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의 젠더 갈등은 일종의 일루전(망상)”
⊙ 끝나지 않은 n번방, “랜덤채팅으로 하는 디지털 성착취 대상이 초등학생까지 내려갔다”
⊙ ‘한국은 심각한 아동 인신매매 국가’, 국제사회의 평가
⊙ “‘여혐’ ‘남혐’은 잘못된 용어, 혐오주의 극복은 국정 과제”
⊙ “이준석 대표가 걱정하는 일은 안 일어날 것”
李水晶
1964년생. 연세대 심리학과 졸업, 同대학원 석·박사, 아이오와주립대 사회심리학과·심리측정 박사과정 수료 / 現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국민의힘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동선대위원장 / 대법원 양형위원회 전문위원, 대검찰청 성폭력대책위원회 위원, 국민의힘 성폭력대책특별위원회 위원, 국민위원회 경선준비위원회 위원 역임 / 영국 BBC가 뽑은 ‘올해의 여성 100인’에 선정(2019) / 저서 《최신 범죄심리학》 《사이코패스는 일상의 그늘에 숨어 지낸다》
⊙ 끝나지 않은 n번방, “랜덤채팅으로 하는 디지털 성착취 대상이 초등학생까지 내려갔다”
⊙ ‘한국은 심각한 아동 인신매매 국가’, 국제사회의 평가
⊙ “‘여혐’ ‘남혐’은 잘못된 용어, 혐오주의 극복은 국정 과제”
⊙ “이준석 대표가 걱정하는 일은 안 일어날 것”
李水晶
1964년생. 연세대 심리학과 졸업, 同대학원 석·박사, 아이오와주립대 사회심리학과·심리측정 박사과정 수료 / 現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국민의힘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동선대위원장 / 대법원 양형위원회 전문위원, 대검찰청 성폭력대책위원회 위원, 국민의힘 성폭력대책특별위원회 위원, 국민위원회 경선준비위원회 위원 역임 / 영국 BBC가 뽑은 ‘올해의 여성 100인’에 선정(2019) / 저서 《최신 범죄심리학》 《사이코패스는 일상의 그늘에 숨어 지낸다》
- 사진=조준우
“왜냐하면 저는 인간에겐 더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느 인터뷰에선가 동물 영상을 즐겨 보는 이유를 묻자 그가 답한 말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혹은 국민의힘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동선대위원장 얘기다. 비관적인 사람인 걸까. 2021년 12월 10일, 인터뷰를 위해 서울 여의도의 카페로 향하며 든 의문이다. 비관적인 이들은 자신이 속한 조직을 고사(枯死)하게 만든다. 비판적인 사람은 다르다. 이들은 집단의 암세포를 제거하고 다시 건강해지게 한다.
특히 시사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이라면 그의 얼굴을 몇 번은 봤을 터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 20년 넘게 출연해왔고, BBC가 뽑은 ‘2019년 올해의 여성 100인’에 이름을 올린 후에는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곧잘 만날 수 있었다.
선대위 합류하자 시위 열려
이 교수가 선대위원장에 이름을 올리자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는 유튜버 등 젊은 남성 100여 명이 모여 시위를 했다. 이 교수의 합류에 반대한다고 했다. 역시 이 교수의 선대위 합류에 반대했던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는 11월 29일 밤 페이스북에 “^^ 그렇다면 여기까지입니다”라는 글을 올리고 ‘잠행’을 했다.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앉아 있는 이 교수에게 물었다.
― 왜 ‘이대남(20대 남성)’들이 교수님을 싫어할까요? 몰려와서 시위도 했잖아요.
“일단 그분들은 이대남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영리를 목적으로 한 일부 유튜버들이었지요. 제가 젊은 사람들에게 반감을 샀다면 디지털 성범죄를 3년가량 추적해 불꽃과 함께 터뜨린 사람이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아동·청소년 착취 음란물을 엄격히 규제하고 처벌해야 한다고 이야기했기 때문에 사실은 사용자들에게는 굉장히 위협적일 수 있거든요.”
― 일명 ‘n번방 방지법’이 시행되고 논란도 있습니다.
“대다수의 남자가 아동·청소년 착취 음란물을 즐기는 건 아니잖아요. 많은 젊은 사람이 제가 캠프에 합류하는 걸 알자, 제 메일로 제보를 해왔어요. ‘지금 음란물이 텔레그램에서 디스코드로 옮아가고 있다’ 젊은 남성들이 이런 걸 알려와요.”
― 인터넷에서 교수님의 인선에 불만을 터뜨리는 이들은 ‘페미’란 단어를 즐겨 쓰더라고요. 요즘 ‘페미니즘’을 두고 젊은 남성과 여성들 사이에 전선(戰線)이 형성된 듯합니다. ‘젠더(gender) 갈등’이 심각하다는 분석도 나오고요.
“젠더 갈등이 사실은 일루전(망상)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사람의 편견이나 차별은 사실 직접 만나서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면 금방 사라질 수 있거든요. 예전에 영호남이 얼마나 대결 구도였어요. 그런데 이젠 그런 논쟁은 사회의 주요 이슈는 아니잖아요. 사회적 경험이 많지 않은 젊은 사람들 중에 아직 남자들을 많이 경험하지 못한, 또는 여자들을 많이 경험하지 못한 어린 친구들이 인터넷 공간에서 일어나는 논쟁이 실존한다고 믿는 거예요.”
― 인터넷에서 상대 성을 실제보다 과장해서 나쁘게 묘사한 얘기나 일부 경우의 얘기를 일반적인 얘기로 여기는군요.
“착각하는 거예요. 저는 제일 친한 친구들이 ‘남자 사람 친구들’입니다. 남녀공학을 나오기도 했고요. 그렇기 때문에 남자가 어떻다는 선입견이 별로 없어요. 결혼도 하고 가족 안에 남자들도 있고요. 문제는 그런 경험들이 없는 여성들은 남성을 두려운 존재로 볼 수 있어요. 여자 경험이 많지 않은 일부 남성은 ‘여성들에게 성폭력 가해자로 몰릴지도 모른다’ 이런 불안감을 갖고 있고요.”
코로나19로 젠더 갈등 심화
― 코로나19 이후 우리 삶에 불안이 일상화되면서 더 심해졌겠네요.
“그렇죠. 인생 경험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굉장히 박탈되다 보니 막연한 불안감이 너무 심해졌어요. 불안이 심한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어떤 현상을 볼 때 단순하게 지각을 해요. 흑백 논리에 빠지기 쉽단 얘기지요. 결국은 서로 만나서 해결하지 않으면 계속 갈 수밖에 없어요. 코로나19가 끝나고 대면 접촉이 늘어나야 이 문제는 완화될 것이라 생각해요.”
― 삶의 토대가 불안해지니 잘 모르는 타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화풀이를 할 수 있단 얘기군요.
“그럴 수 있어요. 특히 젊은 남자들의 경우, 군복무를 두고 불만이 있을 수 있어요. 군대에 가면 1년 반, 길게는 우리 아들처럼 3년이란 시간을 보내야 해요. 졸업하고 취직하면 동기 여성들의 3년 후배가 되잖아요. 그들 입장에선 정당하지 않을 수 있어요.”
― 요전 인터뷰에서 군가산점을 언급한 게 그런 이유 때문일까요.
“군가산점만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서 봉사하는 사람에게 가산점을 주자는 겁니다.”
― 국가를 위해서 봉사하는 사람이라면요?
“지금 코로나19 사태에서 활약하는 젊은 간호사들, 그들의 노동력을 착취할 권리가 국가에 있을까 나는 의문이에요. 간호사 가산점을 줄 수도 있고요. 전방에서 희생을 한 군인들도 마찬가지예요. 군가산점제는 그런 분들을 대우하는 보상 중 하나인 겁니다.”
국가를 위해 인생의 일정 시기를 바친 이들을 대우해주자는 취지는 이해 가지만 논란이 될 수 있는 주장이란 생각도 들었다. 참고로 군가산점제는 군 복무자와 아닌 자를 차별한다는 이유로 1999년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 판정을 받았다. 2007년과 2012년에 군가산점제를 부활시키자는 주장이 나왔지만, 가산점제 부활이 아닌 병영문화와 징병제도의 개선이 더 합리적인 대안이란 결론으로 이어졌다. ‘간호사 가산점’도 어떤 형태가 될진 모르겠지만, 헌재로 간다면 군가산점제와 같은 신세가 될 수도 있다.
‘여혐’은 잘못된 용어
더 묻기도 좀 질리지만 젠더 갈등 얘기를 이어나갔다.
