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동해/일본해 관련 모든 명칭의 배경과 그 지명학적 지위 : 월간조선

한·일 양국은 동해의 명칭 문제를 놓고 약 20여 년간 분쟁을 벌이고 있다. 독도의 경우와 달리 동해 명칭 문제에서는 일본이 ‘일본해’ 단독 표기를 고수하려는 반면 한국은 이를 깨고자 한다. 그동안 국제적으로 두 명칭을 병기하는 언론·출판사들이 늘어나기는 했으나 아직은 일본과의 합의 없이 주요 국가들의 입장을 바꾸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유엔(UN)의 지명위원회는 당사자 간 합의가 불가능할 경우 병기를 권하고 있고 또 외래명(exonym)보다 토착명(endonym)을 우선으로 하도록 결의하였으나, 국제수로기구(IHO)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지금까지 타협을 거부하고 있다. 동해/일본해에 관련된 명칭들은 어떤 것이 있으며 그 역사적 배경과 지명학적 지위(toponymic status)는 어떤지 살펴보자.

러시아 학자에 의하면 카스피 해에는 400여개의 명칭이 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동해 역시 12개의 명칭과 그에 따른 별칭 9개가 존재하며 이는 다음과 같이 네 개의 그룹으로 분류해 볼 수 있다. <표1>

1. 동 대양 I(Oriental Ocean I)

1502년 이탈리아 칸티노(Cantino)가 동남아 해역과 동해에 붙인 이 이름은 이탈리아 네덜란드 프랑스 등에서 사용되었다. 별칭으로 쓰인 ‘Ocean Eoum’ 혹은 ‘Ocean Eous’는 색다른 뉘앙스를 주고자 그리스어로 표기된 것일 뿐, 동 대양과 같은 뜻이다. 독일의 베하임(Behaim)과 프리즈(Friese) 등은 두 바다가 인도 너머에 있다고 해서 ‘Oceanus Orientalis Indicus’라고 하였다.

2. 동 대양 II(Oriental Ocean II)

동 대양 II는 동 대양 I과 같은 명칭이지만, 그 내용과 지칭 대상이 다르다. 즉, 동해만을 한정하는 명칭이다. 유명한 지도제작가 상송(Sanson)과 같은 고향으로 협력 관계에 있던 예수회 브리에(Briet) 신부는 북경에 다녀온 동료들과의 교류를 통하여 만주인들이 만주 남쪽 해역을 ‘동해’라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되어 1655년 일본 지도를 만들면서 그것을 ‘Oriental Ocean(동 대양)’이라고 번역하였다. 오늘날 영어로는 ocean이 큰 대양이고, 보다 작은 바다를 sea(프랑스어 mer)라고 하지만, 당시에는 두 용어 사이에 차이가 없었다. 1660년대에 상송은 두 권의 지도첩을 내면서 브리에의 감수를 받았는데 그 후 그와 그의 후계자들은 이 명칭을 동해에만 한정하여 적용하였다. ‘동 대양 II가 토착명의 역어(譯語)이기 때문에 토착명으로 간주할 수 있지 않느냐’는 의견이 있을 수 있으나, 그것은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위해 프랑스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한국 입장에서는 틀림없는 외래어이다. 브리에 이후 만느송-말레(Mannesson-Malet)와 타베르니에(Tavernier)도 그 명칭을 사용하였다.

3. 동해(Oriental Sea)

이탈리아의 보르도네(Bordone)는 1528년 구형 세계지도에서 한국의 바로 밑 남해안 쪽과 태평양 일부를 포함하는 해역에 ‘Mare Oriental(동해)’이라고 표기하였다.

17세기 후반에 ‘동해’가 토착명인 것이 프랑스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들릴(G. Delisle)이 처음으로 ‘동해(Mer Orientale)’라고 번역하여 사용하였다. 왕실 수석 지리학자로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었고 선교사들과도 교류가 있었던 그는 ‘동해’가 토착명인 줄 알게 되자 줄곧 그 명칭에 집착하게 되었고, 1698년 자신의 <아시아(L'Asie)>에서부터 그렇게 표기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일반의 인식이 동해를 ‘한국해(Mer de Core)’라고 하는 데로 기울어지자 그는 1705년 <인도와 중국 지도(Carte des Indes et de la Chine)>에서 ‘한국해(Mer de Core)’와 ‘동해(Mer Orientale)’는 같은 바다에 대한 명칭이라고 밝힌다. <지도 1>

<지도1> 들릴(G. Delisle)의 <인도와 중국 지도(Carte des Indes et de la Chine)>. 1705년.

