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지 않는다’는 이병철보다 ‘無에서 有’ 창조한 정주영식 사고방식 절실”
⊙ “기업에 대한 규제에서 한국 정부는 중국 공산당보다 못하다는 얘기 나와”
⊙ “생산성 가장 높은 아일랜드·미국, 근무시간 중 담배 피우거나 커피 마시러 가지 않아”
崔陽五
1959년생.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경제학 박사 / 대통령 비서실 행정관, 차바이오텍 대표이사, 페어차일드 코리아반도체 수석부사장, 현대경제연구원 고문,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 연구위원 역임 / 現 인포스탁데일리 대표이사
⊙ “기업에 대한 규제에서 한국 정부는 중국 공산당보다 못하다는 얘기 나와”
⊙ “생산성 가장 높은 아일랜드·미국, 근무시간 중 담배 피우거나 커피 마시러 가지 않아”
崔陽五
1959년생.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경제학 박사 / 대통령 비서실 행정관, 차바이오텍 대표이사, 페어차일드 코리아반도체 수석부사장, 현대경제연구원 고문,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 연구위원 역임 / 現 인포스탁데일리 대표이사
“삼성 이건희 회장은 하나에 꽂히면 밤을 새워서 공부하고 공부해서 새로운 분야의 전문가가 됐습니다. 현대 정주영 회장은 ‘당신, 해봤어’라는 정신으로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손자, 손녀인 재벌 3, 4세들은 자기 아버지, 할아버지같이 치열하게 기업 경영을 하고 있나요?
최양오(崔陽五·65) 박사를 만난 2월 5일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삼성그룹 경영권 불법 승계 재판 1심 선고가 있던 날이었다. 법원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 불법행위가 없었다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 기소 후 1252일, 약 3년 5개월 만이다.
최 박사를 만난 건 그가 주도해 지난 1월 31일 창립된 ‘한국경제평론가협회’와 한국 경제 전망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마침 이재용 회장의 무죄 선고가 난 날이라 삼성과 이재용 부회장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최양오 박사는 재계에서는 드물게 국내 최고 재벌회사인 삼성과 현대그룹을 거쳤다. 그는 삼성의 싱크탱크인 삼성경제연구원을 거쳐, 현대그룹의 싱크탱크인 현대경제연구원에서 고문을 오래 지냈다. 또 선대(先代)가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시절 경남 남해에서 4선 국회의원을 지낸 최치환(崔致煥) 전(前) 의원이다. 최치환 전 의원은 경찰 출신으로 지리산 빨치산 대장인 ‘이현상’을 토벌했으며 현재 경찰청장 격인 치안본부장을 지낸 인물이다. 자신이나 집안의 이력을 보면, ‘친(親)재벌’로 분류될 수 있지만, 인터뷰 내내 재벌 3, 4세들에 대한 그의 평가는 차가웠다.
― 이재용 회장이 ‘무죄’ 선고를 받았습니다. 어떻게 보세요.
“아직 1심 재판이지만, 삼성이나 우리나라 경제 입장에서는 한숨 돌렸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이재용 회장이 답을 보여줘야 할 일만 남았습니다. 지금까지는 사법 리스크 때문에 운신의 폭이 좁았다고 피해 갈 수 있었지만, 더 이상은 안 됩니다.”
― 이재용 회장이 어떤 답을 내야 합니까.
“성과지요, 성과. 이건희 회장 때 초격차를 벌렸던 삼성의 반도체가 현재 어찌 됐습니까. 이번에 삼성 반도체 부문 직원들의 성과급이 ‘0’입니다. 메모리에서는 몇 수 아래라고 생각했던 SK하이닉스에 따라 잡히고, 파운드리에서는 TSMC와 점점 멀어지고, 시스템반도체 등 비메모리 또한 큰 성과가 안 나오잖습니까.”
최양오 박사는 삼성 재직 때 친했던 전·현직 고위 임원들을 자주 만나는데 이들의 걱정도 비슷하다고 말했다.
이건희 회장이 애견협회에 공들인 이유
― 선대인 이건희 회장 때와 다른 점이 어떤 겁니까.
"기업을 경영하는 데 치열함이 부족한 거죠."
― 치열함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건가요.
“이건희 회장은 단순히 물건 하나 팔겠다는 생각으로 공부하고 연구한 분이 아닙니다. 일례로, 왜 애견협회에 공을 들인 줄 아세요? 삼성이 물건을 잘 만들어도 유럽을 비롯한 서구 선진국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개 먹는 나라가 만든 제품’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직접 반려견들을 입양해 키우며, 개에 대한 연구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진돗개 순수혈통도 이건희 회장 손으로 보존했고, 시각장애인 반려견도 처음 국내에 도입했습니다.
승마협회에 대한 애정도 마찬가지였어요. 한국과 삼성 제품에 대한 이미지를 높이기 위한 절박한 노력이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좋은 말을 직접 찾아 타보고 말의 종류에 대해 연구해 국내에 들여왔습니다. 애견, 승마, 영화 등 소프트한 문화를 키워야 우리 전체 이미지가 격상된다고 생각한 겁니다.”
조선뉴스프레스가 지난해 발간한 《THE REAL 이건희》(권세진 엮음. 현명관 감수)를 보면 이건희 회장의 다방면에서 이른바 ‘오타쿠’ 같은 집요함과 치열한 연구 의식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에는 《월간조선》이 이건희 회장을 7시간에 걸쳐 인터뷰한 ‘인간 이건희’ 또한 실려 있다(1989년 12월호). 당시 이건희 회장은 《월간조선》 오효진 기자에게 자신의 방에 있는 영화 비디오테이프 1000여 개를 보여주며, 영화에 관한 애정과 전문지식을 드러냈다. 이때 최양오 박사가 말한 ‘애견’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이건희 회장이 영화와 개를 사랑했던 건, 단지 자신의 취미가 아닌, 대한민국의 국격(國格)과 삼성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한 치열함의 일단(一端)이었다.
