지 꾸준히 목록에 등장하고 있다. 그 수는 2011년에 비해 작년에 15% 증가했다. 그리고 맥킨토시 컴퓨터를 딴 ‘맥(Mac)’이란 이름을 지닌 남아의 수는 12% 증가했으며, 아이폰의 음성인식 시스템인 ‘시리(Siry)’를 이름으로 차용한 여아의 수도 5% 증가했다. 미 항공우주국의 임무와 연관 있는 ‘스카이(Sky)’, ‘스타(Star)’, ‘스카일라(Skylar)’ 등의 이름도 최근 들어 증가하는 추세이다.
실제로 미 정부기관인 SSO(Social Security Online)가 사회보장번호(출생과 함께 공식적으로 부여되는 개인 신원번호)에 나타난 이름을 전수조사한 자료를 확인해 봤다. 스카일라란 이름을 지닌 여아는 2008년에 1743명, 동명의 남아는 528명을 기록해 미국 내 흔한 아기 이름의 목록에서 192위를 차지했다. 그 이후로 계속 인기를 얻어 2012년에는 총 3329명으로 증가해 전체 목록에서 87위를 차지했다.
또한 ‘아야(Arya)’란 이름은 2012년 기준으로 작년 대비 증가율에서 1위를 차지했는데, 이는 유명한 TV드라마인 <왕좌의 게임>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의 이름이라고 한다.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2012년 4월 25일자 기사를 통해 1996년 이후로 신생아 이름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변화를 분석했다. 영국 통계청의 자료를 토대로 작성한 이 기사는 우선 ‘I’로 시작하는 신생아 이름이 1996년 이후로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 조던(Jordan)은 1996년에 5750명의 남아와 372명의 여아가 이름으로 사용했지만, 2010년에는 268명의 남아와 5명의 여아만이 사용, 빈도가 가장 급격히 줄어든 이름이 되었다.
그리고 특이한 이름을 가진 팝스타들 또한 작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메이시(Macy), 마일리(Miley), 올리(Olly), 그리고 켄지(Kenzie)는 전체 기간 동안 가장 빨리 상승한 이름의 목록에서 상위 10위 안에 속해 있는데, 모두가 팝스타의 이름이다. 세계적인 팝가수 리애나(Rihanna)는 그 정점에 위치하고 있는데 1996년에는 아무도 그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2012년에는 전체 이름 중 522위를 차지했다.
정치인 이름 인기 없어
유명인의 명성과 업적에 따라 그 사람의 이름을 사용하는 신생아의 수가 변화하는 경향도 나타났다. 세계 자동차 경주대회인 F1의 카레이서 젠슨(Jenson)이 영국에서 최연소 드라이버로 데뷔한 2000년에 그의 이름은 신생아 이름의 순위권에 등장했다. 그리고 그가 처음으로 F1 그랑프리에서 입상한 2004년에는 이름 역시 급격한 상승세를 나타냈다. 그 후 5년 동안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하자 그의 이름도 하향곡선을 그렸다. 하지만 세계 드라이버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2009년에 이르자 그의 이름을 사용하는 신생아의 수가 반등했다.
반면 오사마(Osama) 또는 우사마(Usama)란 이름은 테러리스트 오사마 빈 라덴이 미국에 테러를 감행한 2001년을 기점으로 급격히 줄어드는 추세를 보였다. 2005년에는 급기야 오사마란 이름을 사용하는 신생아가 한 명도 없었다.
정치인의 이름도 신생아 이름 목록에서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현 영국 총리인 캐머런(Cameron)의 이름은 최근 들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블레어(Blair) 전 총리의 이름도 그의 재임기간인 1997년부터 2007년 사이에 저조한 수치를 기록했다.
호주에서도 배우나 가수를 비롯한 유명인들의 이름이 다른 어떤 요소보다 신생아 이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호주의 리서치 전문 회사인 맥크린들이 신생아의 이름 트렌드를 분석한 <2013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호주의 테니스 선수 레이튼 휴이트와 영화배우 벡 휴이트 부부의 딸인 아바(Ava)는 2010년에 흔한 신생아 이름에서 10위를 차지했다. 하퍼(Harper)란 이름은 2011년에 35위였는데 이는 축구스타 데이비드 베컴 부부의 딸 이름이다.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소설 《트와일라잇 사가》의 등장인물인 벨라(Bella), 이사벨라(Isabella), 제이컵(Jacob)의 이름도 신생아 이름 순위에서 뚜렷한 성장세를 나타냈다.
