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현 변형윤의 후예들, 문재인 정부에서 위세 절정
⊙ “좌파경제학 득세할 때마다 서민들의 형편 어려워져”
⊙ 진보경제학자 F학점… 성장ㆍ분배 크게 악화
⊙ ‘善意 충만한 우리 정책이 나쁠수 없다’ 는 허황된 논리
⊙ 이재명의 기본사회 설계자도 진보경제 핵심 멤버
白侊曄
한양대 경제학과, 핀란드 헬싱키경제대 대학원 E-MBA 졸업 / 《한국경제신문》 증권부·금융부 차장·지식사회부 부장, 美 조지메이슨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센터 방문 연구원 역임 / 現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자유기업원 이사, 금융감독원 자문위원, 공인회계사회 저널 편집위원 / 저서 《시장이 진보다》 《국부펀드의 급성장과 세계경제질서의 변화》 《다시 읽는 명저》(공저) 등
⊙ “좌파경제학 득세할 때마다 서민들의 형편 어려워져”
⊙ 진보경제학자 F학점… 성장ㆍ분배 크게 악화
⊙ ‘善意 충만한 우리 정책이 나쁠수 없다’ 는 허황된 논리
⊙ 이재명의 기본사회 설계자도 진보경제 핵심 멤버
白侊曄
한양대 경제학과, 핀란드 헬싱키경제대 대학원 E-MBA 졸업 / 《한국경제신문》 증권부·금융부 차장·지식사회부 부장, 美 조지메이슨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센터 방문 연구원 역임 / 現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자유기업원 이사, 금융감독원 자문위원, 공인회계사회 저널 편집위원 / 저서 《시장이 진보다》 《국부펀드의 급성장과 세계경제질서의 변화》 《다시 읽는 명저》(공저) 등
-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
“사회 갈등을 증폭시키는 이유 중 하나는 경제를 보는 시각의 차이 때문입니다. 우리 경제는 지난 60년간 흥망을 거듭했고, 소위 시장경제학과 진보경제학 중에 무엇이 효과적인지 분명하게 판명 났습니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대중을 호도하는 진보경제학의 뿌리를 낱낱이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책을 낸 이유를 묻자 백광엽(白侊曄)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은 이렇게 말했다. 28년 동안 언론사에 몸담으며 증권부·생활경제부·지식사회부를 두루 거친 백 논설위원이 《경제 천동설 손절하기》를 내놨다. 그는 책에서 진보경제학이 어떻게 한국을 망가뜨렸는지, 그들의 뿌리는 무엇인지, 그들의 명단까지 낱낱이 공개했다. 지난 11월 6일 서울 중구 충정로 《한국경제신문》 건물에서 만난 그는 시종일관 명쾌했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 성적
문재인 정부의 경제는 낙제점이다. 코로나19의 영향이 없었던 집권 3년(2017~2019년) 동안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2.7%로 전(全) 세계 평균(3.4%)을 밑돈다. 내수·생산·투자가 모두 역성장하다시피 했다. OECD는 한국의 잠재 성장률이 2044년 0.62%를 기록해 38개 회원국 중 꼴찌가 될 것으로 봤다. 문재인 정부의 양극화는 기록적이었다. 불평등 정도를 보여주는 분배지표들이 문 정부 출범 직후부터 일제히 곤두박질쳤다. 상위 20%와 하위 20%의 소득 격차를 보여주는 5분위 배율(시장소득 기준)은 2021년 1분기에 9.79배 치솟았다. 상위 20%의 소득이 하위 20%보다 10배 가까이 많다는 의미다. 문재인 정부의 고용은 참사에 가깝다.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되기 직전인 2019년 고용률은 66.8%로 OECD 평균(68.7%)보다 낮다. 비(非)정규직은 2019년 36.4%에서 2021년 38.4%로 늘어났다. 국가 부채는 눈덩이처럼 부풀었다. 2017년 660조2000억원이었던 국가 부채는 2022년 말에 1067조7000억원으로 급증했다.
우리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팀이 실패했다고 받아들인다. 하지만 백광엽 위원은 “문재인 정부 경제팀의 패착은 오랫동안 누적되어온 진보좌파경제학의 산물”이라고 단정 짓는다. 백 위원의 《경제 천동설 손절하기》가 눈길을 끄는 이유는 오늘날의 경제 패착을 진보경제학의 시대적 서사 형태로 써 내려갔기 때문이다. 뿌리가 깊다. 오늘날 우리의 경제 상황이 이렇게 나빠진 것이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숙주처럼 사회 곳곳에 자리한 진보좌파의 작품이라는 소리다.
백 위원의 책에 따르면 K 진보경제학의 출발은 ‘경성제대 마르크스주의자 4인방(유진오·이강국·최용달·박문규)’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성제대를 수석 입학, 수석 졸업한 당대의 수재인 유진오는 경제연구회 설립과 학술문화운동의 중심에 섰다. 이강국은 소련의 계획경제를 찬양하는 등 좌파경제학에 심취했다. 이들 4인방은 나라 세우기가 한창 진행 중일 때 건국준비위원회, 과도 정부 등에서 중책을 맡았다. 이들은 제헌(制憲)에 참여했고, 당연히 사회주의적 요소들이 헌법에 상당히 포함돼 있다. 경성제대 4인방이 뿌린 좌파경제학의 씨는 한국 전쟁으로 이념적 대립이 극심해지면서 잠시 수면 아래로 잠복했다. 하지만 1970년대 들어 ‘민족경제학’의 범주로 진화했다.
변형윤의 ‘분배경제학’
백광엽 위원의 설명이다.
“한국 진보경제학계의 계보는 크게 세 부류입니다. 박현채(朴玄埰·1934~ 1995년) 조선대 교수가 전개한 민족경제학, 김수행(金秀行·1942~2015년) 서울대 교수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변형윤(邊衡尹·1927~2022년) 서울대 교수 중심의 분배중시 경제학입니다. 박현채·김수행 교수의 경제학이 시대를 지나며 힘을 잃었음에도 한국 진보경제학의 입지가 여전히 굳건한 이유는 변형윤 교수의 ‘분배경제학’이 건재하기 때문입니다.”
― 학현학파를 말씀하시는군요.
“‘학현(學峴)’은 변형윤 서울대 교수의 아호이며, 학현학파는 그의 학문적 지향인 ‘분배주의’를 신봉하는 경제학자 그룹입니다.”
― 경제학계에서 학현학파가 주류입니까.
“아닙니다. 경제학계에서 진보좌파의 점유율은 10%도 안 된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진보정치와 결탁하면서 절반에 가까운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 중입니다.”
한국 경제에 대한 진보경제학의 공격 키워드는 매판성, 종속성, 불평등 순으로 변화했다. 1960~1970년대에 외자의존형 경제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제일 먼저 매판자본론이 부상했다. 매판자본은 식민지나 후진국에서 외국 자본과 결탁해 자국민의 이익을 해치는 예속 토착 자본을 일컫는다. 매판자본주의 체제에서 토종 기업은 외국 자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그 대가로 이윤을 얻는다는 게 진보경제학자의 주장이다. 수많은 지식인을 매료시킨 매판자본론은 1986년 우리 경제가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로 전환하자 급속히 사라졌다. 한국 대기업들은 이즈음부터 본격 성장 가도에 진입했다.
매판자본론이 권력을 잃자 진보경제학자들은 슬그머니 종속국가론으로 갈아탔다. 종속론은 선진국에 종속된 한국 경제는 내재적 모순으로 인해 종말로 치닫는 세계 자본주의의 착취 구조를 연장하는 소모품적 지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시각이다. 그러나 21세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한국·대만·홍콩·싱가포르 등 아시아 네 마리 용의 눈부신 비상과 함께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백광엽 위원은 “1990년대 말에 소련과 동유럽 붕괴가 진보경제학을 덮치며 뿔뿔이 흩어졌다”고 말했다.
