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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성폭력 누명 벗은 탈북 작가 장진성

“北 수령과 MBC는 동일범… 誤報 역사 다큐멘터리 만들 것”

글 : 박지현  월간조선 기자  talktom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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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허위 방송으로 성폭행범 누명 3년… 대법원서 손배소 승소
⊙ 패소 후 사과 한마디 없는 MBC… 홈페이지엔 여전히 예고 기사
⊙ MBC 기자, “증거보다 방송가치 중시” “우리가 노이즈 마케팅해준 것”
⊙ “나는 北 수령과 MBC, 두 악마에게 모두 사죄받지 못한 탈북민”
사진=월간조선
  이겼지만 뒷맛은 썼다. ‘피로스의 승리’ 같은 거였다. 그는 “법으로 승소했지만 인생에선 패소했다”고 했다. MBC와의 3년 다툼 끝, 장진성 작가는 “인권 유린 차원에서 북한 수령과 MBC는 동일범”이라면서 “나는 두 악마 모두에게 사죄받지 못한 탈북민”이라고 했다.
 
  한때 국제적 작가로 명성(名聲)이 자자했다. 그가 쓴 시집 《내 딸을 백 원에 팝니다》는 2012년 영국 옥스퍼드대가 선정한 ‘렉스워너 1등상’을 받았다. 이후 펴낸 《경애하는 지도자에게(Dear Leader)》는 출간 직후 아마존 아시아 전기물 부문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영어로 번역된 국내 작품 사상 압도적인 순위였다. 인터뷰하겠다는 기자들이 줄을 섰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가디언》 《이코노미스트》, BBC, 미국 《USA투데이》, NBC, CNN 등 25개국 60여 개 언론사가 앞을 다퉜다. 2014년에는 영국 《더 타임스 매거진》 표지인물로 등장했고, 같은 해 CNN 간판 아나운서 크리스틴 아만푸어 뉴스쇼에 출연하기도 했다. 한국인으로는 가수 싸이에 이어 두 번째였다. 장 작가는 “그때까지만 해도 북한 악마와만 싸우던 장진성이었다”고 했다.
 
  그 이름에 오명(汚名)이 덧씌워졌다. 지난 2021년. MBC 〈스트레이트〉가 ‘유명 탈북 작가 장진성, 그에게 당했다. 탈북 여성의 폭로(2021년 1월 24일자)’와 ‘탈북 작가 장진성 성폭력 의혹 2탄… 침묵 깬 피해자들(2021년 2월 28일자)’을 방송하면서다.
 
 
  재판부, MBC 방송은 허위
 
지난 2021년 1월 MBC 〈스트레이트〉 보도 화면 캡처.
  방송의 상당 부분은 제보자 A씨 등의 진술이 차지했다. 탈북 여성인 A씨는 장 작가로부터 지속적인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작가는 방송 직후 MBC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모든 게 허위였기 때문이다. 법원은 장 작가의 손을 들어줬다. 1심과 2심 모두 방송 2회분에 대한 전량 폐기 및 손해배상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지난 3월 14일 대법원은 MBC의 상고를 기각하며 원심(原審)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MBC가 보도를 통해 ‘장씨가 A씨의 나체사진을 이용해 A씨를 여러 차례 강간했다’는 사실의 존재를 암시해 적시했는데 이는 허위로 판단된다”고 했다. 수사기관에서 작가의 휴대전화를 포렌식했지만 나체사진이 나오지 않았고, A씨가 강간당했다는 호텔이 어딘지 진술이 일관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들었다. “A씨를 도저히 강간의 피해자로 보기 어렵다”는 표현도 썼다. 재판부는 “성인지 감수성은 개별 사건에서 피해자가 처한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란 취지지, 이처럼 비상식적인 행태에 대해서까지 용인하며 피해자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가볍게 믿으라는 취지가 아니다”고 했다. 대법 판결 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MBC 〈스트레이트〉에 대한 심의를 재개하기로 했다.
 
  지난 4월 5일 서울 광화문 모처에서 모자를 푹 눌러쓴 장 작가를 만났다.
 

  ― 승소 후 원래 기자회견을 하려 했었죠.
 
  “아들이 울면서 그러더군요. 이제는 제발 TV에 나오지 말라고. 그래서 기자회견을 취소하고 입장문으로 대신했습니다.”
 