― 기업 경영이라는 측면에서 이건희 회장의 특기는 뭐라고 보세요.
“이건희 회장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내가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은 ‘맥시멈(Maximum)’ 18명이다. 내가 회장, 사장급 18명을 책임질 테니, 사장들은 아래 18명만 책임져라. 그 임원들은 다시 18명을 책임져라. 이런 식으로 이건희 회장의 가장 뚜렷한 장점 중 하나가 대오(隊伍)를 형성해 한 방향으로 가게 한 거예요. 한 방향으로 가려고 그러니까 뭐 뒤돌아보던 사람도 있고 옆에서 딴 일 하던 사람도 있으니까 그 사람들 보고 뭐라 했냐면 ‘변해라’ 한 겁니다. 그래서 1993년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하고 자식 빼고는 다 바꾸라’라고 했던 거죠. 그러니까 회사의 방향성이 ‘딱’ 서면서 ‘올인’하게 된 거죠. 사실, 주식이든 회사 경영이든 ‘올인’이라는 게 굉장히 위험한 거거든요. 실패했을 때 리스크가 얼마나 큽니까? 하지만 이런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이건희 회장이 치열하게 공부하고 고민해서 확신을 가지고 밀어붙이니까 사장 이하 임원들은 성과를 내게 된 겁니다. 이렇게 계속 해내고 성과를 내는 분위기가 나오니까 회사 전체가 ‘우리는 된다. 할 수 있다’고 변한 겁니다.”
“전 세계 상황, 날씨가 아니라 기후가 바뀌고 있어”
현대경제연구원에서 고문으로 활동했던 최양오 박사는 삼성과 현대를 설립한 이병철과 정주영 두 사람의 경영 스타일을 비교하며 현재 우리 경제에 더욱 절박한 것은 ‘정주영식 사고방식’이라고 진단했다. 최 박사의 얘기다.
“제가 재미있게 본 책 가운데 하나가 《지지 않는 이병철, 이기는 정주영》이에요. 이병철 회장은 사업 100개를 하면 확률적으로 95~96개는 성공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지는 게임에는 안 들어간 거죠. 반면 정주영 회장은 ‘당신, 해봤어?’ 이러면서 일단 들어갑니다. 물론 자신의 판단이 섰기 때문에 들어가는 거지만, 두 분의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죠.
어느 쪽이 맞다, 그르다가 아니라 현재와 향후 우리나라 경제 상황을 보면, 정주영 회장 스타일처럼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게 더욱 중요합니다. 정주영 회장은 해외 건설, 조선, 자동차 등 우리가 전혀 못 하던 영역에 뛰어들어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들었습니다. 현재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건, 지금까지 전혀 없었던 영역입니다. AI, 메타버스, 최첨단 바이오 기술 등을 재면서 이기는 게임에만 들어갈 경우, 우리 기업이 할 수 있는 영역은 점점 줄어들어 ‘고사(枯死)’할 겁니다.”
―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게 말처럼 쉽습니까? 정주영 회장 같은 분이 다시 태어나야 가능한 거 아닙니까.
“무에서 유를 만든다는 얘기를 다른 말로 하면 생산성을 100% 향상시킨다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니 생산성이 100% 더 나온 것이나 마찬가지죠. 즉 이런 분위기가 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야 되고, 정부와 우리 사회가 진짜로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가져야 한다는 겁니다. 현재 전 세계 상황을 비유하자면, 날씨가 바뀌는 게 아니라 기후가 바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정치든, 경제든,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이러한 상황 인식을 반드시 해줬으면 합니다.”
“한국, 생산성 OECD 꼴찌”
최양오 박사는 우리나라의 2025년 잠재성장률은 약 1.8%로 해마다 낮아진다고 걱정했다. 2008년 금융위기 때도 3%대를 유지했는데, 해마다 내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중국과 미국의 정치·외교·경제 갈등에 노출돼 수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최 박사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생산성 향상이라는 근본적인 해결책 외에는 답이 없다고 진단했다. 최 박사의 얘기다.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인적자원, 자본, 생산성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경제를 키울 수 있었던 건 우수한 노동력이 있었고, 부(富)를 쌓기 시작하니까 없던 자본이 축적됐어요. 이렇게 두 개의 받침대로 여기까지 온 거죠. 그런데 지금 출산율이 떨어지고 교육제도의 문제 때문에 우수한 노동력 공급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점점 경제 성장이 줄어드니까 자본 축적도 한계가 왔습니다. 맨 위에 있는 생산성이 높아져야 아래 두 개 기반이 약해져도 다시 선순환(善循環)할 수 있어요.”
― 생산성 향상이라는 구호는 항상 듣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생산성 향상은 누가 해야 하는지부터 생각해보시죠. 시민단체가 하나요? 언론사가 하나요? 정당이 하나요? 관료들이 합니까? 아니죠. 우리가 얘기하는 생산성 향상은 기본적으로 기업의 생산성 향상을 뜻합니다.
그러면 우선 노동생산성부터 높여야 합니다. 우리나라 노동생산성은 OECD 국가 중 꼴찌입니다. 근로시간은 세계에서 멕시코 다음으로 가장 깁니다. 그런데 왜 꼴찌일까요. 지금 전 세계에서 생산성이 가장 높은 나라가 아일랜드하고 미국인데요, 이들은 근무시간 중에 담배 피우러 가거나 은행에 가거나 커피 마시러 가거나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다 허용이 됩니다. 그래서 근로시간은 길지만 생산성은 전 세계에서 가장 낮습니다.
