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유형의 정치인과 일 잘해서 필요한 표를 얻어오는 정치인을 잘 구별해야”
⊙ “국가를 번영시키면서도 사회적 약자를 보듬는 게 보수 정치인이 해야 할 일”
⊙ “이재명, 국민통합 한 번도 입에 올리지 않아”
⊙ “저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핵무장 얘기하는 게 핵 협상 하는 데 도움 될 것”
⊙ “국회 내려보내고 여의도를 금융 허브로 개발하는 것이 경쟁력 강화에 도움”
⊙ “절체절명의 위기… 과학 기술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정책화할 수 있는 리더십이 반드시 필요”
오세훈
1961년생. 고려대 법학과 졸업, 同 대학원 법학박사 / 제16대 국회의원(한나라당), 한나라당 최고위원, 제33·34·38대 서울특별시장, 한국국제협력단(KOICA) 중장기 자문단 페루 리마·르완다 키갈리 시정자문관,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석좌교수 역임. 現 서울특별시장(제39대)
⊙ “국가를 번영시키면서도 사회적 약자를 보듬는 게 보수 정치인이 해야 할 일”
⊙ “이재명, 국민통합 한 번도 입에 올리지 않아”
⊙ “저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핵무장 얘기하는 게 핵 협상 하는 데 도움 될 것”
⊙ “국회 내려보내고 여의도를 금융 허브로 개발하는 것이 경쟁력 강화에 도움”
⊙ “절체절명의 위기… 과학 기술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느끼고 정책화할 수 있는 리더십이 반드시 필요”
오세훈
1961년생. 고려대 법학과 졸업, 同 대학원 법학박사 / 제16대 국회의원(한나라당), 한나라당 최고위원, 제33·34·38대 서울특별시장, 한국국제협력단(KOICA) 중장기 자문단 페루 리마·르완다 키갈리 시정자문관,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석좌교수 역임. 現 서울특별시장(제39대)
- 사진=조준우
총선 이후에 보수(保守) 세력이 많이 헛헛해하고 있다. “윤석열(尹錫悅) 대통령을 보니 역시 평생 법만 만진 사람은 안 되겠다. 정치를 실제로 해본 사람이 역시 낫겠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보수라는 사람들만 가지고서 표를 얻는 데는 한계가 있는데 결국은 중도표를 갖고 와야 된다”는 말도 들린다. 그러면서 새삼 “이제 보니 오세훈(吳世勳) 시장만 한 사람도 없다”며 기대를 표시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그래서 6월 8일 토요일 오후, 용산 서울 파트너스하우스에서 오 시장을 만났다.
― 총선 이후 국민의힘은 물론이고 보수 정치 세력 자체가 지금 거의 궤멸 수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총선 결과 의석수로 지역구 의석수를 보면 161석 대 90석이었지만, 지역구 득표율을 보면 그 차이가 5.4%밖에 나지 않습니다. 이 정도 차이는 조금만 노력하면 얼마든지 회복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중도로의 진격입니다. 이번에 황우여 비대위원장이 취임하면서 ‘보수를 결집하지 못해서 진 것’이라고 했는데, 글쎄요. 이번 총선 분위기를 보면 보수 결집은 충분히 됐다고 봅니다. 총선 패인을 보수 결집 부족 때문이라고 분석하면 해답이 안 나옵니다. 오히려 중도표를 한 10%, 20%만 얻었다면 승리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보수를 결집시키는 것보다 그게 훨씬 쉽지요.”
서울의 모든 洞에서 승리한 비결
― 중도란 무엇입니까.
“중도라는 게 별도로 있는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 이쪽을 찍기도 하고 저쪽을 찍기도 하는 스윙 보터(swing voter)를 말합니다. 이분들을 끌어오는 건 어려울 게 없죠. 중도 지향의 정책을 쓰면 됩니다.”
― 중도 지향의 정책이라는 건 어떤 걸 말하는 겁니까.
“일상생활에서 어려워하는 분들에게 위안을 드리고 그분들이 동의할 수 있는 정책을 말합니다. 그 모범 사례가 저라고 생각합니다. 재작년 지방선거에서 저는 서울의 425개 모든 동(洞)에서 다 이겼습니다.”
― 그 비결이 뭡니까.
“서울에는 어떤 경우에도 우리 당이 이기기 어려운 20~30개 정도의 행정동(行政洞)이 있습니다. 그 동들의 특성을 일률적으로 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대개 임대 아파트가 많이 분포돼 있는 곳들입니다. 저는 그곳에서 집중적으로 그분들을 위한 정책적 접근을 했습니다. ‘약자(弱者)와의 동행(同行)’이라고 이름 지은 전략이었는데, 다른 게 아닙니다. 지어진 지 35년 정도 되어서 재건축할 때가 된 임대 아파트들을 허물고 새로 지어드리겠다, 그러면서 평수를 조금이라도 넓혀드리고 자재도 과거와는 달리 분양 아파트와 동일한 퀄리티의 자재를 쓰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분들이 정말 절실히 여기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드리겠다고 진심을 담아 비전을 제시한 것이 그분들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생각합니다.”
― 정치인들이 국민들을 보듬는 경쟁을 벌일 경우, 결국은 무책임하지만 화끈하게 퍼주겠다는 좌파 포퓰리스트들에게 표가 가지 않겠습니까.
“선거를 거의 격년으로 치르다시피 하다 보니 유권자들도 이제 정당이나 정치인의 진정성을 판단하는 데는 도가 텄어요. 뭘 더 많이 주겠다, 현금으로 얼마를 나눠주겠다, 이런 거에 유권자들이 쉽게 현혹된다고 보면 안 될 것 같아요. 유권자들이 무엇을 해주겠다고 약속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을 보면서 ‘저건 진심이다’라고 느끼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 어떻게 해야 하나요.
“‘평소에’ 해야 합니다. 총선에서 지고 난 후 윤석열 대통령께서 3개월 동안 열심히 민생 토론하고 다녔는데, 총선 1년~1년 반 전부터 그랬다면 그 진심이 상당히 전달됐을 거고, 총선에서도 유리했을 것이라고 봅니다.”
― 그런 의미에서 아쉬움이 크죠.
“저는 ‘동행매력특별시’라는 비전을 정하고, 모든 정책을 피라미드 형태로 체계적으로 구체화했습니다. 약자동행지수, 약자동행조례를 만들고, 안심소득·서울런 같은 정책들을 하루가 멀다 하고 발표·추진하고, 아까 말씀드린 임대주택 재건축 같은 것도 다 실천했습니다. 우리 당이 이런 모습을 보였다면 이번 선거에서 충분히 이길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대목에서 오세훈 시장은 “《월간조선》이 주로 보수우파가 많이 보기 때문에 제가 꼭 강조하고 싶은 게 있다”고 말했다.
― 그게 뭔가요.
“제가 ‘약자와의 동행’ 같은 걸 강조하면, 정체성(正體性)이 의심스럽다, 좌파 아니냐, 이런 식으로 말씀하는 분들이 있어요. 하지만 싸움 잘해서 이기는 게 아니에요. TV 같은 데 나가서 ‘말의 전쟁’에 참전하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말싸움에서 또박또박 한마디도 지지 않으면서 우리 편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유형의 정치인과 일을 잘해서 조용히 우리 당에 필요한 표를 얻어오는 정치인을 잘 구별해서 봐주셔야 됩니다.”
“정당은 실험의 대상 아니다”
― 총선 이후 국민의힘은 패배를 추스르고 다음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국민의힘 비대위라고 화면에 나오는 얼굴들만 봐도 가슴이 답답해진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한시적인 비대위에 당의 비전을 손봐 달라고 하기는 어렵지요. 당에서도 황우여 비대위원장께는 전당대회를 잘 치러달라고 부탁드린 것이죠. 대신 새로 들어서는 지도부는 적어도 1년 이상 깊이 있는 고민을 하면서 중장기적인 비전이나 전략을 마련하고 얽힌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그럴 만한 분이 보입니까.
“특정인을 대입해서 말하면 ‘누구와 각을 세운다. 견제한다’ 이런 말들이 나올 것 같아서, 원론적인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맨날 ‘이 사람은 낫겠지’ 해서 신상품을 추구하거나, ‘여태까지 이래서 잘못했으니까 이번에는 이 사람한테 한번 맡겨보자’ 이러는데, 정당은 실험의 대상이 아닙니다. 대통령이나 정당의 대표는 일하는 자리지 실험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충분히 시행착오를 겪고, 숙성된 가치 체계와 비전 체계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전략까지도 구상한 사람이 그 자리에 올라야 국민들이 편안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당도, 국민도, 지도자를 선택할 때에 기준이 좀 멀리 시선이 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전투와 전쟁은 다르다”
지난 5월 17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는 ‘4월 전국 광역자치단체 평가’를 발표했다. 정당지표 상대지수란 자치단체장의 직무수행 평가가 해당 지역의 정당 지지층 대비 어느 정도 수준에 위치해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수치를 말한다. 이에 따르면 오세훈 시장은 정당지표 상대지수 134.1점을 기록하며 17명의 전국 광역단체장 중 1위에 올랐다. 오 시장은 지난 3월 조사에서도 136.7점으로 1위를 차지했었다. 2위는 김태흠 충남지사(128.9점), 3위는 김동연 경기지사(124.2점)였다.