학현학파, DJ 정권 이후 대거 공직 진출
이른바 진보경제학, 학현학파가 처음 주목을 받은 것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 시절이다. 변형윤 교수부터 정치적 성격이 강한 ‘제2의 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 위원을 맡았다. 그동안 그가 얘기했던 ‘정치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다짐과는 다른 행보였다. 학현학자들의 정부기구 진출은 노무현 정부에서 가속화됐고 직급도 장관급으로 높아졌다. 학현의 핵심인 이정우(李廷雨) 경북대 교수가 청와대 정책실장, 강철규(姜哲圭) 교수가 공정거래위원장, 김대환(金大煥) 인하대 교수가 노동부 장관에 기용됐다.
학현학파의 면면은 노무현 정부의 2003년 6월 한미 FTA 추진 로드맵을 발표하고, 2006년 6월부터 협상을 시작하면서 엿보인다. 미국과의 FTA 체결은 경제적 관점에서 상식이었지만, 반대는 나라를 뒤집을 기세로 타올랐다. 특히 2006년 7월 6일 171명의 경제학자가 ‘한미 FTA 협상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견해’라는 제목의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경제학 교수 152명, 박사 과정 대학원생 19명 등 총 171명이었다. 반대 이유는 한마디로 ‘미국과 FTA를 맺으면 나라 망한다’는 것이었다. 6명의 경제학자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수행 서울대 교수, 이병천 강원대 교수, 전창환 한신대 교수, 김상곤 한신대 교수, 홍훈 연세대 교수, 박경 목원대 교수다.
백광엽 위원의 얘기다.
“한미 FTA에 반대했던 경제학자들은 하나같이 진보경제학계의 주역들이었습니다. 김수행 교수는 ‘한국 1호 마르크스주의 학자’입니다. 이병천 강원대 교수는 중견 마르크스주의 학자의 대표 격이고, 홍훈 연세대 교수와 전창환 한신대 교수도 마르크스 경제학 연구자들입니다. 김상곤 한신대 교수는 ‘사회주의 기업의 노사관계 모형연구’를 주제로 박사 논문을 썼습니다. 반대 성명 참여자 명단은 그 자체로 한국의 분배지상주의 학자, 마르크스주의 학자, 좌파적 대안에 경도된 연구자 리스트입니다. 한미 FTA 반대 성명서 발표 기자회견장에 나온 6명 중 넷은 학현 소속이었습니다.”
― 이제 와서 보니 아주 조직적이었네요.
“성명서 발표의 실무 작업은 학현 핵심 멤버인 홍장표(洪長杓) 부경대 교수가 맡았습니다. ‘민족경제론’을 주창해 한국 진보경제학계의 거목이 된 박현채 조선대 교수의 제자도 있었습니다. 장건화 한신대 교수, 조석곤 상지대 교수가 대표적입니다. ‘경제학자 반대 성명’은 학계의 다수 견해와 괴리된 소수 진보경제학자의 견해에 불과했습니다.”
― 학현 변형윤 교수의 입지가 그만큼 대단했다는 거군요.
“변형윤 교수의 지위와 카리스마는 절대적이며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진보경제학계의 ‘숨은 신(神)’입니다. 명실상부한 최대주주로 대접받았습니다. 변 교수는 박현채 교수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고, 백면서생 같던 변 교수를 재야 운동권 인사들과 연결해준 이도 박현채 교수였습니다. 변형윤은 제자 김수행이 한국 대표 좌파경제학자로 성장하고 자리 잡는 데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변 교수 추종자들 세뇌 당한듯”
― 실무 행동대장은 변 교수의 제자들이 맡았군요.
“변 교수의 추종자들은 세뇌 비슷해진 상황이라고 봅니다. 통합 진보당의 이석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강철서신〉의 김영환이 전향(轉向)한 이후에도 이석기는 계속 민족해방전쟁을 부르짖으며 결국 정치판에 입성했잖습니까. 이석기는 어찌 보면 2세대로서 자신이 전향하면 더는 자기 존재를 내세울 만한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원조만큼 지식이나 내공, 치열한 성찰이 없으니까요. 변형윤의 제자들도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한미 FTA가 발효된 지 만 11년이 넘었다. 한미 FTA 체결 이후 한국의 대미 경제 활동은 크게 활기를 띠고 있다. FTA 발효 직전인 2011년에 116억 달러였던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는 2016년에 233억 달러로 뛰었다. 한국의 대미 수출 비중은 10.1%(2011년)에서 15%(2021년)로 높아졌다. 한미 FTA 반대운동 당시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 조항에 대한 문제 제기가 많았다. 협정 발효 후 ISD 신청은 3건이다. 백광엽 위원은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건수지만 내용을 보면 ‘부당하다’거나 ‘사업주권 훼손’을 운운할 사례는 없다”고 했다.
“오랜 고민 끝에 오류 인정한 안병직·이영훈”
상식적인 학자라면 자신의 오류가 증명됐으면 인정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안병직(安秉直) 서울대 명예교수는 1980년대 말에 “연옥(煉獄)을 통과하는 지적 고뇌 끝에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실효성을 인정한다”고 말하며 전향했다. 구로공단에 위장 취업해 5년 동안 제적된 운동권 학생이었던 이영훈(李榮薰) 서울대 교수는 이념과 현실의 괴리에 고민하다 실증 경제학으로 이동했다.
정치권에서도 마찬가지다. 김대중 전(前) 대통령은 집권 전부터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대중경제론의 방향 착오를 깨닫고 자유주의 경제학으로 점차 근접했다. 1980년대와 1990년에 미국 럿거스대학 유종근(柳鍾根) 교수의 도움을 받아 《대중참여경제론》을 영문으로 발간하며, 경제성장의 중요성을 인정했다. 또 박정희 시대의 경제개발과 수출주도공업화의 유효성을 인정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비슷했다. 대통령 자리에 오른 지 1년도 되지 않아 진보경제학에서 방향을 틀었다. 2003년 12월에 이정우 정책실장을 경질하고 정통 관료 출신인 박봉흠(朴奉欽) 당시 기획예산처 장관을 발탁했다. 경제부총리에는 시장의 신뢰가 컸던 정통 관료 이헌재(李憲宰) 장관을 모셨다.
하지만 진보경제학자 및 학현은 이들과 전혀 다른 행보를 걸었다. 만일 변형균 교수가 자신의 사상이 틀렸다고 인정했다면 어땠을까. 과연 그의 추종자 중에 생각이 바뀐 이들이 있었을까.
백광엽 위원의 얘기다.
“그들이 알면서도 끝까지 우기는 것인지, 정말 모르는 것인지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저는 그들이 이미 자신의 오류를 안다고 생각합니다. 경제학계에서 이미 배척된 이론이거든요. 하지만 그들은 이미 권력의 세계로 들어섰습니다. 권력의 본질과 속성은 권력을 끝까지 유지하는 겁니다. 정치적으로 권력이라는 것이 결국 표(票)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그들은 어떤 경제 정책이 득표(得票)에 유리할까를 따진 겁니다.”
― 변형윤 교수가 살아생전에 스탠스를 바꾸었다면요?
“학문적 소신인지 모르겠지만, 마지막까지 고집스러웠던 점은 좀 안타깝습니다. 제가 평가하기는 좀 그렇고요. 레닌이 죽었을 때 처칠이 ‘혁명으로 망가진 소련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는 유일한 사 람이 죽었다’는 말을 했던 것에 비유하고 싶습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겪으며 전열 재정비
백광엽 위원은 “외환위기, IT 버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전열을 재정비했다”고 말했다.
“사라진 줄 알았던 선동의 진보경제학은 불과 10여 년 만에 좀비처럼 부활했습니다. ‘불평등’이라는 막강 신무기를 장착한 덕분입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국면에서 드러난 무질서, 탐욕이라는 자본의 어둠이 부활의 자양분이 됐습니다. 2011년에는 ‘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대 횃불이 타오르면서 ‘1% 대 99%’의 새로운 전선이 형성됩니다.”
― 숨이 끊어지지를 않네요.
“노무현 정부의 실패로 허상이 드러나 숨이 간당간당하던 한국 진보경제학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강자(强者) 독식이 불평등의 원인이라며 질투와 분노를 부추기는 ‘헬조선 전략’으로 내달렸습니다. 선전전이 타오를 때 터진 초유의 대통령 탄핵 사태는 진보경제학 전면 채택을 앞세운 문재인 정부 출범으로 이어졌습니다.”
― 반성은커녕, 다른 캐치프레이즈로 무장했네요.