반면, 아일랜드는 국민의 85%가 주 4일을 일하고 있습니다. 주 4일을 근무하면서도 압축적으로 일을 하기 때문에 생산성이 높은 거죠.”
오랜 세월, 영국에 침략당하며 유럽의 빈자(貧者)로 불렸던 아일랜드. IMF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아일랜드의 1인당 국민소득은 약 10만1509달러. 반면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약 4만5800달러다. 참고로 대한민국은 약 3만2400달러다. 최양오 박사는 “아일랜드 같은 나라처럼 높은 생산성, 높은 소득을 올리기 위해서는 기업 하기 좋은 나라, 기업에 우호적인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시 최 박사의 얘기다.
“중국도 네거티브 규제가 대부분”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선(先)규제’ 하는 나라입니다. 선규제는 ‘포지티브(positive)’ 규제로 원칙적으로 ‘뭐든 하지 마라’ 하는 겁니다. ‘내가 허용해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마라’ 이거죠. 당연히 여기서 ‘내가’는 정치권, 정부, 관료들입니다. 가령 현재 금융의 미래 먹거리인 핀테크 사업도 규제를 받고 있습니다. 업종별로 칸막이가 다르고요. 최근 ‘은산분리’ 규제가 완화되기는 했지만 여전합니다. 또 비금융사의 금융 시장 진입도 제한적입니다.
이렇게 선규제를 하면 기업들이 뭘 하려고 해도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기업들이 자유롭게 사업을 할 수 있게 하다가 뭐가 잘못되면 그때부터 규제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주영 회장처럼 새로운 분야에 들어가서 ‘무에서 유’를 만들 수가 없습니다.
우리를 제외하고 다른 경쟁 국가들은 대부분 ‘네거티브(negative)’ 규제입니다. 하다못해 중국도 네거티브 규제가 대부분입니다. 기업에 대한 규제와 압박은 공산당의 전유물(專有物)이라고 알려졌는데, 우리 정부는 중국 공산당보다 못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게 이 때문입니다.”
― 네거티브 규제는 자유롭지만, 경쟁이 격화될 것 같은데요.
“경쟁이 격화되는 게 아니라, 자유경쟁이죠. 수많은 신흥 강자들이 치고 들어오면서 다시 한 번 혁신과 발전이라는 큰 물결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겁니다. 자유롭게 기업 할 수 있는 현장을 만들어주는 게 생산성 향상을 위한 대전제입니다.
세계 경제 역사를 보면, 한 나라가 잘되려 할 때 기업가 정신을 가진 큰 기업가들이 한꺼번에 출현했습니다. 미국도 19세기 헨리 포드, 카네기, 록펠러 등의 전설적인 기업가들이 출현해 미국이 고도 자본주의를 시작할 수 있는 큰 토대가 됐죠. 다시 약 1세기가 지나서,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제프 베이조스, 래리 페이지 등 IT의 선구자들이 미국의 전성기를 이끌고 있습니다.”
“외형에 대한 집착 버려야”
―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우리나라도 이승만·박정희 시절에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는 기업을 일으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위대한 기업을 만들기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어요. 이병철, 정주영, 구인회, 최종현 같은 1세대 재벌 창업자들이 한꺼번에 쏟아진 게 이유가 있는 겁니다. 밀레니엄 전후로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IT에 엄청난 지원과 투자를 했기 때문에 네이버, 다음, 카카오 등 한국을 이끄는 IT 기업들이 나온 겁니다.”
― 정부의 규제 외에 우리 기업가와 기업 자체의 문제는 없습니까.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부 규제 혁파뿐만 아니라 공교육 제도 등 많은 부분이 달라져야 합니다. 하지만 새로운 시대의 기술, 기술적인 변곡점에 대비해서 R&D, 인력 양성 등은 기업들이 남 핑계 대지 말고 스스로 해야죠.
이재용 회장이 무죄 선고받은 것은 이런 의미에서 다행이면서 숙제인 거죠. 이재용 회장을 포함한 재벌 3, 4세들이 선대, 창업주들의 기업가 정신에 입각해 모든 걸 새롭게, 절박하게 시작해야죠. 재벌들의 공과(功過)가 있는데, 현재 재벌 3, 4세들의 ‘과(過)’는 거대한 물고기가 돼서 작은 물고기를 괴롭히고 잡아먹으려 하는 타성(惰性)이 있다는 겁니다.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났습니다. 외형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크지만 빠른 물고기가 돼서 느려터진 물고기를 이겨야죠.”
“중국, 효율성 높이는 데 한계”
―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고 청와대뿐만 아니라 반도체, 제약바이오 회사에서 대표도 지냈습니다. 현재 우리가 중국보다 AI, 2차전지, 제약바이오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기술에서 따라 잡혔거나 뒤처지고 있다는 평가가 많은데요.
“과거부터 우리가 일본과 역사적인 문제로 충돌하고 있지만, 산업구조가 비슷해서 우리가 일본과 경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일본 기술을 베껴서 성공한 사례가 많습니다. 그러다 우리만의 경쟁력을 가지고 특화(特化)시켜 일본을 꺾은 분야 또한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일본이 IT 시대에 들어와서 많이 뒤처졌지만, 여전히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 계열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거든요.
