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독자의 제언’은 우리 사회의 건전한 발전을 위한 정책과 아이디어를 환영합니다. 분량은 200자 원고지 20장 이내, 마감은 매달 5일까지입니다. 채택된 원고에 대해서는 소정의 원고료를 드립니다. 원고를 보내실 때에는 성명, 이력, 주소, 전화번호, 은행 계좌번호 등을 기재해 주시기 바랍니다.
[보내실 곳]
이메일 : pubmonth@chosun.com
홈페이지 monthly.chosun.com을 통해서도 기고가 가능합니다.
기고 제목에 ‘독자의 제언’임을 명기해 주십시오.
‘독자의 제언’은 우리 사회의 건전한 발전을 위한 정책과 아이디어를 환영합니다. 분량은 200자 원고지 20장 이내, 마감은 매달 5일까지입니다. 채택된 원고에 대해서는 소정의 원고료를 드립니다. 원고를 보내실 때에는 성명, 이력, 주소, 전화번호, 은행 계좌번호 등을 기재해 주시기 바랍니다.
[보내실 곳]
이메일 : pubmonth@chosun.com
홈페이지 monthly.chosun.com을 통해서도 기고가 가능합니다.
기고 제목에 ‘독자의 제언’임을 명기해 주십시오.
연평도 포격도발이 발생한 지 어느덧 1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당시 국민들이 받았던 충격과 긴장 그리고 불안감은 거의 없어진 듯하다. 지난 7월 서울 서초구 우면산 산사태는 재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집중시켰지만, 이 또한 사그라져 가는 형국이다. 그간 정부는 청와대 위기관리 기능을 보강하고 국무총리실에 재난관리개선 민·관(民·官) 합동 TF팀을 구성하는 등 나름 노력을 해왔다.
그러나 만약 제2의 연평도 도발과 우면산 사태가 발생한다면, 과연 현행 국가위기 관리체계는 제대로 작동할 것인가?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여전히 미흡한 점이 적지 않다. 따라서 현재의 국가위기 관리체계를 원점에서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위기관리 관련 법 통일 안 돼
현행 국가 위기관리 관련 법규는 헌법, ‘비상대비자원관리법’,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민방위기본법’, ‘통합방위법’, ‘계엄법’, ‘국가전시(戰時)지도지침’, ‘국가위기관리지침’ 등으로 나뉜다. 그런데 문제는 ‘국가위기’의 개념이 법규(法規)별로 다르게 정의돼 있다는 데 있다.
예컨대 ‘비상대비자원관리법’과 ‘국가전시지도지침’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사태’로, ‘국가위기관리지침’은 ‘국가 주권 또는 국가를 구성하는 정치·경제·사회·문화 체계 등 국가의 핵심요소나 가치에 중대한 위해(危害)가 가해질 가능성이 있거나, 가해지고 있는 상태’로, ‘민방위기본법’은 ‘적(敵)의 침공이나 전국 또는 일부 지방의 안녕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인위적 재난’ 등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가위기 관리체제 구축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또한 법령체계가 모호해 법령 간 연계성이 약하고, 위기가 발생했을 때 법 적용 우선순위가 불분명하다. 지난해 연평도 포격사태 때도 이 사태를 ‘민방위사태’로 볼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른 재난으로 보고 법적용을 할지를 놓고 부처 간 줄다리기를 벌였다는 후문이다. 이로 인해 초기 대응 과정에서 혼란을 초래하고 말았던 것이다.
관련 법규가 전시(戰時)와 평시(平時)로 이원화돼 있고, 상호 연계가 약한 점도 큰 문제다. 평시법인 ‘비상대비 자원관리법’에 이 법의 핵심인 동원규정이 없고, 전시법인 ‘전시 자원관리에 관한 법률(안)’에 규정돼 있어 국지(局地)도발, 재난 시 즉각 자원동원이 어려운 측면이 있다.
위기관리의 모법(母法)도 없다. 즉 미국의 ‘스태포드(Stafford)법’이나, 일본의 ‘재해대책기본법’처럼 위기가 발생했을 때 줄기 역할을 하는 법규가 없어 위기대응의 유연성이 떨어지고, 상호협력에 애로가 발생하는 것이다.