“한미 FTA 반대운동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성명에 이름을 올린 경제학자들은 집단행동을 본격화했습니다. 거의 모든 경제 이슈에 한목소리를 내며 여론을 주도하는 모습이 뚜렷해졌습니다.”
“학현 아니면 청와대 전화 기다리지 마라”
소위 ‘3기 민주정부’ 문재인 정권에서 학현의 위세는 절정에 달했다. 경제 라인은 물론 방계 싱크탱크까지 독식하다시피 했다. 문 정부에서는 “학현 소속이 아니면 괜히 청와대의 인사통보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는 우스갯소리도 돌았다고 한다.
소득주도성장(이하 소주성)의 창안자로 알려진 홍장표 부경대 교수는 초대 경제수석에 임명됐고, 이후 소주성 실패로 경질된 이후에도 ‘국내 최고의 싱크탱크’인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에 임명됐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도 학현 멤버 김흥종이 맡았다. 공정거래위원장을 거쳐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상조, 초대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지낸 김상곤 교수도 범학현그룹이다. 장지상(張志祥) 산업연구원 원장, 주상영(朱尙榮)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원승연(元承淵) 금융감독원 부원장, 박복영(朴馥永) 대통령 경제보좌관 등 문 정부 경제 라인은 학현으로 차고 넘쳤다.
학현끼리 바통 터치하듯 자리를 주고받는 이례적인 인사도 다반사였다. 이제민(李濟民) 연세대 교수와 이근(李根) 서울대 교수는 대통령 직속기구인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자리를 2021년 1월에 넘겨받았다. 문 정부의 마지막 국민경제자문회의 4개 분과 중 3개 분과장이 학현 출신이었다. 2020년 12월 통계청장 자리를 교대한 강신욱(姜信昱) 교수와 류근관(柳根寬) 교수도 모두 학현 학자들이었다. 이런 싹쓸이로 학현은 문 정부 5년간 경제 현안을 좌지우지했다.
상식과 합리에서 벗어난 딴지
― 좌파진보경제학자는 노무현 정부의 한미 FTA 때 처음 현실 정치 영역에 나타난 것 아닌가요.
“K-진보경제학은 유구한 반대의 역사를 자랑합니다. ‘한강의 기적’의 출발점인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때부터 상식과 합리에서 벗어난 딴지가 시작됐습니다. 김문수(金文洙)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은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김문수 위원장의 증언이다.
“서울대 상과대에서 변형윤 교수 등의 가르침과 지도로 고속도로 건설 반대, 창원 중화학공업단지 반대를 많이 했다. 자동차 공장도 안 된다고 했다. 기술 종속, 자본 종속, 시장 종속, 결국은 종속 국가로 떨어진다는 설명을 들으면 명쾌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그때 포철(현재 포스코)도 안 만들고 중화학 공단 안 만들었다면 현재 어떻게 됐을까. 지나고 보니 박정희 대통령이 맞았다. 당대의 경제학자도 틀렸고, 그 제자인 저도 잘못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는 “1976년에 복학하니 변형윤 교수가 한국경제론 강의에서 중화학공업화로 한국 경제가 망하게 됐다며 탄식을 거듭했다”고 증언했다.
‘닥치고 분배’
한국 경제는 1963~97년 외환위기 직전까지 연평균 9.1%의 수직 성장을 이뤘다.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어려운 기록이다. 하지만 변형윤 교수는 “균형 발전이 안 됐다”며 박정희 정부의 경제계획은 실패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변 교수는 70세 때 발표한 〈계획시대의 교훈〉이라는 글에서도 “공업화는 경제 개발의 수단이고 경제 개발이 목적인데 박정희 시대는 공업화를 목적으로 착각했다. 1차 5개년 계획은 5·16쿠데타 합리화 수단의 하나였고, 2~4차는 장기 집권 합리화 수단이었다”고 단정했다.
― 경제학계의 주류가 아님에도 이들이 승승장구하는 이유는 뭡니까.
“학현학파는 점점 세를 불려 왔습니다. 흠잡을 데 없는 슬로건인 ‘분배 개선’을 앞세워 진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경제 정책 라인을 싹쓸이했습니다. 학현의 분배경제학은 ‘부(富)를 공유하자’는 식(式)의 분배지상주의에 가깝습니다. 진보 정치와 연계한 ‘닥치고 분배’ 정책으로 한국 경제에 큰 주름을 지우는 양상입니다.”
― 이번에는 분배라는 키워드를 점령했군요.
“진보좌파경제학은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학’을 표방하지만, 결과를 보면 ‘인간의 가면을 쓴 경제학’이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좌파경제학이 득세할 때 서민은 예외 없이 고용참사와 극심한 양극화에 시달렸습니다. ‘서민을 도와야 한다’며 풀어 제친 유동성 때문에 보유자산 가격이 치솟아서입니다. 오히려 부자들은 표정관리 상태입니다.”
― 좌파경제학자들은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건가요.
“학현학자들은 실패가 확실함에도 반성에 인색합니다. 통계를 호도하며 실패를 부정하는 데 더 열중합니다. 통계 분식도 다반사입니다. 2018년 8월에 취임 1년도 안 된 황수경(黃秀慶) 통계청장이 갑자기 경질됐습니다. 하위 20%의 소득이 줄고, 상위 20%의 소득이 많이 증가해 2008년 이래 소득분배지표가 가장 나빠졌다는 보도자료 발표 직후였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간판인 ‘소주성’의 허상이 드러난 통계였습니다.”
“경제학을 도덕적 관점에서 재단”
백광엽 위원의 조사로는 학현학자들이 자주 인용하는 구절은 ‘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마음’ 그리고 ‘인간 중심의 경제학’이다. 모두 영국 신고전학파 경제학자인 앨프리드 마셜(Alfred Marshall)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백 위원은 지적한다.
“‘따뜻한 마음’은 분배 우선으로 이해되지만, 사실 이는 오독(誤讀)입니다. 마셜은 분배보다 성장을 중시했습니다. 마셜 사상의 백미(白眉)는 오히려 시장 자유를 통한 성장의 강조입니다. 그는 번영의 원천은 정부가 아니라 시장, 즉 자본가와 기업가라고 강조했습니다. 진보경제학은 자신들의 정책이 실패해도 ‘선의(善意)가 있고 정의롭기 때문에 우리의 길이 옳다’고 합리화합니다. 우리는 좋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 정책이 나쁠 수 없다는 기적의 논리입니다. 한국 진보경제학자들은 경제학을 도덕적 관점으로 재단하려 합니다. 국부(國富) 증대 방안과 후대를 걱정하는 동료 학자들의 고민을 ‘부자 감세(減稅)’와 ‘반(反) 서민적’이라고 단정하고 모욕적 언사로 비판합니다. ‘인간 중심의 경제학’을 앞세워 경제학을 어설픈 복지학이나 윤리학으로 오판(誤判)합니다.”
― 경제를 복지, 윤리학으로 여긴다는 건 참 끔찍한 얘기네요.
“진보경제학은 자신을 분배경제학, 평등경제학으로 명명(命名)합니다. 실제로 이들의 경제학은 ‘질투의 경제학’일 뿐입니다. 폭발하는 평등 욕구를 합리적으로 없애는 방안을 고민하기보다 질투를 부추겨 정치적 이득을 얻는 데만 골몰합니다. 경제개발이 시작된 이래 60여 년 동안 한국의 양극화는 꾸준히 개선돼왔는데, 사실관계를 왜곡해가며 필요 이상으로 분노를 부추기는 게 진보경제학의 상투적 수법입니다.”
“경제민주화는 그들의 단골 메뉴”
― 적어도 학자로서의 양심이 있다면 그럴 수 없는 것 아닙니까.
“한국 진보좌파가 애용해온 영업 비밀은 ‘왜곡’과 ‘선동’입니다. 선동과 왜곡의 중심에는 높은 확률로 학현그룹이 목격됩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선동이 국정 전반을 오염시켰습니다. 엄정한 데이터에 기초해야 할 경제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였죠. 진보경제학자들은 사실을 수용하기보다 선택합니다. 사실이 가리키는 대로 탐구하지 않고, 참으로 용감하게도 사실을 재단하려고 덤빕니다. 끝없이 핑계를 만들어가며, 자신들의 이론에 궤를 맞춥니다. 그들은 ‘선한 의지를 가진 우리의 이론과 해법이 옳다’며 끊임없이 자기 최면을 겁니다.”
