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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주희의 라운지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세상에 끌어낸 송인택 前 울산지검장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수사 더 했어야… 재판 늦어지는 편이 낫다”

글 : 하주희  월간조선 기자  everhop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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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 첩보 원천은 청와대… 기소의 방아쇠 당겨준 경찰청”
⊙ 노무현 대통령–평검사와의 대화 기획, 문재인 대통령에게 “책상 배치 바꾸라” 항의
⊙ “검찰총장은 뒤에 숨지 말고, 서면으로 기록 남기며 지휘해야”
⊙ “피의사실 공표하는 선관위, 공무집행방해 혐의 있다”

宋寅澤
1963년생. 대전 충남고, 고려대 법학과 졸업 / 사법시험 제31회, 사법연수원 제21기 / 서울고검 송무부장, 청주지검장, 전주지검장, 울산지검장 역임 / 現 법무법인 무영 대표변호사
사진=하주희
  “그게 인사의 실수였지. 왜 황운하 전 청장과 나를 같은 지역에 근무하게 했는지. 나는 그런 걸 죽어도 못 보는 사람인데 말이야.”
 
  송인택 전 지검장이 얘기 도중 나지막히 읊조렸다. 눈빛에 잠시 여러 감정이 오가는 듯하더니, 이내 심드렁해진 것 같았다. 세사(世事)와 적당히 거리를 두는 데 익숙해 보였다. 내면이 상당히 강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의 머리 위에 붙어 있는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호쾌대활(好快大活)’. 보는 이의 눈길을 잡아끄는 서체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글씨다. 현판의 탁본인데, 원본은 울산 통도사 극락암에 있다.
 
  송 전 지검장은 2019년 울산지검장을 그만뒀다. 24년간 검찰에 몸담았지만 마지막 한 해는 유독 예사롭지 않은 날들이었다. 추사 글씨처럼 호쾌하게 살아나 크게 칼을 휘둘렀다. 지난 7월 2일 서울 서초동의 법무법인 무영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95쪽의 불기소 결정문
 
  그는 2019년 한 해 동안 세 편의 긴 글을 한국 사회와 검찰 조직에 건넸다. 첫째, 김기현 울산시장 등에 대한 불기소 결정문이다. 둘째, ‘국민의 대표에게 드리는 검찰개혁 건의문’이란 제목으로 국회의원 전원에게 보낸 이메일, 그리고 셋째, 울산지검에서 낸 연구서 〈피의사실공표죄 연구〉다.
 
  2019년 3월 15일, 울산지검은 김기현 전 울산시장(現 국민의힘 의원) 등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당시 경찰은 ‘김 전 시장의 비서실장 등 3명이 아파트 건설 현장에 들어갈 레미콘 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외압을 행사하고 골프 접대 등 뇌물을 받은 혐의가 있다’며,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묘한 건 시점이다. 경찰이 김 전 시장의 비서실장을 압수수색한 건 2018년 3월 16일. 그해 지방선거(6월 13일)를 석 달 앞둔 시점이었다. 그러고 나서 지방선거 한 달 전에 김 전 시장 사건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검찰은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하고, 경찰은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넘기는 일이 세 차례 반복됐다.
 
  당시 울산지검은 이례적으로 95페이지 분량의 불기소 결정문을 냈다. 결정문은 이 사건을 두고 이렇게 정리했다.
 
  〈2017년 12월 29일 경찰청 본청에서 하달된 범죄첩보를 근거로 내사하다가 2018년 6·3 지방선거가 임박한 시점인 3월 13일께 범죄인지를 하면서 경찰 수사가 개시된 사건〉
 
  ― 불기소 결정문 분량이 꽤 길었지요.
 
  “보통 수사검사가 초안을 작성해 올라오는데, 그 결정문은 거꾸로 내려간 경우입니다. 제가 설계를 했어요. 수사검사가 완성을 했고요.”
 
  ― 당시 울산지방경찰청장이었던 황운하(黃雲夏)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자신은 범죄첩보의 출처가 어디인지 전혀 몰랐다고 주장하는데요.
 
  “당시 그 첩보를 보니, 울산에서 올린 첩보입디다. 울산경찰청의 누가 어떻게 수사하고 있는지까지 써 있어요. 울산경찰에서 올린 보고서가 다시 내려온 걸로 보였어요.”
 
  ― 청와대에서 하달(下達)한 첩보라는 건 어떻게 밝혀졌나요.
 
  “경남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어요. 경남권은 창원에서 무혐의로 결론을 내렸는데, 울산지검은 계속 판 거죠. 해도 해도 안 되더라고. 법원에서 뭘 해줘야 말이지요. 압수수색 영장을 안 내주는데 수사 진도가 나가겠습니까. 이 사건의 참고인은 경찰인데 진술을 안 해요. 출석도 안 하고요. 그 사람들 입장에선 출석할 수 없겠지요. 계속 곁다리만 뒤져 보다가 경찰청 본청에 공문을 보냈어요. ‘첩보 원천이 어딥니까.’”
 