하지만 ‘차기 대통령 후보’ 여론조사에서는 그리 성적이 좋지 않다. 기자가 오세훈 시장을 인터뷰하기 하루 전인 6월 7일 보도된 데일리안-여론조사공정의 여론조사(6월 3~4일 실시) 결과를 보면 ‘차기 대통령 후보로 가장 호감이 가는 인물’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35.6%)가 꼽혔다. 오세훈 시장은 한동훈 전 국힘 비대위원장(25.9%)의 뒤를 이어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와 나란히 6.5%를 기록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5.5%)이 그 뒤를 이었다. 이 이전까지의 여론조사 중에는 2~3%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 서울시장이라는 커다란 메리트를 갖고 있고, 그동안 열심히 일해온 것에 비해 ‘대통령 후보’로서의 지지율은 그리 높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지지율이라는 건 결국 TV에 등장하는 횟수에 비례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소위 국지전(局地戰)이죠. 하나의 전투에서 이긴다고 해서 꼭 전쟁에서 이기는 건 아니거든요. 정치에서도 하나하나의 ‘말의 전투’에서 이기는 능력과 전략·경험·정보 등이 총체적으로 작용하는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노하우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국민들, 경륜 있는 지도자 바라게 될 것”
― 앞으로도 정치에서 신상(신상품)을 구하는 유권자들의 욕구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텐데, 이를 어떻게 극복해나갈 생각입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특별한 해법이 있다고 말씀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다만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우리 국민들이 경험과 노하우를 갖춘 경륜 있는 지도자를 바라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국민들은 윤석열 대통령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더 할 것 같아요. 전문가들은 1987년 이후 대선에서 나타난 시대정신을 보면, 그 전임 대통령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 마련이었다고 말하거든요.”
― 그렇지요.
“큰 틀에서 보면 지금 윤석열 대통령이 추구하는 방향이 틀렸다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한미동맹 강화라든가, 오랫동안 반목 관계에 있었던 한일 관계를 정상화시킨 것이라든가, 원전(原電) 정책을 다시 원상으로 복귀를 시켜서 엄청난 전력(電力)을 필요로 하는 반도체 산업 등의 경쟁력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초석을 튼튼히 하셨다든가 하는 것들은 옳거든요. 그런데 디테일이 들어가면 항상 뭔가 좀 부실하게 준비해서 급하게 대응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최근에도 직구(직접구매) 논쟁이 벌어진 알테쉬(알리바바, 테무, 쉬인)에 대한 대응책을 KS 인증으로 해결하겠다고 했다가 오히려 비판의 빌미를 마련해주지 않았습니까? 국민들은 이런 부분을 답답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거든요.”
―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자화자찬 같아서 좀 민망합니다마는, 서울시는 4월 초부터 직구가 문제 되자마자 알테쉬에서 나온 어린이 용품이나 일상생활 용품에 어떤 건강 위해 요소가 있는지를 매주 지속적으로 발표하면서 소비자들에게 경각심을 주었습니다. 그 덕분에 지금 알테쉬 시장 점유율이 상당히 낮아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역시 일을 해본 사람이 일을 체계적·효과적으로 한다’는 평가를 듣고 있습니다.”
“제가 대표적인 정통 보수죠!”
오세훈 시장은 총선 후인 4월 29일 자 《조선일보》에 〈이제 힘든 토끼를 위한 따뜻한 보수를〉이라는 글을 기고했다. 이 글에서 오 시장은 ‘신자유주의 우파’에서 이제 ‘따뜻한 우파’ ‘따뜻한 보수’로 바뀌어야 된다고 강조했다.
― 스스로 이념적인 좌표가 어떻다고 생각합니까.
이 질문에 오 시장은 깜짝 놀랄 정도로 단호하게 대답했다.
“제가 아주 대표적인 정통 보수죠!”
― 아, 네….
“사람들은 제가 ‘보수 중에서 왼쪽’이라고 그러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제가 보수 본류(本流)라고 생각합니다.”
―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저는 정치를 우리 당에서 시작했습니다. 2000년 총선 당시 민주당에서도 굉장히 집요하게 영입 제안이 있었어요. 민주당은 나중에 제가 자기네 당으로 가기로 해놓고 좋은 지역구를 준다고 하니 한나라당으로 갔다고 하는데, 사실과 다릅니다. 저는 한 번도 민주당 가겠다고 승낙한 적이 없어요.
이런 제가 왜 좌파입니까? 저를 두고 우리 당 내에서도 이념적 정체성이 의심스럽다고 음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제가 오늘은 아주 허심탄회하게 할 얘기를 다 해야겠어요.”
― 그러시죠.
“제 고향이 호남이라는 사람도 있는데, 저희 집안은 10대조까지 서울 명륜동에서 살았어요. 저희 선산(先山)이 전부 경기도 용인·이천에 있습니다. 13대조 할아버지부터 4대조 할아버지의 선산이 용인시 모현면에 있고, 그 이후 저희 할아버지까지 선산이 이천에 있습니다. 제가 태어난 곳은 서울 성동구 성수동이고, 외가는 경북 상주입니다.”
― ‘보수 본류’라면서 굳이 ‘따뜻한 보수’라면서 ‘보수’ 앞에 수식어를 붙이는 이유는 뭔가요.
“그건 ‘보수가 원래 따뜻한 것이다’ ‘보수는 따뜻해야 한다’는 것을 정확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원래 보수우파는 경쟁을 중시하잖아요? 그러다 보면 아무래도 다소 무자비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따뜻한 보수’라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 보수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국가를 번영시키면서도 한편으로 사회적 약자를 보듬는 게 보수 정치인이 해야 될 일이에요. 경쟁을 통해 경쟁력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그러다 보면 경쟁에서 뒤처지는 사람들, 기업이 생기는데, 이들을 어떻게 보듬느냐가 ‘약자와의 동행’인 겁니다.”
― 서울시의 캐치프레이즈가 ‘동행매력특별시 서울’인데, 경쟁력은 어디 있나요.
“제가 전에 시장직을 수행할 때(2006~2011년)에는 ‘도시경쟁력’을 많이 강조했는데, 너무 딱딱해 보여서 지금은 ‘매력’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와서 살고 싶고, 비즈니스 하고 싶고, 구경하고 싶고, 즐기고 싶은 것… 그것이 도시경쟁력이고 매력이라는 의미입니다.”
― 경쟁력이란 말을 매력이라고 표현하니 조금 추상적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할 수 없죠. 저도 정치인이다 보니…. 그래도 이건 양질(良質)의 포장입니다. 이재명 대표처럼 대장동이나 백현동 같은 터무니없는 일을 하고 그걸 속이기 위한 포장은 아니잖아요? 대북송금 했다는 사실이 이번에 판결(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판결)로 밝혀졌잖아요. 그러면서 안 한 척하는 게 거짓말 포장이죠.”
“역대 대통령들이 지금의 복지·경제 바탕 만들어”
― 경쟁력이 정말 중요한 것이죠.
“제가 지난 15년 동안 천착해왔던 주제가 ‘무엇이 번영을 만드는가’ 하는 것입니다. 번영의 원리를 한 줄로 표현한다면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도전과 모험, 그 시행착오가 쌓여서 번영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도전과 모험이 번영을 만들게 하는 요체는 무엇인가? 보상(報償) 체계입니다.”
― 그렇죠.
“번영의 원리를 한 단어로 줄이면 인센티브 하나만 남습니다. ‘노력한 자는 과실(果實)을 얻는다, 노력하지 않은 자는 과실이 없다’ 이 한 줄로 요약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왜 ‘약자와의 동행’을 더 강조하느냐? 우리는 이미 국민소득 3만5000달러 언저리에 이르렀습니다. 이제는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 뒤처진 분들을 보듬어서 함께 미래로 갈 수 있도록 만드는 작업이 더 중요한 가치라고 보는 겁니다.”
― 영국에서도 각종 복지제도의 기틀을 처음 만든 건 노동당이 아니라 보수당이었죠.
“우리나라도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복지제도의 연혁(沿革)을 보면, 기초수급자들을 보호하는 기초생활보장법의 모태인 생활보호법이 만들어진 것은 1961년 박정희 정부 때였습니다. 그게 전면 개정된 게 1982년 전두환 정부 때입니다. 그 법이 지금의 기초생활보장법으로 바뀐 것은 1997년 김대중 정부 때지만, 법안(法案)이 입안(立案)된 것은 김영삼 정부 때였습니다. 역대 모든 대통령이 다 관여되어 있어요.