들릴에게 힘이 된 것은 드페르(de Fer)이다. 평생 700여 종의 지도를 발간한 그는 대규모 지도상이었고 대단한 정보통이었다. 그는 아마도 선교사들 쪽에서 ‘동해’가 토착명임을 알게 된 듯한데, 1703년의 동아시아 지도 상단에 ‘이 바다는 유럽인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만주인들은 그 바다를 동해라고 부른다(Mer peu ou point connue des Europens. Les Tartares l'appelle (sic) Orientale.)’라는 매우 이례적인 설명을 붙였다. 여기서 ‘동해(Orientl Sea)’는 동 대양과 같은 이유에서 토착명이 될 수 없다. <지도2>

<지도2> 드페르(de Fer)의 <동아시아(Asia Orientale)>. 1703년.

별칭 ‘동해(Eoum Mare)’는 그리스어 ‘동’에 ‘바다’를 합한 것으로, 1690년대 토마(Thomas) 신부가 청(淸)나라 강희제(康熙帝)를 수행하여 만주에 가서 강희제가 만주 남쪽바다를 ‘동해’라고 하는 것을 그렇게 옮겼다. 독일의 호만(Homann)은 1707년 아시아 지도에서 동해를 ‘작은 바다’라는 의미로 ‘Mare Orientale Minus’라고 하였고, 호만의 문하생이었던 하시어스(Hassius)도 그 명칭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귀세펠드(Gssefeld)는 1786년 <러시아왕국 지도>에서 지소사(指小辭)를 이용하여 동해를 ‘작은 동해(Kleine Orientalische Meer)’라고 표기하였다.

4. 동해(Tonghae)

‘동해’라는 명칭이 삼국사기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東明聖王)에 대한 언급에서 나오고 그것이 B.C. 59년에 해당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삼국사기에는 도합 15번, 삼국유사에서는 도합 4번 동해가 언급된다고 한다. 그러니 ‘동해’ 명칭은 한민족의 역사와 함께하는 명칭이다. 동해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방향을 기초로 한 명칭이기 때문에 너무 흔하고 일반적이어서 고유명칭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일본이 동해를 희화적 노리갯감으로 묘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동서양을 막론하고 방향을 위주로 해역의 명칭을 정하는 경우가 많다. 어원적으로 동해도 한반도의 동쪽에 있는 해역을 의미한다. 그런데 지리적 명칭은 언어학적으로 두 단계를 거쳐 형성된다.

즉, 1단계인 명사론적 층위(onoma siologic level)에서는 명사의 어원적 의미가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러나 2단계인 고유명사론적 층위(onomastic level)에서는 어원적 의미는 사라지고 고유명사는 오직 지칭 대상을 대신하는 기능을 수행할 뿐이다. ‘동+해’는 ‘동해’라는 단순한 고유명칭이 되면서, 동쪽의 아메리카에서나 남쪽의 호주에서나 북쪽의 러시아에서나 서쪽의 유럽에서나 변함없이 ‘동해’로 불린다. 단, 고유명칭에 개인, 단체, 국가 등의 존재가 들어갈 때는 다른 문제가 생긴다.

‘동해’ 명칭은 일본에도 알려져 있었다. 조선 시대 일본에 대장경을 보내자 일본이 답신에서 감사의 뜻을 동해와 연관시킨 것을 보면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역사 문헌에 의하면 ‘동해’ 명칭은 오래전부터 중국에도 알려졌음이 확인되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수(隋)·당(唐) 이후에 동해의 고유명칭이 존재하였다고 알려져 있으나, 여진족이 중심이 된 청나라가 세워진 후 19세기 말경까지 동해 명칭이 쓰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우송기(吳松弟 Wu Songui), 구런허(Gu Renhe), 리우신준(Liw Xin Jun) 등의 학자는 약 2000년 전의 《후한서(後漢書)》와 《산해경(山海經)》에서 ‘동해’ 명칭이 동이족(東夷族)과 관련하여 쓰였고 청롱(Cheng Long)은 여진족(女眞族)이 존재하기 시작한 이래로 ‘동해’ 명칭의 사용에 중단이 없었다고 단언하고 있다.

