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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완의 인간탐험

정종휴 전 대사의 “교황님과 나의 30년 이야기”

“종교, 착하게 사는 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어. 양심만으로 안 돼”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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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 나도 한때는 당신과 같았고 당신도 언젠가는 나처럼 될 것이다’
⊙ “세속적·민주적·다원적 메커니즘 따라 사제는 ‘성스러운’ 역할서 ‘사회적인’ 역할로”
⊙ “불변의 진리는 인간들의 ‘會議’로 정한 것이 아니라 신의 啓示로 주어져”
⊙ 베네딕토 16세 교황과 30년간 인연 이어져… 《세상의 빛》 등 모두 7권 번역
⊙ “교회는 정치 체제에 봉사하지 않아. 교회는 스스로를 정치 권력화하지 않아”

鄭鍾休
1950년생. 전남대 법학과·同 대학원 졸업, 일본 교토대 법학박사 / 前 전남대 교수·법과대학장·행정대학원장 / 駐교황청 한국대사, 한국민사법학회장, 한국법사학회장, 천주교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 역임 / 現 전남대 명예교수, 꽃동네대 석좌교수
사진=조준우
  정종휴(鄭鍾休·70) 전 주(駐)교황청 대사와 기자는 작은 인연이 있다. 2005년인가, 《월간조선》 선배가 퇴직하며 책을 두고 갔다. 책을 전하려다가 먼저 읽어보았다. 책 제목은 《하느님과의 세상-우리 시대의 신앙과 삶》. 은퇴한 교황인 베네딕토 16세(재위 2005년 4월~2013년 2월)가 추기경 시절, 독일 언론인 페터 제발트와 가진 대화를 책으로 묶은 것이었다. 흥미롭게 책을 읽었고, 지식 너머의 많은 영적(靈的)인 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의 역자(譯者)가 정 전 대사였다. 그는 베네딕토 16세 교황과 직접 만나 인연을 쌓았고 교황의 저서를 도맡아 국내 번역했다. 베네딕토 교황은, ‘가톨릭 전통신앙의 요지부동한 수호자’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교황이 되기 전부터 신학자로 유명했다. 정 전 대사는 베네딕토 교황을 만나면서 인생이,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민법을 전공한 훌륭한 법학자이자 로스쿨 원장을 지냈지만, 박근혜 정부에서 주교황청 한국대사(재임 2016년 11월~2018년 1월)를 역임할 만큼 천주교계 안팎에서 두터운 신임을 받아왔다. 대사 시절, 대통령 탄핵으로 황교안 권한대행, 문재인 대통령까지 세 분의 국가원수를 모셨다는 것은 짧은 공직에 기가 막힌 일이었다.
 
  기자는 정 전 대사와 여러 차례 만난 적이 있다. 정의채 몬시뇰을 함께 찾아뵌 적이 있고, 선종한 박홍 전 서강대 총장의 빈소에서 조우한 일도 있다. 가끔 안부를 여쭈었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어쨌든 《하느님과의 세상》 이후 시간이 제법 흘렀다.
 
  지난 7월 10일 서울 압구정동 정 대사의 자택에서 만나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기자가 느낀 ‘울림’을 독자에게 잘 전달하고픈 마음이 간절하지만 부족함을 느꼈다. 혹여 일부 독자는 가톨릭 교리에 바탕을 둔 인터뷰가 불편하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신(神)을 ‘알 수 있는’ 인간의 신앙고백으로 이해해주길 간절히 바란다.
 
  먼저 최근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박원순 서울시장의 죽음을 화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박원순 시장에게 건넨 말은…
 
2017년 9월 한국천주교 230주년 기념 전시회가 바티칸 박물관에서 열렸는데 이 행사에 박원순 서울시장이 참석했다. 당시 정종휴 대사는 박 시장과 비교적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2017년 9월 한국천주교 230주년 기념 전시회가 바티칸 박물관에서 열렸는데 그 개막행사에 박 시장이 참석했어요. 가까이서 뵙고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전시회는 서울시의 도움이 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자리에는 염수정 추기경, 김희중 광주대교구 교구장 등이 참석했지요. 만약 박 시장이 신자였다면 눈치를 보느라 못 도왔을지 몰라요.
 
  제가 박 시장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시장님이 가톨릭에 많은 도움을 주셨지만 2%가 부족하다’고요. 부족한 2%는 교리를 배우고 세례받는 것인데 그게 인생의 모든 것을 좌우할 만큼 결정적인 것이거든요. 제대로 교리를 배웠다면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이 됐을 겁니다.
 
  자살… 생명의 주인은 하느님이십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생명에 대한 처분권이 없습니다. 심지어 자살자는 교회에서 장례를 치를 수가 없습니다. 자살자는 교회묘지에 묻힐 수 없어요. 물론 이것이 불행한 이에 대한 신의 심판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자살 시도 후 죽어가는 순간, 큰 회개(悔改)를 할 수 있어요. 그 회개의 표시가 희미한 말로 표현되더라도 곁에 있는 사람, 길 가던 사람에게 표시된 경우, 예컨대 응급실로 옮기는 앰뷸런스 안에서 성호를 긋고 하느님 자비를 청한다든가, 신부님을 불러 성사(聖事)를 청한다든가 하는 표시가 있었을 때는 교회 장례가 가능합니다.
 
  자살했기 때문에 교회 장례, 교회묘지가 불허되었다고 할지라도, 또 회개의 표시를 찾을 수 없다 해도 구체적인 한 사람을 놓고 ‘지옥에 갔다, 안 갔다’는 식으로 단정해선 곤란합니다.
 
  왜냐면 신(神)만이 모든 걸 아시기 때문이죠. 죽어가는 순간, 곁에 아무도 없었다고 해도, 본인만큼은 회개하고 잘못을 뉘우치며 신께 자비를 청했다면, 생명의 주인이신 그분께서는 자비를 베풀지 않겠어요? 저는 그렇게 믿고 싶어요.
 
  그럼에도 부족한 인간으로 이루어진 교회는 자살자에 대해 장례와 묘지 매장을 허락지 않아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말이죠.”
 
