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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최희암 고려용접봉 부회장

“스포츠와 기업, 人材 중요하다는 점에서 결이 같다”

글 :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hy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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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구선수, 연세대 감독, 프로팀 감독을 거쳐 경영인으로 변신
⊙ 농구감독 시절부터 ‘내 자식을 거지로 만들지 마라’ 소신
⊙ ‘非노조원에게는 격려금을 나눠주지 않겠다’는 노조에 “게임 뛰는 애만 밥 먹이냐”
⊙ “얼굴 알아본 고객들, ‘TV에 그렇게 나왔던 사람이 사기 치겠어?’ 생각”

崔熙岩
1955년생. 휘문고, 연세대 체육교육학과 졸업, 연세대 대학원 체육학 석사, 美 연방체육대학원 박사 / 현대건설 근무. 연세대 농구감독, 아시아남자농구선수권대회 한국대표팀 코치, MBC 농구해설위원, 스포츠조선 농구해설위원, 울산모비스 오토몬스 농구감독, 동국대 농구감독, 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 농구감독, 고려용접봉 중국법인 사장 역임. 現 고려용접봉 부회장
  인생 1막은 뜻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중학교 때 꽤 컸던 키는 이후에 많이 자라지 않았고, 또래의 즐비한 경쟁자들이 늘면서 농구선수로서의 꿈은 사라졌다. 현대건설 근무 시절에 우연히 들른 모교는 그의 인생 2막을 열어주었다. 공석(空席)이었던 연세대 감독 대행을 맡게 됐는데 후임이 정해지지 않아 정식 농구감독이 됐다. 1990년대 중반, 서장훈, 이상민, 문경은, 우지원, 김훈이 뛰던 연세대 농구팀은 천하무적이었다. 농구대잔치에서 실업팀을 누르고 세 번 우승했고, 이들이 코트에서 종횡무진으로 활동하도록 만든 그에게는 ‘코트의 마법사’라는 별명이 생겼다. 농구인으로 30여 년을 살던 그는 2009년 말, 프로농구 전자랜드 감독을 끝으로 고려용접봉으로 자리를 옮겼다. 인생 3막이 시작된 것이다. 주인공은 최희암(崔熙岩·67) 고려용접봉 부회장이다.
 
 
  건설에 필요한 기둥 팔러 다니는 부회장
 
  서울 퇴계로 본사에서 만난 최희암 부회장은 사무실 입구에 있는 기둥 설명부터 시작했다.
 
  “건설 현장에 쓰이는 기둥이에요. 옆에 있는 것은 주철근, 겉에 도는 것은 띠 철근(띠처럼 감았다는 뜻)입니다. 우리 회사가 독자적으로 개발해서 2019년에 특허를 받았고, 2020년에는 건설 신(新)기술로 지정된 ‘KSS 공법’이라는 겁니다. 기존의 공법과 비교해 차원이 다른 기술력을 갖춘 제품입니다.”
 
  ― 아파트 같은 곳에 쓰이는 기둥이라는 거지요? 무슨 장점이 있습니까.
 
  “이 기둥을 사용하면 총 공사 비용이 종전보다 23.9% 줄어듭니다. 공사 현장은 늘 위험이 따르기 마련인데 굉장히 안전하고요. 무엇보다 시공이 단순해서 기존 공법보다 시공 시간을 절반 이상 줄일 수 있습니다.”
 
  ― 다 좋은 내용으로 들리는데, 무슨 문제가 있나요.
 
  “우리가 처음 발명했으니까 아직 현장에 적용된 히스토리가 적잖습니까. 클라이언트사를 찾아가서 적극적으로 홍보를 하는데, ‘과연 이것이 그렇게 좋은 것인가’ 의심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우리가 개발한 기둥을 사용하면 전체 공사 비용이 줄어드는 것은 맞지만, 기둥 자체를 사는 비용이 들잖습니까. 전례가 없는 데다 비용이 들어가니까 꺼리는 것 같습니다.”
 

  ― 성능이 입증되면 초기 비용이 좀 들더라도 결국 건설사가 사가지 않을까요.
 