가게 이름이 좋으면 장사도 잘될까?
이름은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작명가들은 가게나 회사의 이름을 지을 때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삼성그룹의 창업주 고(故) 이병철(李秉喆) 회장이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자리에 항상 관상가를 데려갔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그가 인재를 등용할 때 역술의 힘을 빌렸다는 사실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작명가 양정우씨는 “관상이나 풍수지리, 이름 모두 사주역학의 갈래이다. 이병철 회장이 그만큼 관상을 중시했는데 기업의 이름을 지을 때는 오죽했겠나”라고 말했다.
상호명을 지을 때도 사람 이름을 지을 때처럼 여러 가지 규칙이 있다. 차이가 있다면 상호명은 무엇보다도 재물운에 초점을 맞추고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상호명을 의뢰하는 사업주들은 매출이익을 가장 염두에 두기 마련이다. 아무리 좋게 들리는 상호명일지라도 재물운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작명가들은 다른 이름을 택하라고 한다. 구체적으로는 사업의 종류와 사업주의 사주 등을 참고한다고 한다.
《성공하는 이름 흥하는 상호》란 제목의 책을 지은 예지연씨는 “상호는 가게의 영업이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한글 이름을 부를 때 나는 소리의 파장이 그 이름을 지닌 주체의 운명을 결정한다. 이는 비단 사람뿐만 아니라 상호에도 적용된다. “자산사업이 아니라면 우리가 사업을 하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다. 그런데 상호가 재물을 극(克)하고 있으면 아무리 많은 돈을 투자하여 성실히 운영해도 그 사업은 망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다.
그녀는 “상호를 정하기 전에 먼저 의뢰한 사람의 사업운을 본 후에 결정을 내린다. 상호 자체의 소리가 좋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아무리 좋은 상호라도 사업주와 맞아야 의미를 지니게 된다”며 “특이성도 고려해야 한다. 특이해서 기억하기 쉬운 상호는 성공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음양오행으로 분석했을 때도 좋은 의미를 지녀야 한다. 천지의 조화도 모두 제격에 맞지 않으면 혼란과 파괴를 불러오듯이 상호 또한 제격에 맞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녀는 구로동에 위치한 병원의 이름을 ‘미소로 병원’으로 지어 줬다고 했다. 병원장의 재물운이 상승되는 쪽으로 이름을 지었는데, 꼭 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개업한 지 2년 만에 입원실을 250실로 늘리며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자신이 이름을 지어 준 가게가 상당히 많지만 말해 주기는 힘들다고 했다. 사업주가 작명소를 통해 상호명을 지었다는 사실을 공개하기 꺼린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들은 상호명을 의뢰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자신의 실력 덕분에 사업이 잘되었다고 믿으려 한다는 것이다.
“소리보다 의미가 우선시되어야”
김성헌 작명가는 울산의 ‘이기동 성형외과’와 경북 경주의 ‘신내철 산부인과’ 병원 이름을 자신이 지어 줬다고 말했다. 그는 “사업주의 이름이 가게의 이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사업주의 이름이 좋으면 그것을 따서 가게 이름을 지어도 역시 큰 매출을 올릴 수 있다”고 했다.
정수역학연구소의 정수 작명가에게 유명한 기업의 이름이 성명학적으로 좋은 이름이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잘나가는 기업들의 이름을 성명학적으로 분석해 보면 좋은 기(氣)가 느껴진다. 일례로 삼성(ㅅ-ㅁ-ㅅ-ㅇ, 金-水-金-土로 상생), 구글(ㄱ-ㄱ-ㄹ, 木-木-火로 상생), 인텔(ㅇ-ㄴ-ㅌ-ㄹ, 土-火-火-火로 상생) 등 상생의 구조를 가진 상호나 브랜드가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경우가 많다. 예외적으로 유통업의 경우 신세계(ㅅ-ㄴ-ㅅ-ㄱ, 金-火-金-木으로 상극)처럼 소리의 상극이 되는 상호가 잘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는 “상호와 영업이익이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는 근거를 들기는 힘들다”고 덧붙였다. 성명학적으로 좋은 이름을 지어 주는 것은 가능하지만 사업의 성패가 이름에 기인하는 것인지 확신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한편 백운학 작명소의 백운학 작명가는 상호명이 부르기 쉽거나 특이하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하는 건 아니라고 한다. 이름이 아무리 좋아도 사업주의 사주팔자와 맞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는 것이다. 그는 “상호명은 쉽고 특이해야 한다는 선입견 때문에 소리에 맞춰 짓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라며 “소리보다 이름이 지닌 한자의 의미가 우선시되어야 한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사업의 흥망성쇠도 사업주의 사주팔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월간조선》은 자료의 출처를 확인하기 위해 대법원에 검토를 의뢰했다. 대법원 홍보심의관 이현복 판사는 “보내준 자료를 비롯해 현재 인터넷 사이트에서 공유되고 있는 개명허가 이름 목록은 대법원에서 공개한 자료가 아니다. 개인이 판례를 직접 찾아서 목록을 만들 수는 있겠지만 대법원 측에서는 공식적으로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개인정보보호법에 위반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改名은 누가, 왜 신청하는가?