따라서 한반도의 기록으로 보나 중국 쪽의 증언으로 보나 ‘동해’는 완벽한 토착명이고, 이는 일본의 학자들도 인정하고 있다.

동해의 별칭인 ‘소 동해’는 마테오리치(Matteo Ricci)의 지도를 수정·보완하기 위하여 예수회 후배 알레니(Aleni) 신부가 1623년 동아시아 지도를 만들면서 동해에 표기한 명칭이다. 알레니는 ‘동해’가 토착명인 것을 분명하게 알았다고 추정되는데 왜 지소사(指小辭) ‘소(小)’를 붙였을까.

물론 동해가 비교적 작은 바다이기 때문이라고 생각되지만, 중국 학자들의 설명에 의하면 중국인들이 관심을 가졌던 해역은 주로 동해의 북쪽으로, 그 지역은 청(淸) 함풍제(咸豊帝) 때까지 중국 영토였으나 사할린을 포함한 그 지역을 러시아에 할양하고 나자 그 부근의 해역을 수·당 이래 일부에서 ‘소해(小海)’라고 하였고 남쪽을 ‘남해’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소 동해’는 ‘소해’와 ‘동해’를 합한 명칭이라고 할 수 있다.

5. 동해(East Sea)

명사론적 층위에서 East Sea는 East와 Sea가 결합하여 한반도의 동부 해역을 지칭하는 영어 명칭이다. 명칭이 영어이고 영어가 한국의 국어나 공용어가 아니기 때문에 그것이 외래명이라고 생각하는 지명 전문가들이 많은 것 같다.

가령 외국에서 외국인이 동해를 ‘East Sea’라고 했다면 그것은 확실히 외래명일 것이다. 그러나 ‘East Sea’는 한국 정부가 외국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한국에서 만든 이름이다. 그러니 토착명의 영어 명칭일 뿐, 외래명은 아니다.

또 한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은 한국에서의 영어 위상이다. 과거에는 중학교에서부터 영어를 제1외국어로 가르쳤으나 현재는 초등학교 저학년에서부터 원어민이 가르치기도 하고 심지어 대도시에는 영어로만 교육하는 유치원도 있다. 이런 정황이 고유명칭 ‘East Sea’의 판정에 고려되어야 한다.

토착명/외래명의 기본적인 기준은, 그것이 외국인들의 편의를 위해 밖에서 만들어진 것인지 외국인들의 손쉬운 이해를 위해 안에서 만들어진 것인지를 구분하는 데 있다.

별칭 ‘동부해(Eastern Sea)’는 18세기 활발한 제작활동을 한 씨넥스(J. Senex)가 1721년 지도 <아시아(Asie)>에서 동해를 그렇게 표기하여 생긴 명칭이다. 그가 현지의 토착명을 알고 그것을 영어로 옮겼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당시 프랑스의 지도가 영국 지도에 끼친 영향으로 보아, 아마도 씨넥스가 들릴이나 드페르의 지도를 참고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씨넥스는 그 후 동해를 ‘Eastern Sea’, ‘Korea Sea’ 또는 ‘Oriental Sea’ 등으로 표기한다.

6. 한국해(Sea of Korea)

동해를 ‘한국해(Sea of Korea)’라고 처음으로 표기한 사람은 포르투갈의 고딩뉴 데 에레디아(M. Goodinho de Eredia)로, 그가 1615년 마카오에서 발간한 <동아시아 지도>에서 ‘한국해’라는 명칭을 썼다. 마카오에서 발간되어서인지 그의 지도가 포르투갈 내외에서 큰 호응을 받은 것 같지는 않다. 그 후 한국 국가명을 이용하여 동해에 표기한 사람은 네덜란드 개신교 목사 출신의 몬타누스(A. Montanus)였다. 그는 1669년 일본 관계 저서의 부록 지도에서 동해를 ‘Sea of Korea’라고 표기하였다. 그의 저서는 유럽에서 대단한 인기를 얻어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고 18세기를 ‘한국해’의 황금기로 만든 초석을 놓았다고 평가된다. 그의 뒤를 이어 샹봉(Chanbon), 벨렝(Bellin) 등도 동해 입구에 ‘한국해(Mer de Core)’를 표기한다. 그런데 몬타누스의 저서나 타베르니에의 저서 등은 모두 일본관계 저서이다. 확실한 것은 그들 저자가 한국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었을 뿐 아니라 한국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한국해’라는 표기가 가능했던 이유는 첫째, 지리적 형태 때문일 것이다. 17세기 후반부터 지도로 본 한국은 북에서 남으로 곧게 뻗은 반도 국가이고 일본은 동북에서 서남으로 비스듬히 몇 개의 섬이 누워 있는 형국이라, 두 나라의 지리적 형태만 보고서 동해 바다에 국가명을 넣는다면 합리적인 유럽인들은 한국 쪽으로 기울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지도3>

<지도3> 한국해(Mer de Coree)가 표기된 피코(Picaud)의 <역사를 위한 지도(Carte Pour L'historie Gemesale)>.1763년.

