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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자 박진우 교수가 말하는 ‘대학교육이 황폐해진 이유’

“기본기 없이 ‘손흥민 킥’만 가르치는 대학교육”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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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기 등한시 교육… 외우지 않으니 수업을 들어도 소용없어

⊙ “대학 수능의 선택과목 문제로 요즘 대학생들의 기본적인 교양 수준은 30년 전보다 훨씬 열악한 상태”
⊙ 교양과목 대개 組별 발표 수업… “머릿속에 아무것도 안 남아”
⊙ PPT式 3~4줄 요약문 수업… 학생들 긴 글 외면, 문해력 떨어져

朴眞佑
1972년생. 서울대 법학과, 同 대학원 졸업, 법학박사 / 법제처 법령심사자문위원, 7급 공무원 면접위원, 7급 공무원 헌법출제위원, 5급 행정고시 면접위원 역임. 現 가천대 교수 / 한국공법학회 신진학술상 수상
  ‘나뭇잎 한 장이 눈을 가리면 태산(泰山)을 보지 못하고, 콩 두 알이 귀를 막으면 천둥소리를 듣지 못한다.’
 
  중국 초(楚)나라 사람 갈관자(鶡冠子)의 말이다. 우리 교육이 궁극적으로 가야 할 길이 ‘태산’이라면 높고 가파른 저 산을 제대로 오르고 있을까.
 
  우리나라 청소년, 대학생의 문해력(文解力)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원격수업이 강화되자 대면 학습도 줄어들었다. 계층 간 교육격차가 커지고 있다는 탄식이 들린다.
 
  문해력과 창의력 저하, 교육격차 심화라는 거친 목소리 너머 ‘나뭇잎 한 장’ ‘콩 두 알’ 같은 하찮아 보이나 중요한 가치를 외면하고 있지는 않을까.
 
  가천대 법학과 박진우(朴眞佑·50) 교수는 학문과 교육의 핵심가치가 무엇인지 늘 고민하는 법학자이자 교육자다. 교육내용이 시대에 따라, 정권에 따라 오르락내리락 리듬을 타더라도 교육의 핵심가치는, 그 가치를 조이는 고삐는 팽팽하게 유지해야 된다고 믿는 학자다.
 
  박 교수는 “우리 교육이 좋았던 시절에 느슨했던 원칙이, 상황이 달라졌다고 저절로 자리를 고쳐 잡을 리 없다”며 “지금이라도 우리 눈과 귀를 막는 ‘나뭇잎 한 장’ ‘콩 두 알’을 찾아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기자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때로 무릎을 쳤다. 서울 마포구에서 9월 28일, 11월 2일 두 번 만났다. 그러고 보니 현장의 많은 교육학자와 교사들은 왜 우리 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회초리를 들지 않을까. 제 길을 가더라도, 간혹 주마가편(走馬加鞭)이 필요한데 올곧은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대학교육 황폐화 3대 요인
 
대학 교양강의의 90% 이상이 조별 발표로 이뤄진다. 그냥 발표로 끝인 경우가 많다. 그 과목에 대한 공부는 자기 발표 때나 조별 발표 때 검색해서 습득한 정보 정도다. 사진=조선DB
  박진우 교수는 우리 교육의 문제, 좁게는 대학교육의 황폐화 원인을 3가지로 압축한다. 조(組) 발표식 수업, PPT(오피스 시스템에서 프레젠테이션을 도와주는 ‘파워포인트’의 약자) 위주의 강의, 암기를 경원시하는 교육이 낳은 폐해(弊害)를 꼬집으며 ‘백 투 더 베이식(Back to the basic)’을 강조한다. 이 3가지 폐해가 학생들의 문해력 저하와 상관관계가 깊다는 것이다.
 
  “대학 인문사회 계열의 교양과목은 대개 조별로 발표를 합니다. 심지어 전공수업도 조 발표로 진행해요. 조별로 발표하면 조원들의 역량을 집결시켜야 하는데, 불가피하게 ‘무임승차’하는 학생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학생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조 발표 수업에 임합니다. 불만이 쌓이고 자신이 배우는 지식의 확신도 얕게 됩니다.
 
  대입 수능 때 사탐(사회탐구 영역)이든 과탐(과학탐구)이든 두 과목만 택하면 되니까, ‘한국지리’나 ‘윤리와 사상’을 선택한 학생은 ‘경제’를 안 배우면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 뭔지도 모르고 졸업합니다.”
 