 
  멘토렐라 성지에 있던 ‘메멘토 모리’
 
2000년 무렵 정종휴 전 대사가 베네딕토 16세 교황(당시 라칭거 추기경)을 만났다.
  ― 죽음의 이야기를 좀 더 깊게 해볼까요? 인간은 결국 죽을 수밖에 없고, 생명체에게 죽음은 절박한 관심사입니다. 박 시장이 그런 선택을 할 때 죽음을 두려워했을까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죽음은 단 한 번밖에 없습니다. 죽음은 피할 수 없고 반복할 수 없습니다. 죽음으로 세상과 안녕을 고해야 하지만 그때부터 영혼이 영원한 세계로 들어갑니다. 영원한 세계는 아름다운 세상(천국)을 의미하지 않아요. 펄펄 끓는 지옥도 포함됩니다.
 
  자살하든, 대량 학살로 사망하든, 병원에서 외롭게 죽든, 대도시에서 죽든, 시골에서 아무도 모르게 죽든, 아마존 정글에서 죽든, 의학 발달로 200세, 300세까지 살다가 죽든, 죽음은 나 하나의 죽음입니다.
 
  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영원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이죠. 교황청의 베드로대성당에 각국 대사와 로마 고위 성직자들이 참석하는 미사 전례문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 ‘죽음으로 삶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바뀐다’는 것입니다. ‘바뀐다’라는 말을 음미해보세요.
 
  가톨릭교회의 가르침 중에 ‘4말(末)’이란 게 있습니다. 죽음, 심판, 천국, 지옥을 뜻해요. 사람은 반드시 죽고 심판받는데, 티 없이 깨끗하면 천국에 가고, 혹은 연옥을 거쳐 천당에 갑니다. 그렇지 못하면 구제 불능의 지옥에 떨어져요.
 
  2017년 9월 염수정 추기경님, 박 시장 등과 함께 로마에서 2시간가량 떨어진 멘토렐라 성지에 간 적이 있습니다. 작은 암자 같은 수도원인데 베네딕토 성인의 활동 공간으로 유명해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추기경 시절 그곳에 10여 차례를 가셨고, 교황이 되신 후에는 30여 차례나 가셨지요.
 
  그 산중의 비좁은 동굴 같은 성지 입구의 해골 아래에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라는 경구가 쓰여 있어요. 그리고 ‘나도 한때는 당신과 같았고 당신도 언젠가는 나처럼 될 것이다’는 구절도 써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자신의 죽음을 자주 묵상한다면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을 겁니다. 만약 우리가 자신의 죽음을 잊는다면, 그리고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것 같은 환상을 품는다면 불행한 죽음에 이를 거예요.
 
  세상에는 세 종류의 죽음이 있어요. 하나는 죄가 전혀 없는 이의 죽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이죠. 다른 하나는 회개한 죄인의 죽음인데, 그리스도 십자가 오른쪽에 매달려 있던 강도의 죽음입니다. 그는 용서를 받고 천국에 갔어요.
 
  마지막은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후회하지 않는 가운데 죽은 죄인의 죽음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 십자가 왼쪽에 있던 강도의 죽음이죠. 그 결말의 끔찍함을 현대인들은 잊고 있어요.
 
  유다 이스카리옷의 잘못은 어쩌면 은전 30냥을 받고 예수님을 팔아넘긴 죄가 아니라 끝내 회개할 줄 모른 죄였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회개만으로 되지 않아요. 회개한 후 갚아야 합니다. 반(半)만 갚아선 안 됩니다. 회개는 했으나 갚지 못한 채 죽는다면, 그게 죽을 죄… 대죄에 해당하지 않고 소죄의 정도라면 연옥에서 정화(淨化)를 거쳐야 합니다.”
 
 
  페토로 기베 신부와 김대건 신부
 
  ― 가톨릭 성인의 죽음은 보통 사람의 죽음과 어떻게 다릅니까.
 
  “성인의 죽음은 보통의 사람을 뛰어넘는 것이죠. 성인도 사람인데 명예를 몰랐을까요? 편리를 몰랐을까요?
 
  일본에 페토로 기베(岐部·1587~ 1639)라는 신부가 있어요. 일본에 간 서양 신부가 보기에 그가 뺀질뺀질하다고 생각했던지 사제가 되길 원했지만, 그 뜻을 알아주지 않았어요. 기베는 신부가 되기 위해 배를 타고 마카오에 갔어요. 그곳 예수회 관구장의 퇴짜를 받아 마카오를 탈출했어요. 신부가 너무 되고 싶었던 그는, 인도 고아까지는 배로 고아에서 이스라엘을 거쳐 로마까지는 걸어서 갔어요. 그래서 그를 ‘일본의 마르코 폴로’라고 부릅니다. 로마에 갔더니 ‘일본 젊은이가 로마를 향해 떠났는데 결코 상대하지 마라’는 소식이 예수회 본부에 도착해 있었어요. 그러나 그를 만나 보니 좋은 사람이었고, 결국 그는 천신만고 끝에 1620년 로마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습니다.
 
  로마는 아름다운 큰 도시, 그리스도교의 총본산이 아닙니까. 낙원과 같은 로마에서 그대로 일생을 안전하게 보낼 수도 있었으나, 기베 신부는 예수회 총장에게 간청했습니다. ‘일본으로 돌아가게 해달라’고요. ‘네 목숨이 위험하지 않은가. 로마에 남는 것이 좋지 않으냐’고 달랬지만 기베 신부의 결의를 꺾을 수 없었습니다.
 
  일본에 있는 영혼의 구원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싶었던 것입니다. 마침내 1630년 마흔셋의 나이로 16년 만에 귀국해 신자들을 살피고 고해성사를 베풀며 미사를 통해 성체를 영하게 하다가 1639년 순교하셨지요. 아무리 심한 고문도 결코 그분의 의지를 꺾지 못했습니다. 그분은 같은 시기에 순교한 187명과 함께 2008년 복자품에 올랐습니다.
 
  성 김대건(金大建·1821~1846) 안드레아 신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선 후기 조정에 들어가 라틴어와 서양 정세를 잘 아는 고위 관리가 되려 사제의 길을 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불쌍한 조선 백성의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우리 백성에게 세례를 주고 고해성사로 죄를 사해주며 영혼을 천당으로 이끌기 위해서였던 거지요.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사회봉사를 위해서가 아니었어요. 그게 바로 사제직의 신비입니다.”
 
 
  무엇을 위한 변화인가
 
2016년 12월 정종휴 駐교황청 한국대사가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신임장을 제정하고 있다.
  ― 대사님은 사제의 꿈을 꾸신 적이 없습니까.
 