 
  기소 방아쇠 당긴 경찰청
 
  ― 대답을 해줬나요.
 
  “청와대 첩보라고 대답해주는 바람에 일이 이렇게 된 거죠. 그 사건이 기소될 수 있게 방아쇠를 당겨준 건 경찰청이에요. 그렇게 황운하 문제가 불거지고, 다시 청와대까지 올라간 거죠. 압수수색 과정에서 송병기 전 울산부시장이 보존을 잘 해놓은 증거가 발견됐고요.”
 
  송 전 부시장의 수첩에선 청와대를 뜻하는 ‘BH(Blue House)’라는 표기와 함께, 청와대가 송철호 당시 후보의 선거 준비를 도우며 경쟁 후보들을 견제한 정황이 발견됐다. 황운하 청장이 지방선거를 5개월 앞두고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만난 사실도 알려졌다.
 
  ― 경찰청이 왜 원천을 알려줬을까요.
 
  “이 문제가 어떤 파급력을 미칠지 다 알고 있었던 게 아니겠습니까. 굳이 답을 안 해도 됐거든요. 본인들이 당사자가 아니잖아요.”
 
  ― 대답해주리라 예상했나요.
 
  “알고 있으면서 알려주지 않으면 허위공문서작성죄가 적용될 수 있어요. 그걸 염두에 두고 혹시나 하고 밀어붙인 겁니다.”
 
  청와대의 2018년 울산시장 선거개입 및 하명수사 의혹 재판은 조용히 느리게 진행 중이다. 지난 5월 10일 첫 공판이 열렸다.
 
  ― 재판이 꽤 느리게 진행 중이지요.
 
  “그 사건은 지금 재판 안 하는 게 좋아요. 제대로 수사한 다음에 기소되어야 했는데, 너무 빨리 기소된 측면이 있어요. 일사부재리(一事不再理)잖아요. 청와대 압수수색도 제대로 못 했어요. 아직 안 밝혀진 부분이 있겠지요.”
 
  ― 청와대가 압수수색을 거부했지요.
 
  “국가 보안시설이라며 문을 안 열어줬어요. 정권이 바뀌면 어떻게 될지 봐야겠지요. 지금은 아무도 입을 안 열 겁니다.”
 
 
  국회에서 울산시장 비리 외친 박범계
 
2019년 12월 9일 황운하 당시 대전지방경찰청장이 대전 중구 대전시민대학에서 열린 《검찰은 왜 고래고기를 돌려줬을까》 출간 기념 북 콘서트에서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 사진=조선DB
  아직 의문점이 많은 게 사실이다. 당시 지방선거 1년 전인 2017년 8월 민주당은 적폐청산위원회를 만들었다. 위원장은 박범계(朴範界) 의원. 내내 ‘지역토착비리’를 거론했다. 박범계 당시 의원은 지방선거 3개월 전인 2018년 3월에는 국회 법사위에서 ‘김기현 울산시장 관련 제보 문건’이라며 문서를 흔들어 보이기도 했다. 그러고서도 박 의원은 이후 “김기현 시장 제보 문건과 관련한 내용을 모르고, 청와대에 문건을 넘긴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황운하 의원이 울산에서 한 일이 또 한 가지 있다. ‘고래고기 사건’ 이슈화다. 고래고기 사건의 내막은 이렇다. 2016년 4월 울산 중부경찰서는 밍크고래 불법포획을 수사하면서 고래고기 27t을 압수했다. 한 달 후에 이 중 21t(시가 30억원)을 검찰이 피의자(유통업자)에게 돌려줬다. 고래 DNA 검사 결과를 증거로 활용하기 힘든데다, 유통업자들이 고래 유통증명서를 제시해서라는 이유였다. 나머지 6t은 소각했다. 해양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는 고래고기를 돌려줬다는 이유로 2017년 9월 담당 검사를 직무유기·직권남용으로 울산경찰청에 고발했다.
 
  그때 부임한 지 한 달이 된 황운하 청장은 검찰을 상대로 수사에 나섰다. 유통업자들이 선임한 변호사가 울산지검 출신 전관이라는 사실을 들며 의혹을 제기했다. 대전경찰청으로 옮겨 간 이후에도 황 의원은 ‘고래고기 사건’으로 여론의 주목을 잘 이끌어냈다. 2019년엔 《검찰은 왜 고래고기를 돌려줬을까》라는 제목의 자서전도 냈다.
 
  ― ‘고래고기 사건’은 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요.
 
  “울산지검 부임하자마자 중요현황을 보고하는데 고래고기가 어쩌고 해요. ‘그게 뭔데?’ 고래 DNA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담당 검사가 검찰 출신 전관 변호사한테 돌려줬다는 거예요. ‘의혹을 사기엔 충분하네. 왜 그랬는데?’ 그러니 고래 DNA 확보율 얘기를 하는 겁니다. 고래 DNA 검사 결과를 유죄 증거로 활용할 수 없다는 거죠.”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이렇다.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IWC)는 고래의 상업 포경을 전면 금지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1년 1월 3일부터 ‘고래 자원의 보존과 관리에 관한 고시’가 시행됐다. 혼획, 좌초된 모든 고래류에 대해 유통증명서를 발급하고, DNA 시료를 채취한 후 수협을 통해 위판하도록 했다.
 
