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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인터뷰

前 광주지검장 김회재 변호사가 말하는 ‘검찰개혁’과 ‘수사 秘話’

“검찰 개혁 핵심은 정치적 독립성과 중립성, 과도한 권한 행사 억제”

글 : 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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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와대에서 경찰 대표와 ‘檢·警 수사권 조정’ 관련해 토론 벌여
⊙ 연예인 병역특례 비리,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 연예인 性매매 수사
⊙ “여수 경제 활성화 방안으로 MICE 산업 등 고부가가치 산업 육성해야”
⊙ “여수의 기독교·불교 ‘문화유산’과 충무공의 ‘정신 문화유산’ 발전시켜야”
⊙ “생선 장수 어머니와 돼지 키우며 뒷바라지한 아버지가 지금의 날 만들었다”

金會在
1962년 전남 여수 출생. 순천고, 연세대 법대 졸업 / 서울지검 검사, 법무부 검찰 1과 검사, 순천지청 차장검사, 군산지청장, 광주지검장, 의정부지검장 역임 / 現 법무법인 ‘정의와사랑’ 대표 변호사
사진=법무법인 정의와사랑 제공
  ‘검(檢)・경(警) 수사권 조정을 최초로 입안한 주역’ ‘가수 싸이를 재(再)입대하게 한 검사’ ‘검사장급 이상 검찰 간부 중 유일한 사병 복무자(2016년 기준)’.
 
  광주지검장과 의정부지검장을 지낸 김회재(金會在·58) 변호사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2018년 검찰에서 퇴임한 김회재 변호사는 최근 두 가지 포부를 갖고 있다.
 
  하나는 ‘사랑을 기반으로 법(法) 적용을 해 정의를 구현하겠다’는 의지다. 법과 정의는 다소 딱딱한 인상을 주는 게 사실이다. 그 전제 조건이 사랑이라는 것 역시 어떤 측면에서는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김 변호사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인권 확립은 물론, 올바른 법치 구현도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러한 신념 때문인지 법무법인 이름도 ‘정의와 사랑’이라고 지었다.
 
  또 다른 하나는 고향 여수에 대한 관심이다. ‘남도(南道)의 관문’인 여수의 지역 살림을 살펴 동향인(同鄕人)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졌으면 하는 소망을 갖고 있다. 여수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안 마련에 나서며, 시민과의 소통의 폭도 좀 더 넓히고 있다.
 
  김회재 변호사를 만나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검찰개혁과 과거 수사 비화(秘話), 여수가 나아가야 할 방향 등에 대해 들어봤다.
 
 
  노무현 정권 시절, 송광수 총장 지시로 ‘검·경 수사권 조정’ 입안
 
법무법인 정의와사랑 직원들과 함께.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김회재 변호사.
  ― 법과 정의(正義) 그리고 사랑, 이 3가지가 공존할 수 있는 개념이라고 봅니까.
 
  “맨 처음 검사 생활을 시작할 때 품었던 가치관이 ‘정의’와 ‘사랑’이에요. 다들 정의와 사랑은 서로 굉장히 멀게 생각하잖아요. 개념이 완전 다른 걸로 생각을 하는데. 실은 정의와 사랑은 같이 가는 겁니다. 사랑 없는 정의는 잔인할 수 있고, 정의 없는 사랑도 말이 안 되는 얘기죠.”
 
  ― 육법전서(六法全書)에 ‘사랑’이라는 말이 들어 있나요.
 
  “거의 없죠. 법 이념의 목적이 정의를 세우는 거지만, 그 안에는 사랑이 들어가 있죠. 형법에 ‘살인자를 처벌한다’고 한다면 거기엔 ‘피해자를 사랑한다’는 전제도 깔려 있는 겁니다. 검사란 사랑과 정의라는 두 가치를 늘 생각해야 합니다. 검찰 로고에도 정의와 사랑이란 개념이 들어 있어요. 원래 다섯 가지 덕목(정의, 진실, 인권, 공정, 청렴)을 형상화했지만, 이를 두 개로 요약하면 정의와 사랑입니다. 법정에 가면 기분이 아주 좋아요. 재판장이 ‘정의와사랑에서는 누가 나왔습니까’ 하면 분위기가 딱 제압되거든요.(웃음)”
 
  ― 최근 화두가 된 검찰개혁을 어떻게 봅니까. 사실 검찰은 매 정권 나름 자구(自救) 노력을 기울이면서 개혁을 해왔다고 생각하는데, 왜 검찰만 개혁의 대상으로 비칩니까.
 