  “없어요. 제 동생 둘(정종표·정경수 신부)이 사제이긴 하지만 저는 어림없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사제상을 높이 봤어요. 어린 시절 제 눈에 비친 사제는 매우 훌륭해 보였습니다. 실지로 국내외에서 좋은 사제들을 많이 만난 것을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사실 사제가 되면 많은 것을 접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사제 중에 환속자(還俗者)가 제법 많다고 합니다. 환속하는 이가 많은 것은 사제의 정체성(正體性)에 확신이 없기 때문이죠. 가톨릭 공의회 이후 3만2000명에 달하는 예수회 소속 수도자가 지금은 1만6000명 선으로 줄었다고 합니다. 55년 동안 절반이나 준 것이죠.
 
  남은 절반의 사람도 룰을 깨고도 워낙 자유롭기에 뭐 하는지 알지 못해요. 또 젊은 수도자가 매우 적습니다. 여러 해가 지나면 자연감소로 더더욱 줄어들 겁니다. 공의회 이후의 개혁이라고 박수만 칠 수 있느냐는 거예요. 변화, 쇄신 다 좋지만 무엇을 위한 변화, 쇄신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임금님은 벌거숭이’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정 전 대사가 말한 가톨릭 공의회는 1962~65년까지 열린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말한다. 로마 가톨릭교회가 장차 앞으로 나아갈 길을 타진한 교회의 현대적 개혁이 이 공의회의 목적이었다. 현재 그리스도교 역사상 가장 최근에 이루어진 공의회다. 이른바 진보적인 쪽에서는 이 공의회를 통하여 거의 완전히 새로운 교회가 태어난 것으로 여기지만, 보수적인 쪽에서는 오늘날 가톨릭교회를 자체적으로 붕괴시킨 화근(禍根)으로도 보고 있다.
 
 
  ‘사제 독신제 폐지’ ‘여성 사제’라는 유혹
 
  ― 사제 독신제를 어떻게 보시나요.
 
  “독신제가 폐지되면 사제 수가 많아질까요? 일시적으로 많아질 수는 있겠지요. 안정된 직장이 될 테니까. 그러나 사제 생활이 온전해질까요? 사제는,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 아닙니까. 예수님의 본질적인 요소인 독신이 빠져버리면 어떻게 되겠어요. 완전히 사제는 직업으로 변화되고 말 겁니다.
 
  세상을 끌고 가는 추세라는 게 있습니다. 그 추세에 따라 종교가 ‘시민 종교(Civil Religion)’로 변하고 있어요. 세속적이고 민주적이며 다원적인 사회의 메커니즘에 따라서 사제는 ‘성스러운’ 역할에서 ‘사회적인’ 역할로 이행하기를 촉구하는 문화적 압력을 받고 있어요. 그리스도께서 만드신 위계적 구조를 버리고 그럴듯해 보이는 인간적 조직으로 도피하고 싶은 유혹을 받고 있다는 말입니다.
 
  남성 사제의 독신 폐지, 여성 사제의 서품(敍品) 주장도 그런 유혹입니다. 이는 관용이란 이름으로 허용해야 한다면서 관용을 없애는 거예요. 그 자체로서 가톨릭의 독자성을 살릴 수 없게 하는 것 아닙니까? 그냥 ‘비신자의 마음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는 식이죠.
 
  지금껏 고수해온 가톨릭 방식을 바꾸라고 요구합니다. 자유를 말하면서 가톨릭 고유의 신앙과 전례를 지킬 자유는 불허하겠다니 자유의 이름으로 자유를 죽이는 것입니다. 현대사회의 커다란 도전입니다. 동성애와 소아성애까지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어요. 보통 일이 아닙니다.
 
  베네딕토 교황께선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고통을 없애버리려고 한다’고요. 이 세상이 너무나 험해지고 냉혹해지고 있는 것이 실은 그런 고통의 회피에서 나온 결과가 아닐까요.
 
  고통이란 바로 사람이라는 존재에 함께 들어 있는 본질적인 요소입니다. 그래서 이 고통을 정말로 없애려 한다면 다른 것은 차치하더라도 우선 사랑부터 함께 지워버려야만 합니다. 고통이 없는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랑이란 언제나 일정 정도 자기 자신의 포기를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변덕스런 기질이나 시트콤과 같은 상황의 드라마와는 달리 언제나 일정한 포기, 즉 아픔을 수반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상대주의의 독재’
 
  ― 교회 안팎으로 물밀듯이 쏟아지는 세상사의 압력에 교회의 고민도 많겠습니다.
 
  “그럴수록 교회는 객관적인 절대적인 불변의 가치를 지켜내야 합니다. 그 불변의 진리에서 (가톨릭이) 출발했으니까요. 불변의 진리는 인간들이 모여 ‘회의(會議)’로, 다수결로 정한 것이 아니라 계시(啓示·사람의 지혜로 알 수 없는 진리를 신의 가르침으로 알게 함)로 주어졌다고 믿어요. 그게 ‘계시의 진리’라는 겁니다. 따라서 계시로 주어진 것을 고이 보존하고 전달할 의무가 (가톨릭에) 있어요. 현대 풍조가 그러네, 사조가 그러네 라고 말하며 다수결로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신앙이 없다 보면…, 제가 보기에, 신앙이 없다는 것은 진리를 인정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진리가 아닌 종교라면 결국 미신 아니겠습니까? 객관적 진리가 없다면, 윤리적 기준도 세울 수 없습니다. 윤리적 기준이 없으면 결국은 ‘나는 어떤 사안을 어떻게 하면 합리적으로 해결할까’만 생각합니다.
 
  그렇게 될 때는 해결의 기준이란 결국은 다수결밖에 없어요. 그런데 다수결이 맞는 경우가 많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근본적인 문제, 즉 인간의 존엄에 관련된 문제는 다수결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지 않습니까? 다수의 의견이 얼마나 파괴적일 수 있는지는 역사를 통해 충분히 보았지 않습니까?
 