  이에 따르면 그물에 우연히 걸렸거나 좌초된 고래를 획득했을 경우, 해경에 신고하면 해경이 획득 경로를 조사한 뒤 유통증명서를 발부한다. 이후 수협조합장이 고래에서 시료를 채취해 울산 장생포에 있는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로 보내야 한다. 그러면 이후 시중에 유통되는 어떤 고래고기가 불법포획된 것인지 판단하고자 할 경우, DNA를 검사해 고래연구센터에 있는 DNA와 대조해볼 수 있다.
 
  문제는 혼획된 모든 고래의 시료채취가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어민 입장에선 어긴다고 처벌을 받는 것도 아닌데 시료를 보내는 것보다는 빨리 해체해 유통하는 게 우선이다. 그러니 고시 시행 직후 1년간 통계를 보니 상괭이의 경우 700여 마리가 혼획되었고, 이 중 10여 마리의 DNA 시료만 고래연구센터로 보내졌다.
 
 
  문제는 DNA 샘플 확보율
 
  고래고기 사건에 등장하는 밍크고래의 경우, 2016년 DNA 확보율이 66%였다. 2016년에 어민이 획득한 밍크고래 10마리 중 6~7마리만 DNA 확보가 되어 있단 얘기다. 나머지 3~4마리는 DNA 시료 없이 유통됐단 뜻이다. 창고에서 발견한 고래고기의 DNA를 검사해보니 고래연구센터의 DNA와 일치할 경우 무죄 증거는 될지언정, 불일치하다고 유죄 증거로 보긴 힘들다. DNA가 확보되지 않은 채 시중에 풀린 고래고기들이 있기 때문이다. 송 전 지검장의 설명이 이어졌다.
 
  “DNA 확보율이 100%가 안 되는 상황에서 나온 DNA 검사 결과는 무죄 자료로만 쓸 수 있습니다. 실제로 불법포획일 수도 있어요. 그러나 문제는 그게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니에요. 증거가 있어야 판단할 수 있습니다. ‘어느 날 어떤 사람을 어디서 죽였다’고 누가 자백을 해도 증거가 없으면 처벌 못 해요.”
 
  ― 그렇군요.
 
  “일반 국민들은 흥분할 수 있어요. 고래보호단체 같은 시민단체의 입장도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적어도 사법경찰은 그러면 안 되지요. 경찰대를 나오고 수사 파트에 있었던 사람이 그걸 모른다는 게 말이 됩니까.”
 
  ― 지금까지 주장을 굽히지 않는 걸 보면 정말 그렇게 믿고 있을 수도요.
 
  “저는 그분이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어떻게 보면 박근혜 정권도 이 사건에 기여한 걸로 볼 수 있어요. 어느 날 갑자기 해양경찰청을 해체한 바람에 육지 경찰이 바다를 맡았어요. 경험이 없다 보니 실수한 거예요. 해경이었으면 그렇게 무리한 수사 안 했습니다. 해경에 가서 기소할 수 있냐고 물어보세요. 일부 압수물은 사후영장도 없이 송치하기도 했어요. 수사의 ABC부터 잘 안 된 거죠.”
 
  ― 그래서 어떻게 정리가 됐나요.
 
  “당시 여론이 검찰 말은 안 믿었어요. 울산 지역의 시민단체, 학계, 검찰에 비판적인 변호사들 다 모이자고 해서 세미나를 열었어요. ‘당신들이면 기소할 수 있겠나’, 다 못 한다고 했어요. ‘DNA 검사 결과는 무죄 증거지, 유죄 증거로는 쓸 수 없다’ 그렇게 진정이 됐어요.”
 
 
  “검찰총장, 서면지휘해야”
 
  2019년 5월 26일, 전(全) 국회의원의 이메일함에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제목은 ‘국민의 대표에게 드리는 검찰개혁 건의문’. 송 전 지검장의 편지였다.
 
  ― 편지를 왜 쓰셨나요.
 
  “두 가지를 말하고 싶었어요. 첫째, 내가 검사장이 되면서 꼭 이뤄보고 싶다고 생각한 게 세 가지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검찰총장의 서면지휘예요. 총장이 왜 서면으로 안 하고 다른 사람을 내세워서 지휘합니까. 요구를 했어요. ‘누가 내린 결정인지 알려달라’고. 못 알려준대요. ‘그럼 나는 총장 지휘라고 인정 못 한다’ 하고. 난리가 났어요. 검찰 내부의 업무 지휘 시스템에 대해 계속 문제제기를 했어요.”
 

  ― 문무일 당시 총장에게 문제제기를 했나요.
 
