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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의 세계

루빅스 큐브 세계 랭킹 2위 남승혁 선수

“게임에 빠진 자녀의 손에 큐브를 쥐여주세요”

글 :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hy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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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기심으로 시작… 중3 자퇴하고 ‘스피드 큐브’ 선수의 길로
⊙ 3X3X3 최고 기록 4.86초, 세계 랭킹 2위(2017년 국제대회)
⊙ “큐브의 저변 확대 위해 노력할 것”
  탁! 탁! 탁!
 
  색이 뒤섞인 루빅스 큐브의 색깔을 가지런히 맞추는 데 걸린 시간은 5.9초. 경기장 안에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와!’ 하는 탄성이 쏟아졌다. 지난 10월 29~30일 전남 곡성의 섬진강 기차마을에서 열린 ‘큐브대회’ 3×3×3 부문의 우승자는 예상대로 스물한 살의 청년이었다. 대다수의 사람은 장난감 같은 루빅스 큐브를 갖고 하는 세계 경기가 있다는 것, 또 미국과 호주 등 서양인들이 주류인 곳에서 한국 청년이 최상위권 기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이제 막 소년의 티를 벗은 스물한 살의 청년은 마니아층이 확실한 루빅스 큐브계에서는 BTS 버금가는 아이돌 같은 존재다. 루빅스 큐브에 푹 빠진 마니아들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그의 손재주를 보기 위해 먼 걸음을 마다하지 않는다. 아시아 최고 기록, 세계 랭킹 2위 기록 보유자인 2001년생 남승혁 선수가 주인공이다.
 
 
  5×5×5 세계 랭킹 2위
  (2019년 국제대회)

 
피라밍크스, 3x3, 2x2, 5x5, 4x4 큐브들.
  2004년에 만들어진 세계큐브협회(World Cube Association·WCA)는 ‘트위스티 퍼즐’로 알려진 조각 그룹을 비틀어 맞추는 퍼즐 대회를 관리하는 국제협회다. 큐브는 헝가리의 루빅 교수가 발명한 데서 이름을 따 ‘루빅스 큐브’라고 한다. 140여 개국 10만 명이 넘는 사람이 WCA에서 주관한 경기에 참가해 경기한다. WCA는 2년마다 세계 선수권 대회를 개최해왔는데, 이사회·대의원까지 전적으로 자원 봉사자들에 의해 운영된다. 미국·영국·호주·인도 등 서양권에서 인기가 높다. 지난 10월 29~30일에 곡성에서 개최한 대회는 WCA가 인증하는 대회였고, 11월에만 미국·호주·핀란드·이탈리아·뉴질랜드·체코 등 세계 각지에서 경기가 열릴 예정이다.
 
  ‘루빅스 큐브로 무슨 국제 경기를 할까’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루빅스 큐브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는데, 면의 개수에 따라 2×2×2, 3×3×3, 5×5×5, 6×6×6, 7×7×7, 3×3×3 눈 가리고 맞추기, 한 손으로 큐브 맞추기, 피라미드형 큐브 맞추기 등 다양한 종목이 있다. 11월 7일을 기준으로, 3×3×3 큐브 세계 랭킹 1위는 유셍두(중국·3.47초), 2×2×2 큐브는 마시에즈 카피에스키(폴란드·0.49초), 4×4×4는 맥스 박(미국·16.79초), 3×3×3 눈 가리고 맞추기는 타미 체리(미국·14.51초)다.
 
  남승혁 선수는 여태까지 총 40번의 WCA 대회에 참가해 136번 입상했다. 그는 2017년에 열린 월드 루빅스 큐브 챔피언십 대회에서 3×3×3(평균 7.02초)과 5×5×5(평균 49.51초) 부문 세계 2위, 2019년에 열린 WCA 월드챔피언십에서 5×5×5(평균 44.78초) 세계 2위, 4×4×4(평균 23.57초), 7×7×7(평균 2분11.64초) 부문 세계 3위를 기록했다.
 
  큐브대회에서 전대미문의 기록을 가진 이는 호주 출신의 펠릭스 젬덱스다. 펠릭스는 한 대회에서 엄청난 기록을 세웠는데, 코너 조각이 하나 돌아가서 실격 처리가 됐다. 그 여파로 조각이 돌아간 큐브를 만든 회사는 그 큐브를 단종시켰다. 남승혁 선수는 펠릭스를 이어 세계 신기록을 갈아치울 미래의 큐버(Cuber)로 주목을 받고 있다.
 