기억나세요? 김대중 대통령이 강조했던 게 ‘생산적 복지’였습니다. 복지는 복지인데 열심히 일하도록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이 좌파 같지만, 지금의 좌파하고는 차원을 달리했습니다. 그 후에 노무현 정부, MB 정부 등을 거치면서 점점 법의 적용 범위와 혜택을 확대하면서 발전해온 겁니다. 복지라고 하는 것은 보수 정권이나 진보 정권, 우파 정권이나 좌파 정권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그렇죠.
“대한민국이 지금처럼 1인당 국민소득 3만5000달러, 전 세계 10위권의 경제를 이룩하게 된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승만 대통령 때 전 국민 기초교육을 정말 정성 들여서 시작해서 산업화 시대의 인적 자원을 만들어냈습니다. 박정희 정부는 수출입국, 중화학공업, 제조업으로 승부할 수 있는 바탕을 튼실하게 놓았습니다. 전두환 정권은 인권에 관해서는 문제가 있었지만 일사불란한 효율성을 바탕으로 미래 경쟁력을 만들어놓았죠. 경제는 사실 전두환 정권 때가 가장 좋았어요. 노태우 정부 때는 물태우라는 소리 들어가면서까지 인권에 대해 초석을 놓았고 북방 정책을 펼쳤습니다. 지금 우리가 먹고사는 ICT의 기반은 누가 뭐래도 김대중 정부 때 그 초석이 깔렸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기편으로부터 욕먹어가면서까지 한미 FTA를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우파 좌파 할 것 없이 역대 대통령들이 오늘날 한국 경제의 바탕을 만들어온 것이죠.”
“이재명, 국민통합 한 번도 입에 올리지 않아”
오세훈 서울시장은 얼마 전 페이스북에 ‘이제 성숙된 하나 됨을 위하여’라는 글을 썼다. 공감이 많이 갔다.
― 좌우나 지역뿐 아니라 이제는 세대별·성별(性別)로도 나라가 사분오열(四分五裂)되어 있고, 이런 갈등을 조장해서 재미를 보려는 정치인들도 있습니다. 이걸 어떻게 치유해가야 할까요.
“박근혜 대통령까지는 국민통합을 실천까지는 못했더라도 구호로 내걸기는 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까지는 국민통합을 얘기했습니다. 자기를 지지하지 않은 국민들도 잘 섬기겠다고 했으니까요.”
― 취임사 자체만 놓고 보면 명문(名文)이었죠.
“하지만 그 후 5년 내내 갈라 치기를 했죠. 그런데 지금 이재명 대표는 아주 노골적으로, 국민통합을 한 번도 입에 올리지 않았어요. 개딸에게 휘둘리는데 말 다 했죠. 최근에 이렇게 말의 전쟁판이 된 것은 바로 이런 정치 지도자들의 처신과 무관하지 않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정치인들은 끊임없이 국민통합과 화합을 내걸고, 거기서 만들어지는 시너지 효과를 가지고 희망의 미래를 만들어가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거기에 매진해야 됩니다. 그게 정치인의 기본적인 책무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 기본적인 책무조차도 소홀히 하는 사람들이 정치 지도자인 척하고 있습니다. 이 점을 국민들께서 유심히 봐주셔야 합니다.”
“이승만기념관, 공과 50대 50으로”
― 페이스북에 영화 〈건국전쟁〉을 본 후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글을 올린 것을 보았습니다.
“〈건국전쟁〉을 계기로 그런 글을 썼지만, 그 전에도 이승만 대통령의 공과(功過)에 대해서 몰랐던 건 아닙니다. 다만 그런 대중적인 이벤트를 계기로 대국민 설득을 하려고 한 거죠. 이승만 대통령이 워낙 오랫동안 악마화돼 있었기 때문에 동의를 못 하시는 분들이 아직 많아요.”
― 이승만기념관 건립 문제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우선 이승만기념관이라고 하면 마치 그분의 장점을 도드라지게 하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오해입니다.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는 분들과 대화를 해보니 ‘이승만에 대한 오해를 풀려면 공과를 50대 50으로 기념관에 전시해야 된다’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러면서 그분들이 예로 드는 게 대만의 장제스(蔣介石) 총통 기념관입니다. 장제스기념관은 공간 배정도, 내용도 공과가 50대 50이라고 합니다.
모든 역사적인 인물은 다 공과가 있잖아요. 또 그렇게 후손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역사적 인물이 되겠다고 하는 정치인들이 시행착오를 줄이고, 조심하고, 최선을 다해서 책임을 다하려고 하겠죠.”
― 송현공원에 짓게 되는 건가요?
“기념관 추진위원회 분들이 저에게 요청하신 공간이 송현공원이기 때문에 서울시는 그 부분에 대해서 검토를 하겠다고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시민들의 의견을 종합해서 결정해야 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저희가 결론을 내놓고 밀어붙이는 단계는 아닙니다.”
핵·미사일·EMP탄 관련 포럼 개최
북한은 지난 총선을 앞두고 ‘수도 서울 붕괴’ 운운하는 위협을 했고, 5월 30일에는 수도권 일대에 대한 전파 교란을 했다. 1990년대에는 남북대화 중 ‘서울 불바다’ 발언을 한 적도 있다. 대한민국 전역이 북한의 미사일 사정권(射程圈)이지만, 서울 등 수도권은 북한의 장사정포(長射程砲) 사정거리 안에 들어가 있다.
― 통합방위법에 의하면 지방자치단체장은 통합방위협의회 의장을 맡게 되어 있는데도, 우리나라 지자체장들은 안보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아 왔습니다. 그런데 시장님께서 근래에 안보에 대한 관심을 보이면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보면서 굉장히 반가웠습니다.
“서울시는 작년에 핵과 미사일, EMP(electromagnetic pulse·전자기펄스)탄에 관한 포럼을 두 차례 개최했습니다. 국방부, 수도방위사령부 등 군(軍) 관련자들과 안보 전략을 연구하는 분들이 ‘중앙정부에서도 안 하는데, 지자체에서 이런 걸 다 하느냐’면서 행사장을 가득 메웠어요. 반응이 참 뜨거웠어요.”
― 북한이 금년 들어서도 무더기로 미사일 발사를 하는 등 위협의 강도를 높여가고 있습니다.
“북한이 이제 전략핵은 물론 핵무기의 소형화·경량화를 통해 전술핵까지 갖게 되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하지만 전술핵도 공멸(共滅)을 뜻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활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이 저렇게 지나치게 큰소리치는 것에 대해 우리가 지나치게 위축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우리로서는 방어 시스템을 안 만들 수가 없는데, 거기에 수십조원이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참 딱한 노릇이 된 거죠. 핵 그림자 효과가 이미 한반도에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 시장께서 한국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 것을 보았습니다.
“자주 해왔죠. 저와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그런 얘기를 하는 게 미국이나 중국을 상대로 핵 협상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 정말 핵무기를 개발하자는 겁니까.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이 제일 바람직하지만, NPT(핵비확산조약) 같은 것들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겠지요. 그래서 일단 핵 잠재력을 일본 수준으로 끌어올리자는 것까지를 적정한 선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 EMP탄에 대한 포럼까지 연 것을 보면, 안보 현안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핵무기는 현실적으로 쓰기 어렵기 때문에 오히려 북한이 EMP탄을 활용할 확률이 더 높다고 생각합니다. 네이버만 먹통이 돼도 패닉에 빠지는데, 전자·전기 제품이 전부 먹통이 된다면 대한민국 경제는 초토화됩니다. 그래서 그에 대해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또 백업 시스템은 어떻게 만들어놓을 것인가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토론하는 기회를 가진 것입니다. 올해는 드론과 킬러 로봇에 대해서도 포럼을 열 생각입니다.”
“외교를 국내 정책에 활용하는 건 하수”
― 유사시 대피 시설 마련, 응급 구호 등 서울시 차원에서 해야 할 일도 많을 텐데요.
“그래서 서울 시내 수천 개의 대피소에 비상시에 꼭 필요한 필수품과 물을 100병씩 비치해놓고, 정기적으로 교체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 초보적인 단계이기는 하지만, 이런 준비를 하고 있는 지자체는 서울시가 유일합니다.”
― 삼일절을 앞두고 페이스북에 “손을 내밀 수 없는 상대에게도 손을 내미는 게 이제 진정한 평화와 화합의 정신”이라고 쓴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요새 라인야후 문제를 놓고 야당 사람들은 또 반일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했습니다.
“금도(襟度)가 깨진 것이죠. 외교 문제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는 게 이제는 당연한 공식처럼 돼버렸어요. 외교를 국내 정치에 활용하는 건 하수(下手)입니다.”
어느덧 당초 약속했던 인터뷰 시간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하지만 질문할 것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오세훈 시장은 “허기가 진다”면서 빵을 내오라고 했다. 빵과 음료를 먹으며 인터뷰를 이어갔다.