  “왜 뒤에 숨어서 하느냐. 서면으로 해달라. 총장의 지휘라면 따르겠다. 내가 왜 후배들한테 지휘를 받나. 쫓아 들어가서 독대도 했어요. ‘권위주의 시대에 어렵게 발전시켜놓은 이 제도를 왜 총장이 말 한마디 없이 바꾸나’ 하고. 그런데 2019년 1월 4일이었나… 시무식을 하는데 대검에서 공문이 내려온 겁니다.”
 
  ― ‘부패범죄수사 절차 등에 관한 지침’이군요. 부패범죄수사 전담부서가 없는 지방검찰청이나 지청은 검찰총장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부패범죄수사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지요.
 
  “바로 항의했죠. 짐이며 명패까지 다 뺐어요. 가만히 안 있겠다고 했지요. 말리더군요. 좀 기다려주면 고치겠다고. 당장 철회하라고 했지요. 그런데도 국회의원들은 검찰 개혁을 주장하니 당시 언급되던 검찰개혁의 문제점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정권은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보복을 하고 싶은 것 아닌가요? 그걸 개혁으로 포장하면 안되지요.”
 
 
  민주당의 ‘검수완박’
 
  ― 국회의원들 반응이 어땠나요.
 
  “몇몇은 잘 봤다고 문자를 보냈어요. 절반 이상은 이메일을 확인도 안 했습니다.”
 
  ― 읽어보지도 않았다고요.
 
  “표에 도움이 안 되잖아요. 검찰은 모든 국민의 적이고, 때릴수록 좋다고 여겨지니까요.”
 
  ― 검찰 내부 반응은요.
 
  “총장은 노발대발했어요. 속시원하다는 사람도 있었고, 정치할 거냐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민주당표 검찰개혁은 한마디로 ‘검수완박’으로 요약된다.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란 뜻이다. 당장 7월부터 검찰의 직접수사권을 제한하는 조직 개편안이 적용됐다. 이제 검찰은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만 직접 수사할 수 있는데, 수사하려면 총장에게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인지 수사는 하지 말란 얘기다.
 
  ― 검찰은 이제 6대 범죄를 사전 승인 받아야 수사할 수 있게 됐습니다.
 
  “상위법에 안 맞습니다. 형사소송법 196조는 ‘검사는 범죄의 혐의가 있다고 사료하는 때에는 범인, 범죄사실과 증거를 수사한다’고 정했어요. 이 조문을 왜 안 바꾸냔 말이에요. ‘검사는 범죄혐의가 있어도 참아야 한다’ 혹은 ‘검찰총장이나 대검 참모에게 승인을 얻어서 수사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바꾸란 거죠.”
 
  ―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게 시대적 흐름이라고 흔히 말하는데요.
 
  “수사와 기소는 원래 분리될 수 없어요.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게 수사예요. 처음부터 저는 반대했어요. 수사권을 완전 봉쇄하는 건 맞지 않아요. ‘바다 이야기’로 한창 시끄러울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도둑이 들려니 개도 안 짖더라’, 이제는 짖어도 권한이 없으니 어디서 개가 짖나 보다 하게 된 거죠.”
 
  ― 검찰이 6개 중대범죄 수사에 집중하게 되지 않을까요.
 
  “총장의 승인을 받아서 수사하라는 건, 5급 이상 공무원을 수사할 때는 매번 총장에게 승인을 받으라는 겁니다. 승인을 귀찮게 왜 받습니까. 수사 안 하면 되지요. 지금도 6대 범죄라고 고소장을 내면 경찰로 지휘하는 경우가 많아요.”
 
  ― 민주당 검찰개혁특별위원회는 법무부 산하에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을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검찰의 6대 범죄 직접 수사권을 중수청에 넘기겠다고요.
 
  “국민의 뜻이라면 중수청 만들어도 돼요. 검찰을 없애도 됩니다. 아예 전 국민이 변호사를 선임해 사적으로 소송하는 걸로 법을 바꿔도 돼요. 그러면 나라가 혼란스러워지고 국민들이 그 대가를 감당해야 하는 겁니다. 지금도 일선에선 국민들이 고소장 접수도 못 하고 난리도 아닐 겁니다.”
 
 
  검사들, 무죄에 책임져야
 
  ― 국회에 보낸 이메일엔 검찰 인사가 독립적으로 이뤄지도록 해달라는 제안이 있었습니다. 대통령이 검사인사권을 포기하고 외부 인사로 구성된 독립적인 인사위원회를 만들자고요. 오래전부터 나온 얘기인데 요원해 보입니다.
 
  “쉽지 않을 겁니다. 인사권자의 최고 권한이 인사(人事)입니다. 대통령이 인사권으로 검사들을 자기 손아귀에 쥐고 있지요. 놔주면 언제든지 자기한테 칼을 들이댈 수 있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검찰총장을 선거로 뽑아도 될 텐데 말입니다.”
 
  ― 미국처럼요.
 