 
  몇 수 앞을 보는 바둑과 비슷
 
  ― 큐브를 맞추는 룰이 있습니까.
 
  “규칙대로 맞추는 기록경기입니다. 초급, 중급, 고급으로 나뉘는데, 저는 고급 기술을 쓰니까 한 자릿수 단위의 기록을 갖고 있어요.”
 
  ― 뒤섞인 큐브를 하나로 나란히 맞추는 것만 해도 어려워 보이는데, 혹시 I.Q가 얼마인가요.
 
  “I.Q 테스트는 안 해봤어요(웃음). ‘머리가 좋으냐’는 질문을 많이 듣는데, 그냥 공식대로 맞춰요. I.Q가 높은 것 같진 않습니다(웃음).”
 

  ― 룰을 다 외우려면 힘들겠죠.
 
  “몇 초 만에 큐브를 돌릴 때 돌리면서 다른 조각을 보고, 그다음에 어떤 조각이 나오는지 그걸 또 어떻게 맞춰야 하는지를 생각합니다. 공간 지각 능력이 가장 중요하고 암기력도 있어야 합니다.”
 
  ― 바둑의 기보와 비슷하게 들리네요. 큐브를 돌리면서 어긋나면 또 다음에 어떤 것이 나오는지 예측한다는 거죠.
 
  “큐브를 끊임없이 돌리면서 색을 다 맞춰야 하니까 무슨 색이 다음번에 나오는지 예상해야 합니다. 바둑과 비슷합니다. 바둑으로 치면 3수 앞, 잘될 때는 5수 앞 정도를 보는 것 같습니다.”
 
  ― 사람들이 큐버라고 부르던데, 큐버가 직업인가요.
 
  “제 기준에서는 직업이죠. 큐브를 잘 만드는 회사들이 대부분 중국 회사인데 중국의 GANCUBE라는 회사, 미국에서 큐브 숍을 크게 하고 있는 Cubicle이라는 회사에서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새로 나온 제품과 세계 대회에 나갈 때 교통비 등 금전적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큐브 말고 하는 것이 없으니까 직업입니다.”
 
  ― 결국 큐브는 빨리 맞추는 스피드 경기인데 하루에 몇 시간이나 연습하나요.
 
  “온종일 할 때도 있어요(웃음). 요즘은 직업병인지 손목이 좋지 않아서 한 시간 하면 몇십 분 쉬고 체력을 안배합니다. 하루 평균 5시간 정도 큐브를 돌립니다.”
 
 
  자퇴하겠다던 그를 무조건 지지한 부모
 
  남승혁 선수가 큐브를 처음 접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집에서 굴러다니던 큐브를 보면서부터다. 이걸 맞추겠다는 단순한 생각이 발전해 포털사이트 블로그를 뒤지며 삼촌과 같이 맞췄단다. 처음에는 색깔을 통일시켜 맞추는 것이 목표였는데 관심이 있어 파다 보니 ‘스피드 큐빙’을 알게 됐고 그 이후로 기록 싸움에 관심을 갖게 됐다.
 
  남승혁 선수는 “처음에는 재미 삼아 했는데 이렇게 오래 할지는 몰랐다”며 웃었다. 큐브 맞추기에 열을 다하다가 한동안은 ‘유희왕’이라는 게임에 빠져 큐브는 한편으로 빼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큐브에 다시 관심을 갖게 됐고, 자신이 ‘스피드 큐빙’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큐브 맞추는 데 대한 관심은 계속 커져갔고, 결국 부산부흥중학교 3학년 때 학교를 자퇴했다.
 
  “고등학교에 가면 야간 자율학습 등 큐브 맞추기에 시간을 쏟기 어려울 것 같아서 부모님을 설득해 학교를 그만뒀습니다. 학교에서 시간 뺏기는 게 싫었을 뿐, 학업은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해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큐브에 푹 빠진 외동아들의 결정을 부모는 반대하지 않았다. 남승혁 선수의 부모는 “네가 재미를 느끼고, 재능이 있다면 그 길로 가보자”며 오히려 그를 응원했다.
 