  언론에 배포한 입장문에서 그는 “나는 더 이상 세계가 알던 반북(反北) 작가가 아닌 성폭행범으로 낙인찍혀 살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며 “북한에 정치권 공포 시스템을 만든 수령 악마가 있다면 남한에는 여론 수용소를 만들고 그 안에서 거짓, 조작의 전파 독재를 일삼는 악마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MBC의 사과방송을 촉구했다.
 
 
  “사과 한마디 없이 방송만 내려”
 
  ― 통상 오보(誤報)임이 드러나면 사과문을 띄우는데요.
 
  “사과방송은커녕 홈페이지에 단 한 줄의 사과 글도 올리지 않았어요. 《뉴욕타임스》 같은 언론은 물론이고, 태국의 신문도 언론 신뢰도를 위해 기사를 함부로 내리지 않는다더군요. 내릴 때는 반드시 해명과 사과가 있어야 한다고요. 그런데 MBC는 아무 말 없이 그냥 내리고 끝입니다. 80분이 넘는 방송 분량 전체 폐기 판결은 한국 방송 역사상 최초라고들 합니다. 5분짜리 영상도 아니고 그 긴 영상을 내리고 사과 한마디 없다는 건, 결국 거짓이 이렇게 반복돼왔음을 고백하는 것과 다름없어요. 늘 거짓 보도를 일삼을 준비가 돼 있다는 거죠. 심지어 MBC 홈페이지에는 아직까지 해당 방송의 예고 기사가 등재돼 있습니다.”
 
  그는 “네덜란드에서의 대학교수 생활, 각종 해외 강연과 세미나, 여행까지 합해서 총 80여 개국을 다녀봤는데, 한국 경제는 선진국일 수 있지만 언론과 정치는 후진국”이라고 했다.
 
  “사죄 없는 거짓의 반복을 일삼는 방송이 어떻게 공영언론입니까. 한국 사회는 이를 왜 방임하나요. 국가가 어떻게 이걸 공영방송으로 허용할 수 있습니까. MBC 안에도 분명 윤리의식이 있는 기자들이 있을 텐데, 왜 이에 대한 집단 분노가 없죠? 좌우 극단보다 강한 게 ‘논리’라는 중립 공간입니다. MBC에 중립 공간이 있다면, 이에 대한 분노가 있어야죠. 그게 없으니 광우병 선동이 나오고,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이 아니라고 하는 겁니다. MBC뿐만 아니라 한국은 이런 중립 공간이 없어요. 그런 측면에서 후진국이라고 봐요.”
 
 
  MBC 기자, “증거보다 방송가치 중시”
 
  ― 보도 이후 MBC 기자와 대면(對面)한 적이 있습니까.
 
  “방송 나가자마자 전화 통화를 했고 만나기도 했습니다. 무슨 증거로 방송을 했느냐 했더니, ‘우리는 증거보다 방송가치가 더 중요하다’고 하더군요. 세상에 증거 없는 가치가 어디 있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사실 기반의 기사라면 증거가 우선돼야지, 결국 자신들의 신념에 따라 방송한다는 것 아닙니까. 아, 이게 MBC 기자 수준이구나, 싶었습니다.”
 
  장 작가에 따르면 제보자 A씨 등은 탈북민 사회에서 이미 상식적이지 않은 인물로 통한다고 한다. 그는 “MBC는 제보자들의 비정상적 행태를 충분히 입증할 증거들을 방송 이전에 수집했었다”며 “담당 기자도 이 사실을 고백했고, 그 음성 녹취록은 현재까지 내 유튜브 채널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했다. 판결문 또한 “기자는 A씨의 비상식적 진술 내용을 충분히 의심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명시했다.
 
  ― 방송 전 기자에게 반론 요청은 들어왔습니까.
 
  “대답할 가치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말이 되는 취재를 해야 답을 하죠.”
 
  MBC는 재판 과정에서 “장 작가가 취재를 피했고, 명확한 설명을 못 했기 때문에 제보자의 말을 진실이라고 믿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취재에 응할지는 장 작가의 자유며, 취재를 거부했던 이유가 납득이 간다”고 했다. 재판부는 또 “보도 내용이 작가에게 치명적인 만큼 MBC는 그 어느 때보다 철저한 검증을 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고도 했다.
 
  장 작가는 “해당 기자는 따로 형사 고소할 예정”이라고 했다.
 