  “선거로 뽑으면 부작용이 있다고 하는데… 옳은 측면도 있습니다. 검사가 정치화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처럼 정권 코드와 맞지 않으면 잘라내는 건 옳습니까? ‘윤석열 총장, 네가 우리를 조사해?’ 하는 식이잖아요. 문재인 대통령이 ‘공정하게 수사하라’고 말했는데요… 내 편 말고 다른 사람들만 공정하게 수사하라는 뜻입니까?”
 
  ― 검찰 인사만 독립적으로 이뤄지면 검찰 독립성이 보장될까요.
 
  “그렇죠. 지금처럼 검찰 인사를 법무부 장관을 통해 청와대가 하는 게 아니라, 프랑스식으로 정권이 개입하지 못하게 인사위원회가 인사를 하면 됩니다. 지금 검찰 인사의 가장 큰 문제가 무죄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겁니다. 자기 결정이 파기되는 것에 책임을 안 집니다. 정권에만 잘 보이면 출세합니다. 이걸 고치지 않으면 안 돼요. 검찰개혁 1번은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우는 겁니다.”
 
  ― 그게 무슨 뜻인가요.
 
  “제가 일선에서 검사 배치할 때 얘깁니다. 지난 1년 치 무죄통계를 뽑으라고 했어요. 1년 동안 12건 이상 무죄 판결을 받으면 검사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죄 없는 사람을 죄인으로 기소했단 얘기니까요. 무죄 많은 검사가 잘했다고 발탁인사로 가는 인사는 잘못된 인사예요.”
 
  ― 그러면 최종심에서 무죄가 확정되면 담당 검사에게 책임을 지우면 될까요.
 
  “1심 끝나면 바로 들어가야 됩니다. 대법원 확정까지 3~4년 걸리면 의미가 있습니까. 지금의 내 결정 하나가 파기될까 봐 고민하는 것 없이, 아니면 말고 식으로…. 정권에 유리한 결과를 냈으니 좋은 곳으로 간다? 그건 검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사법의 영역에 있어서 현 정부가 가장 크게 잘못한 건 뭘까요.
 
  “정부는 사법 영역에 원래 관여를 하면 안 돼요. 외국에선 사법에 대해 정치권이 이래라저래라 하는 거 자체가 압력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공공연히 해요, 직접 못 나서면 〈나꼼수〉 같은 매체를 이용하고, 자기 진영의 시민단체를 이용해 고발하는 거 아닌가요.”
 
 
  文 대통령과의 惡緣
 
2003년 3월 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평검사들과 검찰 인사권 등을 두고 토론회를 벌였다. 사진=조선DB
  사실 검사와 정권은 인사권 독립을 두고 18년 전에 이미 맞붙었었다. 노무현 정권 시기 단 한 차례 열린 ‘검사와의 대화’에서였다. 그날은 2003년 3월 9일이었고, TV로 생중계됐다. 송 전 지검장도 그 자리에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과의 악연이 거기서 시작된 겁니다. 당시 민정수석이었지요. 저는 대화에 직접 나서지는 않고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역할이었습니다. 선발대로 가보니 책상을 초등학생 교실처럼 배치한 겁니다. 크게 다퉜어요. ‘왜 토론이라고 해놓고 강의식으로 책상을 배치했냐’고 했더니 안 된다는 겁니다. ‘배치 안 바꾸면 다 철수하겠다. 옆으로라도 놓자’고 했어요.”
 
  ― 그래서 책상 배치가 바뀌었군요. 강의실처럼 해놓으면 분위기가 이상했겠는데요.
 
  “대통령 책상도 문제였어요. 작은 책상을 가져다 놨더군요. ‘대통령 책상이 왜 이렇게 작은가’ 하니, ‘급히 준비하느라 책상이 없다’는 겁니다. ‘아니, 이게 무슨 급히 준비한 행사냐’. 기자석 뒤를 보니 커튼이 쳐 있더라고요. 커튼 뒤를 보니 좋은 책상이 많습디다. ‘아니 왜 거짓말을 하십니까. 좋은 책상 많은데, 검사들을 망신 주려고 그럽니까. 빨리 대통령 책상 큰 걸로 바꿔놓으세요’ 했죠. 그래서 대통령 책상까지 겨우 바꿔놨어요.”
 
  ― 노 대통령 발언이 화제가 됐지요. ‘이쯤 하면 막 가자는 거지요’였던가요.
 
  “가면 무조건 진다는 걸 알면서 간 겁니다. ‘꽥 소리는 하고 죽자’ 하고. 대통령이 인사권 내놓겠다고 하겠습니까. ‘저를 믿고 맡겨주세요’ 하면 어떻게 더 이상 말을 합니까. 그런데 거기서 ‘당신도 이런 청탁을 하시던 분 아닙니까’란 질문이 나오자 대통령이 화를 낸 거지요.”
 
 
  ‘더 깎을 뼈가 어딨나’
 
  ― 당시 검찰 인사를 두고 평검사들이 항의를 했지요.
 