하지만 개명신청자 수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공식적인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대법원의 《사법연감》 통계에 따르면 2000년에 접수된 개명신청자 수는 4만6743명이었다. 신청자 수가 꾸준히 증가하여 작년에는 15만8960명을 기록했다. 올 상반기에만 8만5318명이니 올해 또 기록을 갈아치울 모양이다. 2000년부터 작년까지 12년 동안 개명신청한 사람의 수는 115만1885명으로 2013년 한국 총인구 수를 기준으로 했을 때 국민 50명 중 한 명이 개명신청을 한 셈이다.
개명신청 허가율도 높아졌다. 2000년에는 3만5507명이 개명을 허가받아 75%의 허가율을 보였는데, 작년에는 15만3162명이 허가받아 96%에 가까운 허가율을 보였다.
어떤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개명을 신청하는지 확인하고자 대법원에 자료를 요청했으나 법적인 이유를 들어 자료 공개를 거절했다. 대법원 공보실의 한 사무관은 “개명을 신청한 사람들의 이름과 개명 사유는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이현복 판사의 설명과 같은 이유였다.
실제로 1995년 1월부터 개인정보보호법이 적용된 이후로 공식적인 자료로는 개명신청자들의 이름과 그 사유를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보호법이 발효되기 전인 1994년에 법원행정처에서 비공식적으로 발간한 《개명 및 호적정정 사례집》에는 신청 사유가 나와 있다. 그중에는 ‘한글이름을 한자 이름으로 바꾸고 싶어서’란 사유가 92.3%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현재의 이름에 선대나 후대의 항렬자가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89.1%, ‘출생신고서에 이름을 잘못 기재한 경우’가 86.1%였다.
대법원의 종합법률정보 사이트에 실려 있는 판례를 살펴보면 개명을 왜 신청하는지, 그리고 허가의 기준은 무엇인지 추측할 수 있다.
판례 중 개명신청이 허가된 사례를 몇 가지 살펴보면 ‘이름 중에 사용한 글자가 통상 사용하는 한자가 아니어서 잘못 읽히는 경우’, ‘컴퓨터 등을 이용한 문서작성에 있어 어려움이 있고 성별을 착각하게 하는 경우’, ‘개명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효과와 편의 등이 큰 경우’ 등이었다. 그리고 ‘성전환자의 호적정정 및 개명신청을 허용할 근거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이를 불허한 원심 결정을 파기한다(대법원 2006.6.22. 자 2004스42)’는 항고심의 판례로 미루어 보아 성(性)전환자의 개명신청 사례가 있고 그에 대한 허가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개명허가에 있어 개인의 사회적 권리와 편의를 중요하게 고려한다는 점을 알 수 있는 판례들이다.
반대로 ‘개명허가 결정을 받은 전례가 있는 경우’, ‘신청인의 부모가 당사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신청한 경우’, ‘이름에 따라 건강이 악화되거나 개선된다고 믿어 개명을 신청한 경우’ 등은 이름을 바꿀 수 없는 것으로 판시되어 있다.
이외에도 “성(姓)인 ‘박’을 한글인 ‘밝’으로의 정정을 구하는 신청”은 호적정정 사유나 개명 사유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아 허가되지 않았다. 그리고 파산선고와 면책결정을 받은 신청인은 개명을 허가할 경우 파산선고에 따른 법령상의 제한을 회피할 수 있다는 이유로 역시 개명신청이 기각되었다.