― 총선 때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국회의 세종시 이전을 주장했고 윤 대통령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수도 서울의 위상과도 관련이 되는 문제인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다른 시·도 지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지방의 박탈감, 열패감(劣敗感)이 대단합니다. 그래서 국회 본회의장이나 상임위를 세종시로 옮겨서 거기를 행정수도로 만들어주는 것은 동의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서울의 경제 기능을 빼가는 정책은 하책(下策)이라고 봅니다.”
“국회 내려보내고 여의도를 금융 허브로”
― 무슨 의미입니까.
“예를 들어 효율성을 해치면서 금융기관을 지방으로 보내는 것을 말합니다. 서울에서 뺄셈을 하더라도 그 이상의 시너지 효과가 있으면, 그건 국토의 균형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논의해볼 가치가 있어요. 하지만 서울은 서울대로 마이너스가 되면서 지방으로 보내서 플러스 효과를 내지 못하는 금융기관·행정기관 이전은 좀 더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세훈 시장은 “국회가 세종시로 옮겨가는 것이 경제적으로는 여의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의도는 아시아의 금융 허브, 핀테크[Fin Tech·Finance(금융)와 Technology(기술)의 합성어] 허브를 비전으로 삼아야 합니다. 박원순 시장 시절 금융 허브 순위에서 한 30위까지 떨어졌었던 것을 이제 다시 10위권까지 올려놓았습니다. 국회의사당이 있는 서여의도 쪽을 개발해서 탈(脫)홍콩화하는 국제금융 기업들을 여의도로 끌어와야 합니다.”
― 그게 쉽게 될까요.
“물론 법인세를 낮추고, 영어 친화 도시를 만드는 등 소프트웨어가 갖춰져야죠. 하지만 하드웨어도 중요합니다. 공간이 있어야 들어오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차라리 국회를 내려보내고 그 넓은 자리에 금융 기능을 보강할 수 있는 터전과 녹지공원을 만드는 게 경쟁력을 강화하고 서울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UAE에서 배워온 것
― 지난 5월 UAE 아부다비와 두바이에 다녀왔는데, 우리나라나 서울을 위해서 눈에 띄는 것이 있던가요.
“두 도시 모두 싱가포르를 제대로 벤치마킹했더군요. 싱가포르는 교통의 요지라는 점을 바탕으로 발전했는데, 아부다비와 두바이도 중동-아프리카-유럽-아시아를 아우르는 교통의 허브입니다. 제조업으로 승부하기 어려우니 금융·물류·무역·관광 같은 걸로 승부하려는 것이 싱가포르와 아주 닮은 꼴이더군요. 유럽·중동·아시아·아프리카 국가들이 아부다비·두바이를 이용하지 않을 수 없도록 전략을 아주 잘 짜고 있어요.”
― 어떤 전략입니까.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법인세(法人稅)를 굉장히 낮춰서 국제 금융 지역으로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둘째, 영어를 씁니다. 셋째, 매력적인 도시 공간들을 인위적(人爲的)으로라도 만듭니다. 그걸 두고 ‘급조한 대형 건축물’이라는 식으로 비판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게 생존 전략이에요. 사람을 끌어모으기 위한 장치죠. 심지어는 반도체 세상에 대한 대비까지 하고 있더군요.”
― 반도체요?
“산유국(産油國)이고 원자력 발전도 해서 전기가 풍부하니까 데이터센터는 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런 식으로 미래 비전을 만들어 경쟁력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 아부다비와 두바이에도 싱가포르처럼 잘 훈련된 공무원 집단이 있습니다. 그런 건 우리가 배워야 합니다. 지금 두바이 공항이 전 세계에서 가장 커졌어요. 투자, 전략 모두 배울 게 정말 많은 곳입니다.”
― 작년 말에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정치의 역할이 이제 나라의 번영을 이끌고 약자를 챙기는 것”이라고 하신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역대 대통령들을 평가한다면?
“감히 후학이 역대 대통령을 평가하는 것은 주제넘는 것 같습니다. 아까 제가 말씀드린 걸로 대답을 대신해주면 좋겠습니다. 집권 과정에서의 정통성 같은 문제로 비판받을 만한 요소들이 있는 대통령들도 있었지만, 한 분 한 분 역사적으로는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제일 중요한 건 과학 기술”
―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이 시대에 대통령이 해야 될 가장 중요한 일은 뭐라고 생각을 합니까.
“과학 기술 발전이죠! 문화도, 복지도 다 중요하지만, 나라가 계속해서 지금의 경제력을 그나마 유지하려면, 그리고 조금 더 욕심을 부려서 도약을 하려면, 결국 첨단 과학 기술이 중요하거든요.”
― 그렇죠.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AI, 로봇 같은 것이 그런 영역인데, 그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게 이제는 AI가 돼버렸어요. 엔비디아 같은 기업 서너 개만 있으면 걱정할 게 없죠. 다행히 우리는 삼성 반도체와 SK하이닉스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래도 선전(善戰)하고 있습니다. 반도체를 바탕으로 AI 분야에서 뒤처지지만 않고 선두 그룹을 형성해서 계속 나아갈 수만 있다면, G5 반열에 오르는 것도 불가능한 건 아니라고 봅니다.”
― 작년에 한 인터뷰에서 ‘이제 정치가 방해만 하지 않으면 미래 경쟁력이 그렇게 암울한 정도는 아니다’라고 했는데, 이번 총선 결과를 보면 ‘이제 정치가 확실하게 발목을 잡게 생겼구나’ 싶어 걱정입니다.
“아직 이재명 대표를 필두로 한 민주당이 ‘반도체 억제법’ 같은 것을 만들지는 않잖아요? 정치란 국민들께 희망을 드리고 긍정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책무인데, 비관적인 말씀을 드리는 것은 도리가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잘못하면 중진국으로 굴러 떨어질 수도 있어요.”
― 저도 그게 걱정입니다.
“지금 승자 독식의 산업 구조로 들어가 있기 때문에 반도체나 바이오, AI 이런 몇몇 영역에서 2등은 의미가 없거든요. 이런 영역에서 다 2등을 해버리면 중진국 반열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거죠. 이 첨단 과학 기술의 영역에서 이른바 초격차(超隔差)의 앞에 설 것이냐 뒤에 설 것이냐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있기 때문에, 다음 리더십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런 과학 기술의 중요성을 정말 절실하게 느끼고 정책화할 수 있는 리더십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CNG 버스 도입만으로도 청계천 넘어서”
― 2021년도에 다시 시장으로 복귀해서 벌써 3년이 되었는데 이명박 시장의 청계천처럼 가시적인 성과는 안 보인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는 시민들이 저를 네 번 뽑아주신 데 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울 시민들이 오세훈을 네 번 선택한 것은 청계천 같은 것으로 승부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세훈이 시장이 되고 나서 청계천 같은 것을 하나 만든 게 아니라 서울시 전체가 안 바뀐 게 없다, 한강도 남산도 달라졌고, 아파트 재건축·재개발도 달라졌고, 정원 녹지 면적도 늘어났고, 손목닥터 9988 같은 것으로 운동도 시켜준다,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하는 가치, 즐겁고 행복하게 무병장수할 수 있게 해주는 모든 정책이 오세훈한테는 다 있다…. 이것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제가 4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는 공기질까지 좋아졌잖아요. 그건 아무도 부인 못 해요. 국회에 있을 때 법도 만들고 버스 엔진을 전부 CNG 엔진으로 바꿔서 공기를 확 바꿔놓은 거 아니에요 그거 하나만으로도 청계천을 넘어선다고 생각합니다.”
- 큰 틀에서 시정 전반의 소프트웨어를 혁신하셨겠네요. 1990년대까지만 해도 시내 한 번 나오면 진짜 머리가 아프고 셔츠 깃이 까매진 것이 느껴졌었거든요. 근데 이게 언제부턴가 안 그렇더라고요.
“네, 서울을 서울답게 만드는 것이 그것입니다. 과거에 이런 대기가 있었나요?”
― 기후동행카드는 참 좋은 아이디어지만, 경기도하고 조율이 잘 안 되고 있는 것 같더군요.
“인천과는 합의가 됐는데, 경기도와는 잘 안 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선 고양, 군포, 과천 등 서울 출·퇴근 인구가 많은 경기도의 기초지자체들하고 논의하고 있는데, 진도가 차근차근 나가고 있습니다.”
― 저출산·고령화 관련해서 지난 20년 동안 수백조원을 썼다고 하는데도 답이 안 나오고 있는데요. 서울시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서울시는 탄생, 양육, 보육, 교육, 일·가정 양립까지 다 포괄해서 121개 사업에 연간 4조원 정도를 쓰고 있습니다. 이 중 가장 중요하고 실효성 있는 대안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주거 관련 정책입니다.
제가 처음 시장이 되자마자 창안해서 시작했던 정책이 ‘쉬프트’, 20년 장기 전세였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아주 유의미한 통계가 최근에 나왔습니다.”
“쉬프트 거주자, 출산율 20~30% 높아”

― 어떤 겁니까.
