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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국회부의장 거부한 정진석 미래통합당 의원

“2022년 대선 승리의 카드는 비영남 중부권 후보”

글 : 하주희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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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나는 국회 문지기도 할 수 있다”
⊙ “NL운동권들이 대한민국 발전 위해 뭘 했나”
⊙ “국회부의장, 국회의장, 더 높은 자리를 추구하는 건 아무 의미 없다. 내 머릿속엔 오로지 2022년 3월 9일 정권 탈환뿐”
⊙ “윤석열 총장은 매력적인 사람, 우파 대선 후보감인지는 더 지켜봐야”

鄭鎭碩
1960년생.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 《한국일보》 워싱턴특파원·논설위원, 청와대 정무수석, 국회 사무총장, 미래통합당 원내대표 역임 / 現 미래통합당 의원(5선, 충남 공주·부여·청양) / 저서 《사다리 정치, 나의 정치는 연결이다》
사진=조준우
  ‘난세(亂世)’만큼 현재의 대한민국을 잘 설명하는 단어가 또 있을까. 적어도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믿는 우파 세력에겐 말이다. 사마천은 ‘난세란 꿈과 희망과 이상의 기반인 믿음을 상실한 상태’라 정의했다. 믿음의 문제란 얘기다. 위정자들에 대한 믿음, 소위 지식인이라는 자들에 대한 믿음.
 
  난세에도 몇 안 되는 장점이 있긴 하다. 평시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는 점이 그중 하나다. 정진석(鄭鎭碩·60) 미래통합당 의원의 최근 행보가 그 예가 아닐까. 정 의원은 5선으로 미래통합당의 최다선 의원 4명 중 한 명이다. 정 의원은 야당 몫의 국회부의장 취임을 거부했다. 상임위원회 구성안을 더불어민주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데 대한 항의였다.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자리가 결정적이었다. 법사위 위원장은 야당이 맡는다는 관행을 더불어민주당은 일방적으로 깨버렸다.
 
  여당은 박병석 국회의장과 김상희 국회부의장만 앉아 있는 반쪽짜리 의장단으로 개원을 했다. ‘정말 부의장 거부한 거냐’는 질문이 쏟아지는지 정 의원은 지난 7월 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호랑이는 굶주려도 풀을 먹지 않는다.’
 
  7월 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정 의원을 만났다.
 
  ― 야당 의원이 국회부의장 취임을 거부한 건 제헌국회 출범 후 처음 아닙니까.
 
  “아침에 샤워하다 언뜻 이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비누 묻힌 채로 나와서 김성원 원내수석부대표한테 전화를 걸었어요. 오늘 국회부의장 공고하냐고 물었더니 그렇다는 거예요. 공고하지 말자고 했어요. 그날 아침 의원총회에서 말했습니다. 원 구성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국회부의장 안 하겠다고요.”
 
  국회의원의 세계를 잘 모른다면, 국회부의장 자리 거부가 뭐 그렇게 큰일이냐고 할 수 있다. 국회부의장은 부총리급의 자리다. 정부 의전 서열상으로는 9위다. 임기는 2년이다. 국회의장을 대신해 본회의 사회를 볼 수 있다. 따로 비서진도 둘 수 있고, 집무실과 차량도 제공받는다.
 
  부의장은 국회의장으로 가는 하나의 관문이 될 수 있다. 이번 의장인 박병석 국회의장과 이전 의장이었던 문희상 국회의장도 국회부의장 출신이다. 정 의원의 설명이 이어졌다.
 
  “주변에서 물어요. 국회부의장 자리를 어떻게 그렇게 쉽게 버렸냐고요. 전대미문의 반민주 의회 폭거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거부했지만, 한편으론 의장석에 저 혼자 앉아 있는 게 제 마음이 편하겠습니까. 정진석이 국회부의장 되고 말고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다만 여당 출신 의장·부의장으로 의장석이 꾸려질 때, 그걸 국민들이 보시라는 겁니다.”
 
 
  상임위원장 의석수 배분은 DJ 작품
 
지난 6월 24일 미래통합당 김종인 비대위원장(가운데)과 정진석 의원이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중진의원 연석회의장으로 가고 있다. 사진=조선DB
  ― 의석수대로 상임위원장 배분하는 관행은 DJ(김대중) 작품 아닙니까.
 
  “김대중 대통령이 평민당 총재 할 때 제안한 전통이에요. DJ를 계승한다는 정당이 DJ의 작품을 스스로 짓밟아버려? 정말 희한한 세력입니다.”
 