  “도저히 용서가 안 됩니다. 방송 직후 저를 만나 그러더군요. ‘저 작가님이 그렇게 유명한지 몰랐어요. MBC가 작가님을 노이즈 마케팅해준 측면도 있지 않을까요?’ 기가 차더군요. 죄의식도 없어요. 그냥 웃으면서.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혹시 아이가 있냐고요. 있대요. 몇 살이냐 했더니 아홉 살이랍니다. 우리 애랑 동갑이더군요. 당신은 어머니로서 결코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했다고 말했어요. 기자는 제가 탈북민이라 고소할 돈이 없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조작방송을 해도 반박이나 저항을 못 할 거고, 변호사 비용도 못 낼 거다,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르죠. 그게 아니라면, 감히 이렇게 무도(無道)한 조작방송을 냈을까요. 제가 한국 출신이라도 그랬을까요. MBC는 늘 약자(弱者)의 편에 서서 정의를 말한다고 주장하는데, 탈북민은 약자가 아닌가요?”
 
 
  추가 피해자의 합의 조건
 
  장진성 작가는 지난 2004년 탈북했다.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한 뒤 조선중앙방송위원회 TV 총국 문예부 기자로 일했다. 이후 노동당 대남공작부서인 통일전선부 101연락소에서 근무했다. 시(詩)를 활용한 심리전이 임무였다. 김일성, 김정일을 찬양하는 한국의 시를 지어냈다. 1999년 5월 22일 《로동신문》에 실린 ‘영장의 총대 위에 봄이 있다’는 시가 그의 작품이다. 김정일은 “선군시대의 모범 시”라 극찬했다. 그 덕에 김정일도 직접 만났다. 그간은 신적 존재인 줄로만 알았는데, 대면한 그는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가장 부유한 왕의 모습이었다. 화가 났다. 그 무렵부터 체제 비판 시를 몰래 쓰기 시작했다. 그러던 2004년 1월, 한국 잡지를 돌리다 적발돼 탈북했다. 품에 자작시(自作詩)를 꼭 안고서다. 그중 하나가 ‘내 딸을 백원에 팝니다’다.
 
  ― 조선중앙방송위원회 TV 기자로 일했었죠. 북한 방송과 MBC를 비교해보자면 어떻습니까.
 
  “목적을 미리 정해두고 진실을 꿰맞춘다는 점에서 같습니다. 거짓도 진실이라 우겨요. 차이점이 있다면, 북한 언론은 한 사람만 조작합니다. 수령의 신격화(神格化)죠. 그러나 MBC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두를 조작합니다.”
 
  ― MBC가 정정보도 없이 끝까지 법적 다툼을 불사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창피한 거죠. 나름대로 최대한의 자기변명을 위해 법적 절차를 밟은 것 같은데, 그 자체가 언론 윤리에 어긋나는 겁니다. 애초에 중립 원칙에서 벗어났으니까요. 이 과정에서 저는 2차, 3차 가해를 받았고요.”
 
  그는 “물증은 없지만, 애초에 조직적 보도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탈북민을 잡기 위해 저를 목표물로 삼은 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습니다. 실제로 그 무렵 복수(複數)의 유명 탈북민이 방송국에서 저를 캐고 다닌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죠. 또 MBC는 2부 방송에서 ‘추가 피해자’라는 여성 B씨를 등장시켰는데, B씨의 고소로 합의 단계에 이르렀을 때, B씨가 제 변호사에게 합의 조건을 메일로 보낸 일이 있습니다. 조건은 총 세 가지였어요. 첫째, MBC와의 소송을 취하하라. 둘째, A씨 등과의 소송을 취하하라. 셋째, 탈북민 지인 모(某)씨를 설득해서 상기 소송 취하를 돕도록 하라. 자기 사건과 전혀 상관없는 합의 조건을 내건 겁니다. 조직적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대목 아닙니까.”
 
 
  “북한은 말로만, MBC는 진짜 테러”
 
2014년 영국 《더 타임스 매거진》 표지인물로 선정된 장진성 작가.
  탈북 후엔 2011년까지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을 지냈다. 연구소에서 퇴직하며 북한 전문 인터넷 매체 ‘뉴포커스’를 창간했다. 여기서 평양의 주요 시설 위치, 장성택의 처형 사실 등 굵직한 사실들을 연이어 단독 보도했다. 매체 창간의 목적은 또 있었다. ‘소외된 탈북민의 삶 조명’이다. 탈북해 정착에 성공한 인물을 발굴함과 동시에 이들의 인권 실태도 적극 알렸다. 작가는 이 무렵 저서를 들고 해외 곳곳을 누비며 탈북민 인권 문제를 공론화했다. 시를 통한 심리전을 맡았던 그는 물리적 독재보다 감성독재가 더 무섭다는 걸 알고 있었다. 글이 곧 그의 무기였고, 힘이었다.
 