  이와 관련하여 베네딕토 교황은 2005년 콘클라베 개회사에서 ‘상대주의의 독재’를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아무것도 궁극적인 것으로 인정하지 않고 최후의 준거로 그저 저 자신과 자기가 바라는 것들만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다시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인간이 수긍해야 할 절대적 진리라는 것이 있고, 이 진리를 인간의 능력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용기 말이죠. 진리에 따르고 생활 속에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발견하고 찾아야 해요. 그러기에는 문화와 사상적 다양성의 매력이 크면 클수록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유일한 진리의 종교’
 
정종휴(앞줄 맨 왼쪽) 전 대사는 중학교 2학년 때 전남 담양의 한재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가운데 서양 신부는 에드워드 변 신부다.
  ― 고(故) 이병철 회장이 했던 24가지 질문 중의 하나입니다. ‘종교의 목적은 모두 착하게 사는 것인데, 왜 천주교만 제1이고 다른 종교는 이단시하는가’에 대한 답변이 궁금합니다.
 
  “신은 인간 본성에 창조주를 찾는 의지를 심어주셨습니다. 성자(聖子·예수)의 강생(降生) 이전에도 사람들도 초월적 본성에 따라 신을 추구하고 죽음 이후 세계에 각자 나름대로 생각을 하였지요. 착하게 사는 것도 인간 이성으로 희미하게, 불분명하게 양심에 따라 가능하지요. 하지만 확실하고 구체적으로 올바른 윤리의 법을 알 수는 없습니다. 과거 식인종들도 그들 나름의 자연종교 형태를 띤 종교의식과 윤리가 있었지요.
 
  조선 시대를 비롯하여 모든 국가와 민족들이 과거에는 일부다처제를 당연시 여겼고, 셈족들은 함무라비 법전에 복수동태법(탈리오의 법칙)이 있었죠. 구약(舊約)의 유대인들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법을 따랐습니다. 그들은 당연히 착하게 산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적 가르침, 초자연적인 가르침에서 볼 때 문제가 있어요. 저 사람이 내 눈을 뺐다고 해서 내가 그의 눈을 빼는 것은 감정적 복수는 될지언정 또 하나의 눈 없는 사람을 만드는 게 아닙니까. 그게 무슨 좋은 일이 되겠어요? 눈을 안 빼는 대신 손해 배상을 하게 만들자고 해서 배상금제로 바뀌게 됐고 형(刑)을 살게 한 것이지요.
 
  그리고 ‘용서’하게 함으로써 감동을 받아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게 만들었어요. 용서라는 것도 다 가톨릭교회의 영향 아닙니까, 계시 진리의 영향 아닙니까.
 
  명확한 계시 진리가 없다면 인간이 착하게 산다고는 하지만 올바른 법도에 따른, 윤리적 권위를 띤 삶이라고 말하기 힘들어요. 그런 점에서 천주교를 믿는 것은 진리의 법칙을 따르는 일이라 말씀드릴 수 있어요.
 
  가톨릭교회는 다른 종교들과 비교해 우월주의에 빠져 자신을 제일(第一) 종교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천주교를 제일가는 종교로 여기지 않고, 유일한 진리의 종교라고 말할 뿐이지요. 우리는 진리이기 때문에 가톨릭 신앙을 갖는 것입니다.
 
  유일한 진리의 종교여서 할 일이 많습니다. 세상 끝날 때까지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손상, 왜곡, 과장, 축소, 덧붙이거나 빼지 못한다, 이 말이에요. 그러니까 ‘전통(tradition)’이라는 말이, 성경 용어로 라틴어 ‘tradire’에서 나왔는데 ‘내가 받은 대로 전해준다’는 뜻입니다. 세세대대(世世代代)로 이어가면서 세상 끝까지 하늘나라를 만들 사명 때문에 그렇지요. 길게 보면 릴레이 경주에서 바통 터치와 같습니다.
 
  이처럼 초자연적인 진리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 과연 나에게 이토록 진리를 곧게 실천하고 전달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죠. 종교를 단순히 착하게 사는 것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베네딕토 교황이 말씀하셨지만, 뭐가 착한지 알기 위해서는 뭐가 참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교회의 자살
 
  정 전 대사는 “참된 걸 가려낼 수 없고 참되지 않은 것과 구분할 수 없다면 선도 알아볼 수 없다. 선과 악을 구분하는 근거가 사라지고 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진리를 떠나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무엇이 진리인지를 모른다면 무엇이 선인지 모르고 정의도 말할 수 없어요. 그런데 현대 철학에서는 ‘형이상학의 종언(終焉)’이랄까, 형이상학이 설 자리를 잃어버렸습니다. 인간에게는 진리 파악의 능력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윤리적 기준을 찾을 수 없게 됩니다. 모든 것을 상대주의에 맡겨버리게 되지요. 선량한 남녀들에게 ‘왜 어떤 가치는 보호되어야 하고, 어떤 행위는 비난받아야 하는지’를 갈수록 설명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절대적 불변의 진리를 증언하는 유일한 가치 체계이자 세계적 네트워크가 되어야 합니다.”
 
  ― 가톨릭의 전통만 고집하는 것은 아닐까요. 가톨릭 내부의 문제도 있잖아요.
 
  “세상 종말까지 예수님의 지상 명령에 의거해 그분 가르침을 조금도 손상하거나, 왜곡하거나, 과장 내지 축소하거나, 덧붙이거나, 빼거나 할 수 없습니다. 신앙과 윤리의 계시 진리가 시대에 따라 변하고 그 당위성이 감소된다고 가르친다면 그 순간 계시 진리를 포기한 것이고, 교회는 자살행위를 하는 것이 아닐까요?
 
  불과 40~50년 전만 해도 개신교들도 성서 가르침대로 이혼과 동성애와 낙태 등을 죄로 여겼는데 지금은 죄로 여기지 않는 교단이 많다고 합니다. 보세요! 이 사실이 바로 스스로 불변의 신앙과 윤리의 진리를 보유하지 않았거나 보존하고 가르치는 참된 종교가 아님을 입증한 것입니다.
 
  하지만 가톨릭교회 내부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최근 들어 성직자와 수도자들을 포함하여 많은 신자가 기본진리, 즉 예수님 말씀을 저버리고 그분께서 정하신 성사 등의 질서를 어지럽혀 교회의 거룩하고 빛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어요. 이것 역시 인간 책임입니다.”
 
