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인터뷰] 中 영화와 할리우드 관계 연구하는 스탠리 로젠 : 월간조선

영화 〈장진호(長津湖)〉가 중국 영화 역사상 최고의 인기라고 한다. 공산당 창당 100주년에 맞춰 개봉됐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프로파간다 영화라 볼 수 있다. 전체주의 체제는 권리와 개인이 아닌, 의무와 국가를 우선시한다. ‘애국 영화’라는 이유로 의무적으로 봐야만 한다. 글로벌 박스 오피스 1위에다 수천억원 단위의 흥행이라고 하지만, 14억 인구 대국에서 벌어진 천편일률적인 체제 선전에 불과하다. 자유가 없는 곳에는 창조도 재미도 있을 수 없다. 봐야 할 영화가 넘치고 넘치는데, 공산주의+중화사상에 기초한 프로파간다에 관심을 쏟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영화의 소재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장진호전투를 배경으로 했다는 점을 듣는 순간 생각이 달라졌다. 도대체 어떤 관점에서 당시 전쟁을 묘사했을까? 즐기는 영화가 아니라, 중국공산당의 세계관을 이해하기 위한 교본이라고 생각하고 중국 친구의 도움으로 비디오를 구해 살펴봤다. 필자 인생을 통해 ‘고속’ 감상한 첫 번째 영화다. 예상이야 했지만, 황당한 스토리에다 뻔한 설정이기에 3배속으로 돌려 30여 분 만에 끝냈다.

샤프 파워

‘소프트 파워’ 개념을 정립한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교수. 사진=조선DB

이 영화를 본 후 처음 든 생각은 ‘샤프 파워(Sharp Power)’라는 말이었다. 2017년 말 처음 등장한 샤프 파워는 ‘21세기형 조작 개념’으로 풀이된다. 기존의 파워 개념인, ‘소프트 파워(Soft Power)’와 ‘하드 파워(Hard Power)’로 설명하기 어려운 새로운 유형의 대외(對外) 공작이다. 주로 중국과 같은 독재국가가 자유민주주의국가에 대해 행하는 여론 왜곡으로, 엔터테인먼트·저널리즘·아카데미즘을 통해 자국(自國)에 관한 정보를 유리하게 조작 통제해나간다.

‘소프트 파워’라는 개념을 창조해낸 하버드 대학 조지프 나이(Joseph Nye) 교수는 샤프 파워를 하드 파워의 변종으로 분류하고 있다. 언뜻 보면 소프트 파워로 보이지만, 공격적인 허위 정보를 통해 자국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새로운 형태의 글로벌 전투가 바로 샤프 파워의 실체다. 단순히 왜곡 전파만이 아니라, 관계자들을 돈으로 유도·협박·매수하는 일도 행한다. 미국과 유럽에서 추방된 공자학원은 중국발 샤프 파워의 대표적인 본보기로 손꼽히고 있다. 흥미롭게도 한국은 아직도 20군데 이상의 공자학원이 있는 중국발(發) 샤프 파워의 해방구(解放區)로 남아 있다.

올해 5월 말 시진핑(習近平)은 ‘국제 커뮤니케이션’ 능력 강화를 역설했다. 간단히 말해 중국의 호감도를 높일 만한 얘기를 해외에 적극 전하라는 명령이다. 영화는 국제 커뮤니케이션 강화를 위한 최적의 수단 중 하나다. 영화 〈장진호〉도 시진핑이 내린 국제 커뮤니케이션 강화의 성과물이라 볼 수 있다.

소프트 파워를 가장한 샤프 파워 영화지만, 주목할 부분이 하나 있다. 바로 할리우드와의 관계다. 중국의 영화산업은 할리우드를 모델로 하고 의식하면서 성장해왔다. 영화를 통한 중국의 소프트 파워, 나아가 샤프 파워의 원류(源流)를 파헤치면 바로 할리우드로 이어지게 된다. 주기적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최근 중국의 할리우드 영화 수입 중단이 한층 더 강화되고 있다. 중국발 샤프 파워 프로파간다 영화가 활성화될수록, 거꾸로 스승 격인 할리우드 영화의 중국 상영이 줄어들고 있다. 크게 본다면, ‘미국의 할리우드발 소프트 파워 vs 중국발 왜곡 체제선전 샤프 파워’ 사이의 대결구도로 보인다.