  “검찰의 힘이 강하기 때문이죠. 힘은 강한데 ‘그게 제대로 작동을 하느냐’ 이 부분에 대한 의구심을 국민이 표현하는 거죠. 지금 제기되는 검찰개혁의 핵심은 ‘수사권 조정’하고 ‘공수처 설치’ 두 가지인데, 수사권 조정은 옛날에 제가 총괄 책임자였어요.”
 
  ― 그게 언젭니까.
 
  “노무현 정부 초창기, 송광수 검찰총장 시절인 2004년입니다. 그때 서울동부지검 부(副)부장 검사였는데, 부장, 차장검사 다 제치고 송광수 총장이 수사권 조정 관련 업무를 저한테 직접 맡겼습니다. 그때 공청회도 하고 경찰과 협상도 하고, 국회와 청와대에 들어가 설명도 했죠. 문재인 대통령이 그때 민정수석이었는데, 그 방에서 경찰 대표와 토론도 했습니다. 근데 지금의 검찰개혁은 그때하고는 상황이 좀 달라졌어요.”
 
  ― 어떻게요.
 
  “그때는 주로 ‘검・경 사이의 권한 배분을 어떻게 할 거냐’는 시각으로 접근했습니다. 수사권을 검찰이 다 갖고 있으니까 경찰 입장에서는 ‘우리에게도 수사권을 달라’ 이게 핵심이었죠. 하지만 제대로 진행이 안 됐습니다.”
 
  ― 왜 안 됐습니까.
 
  “국민 여론도 그렇고, 검사의 99% 이상이 ‘수사권을 경찰에 줘서는 안 된다. 믿을 수 없다’고 한 거죠. ‘검찰이 수사권을, 통제를 안 하는 상태에서 경찰에 줬을 때 남용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인권 보호도 안 되고 진실 추구에도 도움이 될 수 없다’는 게 검사들의 논리였죠.”
 
 
  검사들도 ‘검찰개혁’ 필요성에 공감
 
김 변호사가 검찰을 떠날 당시, 선·후배들이 남긴 댓글을 모아 액자로 만들었다. 김 변호사의 넉넉하고 자상한 인품을 호평하는 글이 많다.
  ― ‘버닝썬 사건’을 보니 그런 우려가 전혀 근거 없지는 않은 거 같습니다.
 
  “그거하고는 다르죠. 예를 들면 검찰이 잘못 처리한 사건을 놓고 얘기하면 똑같은 논리가 됩니다. 그래서 단편적인 특정 사건을 놓고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상정한 뒤, 전체에 대한 개혁을 논의하면 안 되죠. 사실 판사도 판결을 잘못할 수 있거든요. 마찬가지로 경찰도 검찰도 잘못 다루는 사건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 지금 논의되는 검찰개혁과 2004년의 상황이 다르다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십시오.
 
  “2004년에는 ‘검찰은 권력의 시녀’라는 통념을 바꿔야 한다는 측면에서 접근했어요. ‘권력에 대해선 꼼짝 못하면서 힘없는 사람들에게 더 잔인하게 하는 것 아니냐’ 이런 문제가 제기돼 검찰개혁 얘기가 나온 거죠. 한마디로 사랑이 결여돼 있었다는 얘깁니다.”
 
  ― 조국 전 법무장관 일가를 겨냥한 검찰의 수사는 어떤 시각으로 봐야 합니까.
 
  “조국 장관을 임명하고 안 하고는 대통령이 판단하는 겁니다. ‘왜 그 권한까지 수사를 통해 (검찰이) 개입하려 하느냐’ 이런 의구심이 국민 사이에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힘이 강한 검찰의 권한을 일부 분리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 일환으로 공수처 얘기도 나온 거고요.”
 