 
  적대적 냉담자의 증가
 
법대 시절, 군복무 시절, 유학 시절의 정종휴.
  한국 천주교 신자는 2019년 현재 591만명으로 전년(前年) 동기(同期)보다 5만여 명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신자가 꾸준히 늘고 있지만 미사 참여율과 냉담자 역시 증가하고 있다. 주일 미사에 참여하는 신자 수가 최근 전체 신자 대비 20% 미만으로 떨어졌다. 100명 중 20명도 안 되는 사람들만 미사에 참여하고 나머지는 주일 미사에 가지 않는다. 심지어 사목의 일환으로 사제가 가정방문을 할 때 아예 문을 열어주지 않는 ‘적대적 냉담자’ 수도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19 여파로 상황은 더 심각해지고 있다.
 
  “교리, 신앙, 미사, 강론, 수도원, 신학교, 성직자들의 생활, 교회의 대사회적 발언 등에서 교회가 본모습에서 벗어난 경우가 많아요.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성당에 가지 않는다’고. 과연 빈말이기만 할까요? 신천지가 가톨릭교회를 제일 타깃으로 삼고 포교 활동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가톨릭 신앙은 확고한 교리 체계 위에 서 있는데 신천지 같은 신흥 종교나 이단이 침투할 수 있다는 것은 가톨릭 신자들이야말로 신앙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요?
 
  아닌 게 아니라 최근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주일날 미사 참여율이 18%, 젊은이들의 경우 8% 선이라고 합니다. 젊은이가 없다면 미래에 대한 희망은 없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 교회의 정치화도 영향이 있지 않을까요.
 
  “베네딕토 교황의 말씀을 빌려 이야기할게요. 교회는 정치 체제에 봉사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아무리 훌륭하게 고안된 정치적 이상향이라 할지라도 언제나 정치적 영역에 속하는 이상, 그것을 위해 일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정치가 절대적이라는 생각에 반대합니다. 정치는 인간 실존의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전부는 아닙니다.
 
  교회가 어떤 정치 체제에도 봉사하지 않고 또 무엇보다 스스로를 정치 권력화하려고 애쓰지 않는 가운데 오로지 하느님의 진리를 증언하고 진리에 이르는 자유를 추구하며, 때로는 순교의 길을 택하면서까지 헌신할 때 교회는 신뢰할 수 있게 되며 ‘이 땅의 소금’이 됩니다. ‘소금’ 그것은 성서의 관념 세계에 따르면 부패를 방지하고 내부로부터의 붕괴를 방지하는 물질입니다.”
 
 
  “역사에 일직선적 진보는 없다”
 
1984년 8월 교토대학에서 공부를 마치고 귀국하던 날 오사카 이타미공항에 10명의 친구들이 나와 헹가래를 치며 환송해주었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 쓰네오카 후미코(常岡史子) 교수(現 요코하마대 교수), 야마모토 게이조(山本敬三) 교수(교토대), 야마자키(山崎) 여사(야마자키 변호사의 어머니), 고노 도시유키(河野俊行) 교수(규슈대), 야마모토 겐지(山本顯治) 교수(고베대), 구보타 아쓰미(窪田充見) 교수(고베대), 시오미 요시오(潮見佳男) 교수(교토대), 마쓰오카 히사카즈(松岡久和) 교수(리쓰메이칸대), 데지마 유타카(手嶋 豊) 교수(고베대), 야마자키 히로코(山崎弘子) 변호사다. 지금도 동료들과 우정을 나누며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 진보는 다 옳고 보수는 다 나쁩니까. 진보란 무엇입니까.
 
  “진보(progress)는 목표나 척도가 없이도 존재할 수 있을까요? ‘있을 수 없다’는 입장도, ‘있을 수 있다’는 입장도 있는데, ‘있을 수 있다’는 입장은 허무주의적 실존주의나 상대주의적 목적론과 관련이 있어요. 그런데 정말 역사는 진보할까요? 진보도 있고 퇴보(regress)도 있다고 봅니다. 일직선적 진보란 없습니다.
 
  인간의 본질적인 가치인 행복·지혜·경륜은 보편적입니다. 시대·장소에 따라 달라지지 않죠. 나치와 공산주의는 옛날이었건 지금이건 인류사의 퇴보지요. 무고한 사람을 살해하거나 식인은 언제나 악이며 비가치적인 것입니다. 집단학살, 강제이주, 사회조작, 히틀러, 스탈린, 9·11테러도 마찬가지지요. 플라톤보다 사르트르가, 사르트르보다 하버마스가 더 참이라고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행복·지혜·본질 가치의 인식 정도가 ‘베터(better)’ ‘디퍼(deeper)’가 될 수는 있어도, 타당한 가치 자체는 전혀 별개의 것일 수는 없습니다.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뉴어(newer)’ ‘베터’처럼 ‘새것일수록 좋다’는 경우가 많지만, 인문·사회 분야와는 별개죠.
 
  철저한 다문화주의는 진리의 부정, 학문의 부정, 사회의 분열을 초래합니다. 오늘날 상대주의가 상당히 위세를 떨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데, 상대주의자가 아닌 사람은 편협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스스로 근본적인 진리를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편협한 사람으로 간주됩니다. 그렇지만 진리를 배제하는 일이야말로 정녕 심각하게 편협한 것이요, 삶의 근본적인 것들을 상대주의로 축소시키고 마는 일입니다. 그러다가는 근본적인 것에 대해 모두가 함께하는 공통된 개념조차 남지 않게 됩니다. 누구나 다 제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고 또 그래야 마땅하다는 듯이 말입니다. 이러다가 우리는 모두가 함께하는 공동생활을 위한 윤리적 토대마저 잃어버릴지 모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말씀에 따르면 ‘역사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랑이 대결하고 있다’고 합니다. 자기 사랑과 타인 사랑 간의 긴 싸움인데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은 세상의 파괴에 이를 수 있고, 다른 사람을 위한 사랑은 자아 포기에 이르게 합니다. 이 싸움은 역사를 통해 항상 있어 왔는데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낙태는 인권이 아냐
 
  ― 여성의 낙태를 어떻게 봐야 합니까. 낙태 논란은 현대사회의 큰 흐름이 분명해 보입니다.
 
  “베네딕토 교황께서 하신 말씀인데, 개인주의 성향이 극단화되면서 낙태가 자유의 권리처럼 보이게 되었습니다. 여성이 자기 몸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말이겠지요. 아기를 낳을지 아니면 아기 낳고 기르는 일로부터 벗어날지는 여성 스스로에게 결정할 자유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 결정은 오로지 여성 스스로 내릴 수 있어야 하고, 다른 누구도 여성에게 궁극적 구속력을 갖는 규범을 덧씌울 수 없다고 합니다. 자기 결정권의 문제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여성이 낙태를 한다고 할 때 정말로 자기 자신에 대해 결정하는 것일까요? 사실은 다른 누구로부터 자유(생명)의 여지를 빼앗아버릴지 말지 결정하는 게 아닌가요? 다른 사람의 자유를 처음부터 없애버려야 할 권리를 갖는 자유란 게 도대체 무슨 자유인가 말이죠.
 