  그렇게 남승혁 선수는 학교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스피드 큐빙’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관심이 많고, 잘하는 것은 알았지만, 그의 실력이 세계 무대에서 통할 것이라는 확신은 없었다. 대학 진학도 하지 않았다. 남승혁 선수는 “굳이 대학에 진학할 필요를 못 느꼈다. 시간을 뺏기고 싶지 않아 큐브에 매진했다”고 했다.
 
 
  “저 한국 사람은 대체 누구냐”
 
2017년 월드챔피언십
Mats Valk, 남승혁, Kevin Hays.
  학교를 자퇴하고 난 뒤인 2017년 4월, 그는 세계 무대에서 ‘남승혁’이라는 이름을 각인시키기 시작했다. 아시안챔피언십 대회에 출전해 아시아 신기록을 깼고, 이어 열린 세계 대회에서 세계 랭킹 3위가 됐다.
 
  세계 대회에서 유명한 큐버들과 만나는 것만으로도 그의 마음은 설렜다. 사실 그는 그해에 세계 대회 우승을 할 뻔했다. 그런데 경기 중에 타이머가 원래대로 리셋되면서 그의 기록은 공식 기록이 되지 못했고, 결국 2위가 됐다. 오히려 이는 그에게 유명세를 안겨줬다. 세계적인 선수들이 ‘저 한국 사람은 대체 누구냐’며 그에게 관심을 보였다.
 
  이후 중국, 미국 등 10여 개의 세계 대회에 나가 그는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세계 기록을 잇달아 세웠다.
 
  ― 세계적인 선수가 될 거라고 예상했습니까.
 
  “전혀요. 확신은 없었어요. 그냥 열심히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큐브가 좋았고, 부모님이 많이 응원해주셨습니다. 큐브는 멘털 싸움입니다. 손으로 빠르게 돌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인드가 중요해요. 주위에 저를 믿고 지지해주는 분들이 있으니까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큐브 맞추기 전에 긴장감이 팽팽하던데, 기분이 어떤가요.
 
  “솔직히 긴장돼요. 손이 따뜻해야 하는데 차가워지기도 해요. 그래서 손 난로를 준비해 따뜻하게 하고요, 돌릴 때는 차분하게 하려고 합니다. 제가 흥분하면 큐브가 걸리니까요.”
 
  ― 0.1초라도 빨리 맞춰야 하는 거죠.
 
  “네. 큐브는 기록경기니까 무조건 빨리 맞추는 사람이 이기죠.”
 
  ― 오타쿠의 세계, 마니아의 세계라는 느낌이 있어요.
 
  “우리나라는 큐브 문화가 발전이 되지 않았고 아직은 ‘그들만의 리그’ 같은 느낌이 있어요. 그런데 미국, 호주 등 외국은 굉장히 활성화된 경기거든요. 제가 호주의 펠릭스 선수를 좋아하는데, 그 친구는 늘 경쟁자들을 격려하고 경쟁자가 자기보다 잘하면 축하해줍니다. 이것도 경기다 보니까 사람들이 기분이 상하고, 팽팽한 긴장감이 있는데 펠릭스는 늘 선의의 경쟁을 벌이더라고요. 성실하게 연습하고요. 그런 모습이 멋있어서,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을 했어요.”
 
  남승혁 선수의 루빅스 큐브 비공식 기록은 2.98초. 공식 최고 기록은 4.86초다. 남승혁 선수는 이 세계에서 1.5세대, 2세대쯤이라고 한다.
 
  “아직은 국제대회에 나가니까 큐브 실력을 늘리고 싶고, 나중에는 큐브 맞추기 강의를 하고 저변 확대를 하고 싶습니다. 나이 들면 육체적으로 힘들어서 선수로 뛰기는 좀 어렵거든요. 큐브 맞추기가 굉장히 건전한 게임이에요. 우리나라도 외국처럼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게 노력하고 싶습니다.”
 
  ― 젊은 친구가 나이를 운운하니까 좀 그러네요. 몇 세까지 경기에 출전할 수 있나요.
 
  “20대 후반, 체력을 잘 관리하면 30대 초반까지도 출전할 수 있습니다. 큐버가 직업이 돼서 돈을 많이 벌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그보다는 아직 불모지인 우리나라에서 프런티어의 역할, 큐브를 즐기는 사람이 많아지는 데 노력하고 싶습니다.”
 