  “검찰 상부를 쳐내면 아래에서 좋아할 줄 안 모양인데 이번엔 평검사들이 대든 겁니다. 모든 검사가 ‘사회의 악(惡)’인 것처럼 매도했지요. 처음에는 뼈를 깎고 반성한다고 했어요. 그러다 ‘이제 더 깎을 뼈가 어딨나. 대들어보자’고 한 거예요.”
 
  ― 일회성 행사이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검찰 독립엔 별 도움은 안 된 거 아닌가요.
 
  “도움이 된 건 없어요. 대들고 싸우는 검사가 있다는 건 보여줬죠. 지금도 꿋꿋하게 정권 수사하는 검사들이 가끔 나오지 않습니까. ‘날아가면 날아가는 거다’ 하면서요. 공무원 조직 내에서 가장 자존심 센 집단이 외교관과 검사입니다. 검사는 ‘여차하면 옷 벗고 변호사 한다’ 그러면서 대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외교 라인 잡고, 검찰 잡으면 공무원 사회를 장악할 수 있다고 생각했겠죠.”
 
  ― 그때 평검사들이 여러 가지로 국민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긴 했습니다.
 
  “이 정권이 집권한 후에 들춰봤다고 누가 전해주더군요. 그때 평검사회의에 어떤 이들이 있었는지.”
 
  ‘검사와의 대화’에는 지금 돌이켜보면 묘한 기분이 드는 장면이 있다. ‘검찰 인사를 밀실에서 하지 말고 독립적인 위원회가 하게 해달라’는 평검사들의 요구를 두고, 노 전 대통령은 이렇게 말한다. 발언을 그대로 옮겨보겠다.
 
  “난 검찰조직에 원한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밀실에서 검찰 외부인사가 인사를 한다고 표현했지요. 외부인사 일어나보세요. 문재인 민정수석, 박범계 비서관 서보세요. 외부인사라고 한다면 저 사람들이 외부인사입니다. 저 사람들이 정치하는 사람들입니까? 이 사람들을 여러분 의심합니까. 문재인씨는 제가 신뢰하고 부산의 많은 시민들이 신뢰하는 사람이라 제가 민정수석으로 임명했습니다. 이 사람들을 검찰 인사위원으로 앉히면 되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인사위원회 만들어드릴게요.”
 
 
  세 가지 목표
 
  송 전 지검장이 울산지검을 떠나기 직전 울산지검은 한 권의 보고서를 내놓았다. 〈피의사실 공표죄 연구〉.
 
  ― 갑자기 피의사실 공표는 왜 연구한 겁니까.
 
  “저는 서울중앙지검에서 대전으로 떠난 2004년 이후에 사실상 서울 근무를 못 했습니다. 잘나가는 사람들은 참모만 하잖아요. 저는 고집이 세다고 소문난 검사여서 참모로 두기엔 불편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지방에 주로 있다 보니 기관장을 많이 했지요. 기관장 여섯 번에 차장 세 번 했으니까요. 지방에서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산 겁니다.”
 
  ― 검사장 승진이 뜻밖이었겠군요.
 
  “제가 제대로 산 건진 모르겠어요. 제가 검사장이 됐을 때 후배들이 놀랐습니다. ‘저렇게 살아도 검사장으로 승진이 되네’ 하고. 검사장이 돼서 뭘 할까 하다 결심했어요. ‘고검장 승진과 상관없이 하고 싶었던 일을 하자.’ 세 가지였어요. 첫째, 아까 말한 총장의 서면지휘입니다. 총장은 뒤에 숨어 지휘하고 참모들이 호가호위하는 걸 없애야 된다. 문서로는 창피해서 못 할 지휘를 다른 사람 통해 구두로는 합니다.”
 
  ― 서면 수사지휘를 그때부터 주장해왔군요.
 
  “그렇지요. 이성윤 사건도 그런 배경에서 일어난 거 아닙니까. 저도 검사 지휘 할 때 문서로 남겨놨어요. 다른 검사들에게도 그렇게 당부했고요. 관내 지청장들한테 지휘할 때는 이메일이라도 남겨뒀어요.”
 
 
  참모 통해 지휘
 
2019년 5월 30일 울산남부경찰서 건물 벽에 ‘송인택 울산지검장님께 회신합니다’라는 제목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송 지검장의 검경 수사권 조정안 비판에 대한 반박이다. 사진=조선DB
  ― 지금도 서면 지휘는 안 하잖아요. 문서를 기밀로 분류해 20년이나 30년 뒤에 공개하자고 하면 어떨까요.
 
  “그렇게라도 하면 좋겠습니다. 참모한테 ‘이런 방향으로 대충 알아서 해’ 그러면 참모가 알아서 하는 식 말고요. 그런 지휘를 왜 따릅니까. ‘총장이 서면으로 지휘해주소’ 요구했어요.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깝깝했겠죠.”
 
  ― 상부에선 불편했겠습니다.
 