이런 판례들을 종합해 보면 본인의 의사가 고려되지 않고 합리적인 이유가 없거나, 또는 통상적 의식에 일치하지 않는 경우에는 개명신청이 허가되지 않는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개명이 법적인 책임과 연관될 때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이름에서 찾는 트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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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경대 국어국문학과 이복규 교수. |
그 자료에 따르면 1945년 남성 출생자 중에서 가장 흔한 이름은 ‘영수’였다. ‘영호’와 ‘영식’이 그 뒤를 이었다. 그러나 1975년 출생자 중 흔한 이름의 목록을 살펴보면 1위는 ‘정훈’이었다. ‘성호’와 ‘성훈’이 그 다음이었는데, 이 목록의 10위권 안에서 1945년에 유행했던 이름은 하나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리고 2005년 출생자들 중 흔한 이름은 ‘민준’, ‘현우’, ‘동현’ 순이었다. 역시 10위권의 목록은 모두 바뀌었다.
여성의 경우도 흔한 이름의 변화가 눈에 띌 정도였다. ‘영자’, ‘정자’, ‘순자’ 등은 1945년 출생자들이 흔하게 사용한 이름이었고, 1975년 출생자들은 ‘미영’, ‘은정’, ‘은주’ 등의 이름을 선호했다. 2005년 출생자들 중 흔한 여성 이름은 ‘서연’, ‘민서’, 서현’ 등이었다.
특이한 점은 1945년 여성 출생자들 중 흔하게 사용한 이름을 1위부터 10위까지 살펴봤을 때 9위의 ‘정순’을 제외하면 모두가 ‘자’ 자로 끝난다는 사실이다. ‘~코’로 끝나는 일본의 영향을 받은 탓이다.
서경대 국어국문학과의 이복규 교수는 “이름은 한국인의 관념을 담고 있다. 따라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한국인들의 관념도 변화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름도 그에 맞춰 바뀌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예전에는 항렬자를 따서 이름을 짓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가문의 전통이 지닌 의미가 희석되고 있고 개성을 드러내려는 사회적 분위기가 강화됨에 따라 최근에는 항렬자를 따서 짓는 경우는 드물다”며 “항렬자에 맞춘 이름이 흔하거나 촌스럽다면 현대인들은 그런 이름을 사용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고 발음하기 쉬운 이름으로 짓는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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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우역학작명원의 양정우 작명가. |
그는 “과거에는 사람들의 활동 지역이 제한적이었고 성명을 기재하는 문서도 많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이름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 남들과 이름이 비슷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며 “하지만 현대 사회에선 학적부, 주민등록부 등 이름을 기재하는 문서가 많고 인터넷의 활성화로 활동 범위도 굉장히 넓어져 이름을 사용할 일이 많아졌다. 또한 취직할 때 인사과에도 이름을 등록하기 때문에 이름은 생업과도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이름을 많이 쓴다는 사실 때문에 작명할 때 자신의 개성이나 발음 등을 상당히 고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알 유 냄궁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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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국열차의 송강호가 분한 남궁민수 캐릭터. 주인공과의 첫 만남부터 이름을 제대로 발음 못해 갈등을 일으킨다. |
봉준호 감독은 “외국인이 발음하기 힘든 이름을 써서 궁금증을 유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남궁민수의 딸로 나오는 ‘요나’에 대해서는 “성경에서 차용했는데 외국인도 발음하기 쉬워서”라고 말했다.
영어 이름이나 외국인이 발음하기 쉬운 한글 이름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국내 음악가들 중에는 해외에서 연주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 중에는 외국인들에게 쉽게 각인되기 위해 그들이 발음하기 쉬운 이름을 예명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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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6월 4일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이 예술의전당 개관 20주년 공연을 앞두고 리허설하고 있다. |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도 해외에서는 ‘사라 장’이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발음하기도 쉬울뿐더러 영주란 이름을 영어로 발음하면 젊은 유대인(Young Jew)이라는 뜻으로 들릴 수도 있어 오해를 살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국내 언론에서도 사라 장이란 이름으로 통일하여 표기하고 있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국내 가수들 중에서도 발음상의 문제로 예명을 사용하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수 박정현은 일본에서 활동할 때 일본인들이 발음하기 쉬운 ‘리나 파크(Lena Park)’란 영어 이름을 사용했다. 아시아 각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그룹 가수인 동방신기의 멤버 최강창민과 영웅재중은 해외에서 각각 ‘맥스’와 ‘히어로’란 이름으로 활동 중이다.