2세대 중국 연구가

할리우드와 중국의 관계·역사를 통해 본 시진핑 체제하의 중국 분석이라고 할까? 최근 한국에서 폭발적 인기를 누린 할리우드 액션 영화 〈이터널스(Eternals)〉가 왜 중국에서는 상영금지 됐는지, 미중(美中) 디커플링 시대를 맞아 할리우드 영화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언젠가 ‘메이드 인 차이나’ 영화가 세계를 석권할 수 있을지….

40여 년 가까이 중국 문제에 주목하면서, 현재 남(南)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중국 영화와 할리우드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는 스탠리 로젠(Stanley Rosen) 박사는 이 같은 의문에 답할 수 있는 최적의 전문가다. 그는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에 이은 중국 전문 제2세대 연구가로, 유창한 중국어를 기반으로 중국 현지 영화 관계자들을 상대로 한 교육도 주기적으로 행하고 있다. 인터뷰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산 철강의 수입 금지를 역설한 10월 31일 이뤄졌다. 바이든은 중국산 철강을 환경을 무시한 ‘더러운(dirty)’ 제품으로 규정했다. 줌(Zoom) 비디오를 로스앤젤레스 스탠리 로젠 박사의 연구실로 연결해 할리우드와 중국에 관한 얘기를 들어본다.

― 올림픽 직전이기도 하지만, 중국 전역이 애국 열풍에 휩싸인 듯하다. 영화 〈장진호〉가 화제라고 한다.

“아직 비디오를 입수하지 못해 보지는 못했다. 영화 트레일과 중국 내 각종 평론을 통해 분석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 산하 기관지인 《인민일보》의 《글로벌 타임스》가 최근 공표한 사설이 인상 깊다. ‘중국 영화 역사상 최대 관객’이란 타이틀로, 영화 〈장진호〉를 통해 전 세계가 ‘실존한’ 중국 영웅들을 만나게 됐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사설에서 흥미로운 것은 할리우드 영화에 비교한 부분이다. 어드벤처·아메리칸 캡틴 같은, 상상에 의존한 ‘페이크(fake)’ 영웅담이 아니라, 장진호를 무대로 한 중국인의 실화(實話)라는 점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연이겠지만, 〈장진호〉 상연 한 달 전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 철수가 본격화됐다. 미국이 보여준 힘든 상황과 반대되는, 중국 영웅들의 승전보가 〈장진호〉 화면 전체에 넘실댄다. 중국 영화는 전적으로 국내용 프로파간다다. 〈장진호〉를 본 중국인이라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 미군을 오합지졸 정도로 무시할 것이다.”

‘중국을 위한 희생’ 강조

중국 영화 〈장진호〉.

― 중국인, 특히 젊은이들은 이미 할리우드 영화에 익숙하다. 단순하고도 황당한 체제 선전용 영화에 간단히 빠져들 수 있다고 보는가.

“14억 중국인을 하나로 일반화해서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장진호〉는 중국인 대부분에게 잘 어필하는 영화로 평가된다. 〈장진호〉는 제작비용이 무려 2억 달러에 달하고 홍콩에서 활동한 3명의 유명한 영화감독이 합심해서 만들었다.”

― 영화 〈장진호〉가 새삼 부상한 이유는 무엇인가.

“장진호전투는 이미 미국에서 전쟁 기록물로 만들어져 상영됐다. 추운 날씨와 중공군 기습공격으로 고생했다는 내용이다. 한국전쟁 당시로 돌아가면, 1949년 막 집권한 중국공산당이 의용군이란 이름하의 수십만 병력을 북한에 파견했다는 점이 놀랍다. 미군에 비해 사상자가 훨씬 많지만, 중국을 지키기 위해서는 아무리 엄청난 희생도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영화 속에 배어 있다. 시진핑의 최대 목적이겠지만, ‘중국을 위한 희생’이 이 영화 속 핵심 테마다.”

― 중국의 과거 프로파간다 전쟁 영화와 비교할 때 어떤 점이 특이한가.