위기관리사령탑이 없다
국가위기 관리체계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조직 간 상하·수평적 연계와 협조가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복잡한 조직구조로 인해 부작용이 적지 않다. 먼저, 국가 차원에서 위기관리사령탑(control tower)이 보이지 않는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안보관계장관회의, 외교안보정책조정회의, 국가위기관리실, 외교안보수석실 등 기구는 많다. 하지만 위기관리의 핵심주체가 누구인지 매우 헷갈리는 구조다. 더구나 국가위기상황실 근무요원의 전문성마저 떨어진다. 현 국가위기관리실은 그간 수차례에 걸쳐 조직편제가 확대·변화됐으나, 1~2년 단위의 파견근무라는 시스템은 변하지 않았다. 전문성과 경험을 갖추지 못한 참모가 위기상황에서 대통령의 의사결정을 제대로 보좌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지난해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 당시, 국민들에게 대통령 참모들은 보이지 않고, 대통령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모습이 부각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게다가 재난·민방위 업무가 행정안전부와 소방방재청으로 이원화돼 ‘한 지붕 두 가족’ 형태다. 지자체는 담당부서도 각양각색(各樣各色)이어서 업무수행에 어려움이 적지 않다.
민방위협의회, 안전관리위원회, 재난안전대책본부, 통합방위협의회 등과 같은 각종 회의체(기구)가 너무 많아 그 실효성도 의문시되고 있다. 유사하고 중복되는 기능을 가진 여러 개의 회의체를 중앙정부-시·도-시·군·구 단위로 운영하는 것은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기관장 1인이 모든 회의체 의장의 역할을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천안함 인양 대형크레인 소재 파악에 사흘이나 걸려
국가위기 관리체계 구축과 운영은 법이나 제도적 뒷받침 못지않게 사회문화적 요소도 중요하다. 그러나 국민들 사이에는 ‘설마 사고는 일어나지 않겠지…’라는 안전불감증이 팽배해 있다. 위기를 무릅쓰는 문화의 만연으로 여전히 많은 기회비용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는 과거 930여 회의 외침(外侵) 당시 죽느냐 사느냐의 선택을 수없이 강요받는 상황에서 보이지 않는 미래보다 눈앞의 생존, 즉 현재가치에 무게를 둘 수밖에 없었던 경험이 학습효과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공공재(公共材)인 안보를 효율성이라는 기업논리의 잣대로 판단해 각급 행정기관들이 구조조정을 할 때 위기관리 관련조직을 우선적으로 축소하거나 폐지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먼저, 위기대비 훈련의 분산 실시로 효율성이 떨어지고 있다. 개별법에 따라 훈련기준과 일정, 그리고 훈련내용이 중복되고, 동일한 방법으로 전국 혹은 지역단위로 연중 불규칙하게 실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부처는 물론 지자체에서 행정력·예산·노력을 이중으로 낭비한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위기발생 시 즉각 대응이나 복구에 필요한 각종 인적·물적 자원을 부처별로 관리하고 있는 것도 비효율적이다. 예컨대 개별법에 따라 물자동원과 병력동원은 행정안전부에서, 기술인력은 병무청과 행정안전부에서 각각 관리하고 있다.
그 결과, 자원운영의 통합성과 상호 대체 활용이 곤란하고, 자원현황을 실시간(real time)대에 파악해 적기적소(適期適所)에 투입하는 것이 어렵다. 지난해 폭침(爆沈)된 1200톤급 천안함 인양에 필요한 대형크레인의 소재를 파악하고 현장에 투입하는 데 사흘이나 소요됐던 사례가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국가위기관리기본법 제정해야
사무엘 헌팅턴(Samuel P. Huntington)은 전문직업의 특성으로 전문기술(expertise), 사회적 책임(responsibility) 그리고 단체성(corporateness)을 들고 있다. 이러한 특성은 국가위기 관리 분야 담당자들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경우, 특히 지자체는 문제가 심각하다.