  “어떤 후배가 저에게 그랬어요. ‘검사장 두 번 했는데 세 번째는 대검 참모로 가시지 않겠습니까?’라고. 제가 그랬어요. ‘검사한 지 몇 년이나 됐는데 아직도 모르나. 나 같은 참모를 옆에 두겠는가. 사사건건 아니라고 할 텐데.’ 결국 그다음이 울산이었잖아요. 그게 인사의 실수였지.”
 
  ― 검사장을 하며 이루려 했던 나머지 두 가지는 뭔가요.
 
  “둘째, 일부 지역 언론사 사주들이 보조금 횡령하고 직원들 월급 안 주는 행태를 바로잡고 싶었습니다. 셋째가 피의사실 공표 연구였어요. 사실 검찰 내부를 겨냥한 연구였어요. 중앙지검에서 무혐의 처리한 건들을 갖다놓고 들여다본 거예요. 자기 출세를 위한 홍보 목적이나, 수사 진전을 위한 피의사실 공표 앞으로 하지 말자고 한 겁니다.”
 
  피의사실 공표는 사실, 형법에도 규정되어 있다.
 
  〈형법 제126조(피의사실공표) 검찰, 경찰 기타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감독하거나 보조하는 자가 그 직무를 행함에 당하여 지득한 피의사실을 공판청구전에 공표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공개수배는 해야죠. 신종 피싱 범죄 같은 건 국민들한테 알려야 합니다. 그런 경우 말고, 뻔한 걸 자랑하지 말자는 겁니다. 수사 중인 사안을 언론에 흘려요. 수사받고 있는 사람은 엄청난 피해를 봅니다.”
 
  ― 이재수 기무사령관은 수사 도중 실제로 목숨을 끊었지요.
 
  “사람을 죽여놓고 다시 살릴 수 있습니까. 다른 것도 아니고 자신의 출세, 실적, 수사를 위해서 그랬다? 더러운 겁니다. 경찰이든 검찰이든 하면 안 돼요. 검찰의 과거 행위 중에서도 기소할 게 많아요.”
 
  ― 검찰 내부에서 별로 안 반겼겠는데요.
 
  “대검에서 싫어했어요. 선거관리위원회를 입건하겠다고 했으니까요.”
 
  ― 선관위를 왜요.
 
  “누구누구를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했다고 하면서 구구절절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거예요. 이게 말이 됩니까. 나중에 무죄로 확정되면 어떻게 하려는 겁니까.”
 
  ― 자칫 사전 선거개입이 될 소지도 있겠네요.
 
  “그게 실적이랍니다. 공무집행 방해로 입건하겠다고 하니 대검에서 난리가 났어요.”
 
  ― 대검은 왜요.
 
  “일선 검사장 하나가 전례 없는 짓을 해서 선관위와 관계를 틀어놓잖아요. 공안 검사들도 참으라면서 펄펄 뛰었어요. 앞으로 그렇게 안 하겠다는 선관위의 약속을 받고 덮었어요. 수사기관은 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해야지, 왜 홍보를 해서 국민에게 피해를 입힙니까.”
 
 
  인생 2막은 농부로
 
  ―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의 당사자들은 국회로 들어갔는데요. 정치할 생각은 안 했나요.
 
  “마흔이 되는 해에 순천지검 부장으로 갔습니다. 불혹(不惑)의 나이인데, 과연 어느 정도 불혹에 다다랐는지 모르겠더라고. 검찰청 앞에서 맨날 확성기 틀어놓고 욕하고 고소장, 투서 넣는 고질 민원인과 면담을 했어요. 2시에 만나서 쭉 듣는데, 오후 6시쯤 되니까 화가 나더라고. ‘아직 멀었다. 불혹은 무슨 불혹.’”
 
  ― 4시간 동안 항의한 쪽도 대단하네요.
 
  “10년 뒤에 전주에 차장검사로 갔어요. 역대 전주 차장검사가 다 서울고검 검사로 갔어요. 검사직을 마무리하는 자리인 셈입니다. ‘나도 곧 끝나겠네, 변호사를 몇 살까지 할까’ 인생을 돌아보니 반환점을 돌아서 끝나는 지점으로 한참 가고 있는 줄을 내가 모르고 있더라고.”
 
  ― 그래서 변호사는 몇 살까지 하겠다고 정했나요.
 
  “평생 서초동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보단, 인생 2막은 어쩌면 갈 뻔했던 길로 가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호두나무와 양봉
 
  ― 갈 뻔했던 길요….
 
  “초등학교 다니던 어느 날 그날따라 왜 잠이 일찍 깼는지. 부모님이 새벽부터 일을 하셨는데, 일 나갈 준비를 하시면서 두 분이 상의를 하더라고요. ‘어떤 자식을 가르쳐야 될지…’. ‘집안을 위해 큰아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게 아버지의 지론이었는데, 어머니는 생각이 달랐어요. ‘공부가 둘째가 나은데다, 못생기고 성격도 안 좋아서 장가도 못 보낼 것 같다. 땅도 없지 인물도 못났지 성질도 더럽지 누가 시집을 오겠냐. 골칫덩이가 되니 차라리 둘째를 가르치자’ 하더군요. 천기가 누설된 겁니다.”
 