‘신현수’에서 ‘신지아’로
작곡가들도 마찬가지다. ‘이단옆차기’, ‘용감한 형제’, ‘똘아이 박’ 등 히트곡 제조기로 알려진 유명한 작곡가들의 영어 이름은 각각 ‘더블킥(Double Kick)’, ‘브레이버 브로(Braver Bro)’, ‘크레이지 팍(Crazy Park)’이다. 해외에서 홍보활동을 할 때는 이런 영어 이름을 사용한다. 낯선 한글 이름에 비해 영어 이름이 오히려 더 친숙하게 들릴 정도다.
국내파 바이올리니스트 신현수는 올해 초부터 ‘신지아’로 이름을 바꾸고 활동하고 있다. 그녀는 작년 말까지 신현수라는 이름으로 세계의 콩쿠르를 휩쓸며 ‘케이-클래식’의 선두주자로서 왕성한 활동을 펼쳐 왔다. 사단법인 한국음악협회의 주최로 10월 1일에 열리는 ‘2013 제31회 대한민국국제음악제’의 참가 준비로 바쁜 그녀에게 이름을 바꾼 이유를 물어보았다. 그녀는 “클래식 연주가라는 고루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좀 더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왜 ‘지아’라는 이름을 선택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현수라는 예전 이름은 너무 흔하기도 하고 외국인이 발음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아라는 이름은 한자로 풀이하면 지혜롭고 아름답다는 좋은 뜻을 가지고 있어요. 외국인들이 발음하기도 쉽고요. 최근에 일본에서 활동을 시작했는데 일본 분들도 지아라는 이름이 더 발음하기 쉽다고 합니다. 이름이 바뀌었다고 제 음악 활동이 바뀌는 것도 아니니 이름에 큰 의미를 두진 않아요. 하지만 이름을 발음하기 쉬우면 대중에게 쉽게 각인될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개명을 결정했습니다.”
그녀는 “지도교수님을 비롯해 몇몇 분들은 지금까지 신현수란 이름으로 많은 커리어를 쌓아 왔는데 왜 굳이 이름을 바꾸려 하냐며 부정적으로 보기도 했다”며 “그래서 고민도 많이 했지만 사정을 말씀드리고 심사숙고한 끝에 개명을 결정했다. 지금은 대부분 이해하고 긍정적으로 봐 주시는 편”이라고 했다. 뒤이어 “아직까지 이름 때문에 더 유명해졌다는 생각이 들진 않지만 SNS에서 바뀐 이름을 좋게 봐 주시고 격려해 주시는 분들이 많다. 그래서 바뀐 이름에 걸맞게 스스로 더 노력하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영어이름에 대한 거부감 적어
한국사회언어학회가 2004년에 발간한 <한국인의 영어 이름 사용실태와 작명 방식 변화에 대한 영어의 영향> 보고서를 살펴보면 영어 이름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보고서는 S대학 재학생 131명과 S전자의 20대 후반에서 30대 사이의 사원 100명, 총 23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에 따르면 당시 젊은 층의 사람들은 영어 이름에 대해 거부감이 크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과반수의 젊은 사람들(20대 94명 중 64명, 30대 128명 중 70명)은 이미 영어 이름을 한글 이름과 함께 사용했다.
‘자녀에게 이름을 지어 줄 때 외국인이 발음하기 쉬운 이름으로 지어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란 질문에 대해서는 여성의 경우 찬성 17%, 반대 22%로 나타났고 남성은 4.5%가 찬성, 34%가 반대 의사를 나타냈다.