현행 1~2년 단위의 순환 공무원인사제도와 공무원들의 보직기피 등은 전문성을 키우는 데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공무원들의 비전문성으로 중장기전략이나 계획수립 그리고 정책홍보, R&D사업 타당성 검증 등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2007년 태안 기름유출 사고나 연평도 포격사태 때 관련 매뉴얼을 해당 지자체는 갖고 있었으나, 담당자들이 그 내용과 활용법을 잘 몰라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됐다. 따라서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국가차원에서 중장기적 대책을 강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첫째, 국가위기 개념부터 정립해야만 한다. 오늘날 포괄적 안보개념에 부합되게 그 범위와 수준을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 위기개념은 법령제정의 기초가 될 뿐만 아니라, 조직편성 및 운영, 교육훈련 그리고 자원관리 등의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통합된 국가위기 관리체제 구축과 운용을 위해 가칭 ‘국가위기관리기본법’을 제정해 위기관리의 모법으로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게 해야 한다. 만일 위기관리기본법 제정이 제한될 경우, 현 민방위기본법과 비상대비자원관리법, 통합방위법 등 전·평시 법규를 하나로 묶어 가칭 ‘민방위 및 비상대비 자원관리법’으로 개정해 전·평시 업무가 연계되도록 뒷받침을 해주어야 한다.
또 지방자치법상 국가사무처리를 제한하는 것과 사무범위를 정하는 조항은 지자체의 자율권을 제약한다. 실질적으로 수평적 관계인 중앙정부의 통제와 간섭은 지방자치 정신을 훼손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개정돼야 한다. 동시에 중앙정부의 책임과 권한을 지자체에 대폭 위임하고, 중앙정부는 지자체(장)의 업무감독과 평가를 통해 행정적·정치적 책임을 묻도록 해야 한다.
현재 민방위협의회(민방위기본법), 방위협의회(향토예비군설치법), 통합방위협의회(통합방위법) 등으로 난립·중복되고 있는 회의체나 대책기구를 가칭 ‘위기관리대책회의’로 일원화(一元化)해 실효성을 높이도록 해야 한다.
한국판 국토안보부를 만들자
현재 우리나라의 위기관리 조직은 큰 틀에서 보면 중앙정부는 기능별로 조직이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지만, 지방자치단체는 기관별로 다른 조직편성과 운용을 하고 있어 일원화된 지휘통제와 업무계선을 유지하는 쪽으로 재편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장차 중앙정부와 지자체 위기관리 조직의 재편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먼저,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 기능을 복원시켜 외교안보수석실과 국가위기관리실로 이원화(二元化)된 위기관리 업무를 통합해 국가위기관리사령탑으로서 기능과 역할을 하게 해야 한다.
이것이 어려울 경우 현행 국가위기관리실의 조직과 기능을 기획조정, 위기관리, 정보분석, 그리고 비상대비, 민방위 기능이 통합된 자원관리 등으로 재편성해 국가위기관리사령탑 기능을 수행토록 해야 한다. 현재 미국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체제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둘째, 현재 행정안전부와 소방방재청으로 이원화된 재난, 민방위 업무를 일원화해 업무중복과 혼선 최소화 그리고 지자체의 부담을 덜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차기 정부는 미국의 국토안보부(DHS)처럼 민방위, 재난, 핵심기반 등을 총괄하는 독립기관을 신설해 부처 간 업무조정ㆍ통제, 지방자치단체와의 협조 그리고 통합성이 발휘되게 해야 한다.
셋째, 중앙정부-지자체 간 위기관리 조직계선을 연계시키고, 중앙정부의 집행기능은 지자체에 이양해야 한다. 헌법과 지방자치법을 개정해 지자체도 비상대비, 재난 등의 국가사무를 관장하도록 범위를 재조정하고 지방자치단체장의 책무도 함께 규정해야 한다. 그리고 지자체장에게 인력, 조직, 예산은 물론 경찰도 소방처럼 통제권을 주되 위기관리 업무에 대한 행정적·정치적 책임을 묻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조치들은 차기 정부에서 대내외 안보환경과 국민여론 등을 고려해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본다.
戰平時 훈련을 을지연습으로 통합해야
넷째, 대(對)국민홍보가 중요하다. 오늘날 위기대응 개념은 사후대응(reaction)에서 사전대응(proaction)으로 변화됐다. 따라서 위기관리를 위해서는 정부-민간 협력과 참여 분위기, 안전문화 확산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 우선 유치원, 중고생, 대학생 그리고 일반인을 대상에 맞게 체험 위주교육을 해 안전에 대한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홍보방법도 휴대폰, 트위터, 페이스북, 인터넷, TV 등 쌍방향 매체를 적극 활용해 효과를 높이고, 유명 연예인이나 선수들을 홍보대사로 위촉해 참여와 관심을 유도하는 것도 필요하다.