  정 의원은 12대 때부터 국회와 한국 정치를 지켜봤다. 12대부터 15대까지는 신문 기자로, 16대부터는 국회의원, 청와대 정무수석, 국회 사무총장으로 정치 현장을 지켜왔다.
 
  ― 지금까지 지켜보신 중 현재 한국 정치는 어떤 형편입니까.
 
  “현 정부·여당은 대해본 중 가장 몰이성적인 집단입니다. 이념을 떠나 상식과 이성이 무시되는 새로운 형태의 정치상이 펼쳐지니 당혹스러워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정치 세력과 맞닥뜨려 있는 겁니다.”
 
  ― 여당이 원 구성 관행을 깰 거라곤 생각을 못 하셨지요.
 
  “제가 요즘 혼자 폭음(暴飮)을 자주 했습니다. 하도 분해서요.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전 제가 속한 이 정당이 대한민국을 이만큼 견인해왔다는 최소한의 자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주사파 NL 세력들이 우리를 농단하는 데 제 자존감이 상했어요. 대체 그들이 대한민국 발전에 무슨 기여를 했습니까?”
 
  그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우리도 총선에서 42% 득표했습니다. 여당과 8% 차이밖에 안 나요. 어떻게 이렇게 전대미문(前代未聞)의 독선과 독재와 독주를 독식과 함께할 수 있습니까. 왜 나라를 자기네 마음대로 끌고 가려고 합니까. 이걸 저보고 어떻게 감당하란 겁니까. 기댈 언덕이 국민밖에 없어요.”
 
  그는 위기의식에 시달리는 것 같았다.
 
  “지금 삼권이 다 장악된 거 아니에요? 입법・사법・행정 다 장악됐고, 언론도 장악됐습니다. 시민단체 장악됐고, 지방자치단체, 지방의회까지 사회 어느 분야도 이 정권과 궤를 같이하는 사람들로 장악되지 않은 분야가 없어요. 결국은 제1야당밖에 없다, 비상한 각오를 다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리더십은 차용된 리더십
 
2014년 5월 27일 김종필(가운데) 전 자민련 총재와 정진석 당시 새누리당 충남지사 후보가 만나는 모습. 오른쪽은 성완종 새누리당 의원이다. 사진=조선DB
  ― 현 정권을 독재라 보시네요.
 
  “그 사람들은 지금 죄의식이나 문제의식이 없습니다. 왜 저렇게 서두르고 조급하고 폭주기관차처럼 질주를 마다하지 않는가,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리더십의 문제입니다. 저는 정치부 기자 할 때부터 리더십을 많이 관찰했습니다. 문재인의 리더십은 과거와 다릅니다. 차용된 리더십입니다. 얹혀 있는 리더십이에요.”
 
  ― 어디에 얹혀 있나요.
 
  “주사파 핵심 세력들에 얹혀 있는 거죠. 실질적으로 문재인 정권의 국정 방향을 잡고, 내부적인 토론 과정을 거쳐서 결과를 생산해내는 핵심 그룹들은 베일에 철저히 가려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 노무현 대통령과 비교했을 땐 어떤가요.
 
  “전혀 달라요. 그야말로 대통령과 비서의 차이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특유의 리더십이 있었어요. 때로는 브레이크도 밟았고, 액셀도 밟았고, 기어 변속도 했어요. 문재인 대통령은 그런 걸 스스로 할 줄 몰라요. 누가 해줘야 되는 겁니다. 국가를 위험하게 경영하고 있어요.”
 
  ― 울산 선거 개입 사건을 보면 청와대가 직접 개입한 정황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그 사건은 다른 게 아니에요. 대통령의 30년 친구를 꼭 당선시키기 위해 청와대가 개입한 겁니다. 그걸 계획하고 실행에 옮길 때 죄의식 같은 게 없었던 겁니다. 이게 불법인지, 탈법인지 판단하지도 않은 거죠. 그런 점에서 최순실 사건과 뭐가 다릅니까. 박근혜 대통령도 최순실 국정농단에 가담한 죄로 재판받고 있는 거 아닙니까.”
 
  ― 현 정권이 독주하는 두 번째 이유는 뭡니까.
 