  “획기적인 제품이라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건설사를 찾아서 계속 설득하고 있습니다. 일반 공법을 사용하는 것보다 저희 제품을 사용하면 공사 시간이 절반으로 줄어든다고요. 현장에 오래 사람이 머물면 늘 사고 위험이 있습니다. 10명이 할 일을 2~3명이 할 수 있다면 그만큼 사고 위험이 줄어들지 않겠습니까. 특히 주(週) 52시간제가 정착된 상황에서 저희 제품이 가진 장점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습니다. 특히 공기(工期)가 지연되고 있는 건설사를 찾아 저희 제품을 사용해보라고 하고 있습니다. 아파트 열 개 동(棟) 중에 한 개 동에만 우선 써보라고, 그러고 나서 평가해달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세일즈 다니느라 꽤 바빠요.”
 
  ― 부회장인데 직접 세일즈 다닙니까.
 
  “그거 하려고 앉아 있는 건데요(웃음). 이 공법을 적용한 기둥은 내진(耐震)에 최적화돼 있어서 경북·경남 지역의 건설사의 경우 꼭 사용해보기를 바랍니다. 애초 우리가 신공법을 만든 이유가 경북 지역에 지진이 잦아서였거든요.”
 
  ― 지진 피해를 우려해 개발을 했군요.
 
  “2017년 11월에 포항에서 5.4 규모의 지진이 있었잖습니까. 전년에 경주에서 발생한 지진(규모 5.8)에 이어 역대 두 번째 규모였죠.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경북 지역에 지진이 잦은 것을 보고 회장님(홍민철 회장)이 직접 개발을 지시했습니다. 적어도 우리 땅에서 지진으로 인한 건축물 붕괴는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요. KSS 공법 제품을 건설 현장에 투입하는 게 제 세 번째 미션입니다.”
 
 
  농구팀 전자랜드 구단주의 친형이 스카우트
 
2021년 처음 시행된 제1회 용접의 날 행사에서 고려용접봉 최희암 부회장이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사진=고려용접봉
  고려용접봉은 고려제강에서 용접봉 제조 부문을 분할해 설립한 회사로 용접 재료의 제조, 국내 판매 및 수출이 주 업무다. 부산 사상구에 본사와 제1공장이 있고, 창원에 제2공장을 가동 중인데 2020년 성적은 매출 595억원, 영업이익 33억원이었다. 전(全) 직원은 1000명 정도다. 고려용접봉은 용접 재료를 만들어서 건설, 조선, 자동차 분야에 납품하는데 생산 제품이 2000여 종으로, 국내 업계 2위다. 2009년 회사에 합류한 최희암 부회장은 고려용접봉 중국 다롄 지사장, 경남 창원 공장 사장을 지냈다.
 
  최희암 부회장과 고려용접봉의 인연은 그가 프로농구 전자랜드와의 계약이 만료됐을 때 시작됐다. 전자랜드 구단주가 고려용접봉 홍종열 창업주의 4남인 홍봉철 대표였던 것이다. 홍 대표의 친형인 홍민철 회장은 그에게 중국 다롄 지사장을 제안했다.
 
  ― 농구선수, 감독을 하던 사람이 사기업으로 자리를 옮긴다니 주목을 받았겠습니다.
 
  “홍 회장이 ‘농구팀을 이끈 리더십으로 사람을 관리하고 성과를 냈으면 좋겠다’며 자리를 제안했습니다. 일주일 정도 고민했는데 할 수 있겠더라고요. 농구선수들이 적응력이 뛰어납니다. 회사 업무나 운동이나 반복적인 것은 같고, 잘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보면 되지 싶었습니다. 모르는데 가만히 있는 것이 문제지 물어보는 것은 문제가 아니잖습니까. 회사에 합류해서 처음에는 헤맸는데 오래지 않아 익숙해졌습니다.”
 
 
  “시즌 중 감독 바꿔서 성적 나는 팀 봤어요?”
 