다섯째, 전·평시로 분산된 자원관리와 운영을 일원화해야 한다. 먼저, 전시대비, 재난, 민방위 등으로 분산 실시하는 연습훈련을 을지연습으로 통합해 ‘일석삼조(一石三鳥) 효과가 나타나게 해야 한다. 매년 1회 일주일 정도의 기간에 주야간 실제훈련 중심으로 전환하고, 훈련대상에 따라 실무자는 실제훈련 위주(role playing)로, 고위직은 의사결정 연습을 위한 정치-군사게임(pol-mil game) 등으로 차별화해야 한다.
또한 훈련평가·통제도 행정안전부, 소방방재청, 국방부 등 관계기관이 참가한 ‘중앙평가 및 통제단’을 편성해 공정하게 평가하고, 그 결과를 정부평가에 반영해 기관장이 위기관리 업무에 대하여 관심과 책임감을 갖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다음은 전·평시로 분산된 자원관리와 운영을 일원화해야 한다. 관련법 개정을 통해 부처별 자원 현황이나 정보시스템을 공개 또는 제공을 기피하는 행태를 차단하도록 법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또한 실시간대에 원하는 장소와 시간에 자원투입이 가능하도록 자원의 형태, 종류, 그리고 현재 상태까지도 범주화, 데이터베이스화해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운영하도록 가칭 ‘자원관리종합상황실’을 신설해야 한다.
그리고 사용한 물자와 장비의 사후처리를 위해 각급 행정기관은 수직ㆍ수평적 상호지원협정을 맺고, 민간기업과는 양해각서나 협약을 체결해 관할구역이 중첩되는 경우에도 적용이 가능하게 해야 한다. 2007년 12월 태안 기름유출 사고 때 오염 방재작업에 인력·물자·장비 등을 지원했던 국방부의 사후정산 요구에 국토해양부와 지자체가 서로 떠넘기며 논쟁했던 우(愚)를 다시 범해서는 안 된다.
공동이익 보호라는 ‘가치우산’을 함께 써야
국가 위기관리 업무는 국민들의 지지와 공감대 형성이 어려워 정책집행이 쉽지 않고, 정권교체기마다 ‘작은 정부구현’이라는 구호 아래 관련조직을 수시로 흔들고 심지어 폐지해 일관성과 안정성을 크게 훼손했다. 그러나 주권보호와 국민의 생명과 재산보호라는 핵심가치는 여전히 중요하기 때문에 국가위기관리는 변수(變數)가 아닌 상수(常數)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더욱이 위기는 결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 입장을 이해해 주지도 않기 때문에, 공동이익 보호라는 ‘가치우산’(value umbrella)을 함께 쓰려는 범(汎)국민적 노력이 요구된다. 일찍이 손자(孫子)가 ‘위기대비는 나라의 중대사로 생사와 존망이 달려 있으니 살피지 않을 수 없다(兵者 國之大事 死生之地 存亡之道 不可不察也)’라고 갈파한 경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만약 제2의 연평도 도발과 우면산 사태가 발생한다면, 과연 현행 국가위기 관리체계는 제대로 작동할 것인가?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여전히 미흡한 점이 적지 않다. 따라서 현재의 국가위기 관리체계를 원점에서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위기관리 관련 법 통일 안 돼
현행 국가 위기관리 관련 법규는 헌법, ‘비상대비자원관리법’,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민방위기본법’, ‘통합방위법’, ‘계엄법’, ‘국가전시(戰時)지도지침’, ‘국가위기관리지침’ 등으로 나뉜다. 그런데 문제는 ‘국가위기’의 개념이 법규(法規)별로 다르게 정의돼 있다는 데 있다.
예컨대 ‘비상대비자원관리법’과 ‘국가전시지도지침’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사태’로, ‘국가위기관리지침’은 ‘국가 주권 또는 국가를 구성하는 정치·경제·사회·문화 체계 등 국가의 핵심요소나 가치에 중대한 위해(危害)가 가해질 가능성이 있거나, 가해지고 있는 상태’로, ‘민방위기본법’은 ‘적(敵)의 침공이나 전국 또는 일부 지방의 안녕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인위적 재난’ 등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가위기 관리체제 구축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또한 법령체계가 모호해 법령 간 연계성이 약하고, 위기가 발생했을 때 법 적용 우선순위가 불분명하다. 지난해 연평도 포격사태 때도 이 사태를 ‘민방위사태’로 볼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따른 재난으로 보고 법적용을 할지를 놓고 부처 간 줄다리기를 벌였다는 후문이다. 이로 인해 초기 대응 과정에서 혼란을 초래하고 말았던 것이다.