  박 교수는 “대학 수능의 선택과목 문제로 요즘 대학생들의 기본적인 교양 수준은 30년 전보다 훨씬 열악한 상태”라고 우려했다.
 
  “대학에 들어와 고교 때 못 배운 교양과 상식을 다양하게 배워야 하는데, 조 발표를 시키니까 아무런 효용이 없어요. 이런 공부를 하면 머릿속에 아무것도 안 남습니다. 기본적으로 외우지를 않으니까 그냥 발표하고 끝인 거예요. 그 과목에 대한 공부도 자기 발표 때나 조별 발표 때 검색해서 얻은 정보 정도? 머릿속 지식 유통기간이 1개월 정도 될까요? 그런데도 교양과목의 거의 90%가 조 발표를 합니다. 인문사회 계열 교양수업이 그렇다는 것인데 공대 쪽은 어떻게 수업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물론 조별 발표가 필요한 경우도 있어요. 경영학과에서 기업의 사례연구라든지…. 또 조원들끼리 서로 경쟁하고 협업하도록 이끄는 교수 역할도 미비해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교수들이 조별 발표를 좋아하는 이유
 
박진우 교수는 “학생들은 긴 글을 안 읽으니 어려운 글을 못 읽게 되고, 조별로 발표하니 기본 개념조차 외우질 않는다”고 우려한다.
  ― PPT 수업이 왜 문제입니까.
 
  “PPT가 보통 3~4줄이잖아요, 단문이고…. 그러니까 대학 4년을 다니고도 긴 글을 못 읽는 거예요. 전공 이론과 개념을 요약한 단문으로만 계속 공부합니다. 두꺼운 전공서를 안 읽게 되고 점점 등한시합니다. 학생들은 긴 글을 안 읽으니 어려운 글을 못 읽게 되고 자연히 독해력이 떨어지며, 여기다 조별로 발표하니 기본 개념조차 외우질 않습니다.”
 
  ― PPT 강의, 조 발표 수업은 자기 주도 학습이 어느 정도 가능한 학생에게 필요하다는 말씀이지요?
 
  “적어도 상위 1% 정도? 이 외 대부분은 전통적인 방식의 교육이 필요해요. 솔직히 ‘스카이(서울대·고려대·연세대)’ 대학에서도 이런 방식의 수업 진행이 어려워요. 우리나라 고등교육이, 좁게는 인문사회 계열의 대학교육이, 더 좁게는 대학 교양수업 자체가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어요.”
 
  박 교수는 냉정하게 이런 말을 덧붙였다.
 
  “인문사회 계열 학생들이 대학 4년을 공부해 느는 실력은 개인적으로 학원서 공부한 토익점수랑 발표 스킬이 아닐까요? 조마다 주제를 찔러주면, 그 주제를 찾고 검색해서 알아보는 능력은 꽤나 있습니다. 또 PPT 제작 능력 정도?”
 
  ― 조별 수업 발표, PPT 강의를 하면 교수들이 더 편하지 않나요?
 
  “언론사가 대학을 평가할 때 교수의 논문 편수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대학 당국에선 교수들을 엄청 좨요, 논문으로…. 그런데 논문을 제대로 쓸려면 강의 준비를 소홀히 할 수밖에 없거든요. 그러니까 조 발표를 하게 만들면 강의 준비를 따로 할 필요가 없거든요. 지나친 표현일지 몰라도 대체로 교수들은 조 발표를 좋아합니다.”
 
 
  “PPT 강의, 1등 프리킥 키커 스타일만 가르치는 격”
 
  박 교수는 “조별 발표, PPT 강의는 학생들에게 ‘손흥민식 프리킥’만을 연습시키는 교육과 다름없다”고 쓴소리를 했다.
 
  “인문사회 교육의 장점은 긴 글을 읽고 독해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론 ‘문사철(文史哲, 문학·역사·철학)’ 등 인문학의 바탕 위에 새롭고 넓은 관점이 더해질 때 기발한 창의성이 담긴 새로운 무언가가 생길 수 있어요.
 