“스토리·기술·자금·연출이란 측면에서 볼 때, 인기를 끈 전쟁 프로파간다 영화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장진호〉는 돈도 엄청 투자했고, 광고를 비롯한 마케팅도 충분히 했으며 기술적으로 향상된 작품이란 점에서 남다르다. 〈장진호〉 출시 전까지는, 2017년의 〈늑대 전사(戰狼) 2〉가 전쟁 프로파간다 최고 인기작이었다. 아프리카에 간 중국인 우징(吳京)이 미국 테러리스트 집단에 맞서 싸우면서 세계를 구한다는 내용이다. 〈늑대 전사 2〉가 새로운 장르를 연 작품이기는 하지만 〈장진호〉가 보여준 가장 중요한 요소가 없다는 점에서 한 차원 아래다. 바로 ‘희생’이다. 눈부신 활약은 있지만, 죽음을 통한 자기희생이 없다. 〈장진호〉에서는 많은 중국인이 죽는다. 〈장진호〉가 더 인기를 끄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美 영화 〈패트리어트〉

중국군 특수요원들의 활약을 그린 〈늑대 전사 2〉.

영화 〈늑대 전사〉 속의 주인공은 중국 영웅의 해외 진출 1호에 해당한다. 중국인 친구에게 그 영화를 어떻게 봤는지 물어봤다. 흥미롭게도 보통 중국인들은 〈늑대 전사〉의 주인공을 ‘대륙의 007’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007처럼 우아하고 멋있고 명석한 불사신(不死身)이 ‘늑대 전사’라는 것이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늑대 전사’는 ‘대륙의 007’이 아니라 21세기에 부활한 ‘힘자랑 람보’ 같다. 머리를 쓰는 것과 무관한, 불사신의 전지전능 싸움꾼에 불과하다. 여유와 쿨한 모습 대신, 폭탄과 폭발을 뛰어넘는 잔뜩 화난 모습만이 기억에 남는다. 그러나 이 같은 얘기를 중국인 친구에게 할 수는 없었다. ‘대륙의 007’을 기다리는 중국인의 심정이 너무도 애틋하고 절실해 보였기 때문이다. 〈늑대 전사〉 제3탄 제작이 이미 시작됐다고 한다. 턱시도 차림에다 고급 자동차, 미인을 대동한 ‘대륙의 007’이 눈앞에 나타날지 모르겠다.

― 앞으로 〈장진호〉 스타일의 영화가 계속 나올 것이라고 보는가.

“물론이다. 영화는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산하 핵심기구가 담당한다. 몇 년 전부터 영화를 통한 애국심 향상에 힘을 쏟고 있다. 3년 전 중국 영화계 핵심 인사로부터 들은 얘기지만, 멜 깁슨(Mel Gibson) 주연의 〈패트리어트(The Patriot)〉가 중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미국 영화라고 한다. 애국심도 조장하지만, 흥행 면에서도 대성공을 거뒀다는 점에서 중국 영화의 모범 작품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 중국 영화의 외국 진출 상황은 어떤가.

“외국에 진출은 하겠지만, 당분간 관객의 대부분은 해외 거주 중국인에 국한될 것이다. 〈장진호〉는 물론 〈늑대 전사 2〉 관객의 99%는 중국인이다. 내가 살고 있는 로스앤젤레스에는 중국인 커뮤니티가 많다. 중국과 관련된 많은 영화가 미국 내 중국인과 중국 자본에 의해 만들어졌다. 중국인과 해외 거주 중국인, 나아가 중국인 부인이나 여자친구를 가진 외국 남성이 중국발 영화의 주된 수요자들이다.”

중국에서는 볼 수 없는 영화들

클로이 자오 감독. 사진=AP/뉴시스

― 최근 할리우드가 중국 관련 영화, 〈샹치(Shang Chi)〉〈블랙위도우(Black Widow)〉〈이터널스〉 3편을 선보였다. 이들 영화는 제작 과정에서부터 중국과 불편한 문제가 있다고 들었는데 현재 어떤 상황인가.