 
  “색깔이 섞인 것을 두고 보지 못해”
 
2019년 월드챔피언십
Leo Borromeo, 남승혁, Max Park, Kevin Hays.
  세계 대회를 오가며 기록을 쌓아온 남승혁 선수에게도 코로나19는 위기였다. 국제대회가 연이어 취소됐던 터라 1급 현역 판정을 받은 그는 서둘러 공군에 입대했다. 공군 소속 성남 비행단에서 군견 관리병으로 군 복무를 마쳤다.
 
  “군견 관리병이었는데 군견에게 손도 물리고, 꿰매고 그랬어요. 밤, 낮, 새벽에 근무하는 일이 많아서 큐브 연습을 거의 못 했고 2년의 공백기가 있었습니다. 기록이 뒤처지지 않을까 걱정이 돼 더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 큐브 맞추기의 어떤 점이 그렇게 좋나요.
 
  “맞추는 쾌감이 있습니다. 기록 싸움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성취감이 대단해요. 제 기록을 스스로 깰 때 기분이 정말 좋아요. 부산 출신이라 친구들을 자주 만날 수는 없는데 큐브 하는 사람들 만나서 서로 공식 얘기하면서 모임을 합니다. 정말 건전한 모임이죠(웃음). 진짜, 큐브의 매력이 많거든요.”
 

  ― 마니아가 많은 건 인정하겠는데, 섣불리 누구나 도전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아니에요. 진짜 제가 장담하는데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모르는 분들은 ‘큐브는 내가 못 맞춘다’고 생각하고 애당초 시도를 하지 않습니다. 진입 장벽이 높지만 누구나 맞출 수 있습니다. 요즘 게임에 푹 빠진 아이들이 많아서 부모님들이 걱정하잖아요. 저는 아이들에게 큐브를 한 번 손에 쥐여주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휴대폰 게임보다 쉽고, 머리를 쓰는 거니까 이만한 취미 생활이 없거든요.”
 
  ― 하긴 스타크래프트 같은 게임도 과거에는 그냥 게임이었는데, 요즘은 e스포츠라고 산업군이 됐죠.
 
  “큐브도 그렇게 됐으면 좋겠어요. 저희 같은 큐브 하는 사람들은 색깔이 섞인 것을 그냥 두고 보지 못해요. 마음이 불편해서 바로 맞춰야 해요(웃음). 머리를 많이 써야 하고 공간 지각 능력도 올라가니까, 다들 한 번쯤 도전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세계 1위 되기 위해 노력할 것”
 
2019년 월드챔피언십 4x4 부문에서 3등을 한 남승혁.
  초등학교 때 수학을 좋아했다는 그는 ‘공부 머리는 없어서’라는 말을 자주 했지만, 그의 말은 논리적이고 설득력이 있었다. 인터뷰를 하는 와중에도 그에게 사인을 받고, 사진을 같이 찍자는 아이들이 줄을 이었다.
 
  ― 국제대회에 나가면 이제 남승혁 선수를 알아보죠?
 
  “2017년에 월드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을 했을 때 태극기를 흔들었어요. 제가 국가대표는 아니지만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대한민국에도 이런 엄청난 실력자가 있다’는 것을 보여줬잖아요.”
 
  ― 어찌 보면 마니아들 세계에서 국위 선양을 하는 거예요.
 
  “크지는 않지만, 상금이 걸리는 국제대회니까요. 아직은 돈보다는 명예가 좋습니다. 큐브 부문에 대한민국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습니다. 선수 생활을 얼마나 이어갈지 모르겠고, 군대에 있는 2년 동안 불안했습니다. 그런데 2022년 대회에서 아시아 신기록을 다시 깨고, 세계 3위가 돼서 그래도 아직 충분히 경쟁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 세계 랭킹 1위의 꿈, 아직 있죠?
 
  “1등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노력할 겁니다. 무엇보다 큐브의 저변 확대, 교육을 위해 힘쓸 겁니다. 포털사이트에 ‘큐브 맞추는 법’ 치면 다 나오니까 도전해보세요. 좋은 취미가 될 겁니다.”
 
  인터뷰를 마친 남승혁 선수가 악수를 건넸다. 아기 손처럼 보드라운 청년의 손에서 세계 기록이 나온다는 것이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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