  그런 고등교육이 이뤄져야 하는데 지금의 교육은, PPT 중심 강의나 조별 수업은, 프리미어 리그의 손흥민식 프리킥만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과 같아요. 기본적인 드리블이나 패스, 볼 트래핑, 무엇보다 기초 체력이나 달리기 같은 것부터 가르쳐야 프리킥이 나오는 것이잖아요. 현재 상황은 초등에서 대학교육까지 멋진 프리킥, 1등 프리킥 키커(kicker) 스타일만 가르치는 꼴입니다.”
 
  ― 그래도 그중에서 한 명의 축구천재가 나오면….
 
  “그 한 명 외 대부분이 축구를 못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하죠.”
 
 
  서점에 법학서 코너가 사라지다
 
PPT로 강의하면 교과서나 교재를 중심으로 수업할 때보다 전달량이 5분의 1도 안 된다고 한다. 사진=조선DB
  박진우 교수는 서울대 법학과 92학번이다. 〈신문기업의 자유와 한계에 관한 연구〉(2007)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공은 헌법학. 학부 과정에서 헌법총론과 기본권론, 통치구조론 등 3과목을 가르친다. 1학년 2학기부터 2학년 2학기까지 이어지는 수업이다.
 
  “타과(他科) 3학년생이 제게 문자를 보내왔어요. 저처럼 직접 강의식으로 가르치는 과목을 처음 듣는다면서요. ‘너무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다’고…. 저도 놀라서 그 학생을 따로 불렀어요.
 
  ‘아니, 학부 6학기째인데 강의식 수업이 처음이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전공이든 교양이든 조별 발표식에다 죄다 PPT로 강의를 한다’는 겁니다.”
 
  ― 대학 3년 동안? 좀 심한데요.
 
  “고백하자면 저도 내일 ‘헌정사(憲政史)’ 수업을 PPT로 진행합니다. PPT로 하면 교과서나 교재를 중심으로 수업할 때보다 전달량이 5분의 1도 안 됩니다. PPT에 핵심 항목만 콕 집어 나열하고 말로 설명만 덧붙이니까요. 그러니 학생들이야 교과서를 굳이 볼 필요도 없고, 긴 문장의 텍스트를 살필 이유가 없는 것이지요. 예컨대 고전(古典)으로 꼽히는 조순·정운찬의 《경제학원론》도 경제학과 학생들이 안 읽는다는 겁니다.”
 
  ― 충격인데요.
 
  “어저께 광화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학술 발표회에 참석하고 인근 대형서점에 들렀더니 법학서 코너가 사라졌더군요. 계속 코너 크기가 줄어도 조그마하게 헌법·민법·형법, 이렇게 3칸 정도는 있었는데…. 제가 학교 다닐 땐 신학기에 특별 매대(賣臺)까지 두었었습니다.”
 
 
  “기본서 안 읽고 요약서만 보고 辯試 합격?”
 
  ― 그때는 법학과가 있을 때니까…. 지금은 로스쿨 시대잖아요.
 
  “곁가지일 수는 있는데 로스쿨에서 교과서를 안 본대요. 제대로 된 법조인이 나올지 의문입니다. 긴 문장으로 된 교과서를 읽고 이해해야 법리(法理)라는 게 생기고, 뼈대가 생기고, 체계가 생기는데 지금 로스쿨에선 무리라 생각합니다.”
 
  ― 일반 법대에서 4년간 가르치는 내용을 로스쿨에선 어떻게 가르치나요.
 
  “학부에서 법학을 안 배운 학생을 뽑아 3년 만에 예전 사법연수원에서 배우는 실무까지 가르친다는 게 로스쿨입니다. 제 전공인 헌법학만 좁혀서 말해도 일반 대학엔 3~4과목이 개설되지만 로스쿨은 두 과목만 개설돼요. 그 방대한 헌법을 두 학기 만에 배운다는 건 무리입니다. 우연히 읽은 ‘변호사 시험’(이하 변시) 합격기를 보니 공법(헌법·행정법)을 3학년 2학기부터 공부했다고 자랑스럽게 적어놨더라고요.”
 
  ― 보통 법학은 어떻게 공부하나요.
 
  “실체법(헌법·민법·형법)을 1학년 때 배우고 소송법(민사소송법·형사소송법)을 2학년 때부터 단계적으로 배웁니다. 민법 같은 경우는 워낙 중요하니까 4학기에 걸쳐 배우죠.
 