  ― 지금 야당은 공수처에 대해 ‘민변 등 특정 성향을 가진 세력들이 장악을 할 수 있다’며 우려를 하던데요.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하고 독립성 부분, 이 부분하고 연결되는 게 인사입니다. 인사 부분을 어떻게 균형을 맞출지가 관건인데, 특정 세력이 공수처를 맡는 건 문제가 있죠.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국회가 찾아야 합니다. 민변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순 없어요. 국회에서 제도를 어떻게 만드느냐가 굉장히 중요하죠. 검찰개혁은 검찰의 정치적 독립성과 중립성, 그리고 과도하게 권한을 행사하는 부분을 억제하는 것, 이 두 가지가 병행돼 이뤄져야 합니다. 2004년보다 훨씬 어려워진 셈이죠.”
 
  ― 그 관점대로라면 ‘윤석열 검찰’은 수사권을 남용하고 있는 거네요.
 
  “최소한 서초동에서 열리는 집회에 모이는 국민은 그렇게 보고 있죠. 사실 수사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광화문 집회 참석자들이 그렇게 볼 수도 있죠. 박근혜 전 대통령 수사할 때 광화문에 갔던 사람들은 그렇게 봤을 겁니다.”
 
  ― 검찰 내부에서는 검찰개혁을 어떻게 봅니까.
 
  “대다수의 검사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들은 ‘검찰은 하늘에서 내려온 게 아니다. 국민이 세워준 기관인데, 위임자(국민)들이 그렇게 얘기하면 우리도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하더라고요. 그러니까 개혁을 해야 하는 거죠. 안 그러면 이 상태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요?”
 
 
  ‘특수 수사’와 ‘일반 형사사건 수사’ 구분해야
 
2004년 부장검사 시절의 김회재 변호사.
  ― 국민의 의견을 수렴한다는 게 쉬운 게 아니지 않습니까. 당장 국회의원들이 생각하는 검찰개혁을 보면 여야 모두 자당(自黨)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측면이 강해 보입니다.
 
  “검찰 수사가 특수 수사만 있는 게 아니고, 일반 형사사건 수사도 있어요. 대부분 국민은 이 일반 형사사건과 관련이 있습니다. 검찰이 1년에 180만 건 정도의 사건을 처리합니다. 180만 건이면 피의자가 아마 250만명 가까이 될 겁니다. 250만명 이외에 참고인까지 합하면 검찰 조사를 받는 일반인이 400만명 가까이 된다고 추산합니다. 지금 논의되는 검찰개혁에서 서민 관련 대목은 실종되고 특수 수사 분야에만 치중돼 있습니다. 검찰개혁을 얘기할 때 특수 수사와 일반 형사사건 수사를 구분해야 국민이 혼선을 겪지 않을 겁니다.”
 
  ― 개혁의 일환으로 검찰은 특수부를 없애고, 법무부는 훈령(訓令)까지 만들었습니다. 특히 ‘허위사실을 기사화했을 시 기자 출입을 금하겠다’는 조항에 대해선 뒷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건 검찰개혁하고는 좀 다른 부분이긴 합니다만, (언론도) 심한 측면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 번 피의사실이 공표돼 명예훼손이 되면 회복이 불가능해요. 나중에 무죄를 받아도 똑같은 크기의 반론(反論) 기사나 정정(訂正) 기사를 내도 그동안 나온 기사 때문에 회복 불능이 돼버리죠. 미국은 명예훼손 부분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굉장히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잖아요.”
 
  ― ‘언론의 자유를 제약한다’는 측면도 있어 보입니다.
 
  “‘국민의 알 권리’라는 측면도 있긴 합니다. 언론이 견제 기능을 못 하도록 만들어 ‘수사 결과만 가지고 써라’ 이런 식으로 하는 것 또한 문제죠. 그 역시 국민이 납득하기 어려울 겁니다. 검찰과 언론이 한발씩 물러나 절충점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 국가보안법(국보법)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합니까.
 
  “잘 몰라요. 제가 공안 전문은 아니라서요.”
 
  ― 공안 검사 출신 몇 사람을 만나보니 국보법을 ‘대한민국 체제의 마지막 보루’라고 하던데 어떻게 봅니까.
 
