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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

‘미래차 특별법’ 주역 한무경 의원

“미래차가 새로운 먹거리 산업이 될 수 있게 해야”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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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차 전환 지원하되 대상을 자동차 부품 기업으로 한정해 특혜 논란 피해… 자동차 부품 기업 경영 경험이 바탕”
⊙ “지난 정부의 탈원전·신재생에너지 급속 확대는 에너지 안보가 잘못된 정치이념에 휘둘린 대표적 失政”
⊙ 문헌정보학 대학강사… IMF 당시 1억원에 인수한 자동차 부품사 7000억원대 매출로 키워
⊙ 화장실 청소부터 하면서 기름쟁이 ‘깎쇠’ 마음 얻어
⊙ 한국여성경제인협회장 거쳐 비례대표 국회의원… “스타트업·대기업 중재 보람”

韓茂景
1958년생. 효성여대 도서관학과, 이화여대 대학원(석·박사) 졸업 / 대구가톨릭대 도서관학과 강사, 자동차 부품 제조사 ㈜효림산업 대표, 경북 여성기업인협의회 회장, 한국여성경제인협회 회장 역임.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 위원 및 간사, 국민의힘 중소기업위원회 위원장, 국민의힘 원내부대표 역임
사진=한무경
  가보지 않은 불덩이 길을 이정표 없이 걸어야 하는 게 인생이다.
 
  살다 보면 민담의 모티브처럼 뜻밖의 기회와 만나거나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위기를 겪게 마련이다. 등골 휘는 노력 끝에 바늘귀만큼의 구멍을 뚫었다면 그가 건너온 열 길 물속이 궁금하다. 그의 입에서 나온 집채 같은 말을 경청하고 싶다. 경험에서 나온 열쇳말일 테니까.
 
  문헌 정보를 가르치던 대학강사, 우연히 1억원에 인수한 자동차 부품 회사를 7000억원대의 매출로 키운 구들장 같은 열정, 여성경제인협회 회장, 총칼 없는 전쟁터인 국회에서 4년을 보낸 국민의힘 한무경 의원(비례대표)을 지난 12월 8일 서울 상암동에서 만났다. 만남을 전후해 소셜미디어로 계속 소통했다. 그의 충실한 보좌진과도 만나 대화를 이어갔다.
 
 
  대표발의한 ‘미래차 특별법’ 통과
 
  이날 오후 한무경 의원이 대표발의한 ‘미래차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양향자·강병원·윤관석 의원 등이 발의한 서로 다른 자동차 관련 법안과 합쳐 2년여 만에 국회 문턱을 넘은 것이다. 국회의원이 법안을 발의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러나 본회의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겹겹이 능선을 넘는 애면글면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특별법 명칭이 조금 길다. ‘미래자동차 부품산업의 전환촉진 및 생태계 육성에 관한 특별법.’
 
  전 세계적으로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이 숨 가쁘게 전환되고 있지만 현재 국내 자동차 부품사 대부분은 미래차 산업의 디지털 전환대응 능력이 취약하다. 자동차 부품 회사의 90% 이상이 작고 영세하다. 특별법은 ▲자동차 부품의 범위를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확장 ▲중소·중견 부품 산업 지원 ▲미래차 부품 전문기업 지정 및 지원 ▲미래차 부품 산업 특화단지 지정 등을 포함하고 있다. 한 의원의 말이다.
 
  “미국, 중국, 일본 등 주요국 간 미래차 산업 주도권 확보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는 상황입니다. 세계적인 미래차 흐름에 맞춰 자동차 부품 산업의 미래차 전환이 시급하지만 아직 준비나 대응 역량이 부족해요. 마냥 지켜볼 수 없었어요. 미래차가 새로운 먹거리 산업이 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 미래차 특별법이 통과하기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들었습니다.
 
  “이 법이 대기업 특혜 지원이라며 반대하는 목소리가 많았죠. 또 미래차 관련 업무 영역이 산업자원부, 국토교통부, 환경부 등에 분산돼 부처 간 갈등도 큰 상황이었어요.
 