현재 중국이 우주, 바이오, 양자, AI 등 첨단 분야에서 엄청나게 치고 나가고 있습니다. 앞서 말했지만, 우리보다 규제가 약하고 공산당과 정부가 전폭 지원을 해서 윤리 문제가 있는 바이오 쪽도 괄목상대하고 있어요. 우주항공 분야는 아예 우리가 상대가 안 되죠. 하지만 이러한 산업들에서도 특화할 부분, 틈새 기술이 굉장히 많습니다. 정부와 기업이 틈새 분야, 특화 분야를 잘 정해서 정부의 지원과 기업의 기술력을 결합해 우리만의 기술적 우위를 반드시 확보해야 합니다.”
― 우리는 현재 미중 경쟁에 끼여서 힘든 처지인데요, 미중 경쟁은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한때 중국이 미국 GDP의 70%까지 육박했다가 현재는 55%까지 떨어진 상태입니다. 과거 개발독재를 겪은 대다수의 나라가 일정한 한계에 달하면 성장이 정체(停滯)되는 ‘중진국 함정’을 겪었습니다. 경제학 교과서에 있는 ‘한계생산체감의 법칙’이 여지없이 적용된 거예요. 앞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노동, 자본, 생산성이라고 했는데, 기술생산성이 높아지지 않은 상태에서 아무리 노동과 자본을 넣어도 더 이상 생산이 증가하지 못하는 겁니다. 상식이죠.
이런 측면에서 공산당 1당 독재를 지나 1인 독재를 하는 중국은 정치·언론·학문 등의 자유를 줄 수 없기 때문에 사회 전체가 효율성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트럼프 돼도 우리 경제 악영향 없을 것”
― 중국이 끊임없이 우리를 견제하고 있습니다. 사드 사태에서 보듯이 정치와 경제를 연결시키고 있는데요. 중국과의 관계 어떻게 대응해야 합니까.
“우리가 중국보다 여러 가지로 작지만, 좋은 기업들이 많습니다. 중국이 공산당 1당 독재의 한계와 미국과의 경쟁 때문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일단은 표면적으로는 ‘오랜 친구(老朋友·라오펑유)’라는 관점에서 차분하게 대응하면 경제·산업적인 측면에서 큰 문제가 일어날 확률은 높지 않습니다.”
― 미국 대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트럼프 전(前) 대통령이 당선되면 우리 경제에는 안 좋은 것 아닌가요.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이 되면 우리 경제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겁을 먹는데요, 냉철하게 생각해보세요. 트럼프는 ‘어젠다 47’이라는 47대 대통령 공약집을 냈습니다. 예를 들어 트럼프가 집권하면 2차전지와 전기차 산업 등이 망한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트럼프가 반대하는 게 전기차인가요? 아니거든요. 재생에너지거든요. 전기차는 건드릴 수가 없어요. 트럼프의 지지 세력이자 스윙보터 지역인 미시간·디트로이트 등에 자동차 산업이 몰려 있어요. 그러니까 반대를 할 수가 없는 게 2차전지와 전기차 산업이에요. 우리의 미래 먹거리인 2차전지 산업도 미국에서 우리 기업들의 포지션이 굉장히 좋습니다. 트럼프 하면 석유라는 생각으로 우리한테 문제가 생길 거라고 생각하는 건 오산이에요.
미중 갈등도 마찬가지입니다. 트럼프가 중국에 실제 관세 높게 매기고 싸움하면 바로 인플레이션입니다. 현재 인플레이션 잡겠다고 미국 정부와 연준(연방준비제도)이 난리인데요, 다시 인플레이션 되고 실질 소득이 낮아지면 자기 집권에도 문제가 있는 걸 알고 있어요.”
‘한국경제평론가협회’ 출범
최양오 박사는 모교인 한국외대 경제학과를 비롯해 중앙대 경영학과에서도 교수 생활을 했다. 기업, 연구원, 학교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 15년간 TV, 라디오, 신문을 넘나들며 경제평론가로서 활동했다. 경제학자와 평론가로서 쌓은 높은 인지도와 평판 덕분에 한때 종편과 공중파 시사 프로그램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전문가 1순위였다. 그러다 박근혜 정부 시절, KBS 라디오 경제 프로그램 진행자에 내정됐다가 정치적인 이유로 제외되기도 했다. 최 박사의 매부가 6선 의원인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였기 때문이다. 다시 최 박사와 나눈 얘기다.
‘기본 소득’ 논란은…
― 얼마 전에 쟁쟁한 학자와 평론가들이 모인 한국경제평론가협회를 만들었습니다. 협회를 만든 이유가 있습니까.
“경제평론은 정확성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런데 경제학이라는 게 본래 정치 경제에서 시작했거든요. 그만큼 정치의 입김, 정치적인 의견 등에 좌지우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위기’입니다. 우리나라 경제는 1970년대 ‘오일 쇼크’ 이후 위기라는 얘기를 안 쓴 적이 없습니다. 그러다 IMF 외환위기를 맞은 이후에는 시도 때도 없이 ‘위기’라는 말을 써요. 그래서 신세돈 숙명여대 명예교수, 김대종 세종대 교수 등 저명한 학자들과 우리가 이런 부분을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저희 한국평론가협회 소속 전문가들이라도 경제를 평가할 때, 정확성을 바탕으로 기준점을 명확히 잡고, 절대 계파적인 치우침이 없이 정론직언(正論直言)하자는 겁니다.”
― ‘위기’라는 말을 남발한다고 했는데, 그러면 한국 경제는 위기가 아니라는 건가요.