  ‘KSS 공법’의 기둥을 판매하는 것이 세 번째 미션이라는 그에게는 두 번의 고비가 있었다고 한다. 첫 번째 고비는 그가 중국 다롄 지사장으로 있을 때다. 당시 고려용접봉은 STX조선, 중공업, 건설 등에 생산 제품의 30%를 납품하고 있었는데 STX가 부도나면서 대금을 받지 못했다.
 
  “STX 중국 공장과 저희 공장이 한 시간 반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 독점 공급하다시피 했는데 STX가 파산하는 바람에 대금 회수가 불가능했습니다. 저희 피해 규모가 가장 컸고, 한국 50여 개 기업, 중국 기업까지 채권단을 만들어서 STX에 찾아가고, 주 채권단인 산업은행을 찾아가는 등 우여곡절이 컸습니다. 청와대에 가서 시위도 했어요. 제가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어떻게든 수습을 먼저 해야겠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대금은 결국 회수하지 못했다. 중국 공장 생산을 대폭 줄여야 했기에 인원 감축이 이어졌다. 최희암 부회장은 어느 정도 일이 처리되자, 중국에서 홍민철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사의를 표명했다. 잠자코 듣고 있던 홍 회장이 말했다.
 
  “최 사장, 시즌 중에 감독 바꿔서 성적 나는 팀 봤어요?”
 
  최희암 부회장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했다. 그는 중국 고려용접봉의 내실을 다지는 데 매진해 몇 년 뒤에 회사를 정상화시키고 서울로 복귀했다.
 
  그는 창원 제2공장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공장은 정상 가동 중이었고, 최 부회장은 울산, 여수 등 창원 인근의 새로운 거래처 뚫기에 매진했다. 2017년 어느 날, 무(無)노조였던 회사에 현장 직원들이 주축이 돼 노조가 생긴다는 것을 처음 들었다.
 
  “회사 직원들이 자잘한 불만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거래처 뚫는 데 혈안이 됐던 때였습니다. 직원들의 불만을 세밀히 살폈어야 했는데 제 불찰이었죠. ‘내가 너무 대외적인 일에만 치중했나’ 싶은 마음에 괴로웠습니다. 무엇보다 회장님의 충격이 컸죠. 홍 회장은 30년 동안 회사를 경영하면서 배당금을 1원도 가져가지 않은 분입니다. ‘회사가 부자가 돼야 한다’면서요. 홍 회장 본인의 월급을 20년 동안 한 번도 올린 적이 없는 분인데 느닷없이 회사에 노조가 생긴다고 하니 얼마나 충격이 컸겠습니까. 직원들을 누구보다 살뜰히 챙기는 회사라고 자부했기에 많이 놀랐습니다.”
 
  ― 아무래도 친(親)노조 성향의 정권이 들어선 때문이기도 했겠죠.
 
  “시기가 하필이면 그때니까요. 노조를 설득했고, 얘기를 들어보니 회사에 대한 불만보다는 ‘대기업만큼 대우를 해주지 않는다’는 얘기들이 많았습니다. 창원에 대기업 공장이 많다 보니 상대적으로 비교됐던 모양입니다. 대기업처럼 학자금을 줘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는데, 아직도 개인적인 제 철학은 ‘내 자식은 내 월급으로 키워야 한다’는 겁니다.”
 
  ― 자식은 우선 내 책임이라는 거죠.
 
  “인터뷰를 보고 직원들이 섭섭해하지 않을까 싶기는 하지만 제 생각은 변함없습니다. 일을 열심히 해서 생산성을 높이고, 그 생산성을 바탕으로 회사가 커지면 월급을 더 많이 요구하는 것이 맞습니다. 회사에 홍 회장님 사재(私財)를 털어 주는 장학금도 있고, 용접 인재 양성을 위한 기금도 있거든요. 그런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학자금을 달라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농구감독 때부터의 소신입니다.”
 
 
  “내 자식을 거지로 만들지 마라”
 
  ― 감독 시절부터의 소신이라고요?
 