  문제는 세계 주요국들은 미래차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책을 적극 마련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만 손 놓고 있는 상황에, 미래차 전환을 정부가 지원하되 대상을 자동차 부품 기업으로 한정해 특혜 논란이나 부처 간 갈등을 해소할 수 있었어요. 자동차 부품 기업을 직접 경영해봤기 때문에 가능한 착안이었죠.”
 
 
  “전기차 경쟁력 강화해야”
 
회사 공장에서 직원들과 자동차 부품을 연구 중인 한무경 효림산업 사장.
  우리나라에는 현재 1만여 개의 자동차 부품 회사가 있는데 이 중 9000여 개가 영세하다. 그리고 대부분 완성차 대기업의 하청을 받는 구조다. 부품 기업 82.9%가 2차 이상 하청 기업이다.
 
  ― 대개의 중소 부품사들이 대기업에 납품하기로 약속한 물량을 맞추는 데 급급할 수밖에 없어요.
 
  “그렇습니다. 세계 시장은 전기차로 빠르게 전환되는데 국내 자동차 부품사들이 제때 미래차 산업으로 재편하지 못하면 퇴출(退出)될 수밖에 없죠. 그럴 경우 국내 완성차 기업들의 해외 부품 의존도가 커지고 이는 국가 공급망 위기로 확산될 수 있어요.”
 
  ― 최근 미중(美中) 간 전기자동차, 반도체 패권(覇權) 전쟁이 가속화되고 있고 전기차 점유율 세계 1위 기업의 국내 진출도 앞두고 있습니다. 어떤 대비가 필요하다고 보나요.
 
  “일단 중국이 배터리와 전기차 기술력을 바탕으로 내수(內需) 시장은 물론 글로벌 시장까지 재빠르게 제패할 것으로 보입니다.
 
  다행인 것은 최근 하나금융연구소가 〈2024년 일반산업 전망〉 보고서를 발간했는데, 한국 자동차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전기차 전환에 나서면서 상품성이 높아지고, 또 지정학적 갈등에서도 우위를 보여 2030년에는 글로벌 시장 2위로 도약할 것이라고 내다봤어요.
 
  현재 전기차 경쟁력을 결정짓는 배터리 시장에서 세계 1, 2위가 중국 기업(CATL, BYD)입니다. 점유율이 50%가 넘어요. 2022년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 또한 중국이 60%를 차지했어요. 중국이 15년 이상 국가 차원에서 배터리, 소재, 기초원료 등에 막대한 국가보조금을 지원해 전기차 생태계(生態系)를 탄탄하게 구축했기 때문입니다.
 
  최근 미국, 프랑스 등도 자국 기업에 보조금을 많이 지원하는 정책을 내놨어요. 우리나라도 세액 공제를 비롯한 각종 지원책을 통해 국내 전기차 경쟁력을 강화해야 합니다.”
 
 
  우연히 발견한 리포트가 인생 바꿔
 
  ― 대학에서 문헌정보학을 공부하고 같은 전공으로 박사 학위까지 받았습니다. 그런데 중년에 접어든 마흔에 자동차 부품사를 세운 것으로 알고 있어요. 어떻게 된 일인가요.
 
  “어린 시절 제 꿈은 대학교수가 되는 것이었어요. 모교인 효성여대(현 대구가톨릭대)를 졸업하고 이화여대에서 박사 학위를 땄죠. 20년 가까이 대구가톨릭대 등에서 강사 생활을 하던 제게 만년 적자 회사인 자동차 부품 회사를 인수해보라는 제안서가 날아들었어요.”
 
  IMF라는 국가부도 사태로 국내 제조업의 뿌리가 흔들리던 시기였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번민의 시간을 보내다 결심을 하게 만든 것은 그가 전공한 문헌정보학이었다고 한다.
 
  “〈자동차 부품업이 미래 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는 리포트를 우연히 읽었는데 이 보고서에 자동차 교체 10년 주기설이 언급되어 있었어요. 한국의 경우, 1980년대부터 자동차가 본격 보급됐고 당시 10년 이상 된 중고차가 많았어요. 보고서를 읽으며 IMF 외환위기만 극복하면 곧바로 신차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 쌍용자동차(현 KG모빌리티) 부품 회사는 비록 자금 사정이 어려웠지만, 기술력이 탄탄한 회사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조사를 깊이 할수록 이 제안은 놓쳐선 안 되는, 흙 속의 진주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다. 사업이라곤 생각도 해보지 않았던 40세 중년인, 평범한 ‘워킹맘’의 피가 뜨거워졌다. 20년 시간강사의 인생이 180도 바뀌는 순간이었다.
 