― 문재인 정부의 듣지도 보지도 못한 소득주도성장이 왜 나왔나 싶었는데, 뿌리가 너무 깊습니다.
“진보경제학은 착각합니다. 성장이 안 되는 이유는 재벌만 위하는 신(新)자유주의 탓이고, 분배가 안 되는 것도 서민과 중산층은 관심 밖인 신자유주의 탓입니다. 사실과 다릅니다. 신자유주의는 세계 경제의 성장을 저해한 것이 아니라 앞장서서 이끌었다고 보는 것이 상식입니다.”
― 진보경제학은 그럴싸한 단어들을 모두 선점한 모습입니다.
“진보경제학의 단골 메뉴는 경제민주화 또는 경제민주주의입니다. 일반인들은 ‘정치민주화처럼 경제민주화도 좋은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경제민주주의’는 그 기원부터 사회주의 노동운동입니다. 1920년대 독일 사회민주당이 ‘마르크스 이후 가장 뛰어난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라던 루돌프 힐퍼딩(Rudolf Hilferding)의 ‘조직자본주의’를 기초로 정립된 개념입니다. 경제민주화가 미국, 유럽 등 선진 경제권에서 유행하는 시대적 흐름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없습니다. 독일, 파키스탄, 베네수엘라 등은 시행착오만 반복하다 지금 모두 폐기했습니다.”
“문재인 때 불평등 극심해져”
― 실제 우리 경제는 어떤가요.
“진보경제학은 사실을 경시하고 왜곡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낙수(落水) 효과 부정입니다. 그런데 ‘대기업과 거래가 많을수록 실적 개선 폭이 크다’는 낙수 연구 입증 연구는 부지기수로 많습니다. 좌파경제학자들의 말과 정반대의 결과입니다. 진보경제학은 대기업을 한국 경제의 공적(公敵)이라고 공격합니다. 하지만 한국 100대 기업의 매출집중도(전체 기업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는 45.6%로 OECD 주요 19개국 중 15위입니다. 자산집중도(전체 기업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OECD 19개국 중에서 15위입니다. 우리 경제가 성장한 배경에는 모두의 공이 있겠지만, 굳이 따져보면 대기업이 세계 일류로 성장한 덕분에 국가 경쟁력, 제조업 경쟁력, 1인당 GDP에서 일본을 앞지른 겁니다.”
― 사실을 완전히 호도하는군요.
“진보경제학이 시장주의 개혁을 비판할 때 남발하는 키워드가 부자 감세입니다. 부자들만 좋은 ‘반서민 정책’을 펼친다 비난하는데 이 또한 선동에 불과합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내내 악화하던 양극화 저지에 성공한 것은 이명박 정부였습니다. 반면 부자 증세와 ‘퍼주기’로 치달은 문재인 정부 때 불평등이 다시 극심해졌습니다.”
― 정확한 수치가 있나요.
“우파정권이 부자만 챙겨 서민·중산층의 삶을 도탄에 빠뜨린다고 진보경제학은 맹공격합니다. 사실무근입니다. 불평등도(지니계수 기준)는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부 때 11%,3%,15%나 개선됐습니다. 시장친화적이었던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2%와 3% 개선됐고요.
정작 분배를 앞세운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 시절에 어김없이 양극화가 깊어졌습니다. DJ 때는 IMF 구제금융기였으니 나름 해명이라도 가능합니다.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불평등은 5% 가량 악화됐습니다. 당시는 ‘골디락스’(견조한 성장세가 지속되는 이상적 상태)라는 신조어가 회자될 정도로 세계 호황을 누렸던 만큼 변명을 찾기도 어렵습니다.
‘퍼주기 끝판왕’ 문재인 정부가 최악입니다. 집권 초기 2년(2018~2019)동안에만 양극화가 6%나 확대됐습니다. 60여년 한국 경제개발사에 유례없이 가파른 속도였지요. 다급해진 문 정부가 허겁지겁 통계를 조작하고 나선 탓에 이후는 정확한 분배데이타 확보조차 어렵습니다. 분배경제학이 저소득층을 더한 빈곤으로 내몰고만 역설이 뚜렷합니다.”
백광엽 위원의 책에 따르면 K-진보경제학자들의 최대 집결지는 한국사회경제학회(이하 한사경)와 한국경제발전학회, 서울사회경제연구소(서경연)이다. 한사경과 한국경제발전학회는 변형윤 교수의 지도로 발족했다. 서경연은 한사경과 한국경제발전학회의 지주회사 같은 역할을 하는 K-진보경제학의 통합 진지 격이다. 변형윤을 좌장으로 10여 년간 활동하던 ‘학현연구실’을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비영리사단법인 형태의 민간연구소로 개편해 1993년에 출범했다. 학현학파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조직으로 회원은 200여 명이다.
문재인 정부의 소주성으로 좌절을 맛본 학현그룹이 요즘 미는 정책은 기본소득이다.
백광엽 위원의 얘기다.
“기본소득제는 실패한 소주성을 부활시키기 위해서 ‘올인 베팅’의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아무리 해도 가계(家計) 소득이 늘지 않으니, 나라에서 돈을 직접 국민 주머니에 꽂아주겠다는 발상입니다. 기본소득은 스위스, 핀란드, 캐나다 등에서 2009년부터 여러 논의와 실험을 거치는 동안 한 번도 성공적 결과를 보여주지 못한 실험적인 정책입니다. 설계방식에서부터 이견이 분분합니다. 이와 함께 토지공개념은 급진개혁의 끝판왕 격인 정책들입니다. 이재명(李在明)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기본소득제 대선공약을 설계하고 총괄한 강남훈(康南勳)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장은 학현 멤버입니다.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 소장은 토지세를 통한 기본소득 실현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학자로 범(汎)학현그룹입니다.”
― 기본소득제 도입이 실행될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까.
“이재명 대표는 지난 대선 선거 운동 때까지 2024년 이후에 1인당 연 100만원의 기본소득 지급을 공약했습니다. 이 방안이 시행되면 한국은 세계 최초로 기본소득제를 도입하는 국가가 됩니다. 세계 최초의 실험을 하겠다는 얼기설기 구상이지만, 진보경제학자들은 ‘일단 작동시켜보자’는 식입니다. 국내외 석학들의 진지한 우려와 물음에 걸맞은 정교한 설명을 내놓아야 할 겁니다.”
이재명의 기본사회
더불어 민주당은 기본소득론을 발전시켜 ‘기본 사회’를 주장하고 있다. 2023년 2월에 기본사회위원회를 공식 출범시키고, 이재명 대표가 위원장을 맡았다. 기본 사회는 기본소득 외에 기본주거, 기본금융 등을 한꺼번에 모은 개념이다. 백광엽 위원의 얘기다.
“2004년 기본소득 지구네트워크 발족을 계기로 기본소득과 토지공개념의 밀착이 시작됐습니다. 부의 공유는 헌법상 사유재산권 보장과 정면 배치됩니다. 토지공개념과 기본소득의 연계는 시계를 과거로 되돌리는 잘못된 만남입니다. 진보경제학자들은 기본소득 재원 조달 방안으로 재정구조개혁, 탄소세 신설과 함께 ‘국토보유세 신설’을 핵심으로 제시합니다. 부동산 불로소득 차단을 위해 1%의 국토보유세를 부과하면 지금이라도 50조원의 재원(財源)을 걷을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국토보유세의 미래는 결과적으로 중국, 북한식 토지국유제로의 이행일 뿐입니다.”
― 자세히 설명을 들으면 섬뜩한 정책들을 마구잡이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기본소득과 토지공개념은 급진 개혁의 끝판왕입니다. 검증되지 않은 개념이 급부상해서 정책으로까지 구체화한 것은 학현학파와 조지스트(헨리 조지의 추종자들)들의 작품입니다.”
― 불평등을 얘기하다가 궁극에는 토지를 손대는 정책으로까지 넘어갔군요.