  그런데 어느 변시 합격자는 기본서도 안 읽고 요약서만 봤다는 겁니다. 그렇게 공부하니 법학서가 안 읽히는 겁니다. 제가 대학에 다닐 때 제일 중요한 헌법서가 권영성의 《헌법학원론》이었는데 로스쿨이 출범하기 전까지 1년에 2만~3만 권이 팔렸거든요.”
 
  기자가 대형서점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검색해보니 권영성 교수의 《헌법학원론》은 ‘절판’이었다.
 
  “요즘엔 성낙인 교수의 《헌법학》이 제일 많이 팔리는데, 2000권도 안 팔린다고 합니다. 10분의 1토막입니다. 이런 고전이 외면받는 이유가 PPT 강의, 조별 발표 수업과 관련이 깊다고 생각해요. 음… 기사도 세 줄 요약으로 나오곤 하잖아요.”
 
  ― 어느 뉴스통신사 기사를 보니까 2~3줄 요약 기사가 나오고 긴 기사가 이어지더군요.
 
  “사람들이 컴퓨터나 스마트폰 화면에 가득한 글을 거의 못 읽습니다, 요새는….”
 
  ― 그럼, 우리 《월간조선》처럼 긴 호흡의 기사를 쓰는 매체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저는 글을 많이 읽으니까, 《월간조선》도 3~4시간 정독하면 웬만한 기사는 다 읽거든요. 제가 정기 독자입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에게 읽으라고 하면 읽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이해도 못 하는 거예요. 대학에 입학해 4년 내내 PPT 단문 3~4줄짜리 강의를 들어왔으니까요.”
 
 
  “모든 인문학의 시작은 외우기”
 
  잠깐 숨을 돌리더니 박 교수는 이렇게 토로했다.
 
  “법학만이 아니라 모든 인문학의 시작은 외우기입니다. 법학으로 좁혀 말하면, 법학은 수많은 개념과 요건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이 개념을 외워야 창의력이 나옵니다.
 
  몇몇 법대 교수는 ‘법학은 외우는 분야가 아니다’는 분도 있는데 외우지 않고는 창의력이나 독창력, 법리가 나오지 않는 분야입니다. 무조건 기본 개념은 이해하고 외워야 합니다.”
 
  박 교수는 “20여 년 전부터 한국은 암기교육을 구시대의 유물,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장애물로 여겼다. 주입식, 암기식 교육을 지양하고 창의력·논리력을 배양하는 교육에 몰입하는 경향이 만연하다”고 지적했다.
 
  “대입 수능에서도 창의력을 측정하는 문제가 대부분이죠. 이런 추세가 학생들에게 가져다준 가장 큰 문제는 학생들이 암기(외우기)를 전혀 하지 않는 학습태도를 갖게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교육 현장에서 창의력만 강조하고 매몰되다 보니 중·고등학생은 물론이고 대학생도 기본적 지식과 개념, 원리를 외우지 않아 머릿속에 아무런 지식의 배경이 없는 상태에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게 됩니다.”
 
 
  ‘사흘’ 사태
 
사진은 서울대 수학교육과 ‘정수론’ 수업 모습이다. 사방을 둘러싼 화이트 보드에 학생들이 수식을 적고 있다. 수업은 학생들이 스스로 문제를 공부해온 다음 각자 풀이법을 발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사진=조선DB
  그는 “암기를 등한시하는 이러한 한국 교육 현실이 PPT 강의, 조별 발표와 더불어 어휘력 빈곤, 형편없는 문해력이란 초라한 결과를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온 ‘사흘’ 사태(사흘을 4일로 오해한 사태)가 이를 단적으로 증명합니다. 또 다른 사례로 요즘 ‘비보호’라고 적혀 있는 도로표지판 아래쪽에 ‘직진 신호 시 좌회전 가능’이라는 문구가 병기(倂記)되어 있는 것이 빈번히 보여요. ‘비보호’라는 개념을 외우지 않아 이 개념을 모르는 운전자가 많기 때문에 병기하는 것이죠. 어떤 분야든, 그 분야가 국어든, 수학이든, 학습의 초기 단계에선 암기가 중요해요. 기본적 단어와 숙어의 암기, 수학에서는 기본 공식이나 원리 암기가 밑바탕이 돼야 다음 단계로 발전할 수 있어요.
 
