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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

39년간 찍힌 ‘배신자’ 낙인, 지울 수 있을까?

글 : 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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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동권 출신’ 심재철(沈在哲·61) 자유한국당 의원이 운동권 선후배 사이인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맹공을 가하고 있다.
 
  발단은 유시민 이사장이었다. 유 이사장은 지난 4월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자신이 1980년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에 연행됐을 때 “(진술서를) 하루에 100장 쓴 적도 있는데, 특히 다른 동료들에게 피해가 안 가도록 다른 부분에서 세밀한 묘사를 했다”고 말했다. 합수부 간부에게서 ‘글 잘 쓴다’는 칭찬을 들었다는 말도 했다.
 
  그 이틀 후, 심재철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1·2심 판결문에 증거로 적시된 유 이사장의 진술서 일부를 공개했다. 심 의원은 “21살 재기(才氣) 넘치는 청년의 90쪽 자필 진술서가 다른 민주화 인사 77명의 목을 겨누는 칼이 되었고 이 중 3명은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의 24인 피의자가 됐다”고 썼다. 1980년 당시 심 의원은 서울대 총학생회장(77학번), 유 이사장은 서울대 총학생회 대의원회 의장(78학번)이었다.
 
  유 이사장은 지난 5월 1일, 팟캐스트 방송 〈알릴레오〉를 통해 심 의원이 제기한 ‘밀고(密告) 의혹’을 반박했다. 그러자 심 의원은 유 이사장 진술서 전체와 자신의 진술서 전량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당초 유 이사장은 ‘추측’이란 전제를 달고, 자술서를 ‘1980년 7월 중순 이후에 썼다’고 했다. 심 의원이 검거된 6월 30일 이후, 합수부에 불려가 심 의원이 진술한 내용에 맞춰 자술서를 쓸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공개된 진술서 전문(全文) 중, 유 이사장 진술서엔 ‘1980.6.12 자술인 柳時敏(유시민)’이라는 자필이 남아 있었다. 심 의원의 자필 진술서 작성 시점은 ‘1980.6.30’이었다. 즉 “심 의원 진술에 맞춰 썼다”는 유 이사장의 말은 시간상 앞뒤가 안 맞는 셈이다. 유 이사장의 진술서엔 당시 운동권 내 여러 단체명과 모임명은 물론 학생운동 관련 인사 77명의 이름도 실명 그대로 적혀 있다.
 
  심재철 의원은 ‘서울대 운동권 선배’인 이해찬 대표도 겨냥했다. 1980년 당시 민주청년협의회(민청협) 위원장 대리던 이 대표가 반(反)신군부 투쟁을 하던 동료들의 명단을 합수부에 제출했다고 폭로한 것이다. 심 의원은 “1980년 6월 24일 체포된 민청협 위원장 대리 이해찬씨는 ‘제가 본 건을 위해 접촉한 인물들과의 관계를 작성했다’며 A4용지 7쪽짜리로 된 101명의 명단을 표로 작성해 제출했다”고 밝혔다.
 
  심 의원은 “명단은 민청협 회원, 복학생, 재학생 등으로 구분됐으며 선후배 동료들의 전과(前科), 직책, 주요 활동 등도 구체적으로 적시됐다”고 했다. 그는 “이씨가 합수부에 제출한 ‘101명 리스트’는 민청협 회원 48명과 유시민이 지켰다고 해명한 서울대 비밀조직원 2명, 각 대학 복학생 리더들을 포함하고 있다”며 “이씨의 (101명 명단이 포함된) 277쪽의 자필 진술서는 신군부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에 일조했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운동권 출신 인사들 사이에서는 심재철 의원이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당시 동료들을 배신하는 진술을 했다는 게 정설로 통해왔다. 심 의원의 진술서 공개는 그에 대한 ‘반격’ 차원이란 해석이 나온다.
 
  39년 만의 반격이 심 의원에게 찍힌 ‘배신자’라는 낙인을 지울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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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화 → 지역갈등    (2019-05-30) 찬성 : 3   반대 : 0
김대중은 태어나지 말았어야할 인간이었다.
광주사태가 그를 호남영웅으로 이제는 민주화의 화신처럼 만들었지만, 인간 김대중은 상습적인 거짓말, 위선으로 가득찬 인간이었다.
민주화를 원했던 많은 사람들 나도 그 중 한 사람이었지만, 그는 민주화를 자신의 욕심으로 채웠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데모였나?
민주화는 김대중이 대통령되기위한 것이 되었고, 호남의 것이 되었으며, 지역갈등의 시초가 되었다.
민주화의 결과가 바로 지역갈등일줄 알았었다면, 분명히 급격한 민주화를 반대했을 것이다.

민주화를 지역갈등으로 변질시킨 김대중.
이 광풍이 언제 잦아들지 끝이 보이질 않지만, 먼 훗날 잦아들게 되면 김대중은 역사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호놀룰루    (2019-05-19) 찬성 : 0   반대 : 12
설대운동권 배신자 심씨! 일고다닐때 학교앞 누문동에서 당신 지켜본 사람인데4514반격어쩌구 허참 와 쩐다 ㅎㄷㄷ

20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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