“근대 이후의 역사는 토지로부터 권력이 분리돼온 기록으로 봐야 합니다. 현대로 가까워져 올수록 권력 기반으로서의 토지의 역할은 줄어듭니다. 유럽의 봉건주의 해체, 고대 한국의 왕토사상 약화도 그랬습니다. 토지공개념과 그에 기초한 개발이익환수론은 토지에 대한 공적 통제를 말합니다. 공공이란 말로 포장했지만, 본질은 공공을 대변하는 정치인과 관료들이 토지자원을 멋대로 사용하는 권리를 확대하자는 것에 불과합니다. 권력을 다시 토지로 결합시키려는 진보경제학의 시도는 역사의 퇴행에 가깝습니다.”
“우파의 언어, 감성·절박함 부족”
― 이쯤 되면 궁금해집니다. 정통 경제학자들은 왜 가만히 있습니까.
“사람들에게 전달될 때 언어로 전달되잖아요. 우파의 언어는 건조하고, 표현이 부족합니다. 시장 경제, 효율성 위주라는 말들이 사실 쉬운 얘기는 아닙니다. 좌파들처럼 ‘가난한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간다’ ‘부자 봐주려고 그러는 거다’라는 언어가 훨씬 쉽죠. 우파의 언어는 감성이 부족합니다. 어찌 보면 절박함이 부족한 듯싶기도 하고요. 하지만 우파 진영에도 전문가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일반 시민에게 더 친절하게 다가갈 수 있는 표현을 찾을 것이라고 봅니다. 좌파경제학자들과의 마지막 대결이 이제 시작됐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낸 이유를 묻자 백광엽(白侊曄)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은 이렇게 말했다. 28년 동안 언론사에 몸담으며 증권부·생활경제부·지식사회부를 두루 거친 백 논설위원이 《경제 천동설 손절하기》를 내놨다. 그는 책에서 진보경제학이 어떻게 한국을 망가뜨렸는지, 그들의 뿌리는 무엇인지, 그들의 명단까지 낱낱이 공개했다. 지난 11월 6일 서울 중구 충정로 《한국경제신문》 건물에서 만난 그는 시종일관 명쾌했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 성적
문재인 정부의 경제는 낙제점이다. 코로나19의 영향이 없었던 집권 3년(2017~2019년) 동안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2.7%로 전(全) 세계 평균(3.4%)을 밑돈다. 내수·생산·투자가 모두 역성장하다시피 했다. OECD는 한국의 잠재 성장률이 2044년 0.62%를 기록해 38개 회원국 중 꼴찌가 될 것으로 봤다. 문재인 정부의 양극화는 기록적이었다. 불평등 정도를 보여주는 분배지표들이 문 정부 출범 직후부터 일제히 곤두박질쳤다. 상위 20%와 하위 20%의 소득 격차를 보여주는 5분위 배율(시장소득 기준)은 2021년 1분기에 9.79배 치솟았다. 상위 20%의 소득이 하위 20%보다 10배 가까이 많다는 의미다. 문재인 정부의 고용은 참사에 가깝다.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되기 직전인 2019년 고용률은 66.8%로 OECD 평균(68.7%)보다 낮다. 비(非)정규직은 2019년 36.4%에서 2021년 38.4%로 늘어났다. 국가 부채는 눈덩이처럼 부풀었다. 2017년 660조2000억원이었던 국가 부채는 2022년 말에 1067조7000억원으로 급증했다.
우리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팀이 실패했다고 받아들인다. 하지만 백광엽 위원은 “문재인 정부 경제팀의 패착은 오랫동안 누적되어온 진보좌파경제학의 산물”이라고 단정 짓는다. 백 위원의 《경제 천동설 손절하기》가 눈길을 끄는 이유는 오늘날의 경제 패착을 진보경제학의 시대적 서사 형태로 써 내려갔기 때문이다. 뿌리가 깊다. 오늘날 우리의 경제 상황이 이렇게 나빠진 것이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숙주처럼 사회 곳곳에 자리한 진보좌파의 작품이라는 소리다.
백 위원의 책에 따르면 K 진보경제학의 출발은 ‘경성제대 마르크스주의자 4인방(유진오·이강국·최용달·박문규)’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성제대를 수석 입학, 수석 졸업한 당대의 수재인 유진오는 경제연구회 설립과 학술문화운동의 중심에 섰다. 이강국은 소련의 계획경제를 찬양하는 등 좌파경제학에 심취했다. 이들 4인방은 나라 세우기가 한창 진행 중일 때 건국준비위원회, 과도 정부 등에서 중책을 맡았다. 이들은 제헌(制憲)에 참여했고, 당연히 사회주의적 요소들이 헌법에 상당히 포함돼 있다. 경성제대 4인방이 뿌린 좌파경제학의 씨는 한국 전쟁으로 이념적 대립이 극심해지면서 잠시 수면 아래로 잠복했다. 하지만 1970년대 들어 ‘민족경제학’의 범주로 진화했다.
변형윤의 ‘분배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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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광엽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
“한국 진보경제학계의 계보는 크게 세 부류입니다. 박현채(朴玄埰·1934~ 1995년) 조선대 교수가 전개한 민족경제학, 김수행(金秀行·1942~2015년) 서울대 교수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 변형윤(邊衡尹·1927~2022년) 서울대 교수 중심의 분배중시 경제학입니다. 박현채·김수행 교수의 경제학이 시대를 지나며 힘을 잃었음에도 한국 진보경제학의 입지가 여전히 굳건한 이유는 변형윤 교수의 ‘분배경제학’이 건재하기 때문입니다.”
― 학현학파를 말씀하시는군요.
“‘학현(學峴)’은 변형윤 서울대 교수의 아호이며, 학현학파는 그의 학문적 지향인 ‘분배주의’를 신봉하는 경제학자 그룹입니다.”
― 경제학계에서 학현학파가 주류입니까.
“아닙니다. 경제학계에서 진보좌파의 점유율은 10%도 안 된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진보정치와 결탁하면서 절반에 가까운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 중입니다.”
한국 경제에 대한 진보경제학의 공격 키워드는 매판성, 종속성, 불평등 순으로 변화했다. 1960~1970년대에 외자의존형 경제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제일 먼저 매판자본론이 부상했다. 매판자본은 식민지나 후진국에서 외국 자본과 결탁해 자국민의 이익을 해치는 예속 토착 자본을 일컫는다. 매판자본주의 체제에서 토종 기업은 외국 자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그 대가로 이윤을 얻는다는 게 진보경제학자의 주장이다. 수많은 지식인을 매료시킨 매판자본론은 1986년 우리 경제가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로 전환하자 급속히 사라졌다. 한국 대기업들은 이즈음부터 본격 성장 가도에 진입했다.
매판자본론이 권력을 잃자 진보경제학자들은 슬그머니 종속국가론으로 갈아탔다. 종속론은 선진국에 종속된 한국 경제는 내재적 모순으로 인해 종말로 치닫는 세계 자본주의의 착취 구조를 연장하는 소모품적 지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시각이다. 그러나 21세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한국·대만·홍콩·싱가포르 등 아시아 네 마리 용의 눈부신 비상과 함께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백광엽 위원은 “1990년대 말에 소련과 동유럽 붕괴가 진보경제학을 덮치며 뿔뿔이 흩어졌다”고 말했다.
학현학파, DJ 정권 이후 대거 공직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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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22일, 한미 FTA 범국본 주최로 서울광장에서 열린 한미 FTA 반대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한미 FTA를 반대하는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사진=조선DB |
학현학파의 면면은 노무현 정부의 2003년 6월 한미 FTA 추진 로드맵을 발표하고, 2006년 6월부터 협상을 시작하면서 엿보인다. 미국과의 FTA 체결은 경제적 관점에서 상식이었지만, 반대는 나라를 뒤집을 기세로 타올랐다. 특히 2006년 7월 6일 171명의 경제학자가 ‘한미 FTA 협상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견해’라는 제목의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경제학 교수 152명, 박사 과정 대학원생 19명 등 총 171명이었다. 반대 이유는 한마디로 ‘미국과 FTA를 맺으면 나라 망한다’는 것이었다. 6명의 경제학자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수행 서울대 교수, 이병천 강원대 교수, 전창환 한신대 교수, 김상곤 한신대 교수, 홍훈 연세대 교수, 박경 목원대 교수다.