  의대생들도 1학년 때 우리 몸을 구성하는 뼈 206개부터 외운다고 하잖아요. 학문이 다 그렇지만 법학은 더욱 기본 개념의 바탕이 중요해요. 206개 뼈를 한꺼번에 외우는 공부가 아니라 하나의 개념 위에 새로운 개념과 원리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겁니다.”
 
  그런데 “초·중·고 교육과정에서 암기를 등한시하니 ‘수학포기자’가 속출하고 형편없는 국어 능력으로 표현력과 문해력에 적신호가 켜지는 것”이다. 계속된 그의 말이다.
 
  “암기교육을 터부시하는 경향은 대학생이 돼도 이어져 대학 강의에서 기본적인 개념과 원리를 외우려 하지 않아요. 중·고교 단계에서 기본적으로 암기해야 할 사항을 충족하지 못한 상태로 대학에 진학하니 발전적인 고등교육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겁니다.”
 
 
  “영등포가 區야? 市야?”
 
  박 교수는 몇 년 전 경험한 충격적 일화를 들려주었다. 어느 대형 몰에서 20대로 보이는 청년 셋의 대화를 우연히 엿듣게 되었다.
 
  “너무 가까이 있어 안 들으려야 안 들을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한 친구가 ‘좀 있다가 영등포에 가야 해’라고 말하니까 다른 친구가 ‘영등포가 구(區)야? 시(市)야?’라며 둘이 옥신각신하는 겁니다. 그러더니 세 번째 친구가 스마트폰 검색을 하고서야 논란이 종식되더군요. 다시 말해 친구 셋이 다 몰랐다는 얘기지요.
 
  20여 년 살아오면서 ‘영등포구’라는 말을 한 번도 안 들어봤을 리는 없을 텐데 어떻게 해서 구인지, 시인지도 모를까요? 저는 암기를 안 하니까 그렇게 됐다고 생각해요. 머릿속에 집어넣어야 할 개념을 그냥 흘려들었으니까요. 동료 교수들에게 물어봐도 요즘 젊은 층은 도무지 외우지 않는다는 겁니다.”
 
  ― 암기력 문제라기보다는 뭐랄까… 관찰력, 사물에 대한 주의력 문제가 아닐까요.
 
  “주의력도 문제지만, 기본적으로 머릿속에 개념이 없는 겁니다. 개념이 없다면 머릿속이 뒤죽박죽일 수밖에 없잖아요.”
 
  ― 법학과 학생들은 열심히 외우겠지요?
 
  “제가 계속 ‘외우는 게 법학의 생명’이라고 강조하니까 열심히 외웁니다. 예를 들어 법학의 개념 중에 1심에서 패소해 2심으로 가는 것을 ‘항소(抗訴)’라 하고, 2심에서 져서 3심으로 가는 것을 ‘상고(上告)’라고 하는데, 안 외우고 ‘항소·상고가 이런 거네’ 하고 넘어가면 십중팔구 잊어버리게 됩니다. 이런 개념을 외워야 이 위에 ‘항소는 판결문을 받은 다음 날로부터 14일 이내에 해야 한다’는 법리가 쌓이는 거거든요. 다른 학문도 그렇겠지만 법학 공부도 벽돌이나 조그만 타일 같은 자잘한 개념을 모두 외워야 법조인이 될 수 있는 겁니다.”
 

  ― 물론 그런 면도 있지만 컴퓨터에 검색어만 넣어도 온갖 정보가 쏟아지는데 외우는 교육보다 창의성 교육에 치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틀리진 않은 것 같아요.
 
  “물론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너무 한 방향으로 쏠리잖아요.”
 
  ― 그러니 암기가 바탕이 돼야 한다?
 
  “창의적인 사고, 논리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면서 거기에 올인하다시피 하니까 암기교육을 등한시해버린 겁니다. 이건 또 다른 획일화된 교육입니다. 그렇다고 과거의 암기식 교육으로 되돌아가자는 주장이 절대 아닙니다. 적절한 암기교육도 병행해야 한다는 뜻이죠. 학자마다 ‘문해력 저하 이유가 한자를 공부하지 않아서’라고 하는데, 한자를 아무리 익혀도 안 외우면 소용이 없는 겁니다. 한자 병행 교육도 외우는 학습을 전제로 하는 겁니다.”
 
  박 교수는 외우기와 관련된 추억을 공개했다.
 