“영어로 ‘크라이시스(crisis)’의 어원은 ‘결정을 하는 상황이 왔다’는 겁니다. 즉 위기는 기회라는 측면을 내포합니다. 항상 위험한 상황에 놓여 위태롭다는 생각을 하면 현상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고, 제대로 된 대책을 낼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인플레이션’이 심해져서 위기라고 합니다. 대개 인플레이션은 가격이 올라가는 현상이라고들 판단합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의 원래 뜻은 가격이 오름으로 해서 내가 쓸 수 있는 가처분(可處分) 소득이 줄어드는 거거든요. 따라서 ‘인플레이션 위기라고 겁내 하지 말고, 물가 잡는 데만 집중하는 게 아니라, 가처분소득을 늘릴 수 있는 처방을 내리는 게 본질입니다.
그런데 가처분소득을 늘리자고 하면, 정치적인 편향성이 개입돼서, 손쉽게 소득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골몰하죠. 그게 ‘기본 소득’ 논란입니다. 경제학 분야에서, 가처분 소득을 늘릴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개인의 노동생산성,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라는 걸 얘기해야 합니다. 이게 저희 ‘한국경제평론가협회’ 회원들이 할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양오(崔陽五·65) 박사를 만난 2월 5일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삼성그룹 경영권 불법 승계 재판 1심 선고가 있던 날이었다. 법원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 불법행위가 없었다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 기소 후 1252일, 약 3년 5개월 만이다.
최 박사를 만난 건 그가 주도해 지난 1월 31일 창립된 ‘한국경제평론가협회’와 한국 경제 전망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마침 이재용 회장의 무죄 선고가 난 날이라 삼성과 이재용 부회장에 관한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최양오 박사는 재계에서는 드물게 국내 최고 재벌회사인 삼성과 현대그룹을 거쳤다. 그는 삼성의 싱크탱크인 삼성경제연구원을 거쳐, 현대그룹의 싱크탱크인 현대경제연구원에서 고문을 오래 지냈다. 또 선대(先代)가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시절 경남 남해에서 4선 국회의원을 지낸 최치환(崔致煥) 전(前) 의원이다. 최치환 전 의원은 경찰 출신으로 지리산 빨치산 대장인 ‘이현상’을 토벌했으며 현재 경찰청장 격인 치안본부장을 지낸 인물이다. 자신이나 집안의 이력을 보면, ‘친(親)재벌’로 분류될 수 있지만, 인터뷰 내내 재벌 3, 4세들에 대한 그의 평가는 차가웠다.
이병철 회장의 3남으로 태어난 이건희 회장은 아버지에게 낙점을 받기 위해 치열한 노력을 해야 했다. 사진=삼성 |
“아직 1심 재판이지만, 삼성이나 우리나라 경제 입장에서는 한숨 돌렸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이재용 회장이 답을 보여줘야 할 일만 남았습니다. 지금까지는 사법 리스크 때문에 운신의 폭이 좁았다고 피해 갈 수 있었지만, 더 이상은 안 됩니다.”
― 이재용 회장이 어떤 답을 내야 합니까.
“성과지요, 성과. 이건희 회장 때 초격차를 벌렸던 삼성의 반도체가 현재 어찌 됐습니까. 이번에 삼성 반도체 부문 직원들의 성과급이 ‘0’입니다. 메모리에서는 몇 수 아래라고 생각했던 SK하이닉스에 따라 잡히고, 파운드리에서는 TSMC와 점점 멀어지고, 시스템반도체 등 비메모리 또한 큰 성과가 안 나오잖습니까.”
최양오 박사는 삼성 재직 때 친했던 전·현직 고위 임원들을 자주 만나는데 이들의 걱정도 비슷하다고 말했다.
이건희 회장이 애견협회에 공들인 이유
― 선대인 이건희 회장 때와 다른 점이 어떤 겁니까.
"기업을 경영하는 데 치열함이 부족한 거죠."
― 치열함이라는 게 정확히 어떤 건가요.
“이건희 회장은 단순히 물건 하나 팔겠다는 생각으로 공부하고 연구한 분이 아닙니다. 일례로, 왜 애견협회에 공을 들인 줄 아세요? 삼성이 물건을 잘 만들어도 유럽을 비롯한 서구 선진국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개 먹는 나라가 만든 제품’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직접 반려견들을 입양해 키우며, 개에 대한 연구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진돗개 순수혈통도 이건희 회장 손으로 보존했고, 시각장애인 반려견도 처음 국내에 도입했습니다.
승마협회에 대한 애정도 마찬가지였어요. 한국과 삼성 제품에 대한 이미지를 높이기 위한 절박한 노력이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좋은 말을 직접 찾아 타보고 말의 종류에 대해 연구해 국내에 들여왔습니다. 애견, 승마, 영화 등 소프트한 문화를 키워야 우리 전체 이미지가 격상된다고 생각한 겁니다.”
조선뉴스프레스가 지난해 발간한 《THE REAL 이건희》(권세진 엮음. 현명관 감수)를 보면 이건희 회장의 다방면에서 이른바 ‘오타쿠’ 같은 집요함과 치열한 연구 의식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에는 《월간조선》이 이건희 회장을 7시간에 걸쳐 인터뷰한 ‘인간 이건희’ 또한 실려 있다(1989년 12월호). 당시 이건희 회장은 《월간조선》 오효진 기자에게 자신의 방에 있는 영화 비디오테이프 1000여 개를 보여주며, 영화에 관한 애정과 전문지식을 드러냈다. 이때 최양오 박사가 말한 ‘애견’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이건희 회장이 영화와 개를 사랑했던 건, 단지 자신의 취미가 아닌, 대한민국의 국격(國格)과 삼성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한 치열함의 일단(一端)이었다.