다른 한 가지 이유는 그들의 언어 습관과 관련지을 수 있다. 그들은 글씨를 쓰거나 읽을 때 동양인들과는 반대로 왼쪽에서 오른 쪽으로 나아간다. 문장의 중요한 요소들, 예컨대 동사, 목적어, 보어 등은 오른 쪽에 나오지만, 그것들의 성(性)과 수(數)는 왼쪽에 먼저 나오는 주어(主語)의 지배를 받는다. 그러니 한반도의 오른쪽에 있는 동해의 명칭은 왼쪽에 있는 한국을 따르게 된다.

그러나 ‘한국해’가 가장 좋은 이름은 아니라고 본다. 한국은 일본, 러시아, 북한과 동해를 공유하고 있고, 중국도 동해에서 가까운 나라인데, 한국의 국가명만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지나치게 이기적인 발상이기 때문이다.

별칭 ‘한국만(灣, Gulf of Korea)’은 영국의 키친(Kitchin)이 1772년 <당빌에 따른 아시아(Asie according to Sieur d'Anville)>에서 동해 명칭을 그렇게 한 데서 비롯된다. 그 후 힌턴 세이어(Hinton Sayer) 등이 그 표기를 사용하였고, 다른 지도에서도 그 표기가 나온다. 여기서 만(Gulf)은 독일어의 Minus나 Kleine 등과 같이 ‘작은 바다’라는 의미로 쓰였다고도 하겠으나, 동해에 만(Gulf)을 붙인 것은 동해안의 동흥만이나 영흥만을 고려하여 창안한 것이 아닐까.

7. 조선해(朝鮮海, Josen Kai)

동해를 ‘조선해’라고 처음 표기한 사람은 일본 막부(幕府)에서 지도제작 책임을 맡은 다카하시 가게야스(Takahashi Kageyasu)였다. 그는 막부의 요청으로 1809년에 만든 <일본 변계약도(日本邊界略圖)>에서 한반도 동해안 쪽에 ‘조선해’라고 표기하였다. 동해의 다른 부분에 다른 표기가 없었으므로, 그것은 동해 전체에 대한 표기인 셈이다. 그 표기가 막부의 입장과 배치되는 다카하시 개인의 표기일 가능성은 없다.

일설에는 저자가 유럽의 지도에 동해가 ‘한국해(Sea of Korea)’라고 되어 있어서 그렇게 표기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는데, 2년 후인 1811년 저자의 <신정만국도(新訂萬國圖)>를 보면 그 이유를 납득할 수 있게 된다. 그 지도에서 한반도 동쪽에는 ‘조선해’라고 표기하면서 일본 남쪽에는 ‘대 일본해’라고 표기했던 것이다. 물론 유럽 지도에서도 두들리(Dudely)의 1647년 지도를 비롯하여 일본 남쪽에 ‘일본해’라고 표기한 지도는 꽤 많이 있다. 그러나 태평양 쪽에 ‘대 일본해’라고 표기한 것은 ‘세계로 뻗어 나가고자 하는 일본 막부의 기상’을 대변하는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동해까지 일본해라고 표기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어쨌든 다카하시와 그의 제자들은 1870년대까지 ‘조선해’로 표기했다. <지도4>

<지도4> 다카하시 가게야스(Takahashi Kageyasu)의 <신정만국도(新訂萬國圖)>. 1811년.