이로 미루어 남성은 외국인을 고려하여 이름을 짓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강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자녀의 양육자가 실질적으로 여성인 점을 감안할 때, 여성의 온건한 태도가 자녀의 언어생활에 더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앞서 인용한 보고서만 해도 벌써 9년 전의 것이다. 그리고 예술가나 연예인들도 해외 활동을 위해 영어 이름 또는 영어 발음과 비슷한 한글 이름을 예명으로 사용하거나, 혹은 그런 이름들을 본명과 병용(倂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이름을 그렇게 바꾼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요즘 작명계에선 ‘복고’가 대세
그렇다면 지금도 순한글 이름이나 영어 이름, 혹은 외국인이 발음하기 쉬운 이름이 인기가 있을까. 우선 앞서 언급한 《개명 및 호적정정 사례집》을 살펴보면 ‘한자 이름을 한글 이름으로 바꾸고자 하는 경우’는 허가율이 76.1%인 데 비해 ‘한글 이름을 한자 이름으로 바꾸고자 하는 경우’는 92.3%였다. 한글 이름이 대세라 하더라도 한자 이름에 비해 개명신청 허가를 받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대아 작명원의 박태현 작명가는 “한때 순한글 이름들이 유행했지만 지금은 다시 한자 이름이 부상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그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유행하는 이름이 변화해 온 것은 사실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글로벌화에 따라 영어 이름이 유행했고 개성이 중시되는 경향에 의해 발음이 예쁜 순한글 이름이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들도 이제는 한자 이름으로 개명하길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원인을 묻자 그는 “‘아름’, ‘한빛’, ‘초롱’ 같은 순한글 이름은 듣기엔 좋을지 몰라도 나이가 들면 부담스럽게 들릴 수 있다. 그리고 중화권에서는 한자의 영향력이 퇴색되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와 일본에선 아직도 한자를 장려하는 편이다. 한자가 품고 있는 뜻이 심오하고 사주팔자와 연관이 깊으니 종국에는 한자 이름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답했다.
옥수산장 작명원의 강태구 작명가도 비슷한 말을 했다. 그는 “순한글 이름이나 영어 발음과 비슷한 이름은 구시대적 발상에서 나온 이름이고 지금은 한자 이름을 원하는 고객들이 많다”고 했다. 다만 그는 외국인이 발음하기 쉽고 순한글 이름처럼 발음이 예쁜 한자 이름을 권장한다고 말했다.
漢字 이름을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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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컴이 찍은 ‘잠든 나의 두 여인’. 잉글랜드 축구 스타인 데이비드 베컴(LA갤럭시)이 최근 얻은 막내딸 ‘하퍼세븐 베컴’과 부인의 사진을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 공개했다. 베컴의 딸 이름 ‘하퍼’는 2011년 영국에서 신생아 이름 35위에 올랐다. |
많은 작명가들이 흔한 순한글 이름으로 ‘이슬’을 예로 들었는데, 보통 부모들이 ‘맑다, 깨끗하다’는 의미를 염두에 두고 자녀의 이름으로 지어 준다고 했다. 하지만 이슬은 세상에 존재하는 시간이 짧아 이름으로 쓰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한편 ‘취업할 때 대부분의 이력서가 한자 이름을 요구하고 있어서’라는 이유로 한자 이름을 찾는 경우도 간혹 있다고 한다.
문성철학원의 김성헌 작명가는 “이름을 짓거나 바꿀 때 사주팔자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작명가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사실이다”며 “동양의 고전인 주역에서부터 성명학은 동양 문화권의 주류로 자리매김했다. 한마디로 역사와 전통이 아주 오래된 학문의 한 갈래이다. 성명학의 원리나 이론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성명학의 원리는 결국 이름의 한자에서 결정된다. 작명소를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운명을 바꾸어 보려고 오는 이상 이름의 한자가 중요시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글 이름을 가진 사람들도 한자 이름을 갖길 원한다”고 했다.
사회적 트렌드를 반영하는 외국 이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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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비드 캐머런 현 영국 총리. 그와 똑같은 이름을 가진 신생아의 수는 그가 취임한 이후 계속 줄어들고 있다. |
전세계 14개국에 지부를 두고 3400만명의 부모가 이용하고 있는 미국의 웹사이트 베이비센터는 2012년에 출생한 45만명의 아기 이름을 토대로 트렌드를 분석했다.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부모들은 자녀의 이름을 지을 때 이름이 지닌 뜻을 중시하지 않고 팝 문화나 유명인, 운동선수, 그리고 정치인들에 의해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2012년은 영국의 팝가수가 인기를 끈 해였는데 그 영향은 이름에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원 다이렉션(One Direction)’이란 영국 밴드는 그 선두주자로서 다섯 명의 멤버 중 네 명의 이름이 2012년 신생아 이름의 목록에 등장했다. 그중 한 멤버인 리엄(Liam)의 이름은 작년에 이어 가장 많은 신생아 이름 4위를 차지했다.