“쉬프트에 사는 분들의 출산율이 20~30%나 높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착안해서 신혼부부에게 일단 10년은 무조건 장기 전세 주택에 살게 해주고, 자녀를 하나 낳으면 20년을 살 수 있게 해주기로 했습니다. 애를 둘 낳으면 20년 뒤에 그 집을 10% 할인된 가격으로, 셋 낳으면 20% 싸게 살 수 있게 해줄 것입니다. 살고 있던 집이 그냥 자기 것이 되는 것입니다. 상당한 유인책이 될 것 같지 않습니까?”
이 밖에도 오세훈 시장의 ‘정책 자랑’은 끝없이 이어졌다. 기후동행카드, 5분 정원 도시, 시민들의 건강을 챙겨주는 손목닥터 9988, 한류(韓流)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 서울 관광 정책 3377, 기존의 용도구역 개념을 뛰어넘어 직주락(職住樂)을 구현하는 비욘드 조닝(beyond zoning), 영국 건축가 토머스 헤더윅이 노들섬에 만드는 공중보행로…. 오 시장의 아이디어와 꿈은 무궁무진한 듯했다. 그러는 사이에 토요일 오후의 2시간 반이 훌쩍 지나갔다.
― 긴 시간 동안 감사합니다. 혹시 더 하실 말씀은 없습니까.
오 시장은 하고 싶은 얘기는 다 했다는 듯이 말했다.
“아휴, 더 없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총선 이후 국민의힘은 물론이고 보수 정치 세력 자체가 지금 거의 궤멸 수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총선 결과 의석수로 지역구 의석수를 보면 161석 대 90석이었지만, 지역구 득표율을 보면 그 차이가 5.4%밖에 나지 않습니다. 이 정도 차이는 조금만 노력하면 얼마든지 회복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중도로의 진격입니다. 이번에 황우여 비대위원장이 취임하면서 ‘보수를 결집하지 못해서 진 것’이라고 했는데, 글쎄요. 이번 총선 분위기를 보면 보수 결집은 충분히 됐다고 봅니다. 총선 패인을 보수 결집 부족 때문이라고 분석하면 해답이 안 나옵니다. 오히려 중도표를 한 10%, 20%만 얻었다면 승리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보수를 결집시키는 것보다 그게 훨씬 쉽지요.”
서울의 모든 洞에서 승리한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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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근본적인 수해 방지를 위해 빗물 저수조 건설 사업을 진행 중이다. 신림공영차고지 빗물 저수조 공사 현장을 둘러보는 오세훈 시장. 사진=서울시 |
“중도라는 게 별도로 있는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 이쪽을 찍기도 하고 저쪽을 찍기도 하는 스윙 보터(swing voter)를 말합니다. 이분들을 끌어오는 건 어려울 게 없죠. 중도 지향의 정책을 쓰면 됩니다.”
― 중도 지향의 정책이라는 건 어떤 걸 말하는 겁니까.
“일상생활에서 어려워하는 분들에게 위안을 드리고 그분들이 동의할 수 있는 정책을 말합니다. 그 모범 사례가 저라고 생각합니다. 재작년 지방선거에서 저는 서울의 425개 모든 동(洞)에서 다 이겼습니다.”
― 그 비결이 뭡니까.
“서울에는 어떤 경우에도 우리 당이 이기기 어려운 20~30개 정도의 행정동(行政洞)이 있습니다. 그 동들의 특성을 일률적으로 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대개 임대 아파트가 많이 분포돼 있는 곳들입니다. 저는 그곳에서 집중적으로 그분들을 위한 정책적 접근을 했습니다. ‘약자(弱者)와의 동행(同行)’이라고 이름 지은 전략이었는데, 다른 게 아닙니다. 지어진 지 35년 정도 되어서 재건축할 때가 된 임대 아파트들을 허물고 새로 지어드리겠다, 그러면서 평수를 조금이라도 넓혀드리고 자재도 과거와는 달리 분양 아파트와 동일한 퀄리티의 자재를 쓰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분들이 정말 절실히 여기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드리겠다고 진심을 담아 비전을 제시한 것이 그분들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생각합니다.”
― 정치인들이 국민들을 보듬는 경쟁을 벌일 경우, 결국은 무책임하지만 화끈하게 퍼주겠다는 좌파 포퓰리스트들에게 표가 가지 않겠습니까.
“선거를 거의 격년으로 치르다시피 하다 보니 유권자들도 이제 정당이나 정치인의 진정성을 판단하는 데는 도가 텄어요. 뭘 더 많이 주겠다, 현금으로 얼마를 나눠주겠다, 이런 거에 유권자들이 쉽게 현혹된다고 보면 안 될 것 같아요. 유권자들이 무엇을 해주겠다고 약속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을 보면서 ‘저건 진심이다’라고 느끼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 어떻게 해야 하나요.
“‘평소에’ 해야 합니다. 총선에서 지고 난 후 윤석열 대통령께서 3개월 동안 열심히 민생 토론하고 다녔는데, 총선 1년~1년 반 전부터 그랬다면 그 진심이 상당히 전달됐을 거고, 총선에서도 유리했을 것이라고 봅니다.”
― 그런 의미에서 아쉬움이 크죠.
“저는 ‘동행매력특별시’라는 비전을 정하고, 모든 정책을 피라미드 형태로 체계적으로 구체화했습니다. 약자동행지수, 약자동행조례를 만들고, 안심소득·서울런 같은 정책들을 하루가 멀다 하고 발표·추진하고, 아까 말씀드린 임대주택 재건축 같은 것도 다 실천했습니다. 우리 당이 이런 모습을 보였다면 이번 선거에서 충분히 이길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대목에서 오세훈 시장은 “《월간조선》이 주로 보수우파가 많이 보기 때문에 제가 꼭 강조하고 싶은 게 있다”고 말했다.
― 그게 뭔가요.
“제가 ‘약자와의 동행’ 같은 걸 강조하면, 정체성(正體性)이 의심스럽다, 좌파 아니냐, 이런 식으로 말씀하는 분들이 있어요. 하지만 싸움 잘해서 이기는 게 아니에요. TV 같은 데 나가서 ‘말의 전쟁’에 참전하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말싸움에서 또박또박 한마디도 지지 않으면서 우리 편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유형의 정치인과 일을 잘해서 조용히 우리 당에 필요한 표를 얻어오는 정치인을 잘 구별해서 봐주셔야 됩니다.”
“정당은 실험의 대상 아니다”
― 총선 이후 국민의힘은 패배를 추스르고 다음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국민의힘 비대위라고 화면에 나오는 얼굴들만 봐도 가슴이 답답해진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한시적인 비대위에 당의 비전을 손봐 달라고 하기는 어렵지요. 당에서도 황우여 비대위원장께는 전당대회를 잘 치러달라고 부탁드린 것이죠. 대신 새로 들어서는 지도부는 적어도 1년 이상 깊이 있는 고민을 하면서 중장기적인 비전이나 전략을 마련하고 얽힌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그럴 만한 분이 보입니까.
“특정인을 대입해서 말하면 ‘누구와 각을 세운다. 견제한다’ 이런 말들이 나올 것 같아서, 원론적인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맨날 ‘이 사람은 낫겠지’ 해서 신상품을 추구하거나, ‘여태까지 이래서 잘못했으니까 이번에는 이 사람한테 한번 맡겨보자’ 이러는데, 정당은 실험의 대상이 아닙니다. 대통령이나 정당의 대표는 일하는 자리지 실험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충분히 시행착오를 겪고, 숙성된 가치 체계와 비전 체계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전략까지도 구상한 사람이 그 자리에 올라야 국민들이 편안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당도, 국민도, 지도자를 선택할 때에 기준이 좀 멀리 시선이 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전투와 전쟁은 다르다”
지난 5월 17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는 ‘4월 전국 광역자치단체 평가’를 발표했다. 정당지표 상대지수란 자치단체장의 직무수행 평가가 해당 지역의 정당 지지층 대비 어느 정도 수준에 위치해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수치를 말한다. 이에 따르면 오세훈 시장은 정당지표 상대지수 134.1점을 기록하며 17명의 전국 광역단체장 중 1위에 올랐다. 오 시장은 지난 3월 조사에서도 136.7점으로 1위를 차지했었다. 2위는 김태흠 충남지사(128.9점), 3위는 김동연 경기지사(124.2점)였다.