8. 일본해(日本海, Ribon Hai)

서정철 한국외국어대학교 명예교수(오른쪽)와 김인환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

세계에서 처음으로 동해가 ‘Ribon Hai’라고 표기된 것은 1602년 마테오리치가 만든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에서이다. 그러나 그 지도가 너무 크고 모두 중국어로 표기되어 있어 유럽에는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하였고, 일본인들에게는 세계에 대한 보는 눈을 열어 주었지만, 동해 표기에는 오랫동안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였다. 현재 일본학자 중에는 리치가 중국에 도착하였을 당시 일본에서 임무를 마치고 귀국하는 선교사들과 만나 ‘일본해’를 알게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으나, 설사 그런 만남이 있었다고 해도 ‘일본해’ 명칭을 이야기했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왜냐하면 리치가 동해에 ‘일본해’ 표기를 한 후 200년이 지난 1802년에 일본에서 처음으로 이네 다카고(Ine Takago)에 의해 ‘일본해’ 표기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리치의 일본해 표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된다.

첫째, 일본은 일찍부터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과 교역을 하면서 알려졌고, 일본에 관한 다수의 저서가 유럽에서 출간되었으며, 교역을 원하는 나라도 여럿 있었다. 또한 일본은 선교사들이 파견되기를 희망하는 나라여서, 유럽에서 일본인들에 대한 이미지는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따라서 동해가 한·일 양국 사이에 있는 바다지만 당시 유럽 유행대로 바다에 국가 명을 넣는다면 한국보다는 일본 쪽으로 기울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둘째, 그에 비하여 한국은 17세기 중반까지 ‘반도’로만 알려졌을 뿐, 한국과 교역을 원하거나 선교사 등을 파견하려 해도 당시의 대외봉쇄정책 때문에 외국인과의 접촉이나 외국인의 접근이 일절 허락되지 않아, 유럽에서는 한국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나라였다. 리치는 중국 측 자료를 이용하여 한국을 유럽에 알리고 싶어한 듯, 한반도 동쪽 동해안에 한국의 역사와 기타사항을 이례적으로 조리 있게 설명해 넣었다.

셋째, 리치는 중국 남부에서 중원을 거쳐 북경에 도착하였기 때문에, 만주 쪽 사람들로부터 한반도 동부 해역이 ‘동해’로 불린다는 것을 들었을 가능성은 없다. 그러나 그가 만약 당시 중국영토였던 사할린 부근에 상륙하여 만주를 거쳐 북경에 도착하였더라면 여진족의 주거지역을 지나면서 문제의 바다 명칭이 ‘일본해’가 아니라 ‘동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고, 그렇게 표기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어쨌든 리치는 ‘일본해’ 표기를 동해 한복판에 하지 않고 일본에 보다 가까이 하였는데, 그것은 한국 쪽 동해에 한국에 대한 설명을 넣지 않았더라면 그 공간에 ‘한국해’라고 병기하였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한다.

넷째, 어쨌든 ‘일본해’라는 명칭은 일본에서 전혀 관심을 끌지 못하였다. 중국에 체류하던 선교사들에게도 ‘뜨거운 감자’를 던진 셈이다. 리치의 명칭을 따르면 진실을 숨기게 되고 진실을 말하면 대선배 리치의 명칭을 부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토착명을 알게 된 알레니 신부는 1623년 리치의 지도를 수정·보완하면서 동해를 ‘소동해’라고 표기한다. 그러나 다른 선교사들은 심적인 갈등 속에서 각기 자기 나름대로의 결론에 이른다. 1655년 블라우(Blaeu)와 함께 <중국지도첩(Atlas Sinensis)>을 발간한 마르티니(M. Martini) 신부는 동해를 공백으로 남겼으며, 중국 이름 남회인(南懷仁)으로 알려진 페르비스트(Verbiest) 신부는 1669년 세계지도에서 두 가지 명칭을 모두 수용하여 ‘동해 또는 일본해(Mer Orientale ou du Japon)’라고 표기하면서 ‘동해’를 ‘일본해’보다 먼저 썼다. 그러나 1686년 중국에 도착한 토마 신부는 1690년 동아시아 지도에서 동해를 아예 ‘한국해(Mer de Core)’라고 표기한다. 중국에 도착한 지 4년밖에 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는 어떻게 동해를 주저 없이 ‘한국해’라고 하였을까. 한 가지 가설은 토마 신부가 중국에 오기 전 같은 플랑드르 출신으로 네덜란드에서 공전의 베스트셀러를 낸 몬타누스(A. Montanus)의 저서를 읽고 그 저서의 부록으로 첨부된 일본전도에 동해가 ‘한국해’라고 표기된 것을 보아 그렇게 하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동해를 ‘한국해’라고 한 사람은 몬타누스 이외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후에 강희제를 통하여 ‘동해’가 토착명임을 알게 되고, 그 사실을 수행록에 기록하였으나, 지도를 다시 만들지는 않았다.