스마트폰이 전세계적인 인기를 얻자 아이폰 제조업체인 애플사를 본떠 아기의 이름을 ‘애플(Apple)’로 짓는 사례도 발견되고 있다. 애플이란 이름을 지닌 여아의 수는 2004년 이후로 2012년까지 꾸준히 목록에 등장하고 있다. 그 수는 2011년에 비해 작년에 15% 증가했다. 그리고 맥킨토시 컴퓨터를 딴 ‘맥(Mac)’이란 이름을 지닌 남아의 수는 12% 증가했으며, 아이폰의 음성인식 시스템인 ‘시리(Siry)’를 이름으로 차용한 여아의 수도 5% 증가했다. 미 항공우주국의 임무와 연관 있는 ‘스카이(Sky)’, ‘스타(Star)’, ‘스카일라(Skylar)’ 등의 이름도 최근 들어 증가하는 추세이다.
실제로 미 정부기관인 SSO(Social Security Online)가 사회보장번호(출생과 함께 공식적으로 부여되는 개인 신원번호)에 나타난 이름을 전수조사한 자료를 확인해 봤다. 스카일라란 이름을 지닌 여아는 2008년에 1743명, 동명의 남아는 528명을 기록해 미국 내 흔한 아기 이름의 목록에서 192위를 차지했다. 그 이후로 계속 인기를 얻어 2012년에는 총 3329명으로 증가해 전체 목록에서 87위를 차지했다.
또한 ‘아야(Arya)’란 이름은 2012년 기준으로 작년 대비 증가율에서 1위를 차지했는데, 이는 유명한 TV드라마인 <왕좌의 게임>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의 이름이라고 한다.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2012년 4월 25일자 기사를 통해 1996년 이후로 신생아 이름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변화를 분석했다. 영국 통계청의 자료를 토대로 작성한 이 기사는 우선 ‘I’로 시작하는 신생아 이름이 1996년 이후로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반면 조던(Jordan)은 1996년에 5750명의 남아와 372명의 여아가 이름으로 사용했지만, 2010년에는 268명의 남아와 5명의 여아만이 사용, 빈도가 가장 급격히 줄어든 이름이 되었다.
그리고 특이한 이름을 가진 팝스타들 또한 작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메이시(Macy), 마일리(Miley), 올리(Olly), 그리고 켄지(Kenzie)는 전체 기간 동안 가장 빨리 상승한 이름의 목록에서 상위 10위 안에 속해 있는데, 모두가 팝스타의 이름이다. 세계적인 팝가수 리애나(Rihanna)는 그 정점에 위치하고 있는데 1996년에는 아무도 그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2012년에는 전체 이름 중 522위를 차지했다.
정치인 이름 인기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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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1 입문 10년 만에 시즌 챔피언에 오른 젠슨. 그가 우승하자 젠슨이란 이름을 쓰는 신생아가 급격히 늘었다. |
반면 오사마(Osama) 또는 우사마(Usama)란 이름은 테러리스트 오사마 빈 라덴이 미국에 테러를 감행한 2001년을 기점으로 급격히 줄어드는 추세를 보였다. 2005년에는 급기야 오사마란 이름을 사용하는 신생아가 한 명도 없었다.
정치인의 이름도 신생아 이름 목록에서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현 영국 총리인 캐머런(Cameron)의 이름은 최근 들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블레어(Blair) 전 총리의 이름도 그의 재임기간인 1997년부터 2007년 사이에 저조한 수치를 기록했다.
호주에서도 배우나 가수를 비롯한 유명인들의 이름이 다른 어떤 요소보다 신생아 이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호주의 리서치 전문 회사인 맥크린들이 신생아의 이름 트렌드를 분석한 <2013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호주의 테니스 선수 레이튼 휴이트와 영화배우 벡 휴이트 부부의 딸인 아바(Ava)는 2010년에 흔한 신생아 이름에서 10위를 차지했다. 하퍼(Harper)란 이름은 2011년에 35위였는데 이는 축구스타 데이비드 베컴 부부의 딸 이름이다.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소설 《트와일라잇 사가》의 등장인물인 벨라(Bella), 이사벨라(Isabella), 제이컵(Jacob)의 이름도 신생아 이름 순위에서 뚜렷한 성장세를 나타냈다.