  “운동선수 부모들에게 ‘내 자식을 거지로 만들지 마라’고 늘 말했습니다. 집에서는 운동하는 자식들을 잘 먹여야 한다며, 아버지가 먹는 보약을 아들에게 줍니다. 학교에서는 운동하는 친구라며 수업을 좀 소홀히 해도 특혜를 주고, 또 스카우트가 되면 돈을 받습니다. 그러다 보면 선수들은 유아독존(唯我獨尊)이 됩니다. 우리 집 구성원은 나를 위해 희생하는 사람들이고, 회사는 나를 좀 특별하게 봐주는 곳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선수들 데리고 원정을 다닐 때 보면 휴게소에 내려서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 먹는 친구가 없습니다.”
 
  ― 돈이 없어서는 아닐 테고요.
 
  “사 먹는 법을 몰라요. 코치가 사주면 그제야 ‘고맙습니다’ 하고 받습니다. 어릴 때부터 운동만 했고, 주위에서 떠받들어줘서 남에 대한 배려가 없습니다. 저는 감독 시절부터 그 부분을 부모들에게 누누이 얘기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해주지 마라’ ‘남이 나를 위해 존재한다는 의식을 심어주면 안 된다’고요. 세상은 나를 위해 돌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 자식 키우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자식 육아, 보육, 교육의 책임은 회사가 아니라 부모에게 있는 겁니다. 나라에서 젊은이들에게 퍼주기식 복지를 펴는 것도 저는 반대합니다. 아이들에게 ‘거지 근성’을 가르쳐서는 안 됩니다.”
 
 
  좋은 선수를 스카우트하는 방법
 
  최희암 부회장은 연세대 선수들이 청소년 대표로 뽑혀서 해외 원정 경기를 갈 때 그들에게 200~300달러를 쥐여주면서 딱 두 가지를 요청했다고 한다. 수업을 많이 빠지니까 조교들에게 선물할 볼펜 사 올 것, 해외에서 후배들에게 빵 사줄 것이었단다.
 
  “선수들한테 ‘내 선물 사 올 생각하지 말고 딱 두 개만 약속해라’ 하고 돈 쥐여 보냈습니다.”
 
  ― 이유가 뭔가요.
 
  “조교들에게는 당연한 인사를 하는 것이고, 후배들에게 잘해주면 걔들이 선배를 따라 학교로 오거든요. 대학감독들은 좋은 고등학교 선수를 스카우트하려고, 일일이 따라다니고 그들 부모를 설득합니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효과적인 방법이 선배가 후배에게 빵 사주는 겁니다. ‘이 형이 나를 무지 좋아하나 보다’ 하고 후배들이 저절로 학교로 옵니다. 그 나이에는 돈을 아무리 많이 줘도, 부모들이 설득해도 말을 잘 듣지 않아요. 친구 따라 강남 가는 것처럼 형 따라서 연대 농구부로 오는 겁니다(웃음).”
 

  ― 창원 공장 사장 시절에 노조랑 얘기할 때도 감독 시절을 빗대어 말씀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면 이해를 빨리하니까요. 한 번은 공장 직원들에게 생산 격려금이 나왔는데 노조가 나서서 ‘비(非)노조원에게는 격려금을 나눠주지 않겠다’는 겁니다. 그때 제가 화를 버럭 냈습니다. ‘내가 감독 출신인데 그럼 운동 못하는 애들은 밥 안 먹이고, 게임 뛰는 애만 밥 먹이냐’고요. 노조 지부장이 오히려 노조원들을 설득했습니다.”
 
  그렇게 노조와 매사에 대화를 거듭한 끝에 고려용접봉 노조는 전환배치를 받아들였고, 노조 설립 이후 여태까지 한 번도 파업을 하지 않고 있다.
 
 
  “리더십은 결국 인간관계”
 
농구팀 전자랜드 감독 시절의 최희암 부회장. 사진=뉴시스
  최희암 부회장은 “리더십은 결국 인간관계”라면서 “기본적으로 상대를 인정해줘야 나도 인정받는다”고 말했다.
 