 
  기름쟁이 ‘깎쇠’의 마음을 잡다
 
CEO 한무경은 ‘기름장인’들의 냉소적인 시선을 이겨내고 자동차 부품 회사를 성공적으로 키워냈다.
  ― 마흔에 1억원으로 자동차 부품사를 인수해 18년 만에 7000억원대의 중견기업으로 키웠더군요. 월급쟁이들에겐 신기루 같은 이야기입니다.
 
  “자동차 산업의 미래는 신기루가 아니었어요. 1억원에 인수했던 회사는 경기가 살아나자 곧바로 일어섰죠. 운동화 끈을 고쳐 매고 달렸습니다. 바로 시장이 반응을 보내왔어요.”
 
  매출이 매달 2배씩 뛸 때도 많았다. 인수 당시 적자에다 월 매출이 5억원이 채 안 되었는데 창업 이듬해인 1999년 108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한무경 사장은 기름 묻은 작업복을 입고 공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자동차 부품에서 쇠를 가공하는 분야를 일명 ‘깎쇠’라 부른다. 제조업계 중에서도 가장 거친 분야로 꼽힌다.
 
  ― 이 분야를 주름잡는 ‘야수’들의 마음을 어떻게 얻었나요.
 
  “기본에 충실하면 어떤 일을 하더라도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게 제 삶의 철학입니다. 기본의 구심점을 화장실에서 찾았어요. 사업 초창기 우리 회사의 화장실은 말도 못 하게 지저분했어요.
 
  기름이 튀는 절삭기기를 온종일 돌려야 했으니 절삭유가 주변에 흥건한 것은 당연했죠. 작업을 하다 보면 절삭유가 튀어 직원들의 옷과 신발은 늘 기름때로 얼룩덜룩했어요.”
 
  한 사장은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청소를 시작했다. 당시 회사는 직원이 스무 명도 안 되는 작은 회사여서 청소를 하는 사람이 따로 없었다. 기본적으로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주변의 공간을 깨끗이 하면 깨끗한 회사가 된다고 생각했다.
 
  “구역별로 나눠 직원들이 돌아가며 청소하기로 정했어요. 저부터 화장실 청소를 맡았습니다. 공장을 방문한 사람들이 청소부로 알고 ‘회장실이 어디냐’고 묻는 경우도 많았어요.”
 
  회사 청소는 10년가량 이어졌다. 그러는 동안 회사는 급성장했고, 직원들이 진심으로 따르는 것이 느껴졌다고 한다.
 
 
  시스템을 그림으로 그려 통째로 외워
 
  ― 자동차 부품은 그 명칭이 어렵습니다. 인문학 전공자가 그 복잡한 부품을 어떻게 알게 됐나요.
 
  “직원들이나 고객들과 나누는 대화에서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우선 그걸 소리 나는 대로 적고 나중에 영한·일한사전을 찾아가며 하나씩 배워나갔어요. 기계용어집을 펼쳐가며 공부했고요.”
 
  기계와 공정을 익히기 위해 시스템 대부분을 그림으로 그려 통째로 외웠다고 한다. 용어집에 없는 용어는 회사 직원들에게 물어 기록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니 우리 부품에 대한 ‘감’을 서서히 잡을 수 있었어요. 부산물로 자동차와 그 부품에 대한 일목요연한 대학 노트 3권 분량의 ‘자동차 잡학사전’을 손에 쥐게 되었죠. ‘여자가 기계에 대해 뭘 알겠어’라는 편견을 깨자 벽처럼 느껴졌던 ‘기름쟁이’ 남성 직원들이 잘 따라와 주었어요.”
 
  1억원에 인수한 직원 15명의 작은 회사가 설립 8년 만에 450명의 직원에 연매출 3000억원이라는 성장을 이뤄냈다. “처음 눈을 뭉쳐 조심스레 굴려 나가다 보니 멋진 눈사람이 만들어졌”단다.
 
  회사를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2019년에는 총매출이 7000억원대 회사가 됐다.
 