가게 이름이 좋으면 장사도 잘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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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공하는 이름 흥하는 상호》란 제목의 책을 지은 예지연씨. 상호와 영업이익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
작명가 양정우씨는 “관상이나 풍수지리, 이름 모두 사주역학의 갈래이다. 이병철 회장이 그만큼 관상을 중시했는데 기업의 이름을 지을 때는 오죽했겠나”라고 말했다.
상호명을 지을 때도 사람 이름을 지을 때처럼 여러 가지 규칙이 있다. 차이가 있다면 상호명은 무엇보다도 재물운에 초점을 맞추고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상호명을 의뢰하는 사업주들은 매출이익을 가장 염두에 두기 마련이다. 아무리 좋게 들리는 상호명일지라도 재물운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작명가들은 다른 이름을 택하라고 한다. 구체적으로는 사업의 종류와 사업주의 사주 등을 참고한다고 한다.
《성공하는 이름 흥하는 상호》란 제목의 책을 지은 예지연씨는 “상호는 가게의 영업이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한글 이름을 부를 때 나는 소리의 파장이 그 이름을 지닌 주체의 운명을 결정한다. 이는 비단 사람뿐만 아니라 상호에도 적용된다. “자산사업이 아니라면 우리가 사업을 하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다. 그런데 상호가 재물을 극(克)하고 있으면 아무리 많은 돈을 투자하여 성실히 운영해도 그 사업은 망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다.
그녀는 “상호를 정하기 전에 먼저 의뢰한 사람의 사업운을 본 후에 결정을 내린다. 상호 자체의 소리가 좋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아무리 좋은 상호라도 사업주와 맞아야 의미를 지니게 된다”며 “특이성도 고려해야 한다. 특이해서 기억하기 쉬운 상호는 성공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음양오행으로 분석했을 때도 좋은 의미를 지녀야 한다. 천지의 조화도 모두 제격에 맞지 않으면 혼란과 파괴를 불러오듯이 상호 또한 제격에 맞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녀는 구로동에 위치한 병원의 이름을 ‘미소로 병원’으로 지어 줬다고 했다. 병원장의 재물운이 상승되는 쪽으로 이름을 지었는데, 꼭 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개업한 지 2년 만에 입원실을 250실로 늘리며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자신이 이름을 지어 준 가게가 상당히 많지만 말해 주기는 힘들다고 했다. 사업주가 작명소를 통해 상호명을 지었다는 사실을 공개하기 꺼린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들은 상호명을 의뢰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자신의 실력 덕분에 사업이 잘되었다고 믿으려 한다는 것이다.
“소리보다 의미가 우선시되어야”
김성헌 작명가는 울산의 ‘이기동 성형외과’와 경북 경주의 ‘신내철 산부인과’ 병원 이름을 자신이 지어 줬다고 말했다. 그는 “사업주의 이름이 가게의 이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사업주의 이름이 좋으면 그것을 따서 가게 이름을 지어도 역시 큰 매출을 올릴 수 있다”고 했다.
정수역학연구소의 정수 작명가에게 유명한 기업의 이름이 성명학적으로 좋은 이름이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잘나가는 기업들의 이름을 성명학적으로 분석해 보면 좋은 기(氣)가 느껴진다. 일례로 삼성(ㅅ-ㅁ-ㅅ-ㅇ, 金-水-金-土로 상생), 구글(ㄱ-ㄱ-ㄹ, 木-木-火로 상생), 인텔(ㅇ-ㄴ-ㅌ-ㄹ, 土-火-火-火로 상생) 등 상생의 구조를 가진 상호나 브랜드가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경우가 많다. 예외적으로 유통업의 경우 신세계(ㅅ-ㄴ-ㅅ-ㄱ, 金-火-金-木으로 상극)처럼 소리의 상극이 되는 상호가 잘되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는 “상호와 영업이익이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는 근거를 들기는 힘들다”고 덧붙였다. 성명학적으로 좋은 이름을 지어 주는 것은 가능하지만 사업의 성패가 이름에 기인하는 것인지 확신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한편 백운학 작명소의 백운학 작명가는 상호명이 부르기 쉽거나 특이하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하는 건 아니라고 한다. 이름이 아무리 좋아도 사업주의 사주팔자와 맞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라는 것이다. 그는 “상호명은 쉽고 특이해야 한다는 선입견 때문에 소리에 맞춰 짓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라며 “소리보다 이름이 지닌 한자의 의미가 우선시되어야 한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사업의 흥망성쇠도 사업주의 사주팔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