― 기업 경영이라는 측면에서 이건희 회장의 특기는 뭐라고 보세요.
“이건희 회장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내가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은 ‘맥시멈(Maximum)’ 18명이다. 내가 회장, 사장급 18명을 책임질 테니, 사장들은 아래 18명만 책임져라. 그 임원들은 다시 18명을 책임져라. 이런 식으로 이건희 회장의 가장 뚜렷한 장점 중 하나가 대오(隊伍)를 형성해 한 방향으로 가게 한 거예요. 한 방향으로 가려고 그러니까 뭐 뒤돌아보던 사람도 있고 옆에서 딴 일 하던 사람도 있으니까 그 사람들 보고 뭐라 했냐면 ‘변해라’ 한 겁니다. 그래서 1993년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하고 자식 빼고는 다 바꾸라’라고 했던 거죠. 그러니까 회사의 방향성이 ‘딱’ 서면서 ‘올인’하게 된 거죠. 사실, 주식이든 회사 경영이든 ‘올인’이라는 게 굉장히 위험한 거거든요. 실패했을 때 리스크가 얼마나 큽니까? 하지만 이런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이건희 회장이 치열하게 공부하고 고민해서 확신을 가지고 밀어붙이니까 사장 이하 임원들은 성과를 내게 된 겁니다. 이렇게 계속 해내고 성과를 내는 분위기가 나오니까 회사 전체가 ‘우리는 된다. 할 수 있다’고 변한 겁니다.”
“전 세계 상황, 날씨가 아니라 기후가 바뀌고 있어”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 |
“제가 재미있게 본 책 가운데 하나가 《지지 않는 이병철, 이기는 정주영》이에요. 이병철 회장은 사업 100개를 하면 확률적으로 95~96개는 성공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지는 게임에는 안 들어간 거죠. 반면 정주영 회장은 ‘당신, 해봤어?’ 이러면서 일단 들어갑니다. 물론 자신의 판단이 섰기 때문에 들어가는 거지만, 두 분의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죠.
어느 쪽이 맞다, 그르다가 아니라 현재와 향후 우리나라 경제 상황을 보면, 정주영 회장 스타일처럼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게 더욱 중요합니다. 정주영 회장은 해외 건설, 조선, 자동차 등 우리가 전혀 못 하던 영역에 뛰어들어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들었습니다. 현재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건, 지금까지 전혀 없었던 영역입니다. AI, 메타버스, 최첨단 바이오 기술 등을 재면서 이기는 게임에만 들어갈 경우, 우리 기업이 할 수 있는 영역은 점점 줄어들어 ‘고사(枯死)’할 겁니다.”
―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게 말처럼 쉽습니까? 정주영 회장 같은 분이 다시 태어나야 가능한 거 아닙니까.
“무에서 유를 만든다는 얘기를 다른 말로 하면 생산성을 100% 향상시킨다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니 생산성이 100% 더 나온 것이나 마찬가지죠. 즉 이런 분위기가 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야 되고, 정부와 우리 사회가 진짜로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가져야 한다는 겁니다. 현재 전 세계 상황을 비유하자면, 날씨가 바뀌는 게 아니라 기후가 바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정치든, 경제든,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이러한 상황 인식을 반드시 해줬으면 합니다.”
“한국, 생산성 OECD 꼴찌”
회사 근처에서 담배를 피우는 직장인들. 한국인들은 근로시간은 길지만 생산성은 낮다. 사진=조선DB |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인적자원, 자본, 생산성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경제를 키울 수 있었던 건 우수한 노동력이 있었고, 부(富)를 쌓기 시작하니까 없던 자본이 축적됐어요. 이렇게 두 개의 받침대로 여기까지 온 거죠. 그런데 지금 출산율이 떨어지고 교육제도의 문제 때문에 우수한 노동력 공급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점점 경제 성장이 줄어드니까 자본 축적도 한계가 왔습니다. 맨 위에 있는 생산성이 높아져야 아래 두 개 기반이 약해져도 다시 선순환(善循環)할 수 있어요.”
― 생산성 향상이라는 구호는 항상 듣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생산성 향상은 누가 해야 하는지부터 생각해보시죠. 시민단체가 하나요? 언론사가 하나요? 정당이 하나요? 관료들이 합니까? 아니죠. 우리가 얘기하는 생산성 향상은 기본적으로 기업의 생산성 향상을 뜻합니다.
그러면 우선 노동생산성부터 높여야 합니다. 우리나라 노동생산성은 OECD 국가 중 꼴찌입니다. 근로시간은 세계에서 멕시코 다음으로 가장 깁니다. 그런데 왜 꼴찌일까요. 지금 전 세계에서 생산성이 가장 높은 나라가 아일랜드하고 미국인데요, 이들은 근무시간 중에 담배 피우러 가거나 은행에 가거나 커피 마시러 가거나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다 허용이 됩니다. 그래서 근로시간은 길지만 생산성은 전 세계에서 가장 낮습니다.
반면, 아일랜드는 국민의 85%가 주 4일을 일하고 있습니다. 주 4일을 근무하면서도 압축적으로 일을 하기 때문에 생산성이 높은 거죠.”
오랜 세월, 영국에 침략당하며 유럽의 빈자(貧者)로 불렸던 아일랜드. IMF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아일랜드의 1인당 국민소득은 약 10만1509달러. 반면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약 4만5800달러다. 참고로 대한민국은 약 3만2400달러다. 최양오 박사는 “아일랜드 같은 나라처럼 높은 생산성, 높은 소득을 올리기 위해서는 기업 하기 좋은 나라, 기업에 우호적인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시 최 박사의 얘기다.