동해의 별칭으로 ‘중국 대양(Ocea nus Chinensis)’ 혹은 ‘중국해(Mare della China)’가 있다. 17세기 동해에 표기되던 명칭에서 대양(Ocean)과 바다(Sea)는 당시 동의어로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동해를 포함하는 동남아 일대 해역이 중국 영향권에 있다고 보고 1570년 오르텔리우스(Ortelius), 1587년 메르카토르(Mercator) 등이 ‘중국해(Mare Cin)’라고 하였고, 얀소니우스(Janssonius)도 1658년 ‘중국대양(Oceanus Chinese)’이라고 하였다.

9. 일본해(Sea of Japan)

유럽에서 ‘일본해’라고 처음 표기한 사람은 일본에 선교사로 다녀간 블랑쿠스(Blancus) 신부이다. 일본 측에서는 1568년 <아시아 지도(Asia)>에서 디오고 호멤(Diogo Homem)이 표기한 ‘일본해(Mare de Jap)’가 원조라고 하는데, 이는 실제 지도와는 거리가 멀다. 1543년 포르투갈이 일본에 도착하여 중계무역을 시작하였고 1554년 디오고의 아버지 로포 호멤(Lopo Homeme)의 지도에는 Iapan이라는 나라가 있었으나 디오고의 지도에는 일본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일본으로 추정되는 나라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동남아 해역에다가 ‘일본해’라고 표기한 것은 별다른 의미를 가졌다고 할 수 없다.

리치와 블랑쿠스 이후 1704년 놀랭(Nolin)이 지도 <아시아(L'Asie)>에서 동해에 ‘일본해(Mer du Japon)’라고 표기하였고, 알려진 바와 같이 1797년 <항해지도(Carte gnrale des Decouvertes)>에서 라페루즈(La Prouse)가 동해를 ‘일본해’라고 한 것이 19세기 지도들의 표기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영국에서는 로리와 휫틀(Laurie and Whittle)이 1799년 <아시아도(Asia)>에서 동해를 ‘일본해’라고 하였고, 그 후 코델(Codell), 톰슨(Thomson) 등이 같은 표기를 한다. 네덜란드에서는 일본과 특별한 인연으로 일본 여인과 결혼한 의사 겸 박물학자, 지도제작가인 시볼드(Siebold)가 1832년 제작한 <일본(Nippon)>에서 동해를 ‘일본해(Japa nisches Zee)’라고 하였다.

일본 측은 동남아 해역이나 베링해 근처에 ‘일본해’라고 표기되거나 ‘일본 서해’, ‘일본 북해’, ‘일본 동해’ 등에서처럼 ‘일본’만 들어가면 모두를 ‘일본해’ 표기라고 주장하는 억지를 부린다. 그러나 라페루즈 이전까지 ‘일본해’ 표기는 상당히 소수였고 라페루즈의 영향으로 일본해 표기가 다수 증가한 것은 기껏해야 100여 년의 역사밖에 안되어, 동해와는 비교가 안된다. <지도5>

<지도5> 라페루즈(La Perouse)의 <항해지도(Carte generale des Decouvertes)>. 1787년에 작성되고 1797년에 출판되었다.

10. 일본해(Nihon Kai)

‘Nihon Kai’는 ‘Ribon Hai’를 일본어로 옮긴 것이다. 1792년 시바 고칸(Shiba Kokan)이 ‘일본내해’를 표기하고 난 이후 이네 다카고(Ine Takago)가 1802년의 지도에서 ‘일본해’를 표기하였으니, 리치보다 200년 후의 일이다.

‘동해’가 토착명인 것처럼 ‘일본해(Nihon Kai)’ 역시 일본에서 일본 사람들이 일본어로 쓰는 지명이니 토착명이라고 생각하는 지명 전문가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일본해’의 형성 과정을 모르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선 일본해라는 명칭은 일본에서 쓰지 않던 명칭이고, 리치의 ‘Ribon Hai(일본해)’보다 200년 늦게, 또 유럽에서 일본해가 나온 지 185년 만에, 일본에서 받아들인 용어이다. 그리고 ‘동해’는 고유명사가 되면서 어원적인 의미는 사라지고 단지 한반도의 동쪽에 있는 해역을 지칭하는 기능만을 수행하지만, 바다에 국가명이 들어갈 경우에는 고유명사가 되면서도 국가명의 의미 가치가 그대로 유지되므로, ‘일본해(Nihon Kai)’는 일본의 소유이거나 오로지 일본과 특수한 관계에 있는 바다가 된다. 그러니 그 바다를 공유하고 있는 한국, 러시아, 북한 등의 존재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바다가 되는 셈이다. 결국 지나치게 일본의 독점적인 명칭으로, 다른 나라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름인 것이다.