  “두려움이에요. 그 사람들은 몰이성적, 반민주적 폭거를 자행하고 있는 겁니다. 떳떳하지 못한 데가 있으니까, 두려워서 무리수를 두는 겁니다. 저 사람들도 바보가 아닌데 본인들의 행태가 떳떳하다고 생각할까요? 180석 모든 의원이? 이건 아닌데, 속내가 있을 거라고요. 그럼에도 거기에 동참하는 건 두렵기 때문입니다.”
 
 
  윤석열 찍어 내려는 여당
 
  ― 여당이 법사위 위원장 자리에 그렇게 집착한 것도 두려움 때문일까요.
 
  “대통령의 퇴임 후 안전판을 확보하기 위한 거죠. 그러기 위해선 고위공직자수사처(공수처)를 무사히 출범시키고 눈엣가시 같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제거해야 하거든요. 그 근원에 두려움이 있습니다.”
 
  ― 이번 정권 들어 국회 풍경이 바뀌었습니까.
 
  “여의도 국회의사당이란 게 민주주의의 상징 아닙니까. 여기에서 늘 민주주의, 인권, 정당의 민주화 이런 것을 입에 올린 세력이 지금의 좌파 세력인데, 지금 그들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을 보십시오. 이제 보니 그들은 민주화 세력이 아니고 민주화 세력을 참칭한 세력이 아닙니까.”
 
  ―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요.
 
  “과거 민정당을 거수기라, 입법부가 아닌 통법(通法)부라고 비난하던 그들이 똑같은 일을 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그들의 당내 회의를 보세요 당내 민주화가 있습니까? 투명한 민주적인 절차나 토론 문화가 있어요? 문 대통령과 이해찬 대표가 눈 껌뻑해서 합의하면 그대로 밀어붙이는 거 아닙니까? 그게 과연 민주화 세력의 참모습인지, 참 의아스러워요.”
 
  ― 김두관 의원의 인천국제공항공사 관련 발언이나, 설훈 의원의 언사를 보면 좀 놀랍기도 합니다. 여당 의원들이 이 정권 들어 더 과격한 발언을 하는 등의 모습들도 보입니다.
 
  “민주당 안의 상황 인식을 제대로 하는 사람들, 사리 분별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입을 스스로 닫고 있더라고. 지금 떠드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로 조금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노련한 게 이낙연 의원입니다.”
 
  ― 이낙연 의원은 현안에 말을 아끼지요.
 
  “그런데 지금은 이낙연 의원이 지지도 30%를 달리는 제1 대선주자로서 말을 해야 합니다. 더더욱 당권까지 노리는 사람이라면 책무가 있지요. 왜 현재 이슈에 대해 한마디도 안 하는 겁니까. 정견도 없습니까? 그런데 이 의원은 신중하게 행동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 왜 그렇지요.
 
  “이 정권을 지탱하고 있는 본류(本流)들과 질적 차이가 있는 사람이거든요. 이 의원은 NL이 아니거든요. 자기 편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지. 그런 점에선 상당히 정무적 핸디캡이 있지요.
 
  노무현·문재인 대통령은 NL은 아니었지만, 언제든 NL과 협업이 가능한 관계였잖아요. 이 의원은 NL 세력과 협업을 해본 경험이 없어요.”
 
  ― 다음 대통령으로 앉혀도 될지 따져볼 거란 말씀이십니까.
 
  “퇴임 후 안전판으로 이낙연이 적절한지 자문을 하겠지요. 이낙연보다 김경수 지사나 조국 교수가 훨씬 낫다고 보지 않을까요? 심지어 이재명 지사까지도요. 다만 이낙연은 호남 출신 아닙니까. 문재인 정권 입장에선 계륵(鷄肋)이지요.”
 
  ― 함부로 버릴 수 없는 카드란 말씀이십니까.
 
  “대통령 지지율 50%를 떠받치고 있는 게 호남 아닙니까. 문 대통령이 이 의원을 버리는 순간 지지도가 많이 빠질 겁니다. 호남표는 유랑표가 될 거고요. 김종인 박사가 호남 대책을 강조하는 것도 그것과 관계가 있을 겁니다. 호남표가 유랑표가 될 때 우리가 그 표심을 붙들어야 된다는 거죠.”
 
 
  김종인은 탁월한 메신저
 

  그는 김종인 비대위원장을 ‘김종인 박사’라 칭했다.
 