백광엽 위원의 얘기다.
“한미 FTA에 반대했던 경제학자들은 하나같이 진보경제학계의 주역들이었습니다. 김수행 교수는 ‘한국 1호 마르크스주의 학자’입니다. 이병천 강원대 교수는 중견 마르크스주의 학자의 대표 격이고, 홍훈 연세대 교수와 전창환 한신대 교수도 마르크스 경제학 연구자들입니다. 김상곤 한신대 교수는 ‘사회주의 기업의 노사관계 모형연구’를 주제로 박사 논문을 썼습니다. 반대 성명 참여자 명단은 그 자체로 한국의 분배지상주의 학자, 마르크스주의 학자, 좌파적 대안에 경도된 연구자 리스트입니다. 한미 FTA 반대 성명서 발표 기자회견장에 나온 6명 중 넷은 학현 소속이었습니다.”
― 이제 와서 보니 아주 조직적이었네요.
“성명서 발표의 실무 작업은 학현 핵심 멤버인 홍장표(洪長杓) 부경대 교수가 맡았습니다. ‘민족경제론’을 주창해 한국 진보경제학계의 거목이 된 박현채 조선대 교수의 제자도 있었습니다. 장건화 한신대 교수, 조석곤 상지대 교수가 대표적입니다. ‘경제학자 반대 성명’은 학계의 다수 견해와 괴리된 소수 진보경제학자의 견해에 불과했습니다.”
― 학현 변형윤 교수의 입지가 그만큼 대단했다는 거군요.
“변형윤 교수의 지위와 카리스마는 절대적이며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진보경제학계의 ‘숨은 신(神)’입니다. 명실상부한 최대주주로 대접받았습니다. 변 교수는 박현채 교수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고, 백면서생 같던 변 교수를 재야 운동권 인사들과 연결해준 이도 박현채 교수였습니다. 변형윤은 제자 김수행이 한국 대표 좌파경제학자로 성장하고 자리 잡는 데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 실무 행동대장은 변 교수의 제자들이 맡았군요.
“변 교수의 추종자들은 세뇌 비슷해진 상황이라고 봅니다. 통합 진보당의 이석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강철서신〉의 김영환이 전향(轉向)한 이후에도 이석기는 계속 민족해방전쟁을 부르짖으며 결국 정치판에 입성했잖습니까. 이석기는 어찌 보면 2세대로서 자신이 전향하면 더는 자기 존재를 내세울 만한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원조만큼 지식이나 내공, 치열한 성찰이 없으니까요. 변형윤의 제자들도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한미 FTA가 발효된 지 만 11년이 넘었다. 한미 FTA 체결 이후 한국의 대미 경제 활동은 크게 활기를 띠고 있다. FTA 발효 직전인 2011년에 116억 달러였던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는 2016년에 233억 달러로 뛰었다. 한국의 대미 수출 비중은 10.1%(2011년)에서 15%(2021년)로 높아졌다. 한미 FTA 반대운동 당시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 조항에 대한 문제 제기가 많았다. 협정 발효 후 ISD 신청은 3건이다. 백광엽 위원은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건수지만 내용을 보면 ‘부당하다’거나 ‘사업주권 훼손’을 운운할 사례는 없다”고 했다.
“오랜 고민 끝에 오류 인정한 안병직·이영훈”
상식적인 학자라면 자신의 오류가 증명됐으면 인정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안병직(安秉直) 서울대 명예교수는 1980년대 말에 “연옥(煉獄)을 통과하는 지적 고뇌 끝에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실효성을 인정한다”고 말하며 전향했다. 구로공단에 위장 취업해 5년 동안 제적된 운동권 학생이었던 이영훈(李榮薰) 서울대 교수는 이념과 현실의 괴리에 고민하다 실증 경제학으로 이동했다.
정치권에서도 마찬가지다. 김대중 전(前) 대통령은 집권 전부터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대중경제론의 방향 착오를 깨닫고 자유주의 경제학으로 점차 근접했다. 1980년대와 1990년에 미국 럿거스대학 유종근(柳鍾根) 교수의 도움을 받아 《대중참여경제론》을 영문으로 발간하며, 경제성장의 중요성을 인정했다. 또 박정희 시대의 경제개발과 수출주도공업화의 유효성을 인정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비슷했다. 대통령 자리에 오른 지 1년도 되지 않아 진보경제학에서 방향을 틀었다. 2003년 12월에 이정우 정책실장을 경질하고 정통 관료 출신인 박봉흠(朴奉欽) 당시 기획예산처 장관을 발탁했다. 경제부총리에는 시장의 신뢰가 컸던 정통 관료 이헌재(李憲宰) 장관을 모셨다.
하지만 진보경제학자 및 학현은 이들과 전혀 다른 행보를 걸었다. 만일 변형균 교수가 자신의 사상이 틀렸다고 인정했다면 어땠을까. 과연 그의 추종자 중에 생각이 바뀐 이들이 있었을까.
백광엽 위원의 얘기다.
“그들이 알면서도 끝까지 우기는 것인지, 정말 모르는 것인지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저는 그들이 이미 자신의 오류를 안다고 생각합니다. 경제학계에서 이미 배척된 이론이거든요. 하지만 그들은 이미 권력의 세계로 들어섰습니다. 권력의 본질과 속성은 권력을 끝까지 유지하는 겁니다. 정치적으로 권력이라는 것이 결국 표(票)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그들은 어떤 경제 정책이 득표(得票)에 유리할까를 따진 겁니다.”
― 변형윤 교수가 살아생전에 스탠스를 바꾸었다면요?
“학문적 소신인지 모르겠지만, 마지막까지 고집스러웠던 점은 좀 안타깝습니다. 제가 평가하기는 좀 그렇고요. 레닌이 죽었을 때 처칠이 ‘혁명으로 망가진 소련을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는 유일한 사 람이 죽었다’는 말을 했던 것에 비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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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정부·노무현 정부의 실세였던 이정우 전 청와대 실장(왼쪽부터), 강철규 전 공정거래위원장, 김태동 전 경제수석비서관도 학현학파에 속한다. 사진=조선DB |
“사라진 줄 알았던 선동의 진보경제학은 불과 10여 년 만에 좀비처럼 부활했습니다. ‘불평등’이라는 막강 신무기를 장착한 덕분입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국면에서 드러난 무질서, 탐욕이라는 자본의 어둠이 부활의 자양분이 됐습니다. 2011년에는 ‘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대 횃불이 타오르면서 ‘1% 대 99%’의 새로운 전선이 형성됩니다.”
― 숨이 끊어지지를 않네요.
“노무현 정부의 실패로 허상이 드러나 숨이 간당간당하던 한국 진보경제학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강자(强者) 독식이 불평등의 원인이라며 질투와 분노를 부추기는 ‘헬조선 전략’으로 내달렸습니다. 선전전이 타오를 때 터진 초유의 대통령 탄핵 사태는 진보경제학 전면 채택을 앞세운 문재인 정부 출범으로 이어졌습니다.”
― 반성은커녕, 다른 캐치프레이즈로 무장했네요.
“한미 FTA 반대운동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성명에 이름을 올린 경제학자들은 집단행동을 본격화했습니다. 거의 모든 경제 이슈에 한목소리를 내며 여론을 주도하는 모습이 뚜렷해졌습니다.”
“학현 아니면 청와대 전화 기다리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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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소득주도성장의 창안자로 알려진 홍장표 전 청와대 경제수석(왼쪽부터), 김상조 전 공정거래위원장, 김상곤 전 사회부총리도 범학현학파다. 사진=조선DB |
소득주도성장(이하 소주성)의 창안자로 알려진 홍장표 부경대 교수는 초대 경제수석에 임명됐고, 이후 소주성 실패로 경질된 이후에도 ‘국내 최고의 싱크탱크’인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에 임명됐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도 학현 멤버 김흥종이 맡았다. 공정거래위원장을 거쳐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김상조, 초대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을 지낸 김상곤 교수도 범학현그룹이다. 장지상(張志祥) 산업연구원 원장, 주상영(朱尙榮)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원승연(元承淵) 금융감독원 부원장, 박복영(朴馥永) 대통령 경제보좌관 등 문 정부 경제 라인은 학현으로 차고 넘쳤다.