하지만 ‘차기 대통령 후보’ 여론조사에서는 그리 성적이 좋지 않다. 기자가 오세훈 시장을 인터뷰하기 하루 전인 6월 7일 보도된 데일리안-여론조사공정의 여론조사(6월 3~4일 실시) 결과를 보면 ‘차기 대통령 후보로 가장 호감이 가는 인물’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35.6%)가 꼽혔다. 오세훈 시장은 한동훈 전 국힘 비대위원장(25.9%)의 뒤를 이어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와 나란히 6.5%를 기록했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5.5%)이 그 뒤를 이었다. 이 이전까지의 여론조사 중에는 2~3%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 서울시장이라는 커다란 메리트를 갖고 있고, 그동안 열심히 일해온 것에 비해 ‘대통령 후보’로서의 지지율은 그리 높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지지율이라는 건 결국 TV에 등장하는 횟수에 비례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소위 국지전(局地戰)이죠. 하나의 전투에서 이긴다고 해서 꼭 전쟁에서 이기는 건 아니거든요. 정치에서도 하나하나의 ‘말의 전투’에서 이기는 능력과 전략·경험·정보 등이 총체적으로 작용하는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노하우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국민들, 경륜 있는 지도자 바라게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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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계층 간 교육격차 해소를 위해 서울런을 만들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서울시 |
“그 부분에 대해서는 특별한 해법이 있다고 말씀드리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다만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우리 국민들이 경험과 노하우를 갖춘 경륜 있는 지도자를 바라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국민들은 윤석열 대통령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더 할 것 같아요. 전문가들은 1987년 이후 대선에서 나타난 시대정신을 보면, 그 전임 대통령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 마련이었다고 말하거든요.”
― 그렇지요.
“큰 틀에서 보면 지금 윤석열 대통령이 추구하는 방향이 틀렸다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한미동맹 강화라든가, 오랫동안 반목 관계에 있었던 한일 관계를 정상화시킨 것이라든가, 원전(原電) 정책을 다시 원상으로 복귀를 시켜서 엄청난 전력(電力)을 필요로 하는 반도체 산업 등의 경쟁력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초석을 튼튼히 하셨다든가 하는 것들은 옳거든요. 그런데 디테일이 들어가면 항상 뭔가 좀 부실하게 준비해서 급하게 대응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최근에도 직구(직접구매) 논쟁이 벌어진 알테쉬(알리바바, 테무, 쉬인)에 대한 대응책을 KS 인증으로 해결하겠다고 했다가 오히려 비판의 빌미를 마련해주지 않았습니까? 국민들은 이런 부분을 답답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거든요.”
―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자화자찬 같아서 좀 민망합니다마는, 서울시는 4월 초부터 직구가 문제 되자마자 알테쉬에서 나온 어린이 용품이나 일상생활 용품에 어떤 건강 위해 요소가 있는지를 매주 지속적으로 발표하면서 소비자들에게 경각심을 주었습니다. 그 덕분에 지금 알테쉬 시장 점유율이 상당히 낮아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역시 일을 해본 사람이 일을 체계적·효과적으로 한다’는 평가를 듣고 있습니다.”
“제가 대표적인 정통 보수죠!”
오세훈 시장은 총선 후인 4월 29일 자 《조선일보》에 〈이제 힘든 토끼를 위한 따뜻한 보수를〉이라는 글을 기고했다. 이 글에서 오 시장은 ‘신자유주의 우파’에서 이제 ‘따뜻한 우파’ ‘따뜻한 보수’로 바뀌어야 된다고 강조했다.
― 스스로 이념적인 좌표가 어떻다고 생각합니까.
이 질문에 오 시장은 깜짝 놀랄 정도로 단호하게 대답했다.
“제가 아주 대표적인 정통 보수죠!”
― 아, 네….
“사람들은 제가 ‘보수 중에서 왼쪽’이라고 그러는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제가 보수 본류(本流)라고 생각합니다.”
―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저는 정치를 우리 당에서 시작했습니다. 2000년 총선 당시 민주당에서도 굉장히 집요하게 영입 제안이 있었어요. 민주당은 나중에 제가 자기네 당으로 가기로 해놓고 좋은 지역구를 준다고 하니 한나라당으로 갔다고 하는데, 사실과 다릅니다. 저는 한 번도 민주당 가겠다고 승낙한 적이 없어요.
이런 제가 왜 좌파입니까? 저를 두고 우리 당 내에서도 이념적 정체성이 의심스럽다고 음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제가 오늘은 아주 허심탄회하게 할 얘기를 다 해야겠어요.”
― 그러시죠.
“제 고향이 호남이라는 사람도 있는데, 저희 집안은 10대조까지 서울 명륜동에서 살았어요. 저희 선산(先山)이 전부 경기도 용인·이천에 있습니다. 13대조 할아버지부터 4대조 할아버지의 선산이 용인시 모현면에 있고, 그 이후 저희 할아버지까지 선산이 이천에 있습니다. 제가 태어난 곳은 서울 성동구 성수동이고, 외가는 경북 상주입니다.”
― ‘보수 본류’라면서 굳이 ‘따뜻한 보수’라면서 ‘보수’ 앞에 수식어를 붙이는 이유는 뭔가요.
“그건 ‘보수가 원래 따뜻한 것이다’ ‘보수는 따뜻해야 한다’는 것을 정확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원래 보수우파는 경쟁을 중시하잖아요? 그러다 보면 아무래도 다소 무자비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따뜻한 보수’라고 얘기하는 것입니다.”
― 보수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국가를 번영시키면서도 한편으로 사회적 약자를 보듬는 게 보수 정치인이 해야 될 일이에요. 경쟁을 통해 경쟁력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그러다 보면 경쟁에서 뒤처지는 사람들, 기업이 생기는데, 이들을 어떻게 보듬느냐가 ‘약자와의 동행’인 겁니다.”
― 서울시의 캐치프레이즈가 ‘동행매력특별시 서울’인데, 경쟁력은 어디 있나요.
“제가 전에 시장직을 수행할 때(2006~2011년)에는 ‘도시경쟁력’을 많이 강조했는데, 너무 딱딱해 보여서 지금은 ‘매력’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와서 살고 싶고, 비즈니스 하고 싶고, 구경하고 싶고, 즐기고 싶은 것… 그것이 도시경쟁력이고 매력이라는 의미입니다.”
― 경쟁력이란 말을 매력이라고 표현하니 조금 추상적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할 수 없죠. 저도 정치인이다 보니…. 그래도 이건 양질(良質)의 포장입니다. 이재명 대표처럼 대장동이나 백현동 같은 터무니없는 일을 하고 그걸 속이기 위한 포장은 아니잖아요? 대북송금 했다는 사실이 이번에 판결(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판결)로 밝혀졌잖아요. 그러면서 안 한 척하는 게 거짓말 포장이죠.”
“역대 대통령들이 지금의 복지·경제 바탕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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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시장은 민생 현장을 자주 찾아가 어려운 시민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사진=서울시 |
“제가 지난 15년 동안 천착해왔던 주제가 ‘무엇이 번영을 만드는가’ 하는 것입니다. 번영의 원리를 한 줄로 표현한다면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도전과 모험, 그 시행착오가 쌓여서 번영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도전과 모험이 번영을 만들게 하는 요체는 무엇인가? 보상(報償) 체계입니다.”
― 그렇죠.
“번영의 원리를 한 단어로 줄이면 인센티브 하나만 남습니다. ‘노력한 자는 과실(果實)을 얻는다, 노력하지 않은 자는 과실이 없다’ 이 한 줄로 요약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왜 ‘약자와의 동행’을 더 강조하느냐? 우리는 이미 국민소득 3만5000달러 언저리에 이르렀습니다. 이제는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 뒤처진 분들을 보듬어서 함께 미래로 갈 수 있도록 만드는 작업이 더 중요한 가치라고 보는 겁니다.”
― 영국에서도 각종 복지제도의 기틀을 처음 만든 건 노동당이 아니라 보수당이었죠.
“우리나라도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복지제도의 연혁(沿革)을 보면, 기초수급자들을 보호하는 기초생활보장법의 모태인 생활보호법이 만들어진 것은 1961년 박정희 정부 때였습니다. 그게 전면 개정된 게 1982년 전두환 정부 때입니다. 그 법이 지금의 기초생활보장법으로 바뀐 것은 1997년 김대중 정부 때지만, 법안(法案)이 입안(立案)된 것은 김영삼 정부 때였습니다. 역대 모든 대통령이 다 관여되어 있어요.
기억나세요? 김대중 대통령이 강조했던 게 ‘생산적 복지’였습니다. 복지는 복지인데 열심히 일하도록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이 좌파 같지만, 지금의 좌파하고는 차원을 달리했습니다. 그 후에 노무현 정부, MB 정부 등을 거치면서 점점 법의 적용 범위와 혜택을 확대하면서 발전해온 겁니다. 복지라고 하는 것은 보수 정권이나 진보 정권, 우파 정권이나 좌파 정권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그렇죠.
“대한민국이 지금처럼 1인당 국민소득 3만5000달러, 전 세계 10위권의 경제를 이룩하게 된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승만 대통령 때 전 국민 기초교육을 정말 정성 들여서 시작해서 산업화 시대의 인적 자원을 만들어냈습니다. 박정희 정부는 수출입국, 중화학공업, 제조업으로 승부할 수 있는 바탕을 튼실하게 놓았습니다. 전두환 정권은 인권에 관해서는 문제가 있었지만 일사불란한 효율성을 바탕으로 미래 경쟁력을 만들어놓았죠. 경제는 사실 전두환 정권 때가 가장 좋았어요. 노태우 정부 때는 물태우라는 소리 들어가면서까지 인권에 대해 초석을 놓았고 북방 정책을 펼쳤습니다. 지금 우리가 먹고사는 ICT의 기반은 누가 뭐래도 김대중 정부 때 그 초석이 깔렸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기편으로부터 욕먹어가면서까지 한미 FTA를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우파 좌파 할 것 없이 역대 대통령들이 오늘날 한국 경제의 바탕을 만들어온 것이죠.”
