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은 인생에 관한 것이어야… 삶과 죽음, 생명의 문제에서 우리 문학이 멀어졌다”
⊙ “다양성이 낮고 단편 위주로 돌아가는 한국 문단”
⊙ “최인훈 작가… 당대에 세계 무대에 제대로 소개됐더라면 노벨문학상 근접했을 것”
⊙ “한국 문학은 약간 정치적이면서 인생론적… 여기에 춘원이 미친 영향은 절대적”
⊙ “탈북 작가들의 수는 얼마 안되지만 보배”
方珉昊
1965년생.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및 同대학원 졸업 / 現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춘원연구학회 회장 / 1994년 제1회 《창작과비평》 신인평론상으로 등단, 시집 《나는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소설 《무라카미하루키에게 답함》 《연인 심청》 《대전 스토리, 겨울》, 비평집 《비평의 도그마를 넘어》 《납함 아래의 침묵》 《문명의 감각》 《행인의 독법》 《한국 비평에 다시 묻는다》, 산문집 《명주》 《통증의 언어》 출간
⊙ “다양성이 낮고 단편 위주로 돌아가는 한국 문단”
⊙ “최인훈 작가… 당대에 세계 무대에 제대로 소개됐더라면 노벨문학상 근접했을 것”
⊙ “한국 문학은 약간 정치적이면서 인생론적… 여기에 춘원이 미친 영향은 절대적”
⊙ “탈북 작가들의 수는 얼마 안되지만 보배”
方珉昊
1965년생.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및 同대학원 졸업 / 現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춘원연구학회 회장 / 1994년 제1회 《창작과비평》 신인평론상으로 등단, 시집 《나는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소설 《무라카미하루키에게 답함》 《연인 심청》 《대전 스토리, 겨울》, 비평집 《비평의 도그마를 넘어》 《납함 아래의 침묵》 《문명의 감각》 《행인의 독법》 《한국 비평에 다시 묻는다》, 산문집 《명주》 《통증의 언어》 출간
- 사진=조준우
“이제는 우리도 노벨문학상 작가의 책을 원어 그대로 읽을 수 있게 됐네요.” 방민호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말했다. 10월 10일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들은 현대 국문학 연구자의 소감이었다. 방 교수는 한국 근현대문학을 전공했다. 박사 논문 주제였던 채만식(1902~1950년) 작가는 물론, 춘원 이광수와 최인훈 등을 연구하고 조명해왔다. 올해 10월엔 제8회 외솔시조문학상 평론상을 받았다.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 선생을 기리는 상이다. 방 교수는 현대 한국 소설 중 한강의 《채식주의자》에 주목해 평론을 쓰기도 했다. 평론 외에 소설과 시도 발표해왔다.
10월 10일, 그야말로 ‘한강의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한국 작가 한강이 121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아시아 여성 작가로서는 최초다. 한강에게 노벨문학상이 돌아간 이유는 뭘까. 방 교수는 세 가지 얘기를 했다.
첫째, 한강 소설의 주제의식이다.
“지금은 세계가 전쟁으로 꽉 차 있는 시대지요. 《채식주의자》에서 육식성은 인류사의 폭력을 상징합니다. 광주 5·18을 다룬 《소년이 온다》나 제주 4·3사건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는 한국이 민주화되는 과정에서 겪은 상처를 다룹니다. 이 과정에서 일어난 위력 역시 육식성에 속하지요. 이런 식의 문제제기를 스웨덴 한림원이 높이 평가한 듯합니다.”
―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이 있는 작가로 고은이나 황석영을 드는 이들도 있었는데요.
“박경리, 최인훈, 김지하의 장려한 문학이 세상을 떠났고 고은 시인은 미투로 불행한 상황에 처했지요. 황석영 작가는 도전적인 실험들을 해왔어요. 《심청》 《손님》 《바리데기》 등에서 한국의 전통적 서사와 리얼리즘을 연결하는 탈식민 문학(postcolonial literature)적 전략입니다. 197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남미 문학에서 널리 채택됐던 스타일이지요. 사실 노벨문학상은 이미 탈식민 문학적 서사 양식을 구사하는 작가들에게 상을 줬어요. 새삼스레 황 작가에게 또 상을 주기는 부담스러웠을 겁니다.”
둘째, 한강의 문체다.
― 한림원은 한강의 글을 두고 ‘시적(詩的) 산문’이라 평가했습니다.
“노벨문학상이 의외로 전위적(前衛的)입니다. 밥 딜런을 수상자로 선정(2016년)하기도 했고, 소설이 아닌 논픽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쓴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에게도 상을 줬지요.(2015년) 이번에 한강에게 상을 준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세계 문학의 문체가 예전엔 길고 장중하고 드라마틱했습니다. 그런데 흐름이 변한 거죠. 시적 산문이란 표현처럼 감각적인 단문을 한림원이 하나의 스타일로 인식한 것 같아요. 한강은 역대 수상 작가와 비교해보면 나이(1970년생)도 어린 편입니다.”
― 한강의 작품들이 번역이 잘 된 것도 무시할 수 없겠네요.
“당연합니다. 한강의 문장을 보면, 번역이 쉬운 보편어를 구사합니다. 고유지명이나 복잡한 고유어를 많이 안 써요. 광주 5·18을 다루면서도 고유어가 많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번역에서 장점으로 작용한 거죠.”
세 번째 이유는 한국 문화의 역량이 인정받았다는 점이다. 방 교수의 말이다.
“아시아에서는 중국 작가 2명, 일본 작가 2명(일본계 영국인인 이시구로 가즈오를 포함하면 3명)이 노벨문학상을 받았습니다. 한국이 정치, 사회, 문화, 경제적인 분야에서 약진해왔잖아요. 이제 한국에 줄 차례라는 판단을 했을 텐데, 그게 누구냐 살펴봤을 때 한강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정치 영향력이 너무 센 한국 문학
― 케이팝(K-pop)이나 한국 영화는 국제무대에서 사랑을 받았지요. 한국 문학은 상대적으로 늦게 인정을 받은 것 같습니다. 한국 문학이 다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체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을까요.
“그렇지요. 저는 그 원인을 사회 환경에서 찾습니다. 한국 사회는 일단 크기가 작습니다. 인구가 적다는 얘기지요. 여기에 더해 정치와 개인 사이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요. 정치의 영향력이 너무 셉니다. 작가의 작품 세계가 세분화·전문화되고 집단으로부터 좀 먼 거리에 머무르며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기 힘든 환경이에요.”
음악인들도 비슷한 얘기를 한다. ‘인구가 1억 명은 되어야 다양한 장르가 탄생할 수 있다’는 얘기를 여러 번 들었다. 이를테면 일본(인구 1억2500만 명)처럼 말이다. 국립한국문학관장인 문정희 시인도 기자에게 “한국의 현대 시인들이 특정 경향으로 쏠리는 현상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소설도 그럴까. 방 교수의 답이다.
“소설도 그래요. 한국 문학의 약점입니다. 청년적인 것에 머무는 경향도 있어요. 작가가 젊은 시절에 쓴 작품이 제일 좋은 식으로요.”
― 사유가 깊어지지 않는다는 뜻인가요?
“그렇습니다. 작가가 침잠해서 깊은 작품을 쓸 수 있는 여유를 갖기 힘듭니다. 그만큼 문단 내에서 회전이 빠르고 얕아요. 상업주의적 메커니즘이 작가를 소모하는 것도 큰 문제예요. 작가를 소비하고 껍데기만 남기고 버립니다.”
― 그게 무슨 뜻인가요?
“재능 있는 작가가 괜찮은 장편 소설을 내놓으며 등단하면 그 후엔 계속 단편을 쓰게 돼요. 작가가 돈 벌고 인기를 누려야 되니 자꾸 단편 소설 위주로 집필합니다. 문단 체질 자체가 긴 호흡을 유지하기 힘들어요.”
“단편 위주의 韓 문단”
― 장편을 쓰고 싶다면 작가 본인이 쓰면 되잖아요.