― 특히 일부 젊은 여성 사이에선 이성(異性)을 만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꽤 높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려면 실존하지 않는 불안감을 극복해야 해요. 여자들이 성폭력 피해를 입을지도 모른다라는 불안을 너무 크게 갖는 것도 적절하지 않아요.”
― 헤어질 때 상대에게 해코지를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의 ‘안전 이별’이란 용어도 있는데요.
“단어 자체가 성립하지 않아요. 이별이면 이별이지 안전 이별이 어디 있나요. 헤어지자 하니 폭력을 휘두르면 범죄예요. 신고해서 범죄로 처벌해야지요. 국가가 할 일이 그거예요. 국가가 해야 하는 일을 안 하고, 자구책을 마련할 수밖에 없게 만든 그게 해이예요. 전 그걸 못 보겠다 이겁니다. 우리가 왜 세금을 내면서 자구책까지 마련해야 해요?”
― ‘여혐’ ‘남혐’은 이제 일상어로 자리 잡았는데요.
“강남역 살인 사건 때 제가 그랬어요. ‘여혐 범죄라고 하지 마라, 여성이라는 이유로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랬더니 일부 래디컬한(급진적인) 페미니스트들에게서 제가 또 욕을 먹었어요.”
― 그러니까 여성이든 남성이든 뒤에 혐오 붙이지 말자는 건가요.
“그렇지요. 그저께(12월 8일) 밤 11시까지 캠프에서 토론을 했어요. 혐오주의 극복을 두고요. 미국처럼 혐오 범죄로 처벌만 하는 게 대안이냐, 그 외의 추가적인 방향으로 가야 하나. 저는 처벌주의는 답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이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토의할 예정입니다.”
― 혐오주의 극복에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일단 교육이죠. 타인에 대한 배려심, 존중, 그건 습관이거든요. 어쩌면 유치원 때부터 교육해야 되는지도 모르겠어요. 인성 교육이랄까. 근데 지금은 인성 교육이라고 하면 철학자들이 가르치잖아요.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를 가르치는 식으로는 아닌 것 같아요. 타인의 입장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방법, 거절과 수락을 구분하는 방법, 동의를 받는 방법 이런 걸 가르쳐야죠.”
― 타인과 소통하는 기술을 가르치란 얘기군요.
“그럼요. 대화의 기술, 건전하게 주목을 끄는 방법 이런 거 말입니다.”
알페스는 소설일 뿐
일부 젊은 남성은 그를 비판하며 ‘알페스’를 언급한다. 알페스 처벌에 이 교수가 반대 주장을 냈단 이유다. 알페스(RPS·Real Person Slash)는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해서 만드는 소설을 뜻한다. 한국에선 여성 팬들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남자 아이돌들을 등장시켜 지어낸 동성애물 팬픽을 주로 뜻한다. A그룹의 B멤버와 C멤버가 연인 사이인 것처럼 설정하는 식이다. 소설 속엔 적나라한 성행위가 등장하기도 한다.
알페스를 두고 일부 젊은 남성이 하는 주장은 이렇다. ‘남자 아이돌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런 소설이 창작되고 읽히는 건 옳지 않다, 여성들의 동영상을 찍어서 돌려보는 n번방과 뭐가 다르냐.’ 이 교수의 답이 돌아왔다.
“소설이잖아요. 남자 아이돌이 그 소설을 읽고 자살하고 싶어 하나요? 그런 팬픽이 싫으면 인기도 포기해야지요. 그걸로 영리 이익을 취하잖아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이 그 동영상으로 영리를 취했나요? 픽션과 논픽션은 구분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이 교수는 대학원에서 심리측정을 전공한 후 경기대 교양학부 교수로 임용됐다. 경기대에는 교정(矯政)학과가 있는데, 교수로 임용된 후 재소자를 등급별로 분류하는 심사 절차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받게 됐다. 그때부터 범죄심리학과 연을 맺었다. 그 뒤 경기대 대학원에 범죄심리학 과정이 신설되었고, 이 교수는 미국 샘휴스턴주립대에 교환교수로 다녀온 후 본격적으로 범죄심리학에 뛰어들었다. 샘휴스턴주립대는 대형 교도소가 있는 텍사스 헌츠빌에 있는 대학으로, 형사행정 전공이 유명하다.
이 교수는 범죄자의 심리를 연구하는 학자이지만, 여성이란 이유로 범죄자를 면담하지 못했다. 그러다 2004년 처음 범죄자와 마주 앉게 된다. 경남 마산에서 모녀가 남편이자 아버지인 A씨를 살해하고 토막 낸 사건이 일어났다. 시신 일부를 찾지 못한 경찰이 이들과 얘기를 해보라며 이 교수에게 의뢰한 건이었다.
“만나보니 아내와 딸은 수십 년간 남편에게 폭행을 당한 학대 피해 여성들이었어요.”
A는 평소 술을 마시면 부인을 자주 때렸다. 부인을 망치로 때려 병원 치료를 받게 하기도 했다. 26년간 이어진 폭력이었다. 죽은 날도 술을 마신 후 죽이겠다며 부인과 딸에게 욕설을 하며 망치를 휘둘렀다. 오랫동안 폭력을 당해온 모녀는 피해자인지 피의자인지 알 수 없을 정도의 상태였다.
경찰이 작성한 사건 조서에 쓰여 있는 한 단어가 유독 이 교수의 눈에 들어왔다. ‘앙심’이었다. 경찰 조서엔 ‘부부간 불화가 있던 중 앙심을 품고 배우자를 살해한 사건’이라 적혀 있었다.
“앙심을 품고 계획적으로 살인한 게 아니라 ‘생존에 대한 공포’ 때문이었다고 설득할 수 있다면 평생 이 주제로 연구를 해도 시간이 아깝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이후에 배우자에게 학대를 당하다가 살해한 경우, 법정에서 정당방위였다는 걸 일정 정도 인정받은 경우가 있나요?
“단 한 건도 없습니다. 소귀에 경 읽기예요.”
“남자 범죄 피해자들도 많다”
― 만나본 범죄자 중 누가 가장 기억에 남나요.
“연쇄살인범 정남규예요. 많은 범죄자를 만나봤지만, 이 사람은 특히 더 위험한 사람이란 느낌을 받았어요. 안정적이지 않아요. 결국 교도소 안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어요.”
정남규는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서울, 경기도 지역에서 14명을 살해하고 19명에게 중상을 입힌 연쇄살인범이다.
― 정남규가 가장 처음 공격한 게 남자아이들이었죠?
“남자아이 두 명을 죽였어요. 성별과 관계없이 자기 방어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 겁니다. 왜 여자들만 약자라는 선입견을 갖는지 잘 모르겠어요. 제가 피해자를 보호하고 회복을 돕자고 할 때는 여성에게만 한정 짓는 게 아니에요. 남자 범죄 피해자들도 많아요. 이재명 후보에게 소송을 제기한 분의 성별은 남자입니다. 스토킹 살인범에게 아내와 딸을 잃은 유가족이죠.”
국민의힘 성폭력특위는 1호 법안으로 ‘스토킹 처벌법’을 발의했다. 최초 발의된 후 22년 만에 국회를 통과했다. 2020년 10월 21일부터 시행됐다. 반복적 스토킹 행위자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 흉기 휴대 시엔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을 물린다. 이 교수도 입법에 참여했다.
스토킹 처벌법엔 한 가지 우려스러운 조항이 있다. 바로 ‘반의사불벌죄(反意思不罰罪)’다.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의 고소가 없어도 기소할 수 있지만, 피해자가 범인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기소할 수 없고 기소한 후에 그러한 의사를 표시하면 형사재판을 종료해야 하는 범죄를 뜻한다. 이걸 노리고 범인이 피해자를 회유, 협박할 수 있다.
― 스토킹 처벌법에 반의사불벌죄 조항은 왜 들어간 건가요.
“우리가 법안을 만들고 경찰에서 최종안을 갖고 왔어요. 경찰 쪽에선 연인 간 폭력은 가정폭력에 준하는 걸로 보는 거예요. 우리나라에선 가정폭력을 범죄로 여기지 않아요. 그래서 그 안에 반의사불벌죄가 있어요. 가정폭력 처벌법은 가정을 보호하기 위한 법률이지, 여성의 생명권을 보호하기 위한 게 아니에요.”
― 가정이 깨지지 않게 하는 걸 가정 구성원의 안녕보다 우선한다는 거군요.
“대한민국에서는 가정을 신성시해요. 좀 맞고 때리고 이런 일이 있어도 가정이 해체되는 걸 선택하지 않는 나라이다 보니, 피해자가 맞고 문제 제기를 해도 중간에 취하하면 얼마든지 가족이 유지될 수 있게 하겠다, 그런 취지의 조항이 반의사불벌죄예요. 스토킹 처벌법에도 따라온 겁니다.”