  ― 위기는 없었나요?
 
  “사업을 하면서 어렵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면 믿으시겠어요? 그중에서도 출근 이틀 만에 리콜 통보 받은 때를 떠올리면 등골이 오싹해요. 처음엔 ‘캠페인’이 ‘리콜’을 뜻하는 것인지도 모를 정도로 허둥댔죠. 특히 회사를 인수하자마자 일어난 일이라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정신을 가다듬고 차근차근 알아보니 인수 시에 원재료 재고도 인수받았는데 그 원재료에서 불량이 발생한 것이었다. 원인을 확인하고 차근차근 문제를 해결해나갔다. 그 결과 리콜 발생 전보다 회사에 대한 신뢰도가 더 높아졌다.
 
 
  쌍용차 파업
 
  그러나 2009년 5월 쌍용차 파업 사태가 일어났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가 정리해고에 반발해 공장을 점거하고 77일간 파업을 벌였다. 쌍용차는 직장 폐쇄를 단행했고, 경찰은 파업 시위를 강경 진압했다.
 
  ― 회사가 쌍용차 하청 기업이었는데 쌍용차 구조조정 당시의 상황은 어떠했나요.
 
  “회사가 연매출 1000억원을 바라보고 나아가던 중에 날벼락이 떨어졌죠. 법정관리, 구조조정, 그리고 전면 파업은 하청 기업으로선 직격타였어요.”
 
  쌍용차 전면 파업은 장장 77일간 이어졌다. 하청 기업으로선 무조건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열심히 뚫어놓은 해외 수출과 정부 지원으로 버텨야 했다. 이 과정에서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상여금을 반납하고 임금을 동결하는 등 자구(自救) 노력을 펼쳐 든든한 힘이 되었다고 한다.
 
  “협력사 대표로서 쌍용차 노조원들을 찾아가 파업 중단을 간절히 호소하기도 했어요. 동분서주하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울렁거립니다.”
 
  결과적으로 쌍용차 파업은 3개월 남짓이었지만 하청 기업이었던 그의 회사는 정상화되기까지 3년이라는 고된 시간이 걸렸다. 긴 고통의 시간이었지만 새로운 도약의 준비기간이 되었다. 국내 시장에만 목매면 안 되겠다 싶어 수출로 활로를 찾았다. 이때부터 시작해 미국과 일본, 인도, 중국에까지 수출을 이어오고 있고 2019년 사우디아라비아에 생산 공장을 설립했다.
 
 
  ‘유리천장’
 
2015년 12월 한무경 의원은 여성 기업인이 겪는 우리 사회의 높은 유리천장을 깨기 위해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제8대 회장에 도전했다.
  회사를 경영하며 자주 느낀 것이 우리 사회가 여전히 남성 중심적이라는 점이었다. 일례로 은행 업무를 보러 가면 은행 직원들은 한 사장에 대한 질문보다 “남편이 무슨 일을 하느냐”고 꼬치꼬치 묻는 경우가 많았다. 그와 그의 회사보다 남편 직업을 보고 신용을 결정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한국여성경제인협회(여경협) 중앙회장에 출마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회사를 꾸려가는 일도 바쁜데 여성 기업인들의 권익을 향상하기 위해 봉사해야겠다 마음먹은 이유는 현실적인 ‘유리천장’을 늘 마주했기 때문입니다.
 
  남성과 달리 여성 대표들은 접대문화 자체가 버겁죠. 남들과 똑같이 술과 향응을 통해 만족시키는 것은 애초에 포기하고 납기와 품질을 칼같이 지키는 것으로 신뢰를 쌓아가자 마음먹었습니다. 회사 사훈(社訓) 또한 ‘정도경영(正道經營)’입니다.
 
  특히 남성 CEO들은 학연, 지연 등을 내세워 긴밀한 네트워크를 구축해 연대가 아주 끈끈합니다. 남성 중심의 네트워크 안에서 여성 기업인으로 돌파구를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에서 대구·경북 지역 여성 CEO 모임을 주도해 초대 회장을 맡으며 경험을 쌓았어요.
 
  두려움이 컸으나 ‘지방 기업인이라고 중앙회장 하면 안 되나?’ 하는 도전의식이 생겼고, 지방의 목소리를 낼 기회라 생각했죠.”
 