“예를 들면, 문학상들이 단편 위주예요. 이상문학상도 이효석문학상도 단편에 상을 주지요. 장편을 선정하는 건 동인문학상 정도인데 역시 단편으로 성장한 사람들이 쓴 장편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요.”
― 한국 소설계 자체가 단편에 치우쳐져 있군요.
“과거에도 뛰어나게 예술적인 장편이 없었던 것을 보면 문단 자체의 체질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요즘 들어서는 박경리 작가처럼 내공과 끈기가 있는 작가를 찾기 힘들어요.”
― 《토지(土地)》만 해도 총 20권이지요. 최명희 작가의 《혼불》도 총 10권이고요. 이런 작품들이 또 탄생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한국은 너무 단문 위주의 디지털 사회가 되기도 했어요. 한국 문학이 모든 장르에서 골고루 뛰어나긴 힘들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화가나 공예 작가들 중 간혹 아주 우수한 작가가 한두 명씩은 나오잖아요. 문학에서도 이런 문제적인 작가가 배출될 거라 봐요.”
― 아직 배출되지 않았다는 뜻인가요?
“문제적인 작가들이 과거엔 있었지요. 해방 전에는 춘원 이광수와 이상이 그랬고, 해방 후엔 최인훈입니다. 박경리 작가도 들 수 있고요.”
― 춘원은 살아생전에 이미 조선 3대 천재(춘원 이광수, 육당 최남선, 벽초 홍명희) 중 한 명으로 꼽혔지요. 문학에도 그만큼 재주가 있었나요?
“작가로서 이광수는 천재였습니다. 독자들의 감정을 다루는 데 능했어요. 이광수는 한국 문학의 뼈대를 세웠어요. 한국 소설의 현대적 체질을 구축했다고 할까요. 이광수가 없었으면 《조선문단》이라는 잡지는 없었을 겁니다. 《조선문단》은 채만식, 박화성(朴花城·1904~1988년) 등 여러 작가를 발굴했고요.”
― 춘원이 세운 뼈대가 아직도 유효한가요?
“그렇지요. 한국 문학은 약간 정치적이면서 인생론적이에요. 여기에 춘원이 미친 영향은 절대적이에요. 이상(李箱·1910~1937년) 역시 너무나 천재적이지요. 춘원도 현대의 초입에서 탈현대적인 것까지 생각했는데, 이상은 현대적 세계를 뛰어넘는 문제를 명백히 고민했어요. 막시스트(Marxist)도 아니면서 상품과 화폐로 이루어진 현대적·환금적(換金的)인 세계를 굉장히 염오(厭惡)했어요. 삶과 죽음이라는 문제를 깊이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노벨상에 가장 가까웠던 최인훈”
― 삶과 죽음을 고민한 작가라면 여럿 있지 않나요?
“별로 없어요. 고민이야 다 했겠지요. 그걸 작품으로 절절하게 표현하는 게 중요합니다. 현대로 오면 《죽음의 한 연구》를 쓴 박상륭 작가 정도 있어요. 이런 작가가 사실 귀한 작가입니다.”
― 왜 최인훈 작가를 해방 후의 문제적 작가로 꼽았나요?
“최인훈 작가는 한강 이전에 노벨문학상에 가장 가까이 있었던 작가입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반열에 오를 만한 실력과 가치를 갖고 있어요. 시대정신과 주제의식, 이념의 문제를 사고하는 방식 모두 뛰어난 대단한 작가입니다. 한국 현대사의 운명을 한 몸에 지고 한국 전쟁과 분단 문제를 고민했어요. 《광장》 《회색인》 《서유기》 《화두》 한 편 한 편이 다 문제작이에요.”
― 그중에서도 한 편을 뽑는다면요?
“《화두》지요. 한국 현대사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이에요. 작가들은 세계 문단에 소개되고 그들과 교류하면서 더 세련되고 진일보하기도 하거든요. 집필 활동 당시에 번역이 제대로 되어, 외국에 소개가 됐다면 충분히 수상할 수 있었을 거라 봅니다.”
― 그런가요? 소설이 아닌 다른 문학 장르의 작가로는 한국에선 누굴 대가로 꼽을 수 있나요.
“시에는 김지하가 있지요. 얼마 전 돌아가신 뮤지션 김민기(1951~2024년)씨도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김민기의 노래 가사엔 가난한 사람들, 힘든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어요. 이념화되기 이전의 넓고 깊은 마음의 울림, 연민 같은 것이 담겨 있습니다. 밥 딜런보다 낫다고 봐요.”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 이슬처럼/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아침이슬, 김민기 1집)
〈나 태어난 이 강산에 군인이 되어/ 꽃 피고 눈 내리기 어언 삼십년/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나 죽어 이 흙 속에 묻히면 그만이지/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푸른 옷에 실려간 꽃다운 이 내 청춘/ 아들아 내 딸들아 서러워 마라/ 너희들은 자랑스런 군인의 자식이다/ 좋은 옷 입고프냐 맛난 것 먹고프냐/ 아서라 말아라 군인 아들 너로다〉(늙은 군인의 노래, 김민기 전집3)
“제3세계 문화 끌어안아야”
― 시나 노래 가사와 대척점에 있는 대하소설(大河小說)을 쓴 박경리(朴景利·1926~ 2008년) 작가도 빼놓을 수 없지요.
“박경리 역시 문학계의 큰 사상가입니다. 1926년생이니 학창 시절을 온통 일제강점기에 보내고 19세에 해방을 맞았잖아요. 일제 말기에 도스토옙스키 사상이 부각되고 그 영향 속에서 니콜라이 베르댜예프 같은 러시아 실존주의(實存主義) 사상가들이 주목받았거든요. 그러니 박경리는 실존주의를 체질화했어요.”
― 러시아 문학의 영향을 받은 건가요?
“‘영향을 받았다’라기보다는 ‘공유했다’고 얘기해야지요. 영향을 받았다고만 하면 수동적 존재가 됩니다. 인간은 좋은 걸 보면 갖고 싶어 하거든요. 원래 내가 갖고 있는 게 있기 때문에 좋은 걸 받아들이면 더 풍요로워집니다. 한 사회가 문화적인 변화를 겪는 과정에서 다양해지고 풍요롭게 되려는 의식이 굉장히 중요해요.”
― 일제 시대를 우리는 불행했던 시기로만 규명하려고 하지요.
“이를테면 ‘일본 문화에 영향을 받았다’면서 ‘마이너스’였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사실은 그게 플러스인 겁니다. 시련을 견디고 우여곡절을 다 겪어내면 플러스가 됩니다. 많이 섞이고 많이 가져온 사회가 더 풍요로워져요. 한국 사회가 중국의 외침, 원나라 간섭기, 일제강점기, 미군정 시기를 겪으며 여러 가지가 섞였고, 지금 꽃피었습니다. 그게 한류인 거예요.”
― 그렇다면 다음 시기의 한국 문화는 어떤 모습일까요. 지금 우리는 다양한 문화를 제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걸까요?
“우린 아직도 다양성이 부족해요. 유럽과 미국에 치중하고 있어요. 그동안 우리가 경시했던, 우리의 등 뒤에 있는 것 같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문화들을 끌어안고 그들의 문화를 흡수하면 우리 안에 더 많은 가능성이 생겨날 거예요. 그래야 우리 스스로를 균형 있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 흔히 ‘제3세계’라 뭉뚱그려 표현하는 나라들이군요.
“그 문화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야만적이지 않아요. 너무 한쪽만 바라보면 외눈박이가 될 수 있습니다. 일본이 그랬듯이요. 일본에 다케우치 요시미(竹內好·1910~1977년)라는 중문학자가 있었어요. 다케우치는 일본이 너무 유럽만 바라보고 있다고 비판했어요. ‘우리에게는 중국이 필요하다’면서요. 일본은 ‘탈아입구(脫亞入歐)’라고 유럽만 바라봤잖아요.”
― 그러다 결국 전쟁을 택했지요.