  낙태는 인권이 아닙니다! 인권이란 개념은 유럽에서 맨 처음 개념 정의되었습니다. 다른 모든 권리의 전제가 되는 근본 인권은 바로 생명 그 자체에 대한 권리입니다. 이 권리는 임신에서부터 자연스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생명에 다 적용이 됩니다. 그에 따르자면 낙태는 인권일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와 정반대지요. 낙태는 ‘사회의 깊은 상처’입니다.”
 
 
  베네딕토 교황과의 인연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모습이다. 위쪽 사진은 교황청에서 받은 사진이고, 아래쪽 사진은 정종휴 전 대사가 직접 찍었다.
  베네딕토 교황과 정 전 대사의 인연은 1990년에 시작된다.
 
  “훗날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되는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은 교회 안팎에서 유명한 분이었지만 저는 1990년에 들어 처음으로 그분을 알게 되었어요. 제가 1990년 7월부터 ‘알렉산더 폰 훔볼트 재단’의 지원으로 독일에 가게 되었어요. 그런데 독일 가기 한 열흘 전에 한 스페인 신부께서 논문을 하나 보내주셨어요. 그게 바로 라틴어로 된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일본어로 옮긴, 서양사학자 사와다 아키오(澤田昭夫·1928~2015) 니혼대 교수가 쓴 〈20세기 후반의 가톨릭교회의 현상〉에 대한 논문이었어요. 그 논문의 마지막 부분에 ‘더 자세히 알고 싶으면 요제프 라칭거의 책을 읽어보라’는 말이 있어서 라칭거 추기경, 즉 베네딕토 교황의 이름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 책이 바로 ‘라칭거 리포터(The Razinger Report)’로 알려진 《신앙의 현재 상황(Zur Lage des Glaubens)》이라는 책자였어요.
 
  독일에 막 도착해 4개월간 만하임의 ‘괴테 인스티튜트’에 다니며 독어 공부를 했지요. 그런데 만하임대학 근처의 큰 성당 주일 미사에 참례했는데 그 성당의 서점에서 그 책이 눈에 띄는 거예요. ‘옳지, 이것이구나’ 싶어 샀어요. 그 책은 이탈리아의 비토리오 메소리라는 저널리스트와 가진 대담을 정리한 것인데, 책 내용에 빠져들었습니다.
 
  가톨릭교회의 ‘개방’이니 ‘토착화’니 뭐니 가급적 좋은 쪽으로만 생각해왔는데 전통적인 것에 대한 고민이 책에 담겨 있었어요. ‘가치’라는 것은 새롭게 창출되기보다 원래 있는 것에서 전개되는 것이구나, 또 그래야 되는 것이구나 등을 깨닫게 된 것이죠.
 
  만하임에서 독어 공부를 마치고는 뮌헨으로 갔지요. 뮌헨대학 레오폴트 벵어 연구소에 스페인 로마법 교수가 있었는데 이 친구와 같이 밥을 먹으러 가면서 삼종기도를 같이 했지요. 그런데 그가 ‘당신이 좋아하는 라칭거 추기경이 다음 주에 뮌헨에서 미사를 한다’는 겁니다.
 
  한 주가 지나서 뮌헨 시내에 있는 성 미카엘 성당에 가게 됐죠. 당시 로마에서 신앙교리성 장관을 하고 있던 라칭거 추기경의 사제 서품 40주년 기념미사였는데, 야외 환영 행사가 끝나고 성당 안으로 추기경이 들어갈 때 말을 건넸어요.
 
  ‘한국에서 온 정 모인데 추기경님의 이 책을 번역해도 되는지, 만약 번역을 하게 된다면 한국 독자를 위해 서문을 써주실 수 있는지’를 여쭈었어요. 그랬더니 저를 딱 쳐다보시면서 다른 말씀은 안 하시고 ‘로마로 편지를 쓰라’고 하셨죠. 그래서 편지를 보냈는데 답장은 없었습니다.
 
  한 해가 흐르고 1992년 4월 제가 프랑크푸르트에 머물고 있을 때 독일 순례단에 끼어 로마에 가게 됐습니다. 그때 로마의 판테온 옆 미네르바 성당에서 라칭거 추기경님이 독일 순례단을 위한 미사를 해주시기로 한 거예요. 다시 인사를 드렸어요. ‘추기경님, 로마로 편지를 보냈는데 혹시 비서가 전해드리지 않았는가 싶다’고 했더니 ‘식중독에 걸려 답장을 못 했다. 한국어판을 내도 좋고, 한국 독자를 위한 서문도 쓰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책이 바로 《그래도 로마가 중요하다-신앙의 현재 상황》(1994년·바오로 딸)입니다. 당시 가톨릭교회 내에서 열렬한 찬성과 격렬한 반대라 할까요, 아무튼 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지요.”
 
 
  “E.H 카는 허위 지식인”
 
駐교황청 한국대사 시절의 정종휴 대사와 부인 이선미(李鮮美) 여사. 가운데는 주교황청 영국대사 악스워디.
  그 후로 정 전 대사는 베네딕토 교황의 저서를 계속 번역했다. 2012년에 출간된 《세상의 빛》(가톨릭 출판사)까지 모두 7권이다. 그는 “따지고 보면 독일에 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2류 민법학자 정도였을 텐데 독일 갔다 온 후 완전히 지리멸렬한 3류 학자가 되고 만 것은 실은 베네딕토 교황과의 만남 때문”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법학 논문 쓰기보다 교회 서적을 더 많이 펴냈다는 주장 같은데 사실과 다르다. 정 교수는 사법시험·행정고시·외무고시 출제위원과 함께 한국민사법학회 회장, 한국법사학회 회장, 국가인권위원회 정책자문위원을 역임했다. 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생명윤리회 위원(2005~2016)으로도 활동했다.
 