“중국도 네거티브 규제가 대부분”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선(先)규제’ 하는 나라입니다. 선규제는 ‘포지티브(positive)’ 규제로 원칙적으로 ‘뭐든 하지 마라’ 하는 겁니다. ‘내가 허용해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마라’ 이거죠. 당연히 여기서 ‘내가’는 정치권, 정부, 관료들입니다. 가령 현재 금융의 미래 먹거리인 핀테크 사업도 규제를 받고 있습니다. 업종별로 칸막이가 다르고요. 최근 ‘은산분리’ 규제가 완화되기는 했지만 여전합니다. 또 비금융사의 금융 시장 진입도 제한적입니다.
이렇게 선규제를 하면 기업들이 뭘 하려고 해도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기업들이 자유롭게 사업을 할 수 있게 하다가 뭐가 잘못되면 그때부터 규제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주영 회장처럼 새로운 분야에 들어가서 ‘무에서 유’를 만들 수가 없습니다.
우리를 제외하고 다른 경쟁 국가들은 대부분 ‘네거티브(negative)’ 규제입니다. 하다못해 중국도 네거티브 규제가 대부분입니다. 기업에 대한 규제와 압박은 공산당의 전유물(專有物)이라고 알려졌는데, 우리 정부는 중국 공산당보다 못하다는 얘기가 나오는 게 이 때문입니다.”
― 네거티브 규제는 자유롭지만, 경쟁이 격화될 것 같은데요.
“경쟁이 격화되는 게 아니라, 자유경쟁이죠. 수많은 신흥 강자들이 치고 들어오면서 다시 한 번 혁신과 발전이라는 큰 물결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겁니다. 자유롭게 기업 할 수 있는 현장을 만들어주는 게 생산성 향상을 위한 대전제입니다.
세계 경제 역사를 보면, 한 나라가 잘되려 할 때 기업가 정신을 가진 큰 기업가들이 한꺼번에 출현했습니다. 미국도 19세기 헨리 포드, 카네기, 록펠러 등의 전설적인 기업가들이 출현해 미국이 고도 자본주의를 시작할 수 있는 큰 토대가 됐죠. 다시 약 1세기가 지나서,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제프 베이조스, 래리 페이지 등 IT의 선구자들이 미국의 전성기를 이끌고 있습니다.”
“외형에 대한 집착 버려야”
―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우리나라도 이승만·박정희 시절에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는 기업을 일으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위대한 기업을 만들기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어요. 이병철, 정주영, 구인회, 최종현 같은 1세대 재벌 창업자들이 한꺼번에 쏟아진 게 이유가 있는 겁니다. 밀레니엄 전후로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IT에 엄청난 지원과 투자를 했기 때문에 네이버, 다음, 카카오 등 한국을 이끄는 IT 기업들이 나온 겁니다.”
― 정부의 규제 외에 우리 기업가와 기업 자체의 문제는 없습니까.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부 규제 혁파뿐만 아니라 공교육 제도 등 많은 부분이 달라져야 합니다. 하지만 새로운 시대의 기술, 기술적인 변곡점에 대비해서 R&D, 인력 양성 등은 기업들이 남 핑계 대지 말고 스스로 해야죠.
이재용 회장이 무죄 선고받은 것은 이런 의미에서 다행이면서 숙제인 거죠. 이재용 회장을 포함한 재벌 3, 4세들이 선대, 창업주들의 기업가 정신에 입각해 모든 걸 새롭게, 절박하게 시작해야죠. 재벌들의 공과(功過)가 있는데, 현재 재벌 3, 4세들의 ‘과(過)’는 거대한 물고기가 돼서 작은 물고기를 괴롭히고 잡아먹으려 하는 타성(惰性)이 있다는 겁니다.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났습니다. 외형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크지만 빠른 물고기가 돼서 느려터진 물고기를 이겨야죠.”
“중국, 효율성 높이는 데 한계”
한국 경제는 정주영 회장의 스타일처럼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사진은 한 경제단체 모임에 참석한 재벌 2~3세들이다. 사진=조선DB |
“과거부터 우리가 일본과 역사적인 문제로 충돌하고 있지만, 산업구조가 비슷해서 우리가 일본과 경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일본 기술을 베껴서 성공한 사례가 많습니다. 그러다 우리만의 경쟁력을 가지고 특화(特化)시켜 일본을 꺾은 분야 또한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일본이 IT 시대에 들어와서 많이 뒤처졌지만, 여전히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 계열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거든요.
현재 중국이 우주, 바이오, 양자, AI 등 첨단 분야에서 엄청나게 치고 나가고 있습니다. 앞서 말했지만, 우리보다 규제가 약하고 공산당과 정부가 전폭 지원을 해서 윤리 문제가 있는 바이오 쪽도 괄목상대하고 있어요. 우주항공 분야는 아예 우리가 상대가 안 되죠. 하지만 이러한 산업들에서도 특화할 부분, 틈새 기술이 굉장히 많습니다. 정부와 기업이 틈새 분야, 특화 분야를 잘 정해서 정부의 지원과 기업의 기술력을 결합해 우리만의 기술적 우위를 반드시 확보해야 합니다.”
― 우리는 현재 미중 경쟁에 끼여서 힘든 처지인데요, 미중 경쟁은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한때 중국이 미국 GDP의 70%까지 육박했다가 현재는 55%까지 떨어진 상태입니다. 과거 개발독재를 겪은 대다수의 나라가 일정한 한계에 달하면 성장이 정체(停滯)되는 ‘중진국 함정’을 겪었습니다. 경제학 교과서에 있는 ‘한계생산체감의 법칙’이 여지없이 적용된 거예요. 앞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노동, 자본, 생산성이라고 했는데, 기술생산성이 높아지지 않은 상태에서 아무리 노동과 자본을 넣어도 더 이상 생산이 증가하지 못하는 겁니다. 상식이죠.