“세 영화 모두 중국에서는 볼 수 없는 영화다. 최근 출시된 〈이터널스〉는 감독인 클로이 자오(Chloé Zhao)가 원인일 듯하다. 지난해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중국 여성이지만, 외신과 행한 인터뷰 내용이 중국인의 비위를 건드린 듯하다. ‘중국 문화에 자부심은 갖고 있지만, 나는 글로벌 무대를 상대로 한 영화감독’이라는 발언이 핵심이다. 중국을 대표하는 감독이란 말을 하지 않으면서 중국인의 반감을 샀다고 볼 수 있다. 〈샹치〉의 경우도 중국인을 악당으로 묘사한 부분이 많다는 점에서 관심 밖이 됐다. 〈블랙 위도우〉는 정확한 이유도 모른 채 중국에서 공개되지 못하고 있다.”

필자가 중국과 첫 인연을 맺은 것은 1993년이다. 한중(韓中) 수교 1년 뒤로 현장 연구차 베이징(北京)에 들렀다. 당시 머물렀던 곳은 천안문 근처의 3층짜리 타이베이(大北)호텔이었다. 지금은 거의 70층 건물이 들어선 곳으로 변했지만, 원래 베이징 주둔 일본군 총사령부 건물이었다고 한다.

당시 흥미롭게 본 것은 호텔 바로 옆에 붙은 건물이었다. 작은 건물이었는데, 영화관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대낮에 보러 갔지만, 인산인해(人山人海)였던 기억이 난다. 통역으로 함께 갔던 중국인은 “‘자유의 공간’으로 불리는 곳이 대륙 전체를 통해 딱 세 군데 존재한다”고 말했다. 화장실·무도장, 그리고 영화관이다. 시골을 무대로 한 영화는 너무도 지루했다. 영화관은 담배 연기로 채워져 숨 쉬기도 곤란했다. 상영 후 대략 10분 만에 뛰쳐나온 것이 처음 접한 중국 영화에 관한 기억의 전부다.

할리우드와 중국

― 할리우드와 중국의 관계는 어떤가.

“중국은 할리우드의 총수입액 가운데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큰 시장이다. 코로나19 확산과 함께 대폭 축소됐지만, 중국은 여전히 매력적인 시장이다. 2017년 중국 정부는 1년 상영 외화 쿼터를 20개에서 34개로 늘렸다. 할리우드가 한층 더 중국에 적극적으로 다가갈 수밖에 없다.

중국에 처음 진출한 할리우드 영화사는 워너브라더스(Warner Bros)다. 1994년으로, 해리슨 포드가 주연한 〈도망자(The Fugitive)〉를 수출했다. 당시 중국 영화 환경은 아주 열악했다. 기술적 수준은 물론, 모든 영역에서의 할리우드에 대한 중국의 수요와 요청이 폭증했다. 할리우드를 열심히 배우겠다는 것이 당시 중국의 일관된 자세였다. 따라서 할리우드와의 인적 교류도 활발하게 이뤄졌다. 2003년부터 외국 영화 1년간 쿼터가 20개로 확대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할리우드가 중국에 집중하게 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상황은 2010년을 전후해 달라진다. 할리우드를 어느 정도 알게 되면서 그에 대한 중국의 수요와 기대도 줄어들게 된다.”

― 할리우드가 볼 때 중국은 아직 일확천금 신천지인가.

“물론이다. 할리우드에 대한 중국 측 열기가 식었다고는 하지만, 할리우드와 중국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중국어로 만들어진, 중국 영화의 현실을 보자. 〈하이 맘(你好)〉은 올해 2월 춘절(春節) 때 최고 인기를 구가한 영화다. 시간·공간 이동을 통해 과거의 어머니와 만나는 코미디 영화다. 재미도 있고 흥행에도 성공한 작품이지만, 문제는 그 같은 수준의 영화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점에 있다. 중국에서 제작된 수많은 영화 가운데 극히 일부만이 박스 오피스에 오르면서 흥행에 성공할 수 있다. 작품 수준은 물론 흥행이란 측면에서 중국 영화관을 채울 만한 작품이 극소수에 불과하다. 따라서 중국어로 출시된 영화의 대부분은 적자로 끝난다.

이런 배경에서 볼 때, 중국에서의 할리우드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는 반드시 박스 오피스에 들어가는, 흥행 보증 수표다. 중국은 무려 5000개가 넘는, 세계에서 제일 많은 최첨단 영화관을 가진 나라다. 할리우드는 거기를 채울 흥행 영화 공급처다.”