― 가족도 아닌 타인 사이에 일어난 범죄를 두고 이런 조항을 왜 넣죠?
“반의사불벌죄라는 게 연인 간에 일어나는 스토킹에는 적용될 개연성이 없는데 말이죠. 가해자에게 피해자를 협박할 기회를 보장해주는 거예요.”
― 법안 발의할 때 왜 의견을 표명하지 않으셨어요.
“표명했지요. 근데 그때 누가 제 얘기를 들어요. 제 말이 무슨 말인지도 그 시절엔 그분들이 잘 몰랐을 거예요. 지금은 제 목소리가 훨씬 많이 반영돼서 감동 중이에요.”
― 어떻게 그런 변화가 일어났나요.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전 권위적인 사람이 아니라서 지위라는 걸 중요하게 여기지 않지만, 중요하게 여기는 분들도 계신가 보지요.”
초등학생 노리는 디지털 성범죄
― n번방 사건 이후 미성년자 의제(擬制)강간 연령이 만 13세에서 만 16세 미만으로 조정됐지요. 그나마 다행입니다.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어요. 디지털 범죄 문제가 너무 심각해요. 랜덤 채팅 앱만 켜면 미성년자에게 성매매 쪽지가 수도 없이 날아와요. 피해자의 연령이 요새는 초등학생까지 내려갔어요. 초등학교 아이들이 디지털로 성적인 유인을 당해서 성폭력 피해, 성착취 피해를 당하고 그 장면이 영상물로 찍히는 빈도가 굉장히 늘었어요.”
― n번방 사건은 끝나지 않았네요.
“더 큰 문제는 아이들이 그때그때 피해에서 구제가 되면 좋은데, 자기가 입은 피해가 뭔지 몰라요. 초등학생들 사이에선 이걸 유머로 소화를 하고 있어요. 피해 회복이 안 되면 결국 사춘기에 가출할 수밖에 없어요. 가출 패밀리에 들어가 4~5년 있다 보면 전부 아동학대 행위자들이 돼요. 임신과 출산. 아동학대 치사 사건이 7~8년 전보다 10배 는 건 아세요?”
― 10배요?
“10대 후반, 20대 초반 남녀 아동학대 가해자들이 어디서 나왔을까요. 학대 치사당하는 애들은 보통 첫 번째 애가 아니에요.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아이들을 죽이지요. 이 가해자들이 어디에 있다 어떻게 생겨난 건지 이 사회가 주목하나요? 그렇지 않아요. 살해죄로 엄벌하라는 주장만 하지요.”
― 성범죄 피해자가 아동학대 가해자가 되는 끔찍한 순환이네요.
“얼마 전에 사법연수원 50주년 세미나가 열렸어요. 거기에서 그런 얘기가 나왔어요. 해외에서 열리는 판사 회의 같을 곳에 가면 ‘한국은 차일드 트래피킹(child trafficking·아동 인신매매)이 너무 심각한 나라’라고 한답니다. 랜덤 채팅 애플리케이션에서 아이들을 사고파는 걸 허용하는 나라라는 거예요. 외국에 그렇게 알려져 있는 겁니다.”
― 발달한 IT기술로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일까요.
“다크 웹에서 ‘코리안 걸스(Korean girls)’를 검색하면 수없이 많은 한국인 초등학생, 중학생들의 음란물이 떠요. 소아성애적 음란물을 이렇게 많이 제작해서 다크웹에 유포시키기론 우리나라가 1등일 겁니다.”
― 인터넷 망도 발달해서 성착취물을 빠른 속도로 주고받을 수 있지요.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 같은 분은 그걸로 거부(巨富)가 됐잖아요. 양진호의 죄명에 성범죄는 없어요. 직원에게 갑질을 했다는 거죠. 전 법치주의가 엄격하게 적용되지 않는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상상하기조차 싫어요. 그래서 선대위에 합류한 것이기도 해요.”
“한국은 심각한 아동 인신매매국”
대검찰청 통계를 보면, 4대 강력범죄(살인·강도·방화·성폭력) 중 성범죄의 비율은 91.3%다. 10년간(2010~2019년) 살인·강도·방화 등 다른 강력범죄는 줄었는데 성범죄는 급증했다. 2010년 2만584건(73.2%)이었던 것이 2019년 3만2029건(91.3%)으로 늘었다. 10년 동안 50% 이상 늘었다.
― 성범죄가 유독 늘고 있는 이유가 뭘까요.
“거대한 경제적 이득을 목적으로 하는 성범죄 카르텔이 있어요. 성매매가 산업이 된 거예요. 전국에서 성매매를 이렇게 왕성하게 하고, 특히 아동·청소년 성매매가 이렇게 성한 나라가 많지 않아요. 휴대폰으로 얼마든지 어린애들을 살 수 있잖아요.”
― 성범죄 조직이 있다는 얘기군요.
“거대한 영업 조직이 있고, 그들의 일종의 협회도 있고요. 그 협회가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시위를 하지 말란 법도 없고요. 성매매는 산업의 한 분야가 됐어요. 여자 가해자들도 그 안에 있어요. 성매매 알선 강요에 가담한 여자 가해자들이 얼마나 늘어났는지 아세요. 남자들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 랜덤 채팅 앱이 정말 큰 문제군요.
“아이들이 하는 게임 있잖아요. 그곳의 대화창에도 들어가서 아이들에게 접근을 해요. 그런 일들이 뻔히 일어나는 걸 알면서도 왜 나라에서 단속을 안 합니까. 아이들이 엉망진창이 돼서 다시 아동학대 치사 사건의 가해자가 돼요. 잔인한 사람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아요. 잔인하게 발달하는 거지요. 수년간 착취를 당하면 인간성을 잃어버려요. 어떻게 제가 입을 닫고 있어요?”
이 교수는 ‘입을 닫고’ 있지 않았다. 〈그것이 알고 싶다〉든, 예능 프로그램이든, 라디오든, 세미나든 성범죄, 아동학대 범죄를 되짚는 곳이면 부르는 대로 갔다. 인터뷰를 하며 이 교수를 관찰해보니 유독 눈에 띄는 점이 있었다. 타인에게 잘 보이려는 생각이 별로 없어 보였다. 일반적으로 여성이든 남성이든 사진이나 영상에 멋진 모습으로 찍히길 바란다. 기사 내용도 마찬가지다. 그는 그런 것들에 거의 관심이 없어 보였다. 성범죄, 아동학대 범죄 얘기를 할 땐 열성적이었다. 그가 TV나 라디오 등 언론에서 자주 보이는 건 명예욕이나 현시욕, 인정 욕구 때문은 아닌 듯하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보였다.
죽은 사람들이 건네준 임무
― 왜 그렇게 열심인가요.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걸 보잖아요. 그러면 정말 젖먹던 힘까지 끌어낼 수밖에 없게 돼요. 비참한 죽음을 전 너무 많이 봤어요. 그분들이 나한테 남겨놓은 임무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해요. 그분들의 한을 푸는 데 눈곱만큼이라도 나의 능력이 쓰일 수 있다면 굉장한 영광이에요. 나 같은 게 세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게 뭐라도 해야죠. 아무것도 남겨놓지 않고 가기엔 시간이 너무 아까우니까요.”
― 범죄심리학에 뛰어들고 나서 인간에 대한 생각이 좀 바뀌었나요.
“전 인간 자체에 굉장히 비관적이에요. 누구도 잘 안 믿어요. 정말 믿을 만한 사람으로 검증되기 전엔요. 저의 검증 절차는 매우 엄격해요. 그걸 통과한 몇몇만 저는 믿어요. 저의 인간관계는 대부분 아주 옛날부터 알던 사람 몇 명에 불과해요. 새로운 친구를 사귀지 못하는 병이 있지요.”
― 신변 안전에도 신경을 쓰시나요.
“노력을 하죠. 애당초 전 위험해질 수 있는 곳엔 안 가요. 아무하고나 만나지도 않고요.”
그는 천주교 신자다. 세례명은 데레사.
“어쩌면 이런 모든 생각은 천주교 신자이기 때문에 품게 되는 것인지도 몰라요. 내가 할 수 있는 종교적 신념의 발현이라고 할까요.”
― 원래 멘탈이 강했나요.
“원래도 좀 강했던 것 같아요. 저는 버스 정류장에서 진짜 한참 올라가야 되는 산꼭대기 집에서 살았어요. 할머니 집이었는데 그래서 전 삼촌, 고모들하고 같이 자랐어요. 엄마가 제 한 살 아래 남동생을 낳고는 저를 할머니에게 맡겨버렸어요. 제 이름도 살던 동네 이름에서 따와서 지은 거예요. 부산 수정동에서 살았거든요. 여자아이 이름으로 예쁘다고요? 유치원 갈 때까지 그 이름도 제대로 불리지 않았어요. 모든 사람이 저를 누나라 불렀어요.”