“막다른 골목에서 대결을 택한 겁니다. 1945년 패배한 후엔 미국 중심으로 갔잖아요. 승리자만 바라본 거죠. 그런 사이에 한국이 문화적으로 일본을 넘어서고 있잖아요.”
하루키 열풍이 남긴 것
궁금했다. 영화나 대중음악은 몰라도 문학에서 한국이 일본을 넘어섰을까. 앞서 말했듯, 일본은 3명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1968년엔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1994년엔 오에 겐자부로, 2017년엔 이시구로 가즈오가 영광의 주인공이었다. 방 교수가 답했다.
“문학에서는 아직 넘어섰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현대 일본 문학이 개척한 것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예를 들면 일본의 사소설(私小說) 중엔 굉장히 심도 깊은 작품들이 있어요.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1867~1916년)를 보면 지식인의 고뇌, 심중(心中)에 흐르는 모럴 감각 이런 것들을 표현했는데, 한국에는 이런 작가가 없어요. 굳이 들자면 이광수인데, 이광수는 이상주의적이었어요. 사회 변혁에 더 관심을 기울였거든요.”
― 식민 국가와 피식민 국가의 삶이 달랐던 탓도 있겠군요.
“일본의 사소설을 보면 이것밖에는 할 수 없다는 막다른 골목에 처한 자의 의식이 보이거든요. 진실성이 있어요. 그건 참 장점이에요. 문화에서 좋은 건 다 주고받는 거예요. 지금은 일본 사람들이 케이팝이니 뭐니 가져가서 흉내 내고 있잖아요.”
한 명의 일본 작가가 한국 독자들을 그야말로 사로잡았던 시기가 있었다. 바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1949~)다. 그 역시 노벨문학상 후보로 오랜 기간 거론되어왔다.
― 이번 한강 작가의 수상으로 하루키는 노벨문학상에서 더욱 멀어졌다고 봐야 하나요.
“노벨문학상 역대 수상 작가를 살펴보면, 대개 진보 색채를 띤 작가가 선정됩니다. 좌파 중에서도 스웨덴 좌파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마르크시즘적인 전체주의를 좋아하지 않아요. 러시아의 솔제니친, 중국의 가오싱젠 모두 반체제 작가였잖아요. 이런 맥락에서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를 읽으며 좀 걸리는 대목이 있었어요.”
― 어떤 대목인가요.
“하루키는 《해변의 카프카》에서 태평양 전쟁에 대한 해석을 우의적으로 우화화하거든요.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의 전범 국가잖아요. 일본 작가가 2차 대전을 그렇게 처리한다는 건, 작가의 가치의식을 문제 삼을 수 있거든요. 하루키 자체는 일본 중심의 사고에 동조하지 않는 작가인데, 2차 대전에 대한 시각은 굉장히 일본적인 형태로 표출한 겁니다. 이런 점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어요.”
하루키의 대표작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는 한국에서만 100만 부 넘게 팔렸다. 1990년대부터 20년 넘게 한국 사회에서 하루키 열풍은 지속됐다.
방 교수는 하루키 바람을 자신의 언어로 포착했다. 소설집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답함》(2015)이다. 주인공은 하와이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를 만난다. 방 교수가 실제로 하와이에서 하루키를 만난 경험을 소설화했다.
― 하루키는 한국 문학에 어떤 흔적을 남겼나요.
“하루키 소설 속 주인공이 말합니다. 한 번뿐인 삶을 끝없이 생겨나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왜 바치냐고요. 이건 이상주의에 대한 거부, 집단주의에 대한 반동이었어요. 68혁명 이후 세대의 절망과 허무를 담은 거죠. 마르크스 혁명주의는 집합주의적인 규율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키의 반동이 가치 있었던 겁니다. 고독한 개체의 문제를 마르크스주의는 해결한 적이 없거든요. 당위적 가치를 거절하는 삶의 스타일, 어떤 절실한 실존의 감각을 하루키가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집단주의 이상이란 화두
《무라카미하루키에게 답함》 속 한 대목이다.
〈그곳 또한 사회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대학원으로 갔다. 살아남았기 때문에, 잃어버렸기 때문에 ‘상실의 시대’를 읽었다. 그리고 그 모든 하루키를 읽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읽고 있던 책 속에서 하루키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사회라는 것의 개선을 위해 살지 않겠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동안 수없이 많은 또 다른 문제들이 생겨나는 것을, 무엇 때문에 오로지 한 번뿐인 삶을 그렇게 덧없이 허비한단 말인가.’〉
― 하루키의 스타일이 당시 한국 사회에도 필요했던 걸까요?
“정답은 없어요. 저는 그런 자세가 싫었습니다. 집합주의에 물들었던 패배자의 심리에서 하루키가 그렇게 빠져나가는 게 싫었어요. 그런 삶의 자세가 인기를 얻으니 절망적이었죠. 그때 저는 집합주의적 이상에 판돈을 걸어놓고 있었거든요. 집단주의적 이상은 정말 의미 없는 것인가. 모두가 함께 꾸는 꿈이라는 건 없는 것인가. 저에겐 굉장한 화두였어요.”
방 교수가 집단주의에 판돈을 건 때는 대학 시절이었다.
“1987년 6월 항쟁 후 이게 혁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동참해야 한다고 생각해 지하 조직에 찾아들어갔어요. 두세 군데를 거쳐 노동계급운동 조직에 들어갔습니다. 조직에서 하필 저에게 세포조직 교육을 맡겼어요. 그때는 ‘리프로덕션(reproduction·재생산)’, 줄여서 ‘알피(RP)’라고 불렀지요.”
― 그때부터 교수 일을 했군요.
“그러니 마르크시즘 서적들을 두 번 세 번 공부하고 정리해야 했어요. 교안을 작성하고 가르치다 보니 공부할수록 모르는 게 많이 생겨요. 온갖 이론적인 문제들이 해결이 안 되는 겁니다. 당시 마지막에 나온 이론이 서브임페리얼리즘(sub-imperialism·아제국주의)이었어요. 한국의 자본주의가 신(新)식민지가 아니라 서브임페리얼리즘으로 진화할 것인가, 그렇다면 이게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답을 모르겠는 겁니다.”
― 운동권 선배들도 답을 몰랐나요?
“그들도 정확히는 모르는데 확실히 저보다는 잘 아는 겁니다. 왜 잘 알까 싶어서 관찰했어요. 답을 하는 선배들은 전부 박사 과정을 밟고 있더군요. 답이 조직 내부가 아니라 대학원에서 나오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대학원에 진학했어요.”
― 그런데 6월 항쟁 후의 민주화 운동이란 1945년 8월 16일부터 독립 운동하는 것과 비슷한 것 아닌가요?
“진정한 혁명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진짜 사회주의 계급혁명을 위해 무언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 거죠.”
대변하는 작가 없는 北 주민들
방 교수는 이지명, 도명학, 장해성 등 탈북(脫北) 작가들의 작품을 한국 문단에 소개해왔다. ‘한국적 디아스포라(diaspora)’들이다. 그의 설명이다.
“제가 탈북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분단 체제라는 개념을 믿었어요. ‘남북한 공히 적대적 분단 상황에 기초하고 의지해 권력을 유지하며 민중을 착취하고 있다’ 이게 분단 체제입니다. 그런데 6월 항쟁 후 민주화가 시작됐어요. 남쪽에서 전두환 체제가 무너졌어요. 그러면 분단 체제의 다른 한 축도 민주화돼야 하잖아요.”
― 그렇게 되지 않았지요.