  “제가 보기엔 그거는 아닌 것 같은데요. 지금 국보법 갖고 처벌을 한 게 몇 개나 있습니까. 현행 형법 체계로 국보법을 충분히 녹여낼 수 있습니다. 국보법엔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잖아요. 과거 민주화운동을 탄압했던 그런 이미지요. 지금 국보법을 얘기할수록 오히려 손해를 본다는 인식이 있죠.”
 
  ― 국보법상 ‘불고지죄’나 ‘찬양고무죄’도 효용성이 없다는 건가요.
 
  “최근 불고지죄로 처벌받은 경우가 있습니까? 저는 (국보법은) 사문화(死文化)된 거나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과거 낙태죄랑 비슷하게 된 거죠. 오히려 적극적인 이적(利敵) 행위를 처벌하는 게 더 중요해요. 찬양고무죄 역시 이젠 새로운 의미로 정립이 돼야 합니다. 법이라는 건 어떻게 보면 컨센서스(consensus·합의)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국보법에도 변화된 국민들의 시각이 반영돼야 한다고 봅니다. (국보법) 비전문가 입장에서 해본 얘깁니다.”
 
 
  ‘강원랜드 수사 외압’ 폭로한 A검사와의 인연
 
  ― 의정부지검장 시절인 2018년, 의정부지검 소속 A검사가 강원랜드 사건과 관련해 ‘검찰 상층부의 외압(外壓)이 있었다’고 폭로한 이른바 ‘내부고발’이 있었던 걸로 압니다.
 
  “그 직전에 A검사가 춘천지검에서 강원랜드 수사를 하다가 의정부로 전입을 왔어요. 그래서 외압 이런 것에 대해 저는 사실 잘 몰라요. 다만 A검사에 대해선 잘 압니다. 안산지청장 할 때 A검사랑 같이 일했는데, 수사 잘하고 열정도 있어 개인적으로 높이 평가했죠. A검사가 우리 의정부로 발령이 났기에 좋아했어요. 일 잘하는 검사가 왔으니까요.”
 
  ― A검사가 ‘외압에 대해 기자회견 하겠다’고 자청해 의정부지검 차원에서 징계가 검토됐죠.
 
  “A검사가 ‘외압에 대해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저한테 보고는 했어요. 제가 사실관계를 확인해봤죠. 어떤 내용인지, 확인이 된 사안인지를 면밀히 따져봤습니다. 검찰총장이 거명된 사안인데, 확인되지 않은 추측만 가지고 기자회견 하는 건 있을 수가 없죠. 점검을 했더니 사실 확인이 안 돼 있었어요. (A검사) 본인의 추측이 담겼던 거죠. 제가 A검사에게 ‘추측만으로 기자회견 하는 건 옳지 않다. 사실관계 확인이 됐을 때 기자회견을 할 건지 여부를 다시 보고하라’고 지시했죠. 지금은 좀 바뀌었는데 당시 검사가 기자회견을 하려면, 소속 기관장의 승인을 받도록 돼 있었어요. A검사는 저한테 (기자회견) 승인을 받으러 왔는데 반려를 한 거죠.”
 
  ― A검사가 1차 보고를 했을 때에는 외압의 실체가 불분명했던 거네요.
 
  “제가 판단하기에는 사실 확인이 안 돼 있었어요. 그런데 이 친구가 제 지시를 어기고 기자회견을 한 거예요. 당연히 제 입장에서는 원칙대로 가야죠. 의정부지검장을 마치고 나올 무렵 A검사에 대한 징계 요청을 하고 나왔어요. 그 후에는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A검사한테도 ‘이렇게(징계 요청) 한 거에 대해 섭섭해하지 마라. 네가 규정을 어겼기 때문에 절차에 따라 한 것’이라고 얘기해줬어요.”
 
  ― 본인이 납득을 하던가요.
 
  “납득하죠.(웃음)”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를 기사회생시킨 주역
 
  ― 과거 수사에 대해 얘기 좀 해보겠습니다. 가수 싸이를 재입대시킨 주역이라고 들었습니다. 병역특례 수사 과정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제천지청장을 하다가 서울 동부지검 형사6부로 갔어요. 동부지검 형사6부는 특수・공안・기획, 이 세 가지를 전담했어요. 제가 가기 직전에 동부지검 형사6부가 제이유(JU) 사건 수사를 했었어요.”
 