― 왜 누나인가요.
“세상이 장자인 남동생을 위주로 돌아갔으니까요. 장손의 누나는 살림 밑천이라는 얘기를 너무 많이 듣고 자랐어요. 제가 이수정이라는 저만의 간판을 단 지도 얼마 안 됐어요. 그런 게 페미니즘이에요.”
‘김병욱 의원 사위 루머’까지 돌아
― 선대위에 합류한 후 악플과 루머에 한동안 시달렸지요.
“악플에 별로 상처받는 타입은 아니고요. 전공이 심리 분석이다 보니 악플도 분석하며 읽습니다. 악플을 보면 어떤 흐름이 있어요. 예컨대 과거에 어떤 진보 계열에서 왜곡된 정보가 흘러나왔는데, 그게 이젠 저를 공격하는 도구로 국민의힘 지지자들을 통해 올라오는 현상들이 읽혀요. 흥미로워요. ‘인터넷상에서 정보가 공유되고 있구나, 어떤 흐름이 있구나….’”
― 소위 ‘좌표’를 찍힌 건데요. 앞으로도 계속 공격받지 않을까요.
“전 일단 관심의 중심에서 벗어났어요. 선대위에 합류를 못 하게 할 생각으로 저를 공격했는데, 합류했기 때문에 이제 제가 공격받을 이유는 딱히 없다고 생각해요.”
― 교수님이 ‘고유정을 이해한다’고 했다는 얘기도 나왔어요.
“‘고유정이 남편뿐 아니라 아이도 살해한 것 같다’고 의견서를 쓴 사람이 저예요. 제가 그런 얘기를 떠들고 다니지 않으니 왜곡하지요. 김병욱 국회의원이 제 사위라는 말도 돌았어요. 김 의원이 성범죄 혐의를 받을 때 기다려보라고 기자들한테 답한 게 그런 이유더라고요.”
― 김 의원은 경찰 조사에서 무혐의 결정을 받았지요.
“어떻게 소문으로 처벌합니까. 피해자가 결국 안 나왔잖아요. 그런 점을 지적했더니 김 의원이 제 사위라고요? 저에겐 그런 허위 정보와 싸우고 있을 시간이 없어요.”
― 고유정 발언은 문제가 된 강연을 동영상으로 확인했다면 전혀 문제 삼을 게 아니란 걸 알 텐데요. 김병욱 의원 사위설도 그렇고요. 어떻게 그렇게 바로 확인이 되는 허위 사실을 진실인 것처럼 유포할까요.
“그냥 왜곡하고 싶은 거예요. 예전에 제가 도왔던 피해자와 피해자의 변호사, 심지어 검사까지 저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보내오고 난리가 났어요. 왜 그들까지 괴롭힙니까. 저는 그렇게 산 사람이 아니에요. 제가 아니라면 아닌 거예요. 저는 그런 문제로 어디에 휘말릴 실수를 눈곱만큼도 하지 않고 살았어요. 그랬으면 벌써 날아갔을 거예요. 얼마나 처절한 검증 과정이 있는데요. 방송에 얼굴을 내밀며 이렇게 살아남기 쉽지 않아요.”
‘피해호소인’이란 2차 가해

이 교수는 2020년 국민의힘 성폭력대책특위에서 활동하며 국민의힘과 연을 맺었다. 그 전에는 더불어민주당 쪽과 가까웠다. 그를 국민의힘으로 가게 한 건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었다.
“17대 국회 때부터 민주당을 도왔어요. 김상희 국회부의장, 정춘숙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 같은 민주당 의원들이 토론회를 열면 달려가 발표도 하고 사회도 봤어요. 그래서 21대 국회에 기대가 정말 컸어요. 부동산 법들이 저렇게 쉽게 통과되니 여성의 안전과 관련한 법도 쉽게 통과될 거라 믿었고요. 그런데 박원순 전 시장 사건이 터지고 민주당 여성 의원들이 입을 닫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박원순 전 시장의 성범죄 사건 때문에 특이한 용어도 대중화됐다. ‘피해호소인’. 피해자의 호소를 ‘사실이 확인 안 된 일방적인 주장’으로 한번에 깔아뭉갤 수 있는 참 편리한 용어다. 같은 잣대를 대보면 미투운동의 포문을 연 서지현 검사도 ‘피해호소인’이다. 서 검사의 성추행 폭로를 막기 위해 인사 보복을 한 혐의로 기소된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은 최종 무죄를 받았다. 서 검사는 박원순 전 시장 사건에 대해 어떤 입장이냐는 문의를 받자, ‘공황장애’를 호소하며 페이스북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박원순 전 시장 사건이 세상에 드러나자, 갑자기 말이 없어진 건 일부 여성단체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기묘하고 어색한 침묵은 오래 잊지 못할 것 같다.
― 피해호소인은 정치사나 여성운동 역사에 길이 남을 단어입니다.
“그래서 제가 뛰쳐나온 거잖아요. ‘그들과는 함께할 수 없다.’”
심리학엔 공정한 세상 가설(Just World Hypothesis)이라는 게 있다. 많은 사람이 세상이 정의롭다고 가정한다는 이론이다. 세상이 딱히 그렇지만도 않은데 말이다. 그러니 어떤 범죄가 일어나면 피해자가 잘못해서 불행한 사태가 벌어졌지, 피해자가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 그런 불공정한 일이 일어났을 리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자신의 인생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일어나는 원인 중 하나일 수 있다.
― 박원순 시장 사건 피해자의 경우, 박 전 시장 지지자들로부터 엄청난 2차 가해를 받았지요.
“세상에 피해 사실을 알린 후 그분은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어요. 복직은 아직 못 했고요.”
― 자신들이 완전무결하다고 믿는 정치인들을 계속 숭상하기 위해 피해자를 격하하는 걸까요.
“피해자만 격하하는 게 아니라 누구라도 격하해요. 제가 굉장히 불만이었던 건 사실, 조국 전 장관 사건이었어요. 제가 법정에서 숙명여고 입시 비리 사건의 전문가 증언도 했어요. 왜 보통 사람들은 처벌받는데 높은 사람들은 처벌받지 않나요?”
― 조국 전 장관과 지지자들은 지금도 잘못한 것이 없다는 입장인데요. 《조국 백서》를 보니 시스템 잘못이라고 하더군요.
“거기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했어요. 제가 말을 안 해서 그렇죠. 그러더니 그 후엔 피해호소인이라니요.”
‘이재명 후보는 위험한 사람’
지난 11월 24일 이재명 후보는 2006년 헤어진 여자친구와 어머니를 흉기로 37차례 찔러 숨지게 한 조카를 변호했던 과거를 사과했다. 그러면서 조카의 범죄를 ‘데이트폭력’이라 표현했다.
이 교수는 “민주당에 여성 전문가들이 많은데, 그분들은 왜 데이트폭력 발언에 아무 말이 없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 ‘사람 분석을 할 때 입에서 나오는 말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셨지요. 이재명 후보는 어떻습니까.
“말해서 뭐 하나요.”
― 원희룡 전 제주지사의 아내인 강윤형 신경정신과 전문의는 이 후보를 두고 ‘소시오패스의 전형’이라 진단했던데요.
“그건 그분에게 물어보시지요.”
― 교수님의 전공 분야인 심리 측정으로 이 후보를 보면 어떤가요.
“저는 인신공격할 생각이 없어요. 낙인을 찍을 생각도 없고요. 그런데 위험하다, 나는 이런 느낌이에요.”
― 어떤 측면에서 위험하다는 뜻인가요.
“글자 그대로예요. 제 기준으로 봤을 때 위험한 사람이에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12월 9일 채널A 인터뷰에서 이 교수를 두고 이런 얘기를 했다. ‘제 당대표 당선 이후에 국민의힘이 지금까지 가져왔던 방향성과 다른 이야기를 한다면 적극적으로 교정하고 제지할 것이다’ ‘이대남’들을 의식하는 발언인 듯했다.
‘이준석 대표 걱정하는 일 안 일어날 것’
― 이 대표의 말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교정하려면 교정하시라. 제가 제안한다고 정책이 마구 나가는 게 아닙니다. 선대위에 정책 검증팀이 세 팀이 있어요. 거기서 토론을 하고 받아들여져야 정책위원회로 올라가요. 정책위원회를 거치고 법률가들에게 검토를 받아야 해요. 그래야 발표가 돼요.”
― 여러 과정을 거치는군요.