관련 법규가 전시(戰時)와 평시(平時)로 이원화돼 있고, 상호 연계가 약한 점도 큰 문제다. 평시법인 ‘비상대비 자원관리법’에 이 법의 핵심인 동원규정이 없고, 전시법인 ‘전시 자원관리에 관한 법률(안)’에 규정돼 있어 국지(局地)도발, 재난 시 즉각 자원동원이 어려운 측면이 있다.
위기관리의 모법(母法)도 없다. 즉 미국의 ‘스태포드(Stafford)법’이나, 일본의 ‘재해대책기본법’처럼 위기가 발생했을 때 줄기 역할을 하는 법규가 없어 위기대응의 유연성이 떨어지고, 상호협력에 애로가 발생하는 것이다.
위기관리사령탑이 없다
국가위기 관리체계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조직 간 상하·수평적 연계와 협조가 필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복잡한 조직구조로 인해 부작용이 적지 않다. 먼저, 국가 차원에서 위기관리사령탑(control tower)이 보이지 않는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안보관계장관회의, 외교안보정책조정회의, 국가위기관리실, 외교안보수석실 등 기구는 많다. 하지만 위기관리의 핵심주체가 누구인지 매우 헷갈리는 구조다. 더구나 국가위기상황실 근무요원의 전문성마저 떨어진다. 현 국가위기관리실은 그간 수차례에 걸쳐 조직편제가 확대·변화됐으나, 1~2년 단위의 파견근무라는 시스템은 변하지 않았다. 전문성과 경험을 갖추지 못한 참모가 위기상황에서 대통령의 의사결정을 제대로 보좌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지난해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 당시, 국민들에게 대통령 참모들은 보이지 않고, 대통령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모습이 부각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게다가 재난·민방위 업무가 행정안전부와 소방방재청으로 이원화돼 ‘한 지붕 두 가족’ 형태다. 지자체는 담당부서도 각양각색(各樣各色)이어서 업무수행에 어려움이 적지 않다.
민방위협의회, 안전관리위원회, 재난안전대책본부, 통합방위협의회 등과 같은 각종 회의체(기구)가 너무 많아 그 실효성도 의문시되고 있다. 유사하고 중복되는 기능을 가진 여러 개의 회의체를 중앙정부-시·도-시·군·구 단위로 운영하는 것은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기관장 1인이 모든 회의체 의장의 역할을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천안함 인양 대형크레인 소재 파악에 사흘이나 걸려
국가위기 관리체계 구축과 운영은 법이나 제도적 뒷받침 못지않게 사회문화적 요소도 중요하다. 그러나 국민들 사이에는 ‘설마 사고는 일어나지 않겠지…’라는 안전불감증이 팽배해 있다. 위기를 무릅쓰는 문화의 만연으로 여전히 많은 기회비용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는 과거 930여 회의 외침(外侵) 당시 죽느냐 사느냐의 선택을 수없이 강요받는 상황에서 보이지 않는 미래보다 눈앞의 생존, 즉 현재가치에 무게를 둘 수밖에 없었던 경험이 학습효과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공공재(公共材)인 안보를 효율성이라는 기업논리의 잣대로 판단해 각급 행정기관들이 구조조정을 할 때 위기관리 관련조직을 우선적으로 축소하거나 폐지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먼저, 위기대비 훈련의 분산 실시로 효율성이 떨어지고 있다. 개별법에 따라 훈련기준과 일정, 그리고 훈련내용이 중복되고, 동일한 방법으로 전국 혹은 지역단위로 연중 불규칙하게 실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부처는 물론 지자체에서 행정력·예산·노력을 이중으로 낭비한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위기발생 시 즉각 대응이나 복구에 필요한 각종 인적·물적 자원을 부처별로 관리하고 있는 것도 비효율적이다. 예컨대 개별법에 따라 물자동원과 병력동원은 행정안전부에서, 기술인력은 병무청과 행정안전부에서 각각 관리하고 있다.