  “동국대 농구부 감독을 맡았을 때였습니다. 동국대에 들어오는 선수들의 기량이 연세대 선수보다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연세대는 1등을 하고, 동국대는 하위권에 머물렀느냐 하면 농구선수 선후배끼리 존중을 하지 않아서였습니다. 서로 자신이 최고인 양 여기면서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더군요.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고, 상대를 인정해야 나도 존중받는데 그래서야 됩니까. 서로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고 제대로 훈련시켰더니, 그해에 처음으로 준우승을 했습니다.”
 
  ― 스포츠 업계에서 통하는 일이 기업에서도 통했습니까.
 
  “스포츠나 기업이나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인재(人材)가 들어와야 하고, 그 인재들이 마음껏 기량을 펼칠 수 있게 해줘야 하고, 그를 바탕으로 좋은 제품을 만들어 시장에서 인정받아야 합니다. 감독이든, 높은 자리에 있든 기본적으로 본받을 만한 사람이어야 후배들, 직원들이 따라옵니다. 제 스스로 ‘내가 도움이 되는 상사(上司)인가’를 늘 생각합니다.”
 
  ― 농구감독 경험이 회사의 고위직 업무를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되던가요.
 
  “냉대를 받더라도 끈기를 가지는 법이 도움이 됩니다. 내일도 KSS 공법으로 만들어진 우리 신제품을 홍보하러 부산에 갑니다. 세상에 처음 나온 제품이라서 어리둥절하는 사람들 중에 제 얼굴을 알아보고는 ‘설마 예전에 TV에 그렇게 나왔던 사람이 사기를 치겠어?’라는 식(式)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건 확실히 감독 덕을 봤네요(웃음).”
 
  ― 영업하기 힘들지 않습니까.
 
  “고려용접봉에 합류한 후로 줄곧 영업을 해왔습니다. 중국 지사에서도, 창원 공장에 근무할 때도 그랬습니다. 문전박대를 당한 적도 있지만 이제는 거래처 문턱이 닳도록 넘나드는 것이 익숙합니다. 사실 회사 업무에서 영업은 꽃이거든요. 제가 몇 년 전까지 즐겨했던 건배사도 ‘영업은 꽃이다’였습니다. 영업만 중요한 것은 아니고, 생산은 뿌리에 해당되죠. 하지만 어느 회사든 영업이 중요하고, 가장 화려하게 꽃 피워야 하는 부서는 맞지 않습니까.”
 
 
  꿈을 향해 한 걸음 내디딘 인생
 
  ― 농구인 최희암, 기업인 최희암은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아무래도 농구인 최희암은 워낙 어린 나이에 선수단을 이끌면서 큰 성과를 거뒀기 때문에 건방졌던 부분이 분명 있었을 것 같고요(웃음). 회사에 몸담은 사람으로서는 좀 더 관대해지고 겸허해졌죠. 제가 모르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주변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인터뷰 내내 학생을 가르치듯 차근차근 설명하고 온화한 표정을 지었던 최희암 부회장은 요즘과 같은 ‘인생 2모작 시대’에 최상의 ‘롤모델’이 분명하다. 농구선수, 현대건설 직원, 연세대 감독, 프로농구 감독, 사기업 부회장을 맡고 있는 그가 더 이뤄낼 일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인생 2모작을 어떻게 완벽하게 준비했느냐는 질문을 종종 듣습니다. 제가 의도했던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떤 답을 해야 하나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저는 늘 꿈을 향해 한 걸음 내디디는 인생을 살지 않았나 싶습니다. 농구선수였을 때는 제가 남들보다 뛰어난 선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남들과 다른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수 때 미국 코치에게 배운 것을 일일이 메모해 오랫동안 갖고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최고의 선수’는 아니지만, 언젠가 ‘최고의 감독’을 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꿈이 있었으니까요. 세간에서 최고의 감독이라고 칭했을 때는 평소에 프로구단을 열심히 분석해 보고서를 만들었고요. 그 보고서가 고려용접봉과의 인연을 맺어줬습니다. 그냥 현실에 안주하는 것보다 무언가 꿈을 향해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 비결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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