“이재명, 국민통합 한 번도 입에 올리지 않아”
오세훈 서울시장은 얼마 전 페이스북에 ‘이제 성숙된 하나 됨을 위하여’라는 글을 썼다. 공감이 많이 갔다.
― 좌우나 지역뿐 아니라 이제는 세대별·성별(性別)로도 나라가 사분오열(四分五裂)되어 있고, 이런 갈등을 조장해서 재미를 보려는 정치인들도 있습니다. 이걸 어떻게 치유해가야 할까요.
“박근혜 대통령까지는 국민통합을 실천까지는 못했더라도 구호로 내걸기는 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까지는 국민통합을 얘기했습니다. 자기를 지지하지 않은 국민들도 잘 섬기겠다고 했으니까요.”
― 취임사 자체만 놓고 보면 명문(名文)이었죠.
“하지만 그 후 5년 내내 갈라 치기를 했죠. 그런데 지금 이재명 대표는 아주 노골적으로, 국민통합을 한 번도 입에 올리지 않았어요. 개딸에게 휘둘리는데 말 다 했죠. 최근에 이렇게 말의 전쟁판이 된 것은 바로 이런 정치 지도자들의 처신과 무관하지 않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정치인들은 끊임없이 국민통합과 화합을 내걸고, 거기서 만들어지는 시너지 효과를 가지고 희망의 미래를 만들어가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거기에 매진해야 됩니다. 그게 정치인의 기본적인 책무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 기본적인 책무조차도 소홀히 하는 사람들이 정치 지도자인 척하고 있습니다. 이 점을 국민들께서 유심히 봐주셔야 합니다.”
“이승만기념관, 공과 50대 50으로”
― 페이스북에 영화 〈건국전쟁〉을 본 후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글을 올린 것을 보았습니다.
“〈건국전쟁〉을 계기로 그런 글을 썼지만, 그 전에도 이승만 대통령의 공과(功過)에 대해서 몰랐던 건 아닙니다. 다만 그런 대중적인 이벤트를 계기로 대국민 설득을 하려고 한 거죠. 이승만 대통령이 워낙 오랫동안 악마화돼 있었기 때문에 동의를 못 하시는 분들이 아직 많아요.”
― 이승만기념관 건립 문제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우선 이승만기념관이라고 하면 마치 그분의 장점을 도드라지게 하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오해입니다.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는 분들과 대화를 해보니 ‘이승만에 대한 오해를 풀려면 공과를 50대 50으로 기념관에 전시해야 된다’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러면서 그분들이 예로 드는 게 대만의 장제스(蔣介石) 총통 기념관입니다. 장제스기념관은 공간 배정도, 내용도 공과가 50대 50이라고 합니다.
모든 역사적인 인물은 다 공과가 있잖아요. 또 그렇게 후손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역사적 인물이 되겠다고 하는 정치인들이 시행착오를 줄이고, 조심하고, 최선을 다해서 책임을 다하려고 하겠죠.”
― 송현공원에 짓게 되는 건가요?
“기념관 추진위원회 분들이 저에게 요청하신 공간이 송현공원이기 때문에 서울시는 그 부분에 대해서 검토를 하겠다고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시민들의 의견을 종합해서 결정해야 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저희가 결론을 내놓고 밀어붙이는 단계는 아닙니다.”
핵·미사일·EMP탄 관련 포럼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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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가 2023년 11월 2일 개최한 ‘서울시 핵·미사일 방호 발전 방안’ 포럼에는 군 관계자들도 다수 참석했다. 사진=서울시 |
― 통합방위법에 의하면 지방자치단체장은 통합방위협의회 의장을 맡게 되어 있는데도, 우리나라 지자체장들은 안보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아 왔습니다. 그런데 시장님께서 근래에 안보에 대한 관심을 보이면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보면서 굉장히 반가웠습니다.
“서울시는 작년에 핵과 미사일, EMP(electromagnetic pulse·전자기펄스)탄에 관한 포럼을 두 차례 개최했습니다. 국방부, 수도방위사령부 등 군(軍) 관련자들과 안보 전략을 연구하는 분들이 ‘중앙정부에서도 안 하는데, 지자체에서 이런 걸 다 하느냐’면서 행사장을 가득 메웠어요. 반응이 참 뜨거웠어요.”
― 북한이 금년 들어서도 무더기로 미사일 발사를 하는 등 위협의 강도를 높여가고 있습니다.
“북한이 이제 전략핵은 물론 핵무기의 소형화·경량화를 통해 전술핵까지 갖게 되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하지만 전술핵도 공멸(共滅)을 뜻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활용하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이 저렇게 지나치게 큰소리치는 것에 대해 우리가 지나치게 위축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우리로서는 방어 시스템을 안 만들 수가 없는데, 거기에 수십조원이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참 딱한 노릇이 된 거죠. 핵 그림자 효과가 이미 한반도에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 시장께서 한국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 것을 보았습니다.
“자주 해왔죠. 저와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그런 얘기를 하는 게 미국이나 중국을 상대로 핵 협상을 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 정말 핵무기를 개발하자는 겁니까.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이 제일 바람직하지만, NPT(핵비확산조약) 같은 것들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겠지요. 그래서 일단 핵 잠재력을 일본 수준으로 끌어올리자는 것까지를 적정한 선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 EMP탄에 대한 포럼까지 연 것을 보면, 안보 현안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핵무기는 현실적으로 쓰기 어렵기 때문에 오히려 북한이 EMP탄을 활용할 확률이 더 높다고 생각합니다. 네이버만 먹통이 돼도 패닉에 빠지는데, 전자·전기 제품이 전부 먹통이 된다면 대한민국 경제는 초토화됩니다. 그래서 그에 대해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또 백업 시스템은 어떻게 만들어놓을 것인가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토론하는 기회를 가진 것입니다. 올해는 드론과 킬러 로봇에 대해서도 포럼을 열 생각입니다.”
“외교를 국내 정책에 활용하는 건 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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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시장은 지난 6월 1~2일 열린 쉬엄쉬엄 한강 3종 축제에 참가, 한강변을 달렸다. 사진=서울시 |
“그래서 서울 시내 수천 개의 대피소에 비상시에 꼭 필요한 필수품과 물을 100병씩 비치해놓고, 정기적으로 교체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 초보적인 단계이기는 하지만, 이런 준비를 하고 있는 지자체는 서울시가 유일합니다.”
― 삼일절을 앞두고 페이스북에 “손을 내밀 수 없는 상대에게도 손을 내미는 게 이제 진정한 평화와 화합의 정신”이라고 쓴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요새 라인야후 문제를 놓고 야당 사람들은 또 반일 드라이브를 걸기 시작했습니다.
“금도(襟度)가 깨진 것이죠. 외교 문제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는 게 이제는 당연한 공식처럼 돼버렸어요. 외교를 국내 정치에 활용하는 건 하수(下手)입니다.”
어느덧 당초 약속했던 인터뷰 시간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하지만 질문할 것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오세훈 시장은 “허기가 진다”면서 빵을 내오라고 했다. 빵과 음료를 먹으며 인터뷰를 이어갔다.
― 총선 때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국회의 세종시 이전을 주장했고 윤 대통령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수도 서울의 위상과도 관련이 되는 문제인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다른 시·도 지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지방의 박탈감, 열패감(劣敗感)이 대단합니다. 그래서 국회 본회의장이나 상임위를 세종시로 옮겨서 거기를 행정수도로 만들어주는 것은 동의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서울의 경제 기능을 빼가는 정책은 하책(下策)이라고 봅니다.”
“국회 내려보내고 여의도를 금융 허브로”
― 무슨 의미입니까.
“예를 들어 효율성을 해치면서 금융기관을 지방으로 보내는 것을 말합니다. 서울에서 뺄셈을 하더라도 그 이상의 시너지 효과가 있으면, 그건 국토의 균형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논의해볼 가치가 있어요. 하지만 서울은 서울대로 마이너스가 되면서 지방으로 보내서 플러스 효과를 내지 못하는 금융기관·행정기관 이전은 좀 더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세훈 시장은 “국회가 세종시로 옮겨가는 것이 경제적으로는 여의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의도는 아시아의 금융 허브, 핀테크[Fin Tech·Finance(금융)와 Technology(기술)의 합성어] 허브를 비전으로 삼아야 합니다. 박원순 시장 시절 금융 허브 순위에서 한 30위까지 떨어졌었던 것을 이제 다시 10위권까지 올려놓았습니다. 국회의사당이 있는 서여의도 쪽을 개발해서 탈(脫)홍콩화하는 국제금융 기업들을 여의도로 끌어와야 합니다.”