  ― 주수도?
 
  “네. 주수도 사건이요. 그런데 언론에서 ‘제이유 수사가 잘못됐다’면서 검찰을 난타(亂打)해 동부지검 형사6부 검사들이 전보(轉補)되는 등 문책을 당했어요. 그 직후 제가 동부지검 형사6부장으로 발령 난 겁니다. 갔는데, 완전히 다국적군 비슷하게 구성이 돼 있더라고요. 특수 수사하고는 관계없는 검사들로 구성된 거죠. 한마디로 ‘일 벌이지 말고 조용히 있어라’ 뭐 이런 분위기였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가만히 있는 스타일은 또 아니거든요. 형사6부와 동부지검을 살려내려면 진짜 제대로 된 사건을 수사해 이미지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사건 수사를 할까 고민하다가 발굴한 게 병역특례 비리였죠.”
 
  ― 어떤 계기로 발굴한 겁니까.
 
  “친구로부터 ‘돈 있는 사람들이 병역특례 제도를 악용(惡用)해 자녀를 병역특례 사업체에 넣어 복무하지도 않고 놀게 한다더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병역특례 제도 자체에 허점이 있어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자기 회사에 자녀를 특례로 들여보내 놓고, 일은 안 시키고 놀게 하고…. 병역 면탈(免脫)이죠. 형사6부 검사들을 불러놓고 ‘우리 특수 수사 한번 하자’고 제안했죠. 검사들은 황당해하더라고요. 대검에서 첩보가 온 것도 아니고, 고발장이 들어온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 일종의 취재를 통해 수사에 돌입한 거네요.
 
  “그런 셈이죠. 그런데 검사들이 특수 수사를 잘하는 친구들은 아니었어요. 주로 형사사건 수사하다가 온 검사들이었죠. 그런 상황에서 병역특례 제도를 수사하자고 하니 당황해했죠. ‘방법은 내가 찾을 테니깐 한번 해보자’고 독려했습니다. 맨 먼저 병무청에 연락해 실태부터 파악했죠. 어떤 산업체가 병역특례 산업체로 지정이 돼 있는지, 거기에 누가 복무하고 있는지를 조사해 들어갔습니다. 최근 5년 동안 누가 병역특례 산업체에 복무했는지도 조사하는 등 기초 작업을 해보니 우리가 생각했던 대로 나오더라고요.”
 
  ― 그 과정에서 싸이가 적발됐군요.
 
  “그래서 아예 병역특례 산업체를 전수조사했어요. 싸이는 물론 연예인 몇 명이 나오더라고요. 처벌할 수 있는 이들은 처벌하고, 시효(時效)가 지난 사람들은 병무청에 통보해 재입대하게 조치를 취했죠. 굉장히 성공적이었어요. 그거 수사할 때 대검으로부터 특수활동비를 많이 받았어요. (웃음) 장장 6개월간 조사를 했으니까요.”
 
 
  “사랑 강조하는 法 적용 필요”
 
2009년 9월 14일 광주지검 순천지청 대회의실에서 김회재 당시 차장검사가 父女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가든 파이브’라고 불리는 동남권 유통단지 입찰비리 수사도 그즈음으로 기억합니다.
 
  “그것도 맨땅에 헤딩한 수사였죠. 그 수사도 먼저 기초 자료 수집을 통해 해나갔습니다. 당시 입찰이 턴키(turn-key·일괄수주) 방식이었는데, 입찰 심사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어디엔 점수를 터무니없이 낮게 주면서, 특정 기관에는 지나치게 높은 점수를 주더라고요. 의심이 가는 기관과 업체에 대한 계좌추적, 통화분석을 해보니 건설회사하고 연결돼 있었어요. 그 두 건(병역특례업체 비리 수사, 동남권 유통단지 입찰비리 수사)으로 동부지검 형사6부를 완전히 살려냈죠. 그다음에는 검사들이 서로 오려고 난리였어요.(웃음)”
 
  ― 2009년 순천지청 근무 시절 ‘부녀(父女)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도 수사했는데, 그것도 화제가 된 사건이었습니다.
 