11. 북해(Septentrional Sea/Boreal Sea)

Septentrional은 ‘북극에서 일하는 일곱 마리의 소’에 대한 신화에서 비롯되었고, Boreal은 그리스 신화에서 북풍, 삭풍을 나타내다가 ‘북쪽의 자연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사’에서 나왔다. 두 형용사 모두 북쪽을 가리키는 형용사이니 거의 완벽한 동의어이다. 일본에 다녀온 베르나르디노(Bernardino)가 1630년 일본 지도에서 동해를 ‘북해(Mare Boreal)’라고 표기한 후, 1647년 《바다의 신비(Dell'Arcans del Mare)》의 <한·일 양국도>에서 동해 가운데에 큰 활자로 ‘한국해(Mare di Corai)’라고 하고, 흘림체로 일본 북쪽에 ‘일본 북해(Oceano Boreale del Giappone)’, 동북쪽에 ‘북해도해(北海島海, Mare di Iego)’라고 써 넣었다. 1649년 그가 사망한 후 1661년 2판(版)에서는 약간의 변화가 생긴다. 우선 동해의 중앙에 장식적인 카르투슈가 생기고 그 여파로 큰 활자의 ‘한국해(Mare di Corai)’는 한국에 보다 가까이 표기되고 일본 북쪽에는 흘림체로 ‘Il Mare Settentrionale di Iappone Giappone(일본 북해)’라고 써 넣었다. 여기서 ‘한국해’는 바다의 이름으로 간주할 수 있고 ‘Oceano Boreale del Giappone’과 ‘Il Mare Settentrionale di Iappone Giappone’은 바다에 대한 설명적인 표현이다. 드페르도는 1896년 ‘일본의 북해(Mer Septentrionale du Japon)’라는 같은 표기를 사용한다. 두 제작자 모두 동해를 일본에서 ‘북해’라고 부른다는 정보에 국가명을 보어(補語)로 붙여서 어떤 북해인지를 설명하고자 한 듯하다.

12. 북해(Hok Kai)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나라 일본은 전통적으로 바다에 이름을 붙이지 않고 지도에서는 방향 표시만 하였다. 물론 북쪽 바다, 동쪽 바다, 남쪽 바다, 서쪽 바다라고 하면 어떤 바다를 가리키는지 알 수 있어 혼란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것들이 바다의 고유명칭 대신으로 쓰인 것 같다. 그중 현지의 정보를 통하여 거의 고유명칭 기능을 한 것이 동해를 대신하는 ‘북해’인 것 같다. 심정보 박사의 조사에 의하면 19세기 말경까지 일본의 교과서, 사전, 신문, 역사서, 지리서 등에서 ‘일본해’와 ‘북해’가 혼용되는 경우가 많고, 그것은 일본인들이 습관적으로 북해라는 명칭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라고 보이는 것이다(<일본에서 일본해 지명에 관한 연구 동향>, 한국지도학회, 2007). 그러나 일본 학자들은 ‘북해’라는 명칭을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일본해’를 지키려고 ‘북해’의 진실을 숨기는 것은 정직하지 못하다.

결론

결국 ‘동해’는 완전한 토착명이지만 ‘일본해(Nihon Kai/ Sea of Japan/ Japan Sea)’는 분명한 외래명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종래에 일본은 ‘외국에서 먼저 일본해 지명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일본에서 그것을 받아들였다’고 변명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 본래 동해의 지명이 일본에서 ‘일본해’가 아니었음을 실토하는 것이고, ‘일본해’가 외래명임을 스스로 밝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일본은 최근에 와서 “일본해는 외국보다 일본에서 먼저 써 왔고, 외국에 그 지명이 알려졌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근거 없는 황당한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의 당사국인 한국과 일본, 그리고 가능하면 국제적인 전문가들도 참여하여 머리를 맞대고, 두 명칭의 병기 <지도6> 또는 제3의 명칭을 찾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