  “김종인 박사를 가만히 보면 말을 그냥 하지 않습니다. 계산이 있어요.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 얘기도 했잖아요? 사람들이 가십성으로 다뤘는데 뜬금없는 얘기가 아닙니다. 김종인 박사의 측근 그룹이 있어요. 그쪽에선 다음 대선 승리를 위해서는 충청 출신 주자를 세워야 한다는 암시가 담겨 있단 뜻이라고 설명을 하더군요.”
 
  ― 김종인 비대위원장을 신뢰하시는군요.
 
  “그분을 영입한 이유는 검증된 경륜가이기 때문 아닙니까. 황교안 체제로 실패를 톡톡히 맛본 후에 대선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저 정도 무게 나가는 검증된 경륜가여야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비대위원장 자리를 드린 겁니다. 이런저런 평가는 아직 이르다고 보지만 메신저로선 탁월한 능력이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여론전밖엔 별로 기댈 데가 없어요. 당 지도부가 메신저 기능을 잘 수행해야 되는데 그 부분에선, 황교안 대표보다 훨씬 탁월해요.”
 
  ― 통합당은 지난 총선을 포함해 네 번의 선거에서 내리 졌습니다. 패인(敗因) 분석을 끝냈습니까.
 
  “우리가 4연패를 한 패인은 분열해서이고, 그들은 결속했습니다. 좌파 진영은 질서가 있는 것 같아요. 과거 운동권 시절부터 그렇게 훈련받아서 그런 건진 몰라도 우리처럼 중구난방식이 아니에요. 우리는 개개인이 너무 잘났어. 좌파들은 목표를 향한 응집력과 결속력이 우리보다 훨씬 강한 거예요.”
 
  ― 결속력 외에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요.
 
  “확실한 대선주자가 없지 않습니까. 그게 굉장히 큽니다. 구심점이 없으니까요. 확실한 대선주자가 있으면 그 정당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지요. 당분간 대선주자를 세울 때까진 집단지성으로 당을 꾸려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통합당 의원 전원이 ‘올 코트 프레싱’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올 코트 프레싱(all court pressing)’은 농구의 전술 용어다. 수비, 공격 할 것 없이 상대 팀을 향해 전원이 압박을 펼친다는 뜻이다. 전세는 불리한데 시간은 없을 때 쓰는 전략이다. 통합당의 현 상황에 퍽 잘 맞는 용어다.
 
  ― 통합당은 이제 ‘영남 강남당’ ‘영남 자민련’이 된 거 아니냐는 말도 있지요.
 
  “모욕적인 얘기일 수 있는데, 그런 말이 나올 정도로 우리의 현주소가 옹색합니다. 제대로 된 대의기관의 역할을 하려면 탈(脫)영남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당의 절대다수가 영남 출신이기 때문에 영남 출신 의원들의 의견이 늘 중심에 있기 쉬워요. 외연을 확장하고 혁신적인 방향으로 스피디(speedy)하게 자세 전환을 하는 데 제동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 영남권 의원이 많은데 어떻게 탈영남화를 합니까.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통합당의 공리(公理)입니다. 영남권 의원들도 잘 알고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2022년 대선은 비영남 중부권 후보를 세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한민국이 너무 오래 영남 중심이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빼고는 전부 영남이었잖아요. 김 대통령도 그나마 충청이 아니었으면 안 됐지요. ‘충청+호남’으로 당선된 거 아닙니까.”
 
  ― ‘고향 친구 윤석열을 지키겠다’고 하셨는데요. 친하십니까.
 
  “친하지 않습니다. 한두 번 스치듯 만났을 뿐이에요. 윤 총장은 저와 1960년생, 79학번 동갑내기입니다.
 
  윤 총장 부친이 윤기중 전 연세대 통계학과 교수라고 훌륭한 분인데, 그분이 공주농고 14회 졸업생입니다. 저와는 공주라는 공통분모가 있는 거죠. 이번에 선거운동할 때 이렇게 외쳤어요. ‘조국이 정의롭고 공정하면 1번, 윤석열이 공정하고 정의로우면 2번 찍으십시오.’ 크게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그는 명재(明齋) 윤증(尹拯)의 얘기를 꺼냈다.
 
  “윤 총장의 선조가 명재 윤증인데, 엄청 꼿꼿한 선비였습니다. 송시열과 대립했던 소론의 거두예요. 임금이 18번 벼슬을 내리는데 끝까지 고사했어요. ‘백의정승’이라는 별칭이 붙었습니다. 아주 꼬장꼬장하면서도 실사구시적인 주장을 했어요. 중도적인 인물이고. 윤 총장이 그 피를 고스란히 받은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매력적인 친구예요.”
 