  “처음엔 딸이 ‘이웃에 사는 아저씨가 자신을 강간했다’고 고소를 했어요. 살인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망이 좁혀오자 옆집 아저씨를 살인범으로 몰아가기 위해 ‘아저씨가 청산가리를 탄 막걸리로 엄마를 살해했다’는 소설을 쓰려고 한 거죠. 조사를 하다 보니, 딸 진술이 안 맞아 추궁했더니 무고(誣告)라고 자백하더군요. 그 과정에서 ‘아버지와 공모해 엄마를 살해했다’는 게 드러났습니다. 아버지와의 불륜 관계를 들킬까 봐 딸과 아버지가 살인을 공모한 거였죠.”
 
  ― 범행은 아버지가 주도한 건가요, 아니면 딸이 한 건가요.
 
  “아버지가 딸을 조종할 수 있다고 보진 않았어요. 그런 카리스마가 아버지에게는 없었어요. 오히려 딸이 주도한 측면이 커 보였죠. 어쨌든 우린 두 사람을 공범이라고 봤죠. 1심 재판부는 두 사람에게 무죄를 선고했는데, 2심과 대법원에서는 유죄를 인정해 형(刑)이 확정됐죠.”
 
  ― 좀처럼 보기 힘든 사건인데, 피의자들을 만나보니깐 어떻든가요.
 
  “오래돼서 가물가물하긴 한데, 아버지하고 딸이 아주 왜소했던 게 기억나요.”
 
  ― 2013년 안산지청장 시절엔 ‘연예인 성매매 사건’도 수사했죠.
 
  “그거는 제가 가기 전부터 내사(內査)를 하고 있던 사건이었어요.”
 
  ― 성매매의 대가성을 입증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뭐였습니까.
 
  “성매수자와 공급자 사이를 연결해준 알선책이 적발된 거죠. 보통 성매매 사건에는 알선책이 존재합니다. 알선책이 자백하면 대가성이 인정되므로 성매매 입증이 가능합니다.”
 
  ― 민생 관련해 기억에 남는 사건은 무엇이 있었습니까.
 
  “범죄 사실은 작은데 처벌을 무겁게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장발장처럼 빵 한 조각 훔쳤는데, 절도로 징역 3년을 받는 그런 경우죠. 그럴 때 검사로서 굉장히 갈등이 생겨요. 그때마다 저는 사랑을 강조하는 법 적용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 그 사랑은 ‘온정주의’하곤 다른 개념인 거죠.
 
  “다르죠. 제가 예를 하나 들어볼게요. 어느 가장(家長)이 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내, 아내와 딸 하나를 잃었어요. ‘교통사고 처리 특례법’에 따라 과실로, 이 가장은 재판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합니다. 여기서 고민이 생기는 거죠. 아내와 딸이 죽었는데 그거 때문에 가장이 재판을 받는다면 이게 과연 옳은 것일까요. 그게 정의일까요.”
 
 
  “MICE 산업 육성이 여수에 절실”
 
  ― 여수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2012년 엑스포 당시 경기(景氣)가 반짝 살았다가 지금은 사그라들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여수 경제를 활성화할 구체적인 방안은 뭡니까.
 
  “엑스포를 기점으로 여수에 관광객이 최다 1400만명까지 왔다고 합니다. 문제는 그들이 여수에 와 얼마나, 어떻게 돈을 쓰고 갈 것이냐 하는 거죠. 그러려면 여수 시민을 위한 ‘새로운 먹거리 창출’이 필요합니다. 지금 여수와 남해를 연결하는 해저터널을 추진하고 있는데, 완공이 되면 영호남의 연결이라는 측면에서도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제가 아쉬운 건 해양관광 분야예요. 이건 아직 개발이 안 됐거든요. 요트 같은 해양 스포츠 단지가 건설돼야 하는데, 미진합니다. 요트로 할 수 있는 아이템이 무궁무진하거든요. 그런 게 고부가가치 산업이잖아요. 여수 와서 ‘술 한잔 먹고 가는’ 식의 관광은 이제 의미가 없습니다.”
 
  ― 광양만이 주목을 받고 있던데요.
 