“제 답을 써주세요. ‘대표님이 걱정하시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다. 걱정 마시라.’”
선대위 합류 후, 정치에 뛰어드는 건지 묻는 질문이 그에게 쏟아졌다. 그때마다 그는 정치는 안 한다고 잘라 답했다. 교수로 정년을 마칠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비관적인 사람일까, 비판적인 사람일까. 짐짓 아닌 척 굴지만, 그는 희망을 품고 있는 사람으로 보였다. 모든 사람이 이 세상은 틀려먹었다며 뒤돌아 가버려도 끝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킬 듯한 소박하지만 단단한 희망 말이다. 그는 비관적인 사람이 아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러므로 그가 언젠가 정치를 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움직이는 목적이 자잘한 인정 욕구를 채우는 것이거나, 권력 획득이 아니기에 오히려 정치를 할 수 있단 얘기다. ‘정치할 거냐’ 책망하듯 그에게 따져 묻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범죄를 예방하고 범죄 피해자들을 도우며 어느 만큼의 세월을 살아온 전문가가 국회나 국무회의에 들어가는 게 뭐가 나쁜 건지도 잘 모르겠다.⊙
어느 인터뷰에선가 동물 영상을 즐겨 보는 이유를 묻자 그가 답한 말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혹은 국민의힘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동선대위원장 얘기다. 비관적인 사람인 걸까. 2021년 12월 10일, 인터뷰를 위해 서울 여의도의 카페로 향하며 든 의문이다. 비관적인 이들은 자신이 속한 조직을 고사(枯死)하게 만든다. 비판적인 사람은 다르다. 이들은 집단의 암세포를 제거하고 다시 건강해지게 한다.
특히 시사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이라면 그의 얼굴을 몇 번은 봤을 터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 20년 넘게 출연해왔고, BBC가 뽑은 ‘2019년 올해의 여성 100인’에 이름을 올린 후에는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곧잘 만날 수 있었다.
선대위 합류하자 시위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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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의 피해자 여성을 추모하는 추모집회가 2016년 5월 21일 열렸다. 참석자들이 사건현장까지 침묵의 추모행진을 하며 고인을 추모했다. 사진=조선DB |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앉아 있는 이 교수에게 물었다.
― 왜 ‘이대남(20대 남성)’들이 교수님을 싫어할까요? 몰려와서 시위도 했잖아요.
“일단 그분들은 이대남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영리를 목적으로 한 일부 유튜버들이었지요. 제가 젊은 사람들에게 반감을 샀다면 디지털 성범죄를 3년가량 추적해 불꽃과 함께 터뜨린 사람이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아동·청소년 착취 음란물을 엄격히 규제하고 처벌해야 한다고 이야기했기 때문에 사실은 사용자들에게는 굉장히 위협적일 수 있거든요.”
― 일명 ‘n번방 방지법’이 시행되고 논란도 있습니다.
“대다수의 남자가 아동·청소년 착취 음란물을 즐기는 건 아니잖아요. 많은 젊은 사람이 제가 캠프에 합류하는 걸 알자, 제 메일로 제보를 해왔어요. ‘지금 음란물이 텔레그램에서 디스코드로 옮아가고 있다’ 젊은 남성들이 이런 걸 알려와요.”
― 인터넷에서 교수님의 인선에 불만을 터뜨리는 이들은 ‘페미’란 단어를 즐겨 쓰더라고요. 요즘 ‘페미니즘’을 두고 젊은 남성과 여성들 사이에 전선(戰線)이 형성된 듯합니다. ‘젠더(gender) 갈등’이 심각하다는 분석도 나오고요.
“젠더 갈등이 사실은 일루전(망상)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사람의 편견이나 차별은 사실 직접 만나서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면 금방 사라질 수 있거든요. 예전에 영호남이 얼마나 대결 구도였어요. 그런데 이젠 그런 논쟁은 사회의 주요 이슈는 아니잖아요. 사회적 경험이 많지 않은 젊은 사람들 중에 아직 남자들을 많이 경험하지 못한, 또는 여자들을 많이 경험하지 못한 어린 친구들이 인터넷 공간에서 일어나는 논쟁이 실존한다고 믿는 거예요.”
― 인터넷에서 상대 성을 실제보다 과장해서 나쁘게 묘사한 얘기나 일부 경우의 얘기를 일반적인 얘기로 여기는군요.
“착각하는 거예요. 저는 제일 친한 친구들이 ‘남자 사람 친구들’입니다. 남녀공학을 나오기도 했고요. 그렇기 때문에 남자가 어떻다는 선입견이 별로 없어요. 결혼도 하고 가족 안에 남자들도 있고요. 문제는 그런 경험들이 없는 여성들은 남성을 두려운 존재로 볼 수 있어요. 여자 경험이 많지 않은 일부 남성은 ‘여성들에게 성폭력 가해자로 몰릴지도 모른다’ 이런 불안감을 갖고 있고요.”
코로나19로 젠더 갈등 심화
― 코로나19 이후 우리 삶에 불안이 일상화되면서 더 심해졌겠네요.
“그렇죠. 인생 경험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굉장히 박탈되다 보니 막연한 불안감이 너무 심해졌어요. 불안이 심한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어떤 현상을 볼 때 단순하게 지각을 해요. 흑백 논리에 빠지기 쉽단 얘기지요. 결국은 서로 만나서 해결하지 않으면 계속 갈 수밖에 없어요. 코로나19가 끝나고 대면 접촉이 늘어나야 이 문제는 완화될 것이라 생각해요.”
― 삶의 토대가 불안해지니 잘 모르는 타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화풀이를 할 수 있단 얘기군요.
“그럴 수 있어요. 특히 젊은 남자들의 경우, 군복무를 두고 불만이 있을 수 있어요. 군대에 가면 1년 반, 길게는 우리 아들처럼 3년이란 시간을 보내야 해요. 졸업하고 취직하면 동기 여성들의 3년 후배가 되잖아요. 그들 입장에선 정당하지 않을 수 있어요.”
― 요전 인터뷰에서 군가산점을 언급한 게 그런 이유 때문일까요.
“군가산점만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서 봉사하는 사람에게 가산점을 주자는 겁니다.”
― 국가를 위해서 봉사하는 사람이라면요?
“지금 코로나19 사태에서 활약하는 젊은 간호사들, 그들의 노동력을 착취할 권리가 국가에 있을까 나는 의문이에요. 간호사 가산점을 줄 수도 있고요. 전방에서 희생을 한 군인들도 마찬가지예요. 군가산점제는 그런 분들을 대우하는 보상 중 하나인 겁니다.”
국가를 위해 인생의 일정 시기를 바친 이들을 대우해주자는 취지는 이해 가지만 논란이 될 수 있는 주장이란 생각도 들었다. 참고로 군가산점제는 군 복무자와 아닌 자를 차별한다는 이유로 1999년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 판정을 받았다. 2007년과 2012년에 군가산점제를 부활시키자는 주장이 나왔지만, 가산점제 부활이 아닌 병영문화와 징병제도의 개선이 더 합리적인 대안이란 결론으로 이어졌다. ‘간호사 가산점’도 어떤 형태가 될진 모르겠지만, 헌재로 간다면 군가산점제와 같은 신세가 될 수도 있다.
‘여혐’은 잘못된 용어
더 묻기도 좀 질리지만 젠더 갈등 얘기를 이어나갔다.
― 특히 일부 젊은 여성 사이에선 이성(異性)을 만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꽤 높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려면 실존하지 않는 불안감을 극복해야 해요. 여자들이 성폭력 피해를 입을지도 모른다라는 불안을 너무 크게 갖는 것도 적절하지 않아요.”
― 헤어질 때 상대에게 해코지를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의 ‘안전 이별’이란 용어도 있는데요.
“단어 자체가 성립하지 않아요. 이별이면 이별이지 안전 이별이 어디 있나요. 헤어지자 하니 폭력을 휘두르면 범죄예요. 신고해서 범죄로 처벌해야지요. 국가가 할 일이 그거예요. 국가가 해야 하는 일을 안 하고, 자구책을 마련할 수밖에 없게 만든 그게 해이예요. 전 그걸 못 보겠다 이겁니다. 우리가 왜 세금을 내면서 자구책까지 마련해야 해요?”
― ‘여혐’ ‘남혐’은 이제 일상어로 자리 잡았는데요.
“강남역 살인 사건 때 제가 그랬어요. ‘여혐 범죄라고 하지 마라, 여성이라는 이유로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랬더니 일부 래디컬한(급진적인) 페미니스트들에게서 제가 또 욕을 먹었어요.”
― 그러니까 여성이든 남성이든 뒤에 혐오 붙이지 말자는 건가요.