  정종휴 전 대사는 사와다 교수와의 에피소드 한 대목을 들려주었다. 사와다 선생은 2003년 사학개론 강의안을 그에게 건네면서 여러 가지 설명을 해주었는데 그때 에드워드 카(Edward Hallett 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사와다의 말에 따르면 “카는 허위 지식인”이라는 주장이었다. 한국에서 불후(不朽)의 명저(名著)로 알려졌지만, 독일에서는 절판이 되어버렸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일본에서도 50쇄 이상을 찍었지만 독일에서는 절판이 됐는데, 에드워드 카는 스탈린 시대의 소련만 추종하던 사람이란 거예요. 영국에서도 그 책은 팔리지만 그를 비판하는 책도 동시에 팔린다고 합니다. 한국과 일본에서만 그에 대한 비판 같은 것은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죠.
 
  사와다 선생님에 따르면, 카의 주장은 조잡한 추론인데 우리 역사교과서를 집필하는 분들 내지는 역사학계의 사상적 구조가 카의 수준에 머문 정도가 아닐까 싶어요. 만약 카가 허위 지식인이고 그가 생각했던 전제라는 것이 허황된 것이라면, 우리나라 역사학계도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에드워드 카는 ‘우연’과 ‘절대’에 관한 철학적인 개념을 의도적으로 혼동케 하고 일부러 곡해합니다. 사람들의 미래에 대한 바람이랄까, 소망이랄까, 미래의 원망(願望)을 가지고 과거를 이해하는 전략을 세워요. 그런데 그가 말하는 미래 원망에 의한 역사의식의 기본 특징이 뭐냐 하면 철저히 주관주의, 상대주의, 사회과학주의라는 겁니다.
 
  또 현재 중심주의이고, 또 미래 중심적인 진보주의를 추종하죠. 이렇게 되면 역사를 연구하는 게 아니라 엉뚱한 걸 역사로 여기게 됩니다. 역사적인 사건을, 사건에 대한 실재성을 상실하고 말죠. 해석주의 내지 상대주의에 의해 역사를 재단하게 됩니다. 역사의 진실성은 사라지고 실용주의에 의한 역사의 이데올로기화를 부추기는 꼴이 됩니다.”
 
 
  “진보의 반대는 퇴보”
 
로마의 2000년 전 모습이 남아 있는 ‘비아 아피아 안티카’를 기도하며 걷고 있는 정종휴 대사의 뒷모습이다.
  ― 학문 분야에서 진보와 보수라는 말이 횡행하고 있습니다. 학자 성향을 두고도 진보학자, 보수학자라는 말이 있지요.
 
  “학자들이 학문의 세계에서 진보니 보수니 태연히 쓰는 것은 학문의 타락이 아닐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학문을 한다면 진보니 보수니 하는 말을 쉽게 쓸 수가 없어요. 정치판에서나 통할 수 있는 어리석은 이분법, 그걸 학자들이 쓸 수는 없어요. 왜냐?
 
  진보라는 것은 무얼 말합니까. 진보라는 말은 한발 앞서나간다는 걸 말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가치평가에서 진보의 반대말이 뭐겠습니까. 퇴보가 아닌가요?
 
  진보와 대비 개념이 퇴보지, 어찌 보수겠어요. 뭔가 진보에 어떤 플러스적인 의미를 담고 싶기에 그런 겁니다. 그렇다면 그 플러스적인 의미를 담보하는 가치가 뭐냐 하면, 이를테면 평등이라든가 인권·민주·자유·자기결정권이라든가, 여러 가지 것이 있을 거예요.
 
  이런 개념들이 그 자체로 타당한 것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옳은 것은 왜 타당한가를 말할 수 있는 논거가 있어야 하니까요. 최종적인 논거까지 우리가 고민하면서 추적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 진보라는 것은 결국 말하고 싶은 걸 말하기 위해 쓰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안 되니까요.
 
  진보라는 것이 실상은 어떤 제도를 바꾸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면, 바꿔서 좋은 것이라고 한다면, 이게 개혁이어야 맞는 것 아닙니까. 고치는 것은 진보가 아니라 개혁입니다. 개혁을 해봤더니 과연 플러스적인 의미에서 진보더라, 혹은 마이너스적인 의미에서 퇴보더라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이런 점에서 말하자면 개혁을 놓고 진보냐, 퇴보냐를 논하는 것이 맞다 이거예요.”
 
  ―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보수, 진보의 이분법 문제를 잘 알겠습니다만 그래도 세속에서 말하는 ‘보수, 진보’의 관점에서 본다면 어느 쪽이신가요.
 
  “저는 보수도 진보도 아니고 가톨릭일 뿐입니다. 살아 있는 전통으로 숨 쉬고 살아가는 ‘가톨릭’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그런데 진보의 반대 개념이 ‘퇴보’라는 것은 실은 한 세대 앞에 산 국민에게는 일종의 상식이었죠. 예컨대, 청렴·강직의 대명사 같은 가인(街人) 김병로(金炳魯·1887~1964) 대법원장은 한국 민법전의 실질적 기초자로서도 잘 알려져 있지요.
 
  우리 민법전에는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 금지의 원칙을 정하는 규정이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쓰던 민법전에 없던 원칙이 조문화된 것입니다. 국회 민법안 심의과정 중에 가인 선생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런 것들은 인류 사회의 기본 원칙이므로 굳이 법률로 규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민법전에 이러한 법 규정을 넣는 것은 우리 인류 생활이 정신적으로 퇴보되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인류 생활이 퇴보되니까, 즉 말하자면 나빠지기 때문에’ 이러한 원칙을 조문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법 제도나 규정이 바뀔 때 플러스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라면 진보, 마이너스 방향으로 간다면 퇴보인 것이지, 진보의 반대는 보수가 결코 아닙니다. 배우는 학생들은 정치판에서나 통하는 어리석은 이분법을 피해야 합니다.”
 
 
  神에 대한 두려움
 

  신앙과 관련된 진지한 이야기가 이어졌지만 전혀 무겁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시종 즐거웠다.
 
  ― 하느님과 직접 이야기할 때는 전화로 통화하는 것처럼 자연스럽습니까.
 
  “아닙니다. 저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는 많이 기다릴 수도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성서에서 보듯이 하느님께서는 죄를 뉘우칠 줄 모르거나 마음 자세가 많이 빗나가 있을 때는 말씀을 들려주지 않으신다니 평소 주님의 계명을 소홀히 않도록 두려워할 줄 알아야겠죠.”
 
  ― 신이 두려울 때가 있습니까.
 