‘중국이 감시하는 할리우드 영화’

反中 성격이 강한 영화 〈티벳에서의 7년〉.

― 중국의 힘자랑은 곳곳에서 일고 있다. 유형·무형의 협박과 제재를 통해 상대방을 중국 이익에 맞춰 굴복시키는데, 할리우드는 어떤가? 최근 영화를 보면 ‘황당한’ 중국 찬미가 남발되는 듯하다.

“중국은 자기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실질적인 제재를 가한다. 경제적 차원의 제재가 기본이다. 최근 미국 싱크 탱크 ‘펜 아메리카(www.pen.org)’가 작성한 〈중국이 감시하는 할리우드 영화(Made in Hollywood, Censored by Beijing)〉라는 타이틀의 리포트가 있다. 나도 제언자로 참여했지만, 중국이 어떤 식으로 할리우드를 굴복시키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본보기가 총망라돼 있다. 사드 미사일 배치와 관련해 중국이 한국에 가한 경제제재에 대한 내용도 들어가 있다. 일본·노르웨이·필리핀·스웨덴·호주·캐나다도 중국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이유로 경제제재를 경험했다. 할리우드도 예외가 아니다.”

― 할리우드 영화는 미국이 갖는 소프트 파워의 핵심 중 하나다. 1994년 이래 할리우드와 27년이나 관계를 맺어오면서, 중국도 소프트 파워 개선에 나섰을 듯한데, 어떤가.

“중국은 자신의 이미지를 좋게 하기 위해 매년 100억 달러 이상의 돈을 뿌리고 있다. 그러나 결과는 미미하다. 세계 전역에 경제제재를 남발하는 과정에서 대량 투자한 소프트 파워 효과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한국 젊은이의 중국에 대한 높은 비호감도는 좋은 본보기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 젊은이들의 반중(反中)정서는 반일(反日)보다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장년의 경우 반일이 강하지만, 청년층은 반중이 반일을 넘어선 상태다. 김치 원조(元祖), 고전 의상을 둘러싼 중국 측 역사관이 이유 중 하나지만, 경제제재로 한국을 굴복시키려는 오만한 자세도 배경에 있다. 중국이 아무리 소프트 파워 예산을 늘린다 해도 반중정서는 식지 않을 것이다.

일본의 반중정서도 마찬가지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일본인의 90% 이상이 중국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동남아시아에서의 여론조사 결과를 봐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중요성과 영향력은 인정하지만, 불안·불신으로 표현된 부정적 의견이 더 많다.

결론은, 미국·유럽 나아가 한국·일본·아시아와 전 세계가 중국을 친구로 대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경제제재와 같은 힘자랑 외교를 벌이는 한, 중국이 소프트 파워 대국이 되는 것은 요원한 얘기다.”

중국 내 〈오징어 게임〉 논란

개인적으로 ‘메이드 인 차이나’ 영화 가운데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딱 하나다. 1993년 중국의 천카이거(陳凱歌) 감독이 연출한 〈패왕별희(覇王別姬)〉다. 거의 홍콩에서 제작된 작품이지만, 중국 문화와 세계관이 아주 자세히 묘사된 세계적 수준의 영화로 평가된다. 이후 아시아의 괜찮은 영화라면 전부 봤지만, 중국 영화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하나도’ 없다. 〈장진호〉를 만든 3명의 감독 중 한 명이 천카이거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너무도 황당했다. 〈패왕별희〉 수준이 하늘이라면 〈장진호〉는 땅, 아니 지하에 처박힐 정도로 저급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 중국 소프트 파워가 갖는 근본적인 한계는 무엇인가.

“내년에 하버드대학에서 출간할 예정이지만, 그 문제를 다룬 나의 논문이 있다. 크게 두 가지로 나눠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앞서 말한 중국인만을 염두에 둔 국내적 세계관이 가장 큰 이유다. 중국인 눈에 볼 때 좋으면 되지, 중국 밖 사람들의 생각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둘째는 중국공산당의 그림자다. 할리우드 영화나 미국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면 대통령을 비난하거나 살해하는 장면도 있다. 중국의 경우 그 같은 표현을 절대로 할 수가 없다. 중국공산당이 전부 검열하기 때문이다. 소프트 파워는 ‘가치·문화·외교정책’의 결과물이라 볼 수 있다. 전 세계가 지향하는 방향과 정반대로 가는 나라가 수준 높은 소프트 파워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적으로 화제다. 중국에서는 어떤가.