“그렇지요. 그저께(12월 8일) 밤 11시까지 캠프에서 토론을 했어요. 혐오주의 극복을 두고요. 미국처럼 혐오 범죄로 처벌만 하는 게 대안이냐, 그 외의 추가적인 방향으로 가야 하나. 저는 처벌주의는 답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이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토의할 예정입니다.”
― 혐오주의 극복에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일단 교육이죠. 타인에 대한 배려심, 존중, 그건 습관이거든요. 어쩌면 유치원 때부터 교육해야 되는지도 모르겠어요. 인성 교육이랄까. 근데 지금은 인성 교육이라고 하면 철학자들이 가르치잖아요.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를 가르치는 식으로는 아닌 것 같아요. 타인의 입장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방법, 거절과 수락을 구분하는 방법, 동의를 받는 방법 이런 걸 가르쳐야죠.”
― 타인과 소통하는 기술을 가르치란 얘기군요.
“그럼요. 대화의 기술, 건전하게 주목을 끄는 방법 이런 거 말입니다.”
일부 젊은 남성은 그를 비판하며 ‘알페스’를 언급한다. 알페스 처벌에 이 교수가 반대 주장을 냈단 이유다. 알페스(RPS·Real Person Slash)는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해서 만드는 소설을 뜻한다. 한국에선 여성 팬들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남자 아이돌들을 등장시켜 지어낸 동성애물 팬픽을 주로 뜻한다. A그룹의 B멤버와 C멤버가 연인 사이인 것처럼 설정하는 식이다. 소설 속엔 적나라한 성행위가 등장하기도 한다.
알페스를 두고 일부 젊은 남성이 하는 주장은 이렇다. ‘남자 아이돌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런 소설이 창작되고 읽히는 건 옳지 않다, 여성들의 동영상을 찍어서 돌려보는 n번방과 뭐가 다르냐.’ 이 교수의 답이 돌아왔다.
“소설이잖아요. 남자 아이돌이 그 소설을 읽고 자살하고 싶어 하나요? 그런 팬픽이 싫으면 인기도 포기해야지요. 그걸로 영리 이익을 취하잖아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이 그 동영상으로 영리를 취했나요? 픽션과 논픽션은 구분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이 교수는 대학원에서 심리측정을 전공한 후 경기대 교양학부 교수로 임용됐다. 경기대에는 교정(矯政)학과가 있는데, 교수로 임용된 후 재소자를 등급별로 분류하는 심사 절차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해달라는 요청을 받게 됐다. 그때부터 범죄심리학과 연을 맺었다. 그 뒤 경기대 대학원에 범죄심리학 과정이 신설되었고, 이 교수는 미국 샘휴스턴주립대에 교환교수로 다녀온 후 본격적으로 범죄심리학에 뛰어들었다. 샘휴스턴주립대는 대형 교도소가 있는 텍사스 헌츠빌에 있는 대학으로, 형사행정 전공이 유명하다.
이 교수는 범죄자의 심리를 연구하는 학자이지만, 여성이란 이유로 범죄자를 면담하지 못했다. 그러다 2004년 처음 범죄자와 마주 앉게 된다. 경남 마산에서 모녀가 남편이자 아버지인 A씨를 살해하고 토막 낸 사건이 일어났다. 시신 일부를 찾지 못한 경찰이 이들과 얘기를 해보라며 이 교수에게 의뢰한 건이었다.
“만나보니 아내와 딸은 수십 년간 남편에게 폭행을 당한 학대 피해 여성들이었어요.”
A는 평소 술을 마시면 부인을 자주 때렸다. 부인을 망치로 때려 병원 치료를 받게 하기도 했다. 26년간 이어진 폭력이었다. 죽은 날도 술을 마신 후 죽이겠다며 부인과 딸에게 욕설을 하며 망치를 휘둘렀다. 오랫동안 폭력을 당해온 모녀는 피해자인지 피의자인지 알 수 없을 정도의 상태였다.
경찰이 작성한 사건 조서에 쓰여 있는 한 단어가 유독 이 교수의 눈에 들어왔다. ‘앙심’이었다. 경찰 조서엔 ‘부부간 불화가 있던 중 앙심을 품고 배우자를 살해한 사건’이라 적혀 있었다.
“앙심을 품고 계획적으로 살인한 게 아니라 ‘생존에 대한 공포’ 때문이었다고 설득할 수 있다면 평생 이 주제로 연구를 해도 시간이 아깝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이후에 배우자에게 학대를 당하다가 살해한 경우, 법정에서 정당방위였다는 걸 일정 정도 인정받은 경우가 있나요?
“단 한 건도 없습니다. 소귀에 경 읽기예요.”
“남자 범죄 피해자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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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 28일 대전역 일원에서 데이트 폭력, 스토킹 행위 예방을 위한 캠페인이 열렸다. 사진=조선DB |
“연쇄살인범 정남규예요. 많은 범죄자를 만나봤지만, 이 사람은 특히 더 위험한 사람이란 느낌을 받았어요. 안정적이지 않아요. 결국 교도소 안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어요.”
정남규는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서울, 경기도 지역에서 14명을 살해하고 19명에게 중상을 입힌 연쇄살인범이다.
― 정남규가 가장 처음 공격한 게 남자아이들이었죠?
“남자아이 두 명을 죽였어요. 성별과 관계없이 자기 방어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 겁니다. 왜 여자들만 약자라는 선입견을 갖는지 잘 모르겠어요. 제가 피해자를 보호하고 회복을 돕자고 할 때는 여성에게만 한정 짓는 게 아니에요. 남자 범죄 피해자들도 많아요. 이재명 후보에게 소송을 제기한 분의 성별은 남자입니다. 스토킹 살인범에게 아내와 딸을 잃은 유가족이죠.”
국민의힘 성폭력특위는 1호 법안으로 ‘스토킹 처벌법’을 발의했다. 최초 발의된 후 22년 만에 국회를 통과했다. 2020년 10월 21일부터 시행됐다. 반복적 스토킹 행위자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 흉기 휴대 시엔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을 물린다. 이 교수도 입법에 참여했다.
스토킹 처벌법엔 한 가지 우려스러운 조항이 있다. 바로 ‘반의사불벌죄(反意思不罰罪)’다.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의 고소가 없어도 기소할 수 있지만, 피해자가 범인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기소할 수 없고 기소한 후에 그러한 의사를 표시하면 형사재판을 종료해야 하는 범죄를 뜻한다. 이걸 노리고 범인이 피해자를 회유, 협박할 수 있다.
― 스토킹 처벌법에 반의사불벌죄 조항은 왜 들어간 건가요.
“우리가 법안을 만들고 경찰에서 최종안을 갖고 왔어요. 경찰 쪽에선 연인 간 폭력은 가정폭력에 준하는 걸로 보는 거예요. 우리나라에선 가정폭력을 범죄로 여기지 않아요. 그래서 그 안에 반의사불벌죄가 있어요. 가정폭력 처벌법은 가정을 보호하기 위한 법률이지, 여성의 생명권을 보호하기 위한 게 아니에요.”
― 가정이 깨지지 않게 하는 걸 가정 구성원의 안녕보다 우선한다는 거군요.
“대한민국에서는 가정을 신성시해요. 좀 맞고 때리고 이런 일이 있어도 가정이 해체되는 걸 선택하지 않는 나라이다 보니, 피해자가 맞고 문제 제기를 해도 중간에 취하하면 얼마든지 가족이 유지될 수 있게 하겠다, 그런 취지의 조항이 반의사불벌죄예요. 스토킹 처벌법에도 따라온 겁니다.”
― 가족도 아닌 타인 사이에 일어난 범죄를 두고 이런 조항을 왜 넣죠?
“반의사불벌죄라는 게 연인 간에 일어나는 스토킹에는 적용될 개연성이 없는데 말이죠. 가해자에게 피해자를 협박할 기회를 보장해주는 거예요.”
― 법안 발의할 때 왜 의견을 표명하지 않으셨어요.
“표명했지요. 근데 그때 누가 제 얘기를 들어요. 제 말이 무슨 말인지도 그 시절엔 그분들이 잘 몰랐을 거예요. 지금은 제 목소리가 훨씬 많이 반영돼서 감동 중이에요.”
― 어떻게 그런 변화가 일어났나요.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전 권위적인 사람이 아니라서 지위라는 걸 중요하게 여기지 않지만, 중요하게 여기는 분들도 계신가 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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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性) 착취물을 공유하는 텔레그램 대화방 ‘n번방’의 최초 개설자인 문형욱(24·대화명 갓갓)이 2020년 5월 18일 경북 안동경찰서에서 얼굴을 가리지 않고 카메라 앞에 섰다. 사진=뉴시스 |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어요. 디지털 범죄 문제가 너무 심각해요. 랜덤 채팅 앱만 켜면 미성년자에게 성매매 쪽지가 수도 없이 날아와요. 피해자의 연령이 요새는 초등학생까지 내려갔어요. 초등학교 아이들이 디지털로 성적인 유인을 당해서 성폭력 피해, 성착취 피해를 당하고 그 장면이 영상물로 찍히는 빈도가 굉장히 늘었어요.”