  ― 어떤 매력입니까.
 
  “달변가이고, 잡학인지 머리에 든 것도 많은 것 같고. 상당히 고집도 있는 거 같고요. 남자가 남자를 보는 눈이 또 있거든요. 괜찮게 봤습니다.”
 
  ― 윤 총장도 탈영남 중부권 후보로 고려되고 있습니까.
 
  “정무적 평가는 아직이에요. 우파의 대선주자감이 될는지 안 될는지를 판단하기는 이릅니다. 좀 더 지켜봐야 해요.”
 
 
  “정진석의 정치는 뭘까 자문”
 
1977년 박정희 대통령이 충남 지역을 순시하는 모습. 오른쪽이 정석모 당시 충남도지사. 정진석 의원의 부친이다. 사진=조선DB
  정 의원이 언급하진 않았지만, 그도 명재와 혈연관계다. 모친이 명재의 직계 후손이다.
 
  ― 직접 대선에 나갈 생각은 없으세요.
 
  “정치한 지 이제 20년입니다. 정진석의 정치는 뭘까 수시로 자문을 해요. 아버지 6선에 아들이 5선이면, 대한민국 국록(國祿)을 얼마나 많이 먹은 집안입니까. 저에게 왜 공적 사명감이 없겠습니까. 나라 장래에 대한 근심이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제가 뭐가 돼서 지위가 오르는 걸 꿈꾸기보다는 ‘나라가 정상궤도로 돌아가야 한다’, 이게 제 목표의 알파와 오메가입니다.”
 
  정 의원의 부친 정석모(鄭石謨) 의원은 6선 의원에 충청남도지사, 내무부 장관을 지냈다. 정 의원은 ‘2022년 대선 승리’를 여러 번 강조했다.
 
  “전 현 상황에선 국회부의장, 국회의장, 더 높은 자리를 추구하는 건 아무 의미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로지 제 머릿속에는 ‘2022년 정권 탈환’, 이 일념밖에 없어요. 2년 뒤 3월 9일에 정권만 탈환해올 수 있으면 전 국회 문지기도 할 수 있고, 뭐든 할 수 있어요. 국회부의장 따위는 제 관심 영역에서 아주 미미한 존재란 말입니다.”
 
  정 의원의 집무실 벽엔 휘호가 걸려 있다. ‘소이부답(笑而不答)’. 그저 웃을 뿐 답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JP(김종필)의 작품이다.
 
  ― JP의 최측근이셨지요. 돌아가신 지 벌써 2년입니다. 돌아보면 JP의 정치는 뭐였나요.
 
  “그분은 정치에서 완승을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여백의 정치였어요. 완승을 목표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폭주기관차 같은 정치는 시도한 적도 없었어요. 저는 JP를 평가할 때 ‘현대사의 산업화・민주화에 공히 기여했다’고 말합니다. 그럼 사람들이 되물어요. ‘민주화에 어떤 기여를 했나.’”
 
  ― 뭐라고 답하십니까.
 
  “헌정사 최초로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룩하는 데 결정력을 발휘했어요. DJP(김대중+김종필)연합으로 수평적 정권교체 첫 사례를 남겼고, 이후 자연스럽게 정권교체가 이뤄져 온 거 아닙니까? DJP연합 때문에 JP가 보수 세력에게 비난도 많이 받았잖아요. JP는 DJ를 빨갱이라고 보지 않았어요. 제겐 넌지시 이런 말을 했어요. ‘이거 봐, 그래도 호남 사람들 한 풀어줬잖아.’”
 
 
  국회의장 내준 건 박근혜 청와대 결정
 
2012년 2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취임식을 마친 뒤 이명박 전 대통령 내외를 환송하기 위해 함께 연단에서 내려오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 사이에 정진석 의원이 보인다. 사진=뉴시스
  정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인연이 깊다. 선친끼리의 인연까지 갈 것도 없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 청와대 정무수석을 맡아, 이명박-박근혜의 전격 화해를 막후에서 주도했다. 탄핵 정국에서도 이정현 당시 당대표와 함께 원내대표로서 최중심에 있었다.
 
  ― 박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게 정 의원 때문이라는 얘기들이 한때 있었지요.
 