그 결과, 자원운영의 통합성과 상호 대체 활용이 곤란하고, 자원현황을 실시간(real time)대에 파악해 적기적소(適期適所)에 투입하는 것이 어렵다. 지난해 폭침(爆沈)된 1200톤급 천안함 인양에 필요한 대형크레인의 소재를 파악하고 현장에 투입하는 데 사흘이나 소요됐던 사례가 이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국가위기관리기본법 제정해야
사무엘 헌팅턴(Samuel P. Huntington)은 전문직업의 특성으로 전문기술(expertise), 사회적 책임(responsibility) 그리고 단체성(corporateness)을 들고 있다. 이러한 특성은 국가위기 관리 분야 담당자들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경우, 특히 지자체는 문제가 심각하다.
현행 1~2년 단위의 순환 공무원인사제도와 공무원들의 보직기피 등은 전문성을 키우는 데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공무원들의 비전문성으로 중장기전략이나 계획수립 그리고 정책홍보, R&D사업 타당성 검증 등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2007년 태안 기름유출 사고나 연평도 포격사태 때 관련 매뉴얼을 해당 지자체는 갖고 있었으나, 담당자들이 그 내용과 활용법을 잘 몰라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됐다. 따라서 전문인력 양성을 위해 국가차원에서 중장기적 대책을 강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첫째, 국가위기 개념부터 정립해야만 한다. 오늘날 포괄적 안보개념에 부합되게 그 범위와 수준을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 위기개념은 법령제정의 기초가 될 뿐만 아니라, 조직편성 및 운영, 교육훈련 그리고 자원관리 등의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통합된 국가위기 관리체제 구축과 운용을 위해 가칭 ‘국가위기관리기본법’을 제정해 위기관리의 모법으로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게 해야 한다. 만일 위기관리기본법 제정이 제한될 경우, 현 민방위기본법과 비상대비자원관리법, 통합방위법 등 전·평시 법규를 하나로 묶어 가칭 ‘민방위 및 비상대비 자원관리법’으로 개정해 전·평시 업무가 연계되도록 뒷받침을 해주어야 한다.
또 지방자치법상 국가사무처리를 제한하는 것과 사무범위를 정하는 조항은 지자체의 자율권을 제약한다. 실질적으로 수평적 관계인 중앙정부의 통제와 간섭은 지방자치 정신을 훼손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개정돼야 한다. 동시에 중앙정부의 책임과 권한을 지자체에 대폭 위임하고, 중앙정부는 지자체(장)의 업무감독과 평가를 통해 행정적·정치적 책임을 묻도록 해야 한다.
현재 민방위협의회(민방위기본법), 방위협의회(향토예비군설치법), 통합방위협의회(통합방위법) 등으로 난립·중복되고 있는 회의체나 대책기구를 가칭 ‘위기관리대책회의’로 일원화(一元化)해 실효성을 높이도록 해야 한다.
한국판 국토안보부를 만들자
현재 우리나라의 위기관리 조직은 큰 틀에서 보면 중앙정부는 기능별로 조직이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지만, 지방자치단체는 기관별로 다른 조직편성과 운용을 하고 있어 일원화된 지휘통제와 업무계선을 유지하는 쪽으로 재편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장차 중앙정부와 지자체 위기관리 조직의 재편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먼저,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 기능을 복원시켜 외교안보수석실과 국가위기관리실로 이원화(二元化)된 위기관리 업무를 통합해 국가위기관리사령탑으로서 기능과 역할을 하게 해야 한다.
이것이 어려울 경우 현행 국가위기관리실의 조직과 기능을 기획조정, 위기관리, 정보분석, 그리고 비상대비, 민방위 기능이 통합된 자원관리 등으로 재편성해 국가위기관리사령탑 기능을 수행토록 해야 한다. 현재 미국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체제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둘째, 현재 행정안전부와 소방방재청으로 이원화된 재난, 민방위 업무를 일원화해 업무중복과 혼선 최소화 그리고 지자체의 부담을 덜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차기 정부는 미국의 국토안보부(DHS)처럼 민방위, 재난, 핵심기반 등을 총괄하는 독립기관을 신설해 부처 간 업무조정ㆍ통제, 지방자치단체와의 협조 그리고 통합성이 발휘되게 해야 한다.