― n번방 사건은 끝나지 않았네요.
“더 큰 문제는 아이들이 그때그때 피해에서 구제가 되면 좋은데, 자기가 입은 피해가 뭔지 몰라요. 초등학생들 사이에선 이걸 유머로 소화를 하고 있어요. 피해 회복이 안 되면 결국 사춘기에 가출할 수밖에 없어요. 가출 패밀리에 들어가 4~5년 있다 보면 전부 아동학대 행위자들이 돼요. 임신과 출산. 아동학대 치사 사건이 7~8년 전보다 10배 는 건 아세요?”
― 10배요?
“10대 후반, 20대 초반 남녀 아동학대 가해자들이 어디서 나왔을까요. 학대 치사당하는 애들은 보통 첫 번째 애가 아니에요.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아이들을 죽이지요. 이 가해자들이 어디에 있다 어떻게 생겨난 건지 이 사회가 주목하나요? 그렇지 않아요. 살해죄로 엄벌하라는 주장만 하지요.”
― 성범죄 피해자가 아동학대 가해자가 되는 끔찍한 순환이네요.
“얼마 전에 사법연수원 50주년 세미나가 열렸어요. 거기에서 그런 얘기가 나왔어요. 해외에서 열리는 판사 회의 같을 곳에 가면 ‘한국은 차일드 트래피킹(child trafficking·아동 인신매매)이 너무 심각한 나라’라고 한답니다. 랜덤 채팅 애플리케이션에서 아이들을 사고파는 걸 허용하는 나라라는 거예요. 외국에 그렇게 알려져 있는 겁니다.”
― 발달한 IT기술로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일까요.
“다크 웹에서 ‘코리안 걸스(Korean girls)’를 검색하면 수없이 많은 한국인 초등학생, 중학생들의 음란물이 떠요. 소아성애적 음란물을 이렇게 많이 제작해서 다크웹에 유포시키기론 우리나라가 1등일 겁니다.”
― 인터넷 망도 발달해서 성착취물을 빠른 속도로 주고받을 수 있지요.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 같은 분은 그걸로 거부(巨富)가 됐잖아요. 양진호의 죄명에 성범죄는 없어요. 직원에게 갑질을 했다는 거죠. 전 법치주의가 엄격하게 적용되지 않는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상상하기조차 싫어요. 그래서 선대위에 합류한 것이기도 해요.”
“한국은 심각한 아동 인신매매국”
대검찰청 통계를 보면, 4대 강력범죄(살인·강도·방화·성폭력) 중 성범죄의 비율은 91.3%다. 10년간(2010~2019년) 살인·강도·방화 등 다른 강력범죄는 줄었는데 성범죄는 급증했다. 2010년 2만584건(73.2%)이었던 것이 2019년 3만2029건(91.3%)으로 늘었다. 10년 동안 50% 이상 늘었다.
― 성범죄가 유독 늘고 있는 이유가 뭘까요.
“거대한 경제적 이득을 목적으로 하는 성범죄 카르텔이 있어요. 성매매가 산업이 된 거예요. 전국에서 성매매를 이렇게 왕성하게 하고, 특히 아동·청소년 성매매가 이렇게 성한 나라가 많지 않아요. 휴대폰으로 얼마든지 어린애들을 살 수 있잖아요.”
― 성범죄 조직이 있다는 얘기군요.
“거대한 영업 조직이 있고, 그들의 일종의 협회도 있고요. 그 협회가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시위를 하지 말란 법도 없고요. 성매매는 산업의 한 분야가 됐어요. 여자 가해자들도 그 안에 있어요. 성매매 알선 강요에 가담한 여자 가해자들이 얼마나 늘어났는지 아세요. 남자들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 랜덤 채팅 앱이 정말 큰 문제군요.
“아이들이 하는 게임 있잖아요. 그곳의 대화창에도 들어가서 아이들에게 접근을 해요. 그런 일들이 뻔히 일어나는 걸 알면서도 왜 나라에서 단속을 안 합니까. 아이들이 엉망진창이 돼서 다시 아동학대 치사 사건의 가해자가 돼요. 잔인한 사람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아요. 잔인하게 발달하는 거지요. 수년간 착취를 당하면 인간성을 잃어버려요. 어떻게 제가 입을 닫고 있어요?”
이 교수는 ‘입을 닫고’ 있지 않았다. 〈그것이 알고 싶다〉든, 예능 프로그램이든, 라디오든, 세미나든 성범죄, 아동학대 범죄를 되짚는 곳이면 부르는 대로 갔다. 인터뷰를 하며 이 교수를 관찰해보니 유독 눈에 띄는 점이 있었다. 타인에게 잘 보이려는 생각이 별로 없어 보였다. 일반적으로 여성이든 남성이든 사진이나 영상에 멋진 모습으로 찍히길 바란다. 기사 내용도 마찬가지다. 그는 그런 것들에 거의 관심이 없어 보였다. 성범죄, 아동학대 범죄 얘기를 할 땐 열성적이었다. 그가 TV나 라디오 등 언론에서 자주 보이는 건 명예욕이나 현시욕, 인정 욕구 때문은 아닌 듯하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보였다.
죽은 사람들이 건네준 임무
― 왜 그렇게 열심인가요.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걸 보잖아요. 그러면 정말 젖먹던 힘까지 끌어낼 수밖에 없게 돼요. 비참한 죽음을 전 너무 많이 봤어요. 그분들이 나한테 남겨놓은 임무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해요. 그분들의 한을 푸는 데 눈곱만큼이라도 나의 능력이 쓰일 수 있다면 굉장한 영광이에요. 나 같은 게 세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게 뭐라도 해야죠. 아무것도 남겨놓지 않고 가기엔 시간이 너무 아까우니까요.”
― 범죄심리학에 뛰어들고 나서 인간에 대한 생각이 좀 바뀌었나요.
“전 인간 자체에 굉장히 비관적이에요. 누구도 잘 안 믿어요. 정말 믿을 만한 사람으로 검증되기 전엔요. 저의 검증 절차는 매우 엄격해요. 그걸 통과한 몇몇만 저는 믿어요. 저의 인간관계는 대부분 아주 옛날부터 알던 사람 몇 명에 불과해요. 새로운 친구를 사귀지 못하는 병이 있지요.”
― 신변 안전에도 신경을 쓰시나요.
“노력을 하죠. 애당초 전 위험해질 수 있는 곳엔 안 가요. 아무하고나 만나지도 않고요.”
그는 천주교 신자다. 세례명은 데레사.
“어쩌면 이런 모든 생각은 천주교 신자이기 때문에 품게 되는 것인지도 몰라요. 내가 할 수 있는 종교적 신념의 발현이라고 할까요.”
― 원래 멘탈이 강했나요.
“원래도 좀 강했던 것 같아요. 저는 버스 정류장에서 진짜 한참 올라가야 되는 산꼭대기 집에서 살았어요. 할머니 집이었는데 그래서 전 삼촌, 고모들하고 같이 자랐어요. 엄마가 제 한 살 아래 남동생을 낳고는 저를 할머니에게 맡겨버렸어요. 제 이름도 살던 동네 이름에서 따와서 지은 거예요. 부산 수정동에서 살았거든요. 여자아이 이름으로 예쁘다고요? 유치원 갈 때까지 그 이름도 제대로 불리지 않았어요. 모든 사람이 저를 누나라 불렀어요.”
― 왜 누나인가요.
“세상이 장자인 남동생을 위주로 돌아갔으니까요. 장손의 누나는 살림 밑천이라는 얘기를 너무 많이 듣고 자랐어요. 제가 이수정이라는 저만의 간판을 단 지도 얼마 안 됐어요. 그런 게 페미니즘이에요.”
‘김병욱 의원 사위 루머’까지 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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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7일 국회에서 열린 이용호 무소속 의원 입당식에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이수정 경기대 교수(공동선대위원장)가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조선DB |
“악플에 별로 상처받는 타입은 아니고요. 전공이 심리 분석이다 보니 악플도 분석하며 읽습니다. 악플을 보면 어떤 흐름이 있어요. 예컨대 과거에 어떤 진보 계열에서 왜곡된 정보가 흘러나왔는데, 그게 이젠 저를 공격하는 도구로 국민의힘 지지자들을 통해 올라오는 현상들이 읽혀요. 흥미로워요. ‘인터넷상에서 정보가 공유되고 있구나, 어떤 흐름이 있구나….’”