“분단 체제가 무너지고 한국인들이 새로운 역사적 단계에 들어서려면 북한에서의 민주화가 정말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해요. 분단 체제를 외친 사람들 중 아무도 이걸 언급하지 않는 게 충격이었습니다. 꼭 과제라서가 아니라 저곳에서 인권 문제가 정말 심각하잖아요. 한국에서의 인권 문제보다 상황이 더 급박한데 왜 다들 가만히 있냐는 거죠. 그래서 저는 운동권 노선의 연장선상에서 이 문제를 좌시할 수 없는 겁니다. 그것이 변질되지 않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고난의 행군 시기(1996~1999년) 휴전선 너머에선 34만 명 이상이 아사(餓死)했다. 우리와 같은 말을 쓰고 같은 글을 쓰는 이들이었다. 그 죽음의 행군을 한국 문학은 얼마나 기록했을까. 구소련의 그 엄혹했던 시기에도 내부의 신음을 전해준 작가들이 있었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블라디미르 막시모프 등이다. 북한 체제 장막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언론이 엿볼 수 없다면 문학으로라도 노래해야 하는 것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그 땅에서 탈출해온 작가들이라도 귀히 여겨야 하는 것 아니냔 말이다.
“탈북 작가들의 수는 얼마 안되지만 보배입니다. 이들이 열심히 쓰고 자신을 잘 전개해나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해요. 그런데 우리 문학계에서 이들의 자리가 너무 협소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많은 이가 ‘타자(他者)의 삶’을 외치지만 그냥 말뿐이에요. 타자들이 정말 어떻게 사는지 관심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이런 면에서 보면 한국 사회는 참 자가당착(自家撞着)적입니다.”
IMF 세대의 경제주의 문학
― 북한 인권 문제를 외면하고 외치는 ‘타자’와 ‘약자’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공장에서 일하면, 여성 혹은 성소수자라면 반드시 약자로 분류되어야 할까요. 북한 사람들처럼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 처한 게 아니잖아요.
“북한 주민들은 절대적 약자, 절대적 타자입니다. 너무 끔찍하지요. 한국 내 인권도 중요하지만 우선순위가 있잖아요.”
생각해보니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 속 어느 핍박받은 민족도 자신들의 고통을 기록하고 알려준 작가를 갖고 있었다. 북한은 아니다. 북한 내부에도 없을뿐더러 탈출해 나온 작가들의 목소리에도 힘이 실리지 않는다. 예외적으로 북한에 거주 중인 걸로 알려진 반체제 작가 반디 정도가 있다.
북한 주민들이 굶어 죽던 시기 한국에는 소비 문화의 세례를 받은 이들이 사회에 진출했다. 엑스(X) 세대다. 방 교수의 말이다.
“냉전 체제가 무너진 후 한국 문단에서도 변화가 일어났어요. 깊은 사유(思惟), 유장(悠長)한 생각 같은 게 무너졌지요. 민주주의의 자유로움과 자본주의의 풍요로움을 처음으로 맛본 X 세대가 출현했어요. X 세대는 집단주의를 싫어했는데, 사유하는 게 아니라 자유와 소비를 구가하는 쪽으로 빠졌습니다. 그런데 1997년에 외환 위기가 찾아온 겁니다.”
― X 세대 다음 세대인 IMF 세대가 탄생했군요.
“이들은 다시 경제 문제로 돌아갔어요. 취직을 못 해서, 비정규직이라, 해고당할 처지라 불행하다는 식이에요. IMF 세대 문학은 일종의 경제주의 문학이지요. 그런데 인생은 그것 이상이거든요. 취직하고 돈이 생기면 인간의 문제가 없어질까요? 인생을 풍요롭게 살려면 돈이 없고 힘들어도 그걸 넘어서서 사유해야 됩니다. 사실 그런 사유는 우리 문학 전통에 일찌감치 등장했어요. 김시습(金時習·1435~1493년)의 《금오신화(金鰲新話)》입니다.”
― 《금오신화》에 그런 얘기가 나오나요?
“《금오신화》의 5개 단편 중에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가 있습니다. 철과 구리로 만들어진 세상이 등장해요. 낮이 되면 작열하는 태양에 철과 구리가 다 녹아내립니다. 철로 상징되는 화폐가 지배하는 세상을 떠올릴 수 있어요. 이게 김시습이 당대에 생각한 지옥인 겁니다.”
미투 운동이 남긴 것
― 돈이 지배하는 세상을 은유했다고 볼 수 있겠네요.
“2000년대 후반부터 문학의 정치가 등장합니다. 용산 참사(2009년), 쌍용자동차 해고 사태(2009년), 세월호 사고(2014년)를 겪는 과정에서 문학계에서는 좌파들이 흐름을 주도했어요. 문학은 원래 약자들 편이라고 하잖아요. 문학의 정치라는 건 폭이 상당히 넓습니다. 시간이 흘러 문단의 화두가 페미니즘, 퀴어(Queer)로 넘어갔어요. 2018년 즈음 ‘미투(Me too)’ 운동이 시작됐잖아요.”
― 미투 운동 이후 벌써 7년 가까이 흘렀네요. 문학에 어떤 흔적을 남겼다고 보세요?
“‘착한 소설’의 등장이죠. 정치적·윤리적으로 착한 사람들만 등장하는 소설이요. 문학이 검열되고 있어요. 출판 단계에서부터 특정 장면이나 언어 표현이 검열됩니다. 과거 소설도 재검토되고 있잖아요.”
― 고전 소설에도 검열에 걸릴 장면들이 많겠네요. 언젠가는 문단의 흐름이 또 바뀌겠지요?
“30년은 더 갈 거라 봅니다. 한국 사회에서 시대적 조류로 40년 전부터 이어져 온 마르크시즘을 보세요. 퇴행기에 있지만 지금도 영향력을 미치고 있잖아요. 그러니 지금의 페미니즘, 퀴어 문학도 앞으로 30년은 더 지속될 겁니다. 이걸 바꿀 수 있는 게 있긴 합니다. 진짜 위대한 작가의 탄생이나 한반도 통일 같은 거죠. 저는 북한 체제가 무너질 거라 봅니다.”
―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고 하잖아요. 문학이 현실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므로 지금이 문학이 뭔지 다시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문학이 뭔지, 소설이 뭔지 다시 생각해서 문학인 각자가 자신의 이정표를 세워야 해요. 저는 문학이 인생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경제와 정치 문제만 볼 게 아니라요. 삶과 죽음, 생명의 문제에서 우리 문학이 멀어졌어요.”
사랑이 필요한 시대
― 한국 문학이 재발견해야 할 시대정신은 뭘까요.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성애를 포함한 인간애지요. 톨스토이든 도스토옙스키든, 현실의 문제를 앓고 있는 사람들이 구원으로 여겼던 게 바로 사랑입니다. 이광수와 최인훈이 얘기한 것도 결국 사랑입니다. 이광수는 소설 《사랑》에서 부처님의 사랑을 얘기해요.”
이광수는 법화경(法華經)을 통해 큰 깨달음을 얻었다. 소설 《사랑》에서 주인공 안빈은 이렇게 말한다.
〈석가여래도 한 번에 한 사람씩 구원하신 것이요. 그의 수없는 전생에는 한 생 한 사람씩 건진 일도 많으셨고 그래서 한 번 세상에 날 적마다 한 중생을 건져서 천 생에 천 사람 만 생에 만 사람, 이 모양으로 중생을 건지는 것이 석가여래의 생활이요, 또 모든 보살의 생활이요.〉
방 교수의 말이 이어졌다.
“성경도 비슷한 얘기를 합니다. 이런 구절이 있어요.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결국 한 사람을 구해주는 사랑이 중요한 겁니다. 마르크시즘은 사회적 이상을 말합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이성주의자 이반이 ‘인류 전체를 사랑할 순 있으나 한 사람을 사랑할 순 없다’고 하는 거처럼요. 저도 그런 것들에 들떠서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 보통 사람이 평생 종교적 사랑을 실천하며 산다는 게 쉽지 않잖아요.
“그게 최인훈이 고민한 겁니다. 종교적 차원의 사랑이 세속화될 수 있는 방법이지요. 《회색인》에서 주인공 독고준에게 친구가 이렇게 말합니다. ‘다가올 혁명을 우리가 치러야 한다.’ 그러자 독고준이 답해요. ‘나의 혁명은 따로 있다. 나의 혁명을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사랑과 시간이다.’”
― 왜 사랑과 시간이 필요한가요?
