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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2세 여왕

세상을 떠난 ‘영국인의 정신적 지주’

글 :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hy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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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AP/뉴시스
  엘리자베스 2세(Elizabeth II) 영국 여왕이 지난 8일(현지 시각)에 만 96세로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서 서거했다. ‘살아 있는 영국의 상징’이자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재위한 국왕(70년 214일)의 죽음에 전 세계의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큰 아버지인 에드워드 8세가 이혼 경력이 있는 미국 평민 출신과의 스캔들로 왕위를 포기하고 아버지 조지 6세가 즉위하면서, 승계 서열 1위가 됐다. 여왕은 16세에 근위보병연대 시찰로 활동을 시작해 1945년 여군에 입대해 군 트럭 정비 등을 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군주다.
 

  엘리자베스 2세는 1952년 2월 6일, 선왕인 조지 6세가 사망함에 따라 25세의 나이로 즉위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영 제국의 위상이 추락하던 시기에 여왕 자리에 올랐다. 당시 영국의 총리는 윈스턴 처칠(1952~1955년)이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여왕 자리에 오르자마자 호주, 뉴질랜드 등 영연방 국가들을 7개월 동안 방문했고, 매주 버킹엄 궁전에서 총리들을 접견하며 국사(國事)를 논의하는 등 영국 연방 수장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여왕이 된 이후에 100개 이상의 국가를 방문했으며, 여왕 즉위 25주년인 1977년에는 영국 연방 35개국 지도자들을 축하연에 초대하며 위상을 떨쳤다. 엘리자베스 2세는 윈스턴 처칠부터 리즈 트러스까지 총 15명의 총리를 거치며, 영국민을 통합하고 안정시키는 역할을 했다.
 
  영국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엘리자베스 2세의 유일한 약점은 자손들의 왕실 스캔들이었다. 아들인 찰스 3세는 부인 다이애나를 두고 카밀라 파커 볼스와 불륜을 저질렀다. 다이애나는 찰스와 이혼한 뒤인 1997년 파파라치에게 쫓기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다이애나는 ‘민중의 왕세자빈’이라고 불리며 영국인들의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인물이기에, 당시 엘리자베스 2세와 찰스는 대중의 비난을 고스란히 받아야 했다. ‘왕실 폐지론’이 고개를 들기도 했다. 다이애나의 죽음을 둘러싸고 각종 음모론이 나왔으나 영국 왕실은 침묵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국민은 대부분 다시 영국 왕실에 마음을 주기 시작했다.
 

  엘리자베스 2세는 1994년 4월 부군인 필립공과 함께 3박 4일간 한국을 국빈 방문했다. “가장 한국적이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고 싶다”는 여왕의 뜻에 따라, 한국 전통문화 계승지라 할 수 있는 안동 하회마을을 찾아 73세 생일상을 받았다. 여왕은 김치, 고추장 담그기, 농부가 소를 끌고 쟁기로 밭을 가는 모습 등을 지켜봤고, 특히 신발을 벗고 마루에 오른 일화는 오랫동안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여왕은 좀처럼 맨발을 노출하는 일이 없는데, 소탈한 그의 모습이 세계적으로 전파를 탔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2세는 어린 시절에 한눈에 반한 그리스 왕자 필립공과 1947년에 결혼해 평생을 해로했다. 필립공이 2021년 4월 99세로 별세한 뒤 여왕은 급격히 쇠약해졌다. 특히 지난 2월 코로나19에 감염돼 고비를 넘긴 후에는 주요 일정은 아들 찰스 왕세자에게 맡기곤 했다. 영국은 엘리자베스 2세의 서거를 버킹엄궁 대문에 걸어 알렸고 10일 동안의 추모 기간을 가졌다. 영국인의 사랑을 받아온 군주는 역사가 되어 평온하게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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