― 소위 ‘좌표’를 찍힌 건데요. 앞으로도 계속 공격받지 않을까요.
“전 일단 관심의 중심에서 벗어났어요. 선대위에 합류를 못 하게 할 생각으로 저를 공격했는데, 합류했기 때문에 이제 제가 공격받을 이유는 딱히 없다고 생각해요.”
― 교수님이 ‘고유정을 이해한다’고 했다는 얘기도 나왔어요.
“‘고유정이 남편뿐 아니라 아이도 살해한 것 같다’고 의견서를 쓴 사람이 저예요. 제가 그런 얘기를 떠들고 다니지 않으니 왜곡하지요. 김병욱 국회의원이 제 사위라는 말도 돌았어요. 김 의원이 성범죄 혐의를 받을 때 기다려보라고 기자들한테 답한 게 그런 이유더라고요.”
― 김 의원은 경찰 조사에서 무혐의 결정을 받았지요.
“어떻게 소문으로 처벌합니까. 피해자가 결국 안 나왔잖아요. 그런 점을 지적했더니 김 의원이 제 사위라고요? 저에겐 그런 허위 정보와 싸우고 있을 시간이 없어요.”
― 고유정 발언은 문제가 된 강연을 동영상으로 확인했다면 전혀 문제 삼을 게 아니란 걸 알 텐데요. 김병욱 의원 사위설도 그렇고요. 어떻게 그렇게 바로 확인이 되는 허위 사실을 진실인 것처럼 유포할까요.
“그냥 왜곡하고 싶은 거예요. 예전에 제가 도왔던 피해자와 피해자의 변호사, 심지어 검사까지 저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보내오고 난리가 났어요. 왜 그들까지 괴롭힙니까. 저는 그렇게 산 사람이 아니에요. 제가 아니라면 아닌 거예요. 저는 그런 문제로 어디에 휘말릴 실수를 눈곱만큼도 하지 않고 살았어요. 그랬으면 벌써 날아갔을 거예요. 얼마나 처절한 검증 과정이 있는데요. 방송에 얼굴을 내밀며 이렇게 살아남기 쉽지 않아요.”
‘피해호소인’이란 2차 가해

이 교수는 2020년 국민의힘 성폭력대책특위에서 활동하며 국민의힘과 연을 맺었다. 그 전에는 더불어민주당 쪽과 가까웠다. 그를 국민의힘으로 가게 한 건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었다.
“17대 국회 때부터 민주당을 도왔어요. 김상희 국회부의장, 정춘숙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 같은 민주당 의원들이 토론회를 열면 달려가 발표도 하고 사회도 봤어요. 그래서 21대 국회에 기대가 정말 컸어요. 부동산 법들이 저렇게 쉽게 통과되니 여성의 안전과 관련한 법도 쉽게 통과될 거라 믿었고요. 그런데 박원순 전 시장 사건이 터지고 민주당 여성 의원들이 입을 닫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박원순 전 시장의 성범죄 사건 때문에 특이한 용어도 대중화됐다. ‘피해호소인’. 피해자의 호소를 ‘사실이 확인 안 된 일방적인 주장’으로 한번에 깔아뭉갤 수 있는 참 편리한 용어다. 같은 잣대를 대보면 미투운동의 포문을 연 서지현 검사도 ‘피해호소인’이다. 서 검사의 성추행 폭로를 막기 위해 인사 보복을 한 혐의로 기소된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은 최종 무죄를 받았다. 서 검사는 박원순 전 시장 사건에 대해 어떤 입장이냐는 문의를 받자, ‘공황장애’를 호소하며 페이스북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박원순 전 시장 사건이 세상에 드러나자, 갑자기 말이 없어진 건 일부 여성단체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기묘하고 어색한 침묵은 오래 잊지 못할 것 같다.
― 피해호소인은 정치사나 여성운동 역사에 길이 남을 단어입니다.
“그래서 제가 뛰쳐나온 거잖아요. ‘그들과는 함께할 수 없다.’”
심리학엔 공정한 세상 가설(Just World Hypothesis)이라는 게 있다. 많은 사람이 세상이 정의롭다고 가정한다는 이론이다. 세상이 딱히 그렇지만도 않은데 말이다. 그러니 어떤 범죄가 일어나면 피해자가 잘못해서 불행한 사태가 벌어졌지, 피해자가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 그런 불공정한 일이 일어났을 리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자신의 인생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일어나는 원인 중 하나일 수 있다.
― 박원순 시장 사건 피해자의 경우, 박 전 시장 지지자들로부터 엄청난 2차 가해를 받았지요.
“세상에 피해 사실을 알린 후 그분은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어요. 복직은 아직 못 했고요.”
― 자신들이 완전무결하다고 믿는 정치인들을 계속 숭상하기 위해 피해자를 격하하는 걸까요.
“피해자만 격하하는 게 아니라 누구라도 격하해요. 제가 굉장히 불만이었던 건 사실, 조국 전 장관 사건이었어요. 제가 법정에서 숙명여고 입시 비리 사건의 전문가 증언도 했어요. 왜 보통 사람들은 처벌받는데 높은 사람들은 처벌받지 않나요?”
― 조국 전 장관과 지지자들은 지금도 잘못한 것이 없다는 입장인데요. 《조국 백서》를 보니 시스템 잘못이라고 하더군요.
“거기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했어요. 제가 말을 안 해서 그렇죠. 그러더니 그 후엔 피해호소인이라니요.”
‘이재명 후보는 위험한 사람’
지난 11월 24일 이재명 후보는 2006년 헤어진 여자친구와 어머니를 흉기로 37차례 찔러 숨지게 한 조카를 변호했던 과거를 사과했다. 그러면서 조카의 범죄를 ‘데이트폭력’이라 표현했다.
이 교수는 “민주당에 여성 전문가들이 많은데, 그분들은 왜 데이트폭력 발언에 아무 말이 없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 ‘사람 분석을 할 때 입에서 나오는 말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셨지요. 이재명 후보는 어떻습니까.
“말해서 뭐 하나요.”
― 원희룡 전 제주지사의 아내인 강윤형 신경정신과 전문의는 이 후보를 두고 ‘소시오패스의 전형’이라 진단했던데요.
“그건 그분에게 물어보시지요.”
― 교수님의 전공 분야인 심리 측정으로 이 후보를 보면 어떤가요.
“저는 인신공격할 생각이 없어요. 낙인을 찍을 생각도 없고요. 그런데 위험하다, 나는 이런 느낌이에요.”
― 어떤 측면에서 위험하다는 뜻인가요.
“글자 그대로예요. 제 기준으로 봤을 때 위험한 사람이에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12월 9일 채널A 인터뷰에서 이 교수를 두고 이런 얘기를 했다. ‘제 당대표 당선 이후에 국민의힘이 지금까지 가져왔던 방향성과 다른 이야기를 한다면 적극적으로 교정하고 제지할 것이다’ ‘이대남’들을 의식하는 발언인 듯했다.
‘이준석 대표 걱정하는 일 안 일어날 것’
― 이 대표의 말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교정하려면 교정하시라. 제가 제안한다고 정책이 마구 나가는 게 아닙니다. 선대위에 정책 검증팀이 세 팀이 있어요. 거기서 토론을 하고 받아들여져야 정책위원회로 올라가요. 정책위원회를 거치고 법률가들에게 검토를 받아야 해요. 그래야 발표가 돼요.”
― 여러 과정을 거치는군요.
“제 답을 써주세요. ‘대표님이 걱정하시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다. 걱정 마시라.’”
선대위 합류 후, 정치에 뛰어드는 건지 묻는 질문이 그에게 쏟아졌다. 그때마다 그는 정치는 안 한다고 잘라 답했다. 교수로 정년을 마칠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비관적인 사람일까, 비판적인 사람일까. 짐짓 아닌 척 굴지만, 그는 희망을 품고 있는 사람으로 보였다. 모든 사람이 이 세상은 틀려먹었다며 뒤돌아 가버려도 끝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킬 듯한 소박하지만 단단한 희망 말이다. 그는 비관적인 사람이 아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그러므로 그가 언젠가 정치를 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움직이는 목적이 자잘한 인정 욕구를 채우는 것이거나, 권력 획득이 아니기에 오히려 정치를 할 수 있단 얘기다. ‘정치할 거냐’ 책망하듯 그에게 따져 묻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범죄를 예방하고 범죄 피해자들을 도우며 어느 만큼의 세월을 살아온 전문가가 국회나 국무회의에 들어가는 게 뭐가 나쁜 건지도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