“마르크시즘은 인류를 사랑한다면서 먼저 적대를 만들었어요. 부르주아를 적대해야 전 인류가 부(富)를 나눠갖고 서로 사랑하는 사회가 될 수 있다면서요. 최인훈은 생각한 겁니다. 사랑을 명분 삼아 미움이나 투쟁을 조직하는 사회가 아니라 즉각 사랑이 실현될 수 있는 사회를 발명해내야 한다고요. 그 방법을 연구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한 겁니다.”
― 지금 한국에 왜 사랑이 필요할까요.
“이 세계가 얼마나 싸우고 있어요? 곳곳에서 극한의 투쟁이 일어나고 있어요. 한국에서도 그 투쟁이 더 깊어질 것 같습니다.”
방 교수는 자신의 시 ‘역설’에서 회색(灰色)빛 세상을 노래했다. 흑백의 갈등을 넘어선 세상.
〈회색은 세상에서 가장 투명한 빛/ 흰 빛보다 검은 빛보다 순수한 빛/ 세상을 바닥까지 들여다본 이들만/ 늘 자기 곁에 숨겨두고 아끼는 빛/ 가장 견고한 것은 흘러 다니는 것/ 저 구름과 바람, 일렁이는 산 안개/ 바닥 없는 세상 바닥 깊은 곳에/ 형체도 빛깔도 없이 머물러 있는 것〉⊙
10월 10일, 그야말로 ‘한강의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한국 작가 한강이 121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아시아 여성 작가로서는 최초다. 한강에게 노벨문학상이 돌아간 이유는 뭘까. 방 교수는 세 가지 얘기를 했다.
첫째, 한강 소설의 주제의식이다.
“지금은 세계가 전쟁으로 꽉 차 있는 시대지요. 《채식주의자》에서 육식성은 인류사의 폭력을 상징합니다. 광주 5·18을 다룬 《소년이 온다》나 제주 4·3사건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는 한국이 민주화되는 과정에서 겪은 상처를 다룹니다. 이 과정에서 일어난 위력 역시 육식성에 속하지요. 이런 식의 문제제기를 스웨덴 한림원이 높이 평가한 듯합니다.”
―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이 있는 작가로 고은이나 황석영을 드는 이들도 있었는데요.
“박경리, 최인훈, 김지하의 장려한 문학이 세상을 떠났고 고은 시인은 미투로 불행한 상황에 처했지요. 황석영 작가는 도전적인 실험들을 해왔어요. 《심청》 《손님》 《바리데기》 등에서 한국의 전통적 서사와 리얼리즘을 연결하는 탈식민 문학(postcolonial literature)적 전략입니다. 197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남미 문학에서 널리 채택됐던 스타일이지요. 사실 노벨문학상은 이미 탈식민 문학적 서사 양식을 구사하는 작가들에게 상을 줬어요. 새삼스레 황 작가에게 또 상을 주기는 부담스러웠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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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 사진=조선DB |
― 한림원은 한강의 글을 두고 ‘시적(詩的) 산문’이라 평가했습니다.
“노벨문학상이 의외로 전위적(前衛的)입니다. 밥 딜런을 수상자로 선정(2016년)하기도 했고, 소설이 아닌 논픽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쓴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에게도 상을 줬지요.(2015년) 이번에 한강에게 상을 준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세계 문학의 문체가 예전엔 길고 장중하고 드라마틱했습니다. 그런데 흐름이 변한 거죠. 시적 산문이란 표현처럼 감각적인 단문을 한림원이 하나의 스타일로 인식한 것 같아요. 한강은 역대 수상 작가와 비교해보면 나이(1970년생)도 어린 편입니다.”
― 한강의 작품들이 번역이 잘 된 것도 무시할 수 없겠네요.
“당연합니다. 한강의 문장을 보면, 번역이 쉬운 보편어를 구사합니다. 고유지명이나 복잡한 고유어를 많이 안 써요. 광주 5·18을 다루면서도 고유어가 많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번역에서 장점으로 작용한 거죠.”
세 번째 이유는 한국 문화의 역량이 인정받았다는 점이다. 방 교수의 말이다.
“아시아에서는 중국 작가 2명, 일본 작가 2명(일본계 영국인인 이시구로 가즈오를 포함하면 3명)이 노벨문학상을 받았습니다. 한국이 정치, 사회, 문화, 경제적인 분야에서 약진해왔잖아요. 이제 한국에 줄 차례라는 판단을 했을 텐데, 그게 누구냐 살펴봤을 때 한강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정치 영향력이 너무 센 한국 문학
― 케이팝(K-pop)이나 한국 영화는 국제무대에서 사랑을 받았지요. 한국 문학은 상대적으로 늦게 인정을 받은 것 같습니다. 한국 문학이 다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체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을까요.
“그렇지요. 저는 그 원인을 사회 환경에서 찾습니다. 한국 사회는 일단 크기가 작습니다. 인구가 적다는 얘기지요. 여기에 더해 정치와 개인 사이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요. 정치의 영향력이 너무 셉니다. 작가의 작품 세계가 세분화·전문화되고 집단으로부터 좀 먼 거리에 머무르며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기 힘든 환경이에요.”
음악인들도 비슷한 얘기를 한다. ‘인구가 1억 명은 되어야 다양한 장르가 탄생할 수 있다’는 얘기를 여러 번 들었다. 이를테면 일본(인구 1억2500만 명)처럼 말이다. 국립한국문학관장인 문정희 시인도 기자에게 “한국의 현대 시인들이 특정 경향으로 쏠리는 현상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소설도 그럴까. 방 교수의 답이다.
“소설도 그래요. 한국 문학의 약점입니다. 청년적인 것에 머무는 경향도 있어요. 작가가 젊은 시절에 쓴 작품이 제일 좋은 식으로요.”
― 사유가 깊어지지 않는다는 뜻인가요?
“그렇습니다. 작가가 침잠해서 깊은 작품을 쓸 수 있는 여유를 갖기 힘듭니다. 그만큼 문단 내에서 회전이 빠르고 얕아요. 상업주의적 메커니즘이 작가를 소모하는 것도 큰 문제예요. 작가를 소비하고 껍데기만 남기고 버립니다.”
― 그게 무슨 뜻인가요?
“재능 있는 작가가 괜찮은 장편 소설을 내놓으며 등단하면 그 후엔 계속 단편을 쓰게 돼요. 작가가 돈 벌고 인기를 누려야 되니 자꾸 단편 소설 위주로 집필합니다. 문단 체질 자체가 긴 호흡을 유지하기 힘들어요.”
“단편 위주의 韓 문단”
― 장편을 쓰고 싶다면 작가 본인이 쓰면 되잖아요.
“예를 들면, 문학상들이 단편 위주예요. 이상문학상도 이효석문학상도 단편에 상을 주지요. 장편을 선정하는 건 동인문학상 정도인데 역시 단편으로 성장한 사람들이 쓴 장편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요.”
― 한국 소설계 자체가 단편에 치우쳐져 있군요.
“과거에도 뛰어나게 예술적인 장편이 없었던 것을 보면 문단 자체의 체질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요즘 들어서는 박경리 작가처럼 내공과 끈기가 있는 작가를 찾기 힘들어요.”
― 《토지(土地)》만 해도 총 20권이지요. 최명희 작가의 《혼불》도 총 10권이고요. 이런 작품들이 또 탄생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한국은 너무 단문 위주의 디지털 사회가 되기도 했어요. 한국 문학이 모든 장르에서 골고루 뛰어나긴 힘들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화가나 공예 작가들 중 간혹 아주 우수한 작가가 한두 명씩은 나오잖아요. 문학에서도 이런 문제적인 작가가 배출될 거라 봐요.”
― 아직 배출되지 않았다는 뜻인가요?
“문제적인 작가들이 과거엔 있었지요. 해방 전에는 춘원 이광수와 이상이 그랬고, 해방 후엔 최인훈입니다. 박경리 작가도 들 수 있고요.”
