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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중 U–20 월드컵 대표팀 감독

왼쪽 눈 시력 잃은 샤프, MZ 세대를 하나로 묶다

글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woosu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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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대한축구협회
  김은중호가 위대한 여정을 마무리했다. 김은중 감독이 이끄는 20세 이하(U–20) 대표팀이 아르헨티나에서 막을 내린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에서 4위를 달성했다. 비록 4강전과 3~4위전에서 석패(惜敗)했지만, 대회 조별리그 첫 경기부터 보여준 김은중호의 출중한 경기 내용은 박수를 받기에 충분했다.
 
  그들을 하나로 만든 김은중 감독의 리더십도 돋보인다. 개성 강한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04년생)를 원팀으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어떤 단체 스포츠든 스타플레이어의 존재는 중요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끈끈한 조직력이다.
 
  이런 조직력을 만들어내는 건 감독의 역할이다. 김은중 감독의 말이다.
 
  “조별 리그에서 광탈(광속 탈락)할 거란 얘기가 어린 선수들 귀에 들어가는 게 가장 마음 아팠다. 브라질 베이스캠프에서 9일간 세트피스를 집중적으로 연마했는데 그 부분이 주효했다.”
 

  김은중 감독은 선수 시절 이동국 선수와 어깨를 나란히 한 스트라이커였다. 둘은 1998년 10월 청소년대표팀에서 처음 만났다. 그달 카타르에서 열리는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20세 이하)를 앞두고 소집한 자리에서였다. 김은중·이동국 두 선수는 1998년 아시아청소년선수권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겨 ‘영혼의 투톱’이라 불렸다. 둘이 9골(이동국 5골, 김은중 4골)을 합작하며 우승을 일궈냈다.
 
  김은중 감독은 왼쪽 눈 시력을 잃었다. 동북중 3학년 때였다. 경기 중 공에 눈을 정통으로 맞은 뒤 수술을 받았지만, 서서히 시야가 좁아졌고, 1997년 프로축구 대전 입단 때에는 완전히 무용지물이 됐다. 김 감독의 이야기다.
 
  “6학년 때 공에 왼쪽 눈을 맞아 처음 부상을 당했다. 그땐 시력에 문제가 없었다. 그러다 동북중 3학년 때 다시 공에 왼쪽 눈을 얻어맞으면서 시력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수술을 받았지만 1997년 동북고 2학년을 중퇴하고 대전에 입단할 무렵엔, 왼쪽 눈으로 하프라인에서 골대를 볼 수 없을 만큼 악화됐다.”
 
  김은중 감독은 왼쪽 눈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숨겼다. “티 내고 싶지 않았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축구를 못하는 건 실력 부족 때문이지 눈 때문은 아니다. 눈이 동정이나 변명의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실제 김 감독이 시력을 잃은 것은 1997년이었지만 그 사실이 알려진 건 2001년 FA컵 득점왕과 최우수선수상(MVP)을 동시에 거머쥐며 시민구단 대전에 첫 우승 트로피를 안겼을 때였다. 대신 김은중 감독은 훈련으로 눈의 약점을 보완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빠른 센터링을 처리하는 연습에 몰두했다. 그의 노력은 ‘샤프’란 별명을 안겼다. 왼쪽 눈으로 바로 앞 사람의 형체도 구분할 수 없고 하프라인에서 상대편 골문도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송곳 같은 골 결정력을 보여 붙여진 별명이다. K리그를 대표하는 스트라이커로 성장한 김은중 감독은 대전과 서울, 제주 등에서 444경기를 뛰면서 123골 56도움을 올렸다.
 
  한국 축구의 숙제는 U–20 월드컵에서 두각을 보인 이들을 ‘황금세대’로 만드는 것이다. 김은중 감독의 역할도 클 것이다. 황선홍 올림픽대표팀 감독과 김은중 감독은 자주 소통하며 교류하는 사이다. 여기에 위르겐 클린스만 A대표팀 감독 역시 U-20 대표팀 선수를 발탁할 수 있다는 뜻을 시사할 정도로 어린 선수들에게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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