  “제가 헌법학을 전공한 계기가 있어요. 1988년 고등학교 첫 사회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헌법이 새롭게 바뀌어 올해부터 시행되는데 이런 시기엔 헌법 조문만 다 외워도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고요. 그래서 외우는 김에 130조 헌법 조항을 다 외워버렸어요. 그땐 법대에 헌법이란 과목이 있는지도 모를 때였어요. 당연히 모의고사나 학력고사 때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은 물론이고 대학에 들어와 헌법을 처음 배울 때 너무 쉬운 거예요. 돌이켜보니 고교 때 헌법 조문을 외웠던 게 고스란히 도움이 됐던 겁니다. 헌법이 너무 쉽고 재미가 있어서 대학원에 들어가 헌법을 전공하게 된 것이죠. 헌법 조문을 외운 게 제 인생을 바꾼 것이지요.”
 
  ― 기왕에 선생님 성함도 한번 알려주시지요.
 
  “이호석 선생님이십니다. 지면을 통해 인사드립니다.”
 
 
  긴장감 없는 로스쿨
 
  ― 다른 이야기입니다마는 지금 현재 로스쿨 체제가 바뀌지는 않나요? 가천대도 로스쿨 하겠다고 교육부에 신청하면 형식적이나마 심사하는 제도가 있나요?
 
  “5년마다 로스쿨 평가라는 게 있기는 합니다. 프로축구처럼 1부에서 2부로 강등되고, 2부에서 1부로 올라가고 이래야 발전이 되는데….”
 
  ― 그렇겠죠.
 
  “평가는 있는데 탈락되는 로스쿨은 없습니다. 사실상 고정됐다고 보면 되고요, 서울 지역에 10개 대학, 지방에 15개 로스쿨이 있는데 ‘강등’이 안 되니까 긴장감이 사라진 것 같아요. 왜냐? 탈락할 리가 없으니까요. 일부 대학의 변시 합격률은 30%도 안 된다고 해요.
 
  몇몇 대학은 합격률이 절반이 안 돼도 긴장감이 없습니다. 지방 국립대 로스쿨도 성적이 좋지 않습니다. 국립대 교수들은 왕이잖아요. 학장이 지시해도 말을 안 듣거든요. 또 일반 교수들은 한 학기에 9학점을 의무적으로 강의해야 하지만, 로스쿨 교수들은 6학점만 가르쳐도 되거든요. 3학점을 덜어준 것은 대신에 교육과 연구에 충실하고 강의 준비도 열심히 하라는 취지인데 실제 그러고 있는진 의문입니다.
 
  어느 지방대 로스쿨 교수는 일주일에 하루 수업을 몰아서 하고 나머지는 서울서 지낸다고 합니다. 교수는 강의만이 아니라 상담도 하고 생활지도도 해야 하는데 제대로 이뤄질 리 없겠지요. 심지어 이런 소문도 있어요. ‘로스쿨 교수 중에 주(週) 2일 나오면 학과장을 탐내는 자, 주 3일 나오면 학장을 탐내는 자’라고요. 물론 요즘 이야기가 아니라 몇 해 전 이야기입니다.”
 
  ― 학생들은 어떨까요.
 
  “어느 변호사가 지방대 로스쿨 교수가 되어 첫 출근을 했더니 로스쿨 주차장에 고급차가 즐비하더랍니다. 알고 보니 학생들의 승용차라는 거예요. 기본적으로 학비가 1억원 정도 듭니다. 장학금 제도가 아무리 좋대도 재력가 부모가 아니면 진학이 어려워요. 또 ‘지역인재 균형선발’을 작년인가부터 시행했어요. 이전에는 권장사항인데 이젠 강제사항으로 바뀌었죠. 예를 들어 120명 정원의 지방대 로스쿨이라면 그 지역 대학 출신 20%가량을 의무적으로 선발하는데, 요즘 지방대 수준이 많이 떨어져 지방대 로스쿨 교수들이 힘들어 한다고 합니다.”
 
  ― 저도 지방대 출신이지만, 지방대 학생들도 열심히 하는 학생이 많아요.
 
  “지방대가 그만큼 우대받아서 로스쿨 수준을 끌어올려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어요. 또 능력주의를 공정성의 보루로 여기는 시각이 있지만, 능력주의 사회의 맹신도 들여다봐야 하는 점도 이해합니다. 제가 지적하는 부분이 지나칠 수 있지만 발언 취지를 잘 살펴봐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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