― 춘원은 살아생전에 이미 조선 3대 천재(춘원 이광수, 육당 최남선, 벽초 홍명희) 중 한 명으로 꼽혔지요. 문학에도 그만큼 재주가 있었나요?
“작가로서 이광수는 천재였습니다. 독자들의 감정을 다루는 데 능했어요. 이광수는 한국 문학의 뼈대를 세웠어요. 한국 소설의 현대적 체질을 구축했다고 할까요. 이광수가 없었으면 《조선문단》이라는 잡지는 없었을 겁니다. 《조선문단》은 채만식, 박화성(朴花城·1904~1988년) 등 여러 작가를 발굴했고요.”
― 춘원이 세운 뼈대가 아직도 유효한가요?
“그렇지요. 한국 문학은 약간 정치적이면서 인생론적이에요. 여기에 춘원이 미친 영향은 절대적이에요. 이상(李箱·1910~1937년) 역시 너무나 천재적이지요. 춘원도 현대의 초입에서 탈현대적인 것까지 생각했는데, 이상은 현대적 세계를 뛰어넘는 문제를 명백히 고민했어요. 막시스트(Marxist)도 아니면서 상품과 화폐로 이루어진 현대적·환금적(換金的)인 세계를 굉장히 염오(厭惡)했어요. 삶과 죽음이라는 문제를 깊이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노벨상에 가장 가까웠던 최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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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화두》를 쓴 최인훈 작가. 사진=조선DB |
“별로 없어요. 고민이야 다 했겠지요. 그걸 작품으로 절절하게 표현하는 게 중요합니다. 현대로 오면 《죽음의 한 연구》를 쓴 박상륭 작가 정도 있어요. 이런 작가가 사실 귀한 작가입니다.”
― 왜 최인훈 작가를 해방 후의 문제적 작가로 꼽았나요?
“최인훈 작가는 한강 이전에 노벨문학상에 가장 가까이 있었던 작가입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반열에 오를 만한 실력과 가치를 갖고 있어요. 시대정신과 주제의식, 이념의 문제를 사고하는 방식 모두 뛰어난 대단한 작가입니다. 한국 현대사의 운명을 한 몸에 지고 한국 전쟁과 분단 문제를 고민했어요. 《광장》 《회색인》 《서유기》 《화두》 한 편 한 편이 다 문제작이에요.”
― 그중에서도 한 편을 뽑는다면요?
“《화두》지요. 한국 현대사 전체를 관통하는 질문이에요. 작가들은 세계 문단에 소개되고 그들과 교류하면서 더 세련되고 진일보하기도 하거든요. 집필 활동 당시에 번역이 제대로 되어, 외국에 소개가 됐다면 충분히 수상할 수 있었을 거라 봅니다.”
― 그런가요? 소설이 아닌 다른 문학 장르의 작가로는 한국에선 누굴 대가로 꼽을 수 있나요.
“시에는 김지하가 있지요. 얼마 전 돌아가신 뮤지션 김민기(1951~2024년)씨도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김민기의 노래 가사엔 가난한 사람들, 힘든 사람들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어요. 이념화되기 이전의 넓고 깊은 마음의 울림, 연민 같은 것이 담겨 있습니다. 밥 딜런보다 낫다고 봐요.”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 이슬처럼/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아침이슬, 김민기 1집)
〈나 태어난 이 강산에 군인이 되어/ 꽃 피고 눈 내리기 어언 삼십년/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나 죽어 이 흙 속에 묻히면 그만이지/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푸른 옷에 실려간 꽃다운 이 내 청춘/ 아들아 내 딸들아 서러워 마라/ 너희들은 자랑스런 군인의 자식이다/ 좋은 옷 입고프냐 맛난 것 먹고프냐/ 아서라 말아라 군인 아들 너로다〉(늙은 군인의 노래, 김민기 전집3)
“제3세계 문화 끌어안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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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교수와 박경리 작가. 2008년이다. 사진=방민호 교수 |
“박경리 역시 문학계의 큰 사상가입니다. 1926년생이니 학창 시절을 온통 일제강점기에 보내고 19세에 해방을 맞았잖아요. 일제 말기에 도스토옙스키 사상이 부각되고 그 영향 속에서 니콜라이 베르댜예프 같은 러시아 실존주의(實存主義) 사상가들이 주목받았거든요. 그러니 박경리는 실존주의를 체질화했어요.”
― 러시아 문학의 영향을 받은 건가요?
“‘영향을 받았다’라기보다는 ‘공유했다’고 얘기해야지요. 영향을 받았다고만 하면 수동적 존재가 됩니다. 인간은 좋은 걸 보면 갖고 싶어 하거든요. 원래 내가 갖고 있는 게 있기 때문에 좋은 걸 받아들이면 더 풍요로워집니다. 한 사회가 문화적인 변화를 겪는 과정에서 다양해지고 풍요롭게 되려는 의식이 굉장히 중요해요.”
― 일제 시대를 우리는 불행했던 시기로만 규명하려고 하지요.
“이를테면 ‘일본 문화에 영향을 받았다’면서 ‘마이너스’였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사실은 그게 플러스인 겁니다. 시련을 견디고 우여곡절을 다 겪어내면 플러스가 됩니다. 많이 섞이고 많이 가져온 사회가 더 풍요로워져요. 한국 사회가 중국의 외침, 원나라 간섭기, 일제강점기, 미군정 시기를 겪으며 여러 가지가 섞였고, 지금 꽃피었습니다. 그게 한류인 거예요.”
― 그렇다면 다음 시기의 한국 문화는 어떤 모습일까요. 지금 우리는 다양한 문화를 제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걸까요?
“우린 아직도 다양성이 부족해요. 유럽과 미국에 치중하고 있어요. 그동안 우리가 경시했던, 우리의 등 뒤에 있는 것 같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문화들을 끌어안고 그들의 문화를 흡수하면 우리 안에 더 많은 가능성이 생겨날 거예요. 그래야 우리 스스로를 균형 있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 흔히 ‘제3세계’라 뭉뚱그려 표현하는 나라들이군요.
“그 문화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야만적이지 않아요. 너무 한쪽만 바라보면 외눈박이가 될 수 있습니다. 일본이 그랬듯이요. 일본에 다케우치 요시미(竹內好·1910~1977년)라는 중문학자가 있었어요. 다케우치는 일본이 너무 유럽만 바라보고 있다고 비판했어요. ‘우리에게는 중국이 필요하다’면서요. 일본은 ‘탈아입구(脫亞入歐)’라고 유럽만 바라봤잖아요.”
― 그러다 결국 전쟁을 택했지요.
“막다른 골목에서 대결을 택한 겁니다. 1945년 패배한 후엔 미국 중심으로 갔잖아요. 승리자만 바라본 거죠. 그런 사이에 한국이 문화적으로 일본을 넘어서고 있잖아요.”
하루키 열풍이 남긴 것
궁금했다. 영화나 대중음악은 몰라도 문학에서 한국이 일본을 넘어섰을까. 앞서 말했듯, 일본은 3명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1968년엔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1994년엔 오에 겐자부로, 2017년엔 이시구로 가즈오가 영광의 주인공이었다. 방 교수가 답했다.
“문학에서는 아직 넘어섰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현대 일본 문학이 개척한 것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예를 들면 일본의 사소설(私小說) 중엔 굉장히 심도 깊은 작품들이 있어요.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1867~1916년)를 보면 지식인의 고뇌, 심중(心中)에 흐르는 모럴 감각 이런 것들을 표현했는데, 한국에는 이런 작가가 없어요. 굳이 들자면 이광수인데, 이광수는 이상주의적이었어요. 사회 변혁에 더 관심을 기울였거든요.”
― 식민 국가와 피식민 국가의 삶이 달랐던 탓도 있겠군요.
“일본의 사소설을 보면 이것밖에는 할 수 없다는 막다른 골목에 처한 자의 의식이 보이거든요. 진실성이 있어요. 그건 참 장점이에요. 문화에서 좋은 건 다 주고받는 거예요. 지금은 일본 사람들이 케이팝이니 뭐니 가져가서 흉내 내고 있잖아요.”