  여경협은 ‘여성 기업 지원에 관한 법률’에 의해 설립된 국내 유일의 법정 여성경제단체다. 2500여 개 회원사를 두고 있으며 2007년 ‘여성기업종합지원센터’를 설립해 현재는 전국 17개 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임기 3년 동안 여성 기업 지원 토대를 완비하는 일에 공을 들였어요. 여성 기업인이 직면하는 어려움을 줄이고 기업을 활성화하려면 그들이 처한 현실을 정부에 제대로 알려야 했지요.”
 
  그래서 여성 기업 지원과 창업에 대한 통계를 모으는 작업을 하도록 정부에 건의했다. (여성 기업의 활동 현황 및 실태 조사를 ‘매년’ 실시하도록 하는 ‘여성기업지원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해 지난 2021년 3월 국회를 통과했다.) 또한 여성경제연구소를 설치해 여성 기업들을 정책적으로 도왔고 여성 기업 공공구매 홍보, 여성 기업 확인제도 등 다양한 여성 기업 정책들을 만들어냈다.
 
한무경이 ‘다르게 생각하는 이유’
  남자아이 옷 입고 자란 덕에 兩性的 리더 꿈 생겨

 
  한무경은 1남 8녀 딸 부잣집의 막내다. 어머니는 그에게 자주 남자아이 옷을 입혔다고 한다. 어머니가 어떤 생각으로 남자아이 옷을 입혔는지는 알 수 없다. 언니들 누구에게도 남장 차림과 놀이를 허락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다른 형제자매에게 했던 것과는 달랐던 부모님의 육아법으로 저는 우리 시대에 널리 퍼져 있던 ‘여자는 이래야 한다’는 통념에서 벗어나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또 ‘양성적(兩性的) 리더’가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확신도 생겼죠.”
 
  언니들은 모두 공부를 잘했다. 좋은 대학에서 유망한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전공을 이수했다. 그런데도 대학 졸업과 동시에 결혼했고 좋은 엄마, 착한 아내로 살았다. 학창 시절, ‘언니들과 다르게 살 수는 없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다고 한다.
 
  “우리 가정과 사회를 바꾸려면, 대한민국의 난제인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새로운 리더가 필요해요. 강력한 추진력과 실행력으로 대표되는 남성적 리더십과 감성과 배려, 유연성, 친화력을 바탕으로 한 여성적 리더십을 겸비한 양성적 리더 말이죠.”
 
  “30대 아들이 정치 진출 적극 찬성”
 
21대 국회의원이 된 한무경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5분 자유발언을 하고 있다. (2020년 8월)
  ― 한국여성경제인협회장에 이어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았어요. 가족의 반응은 어땠나요.
 
  “많은 사람이 만류했어요. 세간에 많이 회자되는 우스갯소리를 넌지시 들려주는 사람도 있었어요. ‘여러 업종 종사자가 물에 빠졌다. 누구를 가장 먼저 구해야 하느냐. 정치인을 가장 빨리 구해야 한다. 물이 오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런데 의외로 막 30대에 진입한 아들이 적극 찬성했어요. ‘좋은 정치인이 많이 늘어야 우리나라가 제대로 간다. 그리고 여성 기업인을 제대로 도우려면 국회에 가야 한다’고 힘을 실어주었죠.”
 
  ― 실제 여의도에서 정치를 해보신 소회는 어떠한지요.
 
  “바깥에서 보면 맨날 싸우기만 하고 일을 제대로 안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들어와 보니 의원 개개인별로 열심히 의정(議政) 활동을 합니다.
 
  다만 정치라는 게 다른 가치와 의견을 가진 상대가 서로 토론을 통해 합리적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근본인데, 사실 지금의 여의도 정치는 그런 대화와 타협이 실종됐어요. 국민이 정치를 불신하게 하는 악순환(惡循環)이 반복되고 있어요.”
 
  한무경 의원은 “특히 21대 국회는 반수가 넘는 거대 야당이 입법 독주는 물론 행정부 탄핵까지 자행하는 등, 서로를 공존의 상대가 아닌 적(敵)으로 인식하는 점이 안타깝다”고 했다.
 