  “광양만이 어마어마한 곳입니다. 거기가 바지락, 꼬막, 새조개 등의 보고(寶庫)거든요. 우리 집도 광양만 근처라서 잘 압니다. 여수 시민들은 해양자원의 보고인 광양만을 포기하고 현대자동차 들어오는 데에 합의해줬어요. 고용 창출 측면에서 대승적으로 허락한 거죠. 근데 그게 불발되는 바람에 고용 창출이 우리가 기대했던 수준엔 못 미치고 있죠. 광양만 매립에 따른 활용 방안을 생각해봐야죠. 기존의 화학단지를 계속 늘릴지, 아니면 그곳에 AI(인공지능) 산업을 육성할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 그렇게 고민한 결과는 뭡니까.
 
  “MICE 산업(부가가치가 큰 전시·컨벤션 사업)이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해저 전시산업이라고 할까요. 남해안에서 여수는 영호남의 중앙입니다. 남해안 벨트의 중심지가 여수죠. 그런 여수에 MICE 사업을 유치하면 좋을 거 같습니다. 남해안 벨트의 서쪽 끝인 목포에서도 오고, 동쪽 끝인 부산에서도 올 수 있고요. 이게 활성화되면 그간 죽어 있던 여수 수산업도 활기를 띨 수 있을 겁니다. 또한 여수 인근 고흥에는 외나로도 발사대가 있어 우주 항공 분야로 특화돼 있는데, 이런 아이템도 여수에 접목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여수의 아이템만을 활용해야 한다’는 식의 고정관념에서 탈피해야죠.”
 
 
  여수가 갖고 있는 ‘정신유산’ 발전시켜야
 
  ― 여수 하면 또 충무공 이순신 관련 유적으로 유명하지 않습니까.
 
  “그렇죠. 아시다시피 여수 인근엔 송광사, 선암사 등 유명 사찰이 있습니다. 또 ‘사랑의 원자탄’으로 유명한 고(故) 손양원 목사의 순교기념관이 여수에 있어요. 불교, 기독교 문화유산에 충무공 관련 유적까지 하나로 묶으면 새로운 개념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런 건 일종의 문화유산이자 정신유산이거든요. 여수가 갖고 있는 정신유산을 계승·발전시켜야 후대에 그들과 버금하는 훌륭한 인재를 배출할 수 있을 겁니다. ‘케이블카를 설치한다’ 이런 개념으로 관광산업에 접근해선 안 된다고 봅니다. 그걸 뛰어넘는 획기적인 발상이 우리 여수에 절실합니다.”
 
  ― 요새는 ‘스마트 산단(産團)’이라고 해서 노후화한 시설을 개선하는 식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환경친화적으로 다가간다고 하던데요. 화학단지가 많은 여수에도 필요한 사업 아닐까요.
 
  “맞습니다. 이제는 대기업도 환경을 안 갖춘 채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안 해요. 비용이 들더라도 제대로 된 환경을 갖추고 지역 주민과 상생(相生)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죠. 4차 산업혁명시대 에 기업과 시민이 함께 손을 잡고, 여수만의 특화된 MICE 산업 등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한다면 고용창출은 물론 여수 시민의 ‘삶의 질’ 개선에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 제가 재밌는 통계를 봤습니다. 순천, 광양, 여수 공무원들의 근무 자세에 점수를 매겼더니 여수가 3위였어요. 여수 시민들이 공무원들에 불만이 크던데, 그 이유는 뭡니까.
 
  “정치적 불안정 때문인 것 같습니다. 여수시장이 그간 단임으로 임기가 끝나는 바람에 행정의 연속성이 끊겼거든요. 공무원들은 그 특성상 시장(市長)을 바라보며 일할 수밖에 없잖아요. 인사권 때문이기도 하죠. 그러니까 공무원들도 불안해할 수 있습니다.”
 
  ― 연임이라는 건 시장의 힘만으론 안 되지 않습니까. 시민의 지지가 뒷받침돼야 하는데요.
 