“중국공산당이 방영은 금지하고 있지만, 소셜미디어(SNS)에서의 논의는 허용하고 있다. 사실, 중국 내 소셜미디어를 보면 〈오징어 게임〉을 둘러싼 논의가 아주 활발하다. 〈오징어 게임〉 방영을 허용해야만 한다는 주장도 있다. ‘지옥으로 변한 한국의 현실’을 중국인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는 논리가 대부분이다. 물론 〈오징어 게임〉은 한국만이 아니라, 중국의 현실이기도 하다고 주장하는 글도 많다. 〈오징어 게임〉에 대한 찬반 논의를 떠나, 중국은 〈오징어 게임〉〈기생충〉 같은 한국 수준의 영화를 만들 수 없는 나라라는 생각도 중국 소셜미디어에 넘친다.”

‘중국몽’과 ‘아메리칸 드림’

― 한국 드라마·영화·노래가 중국에서 ‘특히’ 강한 이유는 무엇인가.

“2014년 3월 왕치산(王岐山) 당시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가 말한 내용이 이유일 듯하다. ‘한국 드라마가 우리보다 앞서 있다. 그 핵심과 영혼이 바로 전통문화를 승화했기 때문이다.’ 왕치산의 말이 아니더라도, 멀리는 〈올드 보이〉에서부터 최근의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을 봐도, 중국이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의 작품을 한국은 만들어낸다. K-Pop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작품의 수준이 가장 큰 이유다.”

― 꿈은 영화가 갖는 주된 기능이자 가치일 듯하다. 시진핑이 말하는 ‘중국몽(中國夢)’과 할리우드가 만드는 ‘아메리칸 드림’은 큰 차이가 있다. 할리우드가 중국에 보내는 영화가 중국 꿈과 어울리기 어려울 듯한데, 어떻게 생각하나.

“미중 간 꿈의 의미와 해석은 아주 다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아메리칸 드림’의 출발점은 이민(移民)에서 시작됐다. 모두에게 열려 있고, 자유에 기초해 성공으로 나아가는 꿈이다. 아메리칸 드림은 바로 개개인이 갖는 꿈에서 출발한다.

중국의 경우 다르다. 중국은 개개인이 아닌, 집단 차원의 성공을 ‘중국몽’이라 부른다. 국가 전체 차원에서의 성공만이 진짜 ‘중국몽’이다.

백신을 예로 들어보자. 개인의 의사(意思)를 존중하는 미국은 백신 접종 자체를 거부할 수 있다. 백신을 원치도 않는데, 국가적·사회적 안전·안정을 위해 접종에 나서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집단의 꿈을 강조하는 중국에서는 개인 생각과 무관하게, 무조건 백신 접종에 나서야만 한다. 집단에 기초한 중국 꿈에 기초해, 바이러스 감염자 몇 명만 나와도 도시 전체를 봉쇄하는 나라가 중국이다. 미국은 그런 가치관과 무관하다. 중국 국민성의 모순이라 볼 수 있지만, 애국심을 강조하지만 정작 중국몽을 위한 자기희생에는 인색하다. 할리우드 영화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개인주의에 기초한 아메리칸 드림이 중국인에게 어필하기 때문이다.”

“할리우드에는 美中 디커플링 없다”

11월 초를 전후해 유럽에서 G20과 COP26이 열렸다. 중국 시진핑은 비디오 회의에만 참석했을 뿐, 서방 주도하의 국제질서에 무관심했다. 시진핑은 CO2 배출 실질 제로 시한도 밝히지 않고, 세계가 반대하는 석탄 화력발전소 문제도 언급하지 않았다. 미국이 주도하는 대중(對中) 디커플링이라기보다 중국 스스로 칩거에 들어간 자발적 디커플링으로 느껴진다. 원인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미중, 나아가 서방 자유민주주의국가와 중국의 디커플링은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 미중 디커플링이 할리우드에도 밀려오는가.