 
  “대기업·스타트업 간 분쟁 중재가 보람”
 
한무경 의원과 9명의 성실한 국회 보좌진.
  ― 2024년 예산안도 법정시한 내(12월 2일) 처리되지 못했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중점 예산은 대폭 깎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표 예산’은 증액시켰어요.
 
  민주당은 현 정부가 추진 중인 원전(原電) 생태계 복원과 관련한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 기술개발 사업(333억원), 현장수요 대응 원전 첨단 제조기술 및 부품·장비 개발(60억원), 원전 생태계 금융지원 사업(1000억원), 원전 수출보증(250억원) 등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반면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과 관련한 신재생에너지 금융 지원(2302억원), 신재생에너지 보급 지원(1620억원), 신재생에너지 핵심 기술 개발(579억원) 등의 예산은 증액했다.
 
  “국가 예산은 먼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을 가지고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합니다. 2024년 예산안을 두고 ‘윤석열 예산’ 대(對) ‘이재명 예산’의 싸움이라 할 정도로 ‘강(强) 대 강’ 대치 국면에 있어요.
 
  지난 정부의 탈원전과 신재생에너지 급속 확대는 에너지 안보가 잘못된 정치 이념에 휘둘린 대표적 실정(失政) 중의 하나로 꼽습니다. 무리한 에너지 정책으로 한전이 45조원의 누적적자와 200조원의 부채를 떠안게 됐고, 국민들에게는 에너지 폭탄 요금 청구서로 돌아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입증되지 않나요?”
 
  한무경 의원은 의정 활동을 시작한 지 채 3년이 되지 않은 2022년 8월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 간사를 맡았다. 국정감사 운영을 총괄하며 문재인 정부 5년의 가장 큰 실정인 탈원전 및 신재생에너지 확대의 민낯을 드러내는 데 주력했다.
 

  ― 4년 의정 활동 중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뭔가요.
 
  “아무래도 대기업·스타트업 간 분쟁을 중재한 일입니다. 사업 초기, 협업하던 사이에서 ‘기술탈취’ 분쟁으로 서로 간의 도를 넘는 비방을 벌인 경우가 종종 있었어요.
 
  ‘알고케어-롯데’ 간 분쟁이 떠오르는데 제가 직접 중재해 오해를 풀었어요. 5개월간 기나긴 협상을 통해 기술탈취 여부에 대한 정부 판단을 받되 서로의 불신을 해소하는 상생(相生) 모델을 구축할 수 있도록 합의를 이끌었어요. 정치인으로서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인생 3모작 하는 동안 쉬운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중소기업 권리 회복을 위한 공익재단법인 ‘경청’은 2023년 12월 6일 대기업과의 상생협력 지원에 앞장선 국민의힘 한무경, 더불어민주당 김경만 의원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감사패 전달식에는 기술탈취 분쟁을 겪은 알고케어, 프링커코리아, 스마트스코어, 키우소, 텐덤, 아이밀 등 피해 중소기업들이 모두 참석했다.
 
  ― 정치인을 꿈꾸는 여성에게, 후배 여성 정치인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정치를 왜 하는지, 누구를 위해 하는지에 대한 가치관과 철학이 명확해야 합니다. 자신이 가진 경험과 능력을 정치에 잘 활용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필요해요. 이를 위해선 다양한 경험과 인맥을 쌓고 무엇보다 어느 한쪽에 매몰되지 않는 유연함을 키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개인의 신념에만 치우치다 보면 결국 독선(獨善)의 길로 빠지기 쉬워요.
 
  기업 경영은 협상의 연속인데 정치권에 들어와 보니까 여기도 매 순간 협상을 해야 하는 자리더군요. 여성들이 공감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거나 얘기를 들어주는 데 탁월하다고 봅니다.”
 
  한무경 의원은 현재 지역구 출마를 결심한 상태다. 지역구는 자신의 자동차 부품 회사가 위치한 경기도 평택으로 정했다. 2개 선거구가 3개구로 늘어날 공산이 크다고 한다.
 
  “교수로, 기업인으로, 정치인으로 인생 3모작을 하는 동안 쉬운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지난 4년의 소중한 의정 경험을 바탕으로 ‘더 큰 정치’를 해보겠다는 결심을 최근 내렸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더 열심히 뛸 자신이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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