한 명의 일본 작가가 한국 독자들을 그야말로 사로잡았던 시기가 있었다. 바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1949~)다. 그 역시 노벨문학상 후보로 오랜 기간 거론되어왔다.
― 이번 한강 작가의 수상으로 하루키는 노벨문학상에서 더욱 멀어졌다고 봐야 하나요.
“노벨문학상 역대 수상 작가를 살펴보면, 대개 진보 색채를 띤 작가가 선정됩니다. 좌파 중에서도 스웨덴 좌파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마르크시즘적인 전체주의를 좋아하지 않아요. 러시아의 솔제니친, 중국의 가오싱젠 모두 반체제 작가였잖아요. 이런 맥락에서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를 읽으며 좀 걸리는 대목이 있었어요.”
― 어떤 대목인가요.
“하루키는 《해변의 카프카》에서 태평양 전쟁에 대한 해석을 우의적으로 우화화하거든요. 일본은 2차 세계대전의 전범 국가잖아요. 일본 작가가 2차 대전을 그렇게 처리한다는 건, 작가의 가치의식을 문제 삼을 수 있거든요. 하루키 자체는 일본 중심의 사고에 동조하지 않는 작가인데, 2차 대전에 대한 시각은 굉장히 일본적인 형태로 표출한 겁니다. 이런 점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어요.”
하루키의 대표작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는 한국에서만 100만 부 넘게 팔렸다. 1990년대부터 20년 넘게 한국 사회에서 하루키 열풍은 지속됐다.
방 교수는 하루키 바람을 자신의 언어로 포착했다. 소설집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답함》(2015)이다. 주인공은 하와이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를 만난다. 방 교수가 실제로 하와이에서 하루키를 만난 경험을 소설화했다.
― 하루키는 한국 문학에 어떤 흔적을 남겼나요.
“하루키 소설 속 주인공이 말합니다. 한 번뿐인 삶을 끝없이 생겨나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왜 바치냐고요. 이건 이상주의에 대한 거부, 집단주의에 대한 반동이었어요. 68혁명 이후 세대의 절망과 허무를 담은 거죠. 마르크스 혁명주의는 집합주의적인 규율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키의 반동이 가치 있었던 겁니다. 고독한 개체의 문제를 마르크스주의는 해결한 적이 없거든요. 당위적 가치를 거절하는 삶의 스타일, 어떤 절실한 실존의 감각을 하루키가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집단주의 이상이란 화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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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교수의 소설집 《무라카미하루키에게 답함》. |
〈그곳 또한 사회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대학원으로 갔다. 살아남았기 때문에, 잃어버렸기 때문에 ‘상실의 시대’를 읽었다. 그리고 그 모든 하루키를 읽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읽고 있던 책 속에서 하루키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사회라는 것의 개선을 위해 살지 않겠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동안 수없이 많은 또 다른 문제들이 생겨나는 것을, 무엇 때문에 오로지 한 번뿐인 삶을 그렇게 덧없이 허비한단 말인가.’〉
― 하루키의 스타일이 당시 한국 사회에도 필요했던 걸까요?
“정답은 없어요. 저는 그런 자세가 싫었습니다. 집합주의에 물들었던 패배자의 심리에서 하루키가 그렇게 빠져나가는 게 싫었어요. 그런 삶의 자세가 인기를 얻으니 절망적이었죠. 그때 저는 집합주의적 이상에 판돈을 걸어놓고 있었거든요. 집단주의적 이상은 정말 의미 없는 것인가. 모두가 함께 꾸는 꿈이라는 건 없는 것인가. 저에겐 굉장한 화두였어요.”
방 교수가 집단주의에 판돈을 건 때는 대학 시절이었다.
“1987년 6월 항쟁 후 이게 혁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동참해야 한다고 생각해 지하 조직에 찾아들어갔어요. 두세 군데를 거쳐 노동계급운동 조직에 들어갔습니다. 조직에서 하필 저에게 세포조직 교육을 맡겼어요. 그때는 ‘리프로덕션(reproduction·재생산)’, 줄여서 ‘알피(RP)’라고 불렀지요.”
― 그때부터 교수 일을 했군요.
“그러니 마르크시즘 서적들을 두 번 세 번 공부하고 정리해야 했어요. 교안을 작성하고 가르치다 보니 공부할수록 모르는 게 많이 생겨요. 온갖 이론적인 문제들이 해결이 안 되는 겁니다. 당시 마지막에 나온 이론이 서브임페리얼리즘(sub-imperialism·아제국주의)이었어요. 한국의 자본주의가 신(新)식민지가 아니라 서브임페리얼리즘으로 진화할 것인가, 그렇다면 이게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답을 모르겠는 겁니다.”
― 운동권 선배들도 답을 몰랐나요?
“그들도 정확히는 모르는데 확실히 저보다는 잘 아는 겁니다. 왜 잘 알까 싶어서 관찰했어요. 답을 하는 선배들은 전부 박사 과정을 밟고 있더군요. 답이 조직 내부가 아니라 대학원에서 나오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대학원에 진학했어요.”
― 그런데 6월 항쟁 후의 민주화 운동이란 1945년 8월 16일부터 독립 운동하는 것과 비슷한 것 아닌가요?
“진정한 혁명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진짜 사회주의 계급혁명을 위해 무언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 거죠.”
대변하는 작가 없는 北 주민들
방 교수는 이지명, 도명학, 장해성 등 탈북(脫北) 작가들의 작품을 한국 문단에 소개해왔다. ‘한국적 디아스포라(diaspora)’들이다. 그의 설명이다.
“제가 탈북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분단 체제라는 개념을 믿었어요. ‘남북한 공히 적대적 분단 상황에 기초하고 의지해 권력을 유지하며 민중을 착취하고 있다’ 이게 분단 체제입니다. 그런데 6월 항쟁 후 민주화가 시작됐어요. 남쪽에서 전두환 체제가 무너졌어요. 그러면 분단 체제의 다른 한 축도 민주화돼야 하잖아요.”
― 그렇게 되지 않았지요.
“분단 체제가 무너지고 한국인들이 새로운 역사적 단계에 들어서려면 북한에서의 민주화가 정말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해요. 분단 체제를 외친 사람들 중 아무도 이걸 언급하지 않는 게 충격이었습니다. 꼭 과제라서가 아니라 저곳에서 인권 문제가 정말 심각하잖아요. 한국에서의 인권 문제보다 상황이 더 급박한데 왜 다들 가만히 있냐는 거죠. 그래서 저는 운동권 노선의 연장선상에서 이 문제를 좌시할 수 없는 겁니다. 그것이 변질되지 않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고난의 행군 시기(1996~1999년) 휴전선 너머에선 34만 명 이상이 아사(餓死)했다. 우리와 같은 말을 쓰고 같은 글을 쓰는 이들이었다. 그 죽음의 행군을 한국 문학은 얼마나 기록했을까. 구소련의 그 엄혹했던 시기에도 내부의 신음을 전해준 작가들이 있었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블라디미르 막시모프 등이다. 북한 체제 장막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언론이 엿볼 수 없다면 문학으로라도 노래해야 하는 것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그 땅에서 탈출해온 작가들이라도 귀히 여겨야 하는 것 아니냔 말이다.
“탈북 작가들의 수는 얼마 안되지만 보배입니다. 이들이 열심히 쓰고 자신을 잘 전개해나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해요. 그런데 우리 문학계에서 이들의 자리가 너무 협소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많은 이가 ‘타자(他者)의 삶’을 외치지만 그냥 말뿐이에요. 타자들이 정말 어떻게 사는지 관심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이런 면에서 보면 한국 사회는 참 자가당착(自家撞着)적입니다.”
IMF 세대의 경제주의 문학
― 북한 인권 문제를 외면하고 외치는 ‘타자’와 ‘약자’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공장에서 일하면, 여성 혹은 성소수자라면 반드시 약자로 분류되어야 할까요. 북한 사람들처럼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 처한 게 아니잖아요.