이런 측면에서 공산당 1당 독재를 지나 1인 독재를 하는 중국은 정치·언론·학문 등의 자유를 줄 수 없기 때문에 사회 전체가 효율성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트럼프 돼도 우리 경제 악영향 없을 것”
― 중국이 끊임없이 우리를 견제하고 있습니다. 사드 사태에서 보듯이 정치와 경제를 연결시키고 있는데요. 중국과의 관계 어떻게 대응해야 합니까.
“우리가 중국보다 여러 가지로 작지만, 좋은 기업들이 많습니다. 중국이 공산당 1당 독재의 한계와 미국과의 경쟁 때문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일단은 표면적으로는 ‘오랜 친구(老朋友·라오펑유)’라는 관점에서 차분하게 대응하면 경제·산업적인 측면에서 큰 문제가 일어날 확률은 높지 않습니다.”
― 미국 대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트럼프 전(前) 대통령이 당선되면 우리 경제에는 안 좋은 것 아닌가요.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이 되면 우리 경제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겁을 먹는데요, 냉철하게 생각해보세요. 트럼프는 ‘어젠다 47’이라는 47대 대통령 공약집을 냈습니다. 예를 들어 트럼프가 집권하면 2차전지와 전기차 산업 등이 망한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트럼프가 반대하는 게 전기차인가요? 아니거든요. 재생에너지거든요. 전기차는 건드릴 수가 없어요. 트럼프의 지지 세력이자 스윙보터 지역인 미시간·디트로이트 등에 자동차 산업이 몰려 있어요. 그러니까 반대를 할 수가 없는 게 2차전지와 전기차 산업이에요. 우리의 미래 먹거리인 2차전지 산업도 미국에서 우리 기업들의 포지션이 굉장히 좋습니다. 트럼프 하면 석유라는 생각으로 우리한테 문제가 생길 거라고 생각하는 건 오산이에요.
미중 갈등도 마찬가지입니다. 트럼프가 중국에 실제 관세 높게 매기고 싸움하면 바로 인플레이션입니다. 현재 인플레이션 잡겠다고 미국 정부와 연준(연방준비제도)이 난리인데요, 다시 인플레이션 되고 실질 소득이 낮아지면 자기 집권에도 문제가 있는 걸 알고 있어요.”
‘한국경제평론가협회’ 출범
최양오 박사는 모교인 한국외대 경제학과를 비롯해 중앙대 경영학과에서도 교수 생활을 했다. 기업, 연구원, 학교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 15년간 TV, 라디오, 신문을 넘나들며 경제평론가로서 활동했다. 경제학자와 평론가로서 쌓은 높은 인지도와 평판 덕분에 한때 종편과 공중파 시사 프로그램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전문가 1순위였다. 그러다 박근혜 정부 시절, KBS 라디오 경제 프로그램 진행자에 내정됐다가 정치적인 이유로 제외되기도 했다. 최 박사의 매부가 6선 의원인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였기 때문이다. 다시 최 박사와 나눈 얘기다.
‘기본 소득’ 논란은…
― 얼마 전에 쟁쟁한 학자와 평론가들이 모인 한국경제평론가협회를 만들었습니다. 협회를 만든 이유가 있습니까.
“경제평론은 정확성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런데 경제학이라는 게 본래 정치 경제에서 시작했거든요. 그만큼 정치의 입김, 정치적인 의견 등에 좌지우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위기’입니다. 우리나라 경제는 1970년대 ‘오일 쇼크’ 이후 위기라는 얘기를 안 쓴 적이 없습니다. 그러다 IMF 외환위기를 맞은 이후에는 시도 때도 없이 ‘위기’라는 말을 써요. 그래서 신세돈 숙명여대 명예교수, 김대종 세종대 교수 등 저명한 학자들과 우리가 이런 부분을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저희 한국평론가협회 소속 전문가들이라도 경제를 평가할 때, 정확성을 바탕으로 기준점을 명확히 잡고, 절대 계파적인 치우침이 없이 정론직언(正論直言)하자는 겁니다.”
― ‘위기’라는 말을 남발한다고 했는데, 그러면 한국 경제는 위기가 아니라는 건가요.
“영어로 ‘크라이시스(crisis)’의 어원은 ‘결정을 하는 상황이 왔다’는 겁니다. 즉 위기는 기회라는 측면을 내포합니다. 항상 위험한 상황에 놓여 위태롭다는 생각을 하면 현상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고, 제대로 된 대책을 낼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인플레이션’이 심해져서 위기라고 합니다. 대개 인플레이션은 가격이 올라가는 현상이라고들 판단합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의 원래 뜻은 가격이 오름으로 해서 내가 쓸 수 있는 가처분(可處分) 소득이 줄어드는 거거든요. 따라서 ‘인플레이션 위기라고 겁내 하지 말고, 물가 잡는 데만 집중하는 게 아니라, 가처분소득을 늘릴 수 있는 처방을 내리는 게 본질입니다.
그런데 가처분소득을 늘리자고 하면, 정치적인 편향성이 개입돼서, 손쉽게 소득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골몰하죠. 그게 ‘기본 소득’ 논란입니다. 경제학 분야에서, 가처분 소득을 늘릴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개인의 노동생산성,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라는 걸 얘기해야 합니다. 이게 저희 ‘한국경제평론가협회’ 회원들이 할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