셋째, 중앙정부-지자체 간 위기관리 조직계선을 연계시키고, 중앙정부의 집행기능은 지자체에 이양해야 한다. 헌법과 지방자치법을 개정해 지자체도 비상대비, 재난 등의 국가사무를 관장하도록 범위를 재조정하고 지방자치단체장의 책무도 함께 규정해야 한다. 그리고 지자체장에게 인력, 조직, 예산은 물론 경찰도 소방처럼 통제권을 주되 위기관리 업무에 대한 행정적·정치적 책임을 묻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조치들은 차기 정부에서 대내외 안보환경과 국민여론 등을 고려해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본다.
戰平時 훈련을 을지연습으로 통합해야
넷째, 대(對)국민홍보가 중요하다. 오늘날 위기대응 개념은 사후대응(reaction)에서 사전대응(proaction)으로 변화됐다. 따라서 위기관리를 위해서는 정부-민간 협력과 참여 분위기, 안전문화 확산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 우선 유치원, 중고생, 대학생 그리고 일반인을 대상에 맞게 체험 위주교육을 해 안전에 대한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홍보방법도 휴대폰, 트위터, 페이스북, 인터넷, TV 등 쌍방향 매체를 적극 활용해 효과를 높이고, 유명 연예인이나 선수들을 홍보대사로 위촉해 참여와 관심을 유도하는 것도 필요하다.
다섯째, 전·평시로 분산된 자원관리와 운영을 일원화해야 한다. 먼저, 전시대비, 재난, 민방위 등으로 분산 실시하는 연습훈련을 을지연습으로 통합해 ‘일석삼조(一石三鳥) 효과가 나타나게 해야 한다. 매년 1회 일주일 정도의 기간에 주야간 실제훈련 중심으로 전환하고, 훈련대상에 따라 실무자는 실제훈련 위주(role playing)로, 고위직은 의사결정 연습을 위한 정치-군사게임(pol-mil game) 등으로 차별화해야 한다.
또한 훈련평가·통제도 행정안전부, 소방방재청, 국방부 등 관계기관이 참가한 ‘중앙평가 및 통제단’을 편성해 공정하게 평가하고, 그 결과를 정부평가에 반영해 기관장이 위기관리 업무에 대하여 관심과 책임감을 갖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다음은 전·평시로 분산된 자원관리와 운영을 일원화해야 한다. 관련법 개정을 통해 부처별 자원 현황이나 정보시스템을 공개 또는 제공을 기피하는 행태를 차단하도록 법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또한 실시간대에 원하는 장소와 시간에 자원투입이 가능하도록 자원의 형태, 종류, 그리고 현재 상태까지도 범주화, 데이터베이스화해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운영하도록 가칭 ‘자원관리종합상황실’을 신설해야 한다.
그리고 사용한 물자와 장비의 사후처리를 위해 각급 행정기관은 수직ㆍ수평적 상호지원협정을 맺고, 민간기업과는 양해각서나 협약을 체결해 관할구역이 중첩되는 경우에도 적용이 가능하게 해야 한다. 2007년 12월 태안 기름유출 사고 때 오염 방재작업에 인력·물자·장비 등을 지원했던 국방부의 사후정산 요구에 국토해양부와 지자체가 서로 떠넘기며 논쟁했던 우(愚)를 다시 범해서는 안 된다.
공동이익 보호라는 ‘가치우산’을 함께 써야
국가 위기관리 업무는 국민들의 지지와 공감대 형성이 어려워 정책집행이 쉽지 않고, 정권교체기마다 ‘작은 정부구현’이라는 구호 아래 관련조직을 수시로 흔들고 심지어 폐지해 일관성과 안정성을 크게 훼손했다. 그러나 주권보호와 국민의 생명과 재산보호라는 핵심가치는 여전히 중요하기 때문에 국가위기관리는 변수(變數)가 아닌 상수(常數)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더욱이 위기는 결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 입장을 이해해 주지도 않기 때문에, 공동이익 보호라는 ‘가치우산’(value umbrella)을 함께 쓰려는 범(汎)국민적 노력이 요구된다. 일찍이 손자(孫子)가 ‘위기대비는 나라의 중대사로 생사와 존망이 달려 있으니 살피지 않을 수 없다(兵者 國之大事 死生之地 存亡之道 不可不察也)’라고 갈파한 경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