학현끼리 바통 터치하듯 자리를 주고받는 이례적인 인사도 다반사였다. 이제민(李濟民) 연세대 교수와 이근(李根) 서울대 교수는 대통령 직속기구인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 자리를 2021년 1월에 넘겨받았다. 문 정부의 마지막 국민경제자문회의 4개 분과 중 3개 분과장이 학현 출신이었다. 2020년 12월 통계청장 자리를 교대한 강신욱(姜信昱) 교수와 류근관(柳根寬) 교수도 모두 학현 학자들이었다. 이런 싹쓸이로 학현은 문 정부 5년간 경제 현안을 좌지우지했다.
상식과 합리에서 벗어난 딴지
― 좌파진보경제학자는 노무현 정부의 한미 FTA 때 처음 현실 정치 영역에 나타난 것 아닌가요.
“K-진보경제학은 유구한 반대의 역사를 자랑합니다. ‘한강의 기적’의 출발점인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때부터 상식과 합리에서 벗어난 딴지가 시작됐습니다. 김문수(金文洙)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은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김문수 위원장의 증언이다.
“서울대 상과대에서 변형윤 교수 등의 가르침과 지도로 고속도로 건설 반대, 창원 중화학공업단지 반대를 많이 했다. 자동차 공장도 안 된다고 했다. 기술 종속, 자본 종속, 시장 종속, 결국은 종속 국가로 떨어진다는 설명을 들으면 명쾌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그때 포철(현재 포스코)도 안 만들고 중화학 공단 안 만들었다면 현재 어떻게 됐을까. 지나고 보니 박정희 대통령이 맞았다. 당대의 경제학자도 틀렸고, 그 제자인 저도 잘못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는 “1976년에 복학하니 변형윤 교수가 한국경제론 강의에서 중화학공업화로 한국 경제가 망하게 됐다며 탄식을 거듭했다”고 증언했다.
‘닥치고 분배’
한국 경제는 1963~97년 외환위기 직전까지 연평균 9.1%의 수직 성장을 이뤘다.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어려운 기록이다. 하지만 변형윤 교수는 “균형 발전이 안 됐다”며 박정희 정부의 경제계획은 실패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변 교수는 70세 때 발표한 〈계획시대의 교훈〉이라는 글에서도 “공업화는 경제 개발의 수단이고 경제 개발이 목적인데 박정희 시대는 공업화를 목적으로 착각했다. 1차 5개년 계획은 5·16쿠데타 합리화 수단의 하나였고, 2~4차는 장기 집권 합리화 수단이었다”고 단정했다.
― 경제학계의 주류가 아님에도 이들이 승승장구하는 이유는 뭡니까.
“학현학파는 점점 세를 불려 왔습니다. 흠잡을 데 없는 슬로건인 ‘분배 개선’을 앞세워 진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경제 정책 라인을 싹쓸이했습니다. 학현의 분배경제학은 ‘부(富)를 공유하자’는 식(式)의 분배지상주의에 가깝습니다. 진보 정치와 연계한 ‘닥치고 분배’ 정책으로 한국 경제에 큰 주름을 지우는 양상입니다.”
― 이번에는 분배라는 키워드를 점령했군요.
“진보좌파경제학은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학’을 표방하지만, 결과를 보면 ‘인간의 가면을 쓴 경제학’이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좌파경제학이 득세할 때 서민은 예외 없이 고용참사와 극심한 양극화에 시달렸습니다. ‘서민을 도와야 한다’며 풀어 제친 유동성 때문에 보유자산 가격이 치솟아서입니다. 오히려 부자들은 표정관리 상태입니다.”
― 좌파경제학자들은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건가요.
“학현학자들은 실패가 확실함에도 반성에 인색합니다. 통계를 호도하며 실패를 부정하는 데 더 열중합니다. 통계 분식도 다반사입니다. 2018년 8월에 취임 1년도 안 된 황수경(黃秀慶) 통계청장이 갑자기 경질됐습니다. 하위 20%의 소득이 줄고, 상위 20%의 소득이 많이 증가해 2008년 이래 소득분배지표가 가장 나빠졌다는 보도자료 발표 직후였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간판인 ‘소주성’의 허상이 드러난 통계였습니다.”
“경제학을 도덕적 관점에서 재단”
백광엽 위원의 조사로는 학현학자들이 자주 인용하는 구절은 ‘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마음’ 그리고 ‘인간 중심의 경제학’이다. 모두 영국 신고전학파 경제학자인 앨프리드 마셜(Alfred Marshall)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백 위원은 지적한다.
“‘따뜻한 마음’은 분배 우선으로 이해되지만, 사실 이는 오독(誤讀)입니다. 마셜은 분배보다 성장을 중시했습니다. 마셜 사상의 백미(白眉)는 오히려 시장 자유를 통한 성장의 강조입니다. 그는 번영의 원천은 정부가 아니라 시장, 즉 자본가와 기업가라고 강조했습니다. 진보경제학은 자신들의 정책이 실패해도 ‘선의(善意)가 있고 정의롭기 때문에 우리의 길이 옳다’고 합리화합니다. 우리는 좋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 정책이 나쁠 수 없다는 기적의 논리입니다. 한국 진보경제학자들은 경제학을 도덕적 관점으로 재단하려 합니다. 국부(國富) 증대 방안과 후대를 걱정하는 동료 학자들의 고민을 ‘부자 감세(減稅)’와 ‘반(反) 서민적’이라고 단정하고 모욕적 언사로 비판합니다. ‘인간 중심의 경제학’을 앞세워 경제학을 어설픈 복지학이나 윤리학으로 오판(誤判)합니다.”
― 경제를 복지, 윤리학으로 여긴다는 건 참 끔찍한 얘기네요.
“진보경제학은 자신을 분배경제학, 평등경제학으로 명명(命名)합니다. 실제로 이들의 경제학은 ‘질투의 경제학’일 뿐입니다. 폭발하는 평등 욕구를 합리적으로 없애는 방안을 고민하기보다 질투를 부추겨 정치적 이득을 얻는 데만 골몰합니다. 경제개발이 시작된 이래 60여 년 동안 한국의 양극화는 꾸준히 개선돼왔는데, 사실관계를 왜곡해가며 필요 이상으로 분노를 부추기는 게 진보경제학의 상투적 수법입니다.”
“경제민주화는 그들의 단골 메뉴”
― 적어도 학자로서의 양심이 있다면 그럴 수 없는 것 아닙니까.
“한국 진보좌파가 애용해온 영업 비밀은 ‘왜곡’과 ‘선동’입니다. 선동과 왜곡의 중심에는 높은 확률로 학현그룹이 목격됩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선동이 국정 전반을 오염시켰습니다. 엄정한 데이터에 기초해야 할 경제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였죠. 진보경제학자들은 사실을 수용하기보다 선택합니다. 사실이 가리키는 대로 탐구하지 않고, 참으로 용감하게도 사실을 재단하려고 덤빕니다. 끝없이 핑계를 만들어가며, 자신들의 이론에 궤를 맞춥니다. 그들은 ‘선한 의지를 가진 우리의 이론과 해법이 옳다’며 끊임없이 자기 최면을 겁니다.”
― 문재인 정부의 듣지도 보지도 못한 소득주도성장이 왜 나왔나 싶었는데, 뿌리가 너무 깊습니다.
“진보경제학은 착각합니다. 성장이 안 되는 이유는 재벌만 위하는 신(新)자유주의 탓이고, 분배가 안 되는 것도 서민과 중산층은 관심 밖인 신자유주의 탓입니다. 사실과 다릅니다. 신자유주의는 세계 경제의 성장을 저해한 것이 아니라 앞장서서 이끌었다고 보는 것이 상식입니다.”
― 진보경제학은 그럴싸한 단어들을 모두 선점한 모습입니다.
“진보경제학의 단골 메뉴는 경제민주화 또는 경제민주주의입니다. 일반인들은 ‘정치민주화처럼 경제민주화도 좋은 것이 아니냐’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경제민주주의’는 그 기원부터 사회주의 노동운동입니다. 1920년대 독일 사회민주당이 ‘마르크스 이후 가장 뛰어난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라던 루돌프 힐퍼딩(Rudolf Hilferding)의 ‘조직자본주의’를 기초로 정립된 개념입니다. 경제민주화가 미국, 유럽 등 선진 경제권에서 유행하는 시대적 흐름이라는 주장은 근거가 없습니다. 독일, 파키스탄, 베네수엘라 등은 시행착오만 반복하다 지금 모두 폐기했습니다.”