  “두려움을 느낄 수 있는 것도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에는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을 아는 것이 지혜의 근원이라고 말합니다. 유럽의 어느 추기경께서 ‘고위 성직자 중에 무신론자(無神論者)가 많다’고 말해 놀란 적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하느님을 두려워할 줄 모릅니다.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면 그렇게 할 수 없어요. 하느님은 뭐든지 부탁만 하면 잘 들어주는 이웃집 아저씨보다 조금 더 좋은 분이 결코 아닙니다. 우주를, 이 세상을 창조하고 생명을 불어넣으신 분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단숨에 파괴하시는 분 아니십니까? 하느님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해요. 한없이 좋으신 분, 한없이 자애로우신 분이지만 무슨 잘못이건 무조건 용서하시지는 않습니다. 자신이 인정하지 않는 죄는 용서받지 못합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대 없이 그대를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그대 없이 그대를 구원하지 않으신다’고요.”
 
  ― 신이 우리의 일상에 개입합니까.
 
  “당연히 개입하시죠. 신앙이 깊은 이에게 진짜 우연이란 없습니다. 다만 개입할 때 누구에게나 다 똑같이 보이면 어떻게 해요. 여러 흐름 속에서 자신의 온갖 지성, 두뇌, 의지, 열과 성을 다해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는 것 자체가 은총이죠.”
 
  ― 일상의 모든 일을 의미로 받아들이면 얼마나 피곤할까요.
 
  “피곤하죠. 그렇지만 하느님께서는 피곤만으로 치부할 수 없는 또 다른 재미도 주시잖아요. 그렇지 않습니까?”
 
  ― 누구나 한번쯤은 힘들고 지쳐서 자신이 몹시 무기력해지거나 또 좌절감에 젖어 완전히 숨어버린 듯 보이고 부당하게만 느껴지는 자신의 운명에 분노를 터뜨리게 되는 일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문제들을 기도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베네딕토 교황 말씀처럼 ‘욥’처럼 시작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올 하느님께 꾸밈없이 불평도 하고 투정도 부려보는 거예요. ‘하느님, 제가 이렇게 힘든데 절 어쩌시려는 겁니까?’ 욥은 당당히 몸으로 맞섰고 하느님 앞에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그러다가 점차로 하느님의 말씀을 듣게 되고, 그러면서 상황은 반전(反轉)되어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비록 지금은 이해하지 못하지만 지금 일어나는 일들이 마땅한 것이라 믿어 몸과 마음을 맡길 수 있음을 알게 됩니다. 저 같은 사람이야 아직 까마득하게 멀었지만 그래도 욥을 닮아보려는 노력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네요.”
 
 
  “악마는 매우 순결한 천사의 얼굴로 나타나”
 
  ― 르완다 사태, 유고 사태처럼, 인류는 ‘인종 청소’의 비극을 왜 반복하는 것일까요.
 
  “잔인한 비극들에 대한 인간들의 책임을 하느님께 떠넘겨서는 안 됩니다. … 하느님은 그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가르치십니다. 문제는 인간이 자유를 남용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하느님의 인내하심을 시험하는 데 있습니다. 그런 비극을 통해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회개하고 하느님 당신께 돌아오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속죄하면서 말입니다. 또 무너뜨린 하느님의 정의, 곧 구원하는 사랑의 질서를 책임을 다해 바로 세워야겠죠.”
 
  ― 혹시 누군가가 ‘하느님은 왜 악인(惡人)을 벌하지 않으시나’고 묻는다면 어떻게 답하면 좋겠습니까.
 
  “인간 행위에는 반드시 상벌(賞罰)이 따릅니다. 하느님은 지극히 정의(거룩하심)로우십니다. 악인을 벌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를 기다리십니다만, 인간이 죽게 되면 현세라는 시간이 종료되고 육신은 땅에 묻히게 되지만, 영혼은 영원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들게 됩니다. 죽음과 함께 자비의 시간이 끝나고, 하느님의 엄정한 심판이 따르게 되는데, 모든 죄를 용서받고 거룩하게 된 영혼은 바로 하느님과 완전히 하나를 이루는 천상낙원에 들게 되고, 회개하지 않아 용서받지 못한 영혼은 하느님과 영원히 결별하여 불구덩이의 영원한 지옥에 떨어져 고통받게 되지요.
 
  흔히 죽을죄를 짓고도 현세에 돈이 있고 권력을 누리거나 육신이 별 탈 없으면 벌을 받지 않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지옥편 33곡’을 보세요. 인간이 대죄를 지으면 그의 영혼은 그 즉시 지옥에 떨어지되, 악마가 그 죄지은 자의 육신을 지배하여 데리고 다니면서 계속 도구로 활용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사탄의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사탄은 교회조차 이용합니다.”
 
  정 전 대사는 “악마가 실제 있다. 천사가 하느님을 거역하여 타락한 영이 사탄이고 악마, 마귀들이다. 즉 나쁜 천사가 악마다. 악마는 천만 가지 얼굴을 하고 있기에 매우 순결한 천사의 얼굴로 나타나는 수도 있다고 엑소시스트들이 증언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많이 받은 이의 큰 책임
 
  ― 정말 모든 사람은 하느님 앞에 평등한가요.
 
  “모든 인간은 신 앞에서 다 같은 인간 본성을 갖고, 그러기에 같은 존엄을 가진 존재로서 평등한 심판을 받습니다. 신 앞에 평등의 의미는 누구나 신 앞에서 심판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모든 사람은 인종이나 피부색이나 언어나 국적, 성별, 직업, 혈통, 시대, 장소, 존귀의 차별 없이 하느님 앞에서 동일한 조건하에 구원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유다인도 그리스인도 없고,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도 없고, 여러분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갈라디아 3:28)라고요.
 
  그러나 하느님의 지혜와 섭리에 의해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보완할 것을 바라시기에 민족, 남녀, 능력, 용모, 기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세계는 하느님이 바라시는 조화로운 다양성 때문에 풍부하고 아름다워집니다. 어떤 이는 10탤런트, 어떤 이는 5탤런트 어떤 사람은 1탤런트를 받고 있습니다. 탤런트의 차이가 있지만 많이 받은 사람에게는 그만큼 많은 책임이 따릅니다. 우리를 속이시지도 않고 속지도 않으시는 하느님은 우리의 책임을 반드시 물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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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간조선 2018년 4월호 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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