“북한 주민들은 절대적 약자, 절대적 타자입니다. 너무 끔찍하지요. 한국 내 인권도 중요하지만 우선순위가 있잖아요.”
생각해보니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 속 어느 핍박받은 민족도 자신들의 고통을 기록하고 알려준 작가를 갖고 있었다. 북한은 아니다. 북한 내부에도 없을뿐더러 탈출해 나온 작가들의 목소리에도 힘이 실리지 않는다. 예외적으로 북한에 거주 중인 걸로 알려진 반체제 작가 반디 정도가 있다.
북한 주민들이 굶어 죽던 시기 한국에는 소비 문화의 세례를 받은 이들이 사회에 진출했다. 엑스(X) 세대다. 방 교수의 말이다.
“냉전 체제가 무너진 후 한국 문단에서도 변화가 일어났어요. 깊은 사유(思惟), 유장(悠長)한 생각 같은 게 무너졌지요. 민주주의의 자유로움과 자본주의의 풍요로움을 처음으로 맛본 X 세대가 출현했어요. X 세대는 집단주의를 싫어했는데, 사유하는 게 아니라 자유와 소비를 구가하는 쪽으로 빠졌습니다. 그런데 1997년에 외환 위기가 찾아온 겁니다.”
― X 세대 다음 세대인 IMF 세대가 탄생했군요.
“이들은 다시 경제 문제로 돌아갔어요. 취직을 못 해서, 비정규직이라, 해고당할 처지라 불행하다는 식이에요. IMF 세대 문학은 일종의 경제주의 문학이지요. 그런데 인생은 그것 이상이거든요. 취직하고 돈이 생기면 인간의 문제가 없어질까요? 인생을 풍요롭게 살려면 돈이 없고 힘들어도 그걸 넘어서서 사유해야 됩니다. 사실 그런 사유는 우리 문학 전통에 일찌감치 등장했어요. 김시습(金時習·1435~1493년)의 《금오신화(金鰲新話)》입니다.”
― 《금오신화》에 그런 얘기가 나오나요?
“《금오신화》의 5개 단편 중에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가 있습니다. 철과 구리로 만들어진 세상이 등장해요. 낮이 되면 작열하는 태양에 철과 구리가 다 녹아내립니다. 철로 상징되는 화폐가 지배하는 세상을 떠올릴 수 있어요. 이게 김시습이 당대에 생각한 지옥인 겁니다.”
미투 운동이 남긴 것
― 돈이 지배하는 세상을 은유했다고 볼 수 있겠네요.
“2000년대 후반부터 문학의 정치가 등장합니다. 용산 참사(2009년), 쌍용자동차 해고 사태(2009년), 세월호 사고(2014년)를 겪는 과정에서 문학계에서는 좌파들이 흐름을 주도했어요. 문학은 원래 약자들 편이라고 하잖아요. 문학의 정치라는 건 폭이 상당히 넓습니다. 시간이 흘러 문단의 화두가 페미니즘, 퀴어(Queer)로 넘어갔어요. 2018년 즈음 ‘미투(Me too)’ 운동이 시작됐잖아요.”
― 미투 운동 이후 벌써 7년 가까이 흘렀네요. 문학에 어떤 흔적을 남겼다고 보세요?
“‘착한 소설’의 등장이죠. 정치적·윤리적으로 착한 사람들만 등장하는 소설이요. 문학이 검열되고 있어요. 출판 단계에서부터 특정 장면이나 언어 표현이 검열됩니다. 과거 소설도 재검토되고 있잖아요.”
― 고전 소설에도 검열에 걸릴 장면들이 많겠네요. 언젠가는 문단의 흐름이 또 바뀌겠지요?
“30년은 더 갈 거라 봅니다. 한국 사회에서 시대적 조류로 40년 전부터 이어져 온 마르크시즘을 보세요. 퇴행기에 있지만 지금도 영향력을 미치고 있잖아요. 그러니 지금의 페미니즘, 퀴어 문학도 앞으로 30년은 더 지속될 겁니다. 이걸 바꿀 수 있는 게 있긴 합니다. 진짜 위대한 작가의 탄생이나 한반도 통일 같은 거죠. 저는 북한 체제가 무너질 거라 봅니다.”
―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고 하잖아요. 문학이 현실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므로 지금이 문학이 뭔지 다시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문학이 뭔지, 소설이 뭔지 다시 생각해서 문학인 각자가 자신의 이정표를 세워야 해요. 저는 문학이 인생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경제와 정치 문제만 볼 게 아니라요. 삶과 죽음, 생명의 문제에서 우리 문학이 멀어졌어요.”
사랑이 필요한 시대
― 한국 문학이 재발견해야 할 시대정신은 뭘까요.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성애를 포함한 인간애지요. 톨스토이든 도스토옙스키든, 현실의 문제를 앓고 있는 사람들이 구원으로 여겼던 게 바로 사랑입니다. 이광수와 최인훈이 얘기한 것도 결국 사랑입니다. 이광수는 소설 《사랑》에서 부처님의 사랑을 얘기해요.”
이광수는 법화경(法華經)을 통해 큰 깨달음을 얻었다. 소설 《사랑》에서 주인공 안빈은 이렇게 말한다.
〈석가여래도 한 번에 한 사람씩 구원하신 것이요. 그의 수없는 전생에는 한 생 한 사람씩 건진 일도 많으셨고 그래서 한 번 세상에 날 적마다 한 중생을 건져서 천 생에 천 사람 만 생에 만 사람, 이 모양으로 중생을 건지는 것이 석가여래의 생활이요, 또 모든 보살의 생활이요.〉
방 교수의 말이 이어졌다.
“성경도 비슷한 얘기를 합니다. 이런 구절이 있어요.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결국 한 사람을 구해주는 사랑이 중요한 겁니다. 마르크시즘은 사회적 이상을 말합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이성주의자 이반이 ‘인류 전체를 사랑할 순 있으나 한 사람을 사랑할 순 없다’고 하는 거처럼요. 저도 그런 것들에 들떠서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 보통 사람이 평생 종교적 사랑을 실천하며 산다는 게 쉽지 않잖아요.
“그게 최인훈이 고민한 겁니다. 종교적 차원의 사랑이 세속화될 수 있는 방법이지요. 《회색인》에서 주인공 독고준에게 친구가 이렇게 말합니다. ‘다가올 혁명을 우리가 치러야 한다.’ 그러자 독고준이 답해요. ‘나의 혁명은 따로 있다. 나의 혁명을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사랑과 시간이다.’”
― 왜 사랑과 시간이 필요한가요?
“마르크시즘은 인류를 사랑한다면서 먼저 적대를 만들었어요. 부르주아를 적대해야 전 인류가 부(富)를 나눠갖고 서로 사랑하는 사회가 될 수 있다면서요. 최인훈은 생각한 겁니다. 사랑을 명분 삼아 미움이나 투쟁을 조직하는 사회가 아니라 즉각 사랑이 실현될 수 있는 사회를 발명해내야 한다고요. 그 방법을 연구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한 겁니다.”
― 지금 한국에 왜 사랑이 필요할까요.
“이 세계가 얼마나 싸우고 있어요? 곳곳에서 극한의 투쟁이 일어나고 있어요. 한국에서도 그 투쟁이 더 깊어질 것 같습니다.”
방 교수는 자신의 시 ‘역설’에서 회색(灰色)빛 세상을 노래했다. 흑백의 갈등을 넘어선 세상.
〈회색은 세상에서 가장 투명한 빛/ 흰 빛보다 검은 빛보다 순수한 빛/ 세상을 바닥까지 들여다본 이들만/ 늘 자기 곁에 숨겨두고 아끼는 빛/ 가장 견고한 것은 흘러 다니는 것/ 저 구름과 바람, 일렁이는 산 안개/ 바닥 없는 세상 바닥 깊은 곳에/ 형체도 빛깔도 없이 머물러 있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