“문재인 때 불평등 극심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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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천동설 손절하기》 책 표지 |
“진보경제학은 사실을 경시하고 왜곡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낙수(落水) 효과 부정입니다. 그런데 ‘대기업과 거래가 많을수록 실적 개선 폭이 크다’는 낙수 연구 입증 연구는 부지기수로 많습니다. 좌파경제학자들의 말과 정반대의 결과입니다. 진보경제학은 대기업을 한국 경제의 공적(公敵)이라고 공격합니다. 하지만 한국 100대 기업의 매출집중도(전체 기업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는 45.6%로 OECD 주요 19개국 중 15위입니다. 자산집중도(전체 기업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OECD 19개국 중에서 15위입니다. 우리 경제가 성장한 배경에는 모두의 공이 있겠지만, 굳이 따져보면 대기업이 세계 일류로 성장한 덕분에 국가 경쟁력, 제조업 경쟁력, 1인당 GDP에서 일본을 앞지른 겁니다.”
― 사실을 완전히 호도하는군요.
“진보경제학이 시장주의 개혁을 비판할 때 남발하는 키워드가 부자 감세입니다. 부자들만 좋은 ‘반서민 정책’을 펼친다 비난하는데 이 또한 선동에 불과합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내내 악화하던 양극화 저지에 성공한 것은 이명박 정부였습니다. 반면 부자 증세와 ‘퍼주기’로 치달은 문재인 정부 때 불평등이 다시 극심해졌습니다.”
― 정확한 수치가 있나요.
“우파정권이 부자만 챙겨 서민·중산층의 삶을 도탄에 빠뜨린다고 진보경제학은 맹공격합니다. 사실무근입니다. 불평등도(지니계수 기준)는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부 때 11%,3%,15%나 개선됐습니다. 시장친화적이었던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2%와 3% 개선됐고요.
정작 분배를 앞세운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 시절에 어김없이 양극화가 깊어졌습니다. DJ 때는 IMF 구제금융기였으니 나름 해명이라도 가능합니다.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불평등은 5% 가량 악화됐습니다. 당시는 ‘골디락스’(견조한 성장세가 지속되는 이상적 상태)라는 신조어가 회자될 정도로 세계 호황을 누렸던 만큼 변명을 찾기도 어렵습니다.
‘퍼주기 끝판왕’ 문재인 정부가 최악입니다. 집권 초기 2년(2018~2019)동안에만 양극화가 6%나 확대됐습니다. 60여년 한국 경제개발사에 유례없이 가파른 속도였지요. 다급해진 문 정부가 허겁지겁 통계를 조작하고 나선 탓에 이후는 정확한 분배데이타 확보조차 어렵습니다. 분배경제학이 저소득층을 더한 빈곤으로 내몰고만 역설이 뚜렷합니다.”
백광엽 위원의 책에 따르면 K-진보경제학자들의 최대 집결지는 한국사회경제학회(이하 한사경)와 한국경제발전학회, 서울사회경제연구소(서경연)이다. 한사경과 한국경제발전학회는 변형윤 교수의 지도로 발족했다. 서경연은 한사경과 한국경제발전학회의 지주회사 같은 역할을 하는 K-진보경제학의 통합 진지 격이다. 변형윤을 좌장으로 10여 년간 활동하던 ‘학현연구실’을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비영리사단법인 형태의 민간연구소로 개편해 1993년에 출범했다. 학현학파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조직으로 회원은 200여 명이다.
문재인 정부의 소주성으로 좌절을 맛본 학현그룹이 요즘 미는 정책은 기본소득이다.
백광엽 위원의 얘기다.
“기본소득제는 실패한 소주성을 부활시키기 위해서 ‘올인 베팅’의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아무리 해도 가계(家計) 소득이 늘지 않으니, 나라에서 돈을 직접 국민 주머니에 꽂아주겠다는 발상입니다. 기본소득은 스위스, 핀란드, 캐나다 등에서 2009년부터 여러 논의와 실험을 거치는 동안 한 번도 성공적 결과를 보여주지 못한 실험적인 정책입니다. 설계방식에서부터 이견이 분분합니다. 이와 함께 토지공개념은 급진개혁의 끝판왕 격인 정책들입니다. 이재명(李在明)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기본소득제 대선공약을 설계하고 총괄한 강남훈(康南勳)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장은 학현 멤버입니다.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 소장은 토지세를 통한 기본소득 실현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학자로 범(汎)학현그룹입니다.”
― 기본소득제 도입이 실행될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까.
“이재명 대표는 지난 대선 선거 운동 때까지 2024년 이후에 1인당 연 100만원의 기본소득 지급을 공약했습니다. 이 방안이 시행되면 한국은 세계 최초로 기본소득제를 도입하는 국가가 됩니다. 세계 최초의 실험을 하겠다는 얼기설기 구상이지만, 진보경제학자들은 ‘일단 작동시켜보자’는 식입니다. 국내외 석학들의 진지한 우려와 물음에 걸맞은 정교한 설명을 내놓아야 할 겁니다.”
이재명의 기본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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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15일,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기본소득 토론회에 참석해 성남 사랑상품권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조선DB |
“2004년 기본소득 지구네트워크 발족을 계기로 기본소득과 토지공개념의 밀착이 시작됐습니다. 부의 공유는 헌법상 사유재산권 보장과 정면 배치됩니다. 토지공개념과 기본소득의 연계는 시계를 과거로 되돌리는 잘못된 만남입니다. 진보경제학자들은 기본소득 재원 조달 방안으로 재정구조개혁, 탄소세 신설과 함께 ‘국토보유세 신설’을 핵심으로 제시합니다. 부동산 불로소득 차단을 위해 1%의 국토보유세를 부과하면 지금이라도 50조원의 재원(財源)을 걷을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국토보유세의 미래는 결과적으로 중국, 북한식 토지국유제로의 이행일 뿐입니다.”
― 자세히 설명을 들으면 섬뜩한 정책들을 마구잡이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기본소득과 토지공개념은 급진 개혁의 끝판왕입니다. 검증되지 않은 개념이 급부상해서 정책으로까지 구체화한 것은 학현학파와 조지스트(헨리 조지의 추종자들)들의 작품입니다.”
― 불평등을 얘기하다가 궁극에는 토지를 손대는 정책으로까지 넘어갔군요.
“근대 이후의 역사는 토지로부터 권력이 분리돼온 기록으로 봐야 합니다. 현대로 가까워져 올수록 권력 기반으로서의 토지의 역할은 줄어듭니다. 유럽의 봉건주의 해체, 고대 한국의 왕토사상 약화도 그랬습니다. 토지공개념과 그에 기초한 개발이익환수론은 토지에 대한 공적 통제를 말합니다. 공공이란 말로 포장했지만, 본질은 공공을 대변하는 정치인과 관료들이 토지자원을 멋대로 사용하는 권리를 확대하자는 것에 불과합니다. 권력을 다시 토지로 결합시키려는 진보경제학의 시도는 역사의 퇴행에 가깝습니다.”
“우파의 언어, 감성·절박함 부족”
― 이쯤 되면 궁금해집니다. 정통 경제학자들은 왜 가만히 있습니까.
“사람들에게 전달될 때 언어로 전달되잖아요. 우파의 언어는 건조하고, 표현이 부족합니다. 시장 경제, 효율성 위주라는 말들이 사실 쉬운 얘기는 아닙니다. 좌파들처럼 ‘가난한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간다’ ‘부자 봐주려고 그러는 거다’라는 언어가 훨씬 쉽죠. 우파의 언어는 감성이 부족합니다. 어찌 보면 절박함이 부족한 듯싶기도 하고요. 하지만 우파 진영에도 전문가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일반 시민에게 더 친절하게 다가갈 수 있는 표현을 찾을 것이라고 봅니다. 좌파경제학자들과의 마지막 대결이 이제 시작됐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