  ― 그간의 노력이 한순간에 수포로 돌아갔다는 느낌이 들겠군요.
 
  “북한 정권이 테러 1순위로 지정할 만큼 북한 인권과 자유화를 세계에 널리 전파했죠. 북한은 저를 말로만 테러하겠다고 했지만, MBC는 저를 실제로 테러한 거죠.”
 
  ― 어떤 심경까지 들었나요.
 
  “분신자살을 할까, 하는 생각까지 해봤습니다. 만일 법으로 안 된다면, 진짜 그럴 심산이었어요. 그땐 개인적 응징밖에 답이 없으니까요.”
 

  ― 한국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겠는데요.
 
  “북한 악마로부터 목숨 걸고 도망친 곳에서 또 다른 악마를 만났다고 탈남(脫南)하면 안 되잖아요. 전 아직 제 청춘을 빼앗아간 북한 수령 악마에게 사죄받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남한의 또 다른 악마에게도 사죄받지 못했죠. 이 두 악마에게 사죄받을 때까지 한국 땅을 떠나지 않을 겁니다.”
 
  보도의 가장 큰 피해를 얘기할 때는 아들을 언급했다.
 
  “한 가정의 남편이고, 아버지로서 그게 제일 고통스러웠어요. 생각해보세요. ‘장진성은 짐승이다’는 식의 방송을 일요일 저녁 8시 반, 황금시간대에 80분간 내보냈어요. 포털사이트에는 3일 동안 예고 광고를 띄어놨고요. 제 얼굴이 실린 《더 타임스 매거진》 표지를 들고 자랑스러워하던 아들의 표정이 생생합니다. 이제 열두 살이 됐어요. ‘장진성이 우리 아빠야.’ 이 말을 다시 할 수 있을까요. 참 잘 웃고, 명랑한 아들이었습니다.”
 
 
  “MBC와 싸움, 이제부터가 시작”
 
  수많은 언론사가 그의 승소 판결 소식을 보도했다. 그는 “향후 어떤 외신이나 언론 인터뷰 때마다 MBC가 사과 없이 방송을 내렸다는 얘기를 꼭 할 것”이라고 했다.
 
  ― 그래도 한 번 씌워진 프레임은 걷히기 쉽지 않죠.
 
  “MBC와의 싸움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보로 얼룩진 제 이름을 희생해서 MBC의 실체를 알릴 거예요. 사람들이 MBC를 말할 때, 장진성 사례를 함께 떠올리며 MBC가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 알게 할 겁니다.”
 
  ― 방법이 있습니까.
 
  “MBC 거짓 보도로 피해를 입은 이들을 모아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생각입니다. 이를 영어부터 독일어 등 전 세계 언어로 번역해 유튜브로 송출할 계획입니다. 이미 몇몇 피해자들을 만나봤어요. 놀라운 게 저한테만 그런 게 아니더군요. 그들도 법원으로부터 오보임을 인정받았지만 MBC는 사과가 없었습니다. 이들은 치명적 명예훼손, 정신적 피해를 당하고도 삭이며 살고 있죠. 거짓 방송의 역사가 조용히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 거예요. MBC가 제 방송을 할 때 그랬어요. ‘전 국민에게 호소합니다. 장진성씨에게 당한 추가 피해자가 있다면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 MBC에 과감히 제보해주세요.’ 이제는 거꾸로 얘기하고 싶습니다. ‘전 국민에게 호소합니다. MBC에 당한 피해자들이 있으면 두려워하지 마시고 장진성에게 과감히 제보해주세요.’”
 
  ― 제목은 정했습니까.
 
  “아직 미정인데, 어쨌든 ‘내가 본 MBC는 악마’였으니까….”
 
  그는 “영상 제작 이후엔 책으로도 낼 것”이라고 했다.
 
  “앞서 북한 수령이라는 악마에 대항해 책을 썼다면, 이제는 MBC라는 악마에 대항해 책을 쓸 겁니다. MBC는 법원 명령으로 영상을 내렸잖아요. 그러나 작가의 글이란 건 영원히 남습니다. 끝까지 고발할 겁니다. 지켜보세요. 영상이 강한지 글이 강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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