  “탄핵 국면에서 제가 혼자 결정한 건 하나도 없습니다. 우상호 원내대표와 20대 국회 원 구성 협상할 때 1석 많은 1당이라고 국회의장을 달라는 겁니다. 죽어도 양보 못 하겠대요. 어떻게 할지 박 대통령한테 물었어요. ‘법사위를 지키세요’ 그랬어요. 그렇게 해서 의장 자리 내주고 법사위 위원장을 우리가 맡은 겁니다.”
 
  ― 야당 추천 특검을 받아들인 것 같고도 말이 많았지요.
 
  “그걸 저 혼자 어떻게 결정합니까. 청와대 민정수석과 계속 소통을 했어요. 야당 추천 특검을 계속 요구하는데 계속 버텼어요. 청와대에서 메시지가 왔어요. ‘받으세요’ 그래서 받은 거예요. 그 중요한 걸 저 혼자 어떻게 결정합니까. 김도읍 의원이 증인입니다. 당시 원내수석부대표 자리에서 다 지켜봤으니까요.”
 
  ― 국회 탄핵 표결 직전에 박 대통령을 만나셨지요.
 
  “12월 9일에 탄핵 표결이 있었고, 12월 6일에 만났습니다. 이정현 대표랑 둘이 청와대 위민관으로 갔어요. 대통령은 5분 늦게 도착하셨습니다. 서류를 잔뜩 들고 오셨어요. 앉자마자 억울하단 얘기를 하셨어요. ‘내가 남자를 들여서 청와대에서 연애를 했다, 성형수술을 했다, 굿을 했다, 록히드마틴과 뒷거래를 했다, 별 소문이 다 있는데 다 사실이 아닙니다’라고.”
 
  ― 뭐라고 답하셨어요.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모든 국민이 가짜뉴스를 다 믿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곤 이렇게 말했어요. ‘제 정무적 판단으로는 9일 탄핵 표결이 본회의장에서 이뤄질 경우에 가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그러자 하신 답을 지금도 정확히 기억해요. ‘저도 잘 압니다. 제가 가야 할 길을 담담히 가겠습니다.’”
 
  ― 그랬군요.
 
  “그게 박 대통령과 마지막 만남이었어요. 동석했던 허원제 정무수석이 나가고, 이정현 대표가 나갔어요. 제가 맨 마지막으로 나가는데 물끄러미 바라보시더군요. 악수를 청하진 않으시더라고요. 순간 마음이 찡했습니다. 결례인 줄 알면서 제가 악수를 청했어요. ‘대통령님. 힘내시길 바랍니다’ 하니 손을 잡아주시더라고요.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풀어줘라’
 
  지난 7월 10일 서울고등법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및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상납 혐의 관련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0년, 벌금 180억원을 선고했다. 지금 박 전 대통령의 나이가 68세니, 선고대로라면 88세에야 출소할 수 있다. 정 의원은 조금 주저하다, 얼마 전 여권 인사와 나눈 대화를 들려줬다.
 
  “이런 얘기 해도 될지…. 이 정권의 소위 힘 있는 몇 사람과 만날 기회가 최근에 있었습니다. 제가 그랬어요. ‘풀어줘라’ 간곡히 부탁했어요. ‘사면복권이 어려우면 8·15 때 형집행정지라도 해줘라.’ 전임 대통령이니까 봐달라는 게 아닙니다. 70세 할머니가 3년 넘게 영어(囹圄)의 몸으로 수감생활했으면 충분히 죗값 치른 거 아닙니까.”
 
  ― 그쪽에선 뭐라 답하던가요.
 
  “작년까지만 해도 우리 쪽 인사들이 여권 핵심부에 박 전 대통령을 사면해달라는 부탁을 했는데, 요즘엔 그런 얘기 하는 사람이 없다더군요. 선거 끝나고 다들 체념을 한 건지.”
 
  정 의원은 인터뷰 내내 조금은 초조해 보였다. “다음 대선에도 우파가 패배하면 대한민국은 멸절(滅絶)의 길로 간다”고 말하다가도, 비관을 애써 떨치려는 듯 “법사위는 뺏겼지만, 당이 단일대오를 이룬 소득이 있다”고도 했다. 당시엔 무심히 지켜봤던 어떤 결정이, 대변화의 물꼬였음이 훗날 드러날 때가 가끔 있다. 기득권을 내려놓은 그의 결심도 그런 전철을 밟을 수 있을까. 분명한 건 대한민국의 미래는 싫든 좋든 미래통합당의 미래와 연동되어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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