  ― 농사짓기 싫으면 공부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네요.
 
  “새벽에 고구마밭 잡풀 뜯고 학교 가고, 겨울이면 나무 하는 게 제 일이었어요. 쟁기와 경운기는 일절 안 배웠어요. 그거 하면 농사짓잖아요. 땅도 다 형 주라고 했어요. 제 대학 학비 대느라 땅은 다 팔아버렸지만. 그 생각을 하며 인생 2막은 어쩌면 갔을지도 모를 농사꾼의 길을 가보자, 생각했어요.”
 
  ― 논밭을 샀나요.
 
  “농사꾼으로 살아보고는 싶은데 일하기 싫잖아요. 어릴 때 보기에 호두나무, 감나무가 제일 손이 안 가는 것 같았어요. 그때는 약도 안 치고 따기만 했으니까요. 농사를 짓겠다고 하니까 아내가 ‘작게 해보면 어떠겠냐’고 해요. 그래서 그랬죠. ‘그러면 내 성격에 혼자 다 하느라 골병 든다. 규모가 커야 다른 사람에게 시킬 수 있지 않나.’ 산을 사려고 경기도 파주부터, 경상도 상주, 전라도 무주까지 다녀봤어요.”
 
  ― 산을 샀다고요.
 
  “결국 충청북도 영동군에 있는 산을 샀어요. 호두나무를 심고 나머지 땅엔 뭘 할까, 하다 벌을 치자고 생각했어요. 설탕물은 주지 말자. 그러면 꽃나무가 있어야 되잖아요. 꽃나무 단지를 만들고 있어요.”
 
  그는 밀원(蜜源)이 되는 꽃나무를 찾아 떠난 여정을 들려줬다. ‘주말 양봉’ 7년 차인 그는 양봉과 꽃나무 조성에 상당한 경험과 지식을 쌓은 듯했다. 꿀벌 벌집에 침입하는 진드기와의 싸움부터, 더덕 씨앗을 드론으로 뿌린 얘기를 듣고 있으니 선거 개입이니 검찰 개혁이니 하는 얘기들이 어쩐지 아스라이 느껴졌다.
 
  대체 시간을 어떻게 내서 양봉을 연구했을지…, 내 의구심의 눈초리를 알아봤는지 그가 말했다.
 
  “후배 검사들한테 그랬어요. ‘언제 밥 먹자는 말 듣고 진짜 밥 먹자고 전화하지 마라. 그 사람 모든 약속 취소하고 나온다. 자주 그러면 돌아서서 욕한다. 그러면 어떻게 보내냐. 혼자 뭔가를 해라. 시간이 제일 많이 소요되는 게 목공이더라. 금방 12시 된다. 음악에 재능이 있으면 악기도 좋다. 취미와 여가는 구분해라. 취미는 한 달 내내 그것만 해도 좋은 거다. 3일만 해도 질리는 건 다 여가다. 죽을 때까지 마칠 수 없는 취미를 찾으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얘기 도중 사무실에 책이 도착했다. 제목은 《중대재해처벌법 해설》. 그를 포함한 다섯 명의 저자가 함께 쓴 해설서다. 그가 요즘 주시하는 분야다.
 
  “산업 현장에서 재해가 발생하면 경영자에게만 모든 책임이 있는 게 아닙니다. 기업주가 안전조치를 제대로 안 한 경우도 있고, 근로자의 휴먼 에러(Human error)도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사고가 나면 우르르 가서 조업 전면 중단시키고 두 달씩 조사합니다. 서류 다 가져오라면서요. 안전조치를 종합점검했으면 다음에 그런 사고가 안 나야 되잖아요? 그런데 또 일어나요.”
 
 
  중대재해처벌법
 
송인택 전 지검장이 공저한 《중대재해처벌법 해설》.
  ― 사전 예방이 되는 점검이 아니군요.
 
  “‘이 정도 안전조치를 하면 중대재해가 안 일어날지 봐주세요’ 국가에 요청해도 안 봐줘요. 봐줄 시간과 능력이 없어요. 그래놓고 책임은 다 사업주한테 묻는 거예요. 물론 책임을 물어야 할 악덕 사업주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가 아니라, ‘사람이 사고로 죽었으니 다 네 책임이야’ 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기업인들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잖아요. 자꾸 전화가 와요. 자문해주다가 그냥 책을 썼어요.”
 
  ― 특히 중소기업은 중대재해처벌법에 영향을 많이 받을 수 있겠네요.
 
  “인사와 예산, 시설을 정비해야 하는데 그게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잖아요. 직원들도 교육해야 해요. 단순히 인원 배치만 했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요. 기업 입장에선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다시 대화는 꿀벌 얘기로 돌아갔다. 토종벌을 키우는 얘기를 하다, 그가 문득 말했다.
 
  “작년에 많이 죽었지만 벌통이 30통쯤 될까. 제 밑에 여왕이 30마리인데 정치는 해서 뭐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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