“할리우드는 예외다. 할리우드는 기본적으로 개인 비즈니스에 속한다. 미국 정부가 명령할 수 없다. 중국도 할리우드에 대한 보복을 자행하지 않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당시의 얘기지만, 많은 사람이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에 맞서 중국도 할리우드 영화를 금지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런 인터뷰에 응할 때마다 나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이 할리우드 영화를 금지할 경우 가장 좋아할 사람은 바로 트럼프 본인이었기 때문이다. 민주당 지지자와 리버럴이 장악한 할리우드와 아메리카 퍼스트를 내세운 트럼프의 관계는 물과 기름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이 할리우드와 관계를 끊을 경우 가장 먼저 박수를 치고 환영할 인물이 바로 트럼프다. 할리우드와 중국의 관계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할리우드에는 미중 디커플링이 없다.”

〈레드 던〉, 주적이 중국에서 북한으로 둔갑

영화 〈레드 던〉. 당초 중국의 미국 침공을 다루려다가 침공자가 북한으로 바뀌었다.

― 중국을 악당으로 다룬 할리우드 영화로 브래드 피트 주연의 〈티벳에서의 7년(Seven Years In Tibet)〉이 떠오른다. 이 같은 영화는 최근에는 전멸 상태다. 미중대립과 함께 〈티벳에서의 7년〉 같은 영화가 재등장할 수 있을까.

“1997년 3편의 중국 관련 영화가 등장했다. 〈티벳에서의 7년〉, 리처드 기어 주연의 〈레드 코너(Red Corner)〉, 달라이 라마의 인생을 다룬 〈쿤둔(Kundun)〉이다. 당시 중국은 아직 할리우드가 매력을 느낄 만큼 큰 시장은 아니었다. 이들 세 영화는 중국 시장을 겨냥한 것도 아니고, 글로벌 흥행과 무관한 중규모 자본으로 만들어진 작품들이다.

중국은 영화가 출시되는 즉시, 상영금지 처분을 내렸다. 더불어 제작사인 MGM, 디즈니랜드, 터치스톤(Touch Stone)이 만든 기존 영화의 중국 반입도 전면 중단시킨다. 당시 나도 자문 역할을 했지만, MGM은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을 고용해 대(對)중국 로비에 들어갔다. 아직도 기억나는데, 어느 날 새벽 3시에 MGM 사장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마침내 중국에서의 비즈니스가 가능하게 됐다’는 기쁨에 찬 목소리였다.

24년 전 중국은 중소 규모 영화 시장에 불과했다. 2021년은 할리우드 수입의 절반이 중국에서 올 정도다. 할리우드는 영화를 매개로 한 비즈니스 집단이다. 중국을 악당으로 묘사할 경우 해당 작품만이 아니라, 기존의 영화까지 중국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중국과의 관계가 전부 끊어질 수 있다.

영화 〈레드 던(Red Dawn)〉은 최적의 본보기다. 2012년 원래 각본에서는 중국이 미국을 공격한다. 그러나 최종 편집 직전 갑자기, 중국을 대신해 북한이 악당으로 둔갑한다. 중국의 불만 때문이다. 편집 과정에서 한글을 입히고 군복도 바꾸는 등 대소동이 벌어졌다. 〈티벳에서의 7년〉 같은 영화는 할리우드에서 ‘도저히’ 재등장할 수 없다.”

중국 영화의 후퇴

로젠 박사는 오래된 중국 영화 필름 수집이 자신의 취미 중 하나인데 언젠가 전부 기증할 생각이라고 한다. 그는 “공산독재 치하의 중국에도 감명 깊은 영화가 적지 않다”고 강조한다.

“내가 높게 평가하는 영화의 대부분은 1980년대 작품이다. 1980년대는 그나마 중국 영화계가 숨통이 트였던 황금기였다. 1988년 제작된 미자산(米家山) 감독의 코미디 〈문제아(頑主·The Troubleshooters)〉는 내가 가장 흥미롭게 대한 영화다. 1979년 덩샤오핑(鄧小平)의 개방개혁 시대를 맞은 청년 세대들의 의식 변화에 주목한 작품이다. 이미 30여 년 이상 흘렀지만, 수준으로 본다면 21세기 그 어떤 중국 영화도 따라오기 어려운 작품이다.”

흔히 역사는 진보·진화한다고 말한다. 주변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결코 적지 않은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