  “결국 시장과 공무원이 혼연일체가 돼야죠. 정치적 안정을 위해선 1차적으로 시청 통합 청사를 건립하는 게 필요해 보입니다. 청사가 여러 군데로 나뉘어 있다 보니 공무원의 업무 효율성이 낮습니다. 청사 분산에 따른 행정의 사각지대도 분명 존재할 테고요.”
 
 
  ‘생선 장수’ 했던 어머니의 애끓는 기도
 
모친과 40여 년간 생선 장사를 같이했던 상인과 함께.
  ― 젊은 시절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학창 시절부터 검사를 꿈꿨습니까.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저는 목회자가 되고 싶었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 학력고사를 치르고 목사가 되려고 기도원에 들어갔어요. 일주일간 금식 기도원에 간 거죠. 그때가 대학입학 원서를 쓸 때였어요. 신학대학에 갈지, 법대에 갈지 고민하고 있었죠. 나중에 어머니가 기도원에 찾아왔어요. 담임 선생님이 ‘무슨 신학대학이냐’면서 어머니더러 ‘빨리 회재 데리고 오라’고 한 거죠. 결국 신학대학을 포기하고 법대를 간 겁니다.”
 
  ― 어머님은 어떤 분입니까.
 
  “중학교 교육도 못 받은 분이에요. 어머니는 40여 년간 생선 장수, 아버지는 돼지를 키워 우리 4남매를 공부시켰어요. 아버지는 누가 훔쳐 갈까 봐 돼지우리 위에 침상(寢牀)을 깔고 주무실 정도였어요. 생선 장수라는 것도 말이 장사지, 번듯한 가게가 있었던 게 아닙니다. 그냥 고무 대야 3~5개 갖고 다니며 길거리에서 좌판을 벌여 생선을 판매한 겁니다. 그러다가 인근 구례에 장이 선다 그러면 구례 가서 장사하고, 광양에 장이 선다 하면 광양 가서 장사하고 그런 식이었어요. 지금도 여수에서 우리 어머니와 같이 장사했다는 분들을 종종 봬요.(웃음)”
 
  ― 어머님 덕을 많이 봤네요.
 
  “어머니의 기도가 컸죠. 새벽 장사를 하면서도 먼저 교회에서 예배를 본 뒤 장사하러 가실 정도였죠. 고등학교 입학시험 보러 갈 때가 기억납니다. 제가 순천고등학교 입학시험을 보기 위해 어머니와 함께 신풍역이란 곳으로 갔어요. 어머니는 장사를 하러 구례까지 가야 했고, 저는 시험 치러 순천으로 가야 하는 상황이었죠. 그때 어머니가 계란 프라이를 사주더라고요. 그때는 계란이 굉장히 비쌌잖아요. 그거 마음 편히 먹는 집이 별로 없었어요. 그때 먹은 계란 프라이가 그렇게 맛있더라고요. 그 맛을 잊지 못해 지금도 아주 좋아해요.”
 
  ― 군대를 사병으로 다녀왔던데요.
 
  “동생도 대학을 가야 해 대학 2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했어요. 그때는 제가 사시(司試)에 합격한 게 아니라, 법무관으로는 갈 수 없고 마음만 먹으면 방위는 지원할 수 있었어요. 저도 유혹을 좀 받았죠. 편하니까요. 그랬더니 어머니가 ‘예수 믿는 사람이 부정한 방법 쓰면 안 된다’고 단호하게 얘기하는 바람에 그냥 사병으로 간 겁니다. 보시면 알겠지만, 제가 검사장으로 있을 때 육군 병장 만기 제대한 건 저밖에 없더라고요. 신문에도 났어요.(웃음)”
 
  ― 앞으로 갈 길은 이제껏 걸어온 길보다 더 험난해 보입니다만.
 
  “제가 법조인으로 30여 년 가까이 봉직(奉職)했지만, 법조인으로 사람들을 돕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어요. 이제는 다양한 사람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그들의 고충과 고민을 들은 뒤, 합당한 대안을 만들고 싶어요. 지금 보면 불통으로 인한 대립과 갈등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잖아요. 이런 부분을 어떻게 치유하고 고쳐나갈지 고민 중입니다. 그런 갈등을 치유하고 해결할 우리 사회의 어른도 안 보여 걱정입니다. 이런 간극을 제가 조금이나마 메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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