― 그게 쉽게 될까요.
“물론 법인세를 낮추고, 영어 친화 도시를 만드는 등 소프트웨어가 갖춰져야죠. 하지만 하드웨어도 중요합니다. 공간이 있어야 들어오죠. 그런 의미에서 저는 차라리 국회를 내려보내고 그 넓은 자리에 금융 기능을 보강할 수 있는 터전과 녹지공원을 만드는 게 경쟁력을 강화하고 서울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UAE에서 배워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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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시장은 지난 5월 UAE를 방문, 두바이 핀테크 등에 참석했다. 사진=서울시 |
“두 도시 모두 싱가포르를 제대로 벤치마킹했더군요. 싱가포르는 교통의 요지라는 점을 바탕으로 발전했는데, 아부다비와 두바이도 중동-아프리카-유럽-아시아를 아우르는 교통의 허브입니다. 제조업으로 승부하기 어려우니 금융·물류·무역·관광 같은 걸로 승부하려는 것이 싱가포르와 아주 닮은 꼴이더군요. 유럽·중동·아시아·아프리카 국가들이 아부다비·두바이를 이용하지 않을 수 없도록 전략을 아주 잘 짜고 있어요.”
― 어떤 전략입니까.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법인세(法人稅)를 굉장히 낮춰서 국제 금융 지역으로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둘째, 영어를 씁니다. 셋째, 매력적인 도시 공간들을 인위적(人爲的)으로라도 만듭니다. 그걸 두고 ‘급조한 대형 건축물’이라는 식으로 비판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게 생존 전략이에요. 사람을 끌어모으기 위한 장치죠. 심지어는 반도체 세상에 대한 대비까지 하고 있더군요.”
― 반도체요?
“산유국(産油國)이고 원자력 발전도 해서 전기가 풍부하니까 데이터센터는 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런 식으로 미래 비전을 만들어 경쟁력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 아부다비와 두바이에도 싱가포르처럼 잘 훈련된 공무원 집단이 있습니다. 그런 건 우리가 배워야 합니다. 지금 두바이 공항이 전 세계에서 가장 커졌어요. 투자, 전략 모두 배울 게 정말 많은 곳입니다.”
― 작년 말에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정치의 역할이 이제 나라의 번영을 이끌고 약자를 챙기는 것”이라고 하신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역대 대통령들을 평가한다면?
“감히 후학이 역대 대통령을 평가하는 것은 주제넘는 것 같습니다. 아까 제가 말씀드린 걸로 대답을 대신해주면 좋겠습니다. 집권 과정에서의 정통성 같은 문제로 비판받을 만한 요소들이 있는 대통령들도 있었지만, 한 분 한 분 역사적으로는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제일 중요한 건 과학 기술”
―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이 시대에 대통령이 해야 될 가장 중요한 일은 뭐라고 생각을 합니까.
“과학 기술 발전이죠! 문화도, 복지도 다 중요하지만, 나라가 계속해서 지금의 경제력을 그나마 유지하려면, 그리고 조금 더 욕심을 부려서 도약을 하려면, 결국 첨단 과학 기술이 중요하거든요.”
― 그렇죠.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AI, 로봇 같은 것이 그런 영역인데, 그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게 이제는 AI가 돼버렸어요. 엔비디아 같은 기업 서너 개만 있으면 걱정할 게 없죠. 다행히 우리는 삼성 반도체와 SK하이닉스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래도 선전(善戰)하고 있습니다. 반도체를 바탕으로 AI 분야에서 뒤처지지만 않고 선두 그룹을 형성해서 계속 나아갈 수만 있다면, G5 반열에 오르는 것도 불가능한 건 아니라고 봅니다.”
― 작년에 한 인터뷰에서 ‘이제 정치가 방해만 하지 않으면 미래 경쟁력이 그렇게 암울한 정도는 아니다’라고 했는데, 이번 총선 결과를 보면 ‘이제 정치가 확실하게 발목을 잡게 생겼구나’ 싶어 걱정입니다.
“아직 이재명 대표를 필두로 한 민주당이 ‘반도체 억제법’ 같은 것을 만들지는 않잖아요? 정치란 국민들께 희망을 드리고 긍정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책무인데, 비관적인 말씀을 드리는 것은 도리가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잘못하면 중진국으로 굴러 떨어질 수도 있어요.”
― 저도 그게 걱정입니다.
“지금 승자 독식의 산업 구조로 들어가 있기 때문에 반도체나 바이오, AI 이런 몇몇 영역에서 2등은 의미가 없거든요. 이런 영역에서 다 2등을 해버리면 중진국 반열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거죠. 이 첨단 과학 기술의 영역에서 이른바 초격차(超隔差)의 앞에 설 것이냐 뒤에 설 것이냐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있기 때문에, 다음 리더십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런 과학 기술의 중요성을 정말 절실하게 느끼고 정책화할 수 있는 리더십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CNG 버스 도입만으로도 청계천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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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시장은 지난 5월 29일 ‘저출산대응 신혼부부 공공주택 확대 방안’을 발표했다. 사진=서울시 |
“저는 시민들이 저를 네 번 뽑아주신 데 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울 시민들이 오세훈을 네 번 선택한 것은 청계천 같은 것으로 승부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세훈이 시장이 되고 나서 청계천 같은 것을 하나 만든 게 아니라 서울시 전체가 안 바뀐 게 없다, 한강도 남산도 달라졌고, 아파트 재건축·재개발도 달라졌고, 정원 녹지 면적도 늘어났고, 손목닥터 9988 같은 것으로 운동도 시켜준다,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하는 가치, 즐겁고 행복하게 무병장수할 수 있게 해주는 모든 정책이 오세훈한테는 다 있다…. 이것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제가 4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는 공기질까지 좋아졌잖아요. 그건 아무도 부인 못 해요. 국회에 있을 때 법도 만들고 버스 엔진을 전부 CNG 엔진으로 바꿔서 공기를 확 바꿔놓은 거 아니에요 그거 하나만으로도 청계천을 넘어선다고 생각합니다.”
- 큰 틀에서 시정 전반의 소프트웨어를 혁신하셨겠네요. 1990년대까지만 해도 시내 한 번 나오면 진짜 머리가 아프고 셔츠 깃이 까매진 것이 느껴졌었거든요. 근데 이게 언제부턴가 안 그렇더라고요.
“네, 서울을 서울답게 만드는 것이 그것입니다. 과거에 이런 대기가 있었나요?”
― 기후동행카드는 참 좋은 아이디어지만, 경기도하고 조율이 잘 안 되고 있는 것 같더군요.
“인천과는 합의가 됐는데, 경기도와는 잘 안 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선 고양, 군포, 과천 등 서울 출·퇴근 인구가 많은 경기도의 기초지자체들하고 논의하고 있는데, 진도가 차근차근 나가고 있습니다.”
― 저출산·고령화 관련해서 지난 20년 동안 수백조원을 썼다고 하는데도 답이 안 나오고 있는데요. 서울시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서울시는 탄생, 양육, 보육, 교육, 일·가정 양립까지 다 포괄해서 121개 사업에 연간 4조원 정도를 쓰고 있습니다. 이 중 가장 중요하고 실효성 있는 대안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주거 관련 정책입니다.
제가 처음 시장이 되자마자 창안해서 시작했던 정책이 ‘쉬프트’, 20년 장기 전세였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아주 유의미한 통계가 최근에 나왔습니다.”
“쉬프트 거주자, 출산율 20~30% 높아”

― 어떤 겁니까.
“쉬프트에 사는 분들의 출산율이 20~30%나 높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착안해서 신혼부부에게 일단 10년은 무조건 장기 전세 주택에 살게 해주고, 자녀를 하나 낳으면 20년을 살 수 있게 해주기로 했습니다. 애를 둘 낳으면 20년 뒤에 그 집을 10% 할인된 가격으로, 셋 낳으면 20% 싸게 살 수 있게 해줄 것입니다. 살고 있던 집이 그냥 자기 것이 되는 것입니다. 상당한 유인책이 될 것 같지 않습니까?”
이 밖에도 오세훈 시장의 ‘정책 자랑’은 끝없이 이어졌다. 기후동행카드, 5분 정원 도시, 시민들의 건강을 챙겨주는 손목닥터 9988, 한류(韓流)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 서울 관광 정책 3377, 기존의 용도구역 개념을 뛰어넘어 직주락(職住樂)을 구현하는 비욘드 조닝(beyond zoning), 영국 건축가 토머스 헤더윅이 노들섬에 만드는 공중보행로…. 오 시장의 아이디어와 꿈은 무궁무진한 듯했다. 그러는 사이에 토요일 오후의 2시간 반이 훌쩍 지나갔다.
― 긴 시간 동안 감사합니다. 혹시 더 하실 말씀은 없습니까.
오 시장은 하고 싶은 얘기는 다 했다는 듯이 말했다.
“아휴, 더 없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